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진민영] 조그맣게 살 거야 - 군더더기를 빼고 본질에 집중하는 삶

일루젼 2024. 6. 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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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진민영

출판 : 책읽는고양이
출간 : 2018.05.10


       

작고 가벼운 판본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무해하고 산뜻한 느낌.

무엇보다 출판사에 큰 관심이 생겼는데, 동물병원 안에 있는 작은 출판사라니. 겸업을 하시는 걸까? 책 위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나도 보고 싶다... 등등의 생각을 하느라 책날개에서 첫 장으로 넘어가기가 무척 힘겨웠다.

 

저자의 생각들에 기본적으로는 결을 같이 한다. 정돈되고 비워진 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이를 반영할 것이다. 물질에의 집착을 줄여갈수록 삶의 곳곳에 뿌리내렸던 자신의 집착과 굳은 감정들 또한 비워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심미적인 부분이나 자본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이것은 내가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일 수도 있고, 저자와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저자보다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는 처지라 쉬이 결론지을 수가 없다. 

 

올해는 책과 묵은 짐 정리를 최우선으로 하려 한다. 그리고 나면 유튜버 이연이 말했던 것처럼 '나를 나타낸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내려놓으라'는 말대로 옷과 소품들을 정리해야지.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다 여러 번 도돌이표를 찍어본 경험상, 변화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에는 하나씩 집중하는 게 맞다. 

 

비워낸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질까. 

설레는 여름날이다.

 

아. 그런데 저자에게 감명받아 여름용 홈웨어를 두 벌쯤 사고 말았다고 말한다면, 저자는 깊게 탄식하려나. 

대신 적당히 입으려던 '설레게 하지 않는' 옷들을 다섯 벌은 정리할 생각이고, 앞으로는 새로 구매한 두 벌을 아껴 입을 예정이니 고개는 젓지 말아 주셨으면.  

          

 


   

 

- 진민영
미니멀리스트, 에세이스트.
간소한 삶에 매력을 느껴, 가진 소유물을 80% 이상 줄이고 비움이 가져다준 긍정성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삶을 간소화하는 글과 더불어 결핍, 고독, 정적, 정체, 어둠, 빈 공간, 묵언, 절식을 예찬하며 독특한 시선으로 읽어낸 세상살이를 글로 엮고 있다.
앞으로도 느릿느릿 부족한 듯 지구에 최소한의 발자국만 남기며 풍요롭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다.

- 책읽는고양이
책읽는고양이는 동물병원 안에 있는 작은 출판사입니다.

동물병원과 출판사를 오가는 고양이들은 종종 책 위에서 휴식을 청합니다.

무심한 듯 우아하게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책을 펴냅니다. 

- 2014년, 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경험했다. 중국에서 1년간 지낸 기숙사 방은 좁은 데다 제대로 된 취사 시설도 없었다. 가구도 침대와 책상이 전부였다. 의도치 않게 생활 속 많은 일과들을 생략하고 바꿔야 했다. 하지만 간소한 삶이 체질에 맞았는지, 결핍과 불편은 내게 가벼움과 자유로 다가왔다. 옷도 사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았지만, 관리가 수월해져서인지 늘 새것처럼 말끔했다. 조리 도구도 취사 시설도 없었지만 냄비 하나로 만든 제한적인 요리는 건강하고 간편했으며 경제적인 데다가 쓰레기도 없었다. 지출이 줄어들면서 매달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나는 언뜻 보기에 결핍된 상태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내 삶은 풍요롭고 우아했다.  

- 한국에 돌아와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연히 접한 이 '미니멀리즘'이 도대체 무엇인가. 내 삶이 충만한 행복으로 차올랐던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가.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 미니멀리즘은 말한다. 지저분한 환경은 지저분한 삶을 만들고, 관리 안 된 물건은 관리 안 된 사람을 만든다고. 그렇다. 나는 내 삶조차 통제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많은 물건을 가졌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나는 부유하지 않았다. 

- 3년 간의 다운사이징 끝에, 내가 사는 공간은 완전히 비워졌다. 가구 한 점 없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이삿짐으로 접이식 소파와 거울, 밥솥과 약간의 옷가지를 챙겨 나왔다. 내가 사는 이 공간에서 나는 안락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앞으로 물건이 조금 늘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또 언제든지 지금 당장이라도 가진 짐을 전부 처분할 의향도 있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도 있다. 미련이 남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도둑이 든다 해도 아쉽지 않다. 가져갈 물건도 없지만 전부 도둑맞아도 다시 사면 그만이다. 귀중품도 없고 비밀 일기장도 없다.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으니, 떠날 때도 철저하게 공수거다.

- 내 행복에 기여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사회를 밝게 바꿔갈 수 있다. 그 연결 고리가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 접점을 찾고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는 시간이다. 시간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의 행복 지수는 뜨겁게 높아졌다. 스트레스는 줄고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늘어났다. 

- 기다리는 10분, 20분은 내게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다. 나는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방법을 연마해 왔다. 글을 쓰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는다. 어디든 자리 잡고 앉을 공간과 책 한 권, 수첩 하나, 펜 한 자루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시간을 소중하고 알차게 쓸 수 있다. 내가 두려운 건시간이 족쇄가 되어 나를 몰아세우는 상황이다.

-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생각이 든 순간 떠난다. 나의 충동과 본능을 외면하지 않는다. 항상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 순간의 기분과 행복을 추구할 자유다. 

- 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명분으로 속도를 강조하기 시작하면, 매 순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감상의 깊이가 떨어진다.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 표정, 기분, 스치는 풍경을 세세하게 느끼고 담아낼 수 없다. 시간적으로 빈곤한 사람에게 여유란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든 그 모든 순간을 최대한 느끼고 싶다. 천천히 음미하고 녹여서 발효된 기억을 머릿속 앨범에 저장하고 싶다. 깊이 있는 감상에는 집중할 수 있는 군더더기 없는 환경과 여유로운 시간이 필수다.

- 팍팍하게 조여오던 일과가 빠진 자리는 텅 비어 있다. 그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무엇이든 하며 채워진다.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다는 사실이 꽤 설렌다. 무언가를 하며 보낸 어떤 시간보다 오히려 더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 빈둥빈둥 게으른 시간이 나는 좋다.

- 매일같이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삶은 사실 꽤나 피곤하다. 빡빡하게 살다 보면, 권태로움도 그만큼 빨리 찾아온다. 열정과 영감도 충분한 휴식이 있을 때 빛나는 법이다. 여유가 없는 일상은 새로움을 창조할 여력도.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에너지도 없다.

-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애초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란 주어진 시간을 풍족하게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닌가.
시간은 곧 자유다. 시간이 없는 자는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라는 자유조차 정당하게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 무시된 격이다. 
의문을 가져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 건지? 자아 발전이 행복을 준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도 죄책감 따위 없어야 한다.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특별히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는 삶도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다. 

- 모든 정리의 기본은 '비움'이고 그 시작은 '버림'이다. 매일 쓰는 생필품부터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물건'만으로 간추린다. 옷, 책, 욕실 용품, 품목별로 손이 많이 가는 순서로 나열해 보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과감하게 처분한다. 제 아무리 훌륭한 수납함이나 정리 도구도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정답은 물건 줄이기다. 해답은 가벼운 소유의 무게에 있다. 공간 대비 지나치게 많은 인풋이 정리를 방해하는 주범이다. 정리를 태생적으로 못하는 사람도 물건을 줄이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영구적 정리가 가능해진다. 
 
- 행상처럼 손수건이니 텀블러니 오만 잡동사니를 다 들고 다녀야 했다. 공중 화장실에 들러 손을 닦을 때도 티슈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책망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결과 정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절충. 외출해서까지 환경으로 내 생활 동선을 옥죄고 싶진 않다.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 가능한 귀가 후의 삶과 의식주 활동만큼은 환경과 공존을 최우선시하였다.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장을 볼 때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옷은 사지 않고, 생필품을 제외한 쇼핑도 끊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 완벽할 필요는 없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킨다면, 모순일 수밖에 없는 과도기에 접어들어 종종 넘어지고 실수할지라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신념과 행동이 언제나 100퍼센트 일치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내 마음가짐이다. 본능과 욕구만 충족하며 있는 대로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게 아닌, 경각심을 가지고 항상 스스로 경계하면서 감독, 관리하며 생활하는 내 태도를 옳고 그름의 지표로 삼는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 내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을 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다고 칭찬해 줘도 된다.

-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 한 명보다 의식 있는 미니멀 웨이스트 여러 사람이 더 낫고, 완벽한 채식주의자 한 사람보다 육식을 지양하는 백 명의 사람이 있는 편이 세상을 더 빨리 긍정적으로 바꾼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티끌 같은 시도가 모여 깨끗한 공기와 대지를 만든다. 할 수 없는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번번이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모든 일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환경을 생각하게 된 계기도 결국 행복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됐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 잘 관리하고 충분히 쓰임을 다할 수 있게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사치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없이 훌륭한 미니멀리스트다.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서 매일같이 보고 싶은 물건이 2번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사용하지 않지만 쓰임이 분명 있는 물건이다. 3번과는 다르다.

- 우리가 비워야 할 물건은 3번이다. 3번, 즉 쓰임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을 처분함으로써 공간은 여백을 되찾고 머릿속은 홀가분해진다. 스트레스는 줄고 시간과 돈이 모인다. 모인 시간, 돈, 정신적 여유로 나는 평소 관심 있게 주시하던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게 된다. 투자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와 시간적 자유를 얻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본질이다.

- 그렇다면 3번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버리기도 기술이고 훈련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자꾸 연습해야 한다. 우리의 공략 대상, 3번 물건을 가려내는데 필요한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물건이라면 어떤 것도 처분의 대상이 된다. 다음 기준은 보편적으로 누구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다. 

- 우리는 흔히 집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시간을 보낸다. 못 입게 된 낡고 해진 박스 티에 반바지 차림이거나, 목이 늘어나고 무릎이 나온 추리닝 차림이다. 하지만 외출할 때 들인 공의 반만 실내복에 부어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집에서 무얼 입는지는 집에서 보낸 시간의 질을 결정한다. 절대 간과하면 안 된다. 실내용 복장이라도 쓰레기 같은 차림으로 지낸다면, 내 기분마저 쓰레기가 된다. 실내복이라도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때 언제나 우아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집에 있는 시간을 과소 평가하면 안 된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집에서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면, 밖에서도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우아함이 태도에 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줄줄 새는 법이다.

- 집에서 입는 실내복을 선택하는 기준은 외출복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그 어떤 옷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차림이 실내복이다. 그래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우아하면서도 교양 있는 소박한 차림을 갖춰야 한다. 안 입는 옷을 편한 실내복으로 강등시키는 행동은 최악의 옷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입지 않는 옷을 집에서 입는다는 명분으로 옷장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렇게 실내용으로 전락한 버리지 못한 옷들은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열이면 열, 옷장에 그대로 방치된다. 집에서 입는 옷은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단 한 벌이면 된다. 한때는 외출복이었지만 지겨워진 옷, 못 입게 된 옷이 실내복을 선택하는 기준일 수는 없다. 실내복은 지금 당장 친구가 차 한 잔 하자고 불러내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당당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함과 스타일을 동시에 갖춘 옷이어야 한다.

- "도서관과 정원이 있는 곳이라면 다른 도락은 필요 없다."는 글이 있다. 장석주 시인의 책에 나온 구절이다.
나는 물건을 사는 것에도 흥미가 없고 맛집이나 패션에도 무관심하다. 장비가 필요한 활동적인 취미도 없고 왁자지껄한 콘서트나 유원지를 즐기지도 않는다. 독서와 사색, 때때로 동무들과 정답게 시시콜콜한 담소 나누기, 절간 방문하기, 글쓰기, 부드러운 빵과 씁쓸한 커피 한 잔의 티타임 정도가 내 오락 거리다. 여행을 하고 싶은 이유도 그 나라의 유적지나 식문화가 궁금해서도, 사람을 사귀기 위함도, 다양한 레저 활동을 체험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단지 낯선 풍경을 한결같은 나의 모습으로 읽고 ... 

- 가야 하는 곳도 없고, 정해진 일정도, 꼭 먹어야 할 음식도 없다. 눈이 떠지는 시간이 움직이는 시간이고 배가 고파지는 시간이 식사 시간이다. 매일 홀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은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카페를 가고 수첩을 꺼내 글을 끄적이고 책을 읽는다. 멍하게 창밖만 몇 시간씩 보고 있기도 하고, 공원에서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어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도 한다. 걷다가 우연찮게 발길이 닿은 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기도 하고, 목적 없이 탄 기차 안에서 무엇하나 겹치지 않는 독특한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받고, 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는 악순환보다는 약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느리게 자유롭게 사는 삶이 더 값지고 보람되며 행복하다고 확신한다.

- 일본의 니트족 철학자 파(Pha)는 일하는 이유가 오직 생계뿐이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말한다. 잉여인간을 자처하며, 자유롭게 살라고 '니트 프라이드(NEET Pride)'를 설파하고 다닌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에서 파(Pha)의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내가 늘 지침처럼 곁에 두고 사는 말들이다. 

-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나는 늘 1분도 희생하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문신처럼 마음속에 새겨놓고 산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장, 내 집 마련, 결혼과 자식은 반드시 나의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 물론 행복의 조건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남들이 말하는 전형과 주류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기보다, 조금 독특하고 약간은 모나 보여도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 나는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교통카드 한 장만 들고 돌아다닌다. 밥은 집에서 먹고, 옷과 생필품을 사는 때는 정해져 있다. 사치품도 사지 않는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으니, 고정 지출이라고 하면 교통비, 휴대폰 요금, 관리비 정도가 전부다. 신용카드는 평생 쓸 생각이 없고, 체크카드는 보관해 두었다 꼭 필요할 때만 꺼내 쓴다. 약속이나 미팅이 없는 날에는 텀블러와 노트북을 챙겨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한 달 식비도 얼마 들지 않는다. 주로 두부, 사과,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의 야채를 소량 사서 그때그때 먹는다. 번역, 글쓰기, 영어 강사, 교재 작업 등 여러 가지 일을 잡다하게 하지만, 결코 돈을 벌어야겠다는 부담감은 없다. 의미가 있고,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기꺼이 한다. 

- 오랜 시간 자아를 찾는 여정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내가 행복한 일을 하자'였다. 보편적인 즐길 거리에서 기쁨을 얻지 못할 때는 그 일이 제 아무리 트렌디하고 대중적이어도 쫓지 않는다. 

- 예전에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성공에 대한 집착도 많았고 인정받고 싶었고 늘 남과 비교하며 살았다. 항상 허전함을 무언가로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나를 바꾼 것은 '비움'이었다. 허전함을 허전함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작성했던 버킷리스트도, 뭔가를 갖고 싶다는 욕망도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물건과 쇼핑이 사라진 자리는 성장과 배움으로 채워졌다. 트렌드에 발 빠르게 반응하는 또래들 사이에서 느리게 걷는 삶이 좋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 당당함을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다르면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은 혼자만의 편견이었다. 나는 그렇게 관계 속에서도 내 자리를 찾아갔다. 

- 사회를 만족시킨다고 내 행복의 부피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나의 힘으로 내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삶이 그 어떤 삶보다 더 풍족하다고 확신한다. 사회로부터 성공의 징표를 수여받았지만 꽉 막힌 도로에 갇힌 한 사람, 차 없이 걸어 다녀도 자유와 시간을 얻는 또 한 사람.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으로 살면 된다. 선택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 약 10개월 간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다. 변화는 느렸지만 나는 매일 성장했다.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은 더 구체적으로 배워갔다. 내향적이고 민감하고 독특한 관심사를 가진 내 모습도 독특하면 독특한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조금씩 좋아졌다.

 

-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민감하고 남들이 재미있다는 90%가 무덤덤하며 생각도 많고 혼자를 좋아하는 성향도 변하지 않았다. 키가 커지지도, 얼굴이 달라지지도, 눈동자 색깔이 변하지도, 눈썹 모양이 바뀌지도 않았다. 6개월 전이나후나 친구는 여전히 "넌 그대로구나.”라고 말한다. 

- 하지만 그동안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쇼핑을 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소유하던 물건의 90퍼센트를 처분했다. 1년째 바닥 취침을 하고 있고, 매일같이 운동을 하게 되었다. 출판을 했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있다. 내키지 않는 일은 거절하고, 불편한 만남은 갖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 끌리는 일을 그냥 한다.

- 난 여전히 비슷한 사람이다. 친구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그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친구, 가족, 관계, 주변,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었다. 길에 핀 꽃, 한강변의 오리 떼, 날아다니는 잠자리마저도 달리 보였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 예전엔 성장이란 오로지 '나'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지식의 부피가 늘거나 인격이 진보하거나, 아름다워지거나, 장기가 노련해지거나, 자아가 성숙해지는 일이 곧 성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축적된 시간은 전부 그 자체가 성장이었다. 때로는 성장이란 눈에 보이지도, 귀로 들을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순간 내가 가장 깊이 있는 발전을 일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최고의 조언은 말이 없다. 행동 그 자체가 조언이기 때문이다. <심플하게 산다>의 도미니크 로로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말고, 그 원칙을 따르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한다. 어떻게 먹는 게 바른 것인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바르게 먹자는 거다. 깨끗한 환경도 마찬가지다. 길에 꽁초를 버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그동안 환경을 위해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깨끗한 환경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인식이 그 어떤 주장보다 더 묵직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 괜한 조언은 화만 부른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를 늘어놓고 싶으면, 상대방의 삶을 책임질 각오부터 해야 한다. 차라리 어설픈 위로가 낫다. 어깨 위에 손을 올려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말없이 안아주는 게 무책임한 조언보다 낫다.

- 과거에는 외향적인 사람, 또는 항상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왁자지껄한 트렌드를 쫓아야 비로소 젊은 사람다운 기운을 가진다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생각인지는 모르나, 나는 압박감에 짓눌려 할로윈, 크리스마스, 새해맞이, 생일 모두 최대한 떠들썩하고 함께 어울리며 돈, 사람, 시간을 소비하며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더는 나의 내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혼자가 좋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행복을 느낀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간혹 동굴이 필요한 나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 누군가 내게 마음만 먹으면 지구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말이다. 토르의 황금 망치처럼 미니멀리즘은 내게 불멸의 무기를 쥐어주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프라이드 덕분이었을까. 그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혼자 힘으로 닦았다는 성취감이 솟아났다. 나는 어깨에 작은 날개가 돋아난 듯한 기분이 든다.

- 미니멀리즘이 내 마음에 심어준 희망의 싹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내 자신을 너무도 또렷하게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취향을 가졌으며, 가치관과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지, 나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다.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도 많았고 읽어야 할 책의 목록도 백여 가지나 되었다. 소유욕도 덩달아 증식했다. 도서관을 가면 항상 읽고 싶은 책을 대여섯 권 팔 한가득 힘겹게 자리로 가져와 옆에 쌓아놓고 읽곤 했다. 그 결과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은 없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도 없다. 관심이 생기는 책은 사진을 찍어놓거나 메모를 해둔다. 그리고는 바로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읽거나 전자책을 구입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는다. 책을 책장에 꽂아놓기보다 의식적으로 늘 곁에 두기 위해 유념한다. 전부 다 읽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반납한다. 

- 책 한 권을 빌리면 수차례 반복해서 읽는다. 순차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잡히는 대로 읽고 싶은 부분만 반복해서 읽기도 한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도 붙이면서 나의 일부처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든다. 책 한 권을 오랫동안 잡고 있으면 여러 권을 단발적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자신의 언어로 재가공할 수 있다.

- 지금은 상하의 10벌가량, 외투 대여섯 벌이면 충분히 옷으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과 삶의 만족이 충족된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고, 매번 새 옷을 갈망했던 과거보다 당연히 행복의 부피도 생활의 여유도 늘어났다. 스트레스는 줄고 삶의 질은 향상되었다. 빨랫감도 줄고, 세탁비도 많이 들지 않는다. 상하의 7번씩만 가지고 있어도 한 주 동안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다. 

- 내게 의복이란 다양하고 트렌디한 많은 양의 옷보다 단정하게 잘 관리된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치다. 내게 외모 관리란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활용한 꾸미기가 아닌,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과 마음, 자연을 닮은 밥상과 균형 잡힌 생활 습관이고, 명상과 독서로 풍부해진 내면세계다. 


- 옷장의 크기는 항상 소박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옷이 많아지면 그만큼 고민해야 할 선택지도 늘어난다. 옷이 적으면 고민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가뿐한 아침을 보낼 수 있다. 어차피 입는 옷은 늘 정해져 있다.

- 매번 무언가를 사야 한다는 압박과 강박이 사라지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다.
전반적인 씀씀이도 줄었지만, 돈을 현명하게 저축하고 관리한다. 수입의 60퍼센트는 저축하고, 무의식으로 소비하는 행동은 사라졌다. 돈을 쓰고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일도 없고 모든 소비와 지출에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끼니, 돈을 버는 일도 즐겁고, 돈을 쓰는 일도 자신감이 넘친다. 돈이란 내게 자유를 충족하고 꿈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다. 긍정적으로 돈을 보기 시작했다. 

- 살면서 뜻하지 않은 예외적인 상황을 심심찮게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불쾌해하고 짜증 내고 성질내면, 그건 분명 누구의 탓도 아닌 세상을 보는 내가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짜증을 낸다고 상황이 변하지도, 변수가 묘수가 되지도 않는다. 나만 손해인 가성비 떨어지는 감정 소모다. 내가 짜증이 많았던 이유는 타고난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분명 여유 없고 뭐든 빨리빨리 재촉했던 사고방식이 기여를 했을 것이다.
여유가 늘어나니 짜증을 낼 이유가 사라진다. 어떤 변수도 나를 불쾌하게 하지 못한다.  

- 나는 행복을 정의할 수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그려낼 수 있다. 물론 나의 행복으로 가는 주관적인 지도다. 그 지도에는 육체와 정신의 성장, 영혼의 자유, 타인의 삶과 사회로의 긍정적 기여, 창의적인 직업 활동, 글로 남기는 나의 자취, 책과 음악, 글을 쓰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 등 수많은 구간이 있다. 

-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내가 가진 지도는 매일매일 너덜거릴 만큼 자주 들여다봐서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비와 난관에 부딪힐지라도 언제든 길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내가 실천하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은 두 가지다. 다운사이징과 싱글태스킹. 그중 선택지를 줄여주는 일등 공신이 바로 싱글태스킹이다. 싱글태스킹은 무엇이든 한 번에 한 가지만 한다는 뜻이다. 매일 같은 운동만 하면 밥 먹고 양치하듯 고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 속 루틴으로 자리 잡는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요일마다 정해진 옷을 입으며, 책 한 권을 긴 시간 반복해서 읽고 영화 한 편에 꽂히면 대사를 모두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본다.

 

- 생활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고 단순하게 만들면 수만 가지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자질구레한 선택이 사라지면, 더 큰 선택 앞에서 아껴놨던 신중함과 집중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선택이 너무도 쉽고, 선택 후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도 없다. 설령 더 나은 선택이 있었다 한들, 그 당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최선이라 여기며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돌아가서 더 나아 보이는 선택을 한들, 또 다른 후회와 미련은 남는다. 

- 이제 내게 하루 동안 내려야 할 결정은 매우 한정적이다. 선택의 기로에서도 잘 망설이지 않는다. 물건을 사는 기준은 누구보다 명확하고, 어떤 일과 행동을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나의 행복이다.

- 몇 해 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죽음 앞에 두려움이 남들보다 적었다. 나의 아버지는 항상 '죽음' 두 글자만 봐도 두렵고 섬뜩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죽음'이라는 글자에 거부감이 없을뿐더러,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내면을 다스리는 데 기를 모은 뒤, 나는 죽음에 대한 긍정성이 점점 더 강해졌다. 평생을 불로, 불사한다는 것만 한 불행이 어디 있을까. 홀로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다면, 주변 사람 모두 떠나보내고, 쓸쓸하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철저히 혼자가 될 것이다. 

-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을 더 충실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며, 매 순간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빚어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언제 죽어도 미련 따위 없다. 오늘 당장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담대하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흔적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지금 가진 재산, 내가 쌓아온 성취 또한 죽음 앞에서 웃으면서 반납할 자신이 있다. 충분히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맛보았고,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다 한들, 죽음의 운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아쉬워하고 싶진 않다.

- 나는 혼자의 시간도 두렵지 않다. 나 자신이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어떤 존재보다 나의 잠재력을 믿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오랫동안 지켜오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과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과 슬픔을 조절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길렀다. 누군가의 업적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해하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타인의 힘에 기대지도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잡지를 보며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 나에게 나는 최고의 동기부여이며, 나태하지 않게 조절하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또 사랑하고 아껴줘야 할 가족이자 연인이며 친구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린다 해도, 나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외롭긴 하겠지만, 외로움 나름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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