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원하나] 독서모임 꾸리는 법 - 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일루젼 2024. 5. 2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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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원하나

출판 : 유유
출간 : 2019.09.24 


       

 

언젠가 책방에 쌓아둔 책탑을 도서관처럼 십진분류법으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장서가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정리/분류법을 가지고 있는데, 드물게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타인의 책장을 구경해 보면 방식들이 정말 다양하다.

카테고리에 따라, 책의 크기에 따라, 표지의 색상에 따라, 작가의 이름순에 따라 등등.

물론 개인의 소장품이니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과연 저 책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의 경우를 반추하면 빠른 깨달음이 찾아온다. '아, 어차피 그럴 일은 드무니까'.

 

그러다 자신의 모든 소장도서를 DB화 해서 관리한다는 분의 사례를 발견하고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도 있다. 그런 정성과 노력이라니! 물론 한 번 시스템을 갖춰두면 추가되는 책만 입력하면 되니 오히려 편할 것도 같지만... 내가 따라 걷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 

부럽냐고? 

당연히 엄청나게 부럽다!

 

사실 내가 블로그에 남기는 리뷰들은 일종의 사후 데이터 기록에 가깝기도 하다. 이런 책들을 가지고 있었고 -혹은 만났고-, 읽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꼈었다는 나만의 독서모임이기도 한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그리고 스스로의 변화를 발견하게 해주는.

 

나 또한 이런저런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만족스러웠던 경우도 있지만, 불편하거나 흥미가 생기지 않아 흐지부지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여타의 취미들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와 관심사,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명확한 방향성'을 갖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리고 다시 무엇을 나눌 것인가.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내가 독서모임에 기대하는 바는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 즉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좋았다, 재미있었다, 슬펐다 같은 감상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모임이라는 것은 취지 자체가 다양한 경험의 공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모임에 흥미가 생겼다면 자신의 취향과 다르더라도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찾게 될 수도 있고, 설사 '나와는 맞지 않다'로 결론이 바뀌지 않더라도 색다른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들을 선택했는지 -나는 선택하지 않을지라도- 참고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과 같은 것, 유사한 것들만을 선택하다보면 그 안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좋다' 또한 감각이므로 비슷한 자극에는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이지 않고 흘러야 깨끗하게 유지되듯이 때로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것을 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다름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경계를 다시금 감각하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들 독서모임을 합시다. 

끝. 


 

 

"평생 책만 읽는 것이 내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 영국의 출판편집자이자 작가인 '책 덕후' 앤디 밀러의 에세이 <위험한 독서의 해>에서 건져 올린 문장입니다. 언제나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말이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 문장을 전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나도! 나도 평생 책만 읽고 살고 싶다."
"어떻게 책만 읽을 수 있어? 세상에 다른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 앞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책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때로는 책을 통해 새로운 일을 찾거나 시도해 보곤 합니다. 이들에게 책을 둘러싼 풍성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독서모임은 제법 괜찮은 독서 수단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아마 뒤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이들에게 독서모임은 조금은 어색하지만 일상의 새로운 시도, 서먹한 책들과 가까워질 계기, 운이 좋다면 고민하던 문제의 답까지 찾을 수 있는 뜻밖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 물론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갑자기 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독서모임을 한다고 해서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수고로운 독서를 해내고 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타인의 시각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다양해진 삶의 빛깔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감정의 온도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을 찾아내는 요령을 얻을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하면서 시야가 점점 확장될 것입니다. 

 

-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속 한 구절입니다. 제게는 판단 능력의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독서모임을 활용하라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I 독서모임 만들기

1. 왜 사람들은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할까요?

2. 어디 가면 독서모임 할 사람들을 찾을 수 있죠?

3. 첫 모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II 모임 준비하기

4. 책은 어떻게 고르세요? 
5. 발제를 꼭 준비해야 하나요? 
6. 책 읽을 예닐곱 명이 모이기 적합한 장소는? 
7. 지속 가능한 모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 

III 모임 운영하기

 

8. 모임은 어떤 순서로 진행하나요? 
9. 지정한 같은 책을 읽을 것인가, 자유롭게 각자의 책을 읽을 것인가
10.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법
11. 회원 모집하기 전 알아 두어야 할 것
12. 든든한 지원군, 운영진 구성하기 
13. 시들해진 모임 분위기 전환하는 법 
14. 모임 회비나 가입비를 받는 게 좋을까요? 

IV 더 재미있게 독서모임 하는 법


15. 분야별 독서모임 꾸리기
16. 독서모임 테마 정하기
17. 모임 안에 소모임 만들기

 


 


- 그때의 통금 시간은 저녁 7시.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나니 통금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귀가하던 사람들 중 몇 명이 독일군에게 잡혔고, 임시방편으로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회'를 하느라 늦었다고 둘러댔죠. 당시 독일군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문화 정책을 펼쳤거든요. 그러자 독일군은 심지어 모임을 권장하기까지 했고, 그렇게 시작된 독서모임에는 차곡차곡 근사한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 이렇게 사람들은 때로 사람에 지쳐 책에서 삶을 바꿀 무언가를 찾으려는 절실한 마음으로 독서모임의 문을 두드리고, 때로는 얼결에 모임을 시작하며, 때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친교를 위해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가 될진 모르지만(아니, 안 될지도 모르지만) 시작이나 해볼까?' 하는 무모함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도 괜찮습니다.  

- 맞는 책만 골라 읽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야 책이 속도감 있게 읽히고 빨리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요. 저는 이런 독서습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이야말로 이전에는 몰랐던 생소한 분야를 알아 가기에 적합한 매체입니다. 독서 범위를 넓히고 관심사를 확장하고 싶다면 독서모임을 통해 다양한 책과 그 책들을 주로 읽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세요. 의외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생각을 접할 기회가 생깁니다

- 한 번은 저희 모임에서 소설만 읽는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득 비문학 독서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문 교양서 읽기 모임에 가입했다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는 비문학 책은 잘 읽히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회원들과 함께 조금씩 읽지 않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이내 새로운 분야의 책 읽기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독서모임을 통해 관심의 폭이 넓어진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가령 현대사 책을 읽으며 비로소 역사 문제에 깊이 관심 갖기 시작했고, 가족문제를 다룬 사회과학 분야 책을 읽으며 이전까지는 살피지 않았던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모습에 시선이 갔다고요. 

- 독서모임에서는 혼자 읽기만 해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의 범위 내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관심사가 되기도 하고, 그 책을 모임에 가져온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협했던 사고를 확장하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 책을 읽다 보면 타인의 생각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책에 적힌 작가의 생각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 알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나처럼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떤 사람일까? 다른 사람은 어떤 감상을 얻었을까? 다양한 감상평을 나누고 싶고 가슴에 박힌 구절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좋은 책을 접하면 공유하고 싶어지고요. 

- 한편 오랫동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고전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도무지 읽히지 않거나 이해하는 것조차 힘겨우면 난감하고 때로는 무력감이 듭니다.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은 심정이죠. 내 독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당신에게도 이 책이 이토록 어려웠는지. 제가 만난 사람들은 이럴 때 독서모임 회원들을 찾았습니다.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고. 나만 이렇게 이 책 읽기가 힘든 거냐고.

- 독서모임은 거창한 형식이나 절차 없이 책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감상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책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두고도 다채로운 시선이 교차하고, 그 속에서 접점이 생기기도, 차이점이 더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회원 수만큼 다양한 소감이 오가고 이런 대화를 꾸준히 이어 가다 보면, 화제가 개인의 취향과 삶의 태도로까지 확장되기도 합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시각이 몰라보게 넓어지고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진리를 소통 속에서 깨닫습니다. 

-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에 대한 소감을 타인에게 설명하려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우리는 의외로 상대에게 의견이나 생각을 체계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습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등 단편적인 대화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할 기회는 기껏해야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정도가 아닐까요.  

- 모임에서 발언할 때는 읽은 책이 어땠는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고 싫었는지 등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적절하게 표현해야 하죠. 다른 회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일도 꾸준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읽은 책을 제대로 소화한 기분이 든다는 회원도 꽤 많습니다. 운영자가 되면 모임에서 오가는 여러 대화를 연결하기도 해야 합니다. 다양한 회원을 고려하며 적절한 단어와 화법을 구사하려 노력하다 보면 자연히 말주변이 늘고 논쟁을 중재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 책을 통해 특정 분야의 지식을 쌓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 교양으로 철학, 문학 등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꽤 있죠. 그들에게 독서는 그 자체로 공부이지만, 쉽지 않은 공부라 혼자 해내기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 함께 공부할 사람을 모아 독서모임을 시작하면 만만치 않은 책을 생각보다 거뜬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공부할 분야의 책을 함께 살피고 같이 읽을 책을 골라서 정독하고 요약하고 발표하다 보면 혼자 읽기는 엄두가 나지 않던 '벽돌책'도 차근차근 진도가 나갑니다.

- 여러 가지 사항을 따져 보겠지만, 가장 먼저는 운영자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해야 믿음이 생길 겁니다. 다음으로는 어떤 책을 읽는 모임인지가 드러나야 취향에 맞는지를 따져 볼 수 있을 거고요. 그러니 SNS에 게재할 홍보 글을 쓸 때는 우선 진솔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독서모임을 시작하려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편이 좋습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인지, 여력이 된다면 첫 두 달간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여기에 더해 모임 장소와 시간, 회비까지 공지하면 기본 정보는 제공한 셈입니다. 이외에 책 선정 방식이나 모임 진행 방식, 모임 주기 등을 덧붙이면 더 친절한 안내 글이 되겠지요.

- 본격 회원 모집 공지 글을 올리기 전에 관심 분야를 드러낼 수 있는 다른 글을 미리 올려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가령 인문 교양서 읽기 모임을 준비할 때 눈에 띄는 인문 분야 신간 소개, 독후감, 좋아하는 저자의 소식(기사, 강연이나 북토크 소식) 등을 미리 업로드하면 준비하는 모임의 색깔과 운영자의 독서 취향이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간단한 밑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모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심어 주는 거죠.

- 함께 읽을 책은 운영자가 고를 수도 있고 회원 모두가 돌아가며 고를 수도 있습니다. 나누고 싶은 책이 넘친다면 각각이 추천하는 책을 놓고 투표를 통해 선정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처음 독서모임을 만들었을 때는 의욕이 넘쳐 운영자 혼자 책을 고르는 방식을 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부담이 되었습니다. 결국 '책 선택은 돌아가면서, 그날의 발제는 책을 선정한 사람이'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마음이 한층 편안해졌죠. '책 선택은 돌아가면서, 발제는 운영자가'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던 적도 있습니다. 역시 큰 부담은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 독서모임에서 책을 고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추천하고 읽힌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만났는지, 왜 추천했는지, 함께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할 사람이 결석하면 사람들은 허탈해하고 마치 모임의 알맹이가 빠져 버린 기분이 듭니다. 이런 변수가 제게는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책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혹시 선정자가 결석하지는 않을까, 모임 당일까지 마음 졸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모임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부터 책 선정과 발제 준비를 제가 전담하기로 했습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웠지만 누군가 결석하지 않을까 매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모임 준비하는 데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조금 더 필요했습니다. 회원들과 돌아가면서 책을 고를 때는 모르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런 재미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고요. 하지만 모임 초기와는 달리 확실히 나름의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책의 목차와 대략의 내용만 보고서도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혹은 어려워하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 부분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좋겠다'는 계획이 서기도 했습니다. 거듭된 이런 경험은 제게 독서모임 운영에 대한 자신감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 지금은 모임에 따라 여러 방식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 모임은 읽을 책 절반은 운영자가, 나머지 절반은 회원들이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1년 프로젝트' 모임에서는 회원이 돌아가며 책을 추천하고, 책을 선정한 사람은 반드시 발제문을 서너 개 만들자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문학 모임에서는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기 전에 먼저 회원들의 관심 작품을 묻는 시간을 갖습니다.

- 어떤 방식으로 책을 고르든, 운영자인 저는 이제 늘 새로운 책을 살피고 책을 다루는 여러 매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야 자신 있게 책을 고르고 회원들에게 권할 수도 있으니까요.

- "사람들이 전부 책을 읽고 온다고? 자기가 고른 것도 아니고 남이 고른 책을?"
"평일 저녁이면 갑자기 회사 업무가 생겨서 결석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한 명 정도면 괜찮겠지만 대여섯 명 중에 두 명 이상 결석하면 모임이 제대로 돼요?" 
독서모임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으레 듣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 게 뭐가 문제가 될지. 아예 독서와 담쌓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스스로 독서모임에 참여하겠다고 한 사람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적어도 절반은) 읽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정이 생겨 결석하는 몇 사람이 문제가 될 거라고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눈치 보일 정도로 조용한 곳만 피한다면 독서모임 하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단점은 자리 확보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분위기 좋고 조용하고 쾌적한 북카페는 책을 좋아하고 혼자 독서할 공간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공간이기에 조용하면서도 빽빽이 붐비는 시간이 많습니다. 때문에 모임 전에 미리 방문해서 자리가 있을지 확인해 두지 않으면 낭패 보는 일이 생깁니다. 한 곳을 정해 지속적으로 방문한다고 해도 이런 일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평소에는 한적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혼잡해질 수 있는 공간이 카페니까요. 

- 두 번째로 해결해야 했던 변수는 책을 읽지 않는 회원들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독서모임의 묘미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누는 데 있습니다. 의견은 독서와 사유 속에서 만들어지죠. 책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의견을 정립하기 힘들고 발언을 피하거나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회원이 많아질수록 대화는 개인 에피소드 중심으로 흐르고 모임 분위기가 산만해집니다. 책을 열심히 읽은 회원은 원했던 토론을 하지 못하면 아쉬워하고 책과 무관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매번 책을 완독하기는 분명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 중심 독서모임'의 전제조건은 '가능한 모든 회원이 책을 완독하는 것'입니다.  

-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데 특별한 순서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회원 모두가 자유롭게 발언하고 의견을 고루 교환할 수 있으면 괜찮은 모임입니다. 하지만 큰 줄기도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만 진행하면 꼭 언급해야 할 주제를 놓치거나 의도치 않게 동등한 발언권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는 시행착오 끝에 언젠가부터 나름의 순서를 정해서 모임을 운영합니다. '감상- 발제 - 기억에 남는 구절 공유'를 큰 줄기로 삼고, 경우에 따라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으면 다음 순서에 따릅니다. 

- 저는 한 권의 책을 지정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 독서모임의 수많은 장점을 제대로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읽기 버거운 책을 독서모임에서는 함께 읽기에 겨우라도 읽어 낼 수 있게 되며, 나의 감상과 후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상까지 접할 수 있기에 책을 더 깊이 읽고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책을 놓고도 나와 완전히 다른 견해를 보여 주는 회원들 덕에 편견에 빠지지 않고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며, 완독하지 않으면 발제를 따라갈 수 없을 거라는 부담감 때문에 완독 습관이 생기고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읽고 모임에서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도 그만의 장점이 있으며, 그 방식을 선택하는 모임도 많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모임 내에도 각자 다른 책을 읽는 모임을 궁금해하는 회원들이 있어서 가끔 이벤트 식으로 자유 도서 읽기 모임을 진행합니다. 그렇게 진행한 모임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시 낭독 + 필사' 모임이었습니다.

- 처음 독서모임을 만들었을 때 한 명이 아쉬웠던 저는 직장 거래처에서 알게 된 사람, 대학 동문, 동네 친구 등 제 주변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참여 인원은 많을수록 좋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죠. 그런데 지인들과 모임을 몇 번 해 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이 쓰여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가진 여러 모습 중 일부를 선택해서 보여 줍니다. 일할 때는 사교적이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학교 사람들과는 두루 친하지 않았지만 독서모임에서는 운영자로서 모임을 이끌기 위해 모든 회원을 두루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영자로든 참여자로든 독서모임에서도 모임 특성에 맞게 드러나는 자기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 역시 자연스러운 '나'이지만 내 모습을 그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지인이 모임에 있으면 어느 순간 어색해하는 시선이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제 경험으로는, 독서모임을 만들 때 지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한 모임에는 같은 무리에 속한 지인들만 초대하는 편이 좋고, 그럴 수 없다면 아예 그 지인들과 별도의 모임을 새로 꾸리는 것이 좋습니다. 동네 친구 독서모임, 가족 독서모임, 회사 내 팀 독서모임 등으로 말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모르는 사람과 새로운 독서모임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장점과 효과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 2014년 3월 서울 합정동에서 첫 모임을 가진, 제가 꾸린 첫 번째 독서모임은 인문학 책 읽기 모임이었습니다. 당시는 '교양 인문학', '인문학 지식' 등과 같은 단어가 마치 사회 트렌드처럼 번지며 영향력을 확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공부책' 열풍도 굉장히 거셌죠. 저 역시 단단한 책들로 인문학 공부를 해 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책을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문교양서 읽기 모임을 만들어 저와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모임 주기는 한 달에 한 번으로 정했고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같은 묵직한 인문 분야 스테디셀러부터 함께 읽어 나갔습니다.

 

- 모임을 계속하며 무엇보다 즐거웠던 점은 책이 다루는 여러 가지 고민을 곱씹어 읽고, 정립된 생각을 모임에서 되뇌면서 제 삶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주변 사람들과 일상이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힘든 일을 하소연하거나 남의 험담을 하는 쪽으로 대화가 흘러가기 십상이었는데,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후에는 좀 더 생산적인 생각과 대화를 하는 쪽으로 변했습니다. 때로는 회원 모두가 어려워해서 책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심쩍은 날도 있지만 이해가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독서 내공과 생각의 힘이 부쩍 자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세계 문학 읽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세계 문학 전집 내의 소설 한 편을 정해 읽고 발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비문학 책 읽기 모임과 달리 소설 읽기 모임은 작품 속 인물을 분석하고 각 인물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소설 속 상황을 다르게 가정해 보며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라면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추측할 때는 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지요. 같은 결말을 읽고도 저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소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 중립의 위치에서 모임을 진행하려면 진땀을 빼기도 합니다.

- 제가 운영하는 문학 모임은 회원들의 만족도도 꽤 높은 편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시작한 문학 모임은 지금은 시즌제로 운영하며, '나쓰메 소세키 읽기 모임', '알베르 카뮈 깊이 읽기 모임', '한국 소설 읽기 모임', '러시아 문학 읽기 모임' 등으로 매 시즌 다른 테마를 정해회원을 모집합니다. 시즌당 모임 횟수는 3~4회 정도고요. 한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으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쉽게 경험하기 힘든 특정 분야 문학의 세계를 함께 맛보는 것이 이런 모임의 목적입니다.
간혹 작품 세계가 난해한 작가를 만나 시즌 내내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학 모임에는 비문학 모임에는 없는 그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습니다.

-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에는 제인 오스틴 작품 여섯 편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 등장합니다. 친구 또는 부부인 영화 속 인물들은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번 만나서 여섯 편의 작품을 하나씩 읽습니다. 특이하게도 매번 모임 장소를 집, 바닷가, 식당 등으로 정해서 모임 분위기에 변화를 주죠. 그 모습이 정말 근사했습니다. 영화와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비슷한 기분을 내 보고도 싶었습니다. 마침 저와 생각이 비슷한 회원이 몇 명 있었고요. 얼른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만들어서 하루는 한강공원에서 모임을 하고, 하루는 영국 찻잔과 홍차를 준비한 회원 덕분에 잉글리시티 카페 분위기를 내며 <오만과 편견>, <설득>, <이성과 감성>, <엠마>,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을 읽었습니다. 매 모임이 설렜고,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시각과 감상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 이후 이 모임이 계기가 되어 특정 작가 작품 읽기 모임을 몇 번 더 진행했습니다. 이 테마로 모임을 진행할 때는 작품 읽는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원들과 상의해서 집필 순서대로 읽으면 작가의 글이 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읽기 쉬운 작품이나 분량이 적은 작품부터 시작하면 갈수록 모임의 몰입도가 높아집니다. 완급 조절을 위해 가벼운 책과 무거운 책을 적절히 번갈아 읽는 것도 좋지요.
한 작가를 깊이 이해하면 자연히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 대한 호기심도 생깁니다. 바로 이럴 때 시작하면 좋은 모임이 다음으로 소개할 모임입니다.

- 이 테마는 특정 시대나 장소가 변화해 온 과정을 딱딱한 역사책이 아닌 여러 편의 문학 작품을 통해 파악하고 싶을 때 도전해 볼 만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사료가 아닌 시대별 소설을 통해 유추하는 겁니다. 1960년대 대표 소설 한 편, 1970년대 대표 소설 한 편, 1980년대 대표 소설 한 편 등으로 각 시대의 대표작들을 차례차례 읽다 보면 시대의 변화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각 작품을 따로따로 읽었을 때는 무심코 넘겼던, 시대상이 반영된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각 시대의 대표작을 두 편 이상씩 정해 읽으면 1960년대의 작품 분위기와 1970년대의 작품 분위기를 비교해 볼 수도 있지요. 작품을 선정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들고 진행하기도 쉽지 않은 테마이지만 시도해 보면 한 시즌 모임으로도 시야가 대폭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 같은 시기에 출간된 여러 국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어 보는 테마도 재미있습니다. 가령 '1980년대 후반 소설 읽기 모임'으로 테마를 정하고 그 시기에 출간된 일본 소설, 미국 소설, 영국 소설, 한국 소설을 4회에 걸쳐 읽으면 같은 시기에 각 장소에서 어떤 다른 사건들이 일어났고, 비슷한 시기이지만 각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임은 한번 참여해 보는 것만으로도 읽는 힘을 큰 폭으로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는 이들 가운데도 유독 시는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 읽기를 낯설어하고 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잡고 읽어 보려고 해도 시와 쉽게 친해지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시 읽기 모임은 주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 책 읽기는 지극히 혼자 하는 행위입니다. 어떤 책을 읽든, 읽은 책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고 그 책에서 느낀 점을 삶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그때는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서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는 과정, 나와 다른 생각을 내가 소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머릿속에만 가득한 지식이 현실에서도 환영받는 지혜로 바뀔 겁니다. 독서모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책의 이론을 적용하는 연습의 장입니다. 이를 통해 회원 스스로 변화를 느낀다면 독서모임은 그들의 자부심이 될 것입니다. 

- 독서모임을 통해 태도와 말이 달라진 분이 있습니다. 모임에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훈련을 하면 일상에서도 그런 태도가 나타나지요. 모임에서 다른 시각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 다른 상황에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여러 사람이 운동장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 일등과 꼴등이 생기지만 각자 저마다의 길로 달리면 모두가 일등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비극은 남과 비교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은 참고만 하고 내 길만 묵묵히 간다면 모두 저마다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 제가 소개한 사례와 방법은 이런 마음으로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독서모임에 정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책은 여러분을 거들뿐, 중요한 것은 직접 책을 고르고 모임을 꾸리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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