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에밀리 오브리 / 프랭크 테타르 / 토마스 앙사르 / 이수진
출판 : 사이
출간 : 2024.07.30
밀리의 서재를 이용해 전자책으로 읽었다. 모바일 어플로는 지도가 확대되지 않아 세부 내용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 아쉽다. 패드를 사용해서 읽었더라면 좀 나았겠지만, 모바일로도 완독은 가능했다.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는 각 대륙을 챕터로 나누고, 주요 국가별로 처한 상황과 이슈들을 간략히 설명해 주는 구성이었다. 세계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 각각의 조각 지도만 보고는 바로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본문에서 언급되는 지역을 좀 더 큰 지도에서 한 번 더 표시해 준다거나, 부록으로 전체 세계 지도에 언급된 국가 및 지역을 인덱스처럼 페이지를 표기해 넣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국경을 인접한 나라가 많지 않다는 것이 -사실상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국가는 없으니- 상당히 큰 경험적 부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이라고 표시된 선을 가볍게 뛰어넘어 본다거나,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나라를 넘어간다는 건 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개념일 것이다. 경험해 보았다고 해도 여행지에서의 한 두 번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국경 분쟁에 관련한 내용들이 조금 멀게 느껴진다. 세계 정치 시대이니 주변국의 정세에 민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유럽 연합처럼 정말 '땅을 맞댄 옆 나라'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란 어떤 환경일까.
며칠 전 읽은 다른 책에서 '나는 너의 지옥을 모른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각자는 각자의 고통과 기쁨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타인으로서는 감히 짐작키 어려운 -설사 그의 뇌를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해도 공명하기 어려울- 어떤 것일 것이다.
한 개인은 그로써 온전한 하나의 계(界)다. 그리고 사회는 매 순간 수 천, 수 만의 독립된 계들이 뒤엉키며 호흡한다.
애초에 목적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이러한 단상이다.
이전보다 맛이 덜해졌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는 나와,
동시에 마지막 숨을 뱉는 어떤 이와,
일몰을 바라보는 이와 일출을 바라보는 이,
그리고 전쟁터에 서 있을 어떤 이.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동시에 존재하며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다.
끝.
- 나발니의 2020년 독살 시도에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개입한 흔적이 있는데 이는 2018년 영국에서 벌어진 전직 러시아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미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 나발니의 수감은 유럽연합과의 살등에 다시 불을 지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재판부의 결정을 비난했고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선포했다. 야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재갈을 물리는 푸틴의 처사는 러시아가 가진 주된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결여와 현 집권 세력이 가진 정권 교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 유럽연합은 독일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독일 수출의 59%와 수입의 66%가 유럽연합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점은 1990년 유럽연합이 12개국으로 이루어졌을 때보다 27개국으로 이루어진 현재 독일이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GDP, 인구, 유럽연합 이사회 투표권 등으로 볼 때 이는 사실이다.
- 스위스를 제외한 독일의 모든 이웃 국가들이 유럽연합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유럽연합의 중심에 독일이 있다는 사실을 한층 더 부각시킨다.
- 과거 법치주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의 제재를 받았던 폴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의 '귀중한 동반자'로 거듭났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비셰그라드 그룹(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4개국 간의 지역 협력기구)의 예전 동맹국인 빅토르 오르반(그리고 폴란드가 한 번도 공유한 적 없던 그의 친러시아 성향)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와는 확실하게 차별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지금까지 유럽연합에 대해 비슷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연합이 베푸는 지원 혜택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해야 할 일은 하면서도 유럽연합의 일부 가치들은 외면하곤 했던 것이다.
- 31만 3천 제곱킬로미터의 영토에 3,8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폴란드는 북유럽 대평원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더욱 쉽게 노출되었고 두 번이나 유럽 지도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
- 첫 번째 소멸은 18세기 말에 일어났다. 이웃 강대국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를 분할통치했고 1795년에는 이 나라를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 폴란드의 두 번째 소멸은 1939년 9월에 일어났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폴란드 군대가 퇴각한 지 며칠이 지난 뒤 소련군은 독일-소련 불가침조약에 따라 폴란드의 동부를 점령했다. 이 재빠르고 노골적인 점령과 프랑스와 영국의 불간섭은 많은 폴란드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연속적으로 타국의 지배를 받아온 폴란드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분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45년까지 독일의 통치하에 있었던 서부는 동부에 비해 훨씬 더 발전되었고, 도시화되었고, 인프라 또한 갖추었으며, 산업화되어 있다. 반면 오랫동안 러시아와 소련의 통치하에 놓여 있던 동부는 서부에 비해 덜 도시화되었으며 덜 발전했다. 이러한 '두 폴란드' 사이의 간극은 이제 정치적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그러나 2015년 대선 당시 주권주의자 안제이 두다가 승리하면서 이러한 간극은 사라졌다. 서부에서는 자유주의가 눈에 띄게 후퇴하면서 법과정의당이 득세했고 이러한 경향은 몇 개월 뒤 치러진 총선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카친스키 형제가 창당한 법과정의당은 동부와 서부 모두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혼란스러웠던 역사 이후 이들 형제가 주권 국가로서 폴란드의 가치와 자부심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 베네수엘라에는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우고 차베스와 시몬 볼리바르다. 우고 차베스는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단 '볼리바르식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우며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베네수엘라를 이끈 대통령이다. 시몬 볼리바르는 19세기 스페인 식민 지배로부터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 150년에 걸친 영국의 식민 지배 이후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마카오와 같은 자격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에 속하게 되었다. 세계 7위에 오른 컨테이너항, 화물 운송량으로는 세계 최대인 국제공항, 그리고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지사가 위치한 비즈니스 지구 덕분에 홍콩은 세계적인 무역 중심지 중 하나로 거듭났다. 하지만 뉴욕, 런던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금융 중심지이지만 홍통 은행들의 불투명성은 주기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홍콩으로 향하는 해외 투자금의 주요 출처는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인 케이맨 제도(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제도)와 버진 아일랜드다.
- 본토 해안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만은 중국해의 중심부에 자리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오랫동안 여러 국가가 노려 왔다. 대만은 16세기에 이 지역을 방문한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포모사('아름다운'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후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역사적으로 인구 대다수는 중국인(푸젠성과 광둥성 출신)이었으며 1683년에 청나라가 점령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과의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면서 1895년에 일본에 할양되었다. 이후 1945년에 다시 중국에 이양되었다. 하지만 장제스의 민족주의 세력과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세력 간에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49년 10월 마오쩌둥이 승리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공식 선언하자 장제스는 대만으로 망명하게 된다. 대만 정부는 1970년대 초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인정하기 전까지 전 세계 대다수 국가들에게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이고 유일한 정부였다. 하지만 이후 대만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마저 중화인민공화국에 넘겨주어야 했다.
- 2000년대부터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적으로는 강화된 반면 대만에서 독립주의 정당들이 차례로 집권하면서 주기적으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하지만 갈등을 더욱 키운 것은 시진핑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힘을 표명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대만은 시진핑에게는 핵심 쟁점 지역으로 떠올랐다. 미중 관계 악화, 대만 해협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 행위, 그리고 홍콩에 대한 탄압 등은 대만과, 1979년 대만관계법 이후 대만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동맹국 미국을 더욱 자극했다. 이 일련의 사태들은 대만과 미국 두 나라의 관계가 강화되는 데 일조했다. 심지어 2020년 7월 대만 정부는 자국에 정착하길 원하는 홍콩 주민들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대만은 반도체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미국과 중국이 뛰어들고 있는 기술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
-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이후 비탄에 빠진 무굴제국의 황제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웅장한 이 타지마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하지만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인 인도의 집권 세력이 돌에 새겨진 코란 글귀와 아름다운 첨탑을 가진 '이슬람 예술'의 보배인 이 타지마할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힌두교 신자인 모디 총리와 인도인민당(BJP)이 집권하고 있는 인도에서 타지마할은 힌두교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이 아니다.
- 2017년 말 인도 관광부는 타지마할을 관광 책자에서 삭제했지만 이는 아주 잠깐 동안에 그쳤다. 그로 인한 관광 수입의 감소가 막대했던 탓이다. 2018년 3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이 타지마할을 방문한 것도 공식 일정이 아닌 사적인 방문에 속했다. 인도는 견제와 균형,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무슬림과 소수민족을 희생시키면서 통치하고 있다.
-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와의 관계를 단절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도는 공격적인 중국에 대항하는 서구와의 동맹을 기꺼이 환영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디 총리는 여전히 서구의 방침을 따르지 않고 '비동맹주의'를 채택했다. 그렇게 모디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우려'를 표명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쟁 이후 인도에 무기와 에너지를 싼값에 공급하고 있으며, 인도 또한 세계 곡물 시장에서 밀 부족을 자국산 밀로 상쇄하려 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2022년 5월 역사적인 가뭄으로 인해 모디 총리는 이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 하지만 미국이 이곳의 유일한 세력은 아니다. 중국 역시 이곳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인도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양 주변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려는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인도양 전체 무역항들을 연결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전략)과 일대일로 계획을 인도는 자국에 대한 포위정책으로 여기고 있다.
- 인도는 자국 무역의 90%, 그중에서도 특히 탄화수소가 경유하는 해상 교역로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에 대응했다. 이를 위해 말라카 해협으로 향하는 해로를 감시하기 위해 래카다이브 제도와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점진적으로 몰디브, 세이셸, 모리셔스 섬 간의 해양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세이셸에 공군 및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도양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 냉전이 종식된 이후 인도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룩 이스트(Look East)'라는 이름의 동방 정책을 출범시켰고 그 덕에 아세안 국가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세안의 몇몇 국가들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인도는 일본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반격으로 인도와 일본은 '자유 회랑'이라는 이름의 대안 정책을 시행했다. 바로 이 아시아-아프리카 성장 회랑을 기반으로 인도는 스스로 해당 지역의 초석이 되고자 한다. 이처럼 인도와 일본은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펼치고 있다.
- 인도에서는 1,600개 이상의 구어(口語)가 사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널리 분포된 것은 힌디어로,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사용하며 영어와 함께 인도의 공용어로 쓰인다. 또한 인도는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80%의 인도인이 힌두교인이며 15%는 무슬림이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무슬림이 사는 국가가 되었다.
- 인도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상당한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대륙에 비견될 만한 넓은 영토, 세계 1위에 육박하고 있는 인구수, 문화적 유산, 첨단기술, 원자력, 항공 우주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엘리트 인재들을 양성해낼 수 있는 능력 또한 가졌다. 게다가 발리우드 영화, 음악, 관광, 힌두교 철학, 요가 등을 통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해외 거주 인도인의 수 또한 무려 3,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세계의 약국’으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다. 백신의 60%와 복제약품의 43%가 인도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유엔 회원국이자 G20,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의 일원으로서 국제무대에서도 인도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엄청난 인구수를 내세우며 인도는 중국과 같은 자격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고 있다.
- 이러한 전방위적 외교에도 불구하고 약점 또한 존재한다. 카스트 제도에 불만을 품고 마오쩌둥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인도 내 무장 반군 세력인 낙살라이트가 인도 여러 주들을 위협하고 있다. 2022년 선출된 부족민 출신의 새로운 인도 대통령 드라우파디 무르무의 고향인 북동부 지역에서의 갈등 역시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 폭력사태를 빚고 있는 종교적 과격화와 극심한 빈곤도 더해진다.
- 인도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낮으며 지역 내 외교적 관계는 파키스탄과의 문제로 인해 오명을 얻었다. 결정적으로 경제적,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지배적인 역할이 인도가 국제적인 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는 가까워졌지만, 인도는 강압적인 중국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과도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파키스탄을 지나가는 일대일로의 한 구간이 인도가 계속해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도는 2020년 11월 중국이 세계 최대 자유 무역 협정으로 추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조인하기를 거부했다. 이 협정의 규모가 세계 GDP의 30%, 세계 인구의 20%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히말라야 산맥의 아크사이친(중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 국경 분쟁은 인도와 중국 간의 반복되는 군사적 대립을 야기했고 이에 인도는 중국이 자국 영토를 기습했다고 비난했다.
- 미중 경쟁구도 속에서 중국은 아세안 10개국, 중국,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사이에 자유 무역 협정 지대를 형성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면서 아태 지역에서 미국보다 한발 앞서나갔다. 이 지역은 20억 인구를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경제 구역이다.
- 망명을 마치고 돌아온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79년 이란 혁명을 일으키면서 시아파 이슬람은 이란을 지배하게 되었고 대외정책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통치하지만 실제 권력은 최고지도자(이슬람교 지도자로 주요 국정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에게 있는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잇는 이란은 이러한 정치 형태를 이슬람 세계 전체로 확신시키고자 했다. 이란 혁명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중동 지역을 혼란에 빠트렸고 이란과 이웃 아랍 국가들, 또 이란과 미국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다.
-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다. 2019년 가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전 세계 기자들을 이곳 알울라로 초청해 황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거대한 사막, 협곡,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르단의 페트라(Petra, 붉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유적)를 연상시키는 장엄한 바위들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여주었다.
- 당시 기자단 초청은 명확한 목적하에 이루어졌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앞으로 '관광비자'를 발급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는 본래 메카 성지순례를 위해 방문하는 무슬림들에 한해서만 발급하고 그 외에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 등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커다란 전환점과 같았다.
- 18세기부터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는 엄격한 이슬람교로의 회귀를 설파한 이슬람 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의 도움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들을 정복하고자 했다. 사우드 왕가의 군사력과 와하브파의 이데올로기 연합은 또 다른 말로 '칼과 코란'이라고도 불리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나라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연합은 문자 그대로의 성서 해석, 대중적 이슬람의 거부, 빈번한 성전 촉구라는 특징을 가진다.
- 이슬람교는 7세기에 헤자즈 지역의 도시 메카와 메디나에서 탄생했다. 이 두 도시는 오늘날 대표적인 무슬림 성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내세우는 국제적 정당성은 바로 이러한 유산에 일부 기대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를 '성지의 수호자'라 칭하고 있으며 이슬람 수니파의 리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다수파에 속하는 수니파는 법적으로 예언자 마호메트의 언행록 모음집인 순나(Sunnah)를 기반으로 한다. 이슬람교는 여성과 남성의 엄격한 구분, 외국인을 포함한 여성의 베일 착용, 알코올 전면 금지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사회를 세웠다.
-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또 다른 정체성은 오랫동안 세계 1위를 고수했으며 오늘날에는 베네수엘라의 뒤를 잇는 탄화수소(석유의 주원료) 매장량(세계 매장량의 22%)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동부의 하사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탄화수소는 본래 아라비아 반도의 번영을 이끈 원천이었다. 풍부한 탄화수소는 이 나라에 명성을 가져다주었고 국제적으로는 석유수출국기구의 핵심 일원으로 세계 석유 시장을 지배하는 생산자이자 조절자의 역할을 하게끔 해주었다. 1930년대에 발견된 석유는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하던 이 나라의 민족을 정착생활을 하는 도시 인구로 변모시켰다.
-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 정부들에 따르면 이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것은 이들 국가의 국경지대를 따라 형성되고 있는 시아파 초승달 벨트다. 이라크에서 시아파가 집권하면서 지역의 세력 균형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 다수인 시아파 세력은 2003년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이 몰락하면서 성장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 아라비아 반도 남족에 위치한 예멘에서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중봉기가 일어나 대통령이었던 달리 압둘라 살레가 사임하고 부통령이었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다. 하지만 이후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또다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북부의 자이드파 부족인 후티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후티족은 예멘의 시아파 분파에 속한다. 새 정권에게 홀대받고 새롭게 편성된 선거구에 만족하지 못한 후티 반군은 2014년 7월 수도 사나로 진군했고 그 과정에서 살레 전 대통령 동맹들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2015년 1월 하디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사임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 이에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을 향해 자국 주도의 아랍 연합군과 함께 '단호한 폭풍 작전'을 개시했다. 하지만 작전은 기대만큼 성공에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의 모든 부문에 침투한 후티 반군 세력이 힘을 갖게 되면서 하디 대통령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기간 동안 예멘의 임시수도인 아덴을 장악하고 있던 남예멘에서는 분리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남부 분리주의 세력은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지원을 받아 하디 정부군과 대립하고 있는데 아랍에미리트는 본래 사우디아라비아와 동맹관계였다.
- 예멘 영토에는 대립하고 있는 이들 세 세력 외에도 네 번째 세력이 존재한다. 바로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다. 이들은 스스로 2015년 1월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풍자 전문 잡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아랍에미리트는 이제 안보 분야에서 매우 유용한 이스라엘 신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석유 수급 경로를 다양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양국의 관계 회복으로 2020년 11월 텔아비브와 두바이 사이, 2021년 4월 초에는 아부다비와의 항공로가 개설되면서 관광을 위한 관계 또한 발전하게 되었다.
- 실제로 아브라함 협정은 아랍 세계(그리고 전 세계)에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배척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할 목적으로 트럼프가 내세운 평화 프로세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이웃 국가로는 지부티, 소말리아, 케냐, 남수단, 수단, 에리트레아가 있다. 에리트레아는 과거 에티오피아의 자치구였는데 1993년에 독립했다.
-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어로 '그을린 얼굴의 국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의 검은 피부 때문에 붙여졌는데 에티오피아 산맥의 고원에 사는 인구를 지칭하는 고대 셈어인 '하베샤'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에티오피아의 또다른 이름인 프랑스어 '아비니시아'라는 말도 탄생했다.
- 지금까지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최오의 정치 조직은 2세기 악숨 왕국 때 형성되었다. 악숨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에티오피아 북부(티그레이 지역)에 위치한 왕국의 수도 이름을 본따 지어졌다. 악숨 왕국은 그리스 여행자가 쓴 <에리트레아 항해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북쪽으로는 이집트와 로마제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해 건너편의 유향과 몰약의 나라 남아라비아(현제의 예멘)와 교역했다. 홍해의 이 두 해안 국가 사이의 활발한 교역은 에티오피아 건국 신화에 유대교와 시바 여왕 전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해준다.
- 에티오피아 왕권의 정당성은 예루살렘에서 만난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의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에티오피아 솔로몬 왕조(기원전 10세기)의 첫 번째왕인 메넬리크 1세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솔로몬 왕조는 수천 년 동안 에티오피아를 통치했는데 1974년 마르크스-레닌주의 군사 정권에 의해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가 축출될 때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유래된 전설은 14세기가 되어서야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신빙성은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 하지만 신화인지 현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시바 여왕은 구약성경과 코란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시바 왕국이 아라비아 반도 너머까지 확장했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은 전무하다. 어찌 되었건 에티오피아 역사의 핵심 인물인 시바 여왕은 남아라비아와 에티오피아 고원 사이의 오랜 역사적 연관성을 증명하고 있다.
- 해수면 상승에 특히나 더 취약한 곳은 바로 섬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그것이 생태계와 지역 경제에 미칠 위험성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는 섬의 형태와 지형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에 처한 곳은 저지대 섬과 고리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로 구성된 태평양의 환초지대다. 약 4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고도 3미터를 넘지 않는 매우 작은 면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지역에서는 마셜 제도의 경우가 특히나 걱정스럽다. 이곳에서는 태풍과 홍수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며 담수가 해수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에네웨타크 환초의 루닛섬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1946년부터 1958년 사이 비키니 환초와 에네웨타크 환초에서 미국이 시행한 67건의 핵실험 이후에 버려진 방사성폐기물이 이곳에 있는 8만 8천 세제곱미터의 초대형 콘크리트 돔 안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임시방펴닝었던 이 돔은 땅 위로 그대로 드러나있고 최근에는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곳 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해당 지역이 쓰나미와 지진 위험으로 인한 방사성폐기물 노출에 직면해 있지만 미국은 이곳의 안정화를 위한 지원도 거부하는 등 마셜 제도 정부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이는 마셜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는 생태계를 교란시켜 산호초의 생존을 위협하고 해양의 산성화에도 한몫하고 있다. 이는 생물 다양성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지구 온난화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 불리는, 현재 진행 중인 지구상의 수십만 동식물종의 멸종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 인터넷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요 기반시설은 바닷속에 설치되어 있다. 바로 해저 케이블이다. 해저에 매장된 엄청난 길이의 케이블은 대륙 간 초고속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잠재적으로 우리 인간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고 상업적, 지정학적 갈등과 경쟁을 발생시킬 위험성 또한 갖고 있다.
- 1990년대부터 케이블 시장은 세 개의 글로벌 민간 기업이 좌우해 왔다. 바로 프랑스의 알카텔-루슨트, 스위스의 TE서브컴, 일본의 NEC다. 반면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모두 미국 기업인, 그 유명한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현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이다. 그 결과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의 80%가 미국을 거친다.
- 이러한 데이터의 흐름은 인터넷 탄생 이전부터 미국에게 엄청난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이에 미국은 1955년 영국, 태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함께 기밀정보를 공유하는 동맹체인 일명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결성하기도 했다. 전 세계 인터넷 기업 서버에 접속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등 미국의 대규모 감시 활동은 2013년 NSA의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스노든은 NSA가 전 세계 정치인들도 불법 도감청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 오늘날 지구의 대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케이블의 길이는 130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지구 둘레의 32배에 달하는 길이다. 케이블 설치는 2000년대 인터넷 버블 당시 최초로 정점을 찍었고, 두 번재 정점은 현재 진행 중이다.
- 데이터에 관한 미국의 패권 앞에 러시아가 처한 상황은 조금은 특수하다. 러시아는 단 네 개의 해외 케이블로 나머지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얀덱스(Yandex)와 브깐딱제(Vkontakt) 같은 자국 인터넷 기업들이 있어 정권에 의한 통제가 쉽기 때문이다.
- 중국은 2016년 세 곳의 거대 통신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의해 완공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저 케이블 Sea-Me-We 5에 의존하고 있다. 자국 인터넷을 엄격하게 통제함녀서 나머지 세계와 거의 단절시키고 있는 중국은 일부 전략적 해저 케이블에 대해서는 자국의 힘을 점점 더 강화하려고 한다. 중국 기업인 화웨이는 그린란드, 몰디브, 코모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과 카메룬 사이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케이블 분야에서 10년 만에 주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 이후 수년 동안 증가한 사이버 공격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미국은 2009년 '사이버 사령부'를 신설했는데 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미군의 공격과 방어 작전을 전담하는 군 사령부라 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군사 계획법에 따라 사이버 공간을 위해 16억 유로의 예산을 편성하고 3천 명이었던 '사이버 병사'의 수를 4천여 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클 루이스] 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5) | 2024.09.28 |
---|---|
[윌리엄 번스타인] 현명한 자산배분 투자자 -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연수익 10%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4) | 2024.09.16 |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4) | 2024.09.15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5) | 2024.09.13 |
[수미숨, 애니정] 미국주식 처음공부 - 시작부터 술술 풀리고 바로 써먹는 (개정판) (10) | 2024.09.12 |
[짤짤이] 인류 보호 회사 1-5 (완) (4) | 202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