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장강명
출판 : 민음사
출간 : 2015.05.08
얏호. 벽을 죄 가리고 있던 책탑 한 줄을 없앴다. 오랜만에 만나는 말간 벽지가 반가웠다.
등뒤도 양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줄어들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한국이 싫어서>도 제목은 오래전부터 들어왔는데 지금에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 남길 리뷰 거의 절대다수에서 '지금에서야'라는 말이 나올 텐데, 쭉 이어서 읽어보시는 분들보다는 매번 하나씩 검색해서 보시는 분들이 더 많으시리라 믿을 뿐이다.
그래도 타이밍이 마침 공교롭다고는 생각한다. 장건재 감독 고아성 주연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8월 개봉 예정이라고. 기대도 크지만, 우려도 크다. '계나'가 말하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혼란과 방황, 그 안에서 체감하는 입장 차이 같은 것들보다는 욜로를 꿈꾸다 도피하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그려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조금씩 다르게 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서로를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춘 추천품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영상, 음악, 심지어 물품들까지도 각자에게 추천되는 것이 다르다.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보고자 하는 대로만 세상을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물론 영성적으로 본다면 언제나 그래왔지만, 뭐랄까 최근엔 조금은 더 느슨하고 아스트랄해졌달까-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자신이 보고 겪는 것만이 전부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는 타인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히기 쉽다.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하기에도 '그러니까 이게 맞아' 보다는 '나는 이게 좋아'에 가까운 쪽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가 가능하다면 '타인이 그렇게 느꼈으니까'도 가능해진다. 각자의 감각의 무게는 각자가 지고,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비눗방울을 맞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한다. 천계에서 지옥을 방문하면 천계의 존재들에게는 지옥의 존재들이 지저분하고 괴기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지옥의 존재들끼리는 서로가 정상적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그렇다면, 지옥의 존재들에게는 천계의 존재 또한 기이해 보이지 않을까? '정상'과 '아름다움'은 어쩌면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거대한 거울방에 지나지 않을지도.
그럼에도, 우리 각자에는 그 안에서도 조금 더 마음에 들고 편안한 위치와 각도를 찾고 있는 걸지도.
- 지명이랑은 내가 호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공식적으로 헤어졌지. 그날 지명이가 자기 아버지 차를 몰고 와서 나를 공항까지 바래다줬어. 지지리 가난한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사는데도 자동차 한 대가 없었어. 지명이가 없었다면 흐물흐물한 이민 가방과 트렁크를 공항까지 들고 오는 것도 큰 일이었을 거야.
- 탑승 수속을 할 때 무게 제한에 걸려 이민 가방을 풀고 밑바닥에 있는 책을 몇 권 꺼내야 했어. 아빠가 보따리를 싸듯이 바람막이 점퍼로 그 책들을 둘둘 싸서 가슴에 안았지.
"너는 다시 돌아올 거야. 난 알아. 그때까지 기다릴게."
출국장 앞에서 지명이가 나를 안으며 말했어.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놀란 우리 부모님이 그 광경을 보시더라.
난 지명의 뺨에서 얼굴을 뗐어. 벌써 걔가 밉더라. 그런 말을 하다니. 너와는 이걸로 정말 이별이야. 공식적인 이별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출국장에 들어갔지.
-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 "너무 예쁘죠? 정식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계속 이 집에서 머물러도 좋아요. 렌트비도 싸게 조정해 드릴게요."
수다스러운 부인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어. 내 가슴은 그때서야 겨우 조금 부풀어 올랐지.
그런데 부인이 그 집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더라고. 부인이 연 문은 본채 옆에 있는 차고의 문이었어. 다섯 평 남짓한 차고를 개조해서 거기에 책상과 침대를 놓고 셋방으로 쓰고 있었던 거야. 그 임시 숙소의 하루 렌트비가 어지간한 비즈니스호텔의 숙박비보다 비싸다는 건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았지.
-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는, 쉰쯤에 은퇴를 하고 제주도에 가서 사는 상상을 자주 했지. 그때 생각은 이랬어.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제주도에 허름한 아파트를 사는 거야. 거기서 산다면 되게 규칙적으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일정한 시간에 잘 거야. 그리고 집에서 요리를 할 거야. 반찬은 간소하게 두세 가지만 먹을 건데 내가 직접 만들 거야. 치킨을 먹고 싶을 때 치킨을 먹을 수도 있지. 수도사처럼 산다는 게 아니야. 평범한 날에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좀 읽다가 밖에 나가서 바닷가 근처에서 달리기를 할 거야. 헬스클럽에 돈을 쓸 여유는 없을 거 같아. 밖에 나가서 스트레칭하고 달리기를 해야지. 그다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그래서 그 책을 되게 많이 읽을 거고, 또 악기를 배울 거야. 시간이 많으니까 두 가지를 배워도 돼. 연습을 되게 많이 할 수 있겠지. 시간이 많으니까.
- 그리고 그쯤 되면 상추 같은 작물을 텃밭에 키우고 싶기도 해. 생각해 봐라? 집에서 물을 주는데 이 물 주는 애들이 열매를 맺어 되게 좋지 않아? 귀농이 어렵다지만 그건 사업으로 하려니까 힘든 거지, 하루에 20~30분 허리 굽히고 땅을 조금 갈아 준다거나 하는 일이 전부일 텐데 그게 그렇게 힘들까 그런 건 할 수 있어. 그리고 수영을 배워서 물속에서 막 자유롭게 슉슉 다니고 싶어. 수영장에서 턴 찍고 인어 공주처럼 잠수도 오래 하고.
- 그리고 서울은 1년에 한 번만 올라와. 대신 한 번만 올라오니까 와서 일주일 정도 잘 수도 있을 거야. 그때 가족도 만나고 필요한 것도 사고 공연을 볼 수도 있고 친구를 만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살다가 예순이 되면 죽는 거지. 더 오래 살아서 뭐 해? 10년 그렇게 살면 됐지.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 그렇게 고생하며 회사에 다니는 것도 예순부터 여든까지 좀 편히 살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사실 은퇴를 늦게 하면 늦게 ...
- 나는 카드 부문, 신용관리팀의 승인실이라는 곳에서 일했어. W종금이 외국 회사랑 제휴를 맺고 신용카드를 발행했는데, 이게 부자들 사이에서는 연회비가 비싼 대신 한도가 없는 카드로 유명했어.
근데 사실 그게 뻥이야. 한도가 있지만 고객이 자기 카드에 한도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어떤 사람이 갑자기 고액 결제를 한다. 그 순간에 승인실에서 그 사람 결제를 승인해 줄지 안 해 줄지 결정하는 거지. 모든 카드 결제가 다 우리한테 올라오는 건 아니고 자잘한 건 다 자동으로 컴퓨터가 승인해 줘. 그런데 매달 50만 원 정도 쓰던 사람이 갑자기 1000만 원짜리 다이아를 산다, 그러면 컴퓨터가 우리한테 그 거래를 보내는 거야. 카드 주인한테는 가맹점에서 "결제가 늦어지네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러고 설명을 하지.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 고객은 당황해서 가 버리거나 다른 카드로 긁어.
- 그러니까 우리는 컴퓨터가 보내오는 거래를 승인할 건지 안 할 건지를 5분 안에 판단해야 돼. 그런데 이걸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게 매뉴얼이 딱히 없어. 되게 주관적이야. 고려해야 할 게 많거든. 예를 들어 같은 거래라도 백수는 안 되지만 직업이 의사면 괜찮아. 그래서 과거 연체 기록 떼 보고 그 사람 사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그런 걸 다 봐. 직업, 나이, 생년월일, 주소, 지난달 승인 내역, 어느 가맹점에서 뭘 사려고 했는지 그런 게 화면에 자동으로 다 떠. 가맹점이 강원랜드 근처다. 그런데 사려는 물건이 금이나 차다, 이러면 내가 결정 못하지. 위로 올려.
- 승인이 안 나면 고객들은 그제야 자기 카드에 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지. 그러면 항의를 해. 일단은 그런 항의 전화를 콜센터에서 받는데, 거기서 설명이 안 되면 우리한테 넘겨줘. 그 전화받는 게 아주 힘들어. 대부분 사람들이 막 화를 내거든. 한도 없다더니 왜 이러는 거냐면서 설명은 이런 식으로 하지. 이번에 한해서 특별히 뭐 때문에, 예를 들어 고객님의 2년 전 연체 기록이 남아 있어서 이게 몇 년 정도 지나야 사용이 가능합니다. 대개 그런 설명을 들어도 납득을 못하지. 진상 떠는 사람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있어.
-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 내가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그 톱니바퀴가 되었다 해도, 이 톱니바퀴가 어디에 끼어 있고 이 원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그런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난 내가 무슨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회사는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겠고, 온통 혼란스러웠달까.
- 따로 불러서 고기를 사 주더라. 삼겹살이랑 항정살. 나한테 두 달만 버티라고 했던 거 같아. 자기 아랫사람이 별 이유 없이 퇴사하면 인사고과 평가가 낮아지잖아. 그래서 평가 지나갈 때까지만 버텨 달라고 했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버틸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그때는 '왜 이래? 넌 내가 말하는 거 하나도 안 들어주고.'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매몰차게 "싫은데요." 이러고 그만뒀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두세 달 더 다닐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 사람한테는 나름 중요한 문제였을 텐데.
- 그래도 내가 하도 징징거리니까 근무조를 바꿔 주긴 하더라. 낮에 일하는 조가 있고 밤에 일하는 조가 또 있었거든. 밤에 일하면 몸이 힘든 반면에 좋은 점도 있었어. 일단 밤에는 거래가 많지 않으니 일도 편하고, 또 밤에 출퇴근할 때에는 복장이 자유야. 그건 되게 좋더라.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갔다. 그때 공부할 시간이 많았는데 회계사 공부 같은 거라도 할걸. 그때는 회계사가 뭔지 내가 아나. 아둔했지.
- 밤에 일하니까 또 좋았던 게, 그때까지 혜나 언니랑 동생 예나랑 한 방에서 잤거든. 다 큰 여자애 셋이 한 방을 쓰니까 얼마나 힘들어. 그런데 밤에 일하니까 잘 때 나 혼자 자잖아. 그런 건 또 좋더라. 은행 업무 보고, 쇼핑하고, 그런 바깥일 보는 것도 쉬워. 그런 걸로 인한 장점은 쏠쏠했다.
- 잠깐 수다를 떤 것 같은데 운동장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은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라. 셋 다 무지하게 술이 고파졌는데 초여름의 따뜻한 공기가 너무 좋아 그냥 거기서 술을 마시기로 했어.
- 난 초여름이 정말 좋아. 햇빛이 쨍쨍하고,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하지만 공기는 아직 후텁지근하지 않고... 그런 날에는 해가 지면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밖으로 나오게 돼. 하늘거리는 민소매 옷을 입고, 뭔가 모험거리를 찾아서.
- 그런데 호주는 1년 내내 그런 날씨 아닌가?
- "다른 애들도 부를까? 아직 졸업하지 않은 남자애들 있잖아. 이 근처에서 자취하는 애들."
은혜가 제안했지만 미연이랑 나는 고개를 저었지. 어쩐지 혼자 꽃단장하고 나왔다 싶더라니. 유부녀가 말야. 은혜가 "그럼 경윤이 부를까?"라고 물었을 때에는 고개를 끄덕였어.
-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준비하고 있을걸? 집에 있으면 엄마가 구박한다고 학교 나와서 한대."
"의전원 그거 괜찮나? 나도 의전원이나 준비할까?"
이건 미연이 한 얘기.
"우리는 미적분이랑 화학이랑 뭐 그런 게 선수 과목으로 인정돼서 좀 유리하다던데?"
은혜가 경윤에게 전화를 걸었지. 그러고는 우리한테 "미친년, 10분 안에 나올 테니 먼저 시작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란다"며 낄낄댔어.
- 정말로 10분 만에 운동장에 도착한 경윤은 의전원이 아니라 수능을 다시 치는 걸로 방향을 틀었다고 하더라. 약대에 가고 싶대 약사가 장점이 참 많다는 거야. 제일 큰 장점은, 재취업이 쉬워서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고 1년에 몇 달씩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는 거. 경윤은 호주 이민을 준비하겠다는 내 얘기에 코웃음을 쳤어.
"야, 너는 왜 다 늙어서 외국 병에 걸리니? 호주 가면 좋을 거 같지? 안 좋아. 한국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나라야. 그냥 딱 외국 6개월, 한국 6개월, 외국 6개월, 한국 6개월, 이렇게 사는 게 제일 좋다니까? 너도 나랑 수능 같이 치자. 응?"
- 나는 개소리하지 말라고 대꾸해 줬지. 그때를 틈타 은혜가 다시 시어머니 욕을 시작했어. 두 시간 전에 말했던 내용과 달라진 게 없었지만 멤버가 늘었으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고 생각했나 봐. 미연도 회사 얘기를 반복했어. <아침마당> 같은 수다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농구하는 남자애들을 관찰했지.
- 대한약사협회 대변인이라도 된 것 같은 경윤의 말에 미연이 결국 흔들렸어. 커트라인과 학비에 대해 물어보던 미연은 "아, 몰라 몰라 몰라! 내가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이런 거나 고민하고 있고!"라고 소리를 질렀어. 그랬더니 은혜가 "우리 같이 점이나 보러 가지 않을래?"라며 사람을 꾀더라고.
"점? 얘는 무슨 자다가 드럼 치는 소리야."
경윤이 핀잔을 줬지. 그래도 은혜는 우겼어.
"학교 앞 스타벅스에 진짜 용한 점쟁이가 있대. 네이버에서 '홍대 별도령'이라고 치면 후기도 겁나 많이 나와. 우리 같이 보러 가자, 응?"
나랑 경윤은 복채로 쓸 돈이 있으면 술을 한 병이라도 더 사겠다고 했지.
- 별도령은 점쟁이 같지 않게 세련된 차림이더라. 어깨 폭이 좁은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어. 노트북에는 무슨 역학 관련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은혜와 미연이가 차례로 사주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왔어.
"그렇게 잘 맞아?"
"대박 대박."
경윤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일어나 점을 치러 갔어. 잠시 뒤 입을 딱 벌리고 돌아오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라고.
"그래, 아무래도 학원에 다녀야겠어."
"너도 가서 쳐 봐!"
아이들이 나더러 성화를 부렸어. 내가 끝까지 점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버티니까 은혜가 자리에서 일어났어. "한 명 정도는 서비스로 봐주지 않을까?"라며 흡연실 유리 칸막이를 통해 보는데, 은혜가 아양을 떨고 별도령이 곤혹스러워하고, 그 광경이 훤히 보이더라.
- 그런 뒷담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혜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자리에 돌아왔어. "야, 딱 10분만 봐주신댄다."라고 으스대면서. 공짜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잖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어.
"어디 멀리 가시려나 봐요?"
내 생년월일을 들은 별도령이 노트북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뱉은 말에 숨이 막히더라고. 그래도 별도령이 "어디로 가시려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에는 "거기까지는 사주로 알 수 없나 보죠?"라고 되받았어. 그랬더니 하는 말이, 역학은 예지 능력이나 투시술이 아니래.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법에 대한 컨설팅이래.
- "가게를 차릴 때 컨설턴트에게 대뜸 '요즘 경기가 가게 차릴 만한가요?' 하고 물어보지 않잖아요. 불경기에 잘 팔리는 물건이 있고 호경기에 잘 팔리는 물건이 있으니 내가 뭘 팔건지를 먼저 말해 줘야죠."
별도령이 그렇게 말하는데 듣고 보니 옳은 말이잖아. 나는 "저... 호주 가려고요."라고 말했어. 별도령이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라.
"역학에서 섬나라는 기본적으로 음기가 강한 걸로 보거든요. 음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지금 계나 씨 사주는 ..."
- 젊은 유부녀가 영어 공부 한답시고 회사를 휴직하고 호주에 와서 열 살 어린 남자랑 살림을 차리는 광경도 봤어. 아예 유부녀나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긴 사람도 꽤 있었을 거야. 학벌을 속이는 경우는 흔하디 흔했으니까.
- 내가 호주에서 처음 사귄 남자는 첫 아르바이트 가게에서 만난 애야. 나보다 세 살 연하.
첫 아르바이트는 시티의 어느 건물 지하에 있는 아시안 국수 가게에서 했어. 한국으로 치자면 광화문 빌딩가 지하에 있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라고 보면 돼. 가격대도 그쯤 되고, 고객들이 품는 기대치도 그쯤 되고, 재료를 이것저것 골라 커스터 마이즈 해 주는 방식도 서브웨이랑 비슷해.
손님들이 먼저 국물이 있는 국수냐, 아니면 볶음면이냐를 고르고 면을 선택해, 다음에는 소스를 고르고, 토핑도 골라. 서버가 주문을 받아서 버튼을 누르면 기계에서 빌지가 출력되거든. 그러면 내가 그걸 보고 소스랑 토핑을 번개같이 퍼서 주방으로 넘기는 거야.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서 주면 볶음면은 종이 상자에 담아서, 국물이 있는 면은 사발째로 카운터에 올려.
점심시간이면 주문이 밀려들어 완전 전쟁터야. 주방이랑 카운터가 한가해진 뒤에도 '키친 핸드(주방 보조)'인 형서랑 나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지. 테이블 닦고, 바닥 물청소하고, 창고에서 음료수 꺼내 와서 냉장고에 채워 넣고, 재료 씻어서 재료 통에 잘라 넣고, 걸레를 삶은 뒤에야 주방 한구석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
- 키친 핸드는 시드니의 아르바이트 생태계에서도 가장 아래 단계야. 그런데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키친 핸드로 일할 수밖에 없었어. 가게에서 주문을 받으려 해도 영어가 돼야 할거 아냐 난 그때 최저임금도 못 받았어. 한 시간에 8달러인가 받았지. 최저임금은 13달러였는데.
아시안 국수 가게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했어. 다들 "한국 사람들이 제일 독하다. 절대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일하지 말라."고 하지. 그런데 호주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면접을 볼 만한 영어 실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
- 난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어. 영어도 몰랐고, 호주의 최저임금이나 노동법도 몰랐고, 흙 묻은 당근을 씻는 법도 몰랐고, 냉장고에 음료수를 넣을 때에는 뒤에서부터 새 병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어. 그 네 가지 중 뒤의 것 두 가지는 형서가 가르쳐 줬지. 형서는 시티의 싸고 맛있는 식당이나 마트에서 파는 싸고 맛있는 먹을거리, 싸고 괜찮은 옷을 파는 가게, 돈 안 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광 명소들을 나한테 가르쳐 줬어. 남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내게 ...
- 그런 말을 들었다면... 아마 한참 고민했을 거야.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은 거절했을 것 같아. 너무 젊잖아. 지명은 정말 괜찮은 애였지만, 난 연애를 딱 한 번만 해 보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이런저런 아슬아슬한 상황들을 겪어 보고 싶었어. 젊을 때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들 말이야.
이별을 통보하던 날에도 그렇게 말했어.
"이상형을 너무 일찍 만나는 건 굉장히 안 좋은 일인 것 같아. 내가 지금 서른 중반이라면 아무것도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분명히 너랑 결혼해서 한국에 남는 편을 택했을 거야."
어쨌거나 지명은 그때 내게 청혼하지 않았어. 지명은 나중에,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한참 뒤에 그 이유를 설명해 줬지.
- "너 나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면 그냥 내 옆에서 한국에 있어 주면 안 돼? 호주에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해?"
난 그 말을 이렇게 받았지.
"너도 나 사랑한다며. 나 사랑하면 날 따라서 호주에 가면 안 돼? 기자가 되는 게 그렇게 중요해?"
지명이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건 안 되겠다고 하더라. 자기는 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이제 내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도 했어. "호주에 가는 게 너의 꿈이구나."라고 그는 맥없이 중얼거렸어.
걔가 부모님을 상대로 한참 힘겨운 투쟁을 벌이던 중이었거든. 기자가 되겠다니까 걔네 부모님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전공 살려서 대기업 취직하라고 하던 참이었어. 그래서 내 호주행을 자기 기자 시험 준비에 빗댄 게 걔한테 확 와닿았나 봐.
- 그렇게 말다툼을 벌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막차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지. 얘는 또 입술 말아 넣고 귀여운 표정 짓는 걸로 무마하려고 하더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형서랑 사귄 기간은 두 달 정도 됐어. 마지막 일주일 동안 나는 불법체류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걔를 닦달했는데 이 녀석은 그걸 그냥 잔소리로 여기더라고. 호주가 그렇게 좋으면 한국에 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했더니 이 상태로 나가면 몇 년은 호주 입국이 금지된다면서 안 된대.
- 형서와 사귈 때만 해도 그냥 어쩌다 연하를 사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후로도 줄줄이 연하 남자애들만 만났어. 게다가 애들이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금만 관계가 깊어지면 자기 가족이 어쩌고 사랑을 못 받고 자랐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처음에는 이유를 잘 몰랐어. 내가 동안이라서 그렇지,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다 늙어서 호주에 왔구나, 그래서 남자애들이 다 나보다 어리구나, 하고 우울해하기도 했어. 요즘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나 같은 스타일이 인기인가? 마마보이가 늘어났나? 처음에는 답이 안 나왔지.
- 내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답은 이래. 음기고 양기고 간에 한국 남자애들이 외지 생활을 잘 버티지 못하는 거야. 기본적으로 타국 생활이라는 게 외롭고 쓸쓸하거든. 나만 해도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고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릴 뻔한 적이 여러 번이야. 그럴 땐 그 더러운 아현동 뒷골목이 못 견디게 보고 싶어져.
한국 남자들이 워낙 자존심이 세잖아. 그 자존심 때문에 더 쉽게 무너진다? 영어를 가르치는 백인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어린애 다루듯 해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한국 사람들도 한국에 있는 동남아 사람들을 어린애 취급하잖아. 그런데 상대가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쉬운 말을 써 주면 그게 배려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능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 솔직히 원어민과 사귀면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을 공주님처럼 떠받들어 주는 매너에 더 끌리더라. 댄은 열렬한 서핑 마니아였어. 매일 해변으로 출정했지. 나한테도 서핑을 가르쳐 줬어. 난 그때까지 피부가 타는 게 싫어서 해수욕을 꺼렸거든. 댄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호주 바다의 아름다움과 물놀이의 즐거움을 알게 됐지.
초보자용 스펀지 보드에 몸을 싣고 바다에 뛰어들 때는 정말... 한국 바다는 바다도 아니야. 들어갈 수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냐. 꼬르륵꼬르륵 물을 먹고 어깨를 태우고 허파가 아플 때까지 웃곤 했어. 바다가 그렇게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27년 동안이나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하더라.
- 시드니에서는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본다이니 쿠지니 브론테니 하는 해변에 갈 수 있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도, 탈의실 사용료를 내야 하는 곳도 없어. 바닷가에는 민박집이나 횟집 대신 희고 깨끗한 식당과 예쁜 산책로가 있어. 보드를 타다 지치면 우리는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어. 토플리스 차림의 여자들 몸매를 내가 곁눈질로 훔쳐보면 댄은 내 몸이 예쁘다고 칭찬했지. 그 있잖아, 왜, 서양 애들 특유의 과장법.
그런데 좀 그 칭찬이 핀트가 안 맞아.
"키에나, 넌 참 아름다워. 정말 매력적인 '골든 스킨'을 갖고 있어."
어느 날엔 그렇게 말하더라. 내가 개보다 피부가 더 흰데. 백인 중에도 나처럼 피부가 흰 애는 거의 없다고.
-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너무 그런 말을 자주 하니까 나도 슬슬 이건 아니다 싶었지. 그날 하루 내가 겪은 일을 어렵게 영작해서 이야기해 주잖아? 그래도 "아, 너는 오늘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나."라고 받아 주는 경우가 없어. 대신 내 머리칼을 만지면서 어쩌면 머리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피부가 어쩌면 이렇게 윤이 나느냐며 칭찬을 하는 거지. 내 코는 너무 낮아서, 내 손은 너무 작아서, 걔한테 끝없는 호기심과 경배의 대상이었어. 걔한테는 내 몸이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였나 봐.
댄에게 우리 관계는, 걔가 뭐든지 잘 알아서 이끌어 주면 나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였던 거지.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싶더라고. 야, 사실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하다고! 나 대학도 나왔어! 나 원래 엄청나게 시니컬한 사람이야! 위트 넘치는 표현도 잘하고 이해력도 좋아!
- "아니, 그게 아니라... 내 탓도 좀 있어. 부모님한테 처음에 충격요법을 썼거든. 난 이 아이랑 결혼할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그 집 맏사위가 될 생각이다, 그러면서. 너희 큰언니가 결혼 생각이 없으시다며.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 '난 그 집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상주 노릇도 할 거다, 그 집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 뜻을 꺾지 못한다...'"
"야,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는데 왜 네가 상주가 되냐?"
"원래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면 사위가 상주가 되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 몰라? 손님이라는 게 뭐야? 주인은 아니라는 뜻이잖아."
그렇게 박박 우겨 댔지. 양반들의 예의범절에 대해 일자무식이었던지라.
- 리키는 인도네시아 남자애였어. 대학원 1학기 마칠 때쯤 알게 돼서 꽤 오래 사귀었지. 조별 과제를 하는데 얘가 능청스럽고 비틀린 농담을 은근히 자주 하더라고. 그런데 나만 웃고 남들은 못 알아들어. 영국식 유머인가, 미국식 유머인가? 시침 뚝 떼고 짧고 냉소적으로 한마디 던지는 거 있잖아. 그런 걸 잘했어. 알아들으면 웃겨 죽는데 다른 애들은 그게 유머인지 자체를 모르더라고.
특히 한국 애들이 리키의 정체를 잘 몰랐어. 가무잡잡한 피부에 코가 낮고 입이 약간 튀어나온 사람이, 사실은 영리하고 냉소적이라 생각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봐, 한국 사람들한테는. 리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인도네시아 사람들 생활수준이 한국보다 낙후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생각이나 문화 수준까지 몇십 년 뒤떨어진 건 아니거든. 우리나라 사람들도 브리트니 스피어스 따라 부르고 콜드플레이 좋아해."
나와 조금 알게 됐을 때 리키는 그런 말을 하며 웃었어. 친해지니까 더 날카롭게 한국 유학생들을 비꼬더라고.
"한국 애들은 제일 위에 호주인과 서양인이 있고, 그다음에 일본인과 자신들이 있다고 여기지. 그 아래는 중국인, 그리고 더 아래 남아시아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데 사실 호주인과 서양인 아래 계급은 그냥 동양인이야. 여기 사람들은 구별도 못해. 걔들 눈에는 그냥 영어 잘하는 아시안과 영어 못하는 아시안이 있을 뿐이야."
- 나와 사귈 때쯤에는 더 신랄해졌어.
"너도 보면 알 거야, 사실 남아시아에서 온 애들이 더 잘 살아.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애들은 그 나라에서는 잘 사는 애들이거든. 반면에 일본에서 온 애들, 한국에서 온 애들은 다 가난한 집 출신이잖아. 너희 나라에서 좀 사는 집 애들은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지."
- 리키의 아버지는 자카르타에서 호텔을 두 개나 운영하는 부자였어. 리키는 넷째 아들이었고, 걘 언젠가는 아버지의 재산을 일부 물려받아 자기 사업을 할 거라고 했어. 호주에는 영어와 회계학을 배우러 온 참이었어.
"그래 봤자 너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잖아. 우리 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 똑같은 거 아니야? 여기서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내가 그렇게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더라.
"공부에 뜻이 없긴 나도 매한가지지만, 난 호주에 살려고 온 게 아니야. 영주권이나 시민권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아. 호주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 중 가장 가까운 나라라서 온 거야."
"인도네시아가 호주랑 가까워?"
내 질문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떡 벌리는 시늉만 하더군. 나중에 지도를 봤더니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가깝더라고. 그만큼 내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정말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던 거지.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앙숙 관계라는 사실도 몰랐어.
- 그런 그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몇 개 있었지. 하나는 "왜 인도네시아 회교도들이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가?"였지.
"그건 정말 모르겠어. 미국이 그렇게 싫다면 미국에 가서 테러를 저지르든가 아니면 미국 대사관에다 폭탄을 던져야지, 왜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천치 같은 놈들."
- 또 다른 질문은 "너는 부잣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랐는데 왜 그렇게 성격이 배배 꼬였어?"라는 것이었어. 리키도 고개를 좀 갸우뚱하다 이렇게 답하더라고.
"그냥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커도 낙천적인 성격이 되고, 어떤 사람은 유복하게 자라도 시니컬해지는 것 같아. 내 생각엔, 키에나 너도 나랑 같은 타입이야."
- 리키랑 나는 피차 소속된 친구 집단이 없었기에 팀으로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곧잘 같이 했어. 걔는 시티에서 차로 15분쯤 걸리는 고급 주택가에 단독주택을 빌려 혼자 살았어. 자기 차로 나를 데려오고 다시 시티로 바래다주고 그랬지. 그 집에 갈 때마다 어찌나 걔가 부럽던지. 나는 나이가 서른이 되도록 한 번도 독방을 써 본 적이 없잖아. 자기 전에 불을 켜고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음악은 언제나 이어폰으로 들어야 했어.
리키는 보름에 한 번꼴로 인도네시아에 갔거든. 그럴 때 내가 그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했어. 방이 두 개, 침대도 두 개 있는 집이라 걔가 쓰는 침대에서 잘 필요는 없었지. 그런 날에는 얼마나 달게 잤는지. 그리고 아침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
"베란다에도 폴란드 애가 한 명 살거든. 그런데 이 녀석이 자기 친구들을 자주 데려와서 거실에서 함께 대마초를 피워. 그러면 그 풀 타는 냄새랑,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가 그대로 커튼 안으로 들어와 정말 힘들어."
'베드버그'라고 부르는 서양 벼룩이 날뛰어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했지. 쪽팔려서 농장에서 일하고 오는 워홀러(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 때문에 그런 벌레가 끊이지 않았어.
- "그 집에서 살기 힘들면 여기 와서 함께 살아. 렌트비 안 받을 테니. 방도 남고, 침대도 남잖아."
리키가 불쑥 제안했어. 난 손가락으로 볼펜을 몇 번 돌리다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대답했어.
"왜?"
"난 거지가 아니니까."
"그러면 방세를 좀 내. 네가 마음 편할 정도로만.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더 받아들일 수 없지. 지명이었다면 그럴 때 나를 살살 어르고 달랬을 거야. 리키는 그러는 대신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난 더 권하지 않아."라고 말하더라. 주말까지 답을 달라면서.
- 됐다고 답해 주고는 집에 돌아와서, 대마초 연기가 가득한 방도 아닌 방에 커튼을 치고 누워서, 천장을 째려보면서 생각했지. 내가 자존심이 너무 센 걸까? 가난하게 자라 콤플렉스 덩어리가 된 걸까? 내가 우습게 보이나? 내가 동거에 대한 거부감이 과한가? 폴란드 남자, 태국 남자, 스페인 남자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주제에?
- 그해 여름 학기가 끝나갈 즈음 리키는 훨씬 더 큰 제안을 해 왔어.
- "그래서 말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나랑 같이 인도네시아로 가지 않을래? 어차피 너한테는 호주나 인도네시아나 외국이긴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두 나라 중에 너한테 기회가 많은 곳은 분명 호주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야.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 나랑 인도네시아에 가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나는 인도네시아어와 자바어, 영어를 할 줄 알고, 너는 영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알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여러 가지 물건을 수입하는 사업을 나랑 같이 하는 거야."
"하지만 난 인도네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아. 당장 가서 잘 곳도 없다고."
내가 어리둥절해져서 말했어.
"나랑 같이 살면 되잖아."
리키가 말했어.
"지금 이게... 너 나랑 결혼하자거나 그런 거야, 지금?"
"응. 같이 인도네시아에 가자."
걔가 샌드위치를 다 먹은 뒤 포장지를 구기며 대답했어. 그런 얘기를 한 게 대학 건물 매점이었어.
- 뜨악한 내 표정을 보고 리키가 물었어.
"그게 아니라...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이렇게 말하는 건..."
"인도네시아 사람이랑 결혼하는 건 안 내켜?"
리키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어.
"내 말은, 이런 건 조금 로맨틱하게 청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우리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리키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역력했어. 조금 뒤에 "네가 예스라고 답할 거라면 도일즈에서 프러포즈할게."라고 덧붙이더군.
"무슨 사업 제안하는 것 같다."
그렇게 대꾸해 줬어.
"이게 비즈니스 프러포절이라면, 거절한 뒤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난 더 권하지 않아. 너무 늦기 전에 답해 줘."
- 지금은 좀 후회해. 그때 걔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야. 리키도 나를 분명히 좋아하긴 했거든. 내가 걔한테 핑계를 만들어 줬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어. 내가 리키한테, "나한테 무릎 꿇고 제대로 청혼해. 난 기다리지 않으니까 너무 늦기 전에 해."라고 말했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어. 얘가 혹시, 자기는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나한테 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 모르겠어. 그냥 걔가 결혼을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이슬람 국가 남자잖아. 연애용 아내, 사업용 아내, 자식을 낳기 위한 아내, 이렇게 아내를 여러 명 둘 참이었는지 누가 알아.
- 호주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따려면 호주 이민성에서 정한 계산표에 따라 총점 얼마 이상을 얻어야 해. 나이는 젊을수록, 직업은 호주에서 인정하는 부족 직업군 종사자일수록, 영어 실력이 좋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지.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호주에서 석사 하면서 아이엘츠를 쳐서 그 점수를 채우는 게 제일 일반적인 코스야. 그게 안 되면 서부에 사람 열 명쯤 사는 마을에서 몇 년 살거나 해서 점수를 채워야 돼.
그런데 호주보다 한국에서 아이엘츠를 치면 점수가 더 높게 나온다는 얘기가 있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도 만날 겸 해서 대학원 졸업하기 전에 한국을 한 번씩 들러. 나는 서강대에서 시험을 쳤지. 시험 치는데 하루 종일이 걸리더라. 아주 진이 빠졌어.
- 내 아이엘츠 점수는 8.0점. 이거 정말 높은 점수야. 얼마나 높은 점수냐 하면, 호주 사람도 이 점수 쉽게 안 나와. 나 영어 공부 진짜 열심히 했거든. 한국 드라마 딱 끊고 매일 영어뉴스 봤고, 눈 아프고 토할 것 같을 때까지 영어 책 읽었어. 창피하고 부끄러워도 호주 사람들 앞에서 말 많이 하려고 애썼고, 밤에 사람들 앞에서 입이 안 떨어지는 악몽도 여러 번 꿨어.
그렇게 점수를 받으니까 소문이 퍼져서 비법 좀 가르쳐 달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 대단한 팁이라도 있는 줄 알았나 봐. 써니 언니도 그중 한 명이었어. 도일즈에서 밥을 사주더라고.
"우리 신기한 것도 시켜 보자. 계나 너, 캥거루 고기 먹어봤니? 에뮤 스테이크는?"
써니 언니가 메뉴판을 내밀며 묻더라. 써니 언니 남편은 와인 리스트를 들고 있었고, 그 아저씨가 "술도 좀 좋은 걸 시키자"고 말하더라고.
- 써니 언니와 재인, 나는 같은 유학원과 같은 어학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닌 터라 사이가 좀 각별해. 호주에 왔을 때 써니 언니는 이미 결혼하고 딸도 있었어. 그 딸 때문에 호주에 왔지. 애가 지능이 좀 모자랐는데, 그런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기에는 한국보다 호주가 낫겠다고 판단한 거지. 남편이 농장에서 막노동으로 돈을 버는 동안 언니는 공부에 전념해서 얼른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자는 전략이었어. 그런데 언니 영어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 있었어.
- "내가 정말 염치가 없고 미안해. 인터넷에서 알아보니까 대리 시험 정가가 호주 달러로 만 달러라고 하더라고. 그냥 여권으로 신분 확인을 하기 때문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대.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우리 얼굴 못 알아보잖아. 너랑 나랑 외모도 닮았고, 만 달러는 우리한테 있고. 그 정도 돈은 문제가 아닌데, 문제는 이것도 사기꾼들이 있어서 대리 시험을 쳐준다고 돈만 받고 도망치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그래서...
써니 언니가 어찌나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던지 손을 빼는데 힘이 들 정도였어.
"언니, 그건 정말 안 돼요. 저도 여기서 시민권 취득까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제가 시민권이 이미 있다면 기꺼이 쳐 드렸을 거예요. 하지만 시민권 따기 전에 여기서 전과자가 된다면 정말..."
아니, 나더러 정말 어쩌라는 거야?
- 주말에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 지냈어. 자기 말로는 실내 암벽등반과 스케이트보드, 스네이크보드는 이미 준선수급 이래. 묘기 자전거도 했는데 그건 시드니에서 배운 거고, 본다이 해변에서 서핑도 한번 같이 해봤어. 이건 뭐 육상 선수랑 걸음마 하는 아기랑 붙여 놓은 거 같더군.
뭐랄까, 그때는 엘리가 내 롤 모델이었던 거 같아. 매주 월요일이면 걔가 주말에 자신이 즐긴 익스트림 스포츠를 재미있게 묘사해 줬고 난 정신없이 그 얘길 들었지. 그중에는 '익스트림 다림질'이란 것도 있어. 빌딩 옥상 난간 같은 데서 다림질을 하는 건데, 걔 말로는 사진 찍자고 하는 거래.
- 그 사건이 있던 날 엘리랑 나는 메리톤 서비스 아파트의 58층 발코니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어. 내가 이때 셰어 하우스 운영자로 부수입을 챙기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했던가? 영어로는 ‘랜드로드’가 맞는데 한국 유학생들은 '마스터'라고 부르지.
셰어 하우스를 전전하며 내 집, 내 방에 한이 맺혔거든. 원래도 좀 그런 한이 있었다는 얘기는 했지? 서른 다 되도록 독방 써 본 적이 없다고. 거기다 또 알아보니까 시드니의 집 임대료가 의외로 별로 비싸지도 않더라고. 그때까지 서울 집값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 "회사 진짜 거지 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시드니에서 매일 크고 작은 모험을 겪고 있어서 그런가, 옛날 친구들이 좀 얄팍해 보이더라. 내가 걔들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다거나, 내 미래가 더 밝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호주에 올 일 있으면 연락해, 나 무지 전망 좋고 겁나 큰 아파트에서 살아"라며 휴대폰 번호와 새로 만든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어.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 별로 높지도 않은 개의 신분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 20대에 그런 게 벌써 정해져. 30대가 되면 바꾸는 게 쉽지 않아.
"언니, 그 남자 재능 있어. 언제 갑자기 확 뜰지도 몰라."
내가 잠자코 있자 예나는 남친이 작곡한 노래라며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주더라. 듣는 사람 마음을 쓸쓸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는 건 인정. 그런데 뜰지 안 뜰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예나랑 산사춘을 마셨지. 한 병을 다 비운 뒤에는 내가 집에 내려가 소주를 들고 올라왔어.
-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어느 게 더 위험한데?"
내 동생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었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 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그런 걸 베이스(BASE) 점프라고 한대. 빌딩(Building)이나 안테나(Antenna), 교각(Span), 절벽(Earth)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다고.
- 예나한테 얘기해 줄 때만 해도 글로만 읽었지, 얼마 뒤에 내가 그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서도 제일 위험한 종목이래. 죽을 확률이 스카이다이빙보다 40배 더 높다더라. 이걸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미국에 있는데, 스카이다이빙을 100번 이상 해 본 사람한테만 가르친대.
엘리는 당연히 그런 교육을 안 받았지. 그래서 켄트 스트리트에 착지했을 때 다리가 하나 부러졌어. 마침 또 그때가 시드니에 무슨 테러 경고가 있던 시기였어. 고층 빌딩에서 낙하산이 펼쳐지는 걸 보자마자 경찰이 출동했지. 경찰이 한 발로 뛰며 도망가는 엘리한테 까지 겨눴다. 경찰은 엘리를 현장에서 체포하고, 낙하산을 압수했어.
- 엘리를 한 번 찾아갔어. 일부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걔는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나서 병원에 입원 중이었어. 나한테 뭐랄까, 텍사스식 논리를 펼치더군.
"나도 네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난 이미 책임을 치렀어. 재판을 받고 벌금을 냈거든."
"하지만 너 때문에 난 집에서 쫓겨나게 됐다고! 4년 동안 모은 돈을 전부 다 날리게 됐어! 넌 미안하지도 않니?"
"물론 나도 그건 유감이야, 키에나.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뭘 더 해야 할 의무도 없어."
"내 손해에는 네 책임도 있는 거잖아."
"아니, 호주 법에 따르면 네 손해는 네 책임이야. 너희 집을 관리 감독할 의무는 내가 아니라 너한테 있었던 거라고.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래. 네 생각이 나와 다르다면 우리 중 누가 옳은지 법정에서 다퉈 볼 수 있겠지."
- 나는 다시 셰어 하우스로 이사를 가야 했고... 그것도 커튼을 치고 사는 그 지긋지긋한 거실 셰어로 돌아가야 했어. 이삿날에는 재인이 나를 도와주러 와서 자기가 이사 가는 것처럼 일을 거의 다 했어. 집을 비워 주기 전에 청소를 해야 했는데 둘이서 그 큰 집을 청소하고 나니까 진이 다 빠져서 짐을 들 기력도 없더라.
- 재인이 잔에 와인을 따른 뒤 나한테 건네고는 병을 재빨리 자기 가방 안에 숨겼어. 야외에서 술을 마셔도 병이 외부에 드러나지만 않으면 경찰도 문제 삼지 않아. 샤도네이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어.
그렇게 도스포인트 공원 벤치에 앉아서 오페라하우스와 시티의 야경을 보며 말없이 한참 와인을 마셨어. 걔가 나를 살피는 걸 더는 모르는 척할 수가 없더라고. 내가 물었지.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줘?"
- 호주 시민권은 영주권을 얻은 뒤 1년이 지나면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신청할 때 기준으로 호주에서 산 기간이 4년이 넘어야 해. 그 4년 중에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거주한 기간이 다 합쳐서 1년을 넘으면 안 되고, 특히 신청 1년 전에는 다른 나라에서 거주한 기간이 3개월을 넘으면 안 돼. 나는 걱정할 것 없는 조항이었지. 아이엘츠 시험 치느라 한 번 한국 갔을 때 외에는 호주는커녕 시드니를 벗어난 적도 없으니까. 바꿔 말하면 시민권 신청하기 전까지 두 달 보름 정도는 외국에 다녀와도 된다는 얘기지.
- 지명이 자기가 휴가라고, 어디 같이 놀러 가자고 하더라고. 마침 나도 그때 도일즈가 수리를 한다고 잠시 문을 닫은 상태였거든. 지명이랑 같이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발리에 가기로 했어. 좋더라. 호주에서도 가깝고 한국에서도 멀지 않고, 풀빌라에서 이틀 놀고, 바다가 보이는 작은 호텔에서 또 이틀 놀았어. 지명이가 좀 과도하게 신혼부부 행세를 하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사실 나도 들떠 있었어. 호주를 제외하면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던 데다 또 지명의 프러포즈에 너무 감격해서. "평생을 기다려도 괜찮아, 사랑해."라니. 마음이 붕 뜨는 거 같더라.
'남은 돈 얼마지' 걱정하지 않고 돈 써 본 것도 내 평생 이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네. 내가 돈 쓰는 걸 주저하면 지명이가 막 지갑 열어서 나한테 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물건 사고 계산하고 그랬어.
- 발리 여행을 마치고는 한국에 같이 갔지. 지명이가 아파트를 구했는데 그 아파트에서 두 달 동안 같이 살기로 했어. 지명인 나더러 시민권을 딴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어. 그리고 자기랑 같이 한국에서 살다가 늘그막에 호주에 가자는 거야. 호주 영주권을 우리 노후 대책으로 삼자는 거였지. 호주 국민이 되면 놀고 있어도 실업 연금 따박따박 나오고 큰병 걸리면 병원비 다 지원되거든. 집 처음 살 때는 2만 달러쯤 돈이 나오고, 대학생 자녀 학비도 몇만 달러가 지원되고, 하여튼 좋아. 호주 영주권 가치가 한국 돈으로 10억 원쯤 된대.
- "어디에 전화를 건 거야? 그런 것도 배달해 줘?"
내가 놀라서 물었더니 경윤이 "이거 진짜 편해."라면서 배달 전문 마트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어. 24시간 뭐든지 배달을 해준대. 생수 한 통도 배달해 준대. 내가 감탄하는 걸 보더니 경윤이 청소 도우미 서비스는 아냐고 물어보더라.
"이게 진짜 신세계다. 파출부랑 달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거거든. 진짜 깍듯해. 창틀에 전등갓까지 다 닦아 주고 빨래도 해줘."
청소 상품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기본 4만 원에 몇 천 원 더 추가하면 냉장고 청소나 밑반찬 만들기도 해 준대.
- "야, 너희 서방님은 몇 시에 오냐? 빨리 와서 한잔 해야지!"
미연이 낄낄거리며 채근하더라고.
"만날 야근이야. 사회부 기자라고 어깨에 힘이 엄청 들어가 있어. 11시쯤 돼야 올걸?"
- "그래서 내가 거기 가 봤지. 목도 완전 안 좋고 테이블도 몇 개 없어. 내가 김밥집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거기는 아니라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막 화를 내는 거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야, 부모가 돈 좀 있으면 뭐 하냐? 애가 찐따인데."
"야, 됐다, 됐어. 술이나 마셔."
경윤이가 은혜 말을 가로막더니 "비타 500주는 별로다. 술은 그저 소맥이 최고야."라며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어. 미연이 "골치 아픈 얘기하기 싫다. TV나 틀어 봐."라고 하더라. 그렇게 술을 마시며 예능 프로그램을 연속으로 몇 편 봤어.
- 지명은 아이들이 돌아간 뒤 새벽 1시가 넘어서 들어왔어.
"자정 전까지 들어온다더니? 전화 좀 하지 그랬어."
"아이디어 회의가 있어서..."
"회의를 지금까지 했단 말이야?"
"응. 심지어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회의 끝나고 술 마시러 갔어."
지명은 내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했어. 청소 도우미 서비스를 얘기해 주니까 반색하더라.
"매주 불러도 한 달에 20이면 된다는 거네. 앞으로 우리 집 청소는 무조건 그거다."
- "조금만 돈이 있으면 한국처럼 살기 좋은 곳이 없어. 내가 평생 너 편하게 살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바로 곯아떨어지더라.
- 한국에서 살아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딱히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한국의 구직 시장이 어떤지도 몰랐어. 그래도 일은 하고 싶었어. 은혜도 그렇고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거 많이 봤거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고 그러지 않으면 되게 사람이 게을러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져.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게 되고, 난 그렇게 되기 싫었어.
그래서 두 달 동안 지명이랑 살면서 이 회사 저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많이 냈어. 잡코리아랑 커리어랑 이런 데 이력서도 올려놓고. 그런데 내가 이력이 별거 없잖아. W증권에서 3년 일한 거랑 호주에서 이것저것 알바 한 게 전부지, 무슨 미국 MBA도 아니고 호주에서 회계학 석사 받은 걸 한국에서 어디에 써먹어. 한국에서 회계 업무를 하려면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든지, 하다못해 AICPA라도 있어야 해. 내가 유일하게 내세울 게 영어 회화가 가능하다는 거? 자기소개서 쓰는데 진짜 내용이 너무 조악해서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한국에서 살기 싫어서 호주 갔다고 쓸 수는 없고, 그래서 쓴 말이 "글로벌 감각을 키우기 위해 어쩌고..." 어휴, 됐어.
어지간한 회사는 다 서류에서 떨어졌지. 나이 때문이었을 거야. 최종까지 갔던 데가 세 곳이었어.
- 한 곳은 외국계 금융 투자회사였어. 크레디트스위스니 맥쿼리니 하는 곳들 있잖아. 직원이 한 50명쯤 되는데 연봉은 엄청 높은 데. 지금 생각해 보니 거기는 나 같은 애를 찾는 것도 아니었어. 면접관이 뭘 물어보는데 질문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 파생 상품, 옵션, 선물 이런 거 물어보는데 그게 뭔지 내가 알 턱이 있나. "선물이요? 웬 선물 받으면 좋죠."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거 같아. 그러니 당연히 탈락.
- 토익 토플 문제지 만드는 회사에도 최종까지 갔었네. 그냥 학습지 만드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가 보니까 엄청 크더라고. 영어 필기시험을 보고 면접을 두 번이나 봤지. 2차 면접 때 보니까 나 빼고 다른 지원자는 다 네이티브 스피커야. 영어 그렇게 잘하는 애들이 왜 한국에서 문제지 만드는 회사 다니려고 그래? 네이티브들 때문에 여기도 탈락.
- 세 번째는 무슨 아시아조선협회 어쩌고 하는 곳이었는데 조선 업체들이 받아 보는 정보지를 만드는 곳이야. 그런데 그 정보지 기사는 자기들이 직접 쓰는 건 아니고 외국 기사를 번역하는 거야. 외국 조선 업체나 선박 회사들 기사를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나라 조선 업체들한테 뿌리고 회비를 받는 거지. 그런데 여기는 면접을 보자마자 나한테 테스트라면서 두툼한 자료를 언제까지 번역해 오라는 거야. 근데 아무리 봐도 내 느낌엔 이게 테스트가 아니라 나한테 일을 시키는 거였거든? 테스트면 다른 사람 도움 못 받게 그 자리에서 한두 장 번역하게 해야지. 그걸 왜 집에 가서 해 오래? 그냥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거지. 여기는 그냥 내가 더 연락을 안 했어.
- 돈 걱정 할 일 없이, 주변에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 본 게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 이대로 지명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에서 살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것들. 지명이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했어. 회계사 시험을 치는 건 어떻겠느냐고도 하더라.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좀 웃겼던 게, 내가 회계를 배우고 싶어서 배운 게 아니잖아, 호주에 부족한 직업이니까 배운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 살지 못하게 된다 해도 기왕 배워 놓은 게 있으니 계속 공부해라? 딱히 회계 공부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좀 이상한 거 같더라고.
- 사실은 약사가 되는 건 어떨까 혼자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아무 때나 원할 때 일 그만두고 재취업하고 그런 게 쉽다는 얘기에. 그래서 경윤이한테 전화를 걸어 봤어. 약대 공부는 힘드냐, 너는 약대 간 거 후회 안 하냐, 그런 거 물어봤지. 경윤이는 약대 와서 너무 다행이래. 자기가 사실은 한의대 갈까 약대 갈까 망설였다는 거야.
- "약사는 전망 괜찮아?"
"약사도 뭐 어느 날 갑자기 슈퍼마켓에서 어지간한 약 다 팔게 되면 망하겠지."
- 그 말을 듣고서도 별로 안심은 안 되더라. 외국계 약국 체인이 한국에 대거 들어와서 약값 할인 판매를 한다거나 하면 조직력이 아무리 튼튼해도 도리 없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회계사의 앞날도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더라고. 지금이야 시험으로 사람 수 조절하니까 고수익일 수 있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자동 회계 프로그램 같은 걸 만든다면? 회계는 정말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어.
-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봤어. 나는 먹는 거에 관심이 많아서 맛있는 음식이랑 과자를 좋아하지. 또 술도 좋아해. 그러니까 식재료랑 술값이 싼 곳에서 사는 게 좋아. 그리고 공기가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동네가 좋아. 또 주변 사람들이 많이 웃고 표정이 밝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화내거나 불안해하는 얼굴들을 보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게 전부야. 그 외에는 딱히 이걸 꼭 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없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
- 내가 그런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명이는 자기가 주말에 쉴지 안 쉴지도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 데이트 계획 같은 건 세울 수도 없었어.
- "아니, 오늘이 수요일인데 이번 주 토요일에 일할지 일하지 않을지를 몰라?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 다른 사람들도 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자기가 일할지 일하지 않을지를 몰라?"
나는 바가지 긁는 여자가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런 건 따질 수밖에 없잖아.
"응. 우리 팀장이 그런 걸 잘 얘기 안 하거든."
왜 그런 걸 미리 얘기하지 않는 거야? 그런 걸 미리 말해주는 게 모두한테 효율적이지 않나? 내가 그렇게 말하면 지명은 내 말이 맞다고, 자기도 팀장한테 얘기해 보겠다고 해. 하지만 개가 그런 말 못 하는 걸 난 알아. 그 조직이 그런 조직이 아닌 거지.
- 나는 동화책의 마지막 문장을 입 밖에 내어 말했어. 내 목소리를 들은 지명이 몸을 잠시 뒤척이며 신음하더라.
친구 펭귄들이 파블로한테 얼마나 많이 얘기했을까? 그냥 참고 살라고 말이야. 다들 그렇게 산다고. 파블로한테는 헤어지기 어려운 피붙이나 애인은 없었을까?
- 지명과 두 번째 이별을 결심할 때 고민을 많이 했지. 내가 얘랑 헤어진 다음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아마 후회할 거야.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지명이가 제일 괜찮은 애였는데, 하고. 그런데 걔랑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아도 나중에 결국 후회할 거야. 그때 내가 호주로 떠나야 했는데, 하고. 나라는 인간은 뭔가를 이루겠다는 뚜렷한 목표 같은 건 없으니까, 아마 어떻게 살건 간에 내가 살아 보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를 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영영 알 수 없겠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지를.
-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면에서 나는 파블로보다 형편이 나아. 파블로는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어.(아무리 펭귄이 헤엄을 칠 줄 안다지만, 그래도 근본은 새잖아.) 하지만 내가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인생도 나쁘지 않아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가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나.
- 지명은 고개를 숙인 채 내 얘기를 들었어.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내가 오히려 묻고 싶었지.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나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평생을 걸어? 너무 고맙고 미안했어. 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 다시 호주로 가던 날에도 지명이가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줬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지금 내가 왜 호주로 가는 걸까 생각해 봤어.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 지명이한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지.
"지나 봐야지. 내가 너를 잊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잊지 못하면 내가 호주로 가는 거고, 아니면 여기서 다른 사람을 새로 만날 수도 있고. 어쩌면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너를 계속 기다릴지도 모르지."
걔는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출국장에서 인사를 하고 보안 검색 구역으로 들어갔어. 난 도망치는 게 아니야, 행복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어.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거든.
- 호주에서는 이게 법이야. 정직원은 무조건 1년 휴가가 한 달이야. 놀랄 노자지?
- 뭐라고 말하는지 정말 안 들리더라. 난 이제 알아. 평생 영어 배워도 이건 못 알아들어. 내가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영어를 하게 되는 날은 안 와.
급여 파일을 열어 계약직 근로자 중에 이름이 마이클인 사람을 찾았어. 마이클이 네 명 있더라.
"혹시 마이클 올로위츠 씨세요?"
"이미 그렇다고 말했는데요."
- 우리 세 자매가 마시는 속도를 따라잡으려다 꽤 취했고, 살짝 흥분한 재인은 허세가 되살아나서 예나 남자 친구를 열심히 설득했어.
"거리 공연도 진짜 많고, 바다 위에서도 공연을 하거든요. 조명 시설이랑 스피커랑 무대를 다 배에 싣고 그 위에서 공연을 해요. 그게 다 정부에서 돈을 대는 거예요. 어차피 여기서도 알바를 해야 하잖아요? 호주에서 낮에 물리치료사나 제빵사 같은 걸 하면..."
"내가 이미 얘들한테 입이 닳도록 권했어. 오기 싫대."
내가 재인의 팔꿈치를 잡으며 말했어.
"오기 싫다고? 왜?"
재인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더라.
"조금만 더... 한국에서 조금만 더 해 보고요."
예나의 남자 친구가 꼬인 혀로 말하더라.
- 예나 남자 친구는 그래도 이해해. 노래 가사를 한국말로 쓰고 싶다니까. 혜나 언니나 예나가 호주 오기 싫어하는 건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 혜나 언니는 계속 스타벅스에서 일해. 거기서 한 시간에 얼마 받으려나? 5000원? 좀 오래 했으니까 6000원? 그걸로 한국에서 생활이 돼? 그 돈 모아서 집 살 수 있어? 부모님 병들고 그러면 어떻게 해? 참 이상해. 하루에 여덟 시간씩 서서 일하고 화장실 변기 닦고 그러는데 연봉 1700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살 수는 있게 해 줘야지.
- 예나도 마찬가지야. 걔, 공무원 시험 합격 못해. 이제는 9급 공무원 시험도 고시급이라는데 걔가 그 정도로 밤새워 공부하고 그러지 않잖아. 그거 합격할 노력이면 호주 영주권 쉽게 딴다. 그리고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걸?
- "나 내일 시드니에서 중요한 미팅 있다고. 그거 취소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그리고, 국적 상실 신고인지 뭔지 하라고 나한테 알려 준 적 있어?”
재인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 "내일 미팅 못 가게 되면 아주 알아서들 해! 손해배상 청구할 거니까!"라고 걔가 말하는데 난 옆에서 쪽팔려 죽는 줄 알았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도 얼굴이 썩었어. '개진상 걸렸네' 딱 이런 표정이야.
"야, 목소리 좀 낮춰. 우리가 잘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속삭이니까 얘는 한다는 소리가, 우리는 호주 사람이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호주 정부가 보호해 줄 거래.
- 출국 심사를 받을 때 한국 여권이 아니라 호주 여권을 제시했거든. 그랬더니 전산 기록상으로는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는 호주인이 한국에서 출국하는 상황이 된 거야.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 여권으로 들어왔으면 나갈 때도 한국 여권으로 나가야 이중 국적이 들통나지 않는다는 걸 몰랐어.
항공권을 살 때 호주 여권으로 샀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 콴타스항공이니까 한국 여권보다는 호주 여권을 보여 주는 게 유리하다고 재인이 어디서 헛소문을 주워 들어왔고, 난 그냥 그 말을 믿었지. 그 바람에 재인이랑 사이좋게 출국 심사대에서 끌려 나갔어. 출입국 관리소 사무실의 의자에 앉을 때까지는 거의 범죄자 취급이더라. 엄지부터 새끼까지 열 손가락 지문도 찍었어.
- "당신들이 나한테 국적 상실 신고하라고 안내장 한 장 보내 줬어? 내가 버젓이 한국 집 주소가 있고 연락처가 있는데 연락 한번 하지 않아 놓고, 뭐?"
나는 옆에서 쪽팔려서 가만히 있는데 재인은 이걸 인터넷에 올리네 어쩌네 하며 고래고래 악을 썼어.
"국적 상실자 담당하시는 분이 공항에 없어서 그래요. 윤재인 씨는 병역 문제도 있고..."
"국적 상실 담당하는 사람이 공항에 있어야지, 없다는 게 말이 돼?"
"아니,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시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그렇게 생떼거리를 30분 가까이 썼더니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똥 씹은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들고 오더라.
"여기 샘플이 한 장 있어요. 두 분이 바쁘시다니까 특별히 봐드리는 겁니다. 여기 써 있는 문구를 자필로 옮겨 적으시고 서명하시면 돼요.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한국 국적 상실 신고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벌금을 내겠다는 내용이에요."
"벌금이 얼마인데요?"
"200만 원입니다. 두 분 모두요."
"못 내, 못 내. 나 이거 고소할래. 뭘 다짜고짜 사람 붙잡고는 벌금을 내래? 강도야?"
내가 '이제 그만하자'는 의미로 재인을 노려보았는데 이 또라이 녀석은 굽힐 줄을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출입국 관리소직원이 인상 구기더니 "그럼 벌금 부분은 빼고 쓰세요."라고 하더라고.
- "벌금 안 내도 돼요?"
내가 어리벙벙해져서 물었지.
"그냥 벌금이 적힌 문장을 빼고, 이 상황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는 성실하게 출입국 관리에 임하겠다는 부분만 쓰세요."
- "벌금 안 내도 돼요?"
재인도 다시 물었어.
"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마지못한 말투로 말했어.
"그러면 아까는 왜 벌금 내라고 했어요?"
"이게 입국이면 예외가 없는 건데 출국 상황이라서 특별히 예외로 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되나... 그냥 대충 지어낸 설명인 게 뻔히 보여. 그래도 뭘 어째.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지.
- "보딩 시간까지 아직 30분 남았네. 얼른 면세점 둘러보자."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채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재인이 씩 웃으면서 말하더라. 내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그 녀석은 신이 나서 면세 담배랑 면세 주류 코너로 달려갔어. 그거 사 가면 유학생들한테 팔 수 있거든.
- 재인이 면세점 둘러보는 동안 나는 휴대폰으로 오랜만에 '호주나라랑 다른 교민 커뮤니티에 들어갔어. 국적 상실 신고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싶어서. 나랑 비슷한 질문을 누가 올려놓긴 했더라고. 그런데 답은 없어. 댓글은 잔뜩 달렸는데 다 시민권 취득 부럽다, 정보 좀 공유해 달라, 쪽지 보냈는데 확인 좀 해달라, 이런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결혼했느냐고, 결혼 안 했으면 만나 보고 싶다고 묻는 댓글도 있고.
- 호주나라 게시판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더라. 워홀러랑 유학생이랑 교민들이랑 싸우는 거, 그리고 영사관 직원 불친절하다고 성토하는 거. 워홀러들은 최저임금 안 주는 교민들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욕하고, 교민들은 그거라도 주는 게 어디냐, 한국 학생들 불쌍해서 거둬 주는데 무책임하고 싸가지 없다, 그렇게 반박하고. '엄혹한 전두환 정권 시절 미친 나라를 떠나 호주로 온 사람'이라고 글을 시작해서 만날 한국 욕하는 교민 아저씨도 7년째 그대로네. 엄혹한 전두환 정권 시절 미친 나라를 떠나 호주에 왔으면 이제 그만 한국 좀 잊어. 애들이 영어 못한다고 최저임금 안 주는 교민들. 당신들은 쓰레기야. 그리고 인터넷에서 교민 욕하는 워홀러들아, 너희들은 그 시간에 영어 공부 좀 하렴.
- 비행기를 탈 때 한국 신문을 하나 집어 들었어. 정치 기사는 대충 넘겼고, 경제 칼럼을 정독했지. 그런 거 읽다 보면 영어로 배운 경제 용어나 회계 용어가 한국어로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어서 유용하거든. 초저금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내용이 나왔더라고. 자산이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현금흐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더라. 매달 100만 원씩 들어오는 수입이랑 자산 7억 원을 같은 거라고 생각해야 한대.
거기까지 읽었을 때 백인 승무원이 옆에서 식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 뭐가 있느냐고 물어보고 닭고기 요리로 하겠다고, 혹시 맥주도 줄 수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지.
-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매는 거랑 똑같지 뭐.
-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 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 입국 심사대 직원은 무표정하게 내 여권을 받아서 슬쩍 보고 도장을 찍었어.
"해브 어 나이스 데이."
여권을 돌려받을 때 내가 말했지. 이민국 직원이 고개를 까딱하며 살짝 웃더라. 난 이제 "해브 어 나이스데이"가 어떤 때에는 냉소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걸 알아. 미국에서 점원들이 주로 쓰는 인사라 영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이 말이 좀 웃긴다고 여기는 것도. 하지만 나는 이날부터 이 인사를 좋아하게 됐어. 그날그날의 현금흐름성 행복을 강조하는 말 같아서.
-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 불어. 햇빛이 짱짱해서 난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선글라스를 끼면서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 나 자신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작가의 말
이 글을 쓰기 위해 호주에서 공부한 HJ와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P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소설 속 많은 에피소드가 두 분의 실화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두 분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강태호 작가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완전정복 Q&A 그리고 그에 관한 독설과 블로그도 큰 참고가 되었습니다. 강작가님은 책과 블로그에서 '우리는 속으로 일본인-한국인-중국인-동남아인 순서로 동양인의 순위를 매기지만 서양인들은 아예 구분을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제 소설에서 인도네시아인 리키의 에피소드로 발전했습니다. 작중 리키는 이런 비판을 대사로 말하기도 합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 메일은 직접 해석하고 가라."는.
작품 해설
사육장 너머로
-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1999년 6월 30일 새벽이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불법 조립식 건물은 유독 가스를 내뿜었다. 화재경보기는 불량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신고가 접수되었고 소방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유치원생 열아홉 명과 인솔 교사 네 명이 숨졌다. 여섯 살 된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 어머니가 실신했다. 그녀는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이자 88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였다. 세계에 한국을 자기 자신으로 자랑스럽게 표상하던 어머니는 조국을 신뢰했다. 그러나 정부는 사고 대책과 진상 규명 대신, 책임 회피와 사건 축소에 힘을 쏟았다. 더 이상 그녀는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해 11월 어머니는 뉴질랜드 이민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국가 대표 선수로 딴 메달과 훈장은 국가에 반납했다. 이 나라가 이 나라이던 어머니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믿음을 저버린 쪽은 그녀가 아니라 한국이었다. 그리고 15년 뒤,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 다만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종합하여, 한국인이 한국을 등진다는 말이 틀렸음은 단언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이 한국인을 나가라고 등 떠미는 상황이다. 마침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실은 한국이 떠나라고 부추긴 <한국이 싫어서>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그녀에게 인내심이 부족하다느니, 고생을 덜 해 봤다느니 식의 비난은 하지 말자. 돌고 돌아 결국 자기 계발로 귀결되는 꼰대의 무의미한 언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의미 있는 논평을 하고 싶다면 우선 나의 이야기부터 잘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해법을 모색하는 대화를 함께 해 보자는 것이다. 그녀가 반말체로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상대도 미지의 누군가가 아니라 독자인 우리니까.
- 무엇보다 나는 이 작품을 쓴 작가가 장편 <표백>으로 등단한 '장강명'임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그의 데뷔작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무것도 색칠할 수 없는 흰 그림 같은 세상에서 청년 세대는 표백되어 간다. 그들은 본인의 피로 하얀 전쟁터를 물들인다. 오늘날 젊은 날의 초상은 스스로의 존재를 오직 죽음으로써만 선언하는 붓질로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표백을 읽는 내내, 소설과 거리를 두는 데 실패했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희망 없이 오래 살기보다, 절망 없이 일찍 죽어야겠다고 작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 작품을 접했고, 이 글을 쓰는 현재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완전한 전회라고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설과 관련된 어떤 계기로 인해, 내 안의 무언가가 변화되었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장강명은 독서 이전과 이후, 독자의 삶을 과거와는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능력을 지닌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공들여 쓴 <한국이 싫어서>를 완독한 당신 역시 읽기 전과 읽은 후, 나처럼 (무의식적으로) 바뀐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찾는 작은 발판으로 나의 짧은 독해가 쓰였으면 좋겠다.
- '나'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졸업 후 무직 기간 없이 취업이 된 그녀는 3년째 금융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대학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사귄 "예의 바르고, 허세 부리는 거 없고, 목표가 뚜렷한" 남자 친구 '지명'도 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이곳에서 버티고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의 형편은 적어도 나보다 나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서 이룬 전부를 내려놓고 호주로 가기로 작정한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도록 압박했는가. 그러니까 그녀는 왜 한국을 떠났는가.
- ①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②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 ①과 ②의 내용을 반대로 읽어보면, 한국에서 비전과 경쟁력이 있는 인재가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편견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되, 차마 입 밖으로 자주 꺼내지 않는 상식이다. 이를테면 물려받을 만한 경제력을 지닌 부모가 있거나(재력), 명문대를 나왔다거나(학력), 빼어난 외모(체력)라도 타고났든가 해야 한다. 그나마 이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노년에 빈궁을 면할 여지가 생긴다. 심각한 문제다. 한데 이보다 큰 문제가 있다. 생득적인 재력이 전제되면, 사교육과 성형을 통해 학력과 체력은 후천적으로 쉽게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재력이 없다면, 나머지는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인생 역전을 빌며 매주 복권 사는 사람만 는다.
- 아무리 기나길고 지난한 과정일지라도, 있는 힘을 다해 나는 상대측을 설득-투쟁할 것이다.
진짜 까다로운 주체는 누구인가. 게나 스스로 자신을 까다롭다고 수긍하게 만든, 내면화된 '사육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소나 돼지인 양, 축사에 가두어져 주인이 주는 대로만 먹고살다가, 돈으로 교환되어야 한다는 길들임의 체제가 한국에서 스스럼없이 작동하고 있다. 거기에서 창출된 이득은 주인에게만 온전히 돌아간다. 그러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가축인가. 외양만 보면 구별되지 않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편이 주인이고, 사육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편이 가축이다. 배분되는 사료에 만족하라고,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가 바로 주인이자 거꾸러뜨릴 대상이다.
- 정글과 축사는 상반된 공간으로 간주된다. 정글은 경쟁하여 생존하는 장이고, 축사는 관리되어 생존하는 장이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과 축사의 논리가 한국에서는 혼용되어 나타난다. 가장 부정적인 점만 취합한 방식이다. 본래 양자는 가치판단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가령 자연 상태에서 개체가 서로 각축을 벌이며 적자생존을 도모하는 것(정글의 법칙)과, 인공 상태에서 특정 개체를 번식시켜 양적 생산을 증대하는 것(축사의 논리)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구별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채산성을 과도하게 높이려는 욕심 탓에 시설 내 과밀화 등 개선해야 할 난점이 적지 않다. 허나 축산의 대량산업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이 인류의 역사 전개와 결부된 유구한 기원에 바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악은 두 가지가 기묘하게 결합될 때 퍼진다.
-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담장 안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계나는 호주 이민이라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라고 감탄만 한다. 안주하지 않고 결행함으로써 그녀는 또래와 엇비슷한 생활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도전한다. 과연 계나는 먹고사는 데 급급한 생존을 존재하는 삶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 2000년대 한국 소설에 등장한 이주노동자의 살림과 유사한 모습이다. 부푼 희망을 안고 호주에 온 그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고국에서보다 도리어 궁핍하게 산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빌딩 청소 등 고된 육체노동을 하면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터전을 옮겨도 생존은 삶의 국면으로 바뀌지 않는다. 드디어 열망하던 호주 국민이 되어, 회계 업무를 맡은 직장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게 된 계나도 다르지 않다. 마지막에 그녀는 한국에서 출국해 호주로 귀국하며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다짐한다. 이쯤에서 계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나는 그녀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 뭔가를 성취한 기억으로 조금씩 오랫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자산성 행복'이든, 어떤 순간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는 '현금흐름성 행복'이든, 효율성의 잣대로 손익을 계산하는 한 계나는 행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동생 '나'가 사귀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는 그녀를 보라. 나는 본인이 여태껏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 그녀는 쉽게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 이민을 단행했다고 말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인 속내는 이렇다. "내가 호주에 간 것은 내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한 일이야." 지명의 가족에게서 신분 차이의 굴욕을 절감했으므로, 계나는 신분 상승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신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감각에 침윤된 관점이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틀림없이 불행해진다.
- 앞에서 나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한다고 썼다. 탈출은 어디인가로 도피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상 한국 사육장의 외부에는 외국 사육장이 있을 따름이다. 달아나도 가축으로밖에 생존할 수 없다. 언어와 문화가 상이할수록 그렇게 살 확률은 커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탈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육장 내에서 가축이라는 포박을 풀어내는 데 달려 있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 계나는 반문할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 나는 답변할 것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 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
- 이것이 사육장 너머를 지향하는 내가 최종적으로 도출한 방안이다. 입때껏 나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자, 담화를 시작해 보자.
- 허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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