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마이클 루이스] 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일루젼 2024. 9.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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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마이클 루이스 / 이제용

출판 : 비지니스북스
출간 : 2014.10.10


 

 

이 책은 <주식은 지금>을 보다가 알게 되어 찾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일단 구매부터 하곤 했는데, 책이 집의 절반을 잠식한 뒤로는 '관심 도서 목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미 몇 천 권이 넘어가기 때문에 특정한 책을 검색해서 찾아 읽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목록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순기능이라면 '이미 추가된 도서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뜰 때마다 '아 이미 찾아봤던 책이군'하고 반가워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읽는 동안 생각난 책이 있는데, 한국 번역 제목은 <월 스트리트 게임의 법칙>이고 원제는 <Monkey Business: Swinging Through the Wall Street Jungle>이다. 2013년 정도였는데, 당시에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 도서관에서 절판 도서 복사를 이용해 조각본으로 읽었었다. 마침 생각이 난 김에 찾아보니 지금은 중고 도서가 꽤 풀려 있어 한 권 구매했다. (더 이상 책을 구매하지 않기로 한 결심은 이렇게 매번 무너진다.)

 

당시의 나와 달라진 점들은 있다. 그때는 '금융 시장이란 죄다 허상이군'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거두었었다면, 지금은 '이 게임의 룰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며 적극적으로 플레이해보려 한다는 점.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인지 아닌지는 플레이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반드시 상위권에 들지 않아도 즐기면서 게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돈'이라는 것에 지나친 무게를 싣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포인트, 마일리지, 게임 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름이 붙은 숫자에 가치를 부가하기로 제공자와 사용자가 합의하면 끝이다. (복잡하게 파고들자면 금본위제부터 해서 펀더멘탈을 따져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잔 걱정이 많이 줄어들고, 전체 자산도 꽤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라고 말하면 '믿음을 가져 봐!' 같이 들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사실이 그랬다. 아마도 중압감과 절박감을 덜어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근로소득만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 결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일에는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적당한 노력과 충분한 겸손이 중요한 게 아닐까.

 

아직은 확신을 가지고 큰 단위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나 홀로 일하고 있지는 않다는 위안을 얻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멋모르고 나 혼자 일했었으니 앞으로는 돈이 혼자 일해주길 바란다는 다소 발칙한 바람을 남겨보며. 

 

아. 다른 소리만 주절거렸는데 <플래시 보이스>는 밀리세컨드, 마이크로세컨드라는 미세한 시간 차가 금융 시장에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지는가에 관한 실화를 다룬 책이다. 지금 세대에게는 인터넷이란 위성을 이용한,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이용한 공공재라는 개념이 기본적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광케이블이라는 물리적인 수단 역시 필요하다. (얼마 전 읽었던 다른 책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에서도 해저 케이블을 다룬 바 있다) 

 

그런데 물질을 통한 전도는 언제나 '저항'을 동반한다. 인터넷, 전기, 전파 모두 매질의 저항으로 인한 간섭을 받는데, 도선 등의 케이블을 사용할 경우 저항은 통과 길이에 비례해서 증가하게 된다. 

 

즉, 인터넷 케이블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다시 말해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인간은 감지할 수 없을지라도 미세한 시간차가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 시간차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플래시 보이스>는 이 찰나, 플래시 flash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초단타매매와 선행매매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던 트레이더들과 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에 더해 WASP들의 협상이나 다크풀, 개발자와 트레이더 및 매니저들의 차이, 거대 은행과 증권사들의 뒷이야기, 인터넷 전쟁에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니 꼭 한 번 구해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재미난 책들은 자주 절판 상태다. 

... 아니면 내가 절판이 될 만한 책을 재미있어하는 걸지도 모르고.

 

즐겁게 읽었다.   

 


   

당신이 알고 있던 주식시장은 없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 Sergey Aleynikov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생긴 몇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 골드만 삭스 Goldman Sachs의 직원이었던 그 러시아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곳을 퇴사한 후 2009년 여름,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그의 혐의는 골드만 삭스의 '컴퓨터 코드'를 훔쳤다는 것이었다. 골드만 삭스가 금융위기 발생에 한몫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혐의로 기소된 골드만 삭스의 임직원이 고작 물건 하나 훔친 사람뿐이라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골드만삭스의 컴퓨터 코드가 부정한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경우 '부당한 방법'으로 시장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러시아인의 보석을 불허해야 한다는 것이 연방 검사의 주장이었다니 더욱 어리둥절하게만 생각되었다. (그럼 골드만 삭스는 의로운 손인가? 골드만 삭스가 시장을 조작할 수 있었다 해도, 다른 은행들도 그게 가능했을까?)

 

-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몇몇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러시아인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 말인즉,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 점, 즉 그의 업무 자체에 대한 의문을 뜻했다. 많은 사람들은 세르게이를 '초단타매매 프로그래머' highfrequency trading programmer라고 불렀지만, 그것으론 설명이 안 되었다. 그런 말은 2009년 여름 즈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월가의 사람들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기술용어였다. 초단타매매가 뭘까? 초단타매매를 가능하게 해 준 코드가 뭐가 그리 중요했기에 골드만삭스는 직원이 그것을 복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FBI에 신고를 해야만 했을까? 만일 그 코드가 그렇게 중요하면서도 금융시장에 위험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골드만 삭스에서 일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된 프로그래머가 그 코드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 언제부턴가 나는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찾아다닌 끝에 세계무역센터 World Trade Center 자리가 내다보이는 원 리버티 플라자 One Liberty Plaza의 한 사무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사무실에는 대형은행, 주요 증권거래소, 초단타매매 회사 등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던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액 연봉의 자리를 버리고 월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골드만 삭스가 러시아인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서 만들어낸 바로 그 문제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 지난 10년간 금융시장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온 탓에 우리가 생각하던 금융시장의 모습은 더 이상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금융시장의 모습 속에는 아마도 인간이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TV의 화면 밑으로 주식시세가 계속해서 흘러가고, 색깔별로 구분된 재킷을 입은 에너지 넘치는 남성들이 거래소 플로어에 서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제 옛일이 되었고, 그런 장면이 그려내던 세계도 사라졌다. 색깔별로 구분된 재킷을 입고 거래소 플로어에 서 있던 목 굵은 사내들을 2007년 즈음부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혹은 아직 있다 해도, 예전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 뉴욕증권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나 시카고에 위치한 여러 거래소의 플로어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금융시장을 주도하거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이제 미국 주식시장의 거래는 뉴저지와 시카고에 위치한 철통같은 보안장치로 둘러싸인 빌딩 안의 블랙박스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그 블랙박스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이제 케이블 TV의 화면 밑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주식시세는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극히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블랙박스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하여 대중들에게 알려진 정보는 불분명하고 신뢰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조차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언제, 왜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당연히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알아야 할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얻기 힘들다. 투자자는 자신의 TD 아메리트레이드 Ameritrade나 E 트레이드 E-Trade 또는 슈왑 Schwab 계정에 로그인하여 특정 주식의 종목기호를 입력하고, '매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는 자신이 컴퓨터 키보드의 키를 누르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단언컨대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만약에 안다면, 키를 누르기 전에 다시 생각해 보았을 테니까.

-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주식시장의 옛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며 옛 모습을 대신할 새로운 모습을 그려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이 책은 그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그 모습을 완성하려면 수많은 작은 그림조각들을 모아야 한다. 즉 금융위기 이후의 월가,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법, 프로그래머가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없고 비인격적으로 작동하도록 프로그램화된 컴퓨터, 그리고 어떤 기대감으로 월가에 들어왔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월가의 모습에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 등과 같은 작은 그림조각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월가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된 사람들 중 한 사람, 하필이면 캐나다 사람이 그 중심에 서서 수많은 작은 그림조각들을 맞춰 완전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금융계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그 실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여전히 놀라움으로 나를 압도한다.

- 2009년 여름, 2,000명의 사람들이 광케이블 매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케이블은 마치 살아 있는 듯했고, 매설작업은 그 생명체가 살아갈 서식지를 마련하는 일처럼 보였다. 여러 명의 자문가와 감독관을 비롯하여, 각각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205개 작업반이 일찍부터 모여 어떻게 산을 관통하거나 강바닥 아래로 이어지는 터널을 뚫어야 할지, 또는 어떻게 노변 없는 시골길 옆에 호를 파야 할지 의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케이블은 머리카락처럼 얇은 400가닥의 광섬유를 감싼 직경 3.8센티미터 정도의 단단하고 검은 플라스틱 관에 불과했지만, 특별한 먹이를 원하는 지하 파충류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그 생명체를 위해선 지구상의 어떤 길보다도 가장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굴이 필요했다. 케이블은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에 있는 데이터센터와 뉴저지주 북부의 증권거래소를 연결하는 선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에도 띄어선 안 되었다.

- 작업자들은 케이블의 용도에 대해선 몰랐지만,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알고 있었다. 즉 모든 작업자들은 발생 가능한 위협요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누군가 케이블 부근을 파헤치거나 케이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목격하면 작업자들은 즉시 본부에 보고해야 했다. 아니면 작업자들은 가능한 한 말을 아껴야 했다. 만일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작업자들은 "광케이블 까는 거지요, 뭐."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개 그 정도면 대화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더라도 별 상관은 없었다. 작업자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아는 게 없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작업자들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터널을 뚫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광케이블의 경우에는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 이익을 실현하려면, 양쪽 시장에서 동시에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빠르게'의 의미는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다. 예전에, 예컨대 2007년 이전에는 트레이더가 거래할 수 있는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거래소의 플로어에서 일하는 것은 인간이었으며, 무엇을 매매하더라도 그들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2007년에 거래소는 컴퓨터를 쌓아놓은 데이터센터로 변해버렸다. 매매가 이루어지는 속도는 더 이상 인간의 한계 내에 머물지 않았다. 유일한 제약이라고는 전기신호가 시카고와 뉴욕 사이, 더 정확히 말해서 시카고상품거래소 Chicago  Mercantile Exchange가 있는 시카고의 데이터센터와 뉴저지주 카터릿에 있는 나스닥 Nasdaq 증권거래소 옆의 데이터센터 사이를 얼마나 빨리 오고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 2008년 스피비는 이 두 거래소 간의 실제 매매 속도가 이론적으로 가능한 매매 속도와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광섬유는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기 때문에, 두 거래소에서 동시에 매매를 하려는 트레이더라면 약 12밀리세컨드(1밀리세컨드는 1,000분의 1초이다), 또는 최대한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 속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 안에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주문을 보내고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버라이즌 Verizon, AT&T, 레벨3 Level3을 비롯한 여러 통신회사들이 제공하는 통신망은 그보다 느리고 불안정했다. 양쪽 데이터센터로 주문을 보내는 데 어떤 날은 17밀리세컨드가 걸렸다가, 다음 날이면 16밀리세컨드가 걸렸다. 어느 날 우연히 일부 트레이더들이 버라이즌의 통신망을 쓰면 14.65밀리세컨드가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레이더들은 그것을 '골드 루트' The Gold Route라고 불렀다.  

 

- 동행했던 건설기술자가 스피비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스피비가 자세히 따져 물었을 때, 건설 기술자는 그 계획이 적어도 왜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내놓지 못했다. 사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되는 이유, 그것이야말로 스피비가 찾던 대답이었다.

"저는 왜 어떤 통신회사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했습니다. 분명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난제와 맞닥뜨리게 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단단한 앨러게니의 암벽을 뚫고 나가려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설 기술자의 의견을 빼면, 스피비는 어떠한 난제도 발견할 수 없었다.

- 그때가 바로 그의 표현대로라면 '선을 넘기로' 결정했던 순간이었다. 그 선은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과 땅을 파고 광케이블을 매설하는 법을 아는 사람 사이를 구분 짓던 선이었다. 스피비는 광섬유케이블을 매설하는 데 관련된 규정은 무엇이며, 누구의 승인이 필요한지를 알아보았다. 또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적절한 장비를 갖춘 작업자가 하루에 몇 미터나 암벽을 뚫고 터널을 팔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장비가 필요할까? 비용은 얼마가 들까? 스피비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 스비피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모험을 하는 경우 대개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잘못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피비는 미처 생각지 못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가령 시카고 상품거래소가 문을 닫고 뉴저지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아니면 캘류멧 강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장애물로 판명될 수도 있다. 또는 월가의 대형은행이나 통신회사처럼 자금력이 막강한 회사들이 스피비가 하려는 일을 알아내어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급기야 스피비는 누군가 이미 거기에 곧게 뻗어 있는 터널을 파놓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스피비와 이야기를 나눈 모든 공사 작업자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스피비는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앨러게니 산맥에 가득하리라고 확신했다.

"당신에게 뭔가 확실한 생각이 떠오르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아야죠."  


- 하지만 정작 스피비가 전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케이블 매설작업이 끝났을 때, 월가에서 그 케이블망을 사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정반대로 스피비는 케이블이 엄청난 돈벌이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스피비와 그의 후원자들은 케이블망을 팔아야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도 '어떻게' 팔지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은 복잡한 문제였다. 그들이 파는 상품, 즉 '속도'는 희소성이 있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었다. 어느 정도의 희소성이면 케이블망의 시장가치가 극대화될 것인지에 대해 그들은 알지 못했다.

 

- 미국 주식시장에서 한 명의 참여자가 유일하게 다른 모든 참여자에 비해 속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 그것의 가치는 얼마일까? 그와 달리, 25명의 서로 다른 참여자가 시장의 나머지 참여자에 비해 동일한 우위를 점하는 경우라면 그 가치는 얼마가 될까? 그런 종류의 질문에 답하려면, 트레이더들이 미국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이익 중에서 순수하게 속도가 원인이 되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어떻게 산정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무도 속도와 관련된 시장은 몰랐어요.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죠."

 

- 스피비와 동료들은 더치 경매 dutch auction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즉 상당히 높은 가격에서 출발해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기 위해 케이블망을 사려는 월가의 첫 회사가 나타날 때까지 가격을 낮춰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피비와 동료들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대가로 수십억 달러를 기꺼이 지불할 은행이나 헤지펀드가 과연 나타날지 자신할 수 없었고, 신문 1면에 '박스데일, 미국 투자자에게 수십억 달러 매각 성공' 같은 판에 박힌 머리기사가 실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짐 박스데일이 흥미롭게 보았던 논문 <밀리세컨드의 가치 The Value of Millisecond>를 쓴 래리 태브 Larry Tabb라는 산업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태브는 케이블망의 적정 가치를 구하는 한 가지 방법은 뉴욕과 시카고 사이의 소위 스프레드 거래 spread trade, 즉 현물과 선물 간의 단순한 차익거래에서 얼마나 많은 수익이 창출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월가의 어떤 은행이 시카고의 종목 A와 뉴욕의 종목 B 사이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미세한 가격괴리를 이용하여 차익거래를 한다면, 1년에 200억 달러 정도의 이익을 창출하리라고 태브는 추정했다. 더 나아가 태브는 그 200억 달러의 파이를 위해 경쟁하는 회사들이 무려 400여 개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 스프레드 네트워크스의 케이블망 때문에 사업에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그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흔히 쓰는 방식은 먼저 우리가 아는 회사들 중에서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었죠."

브레넌 칼리가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접근했습니다. '저 아시죠? 짐 박스데일 씨도 아시리라 생각되고요. 찾아뵙고 좀 말씀드리고 싶은 중요한 일이 있는데요. 만나 뵙기 전에는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방문하기 전에 기밀유지협약서 non-disclosure agreement, NDA에 서명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그게 바로 은밀하게 월가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 "모든 회의에 CEO가 참석했습니다."

스피비가 말했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만난 사람들 대부분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나중에 내게 말하길, 별거 아니겠지만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하더군요."

스피비는 회의적인 반응이 돌아오리라 예상하고 폭 1.2미터, 길이 2.4미터 크기의 지도를 가져갔다. 그는 국토를 횡단하는 터널을 따라 손가락을 짚어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증거를 요구했다. 지하 1미터 정도에 묻힌 광케이블은 볼 수 없지만, 증폭 지점은 약 93제곱미터 넓이의 콘크리트 벙커로 되어 있어 눈에 아주 잘 보였다. 빛은 이동하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빛이 희미해질수록, 데이터 전송 능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시카고에서 뉴저지로 전송되는 전기신호는 매 80~120킬로미터마다 증폭되어야 하며, 증폭기를 설치하기 위해서 스프레드 네트워크스는 ...


-  전문가들조차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컴퓨터의 속도로 움직이는 새로운 능력이 금융시장에 생기면서, 월가에 신종기법의 매매를 하는 새로운 부류의 트레이더들이 등장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과 회사들이 생겨나, 그들이 누구인지, 혹은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알려질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갑부가 되어갔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스프레드 네트워크스가 목표로 해야 할 고객들이었다. 사실 스피비는 그들만의 무기인 매매전략에 대해서는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그 고객들이 이 바닥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아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 스피비는 묻지 않았고, 그들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의 전반적인 사업적 기반은 주식시장의 나머지 참여자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데 달려 있으며,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전통적인 현·선물 차익거래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브레넌 칼리의 표현대로라면, 그들 중 상당수는 '1마이크로세컨드만 줄일 수 있다면 자기 할머니도 팔아넘길 듯했다.' (1마이크로세컨드는 100만 분의 1초이다.) 속도가 그들에게 왜 그렇게도 중요한지 명확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속도가 더 빠른 이 케이블망에 위협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칼리는 이렇게 회상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요. '잠깐만요. 우리가 현재 운용하는 전략을 계속하려면, 이 케이블망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얼마를 요구하든 내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다른 모든 경쟁자들과도 이야기할 거잖아요.'"

그 당시 월가에서 과거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계속하려면 월 30만 달러의 사용료에다 몇백만 달러의 초기비용을 추가로 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그 사람들 열받은 거 같더라고요."

칼리가 말했다. 한 번은 판매를 위한 회의가 끝나자 데이비드 박스데일이 스피비를 보고 '저 사람들 우리를 미워하는군.' 하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스피비는 그런 적대적인 분위기의 만남을 즐겼다.

"테이블 반대편에 몹시 열받아서 앉아 있는 12명의 사내들을 상대하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12명의 사람들 중에서 4명만 구입하겠다고 말하다가, 결국은 다 사더라고요." (허드슨리버 트레이딩은 결국 그 케이블망을 구입했다.)

- 월가의 작고 덜 알려진 회사들을 만나던 스프레드 네트워크스의 영업자들이 대형은행들을 상대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본 금융위기 이후 금융계 내부의 모습은 훨씬 더 흥미로웠다. 기묘하게도 시티 그룹 Citigroup은 케이블망의 경로를 카터럿의 나스닥 옆 건물이 아닌 로어맨해튼에 위치한 자신들의 사무실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하면 선이 구불구불 꺾이면서 수 밀리세컨드가 더 걸리게 되어 케이블망의 애초 목적이 의미 없어질 텐데도 말이다. 다른 은행들의 경우 케이블망의 핵심은 제대로 이해했지만, 스프레드 네트워크스가 계약서에 서명을 요구하자 망설였다. 그 계약서에는 케이블망을 임대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그 케이블망을 사용하도록 허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 따라서 케이블망을 임대한 모든 대형은행은 프랍트레이딩 proprietary trading('자기자본거래'라고도 하며, 금융회사가 수익을 목적으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자기자본을 투자하는 행위를 말함 - 옮긴이) 목적으로 케이블망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위탁매매 고객들과 공유하는 행위는 금지되었다. 스프레드 네트워크스 입장에서는 그 제한 조건이 당연했다. 케이블망에 접근 가능한 사람이 적을수록 그 가치가 더 올라갈 테니까 말이다. 그 케이블망의 핵심은 누구나 참여하는 시장의 내부에 수천만 달러의 입장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사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신들 말이야, 사람들한테 고객 등쳐 먹으라고 하고 있구만.'"

그 직원은 그건 사실이 아니며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크레디트스위스는 끝내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반면에 모건 스탠리 Morgan Stanley는 다시 스프레드 네트워크스에 접근하여, '문구를 바꾸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럼 그 제한 조건은 괜찮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묻자, 그들은 '그럼요. 광케이블일 뿐인데요, 뭐'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모건 스탠리가 자기 고객들에 대해 그럴듯한 거부권을 갖도록 문구를 잘 고쳐야 했습니다."

 

- 모건 스탠리는 사실 케이블망을 프랍트레이딩에만 쓸 수 있고 위탁매매 고객에게는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겼지만, 그저 자기들이 그것을 원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월가의 모든 은행들 중에서 골드만 삭스가 가장 거래하기 쉬운 상대였다.

"골드만은 계약서에 서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죠."


-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때까지만 해도, 브래드 카츄야마 Brad Katsuyama는 그 시스템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캐나다왕립은행 Royal Bank of Canada(이하 RBC)은 세계에서는 아홉 번째로 큰 은행일지 모르지만, 월가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RBC는 안정되고 비교적 도덕적이었으며, 미국인들에게 부실한 서브프라임 대출을 하거나 무지한 투자자들에게 서브프라임 파생상품을 파는 따위의 유혹에 휘말리지 않은 은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쨌든 미국의 금융업자들이 생각해 냈던 그 드문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RBC의 경영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 2002년으로 돌아가서, 브래드가 24살일 때 그의 상관은 월가에서 RBC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대대적 진출 big push'의 일환으로 토론토에서 일하던 브래드를 뉴욕으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그 대대적 진출은 거의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모건 스탠리에서 RBC로 이직한 한 트레이더는 "제가 거기로 옮겼을 때, 이건 뭐 '맙소사, 삼류극장에 잘 오셨습니다!' 같은 분위기였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브래드는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에 있는 직원들은 늘 '우리가 미국의 직원들에게 돈을 너무 많이 준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줘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라도 주지 않으면 아무도 RBC에서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죠. 여기서 RBC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건 마치 학예회 배역 오디션에 갈 용기를 겨우 낸 캐나다인이 홍당무 복장을 하고 영화배우 오디션에 나타난 꼴과 다를 바 없었다.

- "제 평생에 불쾌한 사람들을 1년 동안 그렇게 많이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빚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그게 제게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브래드가 느낀 또 하나의 문화적 충격은 캐나다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브래드는 캐나다 교외 백인 주택가에서 몇 안 되는 아시아계 아이들 중 한 명으로 자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캐나다인이었던 브래드의 조부모는 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다.  


- 미국 주식시장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RBC가 최첨단이라고 생각한 그 전자 트레이딩 회사를 사들이기 전에는, 브래드의 컴퓨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렸다. 칼린의 기술 일부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브래드는 자신의 트레이딩 화면을 신뢰했다. 브래드의 트레이딩 화면에 주당 22달러의 인텔 Intel 주식 매도물량 1만 주가 보이면, 이는 곧 브래드가 주당 22달러에 인텔 주식 1만 주를 매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키를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2007년 봄 컴퓨터 화면에서 주당 22달러의 인텔 주식 매도물량 1만 주를 확인하고 브래드가 키를 누른 순간, 매도물량은 사라졌다. 트레이더로 일해온 7년간 브래드는 늘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에서 시장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 화면에 보이는 시장은 허상이었다. 

(리뷰자 주 : 얼마 전 폭락해서 지금 가격도 23달러... ) 

 

-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트레이더로서 브래드의 주 업무는 대량매매를 하려는 투자자와 상대적으로 매매단위가 적은 일반 투자자를 이어주는 역할이었다. 어떤 투자자가 IBM 주식 300만 주를 블록세일(일괄매각)하고자 하는데 시장에는 100만 주의 매수세만 있는 경우, 브래드는 전체 주식을 일괄매수하여 곧바로 100만 주는 팔아버린 다음, 나머지 200만 주는 몇 시간에 걸쳐 기술적으로 시장에 분할 매도했다. 그런데 만약 브래드가 실제 시장상황을 모른다면, 블록세일의 적정가격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왔던 브래드는 이제 그의 트레이딩 화면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시장위험을 판단할 수 없으니 기꺼이 시장위험을 떠안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 2007년 6월 그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플렉스트로닉스 Flextronics라는 싱가포르의 전자기기 제조사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경쟁업체 솔렉트론 Solectron을 주당 4달러가 안 되는 가격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관 투자자 하나가 브래드에게 전화를 걸어 솔렉트론의 주식 500만 주를 팔고 싶다고 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같은 주식시장은 시세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가령 시세가 3.70-3.75에 형성되어 있다면, 이는 솔렉트론 주식을 3.70달러에 매도하거나 3.75달러에 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그 호가에 매매 가능한 물량이 100만 주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솔렉트론 주식 500만 주를 매도하기 원하는 그 투자자가 브래드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브래드가 나머지 400만 주에 대한 위험을 떠안아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 그래서 브래드는 주식시장 시세보다 약간 낮은 가격인 3.65달러에 그 주식을 매입했다. 그러나 주식을 매입한 직후 브래드가 다시 트레이딩 화면을 보았을 때, 시세는 금방 바뀌어 있었다. 마치 시장이 브래드의 마음을 읽어버린 듯했다. 브래드는 자신의 계획대로 3.70달러에 100만 주를 매도하지 못하고, 솔렉트론의 주가가 단기급락하지 않도록 몇십만 주만 파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마치 누군가 주식을 매도하려는 브래드의 의도를 간파하고 한 발 앞서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래드가 500만 주를 모두 팔아치운 건 3.70달러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서였으며, 그는 상당한 손해를 보았다. 브래드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 그런데 다른 회사의 공개매수 대상이 된 솔렉트론의 주식은 거래가 활발했기 때문에, 매수매도 호가가 별로 벌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물량은 많고 주가는 크게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따라서 브래드가 매도하려는 그 순간에 매수세가 사라지지 말았어야 했다. 브래드는 원인 모를 컴퓨터 오작동을 겪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기술지원부에 전화를 했다.

"키보드가 작동하지 않으면, 와서 고쳐줘야 하는 사람들이었죠."

기술지원부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들은 브래드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고 대뜸 추측해 버렸다.

"그 사람들은 나의 '사용자 실수' 탓으로 돌려버렸어요. 그들은 우리 트레이더들을 멍청이 무뇌아라고 생각했나 봐요."

브래드는 자기가 한 일이라고는 키보드의 엔터키를 누른 것뿐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했다. 엔터키를 누르는 데 실수하기란 쉽지 않다.

- 사용자 실수보다 더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좀 더 높은 문제해결 단계로 넘어갔다.

"그들은 제게 그 시스템을 구매하고 구축했던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기술 전문가들처럼 보이긴 했어요."

브래드는 자기 화면으로 보는 시세가 실제 주식시장의 시세를 상당히 잘 반영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들 모두 브래드를 멍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저는 말하고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죠."

마침내 브래드가 큰 소리로 불평을 토로하자 그들은 칼린을 인수할 당시 RBC로 온 개발자들을 보냈다.

"그 인도인과 중국인 사내들을 어떻게 데려왔는지 들은 적이 있었죠. 트레이딩 플로어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 the Golden Goose'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는 그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 다른 일에 시간을 뺏기길 원치 않았고, 도착한 그 거위들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다 잠시 쉬러 온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 역시 브래드에게 컴퓨터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제게 말하길, 저는 뉴욕에 있고 시장은 뉴저지에 있는데 제 시장 데이터가 느린 탓이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시장에서 수천 명이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그 매매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 당신만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모르는 사건이나 문제는 어디에나 있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만약 그런 경우라면, 왜 내가 거래를 하려고 할 때에만 시장에서 그 주식이 사라져 버리는 거죠?'" 

자신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 브래드는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매매를 하는 동안 등 뒤에서 지켜보라고 부탁했다.

"저는 이렇게 말했죠. '잘 보세요. 제가 암젠 Amgen 주식 10만 주를 주당 48달러에 매수할 거예요. 현재 BATS에 1만 주, 뉴욕증권거래소에 3만 5,000주, 나스닥에 3만 주, 다이렉트 엣지 Direct Edge에 2만 5,000주를 합하면 주당 48달러에 총 10만 주의 암젠 주식 매도물량이 있습니다.' 화면으로 그 모든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우리 모두 거기 앉아 화면을 쳐다보았고, 저는 엔터키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숫자를 셌죠. '하나... 둘... 자, 아무 일도 없어요. 셋... 아직도 매도호가는 48달러에 그대로 있네요. 넷... 여전히 그대로죠? 다섯.' 그다음 제가 엔터키를 누르자, 펑! 하고 지옥문이 열렸죠. 매도물량은 모두 사라지고 호가는 더 높게 뛰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브래드는 자기 뒤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봤죠? 이게 바로 사건이고, 문제라고요."

- 그걸 본 개발자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 것 같았어요. '아, 네.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가버렸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브래드는 몇 차례를 전화를 했으나,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냥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 브래드는 RBC가 그의 트레이딩 컴퓨터에 설치하라고 했던 칼린의 기술을 범인으로 의심했다.

"문제가 악화될수록, 칼린의 기술이 너무나 형편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일정한 패턴으로 발생했다. 즉 브래드가 화면에 나타난 시세에 따라 반응하려는 순간, 시세가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브래드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브래드의 팀에서 일하는 RBC의 주식 트레이더 모두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게다가 브래드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RBC가 증권거래소에 지불하고 있는 수수료 규모가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07년 말 브래드는 트레이딩 계정의 실제 실적을 평소 실적 혹은 트레이딩 화면에 나타난 시세대로 거래가 이루어졌을 경우의 실적과 비교해 보았다.

"손실과 수수료를 합치면 그 차이는 1,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우리는 거액의 손실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브래드가 말했다. 토론토의 경영진은 브래드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증가하고 있는 트레이딩 손실을 줄일 방법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 RBC가 칼린을 인수하고 남은 자산이라고는 이제 그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뿐이었기 때문에, 브래드는 그들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수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RBC의 첫 번째 '다크풀 dark pool(장 시작 전에 기관 투자자의 대량 주문을 받아 매도·매수 주문을 매칭하고 매칭된 주문은 장 종료 후 당일 거래량 평균 가격으로 체결하는 시스템-옮긴이)'을 개설하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동안 황금알을 낳은 거위들은 내내 다크풀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에 매달려왔었다.

- 다크풀은 새로운 금융시장이 낳은 또 다른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대형 브로커들이 운영하는 비공개 증권거래소인 다크풀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다크풀도 자신들이 진행한 거래를 보고하기는 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했기 때문에 그 거래가 일어날 당시에 다른 시장참여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내부 규칙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며, 그 안에서 누구의 매수, 매도 주문이 허용되는지 확실히 아는 것은 오로지 다크풀의 운영 주최인 브로커뿐이었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기관 투자자들에게 '투명성은 우리의 적'이라는 희한한 발상을 팔아왔다. 예를 들어 만약에 피델리티 Fidelity가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Corp. 주식 100만 주를 매도하기 원한다면, 그들은 일반 거래소로 가는 것보다 가령 크레디트 스위스가 운영하는 다크풀에 주문을 넣는 게 더 유리하다. 일반 거래소에서는 큰 매도물량이 시장에 나왔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급락하게 된다. 다크풀에서는 운영자인 브로커 이외에는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도리가 없다. 

- 브래드의 의문은 더 늘어만 갔다. 뉴욕 시 상원의원 찰스 슈머 Charles Schumer는 SEC에 편지 한 통을 쓴 다음, 그 내용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편지에서 슈머는 증권거래소의 행위를 비난했다.

"증권거래소들은 거래 정보가 트레이더들에게 공개되기 전에 약삭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먼저 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거래소는 매매주문 정보가 공개되기 전 몇 분의 1초 동안 그 정보를 '순간적으로 노출해 주는' flash 대가로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그때가 바로 브래드가 '플래시 주문' flash orders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때였다. 늘어만 가는 브래드의 의문들에 하나가 더해졌다. 거래소가 우선적으로 플래시 트레이딩 flash trading을 허용해 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브래드와 로버트는 미국 주식시장을 조사하기 위한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우선 저는 HFT 회사나 대형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브래드가 말했다. 초단타매매를 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브래드의 전화에 회신하지 않았다. 반면 월가의 회사들이 직원을 줄이고 있던 때라 대형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RBC 정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지금은 간절하게 일자리를 원하며 브래드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 로버트는 말했다.

"사람들은 키를 누르는 행위에 달리 뭐가 있겠냐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많은 일들이 일어나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요. 그 질문과 관련하여 거래소에서 받은 데이터는 언뜻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우리는 거기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답을 어떻게 찾아낼지가 문제일 뿐이었죠."

- 로버트의 첫 번째 가설은 거래소가 동일한 가격의 모든 주문을 한 번에 일괄 처리하지 않고 어떤 순서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당신과 내가 똑같이 주당 30달러에 IBM 주식 1,000주 매수주문을 넣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신에게는 내 주문이 체결될 경우 당신의 주문을 취소할 권리가 있다는 가설이었다. 로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주문을 취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야말로 유령 주문이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시장에 주당 400달러에 총 1만 주의 애플 주식 매도물량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단 한 사람이 애플 주식 1만 주를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매도주문을 합친 물량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수의 주문이 어떤 특정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서, 순서의 앞에 있던 매도주문이 체결되자마자 순서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매도주문을 취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브래드와 로버트는 의심했다.

"우리는 거래소에 전화를 걸어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조차도 감이 잡히질 않았어요."

로버트가 말했다. 게다가 매매보고서가 거래소별로 구분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가령 1만 주의 애플 주식 매도물량이 있는 것 같아 매수주문을 넣었는데 2,000주만 사는 데 성공했다면, 어떤 거래소에서 8,000주가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앨런은 브래드가 주문을 단 하나의 거래소로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어떤 거래소가 혹은 전부 다 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유령 주문을 허용하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브래드는 확신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브래드가 하나의 거래소에만 주문을 보내자, 매도물량을 모두 매수할 수 있었다. 브래드의 화면에 보이는 시장이 다시 진짜 시장이 된 것이었다.

"젠장, 저는 그 가설은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유일한 가설이었는데 말이죠."

-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하나의 거래소에만 주문은 보내면 화면상의 시장이 진짜가 되지만, 모든 거래소에 동시에 주문을 보내면 허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는 가설 없이, 브래드의 팀은 여러 거래소의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그곳으로 주문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NYSE와 나스닥의 조합으로 주문을 보내고, 그다음 NYSE-나스닥-BATS의 조합, 그다음 NYSE-나스닥 BX-나스닥-BATS의 조합 등으로 계속해서 시도했다. 결과는 더 불가사의했다. 거래소의 수를 늘릴수록, 체결되는 주문의 수는 줄어들었다. 다시 말하면, 주식 매수주문을 넣는 거래소가 많아질수록 실제로 매수하는 주식은 줄어들었다.

"한 가지 예외가 있었어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거래소에 주문을 넣든지 상관없이 BATS의 물량은 늘 100% 체결되었죠."

브래드가 말했다. 로버트 박은 이 문제를 조사한 후에 이렇게 대답했다.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죠. 그냥 BATS가 훌륭한 거래소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 어느 날 아침 로버트는 샤워를 하던 중 또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냈다. 로버트는 앨런이 만들었던 막대그래프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막대그래프는 주문이 세계금융센터 World Financial Center에 있는 브래드의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여러 거래소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여주는 그래프였다. 로버트가 말했다.

"저는 그 그래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았죠. 그래프의 막대 높이가 제각각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막대의 높이가 다 똑같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흥분이 되었죠. 회사에 도착해서 브래드의 사무실로 직행한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엔 우리의 주문이 동시에 도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 시간의 차이는 극히 미미했다. 이론적으로, 가장 짧게 걸리는 시간은 브래드의 책상에서 위호켄에 위치한 BATS 거래소까지 약 2밀리세컨드인 반면, 가장 오래 걸리는 시간은 브래드의 책상에서 카터릿까지 약 4밀리세컨드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지점 사이의 네트워크 트래픽, 공전 空電, 장비의 작은 결함 등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훨씬 더 차이가 날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데 100밀리세컨드가 걸린다. 눈깜빡이는 시간의 몇십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순간에 그런 엄청난 시장의 변화가 생길 수 있으리라고 믿기 어려웠다.

 

- 앨런은 이동시간이 짧은 거래소의 주문을 늦춰서 이동시간이 긴 거래소의 주문과 꼭 같은 시간에 주문이 도착하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을 며칠에 걸쳐 만들었다.

"통념과는 배치되는 일이었죠. 왜냐하면 모두들 우리에게 더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속도를 올리는 건 고사하고, 늦추고 있었으니까요."

로버트가 말했다. 어느 날 아침 그들은 화면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시험해 보았다. 정상적인 경우, 매수주문을 넣기 위해 키를 누른 뒤 체결에 실패하면 화면은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원하는 물량의 일부만 체결된 경우에는 갈색으로 번쩍였고, 모두 체결되면 녹색으로 번쩍였다. 앨런은 시리즈 7 시험(미국의 등록거래대리인 자격시험-옮긴 이)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키를 누르고 거래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로버트가 키보드의 키를 눌렀다. 앨런은 화면이 녹색으로 번쩍이는 것을 지켜보았고,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너무 간단하네요."

하지만 로버트는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버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키를 누르자마자 저는 브래드의 책상으로 달려갔죠. '됐어! 내 말대로 됐다고.' 제가 기억하기론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브래드가 이렇게 말했죠. '자, 이제 뭘 해야 하지?'"

- 그 질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누군가가 주식시장 주문이 도착하는 시간이 거래소에 따라서 다르다는 점을 이용하여 선행매매를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주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임에 뛰어들기 위해 그 정보를 활용할까?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까? 브래드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데에는 거의 6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브래드는 '교육 캠페인을 시작해야겠군.'이라고 말했죠."

로버트는 그렇게 회상했다.

"우리가 알아낸 걸 활용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브래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택했죠."

- 이제 브래드와 동료들은 많은 질문 중에서 한 가지 답을 찾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한 가지 답을 찾으면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그때가 2009년이니까, 거의 3년 동안이나 그런 일이 계속되어 왔던 거죠. 그런데 저희가 처음으로 그걸 알아냈다니 이해가 안 가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죠?"

 

- 한편 브래드와 동료들에게는 투자자들에게 팔 수 있는 상품, 즉 증권거래소로 가는 주문을 '늦춰주는' 앨런의 프로그램이 생겼다. 그들은 이를 투자자들에게 팔기 전에 RBC의 트레이더들이 먼저 프로그램을 시험해보길 원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제가 책상에 앉아 있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오, 세상에! 주문이 체결되네!'"

로버트가 말했다. 그 프로그램은 트레이더들이 하려고 했던 일, 즉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하고자 하는 기관 투자자들을 대신해서 위험을 지는 일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이제 그들은 화면에 나타난 시장을 다시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 이름이 필요했다. 브래드와 그의 팀이 이름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한 트레이더가 자기 책상에서 일어서더니 이렇게 외쳤다.

"이봐, 그 프로그램은 토르 Thor(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큰 망치를 들고 있다.-옮긴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큰 망치 말이야!"

누군가가 토르의 각 글자를 머리글자로 하는 문구를 찾아보는 일을 맡았고 괜찮은 문구를 찾기도 했지만, 아무도 기억하진 못했다. 프로그램은 언제나 그냥 '토르'였다.

"어떤 친구가 '토르 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토르라는 이름이 동사가 되었을 때, 저는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 새로 나타난 미국의 중개꾼들이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빼내는지 측정할 수 있는 도구, 즉 토르가 있었다. 선행매매하는 중개꾼들의 개입을 없애면 얼마나 싸게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브래드는 자신의 팀이 어떤 방식으로 큰 규모의 거래를 해보았는지 마이크 기틀린에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브래드의 팀은 주당 약 4달러에 거래되는 시티 그룹 주식 1,000만 주를 매수하면서 2만 9,000달러를 절약했다. 총 거래금액의 약 0.07%였다.

"그건 세금 같은 거였어요."

로버트 박이 말했다. 미미한 금액으로 보이겠지만, 미국 주식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금액이 2,250억 달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리 보일 것이다. 동일한 세율을 그 금액에 적용하면 하루에 1억 6,000만 달러가 넘었다.

"너무도 은밀히 이루어지는 탓에 알 수가 없었죠."

 

- 월가의 어떤 회사가 투자자를 도와 그런 세금을 회피할 수 있게 해 주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토르가 보여주었다.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었지만, 기틀린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브래드 카츄야마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기틀린은 이렇게 말했다.

"RBC에 세계 최고의 전자 트레이딩 전문가가 있었다니, 좀 이상한 일이었죠. 세계 최고의 전자 트레이딩 전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될 만한 회사는 아니었으니까요."

- 그 장소들로 보내진 주식 매매주문들이 정확히 동시에 도착하면, 시장은 시장답게 움직였다. 만약 그 주문들이 도착할 때 밀리세컨드의 차이라도 생긴다면, 시장은 사라지고 거래는 모두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브래드는 누군가 자신에 앞서 선행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 즉 어떤 트레이더가 한 거래소에서 브래드의 매수주문을 본 다음 더 높은 가격에 브래드에게 매도할 의도로 다른 거래소의 물량을 가로채서 매수하는 선행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브래드가 찾아낸 용의자는 바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었다.

"시장의 그 새로운 참여자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감이 왔지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하는 건지 그걸 모를 뿐이었습니다." 


- 2009년 말 미국의 초단타매매 회사들은 토론토로 날아가서는 캐나다 은행들을 상대로 고객 주문을 볼 수 있도록 해주면 리베이트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해 초 RBC의 경쟁회사들 중 하나인 캐나다 임페리얼 상업은행 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이하 CIBC)은 토론토증권거래소 Toronto Stock Exchange의 회원자격을 몇몇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에게 빌려주었으며, 몇 달 지나지 않아 통상적으로 6~7% 정도이던 캐나다 주식시장에서의 점유율이 3배 가까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RBC의 경영진들은 캐나다식 다크풀을 만들어서 캐나다 고객들의 주식시장 주문을 그곳을 거쳐 가게 한 다음, 다크풀의 운영권을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에게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브래드는 새로운 게임의 실체를 밝히고, 고객을 속이려고 음모를 꾸미지 않는 월가의 유일한 은행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RBC를 위해 훨씬 더 ...

- 브래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느라 그해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브래드는 초단타매매로 돈 버는 법을 알게 된 사람들은 죄다 돈을 너무 많이 번 탓에 그 짓을 그만두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폭로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 신호의 속도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였다.

"단순한 물리학이에요. 그걸 트레이더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로난이 말했다.

- 바운티풀 트러스트가 캔자스시티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창립자들이 더 이상 물리적인 위치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월가는 더 이상 어떤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이제 다시 월가는 뉴저지주에 위치한 어떤 장소를 의미했다. 로난이 컴퓨터를 캔자스시티에서 너틀리에 위치한 라디안츠의 데이터센터로 옮기자, 그들이 매매주문의 체결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3밀리세컨드에서 3.8밀리세컨드로 줄었다. 

- 그때부터 로난에게 월가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은행이나 잘 알려진 초단타매매 회사들뿐만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소규모 프랍트레이딩 회사들에서도 의뢰가 왔다. 모두들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매매할 수 있기를 원했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호가 이동할 수 있는 더 짧은 경로를 찾아야 하고, 핵심기능만 갖춘 최신 하드웨어가 필요하며, 그들의 컴퓨터와 여러 증권거래소의 컴퓨터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거리를 줄여야 했다. 로난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고객들의 컴퓨터가 모두 너틀리의 라디안츠 데이터센터 안에 위치하면서 약간 까다로운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한 트레이더가 전화를 걸어 '그 방 안 어디쯤에 저희 컴퓨터가 있나요?'라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생각했죠. '그 방 안이라니? 그 방 안이라게 뭘 말하는 거야?'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정말로 '그 방', 즉 데이터센터 안을 말하는 거였어요."

 

- 그는 '차익거래 arbitrage'에 대해 대충 들어보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차익거래하는지, 그리고 그 거래를 왜 그렇게 빨리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차를 몰고 도망가는 사람 같아 보였어요. 매번 '더 빨리 차를 몰아! 더 빨리!'라고 하는 듯했죠. 그런 다음 '에어백을 없애버려!'라고 하고, '망할 놈의 좌석도 떼버려!'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죠.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대체 회사에서 무슨 일 하시는 건가요?'"

로난은 여러 회사들 중에서 누가 기술적인 감각이 있는지에 대해 대충 알 수 있었다. 가장 큰 양대 초단타매매 회사인 시타델과 겟코가 가장 영리하게 움직였다. 몇몇 프랍트레이딩 회사들도 뛰어났다. 그러나 대형은행의 경우 적어도 그때까지는 모두들 둔한 편이었다.

- 그 정도 말고는 로난이 자신의 고객들에 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골드만 삭스나 크레디트스위스 같은 대형은행들은 모두들 들어본 적이 있는 회사였다. 시타델이나 겟코 같은 회사들도 나름 유명했다. 로난이 알기로, 고객들 중에는 외부 투자자들의 돈을 운용하는 헤지펀드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자본을 운용하는 프랍트레이딩 회사들이었다. 로난이 상대하는 많은 회사들, 가령 허드슨리버 트레이딩, 이글 세븐 Eagle Seven, 심플렉스 인베스트먼트 Simplex Investments, 이볼루션 파이낸셜 테크놀로지스 Evolution Financial Technologies, 쿠퍼펀드 Cooperfund, DRW 같은 회사들은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들이며, 이름을 알리지 않으려 했다. 프랍트레이딩 회사들은 생겼다가 없어지길 반복하면서도 큰돈을 벌어들인다는 점에서 특히 불가사의했다.

"거기 가보면 다섯 명 정도밖에 없어요." 

- 어찌 됐건 통신망은 골드만 삭스와 시타델이 설립한 다이렉트 엣지 거래소 계열이 있는 시코커스를 향해 동쪽으로, 그리고 카터릿에 위치한 나스닥 거래소 계열이 있는 남쪽으로 이어졌다. 뉴욕증권거래소까지의 경로는 더 복잡했다. 2010년 초 NYSE는 여전히 맨해튼 남쪽 워터스트리트 55번지에 컴퓨터 서버를 두고 있었다. (그해 8월 멀리 뉴저지주 마와로 서버를 옮겼다.) NYSE는 브래드의 책상에서 1.6킬로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NYSE가 브래드와 가장 가까운 거래소인 듯 보였다. 그러나 로난의 지도를 보니 맨해튼의 광케이블은 놀라울 정도로 여러 경로를 우회해서 가고 있었다.

 

- 지도를 본 브래드는 무엇보다도 이제 BATS의 시장이 그렇게도 정확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BATS에 있는 매수물량이나 매도물량을 늘 100% 살 수 있었던 이유는 BATS가 브래드의 주문이 도착하는 첫 번째 거래소였기 때문이었다. 즉 BATS까지는 아직 브래드의 매매 정보가 시장으로 새어나갈 겨를이 없는 상태였다.

"저는 이렇게 말했죠. '맙소사, BATS가 우리하고 제일 가까이 있어서 그랬던 거네. 어먹을 그 터널 바로 바깥에 있었으니까.'"

 

- BATS 안에서는 초단타매매 회사들이 다른 거래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매매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매 정보를 얻기 위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BATS의 모든 종목에 보통 100주 정도 되는 매우 소량의 매수와 매도 주문을 해놓고 기다렸다. X 기업 주식의 매수자 또는 매도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거래소로 한 발 앞서 달려가 그 정보에 맞춰 선행매매를 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다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반 투자자들과 경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초단타매매 회사들이 BATS에 주문을 걸어놓는 유일한 목적은 투자자들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려는 것이기 때문에 호가를 보이기 위해 필요한 최소주문량인 100주 정도만 해놓는 게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즉 BATS에서 HFT 회사들이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에 거래되는 모든 종목에 매우 소량인 100주의 매수 혹은 매도주문을 걸어놓는 이유는, 실제로 그 종목을 매매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어떤 투자자들이 그 종목을 매매하려고 하는지 미리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BATS를 설립한 것이 바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었다. 

- 재미있게도 로난은 RBC로 오기 전까지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그중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다시 말하면 로난은 자신이 뭘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브래드가 로난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로난은 HFT 사람들이 어떤 정교한 표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표는 주식시장 주문이 특정 브로커로부터 각 거래소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마이크로세컨드 단위로 측정해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 표는 '대기시간표 latency tables'라고 불렸다. 

- 특정 거래소로 가도록 지시할 수도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순차적 비용효율 라우터 sequential cost-effective router이다.) 주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경로를 거쳐 갈 수 있는지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가령 어떤 투자자가 주당 25달러에 XYZ 회사 주식 10만 주를 매수하라고 월가의 한 브로커에게 지시했으며, 투자자는 그 대가로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낸다고 하자. 그리고 논의의 편의를 위해, 지금 시장에는 주당 25달러에 10개의 서로 다른 거래소에서 각각 1만 주씩, 총 10만 주의 매도물량이 있으며, 그 10개 거래소는 모두 그 브로커가 매매 수수료를 내야 하는 거래소라고 하자(투자자가 브로커에게 내는 수수료보다는 훨씬 적은 수수료이다). 그런데 만약 BATS에 별도로 주당 25달러에 100주의 매도물량이 있고, BATS의 경우 브로커에게 리베이트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순차적 비용효율 라우터는 먼저 BATS로 가서 100주를 매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다른 곳에 있던 10만 주의 매도물량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의 손아귀 속으로 사라진다(더불어 거래소에 매매 수수료를 내야 하는 브로커의 부담도 사라진다). 그다음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돌아서서 XYZ 회사 주식을 더 높은 가격에 매도물량으로 내놓거나, 투자자가 더 높은 가격에라도 XYZ 회사 주식을 추격매수하기를 기다리며 주식을 잠시 보유한다. 어떤 경우이든 XYZ 회사 주식을 매수하려던 투자자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결과이다. 

- 이것은 주문이 말도 안 되는 경로를 거쳐 가는 많은 사례 중 한 예일뿐이다. 대개 고객들(당신, 혹은 당신을 대신해서 투자하는 사람)은 알고리즘과 라우터의 내부 작동방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만약에 고객이 자신의 주문이 어떤 경로로 가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하여 브로커가 말해주더라도, 어떤 주식이 언제 매매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카드게임에서 상대방 얼굴의 실룩거림을 보고 패를 짐작할 수 있듯이, 브로커의 라우터 역시 그 작동방식을 추측할 수 있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기계 고장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HFT 녀석들에게도 패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된다. 
브래드가 로난에게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주자,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로난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젠장, 무심코 들었던 말들이 이제 이해가 되네."

- 로난의 도움으로 RBC 팀은 자신들만의 광통신망을 설계하여 토르를 투자자들에게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홍보문안은 터무니없이 단순했다.

'금융시장에 새로운 약탈자가 등장했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약탈자를 막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 RBC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의 논쟁은 끝났다. 브래드의 새로운 문제는 이제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로난의 얘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고 관심을 보이는지를 목격하면서, 그리고 기이하고 전에 없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상사들을 설득하는 데 더 이상 로난이 필요 없게 되면서, 브래드는 로난에게 월가의 최대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브래드가 저를 부르더니, '이제 당신을 초단타매매 전략팀장이 아닌 전자 트레이딩 전략팀장으로 임명하려 하는데 어때요?'라고 말하더군요."

이것이든 저것이든 뭐 하는 일인지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로난이 말했다.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나 승진한 거 같아.'라고 말했죠."

- 이제 로난은 브래드가 자기에게 새로운 직책을 맡긴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제 역할은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누군가 당신 엿 먹이고 있다는 거 아세요?'"

 

- 로난이 준비도 없이 했던 첫 번째 회의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9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사장은 그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저는 90억 달러 헤지펀드에 3억 달러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즉 그는 트레이딩 화면에 보이는 시장대로 거래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손해가 연간 3억 달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몰랐지요. 로난이 말하는 동안 저는 RBC가 그 문제를 알 리 없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지? 트레이더는 아닌데 영업 담당자도 아니고. 퀀트 quants(수학이나 공학을 금융에 응용하는 전문가들-옮긴이)도 아니잖아. 그럼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그런데 이 자식들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떠드네.' 그래서 제가 물었죠. '뭐라고요? 아니,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런데 그때 그들이 나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어요."

 

- 브래드와 로난은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을 그 헤지펀드 매니저에게 모두 설명해 주었다.간단히 말하면, 헤지펀드 매니저의 투자활동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어떻게 브로커와 거래소들이 초단타매매 회사들에 팔아넘겨 이용해 먹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것이 바로 90억 달러 펀드에 3억 달러의 문제가 생기는 이유였다. 

- 그는 몇 시간 동안 블룸버그 단말기에서 ETF의 가격을 지켜보았다. 그 시간은 중국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ETF의 가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온라인 증권계좌 화면의 매수 버튼을 누르자, 블룸버그 화면의 가격이 뛰어올랐다. 온라인 증권계좌를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실시간으로 시장을 관찰할 수 있는 블룸버그 단말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매수 버튼을 누른 후에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실행 확인 버튼은 누르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매수하려는 종목의 기호와 수량을 입력한 거 말고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런데도 가격이 뛰었죠."

헤지펀드 사장은 말했다. 처음 보았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ETF를 사고 난 후에 그는 거래확인서 하나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그 거래가 시타델 디리버티브스 Citadel Derivatives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적혀있었다. 시타델은 대형 초단타매매 회사들 중 하나였다.

"저는 의아했죠. 내 온라인 증권사가 왜 나의 주문을 시타델로 보냈을까?"

- "허세로 가득 찬 곳이 월가예요."

그는 말했다. 기관 투자자들을 만난 로난은 그들 대부분이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놀랐다.

"월가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그들은 '아니요, 모르겠어요. 말씀해 주세요.' 따위의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제가 '코로케이션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그럼요, 코로케이션 알죠.'라고 대답합니다. 그럴 때 제가 '저기요, 지금 HFT가 거래소와 같은 건물 안에 자기들 서버를 놓아두고 거래소의 매칭엔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왜 그러는 줄 아세요? 다른 누구보다 시장 데이터를 먼저 손에 넣으려고 그러는 거예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렇게 반응해요. '뭐라고요??!! 빌어먹을, 그거 불법이잖아요!' 100명 가까이 만났지만, 코로케이션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한 로난은 사람들이 대형은행에 상당히 집착하며, 심지어 대형은행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때조차도 그런다는 사실에 놀랐다.

"HFT에는 그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었거든요."  

- 빌 애크먼 Bill Ackman이 운영하는 유명한 헤지펀드인 퍼싱스퀘어 Pershing Square는 자주 대량 매수주문을 내곤 했었다. 브래드가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기 전까지 2년 동안, 애크먼은 누군가 자신의 매매 정보를 이용하여 선행매매를 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매번 정보가 새나간다고 느꼈죠. 저는 프라임 브로커 prime broker(헤지펀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지원해 주는 금융기관-옮긴이)의 짓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종류의 정보유출이 아니었거든요."

애크먼이 말했다. 브래드가 토르 영업을 위해 메릴린치 Merrill Lynch에서 RBC로 데려온 영업 담당자는 한 기관 투자자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했다.

"있잖아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네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몰랐잖아요."

- 그러던 중에 소위 플래시 크래시 flash crash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5월 6일 2시 45분, 아무런 이유 없이 시장이 몇 분 만에 600포인트 급락했다. 몇 분 후 시장은 마치 어항을 훔친 뒤 금붕어를 죽여놓고는 아무 일 없는 척 행동하는 주정뱅이처럼 다시 급락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자세히 지켜보지 않았다면, 또는 어떤 주식을 매매하려고 시장에 주문을 넣지 않았다면, 놓쳤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예를 들어 프록터 앤드 갬블 Procter and Gamble, P&G의 주가는 최저 1센트, 최고 10만 달러에서 거래되었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보다 60% 이상 하락한 주가에서 2만 번의 거래가 발생했다. 다섯 달 후 SEC는 알려지지 않은 캔자스시티 뮤추얼펀드가 시카고의 거래소에서 실수로 주식 선물계약의 대량 매도 주문을 넣는 바람에 시장이 급락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 그 설명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저 우연히 맞춘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의 감독기관은 주식시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장은 마이크로세컨드 단위로 거래를 하는데, 거래소는 초 단위로 기록하고 있었다. 1초가 100만 마이크로세컨드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초 단위의 기록으로 마이크로세컨드의 세상을 보는 것은, 마치 10년간의 거래를 대충 합한 주식시장 데이터만으로 1920년대를 봐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 정도 데이터로는 1920년대의 어느 한 시점에 주식시장 폭락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지만, 1929년 10월 29일과 그즈음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브래드가 플래시 크래시에 대한 SEC 보고서를 보았을 때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간 감각이었다.

"그 보고서에서 '분 minute'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봤습니다. 87번 나오더군요. 다음으로 '초 second'를 검색하니 63번 나왔습니다. 이번엔 '밀리세컨드 millisecond'를 검색했죠. 4번 나왔지만, 모두 실제로 의미 있게 쓰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세컨드 microsecond'를 검색하자 검색결과가 없다고 나왔죠."

브래드는 그 보고서를 한 번 읽고는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 "일단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속도를 경험하면, '누군가 버튼을 눌렀다'와 같은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사람들은 모든 거래마다 하나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것이 순차적으로 나열되는 것을 보길 원하지요. 그러나 이제 현재의 시장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 아무도 플래시 크래시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아무도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투자자들의 주문에 대해 선행매매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래드는 SEC의 설명이나 내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는 거래소의 태도를 금융계가 신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브래드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하찮은 눈덩이 하나가 심각한 눈사태를 야기했는지 왜 아무도 더 깊이 의심해보지 않을까?'

 

- 뉴욕증권거래소의 CEO인 덩컨 니더라우어 Duncan Niederauer가 뉴욕증권거래소는 플래시 크래시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한 설명회를 시작했을 때, 브래드는 업계 최고의 투자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았다. 전에 브래드와 로난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 주식시장 투자전문 헤지펀드인 씨울프 캐피탈 Seawolf Capital의 대니 모세 Danny Moses는 이렇게 말했다.

"설명회에서 불을 껐을 때였습니다. 니더라우어가 '여러분, 저희를 믿으십시오. 저희 잘못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의아했죠. '어, 잠깐만. 당신들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왜 내가 그게 당신들 잘못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그건 꼭 이런 경우와 비슷했어요. 아이가 집으로 들어와 아빠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빠, 아빠 차에 흠집 낸 거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잠깐만, 내 차에 흠집이 났다고?"

- 플래시 크래시가 발생하고 나서는 브래드가 투자자들과 만나려고 애써 전화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브래드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플래시 크래시를 계기로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윗사람들이 물어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말해준 사실과 설명이 정말로 정확했다는 생각이 들었겠죠." 


- 그로부터 몇 달 후인 2010년 9월 이번에는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시카고 교외의 거래소에서 또 다른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전체 주식시장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한 CBSX라는 작은 거래소가 수수료와 리베이트의 체계를 바꾸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CBSX는 그때까지와는 정반대로 유동성 '수용자'에게 리베이트를 주고 '결정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 조치는 브래드에게 기이하게 받아들여졌다.

'결정자가 수수료를 내야 한다면 도대체 누가 시장을 조성할까?'

하지만 그때부터 CBSX의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 예를 들어 그 몇 주에 걸쳐 시리우스 Sirius라는 위성라디오 기업 주식의 전체 거래량 중 약 3분의 1이 CBSX에서 거래되었다. 브래드는 시리우스가 HTF 회사들이 좋아하는 종목이라는 건 알았지만, 왜 갑자기 시카고에서 대량으로 거래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CBSX에서 '수용자'에게 리베이트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월가의 대형 브로커들이 모두 고객 주문을 CBSX로 가도록 라우터를 조정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거래의 반대편에는 이제까지 받아온 리베이트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내야 했던 결정자가 있었을 텐데 그들은 누구였을까?

- 월가의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른 은행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아낼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 그 은행들의 직원을 찾아내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금융위기의 여파로 혼란 상태에 빠졌고, 브래드는 몇 년 전 같으면 RBC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사람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브래드는 수백 명 이상의 인재들을 인터뷰했지만, 결국 35명 정도만 채용하는 선에서 끝을 냈다.

"그들 모두 일자리를 원했죠.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기 회사의 전자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로 모르더라고요. 제게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었어요." 

-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브래드가 채용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하나같이 시스템에 대해 두려움과 불신을 지니고 있었다. 존 슈발은 그에 꼭 들어맞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 1990년대 말 슈발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증권 Banc of America Securities에 취직했고, 거기서 뉴 프로덕트 팀장 Head of New Products이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의 직책으로 승진했다. 슈발의 직무기술서는 직책의 이름보다 더 화려했다. 존 슈발은 일상의 세심한 일들을 처리하며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령 트레이딩 플로어의 트레이더들과 그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술 전문가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거나, 최신 주식시장 관련 규정들을 편집하는 일 등을 처리했다. 슈발은 회사의 임직원 평가에서 늘 상위 1%를 차지했지만, 월가의 은행에서 그의 위치는 영국 상류층 가족의 수석 집사와 비슷했다. 지원 업무를 맡은 단순 사무직원들에게는 슈발이 실력자처럼 보였지만, 돈을 버는 트레이더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저자 주 : 'banc'로 표기한 것이 거슬릴 수 있겠다. 이 경우 'banc'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은 은행(여기서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안에 속해 있는 증권 부문에 대해 '은행 banks'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슈발은 어떤 불만이 생기더라도 덮어두었다. 회사에 충성심을 느낄 구실이 생기면 그 일에만 매달렸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이 그랬다. 슈발의 책상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81층에 있었다. 운 좋게도 그날은 2001년 들어 슈발이 처음으로 지각한 날이었고, 그는 멀리 버스 창문을 통해 그의 사무실 13층 위에 첫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의 동료들과 그가 알고 지내던 스테이튼 아일랜드 소방관 몇 명이 그날 목숨을 잃었다. 슈발은 그날 일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만약 비행기가 충돌하던 순간에 자신이 사무실에 있었다면 직감적으로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올라갔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마음속에서 동료와 직원들에 대한 빚으로 남았다. 슈발은 소방관이 자신의 팀에 대해 느껴야 하는 감정을 월가의 은행에 대해 느끼고 싶어 했다.

"저는 영원히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 그러던 중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08년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큰 손실을 입은 메릴린치를 인수했다. 이후 발생한 일들 때문에 슈발의 가치관은 바뀌었다. 메릴린치는 최악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 subprime mortgage bonds을 가장 많이 발행했던 금융기관 중 하나였다. 시장의 처분에 맡겼다면, 즉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메릴린치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메릴린치의 사람들은 거리로 쫓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메릴린치 사람들은 인수 직전 엄청난 보너스 잔치를 벌였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보너스를 지급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믿기 힘든 부당한 일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부정한 일이었다고요. 제가 9년 동안이나 몸 바쳐왔던 이 회사의 제 주식이 똥값이 돼버렸는데, 그 멍청한 놈들은 사상 최대의 보너스 잔치를 벌였어요. 그건 천벌 받을 범죄행위였어요."

설상가상으로 메릴린치 사람들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주식담당 부문을 장악하더니 거기 있던 사람들 대부분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충성하던 선량한 직원들이었다.

"월가는 썩었군, 그렇게 생각해 버렸죠.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었어요."

슈발은 그렇게 회상했다.

- 슈발은 해고되지 않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증권 직원들 중 한 명이었다. 메릴린치에는 그를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슈발은 본심을 감추기는 했지만, 더 이상 회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회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증권에서 해고되어 작은 브로커리지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돕고 있던 슈발은 어느 날 자신의 개인 이메일 계정에서 회사 이메일 계정으로 메일을 하나 보냈다. 그런데 슈발의 상사가 그를 불러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 브로커는 재량에 따라 시장에 연연하지 않고 투자자를 위해 가능한 한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투자자가 신뢰의 표시로 준 재량권을 브로커가 지나치게 악용할 경우, 정부가 그 재량권을 박탈했다. Reg NMS는 '최선의 매매체결'이라는 느슨한 개념을 '최선의 가격 best price'이라는 엄격한 규정으로 대체했다. 최선의 가격을 정의함에 있어서 Reg NMS는 NBBO로 알려진 최우선 매수·매도호가 National Best Bidand Offer의 개념을 준거로 삼았다. 만약 투자자가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1만 주를 매수하려는 경우에 BATS 거래소에는 주당 30달러에 100주의 매도물량이 있는 반면 다른 12개의 거래소에는 주당 30.01달러에 총 1만 주의 매도물량이 있다고 한다면, 브로커는 반드시 BATS에서 100주를 매수하고 나서 다른 거래소로 가야 했다.

"그 법 아래에서는 갈 필요도 없는 거래소까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선행매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슈발이 말했다. 또한 Reg NMS 하에서 브로커는 고객의 주문을 가격이 가장 좋은 거래소로 제일 먼저 보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브로커가 고객의 주문을 어느 거래소로 보낼지를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예측하기 매우 쉽게 만들어버렸다. 

- 최선의 가격을 계산하는 방식을 제외하면 그 법은 그런대로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Reg NMS에 따르면, NBBO를 산출하기 위해 미국 주식시장의 모든 매수·매도호가를 한 장소에 모아 시장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했다. 어떤 컴퓨터 내부에 마련되었을 그 장소는 주식정보 프로세서 securities Information Processor라고 불렀으며, 약어를 많이 쓰는 월가에서는 SIP로 알려졌다. 13개 거래소가 각자의 가격을 SIP로 보내면, SIP가 NBBO를 계산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SIP를 통해서 미국 주식시장의 시황을 보았다.

- 다른 많은 규정처럼 Reg NMS도 좋은 뜻을 담고 있고 합리적이었다. 월가의 모든 사람들이 Reg NMS의 정신을 지켰다면 Reg NMS는 미국 주식시장에 새로운 공정성을 확립했을 것이다. 그러나 Reg NMS에는 'SIP의 속도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었다. 모든 거래소에서 주식가격을 수집하여 정리하는 일이 밀리세컨드 단위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계산 결과를 배포하는 일도 밀리세컨드 단위로 이루어졌다. 계산을 수행하는 데 이용된 기술은 구식이고 느렸으며, 거래소들은 기술 개선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거래소 안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속도가 훨씬 빠른 자신들만의 최신판 SIP를 구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그런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보는 시장과 일반 투자자들이 보는 시장 사이에는 24밀리세컨드의 차이가 생겼으며, 이는 뉴욕에서 시카고를 오고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의 두 배에 달하는 시간 차이였다. 

- Reg NMS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더 치명적인 불평등을 제도화한 셈이 되어버렸다. 속도를 선점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소수의 내부자들이 남들보다 시장을 먼저 본 다음 선행매매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 예를 들어 어떤 일반 투자자가 SIP를 보고 애플 주식이 400-400.01달러에서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자. 그리고 투자자는 자신의 브로커에게 시장가격인 400.01달러에 1,000주를 매수하라고 지시한다. 이때 주문이 들어가는 순간과 주문이 체결되는 순간 사이의 그 극미한 시간이 더 빠른 통신망을 가진 트레이더들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된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황금이 될지는 두 가지 변수, 즉 (a) 공공 SIP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소유한 SIP 사이의 시간 차이와 (b) 애플 주식의 가격변동성에 달려 있다. 시간의 차이가 클수록, 애플 주식 가격이 움직일 가능성도 커지고, 속도에서 앞선 트레이더들이 투자자를 원래 가격에 묶어둘 가능성도 커진다. 그것이 바로 초단타매매트레이더들에게는 변동성 volatility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된다. 속도에서 앞선 트레이더들이 먼저 보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격은 바로 변동성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의 주가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장의 일부 사람들이 애플의 주가를 먼저 본다 한들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 물론 애플 주식의 변동성은 크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연구팀이 2013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 SIP에서의 애플 주식 가격과 속도에서 앞선 트레이더들이 보는 가격 사이에 단 하루에만도 5만 5,000번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말은 시장의 대부분이 모르는 상태에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만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SIP 때문에 하루 5만 5,000번은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하면 속도가 느린 투자자들이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여 초단타매매 트레이더가 SIP에 나타난 가격으로 애플 주식을 매수한 다음 돌아서서 더 높게 바뀐 가격에 그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5만 5,000번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바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가 미리 알게 된 시장정보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슈발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전체에 Reg NMS를 시행하는 일을 담당했었기 때문에, 이미 Reg NMS의 핵심적인 세부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특정 주식에 대해 최선의 가격(NBBO)을 제시한 거래소를 찾아내어 그 거래소로 고객의 주문을 보내는 소위 '스마트 주문 라우터 smartorder routers'를 구축하는 일도 슈발의 업무였다. Reg NMS를 준수하기 위해 스마트 주문 라우터를 구축함으로써 결국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설치한 함정 속으로 투자자들이 걸어 들어가도록 만든 셈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때 저는 정말 엄청나게 열받았어요. 그놈들은 조직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여 온 나라의 은퇴자금을 훔쳐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눈치도 못 채고 있잖아요. 그게 날 완전히 돌아버리게 만들었죠." 

- 분노가 더할수록 슈발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옛 NYSE 스페셜리스트들이 했던 시장조작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 Reg NMS가 제정됐다는 사실을 슈발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그렇다면 스페셜리스트들의 그런 부정행위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슈발은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당시의 규정에서 찾아낸 허점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그 발견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어떤 사건 때문에 SEC는 그런 규정을 만들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의 조사 끝에 슈발은 1987년 주식시장 대폭락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 후에 알려졌듯이 1987년 대폭락은 비록 조잡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 초단타매매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대폭락 시기에 월가의 브로커들은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 전화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에, 소액투자자들은 시장에 주문을 넣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정부 감독기관은 전자 소액주문 집행시스템 Small Order Execution System을 만들어 소액주문의 경우 브로커가 먼저 전화로 주문을 받는 대신 컴퓨터 키보드의 키를 눌러 시장에 주문을 보낼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컴퓨터가 주문을 전송하는 속도는 언제나 인간보다 빠르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영리한 트레이더들은 소액투자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목적으로 그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 시점에서 슈발에게는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1987년 주식시장 대폭락의 와중에 브로커가 전화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든 그 규정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 며칠 후 슈발은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슈발에게는 월가의 역사 전체가 마치 서커스의 코끼리들이 코와 꼬리를 잇달아 물고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끊임없는 스캔들로 점철된 현장으로 보였다. 모든 조직적인 시장의 부정행위는 그 이전의 부정행위를 바로잡고자 마련한 규정의 허점에서 생겨났다.

"감독기관이 어떤 규정을 만들더라도 누군가 거기서 허점을 찾아냈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의 선행매매가 생기곤 했습니다."

 

- 슈발은 자신이 알게 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첫 번째, 지금 그들이 싸우고 있는 선행매매의 행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금융시장은 언제나 부패한 상태였거나 부패하고 있었다. 두 번째, 금융 감독기관이 그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없다. 아니면 감독기관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의 선행매매라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감독기관이 어떤 해결책을 마련하든 금융시장의 중개기관들은 투자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돈을 벌어들일 또 다른 기회를 그 해결책에서 생각해 낼 것이다.

- 슈발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것은 통찰이라기보다는 바람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월가 역사상 처음으로 금융 중개기관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 주식시장의 매수자와 매도자는 이제 제3자의 도움 없이도 직접 연결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생겼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의 개입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슈발이 말했다. 만약 수 세기 동안 번창해 왔던 월가의 중개기관들을 어떻게든 없애버릴 작정이라면, 사고의 틀을 더 확장해야 했다.

"너무나 염려한 나머지 우리들은 초단타매매를 해결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문제는 더 큰 차원에서 생각해야 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불필요한 중개도 없애버리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했죠."

 

- 브래드는 프로덕트 매니저인 슈발이 월가 스캔들의 역사를 조사하기 시작하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라인맨 lineman(미식축구의 공격수-옮긴이)이 훈련도 빼먹고 상대 팀의 라커 룸에 잠입한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슈발이 그렇게 조사에 몰두하는 일이 적어도 처음엔 회의에서 옆길로 새곤 하던 악의 없는 일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슈발이 일단 어떤 일에 꽂히면, 그냥 놔두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면 하루 18시간씩 일하기도 하는 게 바로 슈발이죠." 

 

- 제대로 이해하려면, HFT 회사에 의해 선행매매를 당한다는 사실을 투자자가 감지했을 때 그것이 투자자들의 거래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데서 시작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브래드 역시 그 영향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 브래드의 트레이딩 화면에 나타난 시장이 환상이 되어버렸을 때, 그는 그 시장에서 위험을 지는 일, 즉 유동성을 제공하는 일을 꺼려하게 되었다. 위험을 지는 다른 모든 중개기관들, 즉 다른 모든 유익한 시장참여자들 역시 틀림없이 자신과 똑같이 느꼈으리라고 브래드는 짐작할 수 있었다.

- HFT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HFT가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HFT 회사들은 매일 저녁 포지션을 제로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포지션을 취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매우 짧은 순간 동안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시켜주고 있을 뿐이에요."

브래드가 말했다. 시장이 컴퓨터에 의해 자동화되고 난 이후인 2000년, 시장의 스프레드는 축소되었다. 거기까지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자동화로 어쨌든 스프레드는 어느 정도 축소될 예정이었으며, 이로써 분수 단위가 아닌 소수 단위의 가격으로 주식이 거래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축소된 스프레드의 어느 정도는 환상이기도 했다. 스프레드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상 스프레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시된 가격으로 매매를 하려는 순간, 가격이 움직였다. 스캘퍼 주식회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옛 모델의 가면을 썼지만, 그 속에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활동을 숨기고 있었다. 기존 모델에서는 '시장을 조성하는 사람'이 반드시 시장위험을 졌으며 '유동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스캘퍼 주식회사는 아무런 시장위험도 지지 않았다.

- 가면을 벗기고 나면, 스캘퍼 주식회사는 시장의 조력자라기보다 기이한 형태로 시장에 부담을 주는 존재였다. 금융 중개 Financial Intermediation는 자본에 대한 일종의 세금이다. 즉 자본을 가진 사람이나 생산을 위해 자본을 투입하는 사람 모두 내야 하는 통행료이기 때문에, 세금을 줄이려면 경제적 혜택도 줄여야 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는 경제적 혜택을 줄이지 않고도 세금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인간 중개인의 도움 없이도 투자자들이 서로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세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에 새로운 괴물이 시장의 한복판에 생겨났고, 오히려 세금은 수십억 달러나 증가했다. 아니면 그 괴물이 다 먹어치웠는지도 모른다. 스캘퍼 주식회사가 경제에 끼치는 손해를 측정하려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 새로운 중개기관들은 자신들의 수익에 대해 비밀을 유지하는 데 매우 능했기 때문이다. 비밀유지는 지금 주식시장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그 괴물의 전형적인 특성인 듯했다.  

- 2013년 초, 대형 초단타매매 회사 중 하나인 버츄 파이낸셜 Virtu Financial은 5년 반 트레이딩을 하는 동안 이익을 보지 못했던 날이 단 하루밖에 없었으며 그 손실조차도 '인간의 실수'로 생긴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자랑했다. 2008년 트레이드봇 Tradebot이라 부르는 초단타매매 회사의 CEO인 데이비드 커밍스 David Cummings는 대학생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자기 회사가 트레이딩 손실이 단 하루도 없이 4년간 운영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런 식의 운용성과는 정보력에서 엄청난 우위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 한때 미국 국방부에서 일급비밀 정보를 취급하기도 했던 시타델의 전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 국방부에서 일하던 내 자리까지 가려면, 두 차례 신분증을 대고 통과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이고, 또 한 번은 내가 일하는 부서로 들어갈 때 필요하죠. 시타델에서 제 자리까지 가는 데 신분증을 몇 번이나 대야 하는지 맞춰보세요. 무려 다섯 번입니다."

- 예를 들어 치포틀레 멕시칸 그릴의 주식이 100-100.10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게이츠는 주당 100.05달러에 치포틀레 주식 1,000주를 매수하라는 주문을 넣는다. 대개는 다른 어떤 투자자가 매도가격을 게이츠의 가격을 따라서 100.05달러로 낮출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게이츠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몇 초 후에 그는 일반 거래소 중 한 군데로 100.01달러에 치포틀레 주식을 매도하는 두 번째 주문을 보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크풀에 들어갔던 게이츠의 매수주문은 새로운 정식 최저 매도호가인 100.01달러에 매매가 체결되었어야 했다. 즉 게이츠는 자신이 일반 거래소에 냈던 주당 100.01달러의 매도물량을 매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게이츠가 미처 눈을 깜빡거리기도 전에 두 번의 매매가 이루어졌다. 월가의 다크풀에서 누군가로부터 주당 100.05달러에 치포틀레 주식을 매수하는 거래와, 일반 거래소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주당 100.01달러에 그 주식을 매도하는 거래, 이렇게 두 번의 매매가 이루어졌다. 사실상 게이츠는 자기 자신과 매매를 하면서 4센트를 손해 본 셈이었다. 그런데 실제론 자기 자신과 매매를 한 게 아니었다. 어떤 제3자가 게이츠가 다크풀로 보낸 매수주문을 부당하게 활용하기 위하여 일반 거래소로 보낸 매도 주문을 이용한 게 분명했다.

- 게이츠와 그의 동료들은 자기들 돈을 사용하여 월가의 몇몇 다크풀에 대해 이런 검증작업을 수백 번 되풀이했다. 2010년 상반기에 검증결과가 양성반응을 보였던(즉 게이츠의 주문을 부당하게 활용한 것으로 나타난) 월가의 다크풀은 골드만 삭스 한 군데였다. 게이츠가 골드만 삭스의 다크풀인 시그마엑스 Sigma X에 대해 검증작업을 했을 때 반 이상이 선행매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게이츠가 거래량이 적은 주식을 거래했던 데 반해, 초단타매매 회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거래량이 풍부한 주식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게이츠가 얻은 검증 결과보다 더 많은 선행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쨌거나 게이츠는 골드만이 운영하는 다크풀이 누군가 일반 거래소로 가는 그의 주문을 선행매매 하도록 놔두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게이츠는 골드만의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람은 억울하다고 하더군요. 자기들만 그런 게 아니래요. 그는 이렇게 항변했어요. '그런 일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고요.'"

- 게이츠는 도덕적인 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검증결과를 처음 보았을 때, 이건 정말 옳지 않다고 생각했죠."

게이츠가 생각하기에 3만 5,000명의 소액 투자자들이 월가 최고 은행의 약탈행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문도 품지 않고 더 깊이 알아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힙니다.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 사는 멍청이도 알 수 있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크게 분노한 게이츠는 그가 알고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검증작업의 결과를 보러 온 기자는 관심을 보였지만, 두 달이 지나도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어떤 기사도 없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게이츠는 그런 기사는 결코 실리지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다른 무엇보다도, 기자는 골드만 삭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그러던 중 게이츠는 곧 통과될 예정인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ustomer Protection Act이 내부고발자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전 이렇게 생각했죠. '세상에, 어쨌든 이걸 까발리도록 해야겠군. 그 대가로 보상도 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SEC의 시장거래부 직원들은 실제론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똑똑했으며 필요한 질문을 했고, 심지어 게이츠의 설명 중에 작은 실수를 짚어주어 그가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비록 브래드 카츄야마와 회의를 했을 때에는, 브래드가 설명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아무런 얘기도 없었지만 말이다. 시장거래부 사람들은 골드만의 다크풀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강탈하고 있는 자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그 거래의 상대편에 골드만삭스의 프랍트레이더가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어 했어요."

게이츠가 말했다. 그건 게이츠도 알지 못했다.

"골드만은 거래의 상대편에 누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거든요."

게이츠가 아는 거라고는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실시간 시황을 게이츠 자신만 볼 수 없을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방식으로 돈을 강탈당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 "내부고발을 하고 나서 저는 납작 엎드려 있었어요. 폭탄 던지러 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제 사업에만 집중하고 싶었죠."

게이츠는 말했다. 그러던 중에 플래시크래시가 발생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다시 관심을 나타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골드만 삭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리치 게이츠의 검증결과를 기사로 내보냈다.

"그 기사가 세상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죠.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월스트리트 저널> 홈페이지의 그 기사 밑에 댓글이 15개 달렸는데, 모두 러시아 여성과의 국제결혼 광고였어요."

 

- 그러나 BATS 거래소와 크레디트스위스 양쪽 모두의 속사정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그 기사를 보고 게이츠에게 연락을 해와 이렇게 귀띔해 주었다.

"크로스파인더 Crossfinder라는 이름의 크레디트스위스 다크풀과 BATS 거래소에 대해 특별히 한번 더 검증을 해보십시오."

2010년 말 즈음 게이츠는 다시 한번 검증작업을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츠는 골드만 삭스의 다크풀에서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BATS 거래소와 크레디트스위스 다크풀 안에서도 돈을 강탈당했으며, 다른 몇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제 골드만 삭스에 대한 검증결과에서는 선행매매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증작업을 처음 했을 때에는 골드만 삭스에서만 돈을 강탈당했죠. 하지만 6개월 후에 다시 했을 때에는 골드만 삭스만 빼고 모두 다 투자자를 속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2011년 5월, 슈발, 로난, 로버트 박을 비롯하여 브래드가 만든 작은 팀의 팀원들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술혁신상의 과거 수상자들이 냈던 지원서에 둘러싸여 브래드의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그들의 네트워크를 볼 수 있었죠. 제가 킹핀 kingpins(볼링에서의 헤드 핀. 주요 인물이라는 의미로 쓰인다.-옮긴이)이라고 부른 약 25명의 사내들이 있었습니다. 초단타매매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었죠."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는 40대 백인 남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1987년 주식시장 폭락 이후 마련된 규정에 근거해서 초기 전자 증권거래소가 출현했던 시점에 경력을 시작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약간의 기술적 지식을 지녔지만 프로그래밍 전문가라기보다는 트레이더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 미래에 킹핀이 되어 금융시장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그 시장 참여자들은 애초에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 대학에서 10년을 보낸 중국인, 페르마 연구실 FER MAT lab(버지니아 공과대학교의 전자컴퓨터공학부 연구실의 별칭-옮긴이)에서 온 프랑스인 입자물리학자, 러시아인 항공우주공학자, 인도인 전자공학 박사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수천 명이 있었죠. 기본적으로 모두 석·박사들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공학자들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투자자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런 회사들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슈발이 말했다. 대형은행들에 의해 채용되어 월가로 몰려든 고학력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이내 소규모 초단타매매 회사로 옮겨가는 요령을 배웠다. 그들은 큰 회사의 직원이라기보다 프리랜서처럼 행동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링크드인의 프로필에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노출시키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한 온갖 종류의 정보들을 써놓았다. 거기서 슈발은 우연히 그 약탈자들의 약점을 발견했다. 월가 대형은행들의 직원들은 회사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만큼의 애정을 회사에 별로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 크레디트스위스는 크로스파인더가 투자자들의 이익을 우선하며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해 준다는 점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다. 2009년 10월 크레디트스위스의 AESAdvanced Execution Services 부문 대표인 댄 메디슨 Dan Mathisson은 미 상원의 은행, 주택 및 도시문제 위원회 U.S. Senate 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 Committee에서 열린 다크풀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을 했다.

"초단타매매 논쟁에 다크풀을 포함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공개된 정보를 남들보다 앞서 획득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다크풀은 다른 사람들이 주문정보를 보지 못하도록 보호해 줍니다."

- 브래드가 이미 슈발에게 모든 걸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슈발은 그런 변명이 정말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령 연기금 Pension Fund이 월가의 은행에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10만 주 매수주문을 주면, 그 월가 은행이 주문을 다크풀로 보내 세상 밖으로 그 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연기금은 다크풀의 규칙을 알지 못했고, 자신들이 넣은 매수주문이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되는지도 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월가의 은행이 자기 회사 내부의 프랍트레이더들에게 그 대량 매수주문의 정보를 알려주는지, 또는 그 프랍트레이더들이 (다크풀보다 더 빠른) 자기들만의 경로를 이용하여 일반 거래소에서 선행매매를 하는지 연기금은 알 길이 없었다. 설사 월가의 은행들이 자기네 이익을 위해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거래를 하려는 유혹은 떨쳐버린다고 하더라도,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에게 다크풀에 대한 접근권을 파는 유혹을 떨쳐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다크풀에 대한 접근권을 어떤 초단타매매 회사들에 돈을 받고 팔았는지, 또 그들이 내는 돈은 얼마나 되는지, 월가의 은행들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접근권을 파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 다시 한번 명백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월가 은행 다크풀 안의 고객 주문에 접근하는 대가로 누군가 돈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답은, 다크풀 안에 있는 고객의 주식시장 주문이 살찌고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다크풀에 들어오는 주문에는 대량주문이 많고, 특히 그 주문의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했다. 월가의 은행들마다 주문을 처리하는 자기들만의 고유한 방식이 있었고 이는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다크풀에 들어온 주문은 세상밖에 노출되기 전까지 다크풀 안에서 보내야만 하는 시간 때문에 처리속도가 느렸다. 브래드의 표현대로라면, '자전거를 타면서도 다크풀의 주문에 대해 선행매매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10만 주를 매수하려는 연기금은 월가 은행에게 그 주문을 절대로 일반 거래소로 보내지 말고 그냥 다크풀 안에 숨겨두라고 특별히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크풀 안에 감춰진 주문은 비밀보장이 잘되지 못했다. 돈을 내는 대가로 다크풀에 접근이 허락된 초단타매매트레이더는 대개 모든 상장주식에 아주 소량의 매수·매도 물량을 걸어놓는 방법으로 그 다크풀의 활동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매수물량을 발견하면, 그들은 일반 거래소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가격이 조금 하락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매수하여 더 높은 '최고'의 가격에 다크풀의 연기금에 팔아버리면 그만이었다. (리치 게이츠의 검증작업에서 보았듯이 말이다.) 그것은 Reg NMS가 만들어낸 안전하고 법적인 절도행위였다. 브래드는 그것이 마치 단 한 명의 도박사만 지난주의 NFL 게임 결과를 알 수 있는 상황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 투자자들에게 자신들이 안전한 은행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부단히 애썼던 크레디트스위스의 조직도를 살펴보면서, 브래드는 월가의 대형은행들 사이에서 아마도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으리라 판단했다. 그들 모두 시장에서 각자의 차별화된 속도를 이용하여 먹잇감에 대한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는 듯했다. 더욱이 브래드는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의 선행매매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했지만, 그들의 선행매매 덕분에 은행이 얻는 이익 규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외면해 버리기로 결정했음이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토르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크풀을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이 눈 뜬 장님처럼 되는 이유도 알 수 있었어요. 고객들이 브로커의 말에만 의존했기 때문이었죠."

 

- 약탈자들로부터 먹잇감을 보호할 목적으로 거래소를 만드는 일은 월가와의 전쟁선포를 의미했다. 월가의 은행들과 그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 슈발이 했던 개인적인 조사 덕분에 브래드는 금융계의 기술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기술 전문가들이 링크드인에 자기들이 하는 일을 솔직하게 써놓은 것을 보았을 때, 브래드는 이제까지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슈발이 그 이력서들을 뽑기 시작했을 때 저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어요. 크레디트스위스는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가능한 한 비밀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 어떤 말을 흘린 사람을 해고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링크드인 안에서는 말하고 싶은 걸 뭐든지 말하고 있더라고요." 

그 글들을 보며 브래드는 그들이 금융계의 부당함에 대해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이력서를 보니, 그 기술자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힘쓰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어요. 다크풀 안에서 시장을 조성하는 일을 돕고, 은행이 고객용으로 쓸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었죠. 만약 은행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그런 방식으로 말이지요. 그들은 링크드인의 프로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어요. '저는 모든 강도 기술을 알고 있고, 그 집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 슈발은 자기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평생 모은 노후자금을 강탈하는 악당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조사를 하면서 슈발은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던 어떤 사실에 주목했다. 바로 초단타매매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월가의 대형은행에 채용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놀랍게도 러시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링크드인에 들어가서 그런 러시아인들 중 한 사람을 찾아보면, 그가 다른 모든 러시아인들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드미트리 Dmitri를 찾아보면, 미샤 Misha나 블라디미르 Vladimir, 톨스토이 Tolstoy를 비롯한 모든 러시아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겁니다."

슈발이 말했다. 그들은 또한 금융전공자들이 아니라, 통신, 물리학, 의학, 수학과를 비롯한 다른 많은 유용한 분야 출신들이었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은 분석능력이 뛰어난 러시아인들을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로 탈바꿈시키는 기계였다.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 슈발은 나중을 위해 이 조사결과를 파일로 보관해 놓았다. 

-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는 미국으로의 이민이나 월가에서 일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인 1990년 러시아를 떠났지만, 마음속엔 희망보다는 슬픔이 가득했다.

"19살까지 러시아를 떠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어요. 저는 러시아를 무척 사랑했죠. 브레즈네프 Brezhnev(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인물-옮긴이)가 죽었을 땐 눈물까지 흘렸어요. 그리고 영어는 늘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세르게이가 말했다. 그가 러시아와 갈등을 빚게 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세르게이가 원했던 공부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르게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대인이었으며 그 사실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러시아 여권에도 표시되어 있었다.
세르게이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유대인을 더 많이 선발하는 모스크바의 두 대학 중 한 곳에 입학하면 거기서 정부가 유대인에게 허락한 학업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세르게이의 경우 그것은 수학이었다.

 

- "저는 컴퓨터의 구체적인 문제해결 방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방식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다루는 능력을 요구했어요. 체스와는 달랐지만 체스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비슷했죠. 단순히 체스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체스게임을 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제게는 더 도전적인 과제였습니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지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프로그래밍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아요. 창조적인 작업이죠. 그것은 기술이지만, 예술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느끼는 만족감이란 매우 크죠."
세르게이는 전공을 수학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바꾸어 지원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걸 러시아 정부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내게는 최선의 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3599 = (3600-1) = (60²-1²) = (60-1)(60+1) = 59×61
3599 = 59×61
소수가 아니었다.

-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세르게이의 표현에 따르면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답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세르게이가 문제를 푸는 데 2분 정도가 걸린 듯했다. 골드만의 상무가 낸 두 번째 문제는 더 복잡하고 난해했다. 그는 세르게이에게 직사각형 상자모양의 방을 3차원으로 묘사해 주었다.

"그는 바닥에 거미가 있다고 하면서, 그 거미의 좌표를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또 천장에는 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파리의 좌표도 알려주었죠. 그러고 나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거미가 파리에 가서 닿을 수 있는 가장 짧은 거리를 계산해 보세요.'"

거미는 날거나 이리저리 뛸 수 없다. 표면에 붙어서 기어갈 수밖에 없다. 두 지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는 직선이기 때문에, 세르게이는 그 박스를 펼쳐보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즉 상자를 3차원 공간에서 2차원 평면으로 펼친 다음, 피타고라스 정리 Pythagorean theorem를 이용하여 거리를 계산했다. 세르게이는 몇 분 정도 걸려 그것을 계산했고, 계산을 끝내자 다비도비치는 세르게이에게 골드만 삭스 입사를 제의했다. 입사계약 연봉은 보너스를 합쳐 27만 달러였다.

 

- 그러나 브래드가 수백만 달러의 월가 연봉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그의 동기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브래드를 도와서 새로운 거래소를 설계하고 기반이 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사람을 채용하려면 1,000만 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브래드는 자신을 신뢰하는 대형 투자자들이 새로운 증권거래소를 세울 자금을 대리라 기대 내지는 추측했으나, 투자를 받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면 열 중 여덟은 이렇게 물었다.

"이거 왜 하려는 거예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줬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더 큰 부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는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이유가 뭐죠?"

브래드 몰래 그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브래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브래드가 왜 로빈후드 흉내를 내는지 생각해 봤어?"

- 처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브래드는 늘 스스로 생각해 왔던 답을 내놓았다. 즉 주식시장은 기이할 정도로 부당한 곳이 되어버려 절박하게 변화가 요구되고, 브래드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런 대답은 잘 먹히지 않았어요."

브래드는 회상했다.

"그들은 이렇게 반응했어요. '그거 완전히 헛소리처럼 들리는데요.' 처음 몇 번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짜증 났죠."

 

- 하지만 브래드는 극복해 냈다. 만약 새 증권거래소가 잘돼서 성공하면, 창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큰돈을 벌게 될 것이었다. 브래드는 고매한 수도자가 아니었으며 다만 엄청난 돈을 벌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브래드는 새 증권거래소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잠재 투자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브래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강조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잠재 투자들이 우리에게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모두들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탐욕스러운 놈들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잘 되더군요. 제가 처음에 했던 대답보다는 늘 투자자들의 반응이 더 좋았으니까요."  

 

- "나스닥은 갈수록 발전적인 면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의 손해에 연연하게 되었고, 결국엔 어떻게 하면 SEC를 피해 갈 수 있을지를 궁리하기에 이르렀죠. 그렇게 된 건 바로 탐욕 때문이었어요."

2011년 말 볼러맨이 나스닥을 그만두었을 때("저는 나스닥에서 리더십이 사라졌다고 느꼈거든요."), 나스닥 수입의 3분의 2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초단타매매 회사에서 나왔다.
볼러맨은 어떤 일이 생겨도 놀라거나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았다. 아니면 늘 그렇듯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월가의 삶에는 본질적으로 잔혹한 요소들이 있었다. 볼러맨은 월가에서 누가 무슨 짓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투자자들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으며, 거래소와 브로커들은 그 짓을 돕는 대가로 돈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일에도 도덕적인 분노나 독선을 느끼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묻곤 했어요. '아프리카 초원에 있는 하이에나나 독수리들이 나쁜 놈들이야?' 아프리카 초원에 동물들의 시체가 즐비하다고 쳐요. 그래서요? 그건 하이에나나 독수리의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냥 거기에 먹잇감이 있었을 뿐이에요."

- 볼러맨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이 표출되는 그 환경을 바꿀 수는 있다 해도 말이다. 아니면 볼러맨은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냉혹하게 사람을 죽이지만, 가끔은 사람을 죽이고 울기도 하는 마피아 있잖아요? 볼러맨은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이죠."

브래드가 말했다. 브래드는 볼러맨이 자신이 찾던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브래드는 독선적이거나 자신만 도덕적으로 고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환멸은 유익한 감정이 아닙니다. 제겐 병사 같은 사람이 필요했어요."

볼러맨이 바로 그 병사였다.

- 신설 거래소의 이름이 필요했다. 그들은 '투자자들의 거래소 Investors Exchange'라고 이름 짓고, 줄여서 IEX라 부르기로 했다. 신설 거래소의 목표는 하이에나나 독수리를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좀 미묘하게 들리겠지만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다른 동물을 죽일 기회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금융 생태계가 어떤 환경이기에 약탈자들이 먹잇감을 얻는 데 유리한가를 따져보아야 했다. 이제 퍼즐 마스터 Puzzle Masters을 등장시킬 시간이다.

(저자 주 :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들은 원래 축약하지 않은 이름을 쓰려했음을 밝혀둔다. 하지만 그들이 축약하지 않은 이름을 인터넷 주소로 만들자. '투자자 성 교환 닷컴 investorsexchange.com'처럼 보일 수 있다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결국 오해를 피하기 위해 줄여서 부르기로 했다.)

- 잠시 2008년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주식시장이 일반인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가 되어버리자 브래드는 블랙박스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는 걸 도와줄 수 있는 기술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브래드는 로버트 박을 시작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스무 살짜리 스탠포드 Stanford 3학년 학생이었던 댄 아이센 Dan Aisen도 그중 한 명으로, 브래드는 RBC의 서류더미에서 그의 이력서를 발견했다. 이력서에서 브래드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 칼리지 퍼즐 챌린지 우승 Winner of Microsoft College Puzzle Challenge'이라는 대목이었다.

 

- 매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단 하루 10시간 동안 전국 난제 풀기 대회를 개최했다. 수천 명의 젊은 수학 및 컴퓨터공학 영재들이 모여들었다. 2007년 아이센과 세 명의 친구들은 수천 개의 팀과 경쟁하여 전체 우승을 차지했다.

"암호 해독과 아라비아숫자, 스도쿠 sudoku가 섞여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였죠."

아이센이 설명했다. 각 퍼즐의 해답은 다른 퍼즐을 풀 단서를 제공했다. 그 문제들을 잘 풀려면, 숙달된 기술뿐만 아니라 특출 난 패턴인식 능력이 필요했다.

 

 - 어찌 보면 새 증권거래소를 만드는 일은 마치 카지노를 만드는 일과 비슷했다. 카지노를 만드는 사람 역시 어떻게든 단골고객이 카지노를 자기 편의대로 악용할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해야 했다. 아니면 블랙잭 테이블에서 카드 카운팅(게임하는 카드의 기록을 외우는 행위-옮긴이)을 감시하듯이, 적어도 그의 시스템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시스템이 악용될 여지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지요."

퍼즈가 말했다. 일반 거래소든 사설 거래소든 모든 거래소의 문제는 누군가 그 시스템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악용한다는 점이었으며, ...


- ... 리베이트를 주는 본래 의도였으리라 추정되는 유동성을 제공하지 않고도 거래소가 주는 리베이트를 가로채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복잡한 매매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세 번째는 '느린 시장 차익거래 slow market arbitrage'라고 부르는 행위로, 짐작컨대 아마도 가장 횡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가 어떤 한 거래소에서 체결된 주식의 가격을 본 다음, 다른 거래소들이 미처 그 결과를 반영하기도 전에 그 거래소들로 가서 거기에 있는 주문을 선점하는 행위였다.

 

- 예를 들어 P&G 주식의 호가가 80-80.01에 형성되어 있고, 모든 거래소의 사자와 팔자 양쪽에 매수자와 매도자들이 있다고 하자. 이때 NYSE에 대량 매도자가 나타나면, NYSE의 호가는 79.98-79.99로 떨어지게 된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79.99달러에 NYSE에서 매수하여 시장의 공식적인 호가가 미처 바뀌기 전에 그 밖의 다른 모든 거래소로 가 80달러에 매도한다. 매일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다른 매매전략을 합친 것보다 1년에 수십억 달러는 더 벌어들이고 있었다.

- 이 모든 세 가지 약탈적 전략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 있었으며, 일단 주문 방식에 대한 분석을 마친 퍼즐 마스터들은 이제 속도에 주목했다. 퍼즐 마스터들은 모든 돈에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안전한 장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시장에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항상 속도가 빠른 일단의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안전한 장소를 만들 수 있을까? 모든 금융기관이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거래소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런 거래소에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만 배제시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유해한 대상은 초단타매매 그 자체가 아니라 초단타매매의 약탈적 행위였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을 없앨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속도와 복잡성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없애는 일이었다. 로버트 박은 그것을 이렇게 잘 표현했다.

"당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걸 안다고 칩시다. 그럼 당신은 특권을 지닌 위치에 있는 겁니다. 특권을 지닌 위치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얻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정보를 가장 늦게 얻는 사람도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건 그 정보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위뿐입니다." 

- 거래소에 더 가까이 위치함으로써 단축할 수 있는 마이크로세컨드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어째서 거래소 내부에 사람들이 필요 없어진 후에도 기이하게 거래소의 규모는 확장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수천 명의 인간 트레이더가 일하는 플로어로 상징되던 주식시장이 이제 블랙박스 한 개로 변해버렸으니, 거래소 건물의 크기는 줄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라. 월가와 브로드가가 만나는 모퉁이에 위치한 옛 뉴욕증권거래소 건물의 면적은 4.274제곱미터였다. 그러나 지금 뉴저지주 마와에 위치한 NYSE 데이터센터의 면적은 37,161제곱미터이다. 블랙박스 주변 공간의 가치가 매우 높아진 덕분에, NYSE는 그 공간을 팔 수 있도록 면적을 더 크게 확장하여 많은 공간을 확보했다. IEX는 장난감집 크기 정도의 공간이면 아주 잘 작동할 수 있었다. 

- 네브래스카주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에 고객의 매수주문 중 일부만 체결되었을 때, 다른 거래소에 있는 동일 가격의 매도물량을 찾아가는 경쟁에서 HFT가 별다른 시간의 우위를 얻지 못하도록 IEX에서 다른 거래소로 가는 시간만 지연시켜 주면 되었다(즉 '전자 선행매매'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또한 어떤 거래소에서 주가가 변했을 때 그 변경 내용을 반영하여 IEX의 호가를 바꾸는 데 필요한 충분할 만큼의 시간도 지연시켜주어야 했다. 이는 리치 게이츠가 월가 대형은행들의 다크풀 안에서 돈을 강탈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려고 검증을 해보았을 때 겪었던 일과 똑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즉, '느린 시장 차익거래'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결국 지연시켜주어야 할 시간은 320 마이크로세컨드로 밝혀졌다. 그것은 IEX가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거래소인 마와의 NYSE로 신호를 전송하는 경우 HFT의 전략을 무력화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연시켜야 할 시간을 350 마이크로세컨드로 정했다. 

- 또한 신설 증권거래소는 약탈자들이 노리는 먹잇감이 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트레이더였을 당시에 브래드는 그의 주문이 BATS에 가장 먼저 도착한 탓에 선행매매를 당했다. HFT 트레이더들은 BATS에서 브래드의 신호를 포착한 다음 다른 거래소로 그를 앞질러 갔다. IEX에서 전송된 주문이 정확히 동시에 모든 거래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로난은 뉴저지를 지나가는 광섬유케이블의 경로를 신중하게 선택했다. (따라서 로난은 토르가 소프트웨어로 이뤄낸 것을 하드웨어로 이루어낸 셈이었다.)

 

- 리치 게이츠가 월가의 다크풀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크풀이 다른 거래소의 호가변동을 반영하여 게이츠가 낸 주문의 호가를 충분히 빨리 재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크풀에서의 가격이 느리게 변했기 때문에 초단타매매 트레이더(혹은 그 다크풀을 만든 월가 은행 소속의 트레이더)가 불법적으로 다크풀 내부의 주문을 악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신설 거래소에서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IEX는 다른 어느 거래소보다 훨씬 더 빨라야 했다. 즉 EX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의 속도는 늦추는 동시에, IEX 자체의 속도는 올려야 했다. 다른 거래소의 호가를 '반영하기' 위해서 IEX는 SIP나 SIP를 약간 개선만 한 정도의 시스템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전체 주식시장을 HFT처럼 조망하는 IEX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로난은 위호켄에 위치한 IEX의 컴퓨터에서 다른 모든 거래소로 가는 경로를 찾기 위해 뉴저지를 샅샅이 뒤졌다. 가능한 수천 개의 경로가 있다고 나타났다.

"우리는 가장 빠른 지하 경로를 이용했고, HFT가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만들어 사용하는 광케이블만 사용했습니다. 100% 전부 다요."

 

- 고객의 속도를 350 마이크로세컨드 지연시키면 IEX 입장에서는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남들보다 먼저 출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IEX는 가장 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보다도 시장을 확실히 더 빠르게 보고 반응할 수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투자자의 주문이 다른 거래소에서의 가격변동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보나 마나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위호켄에 위치한 IEX의 매칭엔진에 최대한 가까이 자신들의 컴퓨터를 두려고 애쓸 테지만, 속도를 350 마이크로세컨드 지연시켜 주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다른 누구보다 더 빨리 EX로 주문을 넣는 행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 시간을 350 마이크로세컨드 지연시키려면 신설 거래소는 브로커의 접속거점에서 약 6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위호켄에 IEX의 매칭엔진을 두는 매우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맺고 나서, 그들은 또 다른 제안을 받았다. 뉴저지주 시코커스에 위치한 어떤 데이터센터에 접속거점을 설치하는 방안이었다. 그런데 두 데이터 센터 사이는 16킬로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으며, 이미 다른 증권거래소와 모든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로 붐비는 상태였다.

"사자 굴로 들어가는 거죠."

 

- 그때 광케이블을 둘둘 감아놓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HFT 회사에서 IEX로 막 합류한 신참직원인 제임스 케이프 James Cape에게서 나왔다. 두 데이터센터 사이의 광케이블을 직선으로 잇는 대신에, 가상의 거리 효과를 내기 위해 61킬로미터 길이의 광케이블을 둘둘 말아서 구두상자 크기의 상자에 고정시켜 놓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따라서 IEX와 접속거점 사이를 오고 가는 정보는 마법의 구두상자 안에서 수천 개의 원을 돌고 돌아서 가게 될 것이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보면, 뉴욕의 웨스트 바빌론까지 추방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들은 단 한 명의 트레이더나 투자자에게도 IEX 옆에 컴퓨터를 놓을 권리나 IEX에서 나오는 데이터에 특별히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팔지 않았다. 주문을 보내는 브로커나 은행에 리베이트를 주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어떤 거래이든 거래의 양측 모두에게 동일한 주당 0.09센트('9밀 mils'로 부르기도 한다)의 수수료를 부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가 주문, 지정가 주문, 그리고 중간고정가 주문 Mid-Point Peg, 이렇게 세 가지 주문 방식만 허용했다. 중간고정가 주문은 주식의 현재 매수매도호가 사이에서 투자자의 주문을 체결시키는 주문 방식이었다. 만약 P&G 주식이 시장에서 80-80.02에 호가되고 있다면(즉 80.02달러에 사거나 80달러에 팔 수 있다), 중간고정가 주문은 80.01달러에서만 거래된다.

"일종의 적정가 같은 거죠."

브래드가 말했다.

- 마지막으로 IEX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기와 투자자들의 동기를 최대한 가깝게 일치시키기 위하여 IEX를 부당하게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IEX에 대해 약간의 지분이라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IEX의 주주는 가장 먼저 브로커에게 주문을 넘겨야 하는 투자자들로만 이루어졌다.

- 신설 증권거래소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미국 주식시장, 나아가 전체 금융계의 속사정에 대한 많은 새로운 정보들이 드러나게 되리라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IEX는 IEX에서 거래하고자 하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을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환영했다. 만약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금융시장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해왔다면, 부당하게 취하는 이득이 없어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가치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 일단 신설 증권거래소가 영업을 개시하고 나면, 약탈적 행위가 불가능한 신설 거래소에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가 하는 역할만 보더라도 그동안 HFT의 행위 중에서 어느 정도가 유익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퍼즐 마스터들에게 남은 질문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약탈적 행위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자신들이 설계한 구조 안에 과연 모든 형태의 약탈 행위를 포함시켰는가 하는 것이었다. 뭔가 놓친 것은 아닌지 그들조차도 알 수 없었다. 
 

- 몇 초가 지난 뒤에야 조란은 자기가 한 일이 시장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자신이 시장 전체를 정지시켜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의 원인을 정확히 살펴보는 데 또 몇 초가 걸렸다. 그러고 나서 조란은 문제를 해결했으며 시장 거래는 다시 재개되었다. 그 위기상황이 발생해서 끝나기까지 22초가 걸렸다. 22초 동안 모든 거래가 중단되었다. “거기 앉아서 '난 끝났군.' 하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요." 조란이 말했다.

"CTO chief technology officer(최고기술경영자)가 절 살려줬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한 번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걸 제 손으로 고쳤잖아. 그런 놈을 어떻게 쫓아내?'"

- 그 사건은 그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까?'를 생각했죠. 저는 대규모의 복합시스템을 통제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정의되는 복합성, 저는 그 복합성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시스템에 어떻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조란이 말했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하여 가능한 모든 자료를 찾아 읽었다.

"사람들은 복잡함 complicated의 발전된 형태가 복합 complex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동차 키는 단순합니다. 자동차는 복잡하고요. 도로 위의 자동차가 바로 복합입니다."

- 주식시장은 복합시스템이었다. 조란의 표현대로라면, 복합시스템은 '문제가 생겨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을 의미하기도 했다. 복합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을 책임진 사람은 직업상 두 가지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즉 그의 통제범위 내에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과 그의 통제범위 밖에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었다. 조란은 계속해서 나스닥 거래소 중 한 곳을 관리했다. 마침내 나스닥은 조란에게 더 큰 거래소를 관리하는 일을 맡겼으며, 따라서 위험도 더 커졌다. 

- 어쨌든 조란은 나스닥의 최대 고객들(초단타매매 트레이더)이 나스닥에 요구하는 것들을 처리하는 동시에 나스닥 시장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그것은 마치 피트 크루 pit crew(경주용 자동차의 정비 요원-옮긴이)가 경주용 자동차를 분해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뜯어내는 등 자동차를 전보다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되, 동시에 운전자가 사망할 가능성도 줄여야 하는 그런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운전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에 대한 비난은 전적으로 그 피트 크루에게 쏟아질 것이었다. 바로 조란에게 말이다.


- 그런 상황 때문에 조란은 조심성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바꾸도록 요구한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시스템을 바꾸는 단순한 행위 때문에 그 시스템에 의존하는 모든 사람들의 위험이 증가했다. 트레이딩 시스템에 코드와 특정 기능을 추가하는 일은 마치 고속도로에 통행량을 늘리는 것과 같았다. 코드와 특정 기능을 추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했으며, 확실한 것은 상황이 이해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통제하려 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모르는 것은 늘어만 가죠." 


- 조란이 조직 내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본거래소 관리 책임자 중에서 조란이 최고라는 사실을 볼러맨은 알고 있었다.

"조란은 모든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요. 위기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 거대한 복합시스템을 이해하는 능력, 시스템에 대해 정확하게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 문제를 진단하고 예견하는 능력 등 그 모든 걸 갖춘 사람입니다."

- 그런데 볼러맨이 조란에게 전화했던 그 시기에,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명백해져 갔다. 2010년 5월 플래시 크래시가 발생한 이후 S&P 지수가 65%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량은 50% 줄어든 상태였다. 투자자의 매매 욕구가 시장가격을 따라 함께 증가하지 않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플래시 크래시 이전에는 미국 가정의 67%가 주식투자를 했지만, 2013년 말에 그 수치는 52%로 줄었다. 위기 이후 환상적인 강세장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었다. 

-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가 무너진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주식시장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감에 따라, 변동성 역시 눈에 띄게 커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주가뿐만 아니라 시장 자체가 예측 불가능해졌으며, 그러한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생겨난 불확실성은 미국 주식시장을 모방하여 만든 여러 해외 주식시장, 채권시장, 옵션시장, 통화시장 등으로 조만간 확장될 게 뻔했다.

- 전문가들은 아직도 도구처럼 대접받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사업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경영자의 요구대로 맞춰줘야 했고, 그러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건 늘 기술 전문가들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그렇게도 많은 사고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듯했다. (기술 전문가들이 왕 대접을 받는 초단타매매 회사들은 예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HFT 회사들에게는 고객이 없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나스닥의 엔지니어들은 월가의 극단적인 경우였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의 요구에 따라 거래소의 규칙을 바꾸라는 압력이 나스닥의 기술 전문가들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면서 일터는 비열하고 정치적인 곳으로 변해버렸다. 나스닥의 경영자들은 그런 모든 부당한 요구를 기술 전문가들에게 떠맡긴 다음, 그 부당한 요구로 인해 시스템에 장애가 생기기라도 하면 그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기술 전문가들은 학대받는 동물과 같은 처지에 놓여버렸다.

"그들을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뭔가 잘못될 때도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어느 한 사람의 책임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 "'...'라고 물으면, 30분쯤 지나 그들에게서 '하늘'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바꾸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우리나 그들 모두 우리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처음 브래드와 만나 그가 모든 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해 주었을 때, 전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죠."

또 다른 투자자는 브래드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힘든 길을 택한 이유가 뭘까요?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잘되면 돈을 벌겠지만, 그래도 RBC에 있을 때보단 못할 거예요."

- 브래드가 말했다. 8월 22일 나스닥에서 2시간 동안의 거래중단이 발생했는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원인은 SIP의 기술적 결함 때문이었다. 브래드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았다. 나스닥이 HFT의 거래 속도를 높여주기 위해 HFT가 사용하는 첨단 신기술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은 반면, 일반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시장 경로에는 거의 자원을 투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스닥은 HFT를 위해 그 최첨단 기능을 마련했습니다. HFT를 위해서 17킬로와트의 수냉식 캐비닛과 어디로든 교차 접속할 수 있는 장치 따위의 것들을 만들어준 반면, 전체 시장을 위해서는 SIP라는 단 하나의 관문만 만들어놓고 신경도 쓰지 않았죠. SIP의 관리도 2류 팀에 맡겨놓고 있었습니다."

 

- 브래드가 말했다. 4일 후에 일반 거래소인 BATS와 다이렉트 엣지가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정상적인 산업에서라면,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가 합병을 하는 목적은 통합하기 위해서, 즉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합병 계획 후에 나온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합병 이후에도 두 거래소 모두 사업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브래드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두 거래소 모두 초단타매매 회사들이 지분 일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HFT의 입장에서 보면 거래소가 많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 몇 주 후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는 HFT 회사들의 컴퓨터와 각거래소의 매칭 엔진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케이블을 더 큰 것으로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HFT 회사들이 기존의 작은 케이블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은 월 2만 5,000달러였던 반면, 새 케이블의 가격은 월 4만 달러로 올랐다. 증가한 속도는 2 마이크로세컨드였다. 케이블을 교체한 이유는 HFT가 전보다 2 마이크로세컨드 더 빠르게 정보를 얻으면 시장상황이 더 나아져서가 아니라, 경쟁자들보다 속도가 뒤처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의 불안을 이용해 먹는 방법을 거래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브래드는 생각했다.

- 기술적 사고 technology accident는 이제 주식시장을 규정하는 특징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그 어떤 사건도 우연히 발생하는 법은 없었다. 가장 이상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이유는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투자자들은 어떤 회사 주식을 주당 30.0001달러에 매수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의아했다. 왜?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붙어 있는 가격이라니, 그런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소수점 오른편에 숫자를 덧붙일 수 있는 주문 방식을 요구했고, 그 주문 방식을 이용해서 단번에 30.00달러에 매수주문을 낸 사람들보다 앞에 가서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런 주문 방식을 만든 이유에 대해선 거의 설명이 없었다. 그냥 바꾸어버렸다.

"그 정도로 투명하지 않은 산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늘 일깨워주어야만 합니다.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정작 투명성은 최대한 낮추길 원한다는 사실도 알려줘야 하고요."  

- 브래드가 신설 거래소에 구현한 모든 장치들은 시장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어 월가가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16명의 투자자들은 IEX의 기본적인 사업전략을 알고 있었다. 

- HFT 사람들은 최소한의 위험으로 시장에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100주 주문을 거래소에 미끼처럼 걸어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브래드가 본 것들은 HFT의 주문이 아닌 대형은행들의 주문이었다. 어느 날 장이 끝난 후에 브래드가 한 은행의 주문을 세어보았더니, 전체 주문의 87%가 그런 100주짜리 주문이었다. 이유가 뭘까?

- "저는 패턴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패턴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제 눈이 그걸 찾아내지 못하는 거예요."

브래드가 말했다.

- 조란처럼 조시의 경력도 2001년 9월 11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조시는 TV를 켜보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든 그런 순간이었죠."

몇 달 후 조시는 지역 공군 신병모집센터로 가서 입대하려고 했다. 1학년을 끝내고 오라는 대답을 들은 조시는 1학년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입대했다. 공군은 그를 카타르로 파견했고, 그곳의 대령 한 명이 조시가 프로그램 코드를 만드는 데 특별한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생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이다. 2년 후 조시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거기서 조시는 원거리에 배치된 모든 부대에 메시지를 보내는 시스템과 구글맵 Google maps 따위는 없던 당시에 구글맵과 같은 지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바그다드에서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조시는 전투가 벌어지는 모든 지역의 미군 부대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장성들이 의사결정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의 그림으로 만드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6미터짜리 벽걸이 지도에 전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어요. 그림을 보면 전반적인 전시동향, 로켓공격의 발원지, 그리고 로켓공격이 일어나는 패턴, 가령 미군기지 캠프 빅토리 Camp Victory에 대한 공격이 주로 오후 기도시간 이후에 일어난다는 등의 패턴을 한눈에 알 수 있죠. 그래서 공격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를 추정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한 공격과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 그 기술은 단순히 정보를 그림으로 변환하는 컴퓨터 코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모양과 색깔을 조합하여 의미 있는 심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적의 그림을 찾아내야 하는 일이었다.

"일단 모든 정보를 한데 모아 최적의 방법으로 그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패턴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귀 기울여 들었죠. 사람들이 '난 이걸 원해' 또는 '난 저걸 원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나서 그걸 합쳐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거든요."

조시가 말했다.

- "제가 아는 거라곤 조시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성들과 함께 일하며 트레일러에서 지냈다는 것뿐이었어요. 제가 조시에게 데이터의 패턴을 알아낼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자, 조시는 그냥 '리프레시 버튼을 누르세요.'라고만 말하더군요."

브래드가 말했다.

- 조용히 사라졌던 조시는 브래드를 위해 IEX에서의 거래현황을 그림으로 구현해 냈다. 브래드가 리프레시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정리되었다. 그 기이한 100주짜리 주문들이 갑자기 한데 모여 유용한 방식으로 눈에 띄게 표시되었다. 이제 브래드는 패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패턴 속에서 그 자신이나 투자자 어느 누구도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약탈적 행위를 볼 수 있었다. 

- 그 새로운 그림들을 보자 브래드는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주문을 어떤 식으로 다루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당신이 뮤추얼펀드나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이며, P&G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당신은 당신에게 돈의 관리를 맡긴 수많은 보통 미국인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제 당신은 어떤 브로커, 가령 BOA에 전화를 걸어 P&G 주식 10만 주를 매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P&G 주식이 82.95-82.97에 거래되고 있으며, 매수·매도물량이 각각 1,000주씩 있고, 당신은 그 월가 대형은행의 브로커에게 주당 82.97달러까지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 순간부터 기본적으로 당신은 당신의 주문, 그리고 그 주문에 담긴 정보가 어떤 식으로 처리될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제 브래드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브로커가 한 일은 IEX에 100주짜리 시험 주문을 걸어놓고 나서 EX에 매도자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투자자인 당신은 매도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대량으로 매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브로커들이 매도자를 찾고 나서 하는 일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브로커들은 매도자를 외면했다.

- 예를 들어 IEX에 실제로 주당 82.96달러에 10만 주를 매도하려고 하는 매도자가 있다고 하자. 이때 대형은행들은 얼른 뛰어들어 P&G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려고 하는 대신에, 그냥 IEX에 100주짜리 주문을 걸어놓는 일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만약 은행이 주당 82.97달러에 P&G 주식 10만 주를 매수하는 주문을 단순히 IEX로 보냈다면, 투자자는 가격을 밀어 올리는 일도 없이 자신이 사고 싶었던 수량을 모두 매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은행은 100주짜리 시험 주문만 놓고 사라짐으로써 매수 수요가 있음을 떠들썩하고 눈에 띄게 드러내어 P&G의 주가가 상승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결국 그 은행이 대변했어야 마땅한 투자자의 손해로 이어졌다. 게다가 그런 경우 은행은 대개 고객이 매수하기 원하는 수량의 일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행위가 가능해졌으며,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정말로 화가 나더군요."

브래드가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마치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IEX에 대량 매도자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이유가 그 매도자와의 거래를 피하기 위해서인 듯이 보였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HFT가 여러분의 신호를 포착할 기회를 다름 아닌 여러분들이 늘려준 꼴만 되는 셈입니다."

- 물론 모든 은행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몇몇 대형은행의 경우, 대량 매수주문을 위한 떡밥으로 100주 주문을 던져놓고 관찰하다가 고객이 요청한 거래를 수행했다. (RBC는 단연코 품행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IEX에 접속했던 대부분의 월가 대형은행들(첫 주에 거래했던 은행들 중에 BOA와 골드만 삭스는 없었다)은 비양심적으로 행동했다. 그것은 마치 그 은행들이 겉으로는 전체 주식시장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듯이 비춰지길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다크풀 밖에서는 어떠한 거래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 브래드는 은행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그 행동의 피해자인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은행들이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주문을 가능한 한 다크풀 안에서 처리하려는 의도는 너무나 분명했다. 은행이 다크풀 밖에서 P&G 주식을 찾으려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수록, 주식을 찾을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결국 그런 교활한 태도 때문에 은행들은 다크풀 안에서 거래 상대방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의 총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안 되는 어떤 은행이 고객 주문의 반 이상을 자신의 다크풀 안에서 처리해 냈으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주식시장 총거래량의 38%가 어찌 됐든 은행들의 다크풀 안에서 거래되고 있었으며, 그것이 그들이 고객들의 주문을 처리해 왔던 방식이었다.

"시장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허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그들의 다크풀 안에서 거래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단지 다크풀 안의 주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HFT에게 팔아 수수료 이외에 더 많은 돈을 챙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외관상으로도 다크풀의 거래량이 많아 보이길 원했으며, 그래서 되도록이면 주문이 다크풀 안에서 거래되기를 원했다. 일반 증권거래소의 성과를 측정할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다크풀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통계에는 좀 부조리한 면이 있었다. 거래소나 다크풀은 거기서 발생하는 거래량, 그리고 그 거래량의 성격에 의해 평가되었다.

 

-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균 거래규모가 클수록 투자자에게 더 좋은 거래소라고 생각했다. (투자자가 의도했던 매수나 매도를 더 적은 수의 거래를 통해 처리함으로써, 평균 거래규모가 큰 거래소는 투자자의 의도가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을 줄였다.) 모든 다크풀과 증권거래소들은 통계치를 실제보다 돋보이게 꾸며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데이터 포장 기술을 정교하게 훈련받은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큰 규모의 거래를 주관하는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래소들은 자신들이 1만 주 이상의 '블록' 거래를 몇 건이나 진행했는지를 발표했다. IEX가 어떤 주문을 NYSE로 보낸 적이 있었는데, NYSE는 그 주문을 26개의 소규모 거래로 나누어 완료하고 나서 그 기록을 다시 IEX로 보낸 다음, 시세표에는 그 거래의 결과를 1만 5,000짜리 하나의 블록거래로 공표했다.  

- 하지만 이제 IEX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월가의 은행들이 갖은 수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IEX의 평균 거래규모는 일반 거래소와 다크풀을 통틀어 단연코 가장 컸다. 더 중요한 것은 주식시장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과는 무관하게 거래가 좀 더 무작위로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다른 거래소에서 어떤 주식의 가격이 변하고 난 후에 IEX에서 뒤따라서 거래가 일어나는 비율은 IEX가 다른 거래소들에 비해 절반에 불과했다. (다른 거래소에서 주식의 호가가 변했을 때 그에 상응하여 빠르게 호가를 바꾸지 못하는 거래소에서는,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의 펀드매니저 리치 게이츠가 당했던 것처럼 투자자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 또한 IEX에서는 매수·매도호가 사이의 중간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확률이 다른 데보다 4배 높았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월가의 대형은행들이 IEX로 주문을 보내기를 꺼려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다크풀과 일반 거래소들에 비해 이미 IEX가 더 좋게 보였으며 심지어 월가 은행들이 세운 그 문제 많은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랬다.

- 전략가로서 브래드의 가장 큰 약점은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브래드는 대형은행들이 단순히 IEX로 주문을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고객들을 도우려고 만든 거래소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기 위해서 설마 자기 고객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고객들의 주식시장 주문을 악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러분들은 옳은 행동이 보상을 받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시스템은 정반대로 움직여왔지요. 브로커가 그런 사악한 행동을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가장 기이한 방식으로 나쁜 행동을 했다. 어느 날 조시 블랙번이 만든 그림을 보던 브래드는 어떤 은행이 IEX에 기관총 갈기듯 100주짜리 주문을 뿌리는 탓에 232밀리세컨드 만에 주가가 5센트 상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당히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처리할 수 있는 대량주문을 받은 브로커가 그 주문을 잘게 쪼개서 살포하겠다고 마음먹으면, IEX가 3분의 1밀리세컨드를 지연시키더라도 투자자의 주식시장 주문을 숨기는 데 별 효용이 없었다. 즉 HFT가 그 신호를 포착하여 선행매매를 할 수 있었다. 브로커가 매수주문 정보를 다른 곳에도 퍼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하면서, 브래드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모든 거래를 보여주는 거래정보 통합공시시스템 consolidated tape을 주의해서 보았다.

"궁금하더군요. 그 브로커가 월가 전체에 주문을 뿌려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한테만 그러는 것인지.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 브래드는 IEX에서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거의 동시에 다른 거래소에서 거의 동일한 거래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래규모가 특이한 경우들을 주목해서 살펴보았습니다."

 

- 그런 일은 반복해서 일어났다. 또한 브래드는 각각의 경우 거래의 한쪽에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에게 접속망을 임대해 준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그때까지 드러난 약탈적 행위의 대부분은 주가가 움직일 때 발생했다. 즉 주가가 오르거나 내리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그 정보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내어 거기서 이익을 취했다. 한편 전체 주식시장 거래의 약 3분의 2는 주가의 움직임 없이 이루어졌다. 매도자의 매도호가나 매수자의 매수호가 혹은 그 사이에서 거래되었으며, 거래 후에도 매수·매도호가는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이제 브래드는 HFT가 은행의 도움을 받아 주가가 안정적인 경우에도 투자자들을 어떻게 부당하게 속이는지 알게 되었다.

 

- 가령 P&G 주식이 80.50-80.52에서 거래되고 호가는 안정적이어서 가격이 금방 변하지는 않을 거라고 가정하자. 즉 최우선 매수가 National Best Bid는 80.50달러이고, 최우선 매도가 National Best Offer는 80.52달러이며, 주가는 안정적인 상태이다. 그리고 P&G 주식 1만 주를 매도하려는 투자자가 IEX에 나타났다고 하자. IEX는 그 주문을 중간가격(적정가격)에서 체결시키려 하고, 따라서 1만 주 주문을 80.51달러의 매도호가에 내놓는다. 그때 어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늘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문제다)가 IEX로 와서는 1만 주 매도물량에 대해서 80.51달러에 131주, 189주, 하는 식으로 조금씩 나눠서 매수해 간다. 그런 다음 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는 다른 시장으로 가서 80.52달러에 다시 131주, 189주씩 매도한다. 겉보기에 HFT는 매수자와 매도자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유익한 기능을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다리에 불과하다. 매수주문을 받은 브로커는 왜 단순히 EX로 와서 자신의 고객을 위해 좀 더 싼 가격에 매도물량으로 나온 주식을 매수하지 않았을까?

- 리치 게이츠의 실험으로 돌아가서, 게이츠는 월가의 다크풀 안에서 돈을 도둑맞았지만 그런 일은 그가 다른 거래소의 호가를 바꾸고 난 이후에만 발생했다. (왜냐하면 다크풀이 너무나 느린 탓에 다크풀 안에서 그가 주문을 낸 주식의 호가가 미처 바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브래드가 새롭게 알게 된 이 거래들은 주가 움직임이 전혀 없이 발생했다.

 

- 브래드는 그런 거래가 일어난 이유를 정확히 이해했다. 월가의 은행들이 고객의 주문을 나머지 다른 거래소들로 보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떤 투자자가 한 월가 은행에 P&G 주식 1만 주 매수주문을 냈다고 하자. 은행은 그 주문을 자신의 다크풀로 보내면서, 공격적인 가격인 80.52달러의 매수주문으로 그 다크풀에 놔두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하면 은행은 다크풀의 통계수치를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거래소에 수수료를 내는 대신에 오히려 HFT에게서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크풀 이외의 나머지 시장상황은 무시해버리게 된다.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이라면, 투자자들은 단순히 중간가격인 80.51달러에서 서로 만나 거래할 수 있으며, 주가는 1센트도 움직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HFT는 기형적인 주식시장이 만들어낸 불필요한 주가 움직임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주가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가장 먼저 감지했기 때문에, 그들은 주가의 변동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투자자들을 여러 전략으로 부당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애초에 월가 대형은행들이 잘못 그려 넣은 음표(자신들의 다크풀 밖에서 거래를 하지 않으려는 행동)가 스캘핑이라는 교향곡의 서곡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것을 '다크풀 차익거래 dark pool arbitrage'라고 부릅니다." 

 

- IEX는 약탈적인 트레이딩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즉 투자자들이 먹잇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래소를 만들었다. 개장 후 첫 두 달 동안 IEX는 다크풀 차익거래를 제외하고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의 어떠한 활동도 보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매우 적극적으로 금융 중개업자를 보호해 주었으며, 심지어 중개업자가 전혀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그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신기하게도 은행들은 정직을 희생하고서라도 금융 중개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 브래드는 지금 막 벌어졌던 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매수주문을 넣으면서 '당신들이 옳아요'라고 말해주길 원했죠. 지금 저건 골드만 삭스가 우리를 지지한다는 표시입니다."

브래드는 좀 더 생각에 잠겼다. 골드만 삭스는 단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며, 거기엔 언제나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두 사람에게 새로운 권한이 생기면서, 그들은 골드만이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장기적이고 특별한 행동을 하는 데 그 권한을 사용했다. 그 두 사람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모건과 레빈이 있다는 건 제게 행운이었어요. 이 모든 일이 그들 때문에 가능했으니까요. 이제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을 모른 체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시해 버릴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브래드는 눈을 깜빡였다.

"이제 울어도 될 것 같네요."


- 3주 후 브래드는 일단의 투자자들 앞에 섰다. 함께 행동한다면 월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만한 투자자들이었다.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브래드는 12월 19일 3시 9분부터 이후 51분 동안에 벌어졌던 일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큰 화면에 띄웠다. 그 데이터는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의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골드만은 사실 그 전날 12월 18일에 IEX로 더 많은 주문을 보냈었다. 그런데 12월 19일 훨씬 더 많은 거래가 이루어졌던 이유는 그날 51분 동안 각각의 주문을 IEX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골드만이 IEX에 10초 정도 시간을 주고 완전히 믿고 맡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신뢰에는 공정한 시장이라는 보상이 뒤따랐다. 골드만이 맡긴 주문의 92%가 중간가격(적정가격)에서 거래되었다. 월가의 다크풀에서 중간가격으로 거래되는 비율이 17%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일반 거래소의 비율은 훨씬 낮았다.) IEX의 평판을 약화시키려는 월가 대형은행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골드만 주문의 평균 거래규모는 시장 평균의 두 배였다. 

- IEX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IEX는 누군가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시장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제대로만 기능한다면 자유로운 금융시장은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조작될 필요가 없었다. 리베이트와 주문 양도의 대가, 코로케이션, 그리고 소수의 트레이더들에게만 쥐어지는 모든 종류의 불공정한 특혜 등 그 모든 역겨운 방식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투자자들이 시장을 이해하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 일이었다.

"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서로 협력하며 거래하는 투자자들입니다."  


- 브래드가 말을 마쳤을 때, 한 투자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12월 19일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그 후에는 어땠나요?"


 



-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의 재판은 2010년 12월 열흘간 열렸으며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초단타매매의 세계는 한 다리 건너면 알만큼 좁았으며, 듣자 하니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나 초단타매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개인자산을 불리는 데만 바쁠 뿐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 ... 만든 시스템에는 골드만의 코드가 전혀 쓸모없다고 증언했다. 골드만의 코드는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되어 있으며 느리고 투박할 뿐만 아니라 고객들과 거래하는 회사에 맞게 만들어져 있는 데 반해, 말리셰프의 회사인 테자 테크놀로지스는 고객이 없는 회사라는 등의 말을 했다. 하지만 그가 배심원들을 훑어보았을 때, 그들 중 반은 졸고 있는 듯했다.

"제가 만약 배심원인데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면, 제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울 겁니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 재판에서 골드만 삭스는 배심원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더 어렵게 만들 뿐이었다. 증인석에 선 골드만의 직원들은 미국의 시민이라기보다는 검찰 측의 영업 담당자인 듯 행동했다.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 전문분야도 아닌 걸 증언했죠."

세르게이가 말했다. 세르게이의 예전 상사였던 애덤 슐레진저는 코드에 대한 질문을 받자, 골드만 삭스에 있는 모든 것은 골드만의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걸 말하거나, 잘못 알고 있더라고요."  


- 미국의 사법제도는 중요한 진실을 밝혀내기엔 빈약한 수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법정은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에게 그가 무슨 일을 했으며 왜 했는지를 설명하도록 하고, 그 설명을 배심원들에게 이해시킨 다음 재판에 들어갔어야 옳았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는 세르게이에게 입장을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FBI는 컴퓨터나 초단타매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틀 밤에 걸쳐 월가 식당의 한 조용한 개별 룸에서 또 하나의 재판을 소집했다. 골드만삭스, 초단타매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상세하게 잘 아는 여섯 명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배심원이자 검사로서 의견을 내도록 요청했다. 모두 난해하기 짝이 없는 요즘 주식시장에 대한 권위자들이었다. 초단타매매 코드를 만든 사람들도 있었으며, 한 사람은 실제로 골드만의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었다. 모두 남자였다. 그들 모두 월가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해 이름은 익명으로 했다. 그들 중에는 IEX의 직원들도 있었다.

- 당연하겠지만, 그들은 전부 골드만 삭스와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 모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세르게이가 8년형을 선고받았다면 뭔가 잘못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게 무엇인지 애써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들 모두는 재판상황을 신문을 통해 지켜보았으며, 그 재판 때문에 월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세르게이가 그 일로 감옥에 가기 전까지는, 월가의 프로그래머들이 새 직장으로 옮길 때 자기가 작업했던 코드를 가져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곳에 모인 세르게이의 새 배심원단 중 한 명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져간 죄로 징역형을 받은 사내'라는 표현을 썼다.

"월가의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코드를 가져가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죠. 그건 엄청난 거예요."

 

- 또한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가 체포되면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초단타매매'라는 용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 월가의 대형은행에서 일한 적이 있는 또 다른 새 배심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체포되었을 때, 우리는 모든 전자 트레이딩 직원들과 함께 모여서 '초단타매매'라는 새로운 화제로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필요한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 초안을 가지고 회의를 했었습니다."

- 월가의 오래된 식당 중 하나인 그 식당은 별도의 방을 사용하려면 1,000달러어치 이상은 주문을 해야 하는 탓에 본전을 뽑으려면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커다란 접시에 담긴 바닷가재와 게, 데스크탑 컴퓨터 화면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 산더미같이 쌓여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감자와 시금치 요리 등 엄청난 양의 음식과 음료가 나왔다. 10여 년 전 낮에는 자신의 직감을 따라 일하고 저녁시간에 그 대가를 보상받았던 트레이드들에게 요리되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엄청난 진수성찬은 직감이 아닌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계를 다루는, 하나같이 홀쭉하게 마른 기술 전문가들 앞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적진을 정복하러 가던 중 적군의 아내들을 비롯해 한 무리의 여성들과 마주치게 된 환관 부대처럼, 산더미 같은 음식을 무심히 쳐다보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특히 세르게이는 너무 조금 먹는 데다 음식에 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의자를 들어 올리면 천장까지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 세르게이의 새 배심원들은 흥미롭게도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들은 세르게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 세르게이의 구직경력에 흥미를 보였으며, 세르게이의 행동이 돈보다는 일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컴퓨터광의 행동과 상당히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세르게이가 똑똑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매우 빨리 알아냈다.

"이쪽 사람들은 대개 특정 분야에서만 똑똑하죠. 그런데 어떤 기술 전문가가 많은 분야에서 뛰어나다면, 그건 정말로 특이한 경우입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나중에 내게 말했다.

- 그다음 그들은 골드만 삭스 시절 세르게이의 경력을 캐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르게이가 골드만에서 '슈퍼 유저 super-user'의 지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 말은 세르게이가 관리자로서 시스템에 로그인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3만 5,000명의 직원 중에서 35명) 중 한 명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별한 접근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세르게이는 언제라도 저렴한 USB 플래시 드라이브를 사서 그의 터미널에 꽂아 아무도 모르게 골드만의 컴퓨터 코드를 전부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었다. 누군가 세르게이에게 직접적으로 지적했듯이 엉성하고 조심성 없는 도둑들도 많다. 세르게이가 엉성하고 조심성이 없으니 도둑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반대로, 세르게이가 코드를 가져간 방식을 보면 사악한 건 고사하고 조금의 의심스러운 면도 없다는 데에 그들 모두 동의했다. 코드를 저장하기 위해 서브버전 저장소를 이용하고 명령어 흔적을 지우는 행위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암호를 입력하는 경우에 명령어를 지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요컨대 세르게이는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새 배심원 중 한 명이 그 명백한 사실을 언급했다.

"명령어를 지우는 게 그렇게도 영악하고 교활한 행위였다면, 그가 코드를 가져갔다는 걸 과연 골드만이 알아낼 수나 있었겠어요?"

- 세르게이가 원했던 것은 오픈소스 코드뿐이었지만, 오픈소스인 코드와 아닌 코드가 뒤섞여 있는 여러 파일을 한꺼번에 챙기는 것이 세르게이로서는 오픈소스 코드를 가져갈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오픈소스 코드는 인터넷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세르게이가 자신이 원하는 오픈소스 코드를 구하러 인터넷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면 그건 과히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오픈소스 코드가 나중에 다른 용도에 맞게 바꿔 쓸 수 있는 일반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르게이가 오픈소스 코드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해 보였다. 골드만 전용 코드는 골드만의 플랫폼만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기 때문에, 세르게이가 새로 만들고자 하는 시스템에는 별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세르게이가 테자의 컴퓨터로 보낸 두 개의 코드에는 모두 오픈소스 사용권이 붙어 있었다.)

"세르게이가 골드만의 플랫폼을 몽땅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새 플랫폼을 처음부터 만드는 게 더 빠르고 좋은 방법이었을 겁니다." 


- 세르게이가 질문에 답할 때마다 배심원들은 여러 번 놀라곤 했다. 예를 들어 세르게이가 골드만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그가 골드만의 소스 코드를 매주 자신의 계정으로 보내곤 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제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배심원들은 모두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시타델에서는 만약 당신이 컴퓨터에 USB 드라이브를 꽂기라도 하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 당신 옆으로 달려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냐고 물을 겁니다."

시타델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 배심원이 말했다. 전체 플랫폼의 크기에 비해 세르게이가 가져간 양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알게 된 배심원들은 또 한 번 놀라워했다. 플랫폼이 거의 1,500메가바이트의 코드로 이루어져 있는 데 반해, 그가 가져간 코드는 8메가바이트에 불과했다. 그리고 배심원들 중 가장 냉소적인 사람들조차 세르게이가 가져가지 않은 것에 대해 알고는 대부분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전략을 가져갔나요?" 한 사람이 골드만의 초단타매매 전략을 뜻하며 물었다.
"아니요."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그것은 검찰 측의 기소혐의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기밀사항이잖아요. 뭔가 가져가려고 했다면, 전략을 가져갔어야죠." 배심원이 물었다.
"전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보석도 안 들어 있는 보석함을 훔친 꼴인데요." 다른 배심원이 말했다.
"당신은 슈퍼유저의 지위에 있었어요! 쉽게 그 전략을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안 그랬죠?" 처음 질문했던 배심원이 물었다.
"제가 진짜 관심 있는 건 기술이지 전략이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는지 관심 없었다고요?"

"전혀요. 이러든 저러든 그건 모두 도박일 뿐이에요."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 그들은 전에도 그런 부류의 프로그래머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세르게이가 골드만의 트레이딩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나 골드만이 세르게이가 트레이딩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사실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 부류의 프로그래머에게 트레이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마치 지하실에서 일하는 주택배관공에게 위층에서 마피아 두목이 벌이고 있는 카드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사업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습니다."

이틀간의 저녁식사에 모두 참석했던 한 배심원이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세르게이였다 해도 거의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세르게이는 돈을 버는 전략에 대해 골드만이 알려주는 만큼만 알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그리 오래 근무하지 않았어요. 세르게이는 전후사정도 모른 채 그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 또 다른 누군가가 말하기를, 월가 대형은행들은 프로그래머들을 사업의 동반자로 여기기보다는 그들의 기술만 이용함으로써 프로그래머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려고 하는데, 골드만 삭스가 그런 대형은행의 전형이며 세르게이가 바로 그런 희생양의 전형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두 사람의 이력서를 보고 우열을 가려보니 둘 사이에 10%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 한 명은 30만 달러를 받고 다른 한 사람은 150만 달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한 사람은 큰 그림을 보아온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세르게이는 큰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드만이 세르게이를 고용한 이유를 세르게이 본인은 잘 몰랐지만 배심원들은 분명히 알았다. 2007년 Reg NMS의 도입과 함께, 어떤 금융 중개기관이 가진 트레이딩 시스템의 속도, 즉 중개기관이 시장 데이터를 받고 그 데이터에 반응하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되었다.

"세르게이가 알든 모르든, 그는 골드만이 시장을 빨리 볼 수 있는 눈을 만들기 위해 고용되었습니다. Reg NMS가 없었다면 세르게이가 금융시장에 있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 세르게이가 가져간 코드가 그에게나 골드만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주장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 가치는 미미하거나 간접적일 뿐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가 어떤 다른 시스템에 사용하려고 코드를 훔쳐간 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 힘없는 직원 한 명을 벌주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언제나 거미는 파리를 잡아먹어야 할까?
금융계 내부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사고였다거나, 골드만이 성급하게 FBI를 부르고 난 다음에서야 진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시작된 소송절차를 수습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또는 2009년 골드만이 초단타매매가 많은 수익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초단타매매 관련 인력의 손실을 예민하게 경계하던 중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배심원들 역시 모두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 그중 한 의견이 다른 의견들에 비해 상당히 흥미로웠다. 월가 대형은행의 속성, 그리고 기술과 트레이딩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은행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성공을 좇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한 배심원이 이렇게 설명했다.

"월가 기술부문의 책임자들은 외부 사람들이 자기 팀원들을 천재라고 믿기 바랍니다. 러시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업계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그 사람의 페르소나는 그와 그의 팀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모방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의 팀이 작업한 코드 중 95%가 오픈소스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한다는 인식은 끝장이 나버립니다. 세르게이가 뭔가를 가져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세르게이가 우리한테서 가져간 코드가 그가 새로 만들려는 코드보다는 안 좋은 것이니 무얼 가져갔든 상관없다'라는 말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비 인력이 그에게 세르게이가 다운로드해 간 파일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했을 때,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뭘 가져갔는지 모른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고요."

-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의 업계 동료들이기도 한 배심원단이 더 풀기 어려웠던 수수께끼는 바로 세르게이 그에 대한 것이었다. 세르게이는 그런 상황에서 완전히 평화로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평온한 듯했다. 한 번은 테이블의 누군가가 컴퓨터 코드에 대한 대화를 하다 말고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화 안 나요?"
세르게이는 그냥 그에게 미소만 지어 보였고, 그 사람은 재차 물었다.

"아니요,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죠? 난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세르게이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화낸다고 해서 얻는 게 뭐죠? 사람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얻는 게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인생이 예기치 못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결백하다는 걸 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하지만 어쨌든 곤경에 처한 것도 사실이고 그게 지금 저의 현실인 거죠."

이렇게 말하고 세르게이는 덧붙여 말했다.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으니까요."

 

- 세르게이의 마지막 재판에서 진짜 배심원단이 유죄판결을 내렸을 때, 그는 자신의 변호인인 케빈 마리노 Kevin Marino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 우리가 바랐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네요. 하지만 꽤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세르게이는 자신의 일에 대해 마치 제3의 관찰자라도 된 듯이 말했다.

"그런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마리노가 말했다.

- 풍요가 넘치는 월가의 안락한 품에 안겨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옥 같은 경험이 사실은 좋은 경험이었다는 세르게이의 말은 너무나 기이해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식당의 배심원들은 서둘러 컴퓨터 코드와 초단타매매라는 주제로 돌아갔다. 그러나 세르게이는 정말로 진심에서 한 말이었다. 그가 체포되기 전에, 즉 그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세르게이는 자기밖에 모르며 자신이 얻은 지위를 잃어버릴까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체포되었을 때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평판을 망쳤다는 생각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소만 남았어요. 더 이상 겁에 질려 떨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휩싸이지도 않고요."

 

- 세르게이가 처음 4달 동안 수감되었던 구치소는 난폭하고 기본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는 말썽을 피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세르게이는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이야기를 즐기기까지 했다. 뉴저지주 포트 딕스에 위치한 개방형 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도, 여전히 세르게이는 수백 명과 한방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곳엔 개인적인 일을 할 공간이 있었다. 일생을 칸막이 쳐진 사무실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며 보낸 덕분에 그는 교도소 환경에서도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세르게이가 교도소에 들어간 지 몇 달 지났을 때, 마샤 레더는 그에게서 두꺼운 봉투 하나를 받았다. 그 봉투 속에는 세르게이가 꼼꼼하게 작성하여 앞뒤에 표지를 덧댄 약 100페이지 정도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초단타매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컴퓨터 코드였다. 세르게이는 만약에 교도관이 그 서류를 보게 되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 그냥 의심스럽다고 단정해버리고는 압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 조앤 리 Joanne Li는 세르게이가 도주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장 재수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르게이가 지난 첫 번째 사건에서 체포되고 투옥되기까지의 기간 사이에 러시아를 오고 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주장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앤은 그 사건의 담당을 그만두고 시티 그룹으로 달아났다.)

- '비밀 소스 secret sauce'라는 용어가 마리노에게 낯이 익었다. 그 용어는 '금융계'에서 원래 쓰던 말이 아니라, 지난 세르게이의 첫 번째 재판 때 골드만의 코드를 마치 무슨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는 검사를 조롱하려고 마리노가 모두 冒頭 진술에서 언급했던 용어였다. 세르게이를 다시 체포한 이유를 마리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맨해튼 지방검사는 예전의 사건으로부터 세르게이를 기소할 다른 범죄혐의를 찾아냈다. 하지만 새로운 범죄행위에 대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설사 세르게이가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그가 재수감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혐의 없음을 판결한 사건으로 이미 옥고를 치렀기 때문이다. 마리노는 밴스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제게 세르게이가 벌을 더 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다만 세르게이가 유죄를 인정하길 원할 뿐이며, 그러면 이미 형기를 채웠으니 풀려날 거라고요. 저는 그 사람들에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엿 먹으라고 말해줬죠. 그놈들이 세르게이의 인생을 망쳤어요."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세르게이의 인생을 망치지 못했다.

"저는 저의 내면에 어떠한 두려움이나 공포, 부정적인 생각도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체포되던 날 밤에 대해 세르게이는 그렇게 말했다. 세르게이의 아이들은 그와 다시 친밀해졌고, 세르게이는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르게이는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기 위해 자서전도 쓰기 시작했다.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감옥에 갇혀도 영혼이 상처받지 않는다면 변화가 찾아오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자아나 야망이 삶을 지배하지 않으며 언제라도 삶이 끝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뭐가 있을까? 거리에 삶이 있듯 감옥에도 삶이 있음을 배운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체제의 위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온다. 법을 위반한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다른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우연히 지목된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감옥생활에는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물질적인 소유에 초연해지며, 따스한 햇살이나 아침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삶의 단순한 기쁨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오래돼 보이는 송신탑 주변을 걸었다. 그 옛날 어떤 다른 목적으로 세워졌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달려 있는 발전기나,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만이 아실 콘크리트 벙커 등과 같은 부수적인 장비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새것이었다. 금융정보를 담은 신호를 증폭시키는 드럼처럼 생긴 리피터 repeater(감쇠된 전송신호를 재생하여 다시 전달하는 재생중계장치-옮긴이)는 송전탑 옆에 볼트로 접합되어 있었다. 리피터도 역시 새것이었다. 그 옛날 자연계의 힘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리피터들이 신호를 전송하고 송신탑 사슬의 양극단에 있는 컴퓨터가 그 신호를 금융시장의 움직임으로 전환하는 속도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의심 없이 믿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모든 걸 결정하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야 할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니까?

- 그곳을 떠나기 전, 나는 송신탑 주변의 울타리에 붙어 있는 금속판을 보았다. 거기엔 미국연방통신위원회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의 허가번호 1215095가 쓰여 있었다. 호기심 많은 사내에게는 송신탑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번호를 인터넷에서 뒤져보았다. 극초단파 신호를 보내는 목적으로 그 송신탑을 사용하겠다는 신청서가 2012년 7월 제출되었고, 그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 자, 이제는 뭐든 숨길 수 없는 세상이다. 그 송신탑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루만 인터넷을 탐색해 보면 믿기 힘들지만 사실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월가 이야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위선과 비밀, 끊임없는 탐색의 이야기 말이다. 송신탑에 대한 진실을 알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알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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