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 / 김주영
출판 : 씨네21북스
출간 : 2010.08.06
멍하게 물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노이즈캔슬링 되는 이어폰을 끼고 현악 다중주를 들으며 수조를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은 고요함과 안도감이 밀려온다.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일본의 돌고래 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경우에는 멀리서 바라볼 때는 비극이지만 가까이에서는 희극인 상황이 아닐까. 가장 가까이에서 실제로 돌고래와 생활하고 있는 사육사의 입장에서는 야생화 훈련을 거치더라도 한 번 인간의 손을 탄 돌고래들이 다시 잘 적응할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란 생각이 들 테고, 그들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을 것이다. 표현 방식이 다르더라도 돌고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양한 의견들의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 곧 실제 동물이 아닌 홀로그램으로 전시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전에 한 종의 생태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를 먼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의 미궁>은 3년 전 일어난 한 직원의 과로사 사건으로 시작한다. 수족관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열심히 일했던 가타야마의 죽음.
이후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직원들 전체가 의기투합해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수족관을 재단장해나간다. 당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타야마 혼자 준비하던 일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그렇게 3년. 다시 찾아온 가타야마의 기일. 그들이 무엇보다도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수족관의 전시수조에서 잇달아 이상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수조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상황.
말 못 하는 생물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누구?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
결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후카자와와 수족관 직원들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타야마의 거대한 유지(遺旨).
표면의 격랑에도 고요한 심해.
아래에서 치열하세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다툼에도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수면.
'물의 미궁'은 모든 것을 묻어 감춘 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폐유조선을 활용한 세계 최고의 수족관이라.
바다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발상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수압으로 인한 위험과 폐유 제거 같은 현실적인 부분만 잘 해결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
한때 다른 빛깔을 띠었던 인간관계들의 흐름도 좋았고.
후카자와의 캐릭터도 좋았다.
<해수의 아이>가 다시 보고 싶다.
끝.
- 가타야마 마사미치는 바쁜 걸음을 옮겼다.
심야 수족관은 최소한의 조명만 켜놓는다. 개관 중에도 실내는 비상등만 발밑을 비출 뿐 전반적으로 어둑하다. 게다가 서른여덟 개의 수조가 질서 정연하게 놓인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신참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곤 한다. 하지만 사육계장인 가타야마의 몸은 수족관 구조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머리가 무거워도 다리는 정확하게 가고자 하는 수조로 향했다.
- 여긴 수조로 만든 미로나 다름없어.
수조 사이를 통과하며 가타야마는 새삼 생각했다. 예전에 기획담당인 고타니 준과 여름방학 동안 야간에 담력테스트용으로 빌려주면 수입이 짭짤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게 떠올랐다. 그때는 농담으로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태다.
- 가타야마가 가는 곳은 맹그로브 mangrovel 숲 코너다. 사육계장실 모니터에 수온이상을 알리는 경고가 떴다. 문제의 수조에서는 '이리오모테섬' 기수역에서 서식하는 동갈돔을 전시하고 있다. 관동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생물이다. 맹그로브 숲 수조는 수온을 섭씨 24도로 맞춰놓는다. 보통 수온은 23도에서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수조를 감시하는 관리 시스템은 현재 수온이 13도라고 알리고 있었다.
가타야마와 같은 어류담당으로 시스템에 정통한 오시마 가즈오가 최근 수온관리 시스템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고 했다.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좀 신경이 쓰이는데요."
- 오시마의 말대로 요즘 수조 상태가 불안정하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어류 수조에만 작은 문제가 빈발하고 있다. 대부분은 수온 때문이었다. 가타야마가 근무하는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에서는 열대부터 남극해에 걸쳐 다양한 수온에서 서식하는 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수조마다 수온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히터로 따뜻하게 데운 바닷물과 에어컨으로 차갑게 만든 바닷물을 섞어 적정수온의 물을 수조에 넣어준다. 그런데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 상태가 이상했다. 수족관에는 수조 윗부분이 열린 개방형 수조가 많다. 그 때문에 외부공기에 닿는 면적이 많아 상대적으로 수온조절이 어렵다. 재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완벽하게 조절하기도 힘들다. 아마 이런 이유일 때문일 것이다. 오늘 밤 수온 이상을 알린 수조는 모두 개방형이었다.
- 그러나 물고기들은 새로운 수조라서 수온 조절이 어렵다는 걸 이해해주지 않는다. 수온이 낮으면 건강상태가 나빠지고 잘못하면 죽기도 한다. 어떤 수족관이든 개관 직후에는 죽는 생물들이 꽤 많이 나온다. 이번에 발생한 문제는 전시생물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사육담당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곳은 많은 어려움 끝에 이제야 궤도에 오른 수족관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전시생물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가타야마는 맹그로브 숲 수조로 바삐 걸었다.
- 가타야마는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평소에도 다른 직원들이 퇴근한 뒤 혼자 남아 일을 했다. 사육담당 부하 몰래 가타야마 혼자만의 업무를 위해. 가타야마는 특별히 하고픈 일이 있다. 그 일을 수족관에서 실현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수족관 전체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여러 기관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이들을 움직이려면 그 일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가타야마는 그 준비를 하고 있다.
- 꿈을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루려면 주도면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꿈만 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는 안 된다. 현재 자기 머릿속에 있는 구상을 이익이 생기는 사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타야마는 이를 하타노 관장에게서 배웠다. 우선은 혼자 기초계획을 세우고, 실현 가능성을 찾아 계획규모를 결정하고 계획서를 만들어 세부 행동계획을 세웠다. 필요예산을 산정하고 예상수익과 채산성도 산출했다. 관장의 조언대로 통신교육을 통해 기업경영을 공부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지금은 혼자 하기 때문에 힘이 들지만, 조금 지나면 관장도 알아줄 것이다. 그러면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 수온 이상은 업무에 방해가 된다. 업무의 리듬이 끊기는 건 물론이고, 귀중한 전시생물이 위기에 빠지니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가타야마는 자기가 있어서 물고기들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혼자 남아서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는 이상, 심야에 발생한 문제 역시 말할 수 없다.
내가 남아 있어서 수족관을 지킬 수 있으니까 좋게 생각하자.
아무리 피곤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가타야마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 손잡이에 쇼핑봉투가 걸려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도심에 있는 대형 백화점 봉투다. 테이프로 봉투의 입구를 봉했고, 앞에는 '관장님께'라고 인쇄된 종이가 붙어있다.
뭐지?
느낌이 안 좋았지만 자기한테 온 것이 아니니 열어볼 수는 없다. 관장에게 전하기 위해 히로코는 쇼핑봉투를 집어 들었다.
- 어두운 수족관. 벽 좌우에 수조가 있다. 그곳만 밝게 빛난다. 걷는 데 불편함 없을 정도의 밝기를 확보해 준다. 공기는 차갑고 습기를 약간 머금었다. 조용하면서 조금은 신비스런 장소다.
수족관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올리지 않을까? 시각적으로만 본다면 맞는 말이다. 평일 낮에는 정숙하고 신비할지 모른다. 분위기가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일 수 있다.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에는 전혀 다르다. 지금도 아이들의 함성이 쩌렁거린다.
- "당연히 성황리에 마쳤지. 아이들 반응도 좋았고."
마미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에가 말한 아이들이란 관람객인 초등학생들이 아니라 돌고래들이다.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에는 란마루, 유리, 사쿠라라는 이름의 병코돌고래 세 마리가 있다. 수족관 기념품점의 인기상품인 돌고래 인형 가방의 모델이자 수족관의 '아이돌'이다. 노부에는 땀 닦은 수건을 다시 허리에 찼다.
"밖이 진짜 뜨거워. 마미코도 조심해."
"조심한다고 시원해지나."
고가가 말하자 노부에는 고가를 흘겨봤다.
"척하면 착하셔야지! 조심하라는 건 자외선 차단을 말하는 거라고. 남자친구라면 그 정도는 눈치채야 하는 거 아닌가?"
- "너도 수족관에서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분명 가타야마 선배도 그러길 바랐을 거야."
"내가 뭘 안다고."
후카자와는 고개를 저었지만 고가는 후카자와가 바다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을 잘 안다. 사형제 중 장남이어서 여의치 않았다. 수족관 자리가 언제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었다. 삼 형제의 막내고 농학부 수산학과를 졸업한 뒤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2년 가까이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던 고가는 후카자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 미야와키 아크릴은 수족관 전용 수조를 만드는 회사다.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조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에서 최고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많은 수족관들이 천 톤 넘는 대형수조를 만들면서 대형 아크릴 패널이 필요하게 되자, 정밀한 패널 제조기술을 가진 일본제 수조가 전 세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5천 톤이 넘는 수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일본에서도 다섯 곳을 넘지 않는다. 미야와키 아크릴은 그중에 으뜸이다.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도 미야와키 아크릴에 수조 제조를 위탁했다.
- 미야와키 겐조 사장은 그 정도 회사를 꾸리면서도 동네 철물점 주인 같은 차림으로 다니기 때문에 위엄스러운 느낌은 풍기지 않는다. 미야와키사장의 취미인 수중사진용 하우징 제작을 인연으로, 다이빙을 하는 후카자와와도 친분이 있다. 당시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디지털카메라용 하우징'을 만들고 싶어 하던 후카자와를 보고 필름카메라에 애착이 강한 사장이 격분한 뒤 교류가 시작된 모양이다. 후카자와가가타야마의 후배라는 말을 듣자 "정말이지, 그 대학 사람들은 못 말려"라고 하면서도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줬다. 그 뒤 디지털카메라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디지털카메라용 하우징 제작의뢰가 몰려들어 미야와키 아크릴도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점을 보면 사장도 자기 주머니는 확실하게 챙기는 사람이다.
- J1은 개방형 수조다. 간석지가 있고 파도가 거친 바닷가 생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수조 위를 개방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수조를 옆에서도 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수조를 디오라마라고 하는데 물속만이 아닌 그 위의 육지까지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전시생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환경까지 보여주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지형과 그곳에 사는 식물까지 재현해야 하기 때문에 수조가 꽤 높아야 한다. 그래서 수조 위를 열어둔다. 이런 개방형 수조가 최근 수족관의 유행이기도 하다.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은 자연환경 재현을 염두에 둔 전시를 하고 있으므로 특히 개방형 수조가 많다. 누구라도 수조 안으로 손을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고가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고가의 다리는 이미 안 듯했다. 고가는 J1 수조를 향해 달렸다.
- "도쿄만을 재현한 게 화근이었어."
"뭐?"
후카자와는 수조 안을 가리켰다.
"이 수조는 도쿄만의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들었어. 따라서 도쿄만의 현재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일부러 쓰레기를 넣었고. 수조 끝에 살짝 병을 놓아둔다고 해도 다른 쓰레기에 섞여 모르거든. 관람객들이 모른 것도 무리는 아니야."
"아... 그렇군."
후카자와의 말이 맞다. 이곳 수조는 왼쪽부터 해안, 간석지, 바위가 많은 바닷가 식으로 구성돼 있다. 해안에서 간석지까지는 일부러 페트병이나 세제용기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이곳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물건을 던지면 안 됩니다'라는 주의 문구를 걸어두었다. 여기에 유리병 하나쯤 늘어난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네."
오시마가 화를 내며 회수한 물고기들을 예비수조로 옮겼다. 수족관에는 모든 수조 뒤에 예비수조를 두어 병에 걸린 생물이나 전시 직전 생물을 일시적으로 사육할 수 있도록 했다. 알코올 섞인 바닷물을 마시고 기운을 잃은 생물들을 이곳에서 치유할 것이다. 비교적 몸집 크고 숫자도 많은 숭어는 가장 큰 수조로, 말뚝망둥어처럼 작은 어류는 작은 수조로, 성게나 불가사리는 한데 모아 작은 수조에 넣었다. 예비수조는 어디까지나 긴급피난처다. 병세가 심해지면 검사실에 있는 치료용 수조로 옮겨야 한다. 저생생물은 겉으로 봐선 증상을 알기 힘들다. 하지만 오시마가 피난시킨 숭어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심각한 상태는 아닌 듯하다.
- 관람객 쪽에서 보이는 J1조는 물을 갈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시간이 걸리므로 개관 중에는 할 수가 없다. 오늘 온 관람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폐관할 때까지 지금 상태로 둘 수밖에 없다. 수조의 조명 스위치를 껐다. 생물들을 돌보면서도 고가는 계속 자신의 머릿속을 자극하는 뭔가를 느꼈다. 뭐지? 이 감각은 뭘까? 뭔가가 자꾸 뇌를 자극하고 있다. 기억하라고.
- 오시마는 원래 정의감이 강하다. 하지만 하타노 관장이 초빙되어 수족관 전체가 바뀌기 전까지는 그런 성향을 묻어두고 무질서한 직장을 탓하는 정도였다. 관장은 오시마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가 가진 정의감을 전시생물과 수족관 질서를 지키는 데 활용했다.
-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키나와 산호초 사이로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르며 놀고 있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최근에는 NHK에서 바다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을 자주 방송하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낯이 익어서인지 돌고래쇼를 빼면 가장 인기 있는 수조다. J5수조는 가로로 길다. 왼쪽 끝에 육지가 있다. 거기서부터 모래밭이 있고 바다가 시작된다. 해저는 완만한 경사로 내려가다 어느 한 곳을 기점으로 갑자기 깊어진다. '드롭오프'다. 수위에 따라 바닷속 상태가 다르다. 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수조의 특징이다. 일반 수족관에선 산호초를 재현하는 데 개방형 수조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에선 가타야마가 육지 부분에 아라비안 재스민이나 모조 소나무를 설치해 오키나와 분위기를 내자고 끈질기게 제안한 덕분에 이런 설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정된 크기의 수조에 많은 걸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상자 속 모형정원 같은 느낌인데, 오히려 그런 앙증맞음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 아무리 다급해도 수조 구경을 하는 관람객을 밀어내고 점검을 할 수는 없다. 수족관에 이상이 발생한 것을 선전하는 꼴이다. 고가는 빈틈을 찾아 수조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점검했다. 물고기는 어떨까? 혹시 죽거나 힘들어하는 녀석들은 없을까?
- 없다. 산호초에 사는 생물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다. 고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도 탁하지 않은 것 같고 바닷물에서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수조 아래 몇 군데에서는 물속에 산소를 보내는 공기방울을 힘차게 뿜어내고 있다.
다행이다. 이 수조는 무사하다.
고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뭔가 걸렸다.
생각이 아니다. 오랜 세월 수조를 돌본 육체가 고가에게 뭔가 호소하는 듯했다. 고가는 그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뭔가가 다르다.
고가의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고가는 수조 안을 자세히 살폈다. 인공 나무들, 해안선, 산호조각을 깐 해저, 산호초, 드롭오프, 해수, 어류, 저생생물들. 이상한 점은 없다. 수조 안을 안정시키는 기능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생물들의 상태를 보니 이상수온은 아니고, 산소공급기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
- 섬뜩한 뭔가가 고가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산소공급기는 세 군데 설치했다. 그런데 공기방울은 네 군데에서 나온다!
고가가 의심스런 곳을 발견했다. 물결이 밀려오는 바로 근처. 수심이 매우 얕은 곳에서 공기방울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저런 곳에 산소 공급기를 설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기포가 나올까?
- "이런 입욕제는 온수에 녹으면서 탄산가스를 배출해. 그래서 혈액순환을 좋게 해 주지. 탄산가스를 배출한다는 건 물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다는 뜻이거든. 이걸 얕은 물가에 넣었어. 수조 속의 물이 어느 정도 순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얕은 물가에 사는 생물이 산소결핍을 일으킬 가능성은 있어."
고가는 다시 등골이 오싹했다. 얕은 물가에는 제비할치 치어나 망둥어류 등 많은 생물이 산다. 이런 가정용품으로 생물들에게 해를 입힐 생각이었나?
"그래도 수조는 괜찮아. 입욕제 크기를 보면 거의 녹지 않았어. 이산화탄소가 방출됐더라도 극소량에 불과해."
후카자와는 그렇게 말했지만 고가는 안심할 수 없었다.
- "어째서 이런 일이..."
고가의 가슴에 분노가 일었다. J1 때는 다급한 마음에 침착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왜 고가가 정성 들여 키운 생물이 영문도 모르게 해코지를 당해야 하는가? 그것도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수족관을 위해 헌신했던 가타야마의 기일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 후카자와는 수조 아래쪽을 봤다.
"저 단추."
- "아, 밀썰물 버튼이야."
인공적으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단추다. J2조는 조간대를 재현한 곳이다. 밀물과 썰물 때 생물의 움직임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를 보여줄 수 있도록 수조를 설계했다. 관람객이 수조 아랫부분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밀물이 되고, 다시 누르면 썰물이 된다.
- "저 단추에 특별한 장치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아아." 수조가 무사한 안도감에서인지 고가도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가타야마 선배가 업자한테 끈질기게 의뢰해서 단추를 한 번 누를 때마다 월령(月齡)을 세도록 만들었어. 조위(潮位)가 조금씩 높아지거나 낮아지도록. 이 수조에선 스물여덟 번 중에 '한사리'가 두 번 있어. 이즈반도 치고는 한사리와 조금의 차이가 극단적이지만."
(역주 : 월령 - 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에 밀물이 가장 높은 때. 조위 -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로 대개 매월 음력 7, 8일과 22, 23일)
- "아, 그럼 말이지." 후카자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지금 월령은 며칠 정도인데?"
"뭐?"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후카자와가수조의 조위를 묻는다는 것을 알고 수조 안을 살폈다.
인공조석의 횟수는 견학통로에서는 알 수 없다. 숨겨진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원인 고가는 이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밀물과 썰물이 주제인 수조이므로 이를 알기 쉽도록 인공 바위의 높이에 차이를 두었다. 간단히 말하면 바위를 계단식으로 만들어 월령의 변화에 따라 몇 계단까지 바닷물이 차는지 정해두었다. 바위의 어느 부분까지 젖었는지 보고 다음 단추를 누르면 어디까지 수위가 올라갈지 짐작할 수 있다.
- 지금은 바위가 중간 정도까지 젖었다. 그래도 물에 잠기지 않은 걸 보면 관람객이 썰물로 만든 모양이다. 검정 바위 구석에 있는 빨강해변 말미장은 수축돼 있고 바위 사이에는 앞동갈베도라치와 일곱동갈망둑같은 물고기가 작은 '타이드풀'에 남아있다.
"얼추 십이일쯤 됐으려나? 앞으로 두세 번 더 버튼을 누르면 한사리가 돼."
고가가 대답했지만 후카자와는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고가의 대답을 듣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였다. 고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후카자와는 뭔가 발견한 걸까? 얼굴을 돌려 단추를 본다. 조금 전까지 초등학생 둘이 신나게 떠들며 누르던 단추다.
- "이런."
후카자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수조 바로 옆까지 다가가 발돋움을 했다. 위에서 수조 안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수조 안은 단추를 누르면 펌프가 작동해 점차 수위가 올라간다. 후카자와는 수조 속을 더욱 자세히 보고 있다. 그 시선이 한 곳에 멈추고 오른손이 움직였다. 오른손으로 수조 바로 앞 바위틈에서 뭔가를 집어 올렸다. 바닷물이 밀려오는 것과 동시였다. 수조 안으로 뻗은 오른손이 바닷물에 젖었다. 깜짝 놀란 초등학생들에게 "우아!" 하는 뜻 모를 인사를 하면서, 후카자와 ...
- 도쿄만의 간석지.
오키나와의 산호초
이즈반도의 간석대.
모두 개방형 수조다. 관람객이 손을 넣을 수 있는 구조다. 아마도 협박범은 수조가까이에 서서 다른 관람객의 눈을 피해 장치를 했을 것이다. 후카자와가 수조에 다가가 장치를 제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 수조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 그렇다면 이유는 단순히 그뿐일까?
고가는 뭔가 머릿속을 자극하는 걸 느꼈다. 뒤통수에 라이터불을 가져다 댄 것 같은 불쾌감. 생각해 봐. 그 불꽃이 호소하고 있다. J1에서 생물들을 예비수조로 옮길 때도 그랬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면 좋단 말인가.
- 다만 그것은 후카자와가 지적한 대로 범인에게 진심으로 해를 가할 마음이 없는 걸 읽었기 때문이다. 관장이 경찰을 부르지 않은 데는 직접 범인의 의도를 밝히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이해는 간다. 고가가 마음에 걸리는 건 가타야마의 존재가 드러난 뒤에 관장이 보인 행동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변화가 없어 보였다. 표정은 부드럽고 말투는 침착했다. 그럼에도 관장은 변했다. 고가는 느꼈다.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다.
- 관장은 그때 사고가 정지됐다.
사려 깊고 판단력 뛰어난 관장이 그때만은 전혀 머리를 쓰지 않고 속단했다. 오시마가 3년 전 이상수온을 설명했을 때 관장은 기계적으로 수긍했다. 아니, 반사적으로 동의했다. 물론 부하가 과로사를 당한 일은 경영자로서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범인의 의도를 지켜보려던 관장은 순식간에 이를 내버리려는 태도를 보였다. 왜일까?
- 불안한 모습은 조금도 비치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를 보고 있다. 마미코는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이 가타야마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게다가 아직까지 수조가 입은 피해는 경미하다. 마미코는 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마미코는 괜찮아 보이는데." 후카자와도 걱정한 듯했다. "아주 자연스러워."
"프로니까."
고가는 그렇게 대답하며 무대 중앙에 있는 마미코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관람석을 봐야만 한다.
- "너무 재주를 부리지 않는 점도 좋고, 돌고래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굉장하다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 좋은 걸."
"그게 우리 방침이야." 후카자와의 감상평이 적확한 것에 고가는 놀랐다. "동물들이 사람 흉내를 내는 연출을 하는 곳도 있어. 그것도 하나의 방식이지.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은 표현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아. 돌고래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보여주기만 해도 사람들은 감동하거든."
"맞아, 감동했어." 후카자와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쇼이기 보다는 서커스에 가까워."
"고타니 역시 같은 지적을 했어. 이름을 돌고래 서커스로 해야 한다나. 뭐 사실 이런 공연을 하는 건 돌고래들의 운동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지만."
"역시 운동이 부족한가 봐?"
"당연하지.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애들이 이렇게 좁은 수조에 갇혀 지내야 하니까. 스트레스도 쌓이고. 이렇게라도 운동을 시키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게 돼."
"엄청나게 큰 수조를 만들면 안 될까?"
후카자와의 말에 고가는 고개를 저었다.
"스케일이 달라. 수족관 수조는 크기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일본 최대인 나고야항 수족관의 메인 풀장도 50미터 풀장보다 조금 크거든. 육상경기장 정도의 풀장을 만들어서 외곽을 돌게 하면 모를까."
"그건 무리지."
- "오셨네요."
후카자와가 말을 걸자, 다카코는 꿈에서 깬 사람처럼 후카자와를 바라봤다.
"물론이지.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돌고래쇼 어때요?"
다카코는 다시 한번 돌고래의 점프를 올려다본다.
"돌고래는 참 아름다워. 바다 속에서 보고 싶었는데."
다이버다운 발언이다.
"형수님도 특등석에서 보시지 그러셨어요. 돌고래 점프를 바로 아래에서 볼 수 있어요."
"뭐라고?" 다카코가 후카자와를 주먹으로 치는 시늉을 했다. "이 나이에 나더러 수영복을 입으라고?"
"에이, 아직 괜찮은데요, 뭐."
후카자와가 농담을 던진다. 생각해 보면 미인이라 조금 다가가기 힘들었던 다카코에게 후배 남자들의 태도는 정해져 있었다. 고가처럼 말을 걸지 못하든가, 괜히 찝쩍거리다가 보기 좋게 깨지든가. 후카자와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필요 이상으로 예의 바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함부로 굴지도 않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대했다. 사촌 동생. 학창 시절 후카자와가 다카코를 대하던 모습은 그 표현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후카자와의 그런 태도를 다카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무렵 이미 사귀고 있던 가타야마가 후카자와를 좋게 봤던 것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후카자와와 다카코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싹텄다.
- "귀엽게 생겼네. 여자친구도 다이빙을 해?"
"네."
수족관 사육계는 수조 청소를 할 때 잠수를 한다. 흔히 말하는 대형수조는 없지만, 그래도 바다동물이 사는 풀장은 물속에 직접 들어가지 않으면 청소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직원들 대부분이 다이빙을 한다. 마미코도 다이빙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다카코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닐 것이다. 데이트를 하러 바다로 가는지 묻는 것이다.
- "작년에 우리 딸하고 넷이서 이즈반도에 갔어요."
후카자와가 다카코의 의중을 파악하고 대답한다.
"그래? 후카자와의 아내도 잠수를 하던가?"
생각해 보니 가타야마와 다카코도 대학 다이빙 서클에서 알았다. 바다가 이어준 인연이다. 자신들처럼 바다에서 인연을 맺은 커플이 있으니 기쁜지도 모르겠다.
다카코는 조금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런데." 다카코는 고가를 봤다. "한가롭게 돌고래쇼 관람을 하는 걸 보니 조금 전의 문제는 해결했나 봐?"
기억하고 있었던가?
"아무 문제도 없다니까 그러세요."
다카코가 싱긋 웃었다.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더 이상 여기 있는 건 좋지 않다.
- "후카자와 씨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한테 가타야마 씨는 특별한 존재였어. 알잖아.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겐칸 선생은 고개를 들어 후카자와의 눈을 본다. 선생의 진지한 얼굴에 후카자와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족관을 바로잡은 건 물론 하타노 관장님이지만, 그 토대를 만든 사람은 가타야마 씨야. 모두가 관장의 설득에 따랐던 건, 마음 한구석에 혼자서 애를 쓰는 가타야마 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 "선생님도요?"
후카자와의 질문에 겐칸 선생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그랬어. 난 매사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였으니까. 정의감 넘치는 오시마 계장도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소극적이고. 그런 그를 일깨운 사람 역시 가타야마 씨였어. 그런데 가타야마 씨가 새 수족관이 궤도에 오른 뒤에도 심야에 혼자 남아 일을 했어. 그 일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가타야마 씨가 지금의 수족관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해. 그러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노력을 한 거겠지. 그러다 과로로 목숨을 잃었어. 남은 우리는 가타야마 씨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가 기뻐할지는 모르겠어. 그렇게 우리는 3년이란 세월을 보냈어. 그 와중에 이번 사건이 일어났지. 이번 사건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래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야."
고가는 겐칸 선생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늘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만 보이던 수의사가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한 건 처음이다. 이 역시 가타야마의 영향인가.
"알겠습니다." 후카자와가 조용히 말했다. "저도 미력이나마 돕겠습니다."
- 고가는 노부에 역시 생전에 가타야마를 따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나처럼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보진 않지만, 노부에가 가타야마를 존경했던 건 틀림없다. 그런 가타야마가 죽은 지 3년. 겨우 추억이 되어가는 존재가 이런 식으로 생생하게 부각되었다. 그것이 노부에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옆에서 봐도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를 연출하는 자가 가족 같은 직원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노부에를 더 힘들게 할 것이다. 고가는 노부에에게 말을 걸지 않은 채 수조 뒤로 갔다. 노부에는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 문을 닫자 정적이 고가를 감쌌다. 북적이는 관내 소음이 수조 뒤까지 도달하지는 않는다. 두꺼운 벽과 수조가 소리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정적은 아니다. 여과기나 펌프 작동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울려 다른 종류의 소음을 만든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어서인지 수조 뒤편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을 점검하고 바로 나갈 생각에 문은 잠그지 않았다.
- 관장만큼은 아니어도 고타니 역시 고학력의 엘리트다. 유명 사립대학을 나와 대형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했던 만큼 세련됐다. 지방 국립대학을 나온 고가나 가타야마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본인은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대하지만, 수족관의 폴로셔츠가 관장만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고타니가 청소도구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견학통로에서 직원끼리 개인적인 말을 주고받는 건 좋지 않다. 말을 걸까 망설이던 고가는 고타니를 모른 체하고 J5를 떠났다. J4, J3을 지나 J2 수조에 도착했다. 옆에 있는 직원용 문을 통해 뒤로 들어갔다.
- 호흡의 기미가 없다.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가슴을 누를 때마다 오시마의 허리에 달린 열쇠꾸러미가 찰칵찰칵 소리를 낸다.
심장 압박은 늑골을 부러뜨릴 우려가 있고 숨을 너무 세게 불어넣으면 폐가 파열될 위험도 있다. 심폐소생술은 어려운 일이다. 방법은 알지만 실제로 해보는 건 처음이다. 훈련을 받은 지도 십 년 가까이 되어 옳은 방법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그래도 심장 마사지와 인공호흡을 계속했다. 여전히 숨을 쉬지 않는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 뇌가 산소결핍이 됐을 때 몇 분 뒤부터 기능이 정지한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오시마를 발견했을 때는 벌써 심장이 멎은 상태였다. 심장이 정지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고타니는 관장 뒤에 버티고 섰다. 온몸에 힘을 주어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그 모습은 방금 후카자와의 모습과 닮았다. 노부에는 비틀거리며 후카자와에게 기댔다. 그러다 바로 괜찮다며 자력으로 일어서려고 한다. 후카자와는 이미 평상심을 찾은 듯 보였다.
"관장님. 구급차를 부르죠."
그렇게 말했다.
"구급차?" 반응을 보인 사람은 관장이 아니라 고타니였다. "구급차는 필요 없죠. 죽은 걸요."
아이 같은 말투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그냥 둘 수 없는 문제다.
"일각을 다투는 사태가 아니니 구급차는 필요 없을지도." 이 말을 한 사람은 겐칸 선생이다.
"그래도 의사를 부르든지 병원에 옮기든지 해서 사망진단서를 받아야죠."
그렇다. 오시마는 죽었다. 죽었으니 의사에게 증명을 받아야 한다. 고가도 늦게나마 그 점을 깨달았다. 겐칸 선생은 수의사다. 사람의 사망진단서는 쓸 수 없다.
-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고타니도 말한다. "전 광고대행사에 있어봐서 대중매체가 어떤 집단인지 잘 압니다. 경찰이 아무리 조심해서 발표한다고 해도 그들은 분명히 적나라하게 쓸 겁니다. 그것도 흥미위주로. 수족관을 제물로 며칠 동안 지면을 메우려고 할 텐데,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직원들은 앞다퉈 후카자와에게 부탁했다. 수족관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고 애원했다.
다른 수족관 직원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죽었다 다시 살아난 수족관이다. 한 번 죽은 자는 다시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 후카자와는 바닥을 내려다본 채 고개를 저었다. 아주 잠깐 망설이는 듯했다. 그답지 않은 침묵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후카자와가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은 오늘 일어난 사건에 대해 경찰을 부르지 않고 여러분 힘으로 진상을 규명할 생각이라고. 그리고 진상을 안 뒤에는 수족관에 가장 타격이 적은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식으로."
후카자와는 직원들을 돌아봤다.
"그뿐만 아니라, 수족관을 평상시처럼 운영해서 팔천오백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알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말씀이죠?"
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만일을 위해 검사실도 보지."
고가는 예비수조실을 나와 검사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검사실에는 산이 담긴 검정색 접시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검사실에도 숭어는 없었다. 만일을 위해 조이실과 그곳에 있는 냉장고, 냉동고도 확인했다.
"이걸 기억해 둬." 후카자와가 말했다. "나중에 필요할 테니까."
마음에 걸리는 말이다. 두 사람은 예비수조실을 나와 전용 문을 통해 수족관 뒤로 나왔다. 사무실로 가려면 견학통로를 지나는 것보다 뒤를 달리는 편이 빠르다.
- 과연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고가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수조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머리를 자극하는 느낌이 아니다. 머릿속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사고 그 자체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고가는 그 정체를 알았다.
나는 저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 의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질 않는다. 상반되는 두 가지 사고가 공존하고 있어서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 이론상 범인은 직원밖에 없다.
이성은 알지만, 감성은 구체적인 용의자들을 의심하길 거부한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 수족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함께 땀 흘렸던 ...
-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도 믿지 못하시잖아요."
겐칸 선생은 계단에 다리를 올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을 말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내가 일일이 고타니 씨의 말에 토를 단 건 그 때문이 아니야. 오시마 계장의 죽음에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어. 살인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지. 하지만 증거가 없어. 그것만을 근거로 이야기가 앞서 간다면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있거든."
관장이 인정할 정도로 침착한 겐칸 선생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다.
"그래서 난 증명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일부러 반대 입장에서 이야기했어. 수족관을 지키려면 고타니 씨 혼자만의 생각에 의존할 수 없으니까."
- 고가는 겐칸 선생에게 감동했다. 수족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사고방식도 있구나 싶었다. 젊은 직원의 생각만으로는 성급한 결론으로 치달을 수 있다. 겐칸 선생처럼 침착한 사람이 감독 역할을 맡아 틀린 길로 가지 않도록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
- 정말 주도면밀한 녀석이다. 후카자와는 고가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오시마의 휴대전화를 조작해서 메일 화면을 띄우고 있다. 협박하는데 쓰인 휴대전화처럼 자신이 사용하는 기종과 다르기 때문에 화면을 확인하면서 꼼꼼하게 단추를 누른다. 하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메일화면을 열었다.
"오늘 송신한 기록은 없네요."
- 후카자와는 탁자로 걸어와 모두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고가도 화면을 봤다. 오시마는 휴대전화 메일을 자주 쓰는 듯하다. 거의 미나에게 보내는 메일이다. 미나는 늘 정시에 퇴근하지만, 오시마는 늦은 시각까지 일한다. 오시마는 수족관을 나올 무렵 '지금 갈게' 같은 메일을 보낸 것 같다. 미나의 메일 주소는 anemone@라고 들은 적이 있다. 아네모네 피시는 흰동가리의 영어 이름이다. 오시마의 송신내역은 그것뿐이다. 그 밖에는 nezuppo@란 주소가 하나 있을 뿐이다. '네즈포'는 물고기과의 이름으로 다이버에게 인기 있는 스톤피시나 북경어코비가 네즈포 과다. 수족관에도 있다. 다이버나 어부는 자신의 메일 주소를 물고기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고가 역시 쏠배감펭의 영어이름인 lionfish@고, 후카자와는 곰치의 영어이름인 moray@다.
- 협박? 이것은 협박인가?
협박이다. 이성이 외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있다. 사고가 뒤죽박죽 섞이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고가는 애써 무시했다. J6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겐칸 선생과 함께 계단을 올라오시마가 잠들어 있는 J1을 지나 J6으로 향한다.
- J6 수조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몰려 있다. 맹그로브는 수도권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지 않은 식물이다. 일본에 이런 정글 같은 곳이 있을까? J6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감상에 젖는다. 수족관에서도 꽤 인기 있는 전시수조다. 이 수조의 특징은 강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강 하구에서 바닷물로 담수가 흘러들어 가는 해역을 재현하고 있다. 담수와 해수가 섞여 염분농도가 적어지는 기수역, 맹그로브는 그곳에서 성장한다. 문어발처럼 뻗은 지주근은 작은 생물들이 살기 좋은 서식처다.
-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공격에 사용했지만 생물에게는 해를 미치지 않도록 조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메일 문구대로 맹그로브 숲에 흙이 흘러 들어갔다. 다만 캡슐에 들어있는 형태로.
"메일 문장과 같군요." 고타니가 말을 이었다. "도쿄만의 오염, 지구온난화, 산성비. 모두 바다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이죠. 이번에는 난개발에 의한 적토 유입이고요. 실제로 오키나와에서 동남아시아에 걸쳐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으로 유입되는 적토가 큰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예요. 범인의 메일은 그 점을 말하는 것에 불과해요. 이 정도로 유사점이 있다면 J6에 적토를 넣은 자는 지금까지 수조를 공격한 자와 동일범이 틀림없다고 봐요."
-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까? 관장의 얼굴을 봤다. 하지만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자, 사무실로 가죠."
"아, 네."
반사적으로 일어선다. 마미코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추궁할 분위기가 아니다. 관장은 사무실로 몸을 틀면서 딱 한번 후카자와를 봤다. 시선이 부딪혔다.
불꽃은 튀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볼 뿐이다. 눈빛에 방대한 정보를 담아 서로에게 전하려는 듯 쏘아보고 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선을 피했다. 관장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후카자와는 묵묵히 뒤따랐다.
- 오가타는 관장과 사카이리보다 연장자인데 그보다 어린 가타야마나 오시마가 먼저 계장이 되었다. 그래도 그런 점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육계 직원들은 직책을 맡고 사무를 보느니 평생 평사원으로 돌고래를 돌보고 싶어 한다. 가타야마처럼 수족관 전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육계 직원도 있지만 오가타처럼 자기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수족관에는 이들 모두가 필요하다. 고가는 이런 베테랑 직원이 존경스럽다.
-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쇼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풀장 뒤는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를 깬 사람 역시 외부인이었다.
"노부에."
후카자와가 노부에에게 말을 걸었다. 후카자와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놀랄 만큼 다정한 목소리였다.
"나한테 최고의 돌고래 쇼를 보여줘. 노부에의 사회로."
노부에가 눈을 크게 떴다. 후카자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후카자와는 그 시선을 온몸으로 받았다.
- "후카자와 씨." 노부에는 일어섰다. "미안해."
노부에는 말을 하며 후카자와의 품에 안겼다. 두 팔로 등을 감싸고 힘껏 안는다. 몸이 떨린다.
후카자와도 노부에를 안았다. 힘을 주지 않고 부드럽게 노부에의 온몸을 감싸듯 안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노부에의 떨리는 몸이 점차 가라앉더니 이윽고 멈췄다.
노부에는 천천히 후카자와에게서 떨어졌다.
"고마워."
눈에 고였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웃었다.
"별말씀을." 후카자와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제 갈 수 있겠어?"
"응."
노부에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씩씩했다.
- "자, 힘내."
후카자와는 노부에의 등을 살짝 치고는 고가와 마미코와 함께 풀장 뒤에서 관람석으로 나왔다. 관람객을 피해 가장자리에 섰다.
"후카자와 씨, 대단해요."
마미코가 감탄하며 말했다.
고가도 동감이다. 그렇게 긴장하고 있던 노부에를 되돌려놓았다. 아니, 그렇게 긴장하고 있던 노부에가 원한 것은 후카자와였다. 고가는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끝까지 이어주지 못한 것을 새삼 후회했다. 후카자와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이제 시작이야"라고만 했다.
- 마지막 쇼인데도 백석이 넘는 관람석이 꽉 찼다. 돌고래특등석도 수영복을 입은 초등학생들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어가지만 기온은 아직 높고 바람도 없어서 전혀 춥지 않다. 기대에 가득한 표정들에 고가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지금부터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견뎌내야 한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울렸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무대로 쏠린다. 음악과 함께 노부에가 무대에 등장했다. 모자를 쓰고 있다. 돌고래쇼의 막이 열렸다.
- "앞으로 20분 안에 사건이 끝나는 건가..."
고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 끝난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끝난다고?"
후카자와가 고가의 혼잣말을 되물었다.
"왜?"
후카자와가 돌고래를 보면서 말했다.
"사건은 벌써 끝났어."
- "대형수조...?"
고가는 중얼거렸다. 대답은 자명했다. 다른 곳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대형수조 설치. 그것이 가타야마의 염원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럴 만한 부지가 없어. 처음부터 힘든 이야기였어. 가타야마선배도 알았을 거야. 그런데도 대형수조를 만들려고 밤늦도록 남았을까?"
가타야마는 그저 꿈을 꾸기만 했을까? 상상의 나래만 펼치며 시간을 보냈을까? 가타야마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고가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 예상대로 후카자와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고. 분명히 이 수족관의 부지는 좁아. 좁은 와중에 넓은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건 고층 건물이었어."
"... 이 수족관을 빌딩으로 만든다는 건가요?"
마미코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못할 것도 없지. 이케부쿠로에 있는 선샤인 국제 수족관도 건물 옥상에 있잖아. 현대 건축기술이라면 대형수조의 물 중량을 버틸 만한 고층수족관을 건설할 수 있어."
- "하지만 이 방법에는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어. 지금 생각난 것만 해도 두 가지야. 하나는 부지가 좁아서 고층 수족관을 지으려면 우선 지금의 수족관을 허물어야 한다는 점. 신관을 완성하기까지 몇 년씩 영업을 정지해야 해.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또 하나는 자금 문제. 현대 건축기술로 가능하다고 해도 예산에 제한이 없다는 조건이 붙어야 해. 이 작은 수족관을 보수하는 비용조차 떨떠름하게 생각했던 의회에서 그런 예산을 통과시켜 주겠어? 게다가 여기와 멀지 않은 곳에 시나가와 수족관이 있어. 고층화로 천 톤이나 이천 톤 정도의 수조를 만든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 "그렇다면 가타야마 선배는 어떤 생각을 했지?"
후카자와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금니를 앙다문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추측이지만 가타야마 선배는 별관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에."
- '수족관 바로 옆은 바다지만, 바다를 막고 이게 모두 수조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주장할 생각이었나..."
마미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 후카자와 씨는 예산이 통과되지 못할 거라고 하셨죠? 바다를 메워 부지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데요? 아니면 바다 속에 돔 수조라도 만들 생각이세요? 그거야 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요."
후카자와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어. 힌트가 눈앞에 있잖아. 두 사람도 만나놓고 그래? 네즈 씨.”
- "유조선..."
후카자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타야마 선배는 노후한 유조선을 눈앞에 있는 바다에 띄우고 유조 부분을 수조로 개조할 생각이었어. 네즈 씨는 25만 톤짜리 유조선을 찾았다고 했어. 중고 유조선 가격은 만 톤당 1억 엔 25만 톤은 25억 엔 원유선반에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더욱 저렴해지지. 십 분의 일 정도로 해서 2억 5천만 엔. 설치비용이나 개수비용을 포함해 40억 엔이나 50억 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걸로 25만 톤의 대형수조를 손에 넣을 수 있어. 현존하는 세계 최대 수족관도 가뿐히 웃어넘길 정도로 특별한 대형수조. 그런 취지를 고려한다면 50억 엔 따위는 싼 가격이지."
- 고가는 벼락을 맞은 듯했다. 25만 톤의 수조! 상상도 할 수 없다. 다만 유조선 크기는 안다. 수족관 사육계인 고가는 다양한 항구에 가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유조선도 봤다. 직접 봤던 유조선 적재량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풀장 수준의 크기는 아니었다. 아마도 갑판에 육상경기장하나가 그대로 들어가고도 남을 것이다.
문득 시선을 들었다. 노부에의 신호로 점프를 반복하는 돌고래들. 쇼는 돌고래의 운동부족을 해소할 목적도 있다. 고가 본인이 후카자와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저 녀석들을 충분히 헤엄치게 만들려면 육상경기장 크기의 풀장을 만들고 외곽을 돌도록 해야 한다고. 가타야마는 그걸 실현시키려고 했단 말인가?
- "물론 25만 톤 모두가 수조가 되는 건 아니지. 다양한 부대시설을 설치하면 수조에 할당될 공간은 조금 줄어들 거야. 그래도 사상 최대 수조가 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후카자와의 말이 열기를 더한다. 눈에서 빛이 난다.
"이 정도 공간이 있으면 전시 방법은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어. 유조선은 길쭉해. 예를 들면 세로 방향을 자오선으로 삼고 뱃머리를 북극, 꼬리를 남극으로 하는 거야. 가운데는 적도로 하고, 생물들이 본래 서식하는 지역에서 마음껏 놀게 하는 거야. 유조선은 높이도 상당할 테니 깊이도 충분할 거야. 어떤 지형이든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지 않겠어? 수조 내부에 아크릴로 터널을 만들면 계속 바다 속을 걸을 수도 있어. 그런 터널을 동서남북으로 만들면 몇 킬로미터에 걸친 수중 산책로가 만들어져 거기에 무빙워커를 설치하면 완벽하지."
- 고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괌에 언더워터 월드라는 수족관이 있다. 그곳 수중 터널은 세계에서 제일 길지만 그래봤자 백 미터다. 이를 단번에 킬로미터 단위로 바꾼다는 건가.
아니, 그런 하찮은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충분한 깊이가 나오는 대형수조로 세계 각지 바다를 재현하는 디오라마 수조를 만든다. 이를 둘러보며 걷을 수 있다. 말하자면 바다 전체를 재현하는 일이다. 바다를 재현한다는 것은 지구를 재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가는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그거였나. 가타야마가 하려던 일은 지구를 만드는 일이었단 말인가.
- 후카자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마도 미야와키 아크릴에 출입하면서 네즈 씨를 만난 걸 계기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가타야마 선배는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서 혼자 준비를 하고 유조선을 조사했어. 눈앞에 펼쳐진 바다에 유조선을 정박시키기 위해 항만관계 법령 조사, 예산비용 작성, 필요 인원과 설비, 집객수와 요금 설정, 손익분기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조 구성까지. 혼자서 했으니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모자랐겠지. 매일 새벽에 퇴근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야."
세 사람 모두 말이 없다. 눈은 돌고래쇼로 향했지만 보고 있지는 않다. 세 사람 모두 존재하지 않는 대형수조의 신기루를 보고 있다.
-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수조. 하늘에서는 햇빛이 쏟아진다. 고개를 들면 다양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무빙워커에 올라 이동하면 경치가 변한다. 온대 바다에서 아열대 바다로 반짝이는 산호초, 천천히 헤엄치는 큰양놀래기, 둥그렇게 원을 그리듯 헤엄치는 줄전갱이 무리들.
중간에 있는 무빙워커에서는 떼 지어 이동하는 물고기들이 보인다. 참다랑어가 탄환처럼 휙휙 지나간다. 그 틈에 고래상어가 빨판상어를 거느리고 유유히 다가온다.
위에선 돌고래가 뛰논다. 수조 바깥을 마음껏 속도를 내며 헤엄친다. 이따금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진 점프도 보여준다.
관람객은 수조 안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무빙워커를 타고 마치 자기가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생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바다에 갈 수 있다.
- 고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얼마나 꿈같은 세상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가타야마가 꿈꿔왔던 건 바로.
"물의 미궁인가..."
- "어, 어떻게..." 마미코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반박하려 했다. "관장님은 스케일이 큰 분이에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시는걸요. 후카자와 씨도 보셨잖아요? 지금도 해저공룡의 전신골격을 전시하고 있어요. 누가 그런 일을 생각이나 하겠어요?"
"맞아." 후카자와가 다정하게 말했다. 약간의 냉정함을 담아서. "요약하면 이 작은 수족관에서 가능한 정도의 일밖에 할 수 없다는 거지."
마미코는 반박하지 못했다.
- "25만 톤의 대형수조는 관리를 위해 여러 칸으로 분할되어 있어야 해. 그걸 콘크리트로 나누면 대형수조가 되지 못하지. 투명 아크릴로 별실을 만들고 거기에 타원형의 터널을 교차시키려면 뛰어난 아크릴 가공 기술이 필요해."
고가는 후카자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그래서 미야와키 아크릴에..."
가타야마는 미야와키 사장에게 검토를 의뢰했을 것이다. 미야와키
- 후카자와는 돌고래 풀장에 도착하기 전에 다카코한테 갔다. 그 다음 다시 미나한테 가려고 하다 그만뒀다. 그건 미나에게 자금을 대주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겠지만, 지금 미나의 심정을 헤아리고 자제한 것이 아닐까?
- "만일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자금을 만들려고 했다면, 나라면 어부를 이용하겠어." 고가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사들이지만, 그들은 원래 어획 이외의 수입에 대해서는 주먹구구식이야. 영수증도 받지 않고 현금으로 매매를 하거든. 미나 씨가 실제로 지불한 이상의 금액을 매입금액으로 기재했다면 아마 들키지 않을 거야."
- "좋은 방법인걸. 그렇게 하면 한 번에 수천 엔에서 수만 엔의 자금밖에 안 돼. 가타야마 선배는 그 돈을 잘 활용해서 연구를 계속했을 거야. 그런데 그걸 관장이 안 거지."
"..."
드디어 이야기가 핵심으로 들어간다.
"관장은 화가 났을 거야. 자기가 인정하지 않은 계획을 가타야마 선배가 계속 진행했으니까. 게다가 수족관 자금을 유용하면서까지 ..."
- "맞아. 만일 오시마 계장이 직접 가타야마 선배를 다그쳤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어. 가타야마 선배는 오시마 계장에게 자신의 구상을 털어놓았을 테고, 이에 공감한 오시마 계장은 작업을 도왔겠지. 하지만 관장의 말을 듣고 흥분한 오시마 계장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가타야마 선배를 공격하기 시작했어. 그거야 말로 관장이 원하던 일이었지. 예전에 네가 그랬지? 오시마 계장의 정의감은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관장은 그 점을 이용했어."
- "하지만 생각해 보면 숭어를 감추는 건 드라이어 하나 숨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숭어는 전시생물이야. 수족관의 밥줄이지. 그런 사체가 대량으로 발견되면 큰 소동이 벌어지는 게 당연해. 폐관하면 숭어가 실종된 것이 반드시 들통나게 돼. 오시마 계장이 죽은 곳에 있던 숭어니까 철저한 수색이 이뤄질 거야. 그래도 발견되지 않도록 처리해야 해. 폐관까지 짧은 시간 안에 확실하게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는 잘 알아. 숭어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란 걸."
- 후카자와는 시선을 무대로 던졌다. 돌고래들의 난무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점프에 성공한 돌고래에게는 노부에가 허리춤에 찬 먹이통에서 물고기를 던져준다. 돌고래들은 잽싸게 입으로 받아 문다.
또 한 마리가 점프를 했다. 함성이 터진다. 노부에가 물고기를 던졌다. 물고기가 석양을 받아 반짝인다. 그 모습이 고가의 눈에 들어왔다.
- 난마루가 마지막으로 큰 점프를 보여줬다. 엄청난 물보라가 일며 아이들이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른다. 노부에가 허리에서 먹이통을 빼서 거꾸로 들었다. 안에서 숭어가 나온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한 마리다. 노부에는 난마루에게 그것을 던졌다.
유일한 증거품인 숭어는 돌고래 뱃속으로 사라졌다.
- 그곳에 후카자와가 나타났다. 과거에 한 번쯤 좋아했을지도 모를 남자가. 후카자와는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괜찮다면서 자기편이 여기 있다고. 노부에는 그 포옹으로 용기를 얻었다. 그때 후카자와는 이미 노부에가 살해범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후카자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노부에를 안았을까? 어떤 마음으로 노부에가 돌고래쇼를 진행하는 걸 바라봤을까? 고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관객들이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어."
- 하늘은 푸르다.
요즘 날씨가 불안정해서 기상청이 자랑하는 주간 일기예보도 계속 빗나가 관계자를 노심초사하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하늘이 도와주었다. 고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은 드디어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의 신관이 문을 여는 날이다.
고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건물처럼 눈앞에 우뚝 선 대형유조선을 바라봤다.
고가는 본관과 신관을 총괄하는 사육과장이 되었다. 부하들 숫자도 몰라보게 늘었다. 수족관 안에서 작업하는 말단도 아니고, 테이프 커팅을 할 정도로 높은 위치도 아닌 고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관을 바라본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결국 7년이 걸렸다.
- 고생이 문제가 아니다. 걸린 시간의 길이도 문제가 아니다. 달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 사업은 후카자와가 예상했던 대로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다. 문부과학성을 비롯해 도쿄도, 오타구, 대학 세 곳, 기업 스물네 곳이 참가한 국가적 사업으로 확장됐지만, 고타니는 주도권을 넘기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간섭이 들어왔지만 모든 수단(정당한 방법부터 상당히 치사한 방법까지)을 동원해 이들을 배제했다. 총 해수량 천 톤, 직원 열일곱 명인 수족관이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고가를 비롯한 직원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덕분에 고타니는 온 일본을 적으로 만든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프 커팅을 위해 가위를 집었다. 신관(유조선)으로 가는 승선 입구에선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도지사를 비롯한 높은 분들이 테이프를 가위로 자른다. 그 뒤로 지역 초등학생을 비롯한 관람객들이 줄을 지어 기다린다. 세계 최대 수조의 첫 목격자다.
"드디어 개막이군."
- 결국 신관은 미나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고가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가타야마 생전에는 가타야마에게 마음을 준 젊은 아가씨로 협력했다. 가타야마가 죽은 뒤엔 오시마를 사랑하는 성숙한 여인으로 오시마를 지원했다. 사건 뒤에는 노부에의 언니 혹은 엄마로 노부에를 지탱해 줬다. 미나가 스스로 선택한 길은 아니지만, 미나의 수족관 인생은 늘 신관과 함께했다. 그 신관이 오늘 문을 연다.
- "자, 우리도 들어가지. 다들 분발해 줘. 이제 막 문을 연 수족관은 문제가 많으니까."
네! 씩씩한 소리가 울린다. 지금은 정사원이 된 와키사카 히로코의 모습도 있다. 고가는 부하들과 함께 직원전용 통로로 향하려고 했다. 후카자와가 고가를 부른다.
"그럼 난 저쪽으로 들어갈게."
견학통로를 가리킨다.
"네에?" 노부에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함께 가면 좋을 텐데."
"난 직원이 아니니까." 후카자와가 웃는다. 제일 끄트머리 줄에 선다.
고가는 걸음을 멈추고 행렬이 줄지어 대형수조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후카자와의 차례가 다가왔다. 후카자와는 입장료를 내고 표를 받아 입구로 들어간다.
입구에 걸린 플랜카드가 바람에 펄럭인다.
물의 미궁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 협박범의 치밀하고 지능적인 공격에 혼란스러운 직원들의 목을 더욱 조이듯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직원들은 수족관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자신들의 힘으로 난제를 풀려고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 벌써 세 번째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을 번역하다 보니 이번에는 어떤 흥미로운 캐릭터가 사건을 풀어나갈지 기대가 되었다. 이번 작품의 명탐정은 수족관 직원의 친구인 후카자와다. 후카자와는 혼란에 빠진 직원들이 올바르게 사건을 좇을 수 있도록 곁에서 호흡을 조절하며 조언과 질타를 아끼지 않는다. 뛰어난 관찰력과 논리적인 사고로 미로에서 차근차근 길을 찾아 출구로 향하는 후카자와와 각자 나름의 논리와 추론으로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는 다른 직원들의 존재는 읽는 이를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다.
- 조금은 이질적이고 신비스러운 수족관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점도 작품의 큰 매력이다. 관람객 없는 한밤의 수족관, 차갑고 서늘한 공기와 무거운 적막에 휩싸인 그곳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아닐까.
- 후카자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잊고있던 3년 전 사건의 전모까지 낱낱이 드러나고, 수조로 둘러싸인 미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뜻하지 않은 감동마저 맛보게 된다. 독자 여러분도 후카자와가 이끄는 '물의 미궁' 속을 여행하며 감동과 즐거움을 함께 느끼시길 바란다.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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