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노한동]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일루젼 2025. 4.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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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노한동
출판 : 사이드웨이
출간 : 2024.12.26


       

10년의 공직 경험과 4급 서기관이라는 커리어를 내려놓고 '내부에서 바라본 공직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은 책.

 

이라고 말하기엔 은근히 안으로 굽은 팔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떠나온 곳에 대한 일말이 애정도 없는 지적은 비판보다는 비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는, 그것이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게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 저자가 견뎌낼 수 없었던 답답함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

 

국내 정세도, 국제 정세도 지켜봐야 할 것들이 많은 시기다.

포트폴리오를 미리 조정해 두긴 했었지만- 환율 등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당장 손을 대거나 조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 그럭저럭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 볼 생각이다. 배당이나 받으면서 1-2년 정도 기다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최근 점점 책 리뷰보다는 일상 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별다를 바 없었던 것 같기도.

 

그래서 결론은. 

드롱기보다 필립스 라떼고를 선택했다는 것. 

오랜 기다림 끝에 무사히 받았고, 아직 완전히 세팅이 잡히진 않았지만 라떼가 나쁘지 않다는 것. 

이제 휘핑크림을 사서 솔트크림라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눈이 내려도, 

벚꽃은 피고 지고,

좋은 봄이라는 것.  


    

 

프롤로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 10년 만에 첫 승진이었다. 행정고시에 붙은 5급 사무관이 4급 서기관이 되기 위해선 강산이 한 번, 정권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필요했다. 중앙부처에서 4급 서기관의 의미는 상당했다. 서기관은 직원을 약 10명 정도 거느린 본부의 '과장' 보직을 받았고, 유학이나 주재원 등 해외로 나갈 기회도 많았다. 사무관 시절이 본부에서 실무자로 구르며 씨를 뿌리는 시간이라면, 서기관 이상은 본격적으로 과실을 따는 시간이었다. 승진 소식이 전해지자 동료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발 빠른 사람들은 해외 문화원장으로 나갈 준비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요즘은 자기 돈을 써야 하는 유학보다 현지의 사택이 지원되고 월급이 고스란히 내 통장에 쌓이는 문화원이 낫다면서 말이다. 

- 하지만 나는 유학도 문화원도 아닌 퇴직(의원면직)을 신청했다. 동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로또 맞았느냐'며 속을 떠보았지만,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인사과(운영지원과)조차 말이다. 재직 3년 미만의 저연차 직원처럼 조직 입장에서 특별히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일까? 누군가는 '4급 한 명이 제 발로 나가면 5급 이하 승진 인원(TO)은 얼마나 늘어나는지 아느냐'며 대놓고 시시덕거렸다. 공직사회에서 30대 젊은 공무원의 퇴직은 '믿을 구석이 있을 것'이란 가십(gossip)이나 '아직 세상을 모른다'라는 조롱거리로 소비되었다.

- 퇴직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사건은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혹은 언론에서 보듯 정권 차원에서 시킨 위법 부당한 일에 환멸을 느끼거나, 나를 죽일 듯이 괴롭혔던 상사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고시 공부 3년, 사무관 10년 등 도합 13년의 세월을 매몰 비용으로 지불하고 제 발로 여기를 나가겠다고 생각한 건, 오랜 시간 동안 공직사회의 다양한 헛짓거리를 경험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습득한 무기력 때문이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나 역시 바틀비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 말이다.

- 바틀비는 허번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에 등장하는 인물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잘하는 변호사 사무실의 서기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부턴가 업무 지시에 대해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을 반복하며 일을 거부한다. 마침내 어떤 의욕도 상실한 그는 연명을 거부하고 굶어 죽는다. 바틀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는 규율 사회의 무의미한 업무 안에서 아무런 의욕도 찾을 수 없는 사무직의 수동적인 저항을 의미하는 인물이라고 본다.

- 공직사회는 역설로 가득 찬 곳이다. 복잡한 현실을 5분 만에 읽을 수 있는 한 장의 보고서로 이해하려 하고, 현장과 갈수록 멀어지면서도 술자리에서는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외친다. 입만 열면 '적극 행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존버'를 잘한 순서대로 승진시키고,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지만 그 누구보다 권력자에게 약하고 국민에게 강하다. 1급 공무원은 '관료 사회의 꽃’으로 불리지만 정작 별 역할은 없는 '파킨슨의 법칙'의 산물이고, 공무원은 헌법에 의해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만 그 어느 조직보다 정권과 여론에 휩쓸린 채 중심을 잡지 못한다. 정부세종청사의 외형은 수평과 연결의 이상을 담고 있지만 정작 내부의 구조는 직원 간의 토론과 소통에 무감한 큐비클(cubicle, 한 사람씩 들어가는 칸막이가 있는 작은 사무 공간)로 가득하고, 예산은 '국민의 혈세'라 떠받들면서도 예산 규모를 전년도보다 늘리기만 하면 사업의 성과와 관계없이 칭찬받는다. 관료는 진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기르기보다는 공직사회의 역설에 적응한 '영리한 무능'을 익히는 데 탁월하다. 요컨대, 공직사회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항상 바쁘기만 하다. 

-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로 빛나던 젊은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논리에 길든다. 공직사회의 수많은 헛짓거리 때문에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하면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 그 결과 관료는 두 얼굴을 갖는다. 평소에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한다. 게다가 관료는 갑과 을의 얼굴을 오가며 1~2년만 버티면,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절로 자리를 옮기고 승진할 수 있다. 과장 이상의 관리자는 1년, 사무관 이하의 실무자는 2년꼴로 자리를 옮기는 순환보직의 은혜 덕분이다. 
 
- 대통령은 5년이면 바뀌고 정무직 장·차관은 1~2년이면 바뀌지만, 일반직 공무원은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근무한다. 나라 운영의 큰 방향은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임명되는 정무직에 따라 바뀌어도, 이를 보좌하고 수행하며 장기적인 시각을 갖춰 세밀한 정책을 다루는 주체는 전문성을 갖춘 기술관료(Technocrat)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직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기술관료가 있는가? 관료들은 때론 억울함을 호소한다.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은 때로는 불법을 넘나드는 지시를 서슴없이 하는 집권 세력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말이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정치 세력의 무능함과 뻔뻔함은 온 국민이 알고, 정권의 지시를 직접 받는 공무원 입장에선 '이래도 되나?' 싶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무관이 하는 일을 기준으로 정권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실무의 측면에서 정권의 영향력은 구체적 업무 열 개 중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직사회의 다양한 헛짓거리와 거대한 무능을 온전히 정치의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할 뿐 아니라 현실과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 내가 공직사회와 관료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민 공공 서비스라든지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부분이 있고, 어쨌거나 연 600조 원이 넘는 나라 예산이 사회 곳곳에 사용되면서 세계 14위권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직사회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외풍과 관료제적 관성 속에서 조직의 기민함과 유능함을 심각할 만큼 잃어버린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추잡한 정치권의 행태에 가려 관료제의 근본적인 무능이 덜 부각되는 덕분에, 반사이익처럼 행정의 영역이 오히려 좋게 평가받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체계를 자처하면서도 대다수의 관료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영리하게 움직이며, 정작 본질적인 일은 그만큼 치열하게 외면하는 기형적인 세계가 바로 공직사회다. 

- 한국의 주택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박철수 교수의 <아파트>에서는 우리나라의 단지 아파트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표현한다. 단지 외부로는 높은 담을 치고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어 도시 공간에 무신경하지만, 단지 내엔 모든 생활 편의시설 등을 갖추어 놓고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국식 대단지 아파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나도 단지식 아파트에 산다. 단지 형태의 공동주택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 나는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이보다 공직사회를 잘 묘사하는 문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직사회는 바깥의 현장과 현실에는 무감하면서, 그 안에서는 온갖 종류의 헛짓거리와 승진, 유학, 주요 보직을 둔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자신이 맡은 공적인 일에는 냉소적이고 무관심하지만, 사적인 이익과 생존을 위한 정열은 뜨겁게 타오르는 이 모순이, 바로 공직사회가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라는 거짓말에 가려진 진실이다. 이 책은 정권 차원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도 아니고, 사무직의 괴로움이나 관료제의 따분함을 논하는 글도 아니다. 그저 내가 지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공직사회의 무능한 일상과 좌절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이자 르포에 가깝다. 

 

자, 이제 당신을 내가 살던 공직사회라는 대단지 아파트로 초대한다.

 



-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10년간 일했다. 문체부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출판, 체육, 저작권을 담당했고, 퇴직하기 전에는 승진도 했다.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의 세계에서 10년을 근무하고 30대의 나이에 서기관으로 퇴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공직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1~2년 근무하다 로스쿨 등 다른 진로를 찾아 일찍 떠나고, 대부분은 30년 이상 재직하다 고위공무원으로 정년을 맞기 때문이다. 

- 내가 공직사회에 대해 과도한 분칠도, 마타도어식 비난도 없는 정확한 비판의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나의 어정쩡한 경력 때문이다. 공직에 잠깐 있다 떠난 친구들은 어차피 이 사회를 잘 모르기에 정확한 비판을 하지 못한다. 반면, 상당한 경력을 갖고 퇴직한 선배들은 공직사회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 사회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데 열중한다. 친정으로부터 받은 게 많아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공직사회를 좀 알기는 하되, 친정에서 별로 받은 것이 없는 나는 공직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쓰기에 제격인 사람이다. 

-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수평적인 관계를 좋아한다. 반면 공직사회는 집단주의적이고 수직적인 계급사회이다. 문체부가 공직사회에서 좀 말랑말랑한 문화를 자랑한다고 해도, 어차피 공직의 문화는 어느 부처나 비슷하다. 마치 공군이 군대에서 문화가 좋다고 자랑해도 군대는 군대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공직사회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할 만한 특유의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근무 시간 이후에도 무의미하게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보고서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토씨 하나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다. 이건 모두 내가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내용들이다. 

- 하지만 내 성격이 공직사회와 맞지 않는다거나, 공직사회가 사람을 좀 피곤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로 내가 젊은 나이에 퇴직한 이유를 다 설명할 순 없다. 공직사회는 상후하박(上厚下薄) 구조이기 때문에 경력이 오래되고 계급이 올라가면 많은 단점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시간을 버티면 해결될 일을 참지 못하고 퇴직할 만큼 나는 어리석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 그렇다면 나는 왜 공직을 그만두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먼저 엄마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엄마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조건을 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아빠의 월급으로도 그럭저럭 먹고는 살만했던 우리 집 상황에서 엄마가 고생을 자처한 이유는 엄마의 오랜 꿈 때문이었다. 빌라를 벗어나 목동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목동의 학원가로 보내세 남매 모두 그럴듯한 대학에 보내는 꿈. 지금 보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게 무슨 대단한 꿈인가 싶지만, 우리 집은 큰누나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친가 외가를 통틀어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고등 교육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다. 엄마는 1970년대의 흔한 집안이 그랬듯, 가난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한 걸 평생의 아쉬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자식 교육에 정말 진심이었다. 


- 고생 끝에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IMF 외환 위기로 집값이 빠진 틈을 타 곧 재건축이 될 아파트를 샀고, 낡은 5층짜리 오래된 아파트는 몇 년 만에 지하 주차장을 갖춘 12층짜리 아파트가 되었다. 아무리 집값이 빠지는 시절을 잘 골랐다고 해도 빵집을 하며 모아둔 목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비록 사람들이 '목동 아파트'로 생각하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도 아니고 사실은 강서구에 더 가까운 위치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행정구역상 주소가 '목동'인 신축 아파트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은 엄마에겐 큰 자부심이었다. 또한, 학원이 몰려 있기로 유명한 동네인 목동의 학원가에서 공부한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세 남매 모두 무사히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집안에서 세 남매는 비로소 고등교육을 받는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

- 나는 세 남매 중 가장 성실하게 엄마의 꿈을 이뤘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에 진학했고, 재학 중에 행정고시를 붙었다.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의식적으로 내 인생의 경로를 모두 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엄마의 꿈을 성실하게 따른 건, 그저 내가 무언가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다거나 특정한 진로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어른 말씀 잘 듣고, 어디 가서 사고도 칠 줄 모르는 '범생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안에서 부모님의 기대를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건 내가 엄마의 생각에 모두 동의해서가 아니라, 범생이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관성과 비슷한 그 무엇의 영향에 더 가까웠다.

- 자신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믿는 부모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자식이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부류와, 또 한편에는 자식이 자기만큼만 살기를 원하는 부류. 엄마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아들이 목동 아파트가 꿈이었던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를 원했다. 엄마는 종종 그걸 배운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차원이 다른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러한 삶은 생계나 돈의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자신의 이름도 높일 수 있는 삶이었다.

 

- 현실에선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면서도 자식에겐 돈보단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엄마의 마음을 지금도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부모는 아이들에게 돈보다는 명예,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공공의 선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게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였다. 보통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런 삶의 대명사는 판·검사나 고위공무원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차원이 다른 삶'이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시키기 위해 어른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환상 아니었나 싶다.

- 사실 정의는 조금씩 달랐어도 서울대에 온 모두는 '차원이 다른 삶'을 꿈꿨다. 부모의 재력과 관계없이 서울대에 올 정도로 공부를 잘하면 어떤 의미로든 인생이 달라질 거란 순진한 착각이 아직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꿈은 서울대생 특유의 성실함과 맞물려 일종의 조급함으로 나타났는데, 대부분은 신입생 시절이 지나자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회적인 대접도 상당했다. 중앙부처 '사무관'이라는 직위는 정부 내에서 중간 관리자에 해당하는 높은 직책이었고, 정부 밖에선 나이에 비해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 협회, 공공기관 등 업무 유관단체, 정부 용역을 주로 하는 교수, 보조사업을 노리는 지자체 공무원 등 수많은 관계의 사람들이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한 청년인 내게 기꺼이 먼저 명함과 인사를 건넸다. 

- 하지만 현실에서의 대접과는 별개로 나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데 실패했다. 공직은 그 직업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공공의 선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 차차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나 같이 공부 잘하고 우리 사회의 관습에 기댄 사고구조를 가진 평범한 '범생이'의 눈으로 봐도 공직사회는 지극히 이상한 사회였다. 체계적으로 무능했고, 구조적으로 비합리적이면서도 내부에선 그걸 지적하거나 고칠 의지가 없었고, '이상한 나라의 임금님'처럼 윗사람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추켜세웠다. 그런 분위기에선 너무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관료가 국가와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온몸을 갈아가며 하는 공직자의 업무 대부분은 정권의 업적을 그럴듯하게 빛내기 위한 쓸데없는 일이거나 관습에서 기인한 비효율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늘 나를 괴롭혔다. 반면 관료가 진짜 해야 하는 일, 가령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수정하고, 앞으로 생길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법령의 변화를 고민하며, 풀리지 않는 사회의 난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는 본연의 업무는 항상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 나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무력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숙련되었는데, 보도자료에는 '~산업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로 삼겠다'라는 식의 희망적인 포부를 밝히면서도 사람들이 이걸 반어법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냉소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대체로 공직사회에선 직급이 올라갈수록 무력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상위 직급일수록 정권의 사익에 코드를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직사회에선 그걸 포장하는 단어로 '정무적 감각'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도 아닌 직업공무원에게 왜 정무적 감각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 공직에 들어온 이후 내 삶은 구렁텅이에 빠진 느낌이었다. 공직사회의 무능함에 눈을 감고 무기력에 순응하면서 그저 승진이나 유학 같은 잿밥으로 버티기엔 솔직히 내 삶이 아까웠고, 정년까지 남은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당장 그만둘 용기도 내지 못했다. 어쨌거나 고시 공부에 바친 세월이 눈에 아른거렸고, 나를 향한 주변의 기대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했더니 별 볼 일 없는 공무원이 돼서 고생한다는 식으로, 내 마음속 원망과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기도 했다.

- 하지만 문제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시대의 여느 부모가 그랬듯 내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고, 그에 합당한 지원을 했을 뿐이었다. 그 

- '면접관의 말은 무조건 긍정한다.'
두 번째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강사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적중한 셈이다. 그는 10명 중 1명만 떨어트리는 행정고시 3차 시험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면접시험은 논리 전개를 얼마나 특출나게 잘하는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얼마나 성공적으로 관철하는지보단, 사람들 사이에서 무난한 태도와 역량을 발휘하면서 튀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험이었다. 

- 시험은 단순히 시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떨어트려야 하는 면접시험에선 상사의 어떤 말에도 토를 달지 않을 것 같은 무난한 화법이 합격에 유리했을지 몰라도,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절충해야 하는 실무에서는 토론 역량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공직사회의 의사소통은 항상 한 방향이었다. 위에서는 아래로 지시만 했고, 아래에서 위로는 보고만 했다. 대체로 지시는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하급자는 업무수첩에 내용을 받아 적는 형식이었다. 보고 과정 역시 단순했다. 하급자가 만든 보고서를 두고 상급자가 판단하는 식이었고, 이 과정에서 토론은 가장 쉽게 생략되었다. 아직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채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작업, 의견의 수평성을 전제로 현실의 조각을 모아서 상호 성실하게 논박하는 작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 나는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이 공직사회가 원하는 무난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특화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관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야 한다는 명목 아래 10명 중 1명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결국 상급자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성향의 사람을 뽑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보면 2010년 가을, 3차 면접시험에서 나를 떨어뜨린 면접관은 정말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논리적인 토론을 좋아하는 성격의 내가 공직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그는 단 몇 시간 만에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 그러나 공직사회에는 복종보다는 토론이 필요하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아돌프 아이히만을 분석하며, 악의 근본적인 원인을 깊은 증오나 사악함이 아닌 평범하고 무비판적인 복종과 직무 수행에서 찾았다. 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구현되었다. 평범하고 무난한 성격의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때로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아렌트의 섬뜩한 이론이다. 우리나라의 공직사회는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앞서 언급한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공무원들은 대부분 뻔히 잘못된 지시인 줄 알면서도 침묵했다. 블랙리스트와 같은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사골 우려먹듯 반복되는 정책의 재활용, 편리한 현상 유지, 뒷북 대응 등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은 토론이 박멸된, 튀지 않는 이들의 공직사회가 만들어 낸 무난한 복종의 결과물이다.  


- 나는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일찍 도착하여 구석 자리를 선점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는 인기가 많은지 옆자리도 금세 누군가 차지했다. 간단한 목례만 나누고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먼저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살펴보니 그는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의 사무관이었다. 초면의 어색함이 가시자마자 그는 '앞으로 연락드릴 일이 많을 것 같다'라며 꽤 너스레를 떨었다. 나의 입장에서 그의 연락을 받을 일이 많다는 뜻은 기재부에 회의 안건으로 바쳐야 할 조공이 많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외모에서 유추할 수 있는 연배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는 나보다 몇 기수 후배로 보였지만, 갑의 위치에서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데는 나보다 훨씬 능해 보였다. 

- 그래도 그는 공무원의 세계에서 비교적 '젠틀한 갑'이었다. 주말이나 밤늦게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일도 없었고, 회의 안건이나 보고서 내용을 다루는 데 있어 다른 부처 담당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서 있는 위치가 다른데 입장까지 같을 수는 없는 법. 민간 합동 회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그는 보고서에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야 한다며 출처 불명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사업 부처의 실무자인 내 처지에선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왔다.
 
- 온라인 공연은 산업적 측면에서 새로운 돌파구라는 점도 중요했지만, 모두가 얼어붙은 시기에 음악으로 전 세계 팬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음악 저작권료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본다면, 온라인 공연은 새로운 난제였다. 온라인 공연은 저작권법상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실시간으로 감상한다는 측면에서는 공연, 중계가 된다는 측면에서는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접속하여 본다는 측면에서는 전송이 결합한 새롭고 특수한 형태였다. 이 때문에 관계자들 사이에선 음악 저작권료를 얼마나 주고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부재했다. 따라서 팬데믹 기간 내내 온라인 공연은 성업을 이뤘지만, 그에 따른 음악 저작권료는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만 지속되었다. 업계에서는 팬데믹 초기부터 저작권료 정산을 위한 기준을 만들어 달라며 정부를 쳐다보았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라인 공연의 음악 저작권료에 대한 기준은 2022년 8월에야 신설되었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세계 최초로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를 시작한 2020년 4월부터 계산하면 무려 2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정산하지 못한 공연만 3~4백 건이었다. 음악 업계의 반응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다. 월급이 하루만 밀려도 노동청에 신고가 난무하는 세상인데, 정부 때문에 2년이 넘게 저작권료 정산이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 정부의 일 처리는 언제나 국민의 요구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에 명시된 절차를 준수해야 하고,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항상 선의의 이유로 정부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일부러 처분을 부작위(不作爲, 법률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하며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다. 축구 경기 후반전 막판,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볼을 돌리는 것처럼, 관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교묘히 시간을 끄는 방법을 안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언론, 국회 등 '시어머니의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 위원회 운영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예산이 없다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공조직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각종 사업비 안에 연구용역과 위원회 운영 예산을 교묘히 녹여 반영하기 때문에, 예산 각목 명세서를 하나하나 뜯어보아도 관련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 외부에선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심지어 예산을 심의하는 기재부 담당자조차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국회나 언론 등 외부에서 이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특별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속성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의 완충지대이다. 이런 완충지대는 논의와 검토의 과정을 길게 끌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적합하다. 즉,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호막인 셈이다. 공직사회의 이러한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 몇몇은 그 덕분에 연구용역비에 위원회 수당까지 살뜰히 챙긴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연구용역에 참여하거나 위원회에 위촉되어, 때로는 실질적인 성과 없이도 보상을 챙기고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한다.

- 그래도 그날은 촬영이 빨리 끝난 편이라고 했다.
촬영을 마치고는 삼겹살 회식을 했다. 한겨울 추위 때문에 저녁을 먹으면서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내게, 과장은 소맥을 섞어주며 '오늘 고생 끝에 얻은 교훈 같은 것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연예인은 오디오를 비우지 않기 위해 촬영 중엔 어떤 말이든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라고 반쯤은 농담인 대답을 했다. 하지만 매사에 진지한 과장은 나의 농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답했다.
"중앙부처에 가서 뭔가를 지시할 때가 되면 오늘 일은 잊지 마. 아래에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하고 지시를 해. 위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시하면 아래에선 오늘 너처럼 개 같이 구르는 거야."
한겨울에 하루 종일 고생하고 온 부하 직원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그땐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대충 뜻을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소맥을 들이켰다. 고생 끝에 먹는 술은 역시 달았다. 

- 계약 하나하나에 정부가 관여할 이유도, 권한도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다만 장관이 참석하지 말아야 할 논거를 하나라도 더 찾고 있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K리그가 직접 주관하지도 않은 경기에 주무 부처 수장이 참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고는 잘 끝났다. 장관이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원활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K리그에서는 아쉬워하며 초청 티켓이라도 보내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최대 수십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티켓인 점도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티켓을 받는 순간 경기를 공짜로 보고 싶은 동료 직원들에게 시달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7월 내내 메신저와 사무실 전화로 혹시 호날두 친선경기 초청 티켓을 받을 수 없냐는 직원들의 문의가 줄을 이뤘고, 나는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공짜로 그런 걸 구하느냐며 신나게 면박을 줬다. 

- 친선경기는 엉망이었다. 교통 상황이 지체되어 경기 시작 시각이 한 시간가량 지체되었고, 불법 스포츠 도박 광고가 에이 보드에 걸려 TV 생중계에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으며, 무조건 출전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던 호날두가 끝내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도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른바 '호날두 노쇼' 사건이다.

- 금요일 퇴근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경기를 보기 시작했던 나는 중계가 끝날 때쯤엔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다가온 거대한 불운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은 사람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대중의 분노만큼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다수의 의원실에서 정부를 향한 자료 요구가 빗발쳤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요구한 자료는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의 경기 참석 여부 및 정부의 초청 입장권 수령 여부였다. 국민적인 이슈인 만큼 정부를 어떻게든 엮어 자극적인 보도자료를 내거나 최소한 언론에 흘리기 위한 전형적인 그물망식 자료 요구였다. K리그의 호의를 거절하기 망정이었지, 혹여 한 장의 초청 티켓이라도 받았더라면 그 당시 분위기를 비춰 볼 때 국민적 질타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김영란법>에 의한 처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K리그와 '더 페스타' 간의 계약서 등은 기본이고, '지난 10년간 K리그 친선경기에 관한 자료 일체'와 같이 광범위하고 무성의한 자료 요구가 줄을 이었다. 요구하는 시한도 매우 촉박했기 때문에 의원실의 요청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일들은 쳐다도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 사실, '호날두 노쇼'와 관련한 민간의 계약서나 K리그 친선경기 등에 관한 자료를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국회가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는 관련 법령의 구조 때문이다.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등에 따르면 국회는 민간이 아닌 정부에 광범위한 자료 제출 요구 권한을 갖고 있고, 정부는 <민법> 등에 따른 감독 권한을 통해 민간 사단법인(이 경우 K리그)에 ...

- 독서율 43%는 정신과 문화의 소멸을 경고하는 숫자다.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듯, 출판과 책의 위기도 그렇게 다뤄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독서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 동시대를 담아내는 양서를 내지 못하는 출판 산업 전체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를 연 500억 원 수준의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 중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것도 한가로운 소리다. 이 와중에 정부와 출판계가 반목하는 모습에선 한심함을 넘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 하버드 대학교의 레아 프라이스(Leah Price) 교수에 따르면, 책이 죽어가고 있다는 주장에는 유명한 역사가 있다. 책이 죽어가고 있다는 불만은 18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신문 때문에 책이 죽어간다고 했다. 1990년대 초에는 비디오와 컴퓨터가 책의 종말을 가져온다고 했다. 프라이스의 요점은 이것이다. "모든 세대가 책의 비문을 다시 쓴다. 누가 책을 죽이는지만 바뀔 뿐이다. 하지만 책과 출판은 종말의 예측을 뛰어넘어 여전히 건재하다."

-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책의 비문을 다시 쓰고 있다. 종말의 예측은 이번에도 빗나갈까? 프라이스 교수의 귀납적 낙관이 우리 사회에서도 맞길 바라지만, 그냥 지나가는 위기는 없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쾌거였다. 그로 인한 독서 열풍은 서점가를 강타했고 그녀의 책은 한 달 이상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했다. 하지만 이 열풍은 우리 출판 시장의 허약함도 여실히 드러냈다. 단 한 명의 작가에 의존해 독서 열기가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 출판 시장이 처한 위기의 단면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정부가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지금껏 하던 수준의 관습적 지원에 머무르며, 출판계와 소모적이고 지난한 싸움을 한없이 이어간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출판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에 대해 비판하면, 내가 극도로 최소한의 정부를 지향하는 자유방임주의적 야경 국가관을 가진 것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 않다. 정부는 사회의 규칙을 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하기에 그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오히려 나는 우리나라가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4차 산업혁명은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일으키는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정부의 유능함은 기업의 성공이나 정치의 선진화만큼이나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 중 하나라는 뜻이다. 

- 하지만 우리 정부의 경쟁력은 객관적인 지표로 봤을 때도 높은 편이 아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매년 경제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를 종합하여 국가경쟁력을 평가한다. 2024년 한국은 조사 대상 67개국 중 20위를 기록했고, 거기에서 정부 효율성만을 따로 떼놓고 보면 39위를 기록했다. 경제성과 16위, 기업 효율성 23위, 인프라 11위라는 순위권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민간의 경제 활동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 효율성은 2018년 29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24년에는 39위까지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전체 순위는 27위에서 20위로 상승했다. 순위로 보면 민간에 비교한 정부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정부가 민간의 발전을 견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는 꼴이다.

- 표류하는 공직사회를 재건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다만 공직사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뒤엎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오히려 위험하다. 공직사회의 생리를 모르는 어설픈 개혁은 그나마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던 관료의 사명감과 의지마저 해치는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 사람 위주로 일이 돌아가는 공직사회는 소수의 혁신가보단 다수의 성실한 공무원을 필요로 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적 토양에서 무작정 연공서열을 타파하면 대다수 공무원이 드러눕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 공직사회는 대부분의 공무원을 낙오 없이 끌고 가려는 온정주의와 개인보단 조직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부정적인 면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이와 같은 정서는 공직사회의 하방을 지지한다. 공무원 서로 간의 눈치 때문에라도 완전히 일을 놓고 뻗댈 수는 없는 구조이고, 승진 때가 다가오면 조직의 기대와 다음에 승진을 기다리는 후배 때문에라도 자연스럽게 몸을 갈아 열심히 일하게 된다. 굳이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공무원의 세계를 어느 정도 돌아가게 만드는 암묵적인 법칙인 셈이다. 

- 그런데 무턱대고 연공서열을 없애면 공직사회의 하방을 지지하는 온정주의와 집단주의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 앞서 말했듯 그 결과는 대다수 공무원의 의욕 저하와 조직의 하방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드러눕는 공무원을 과감하게 자르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헌법과 법률은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신분에 대한 불안 없이 안심하고 맡은 업무를 수행하도록 신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과가 모자란다고 해서 대다수의 공무원을 자르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집권 세력이 능력과 성과를 빌미로 자신의 지지자를 일반직 공무원에 임용하는 엽관제(獵官制)가 득세할 수 있기에, 우리 사회의 공정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함부로 깨트려서는 안 된다. 

- 게다가 아무리 기준이 공정하다고 해도 평가는 조직의 상급자, 즉 사람이 한다. 능력과 성과대로 평가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 사내 정치가 지금보다 증가한다는 뜻도 된다. 사람 사는 조직 중에 연줄로 무리를 짓고 경계 안팎을 구분하고자 하는 사내 정치가 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이미 기회만 되면 이런저런 연출로 인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내 정치가 너무나 빈번한 곳이다. 여기서 불필요한 사내 정치가 더욱 증가하면, 조직의 성과는 필연적으로 감소한다. 진짜 일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를 쓸데없이 내부에서 소모하기 때문이다. 능력과 성과를 배양하기 위해 도입하는 연공서열 제도 폐지가 역설적으로 공직사회의 성과를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개연성이 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공직사회의 개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애초에 의도한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사례는 현장에 수없이 많다. 공직사회의 성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도입한 성과상여금 제도'는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로 단순히 연차에 따라 지급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일부 기관에서는 지급 후 다시 걷어 균등하게 분배하는 사례도 있었다. 1부의 <점심의 정치학>에서 자세하게 언급했듯이,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급자, 동료, 하급자가 개인을 평가하도록 한다면 ...

- 현실에서는 그 '한 분야'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부터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넓게 보면 부처를 뛰어넘어 비슷한 직위 전체를 한 분야로 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허청의 특허, 상표와 문체부의 저작권을 지식재산 직무군으로 한데 묶어 그 범위 안에서 근무하게 하는 방식도 가능하며, 이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배양하는 데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부처 간 승진 인원 등의 차이 문제로 인해 이처럼 부처를 뛰어넘어 직무군이 형성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한 분야를 부처 내에서 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첨예한 문제를 다소간 우회하지 않고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기 어렵기에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한 부처 내에서는 단순한 '실·국 단위의 조직을 뛰어넘어 직위 간 유사성을 기반으로 직무군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체부를 예로 들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 예술인 권리보장, 스포츠윤리센터, 감사실 등 주로 규제와 조사를 담당하는 직위를 한데 묶는 식으로 하나의 직무군을 설정할 수 있다. 

-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통해서 관료가 전문성을 갖게 되면, 그 효과는 단순히 정책의 품질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전문성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하급자를 대상으로는 제아무리 상급자라도 할지라도 잘못된 일을 무작정 밀어붙이기 어렵다. 부당한 명령이 우리나라 행정에서 쉽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진정한 행정가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관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Z자형 순환보직 제도의 관행을 개선하고, 인사 정책의 불필요한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관료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논의는 다음 장에서 다룰 예산 편성 방식의 대안 모색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이미 우리나라의 예산 편성 제도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하다. 정부가 그 방향을 신뢰하고 과감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 자, 이어지는 다음 논의에서는 제도적 대안을 넘어 더 깊은 차원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것은 바로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관료의 책임과 권한 간의 불일치라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 '주피터냐, 헤라클레스냐'
국회의 상임위원회가 열리면 장·차관이 출석하여 국회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실·국장급 고위공무원이 그 뒤에 배석한다. 언론에는 국회의원이 장관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자극적인 모습만 주로 등장하지만, 의외로 상임위원회 회의 전체를 지켜보면 정책에 대한 질의도 많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질의에서조차 생산적인 토론은 많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 방향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장관을 국회의원이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급 기관이 하급 기관을 대하듯이 질의 시간 내내 다그치기만 하는 국회의원의 행태를 보면 장관도 참 못할 직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정해진 시간만 타박을 들으면 되는 장관의 상황은 공무원의 처지보다는 훨씬 낫다. 공무원은 의원실의 보좌진에게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시간의 제한 없이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이 책에서도 계속 언급했듯 국회는 행정부를 인정사정없이 압박하는 데 능하고 실무자는 그걸 최전선에서 몸으로 흡수해야 하는 처지다. 

- 사실 정부는 국회의원의 의견을 웬만하면 수용한다. 지역구 사업에 예산 좀 지원해 달라는 정도의 요구 정도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가 국회의원의 요구를 유보하거나 반대할 땐 대개 법령에 어긋나거나 특정한 이익단체를 대놓고 편드는 등 정책의 합리성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유가 있는 경우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공무원은 수시로 보좌진의 호통과 협박에 시달린다. 국회 등 정치권이 바라보는 정부와 공무원은 '국민의 대리인'께서 시키는 대로 기계적인 집행을 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언론이나 여론이 기대하는 정부와 관료는 다르다. 우리나라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는 모든 사회 문제를 궁극적으로 행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예를 들어 특정한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는 반드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로 끝난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경우에도 일단은 슬쩍 정부에게 공을 넘기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비교행정학에서는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란 기준을 세워두고, 각 나라의 국민 대다수 혹은 국가 지도자가 추구하는 사회상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헤라클레스 형과 주피터 형의 이념형(ideal type)이 그것이다. 헤라클레스 형은 국가와 사회의 핵심이 공동체보다는 개인에 있다고 보고, 주피터 형은 개인보다는 국가공동체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 헤라클레스 형은 국민 개개인 의사의 총합이 곧 그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공직자가 해야 하는 일이란 그저 이들의 전체 의사를 파악하고 환경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때 행정의 주요 방법은 공청회, 투표, 참여 등이다. 반면 주피터 형은 공직자가 주권자인 국민이 합의한 기본적인 사항의 표현인 헌법과 법률을 구체화하여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본다. 주피터 형에서 바라보는 공무원은 수동적으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집행하는 도구가 아니다. 대신 적극적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주체의 역할을 한다. 이때 공무원의 역할은 미래를 예측하는 엘리트이며, 행정의 주요 방법은 지시, 확인, 계획 등이다. 헤라클레스 형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미국과 스위스가 있으며, 주피터 형에는 프랑스, 일본 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대한민국은 주피터 형에서 헤라클레스 형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은 과거 발전국가 시기 정부의 관료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뒤 최근에는 그 권한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정치권'을 단순히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 등 집권 세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책 결정 권한이 정부 관료들에게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민주 정치는 실제로 국민에 의한 정부가 아니라 투표자, 이익집단, 정치인, 그리고 관료 사이의 치열한 권력 경쟁을 통해 구현되므로, 관료에서 정치인 등으로 권력과 권한이 넘어간 상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관료가 겪는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료의 정책 결정 권한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부와 관료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묻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관료가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그 책임까지 온전히 지길 바란다. 이는 정책 결정 권한의 대부분을 휘두르는 정치권조차 마찬가지다. 

- 공직사회의 문제 중 많은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관료가 가진 권한은 약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신세이니 자연히 업무에 무기력해진다. 정무직으로 승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야 하는 최상층부 고위공무원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직공무원은 책임 소재가 있을 만한 일을 회피하는 것이 우월한 전략이 된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무능으로 귀결된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무력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낀다. 직업 관료로서 공익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봉사할 포부를 갖고 입직했지만, 현실에선 별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없으면서 여기저기서 치이기만 하기 때문이다. 

-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을 해소하기 위해선 관료의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헤라클레스 형으로 간다면 권한이 줄어든 만큼 관료의 의무도 가벼워져야 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이 거버넌스, 즉 정치권과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에 있는 것이므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정부나 관료가 아닌 거버넌스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이 경우 관료는 결정된 방향에 대한 집행 업무를 주로 담당하게 된다. 반대로 주피터 형으로 간다면, 관료의 권한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즉, 행정은 정치와 달리 정파적 이익이나 특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공공의 이익을 수렴하고 확장해 가는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관료는 정책의 방향과 계획, 연속성을 책임진 주체가 될 것이다. 

-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공직사회에 필요한 제도 등이 달라진다. 예컨대 헤라클레스 형에서 관료는 특정 정책의 집행을 주로 담당하므로 현재처럼 일반행정을 담당할 인사를 공무원 시험으로 선발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민간에서 ...

-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불쉿 잡'(Bullshit Jobs)이라는 개념이 있다. 2013년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Rolfe Gracber)가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탄생한 개념으로, 사회적 가치를 거의 창출하지 못해 사실상 무의미하고 쓸모없어 그 일을 맡은 사람을 괴롭게만 하는 일자리를 뜻한다.

- 그는 사모펀드 CEO나 법률 컨설턴트 등 사무직 경영자와 관리자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한국어를 포함해 열두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그의 글에 해당 분야 종사자들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열렬히 호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쓸데없고 무가치한 일을 얼마나 오랜 시간 하는지에 대해 고백했다. 2018년, 사람들의 고백을 바탕으로 그는 동명의 책을 내놓는다. 책에 따르면 불쉿 잡의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불쉿 직업이란 유급 고용직으로 그 업무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다. 그가 고용되려면 그 직업의 존재가 전제 조건인데도 말이다. 종사자는 그런 직업이 아닌 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다." 

- 정부의 관료는 어떨까? 책에 의하면 소방수나 도로 청소부와 같이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선 공무원을 제외한 정부 관료는 당연히 불쉿 잡에 가깝다. 특히 페이퍼 작업과 검토를 주로 하는 중간 관리직 이상의 정부 관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공공 부문의 쓸모없는 관료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는 너무도 자명하고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논증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효율적으로 굴러갈 것 같은 민간 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불쉿잡이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집중한다. 

- 우리나라 정부의 관료는 정말 불쉿 잡일까? 개인적 경험의 한계상 백만 명가량 되는 공무원 조직 전체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대다수 공무원은 각자의 직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불쉿 잡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은 대개 사회적 필요가 있는 업무를 맡고 있고, 업무 수행에 필요한 법적 권한과 수단도 갖추고 있으며,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공무원이 하는 일은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업무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물론, 보직에 따라 불쉿 잡에 가까운 자리도 있다. 차관보나 장관정책보좌관과 같이 특정한 업무가 없이 추상적으로 장관을 보좌하는 자리의 경우, 근거리에서 관찰하는 공무원들조차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대표적인 불쉿 잡이다. 하지만 장관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는 보직은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인 인연에 따라 국회 보좌관 출신 등의 정치권 인사에 나눠주는 자리에 가깝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전형적인 관료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 우리나라 정부의 관료가 불쉿 잡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문체부에서 내가 담당했던 음악 저작권료를 정하는 업무는 사회적 필요를 가진 일이었다. 음악 저작권료는 민간 사이에 합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였기에, 정부의 개입으로 저작권자와 사업자 모두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음악 산업이 성장한 만큼 정부가 향후 가격 승인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비판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저작권 환경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그 질서를 잡는 데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했다. 

- 마찬가지로, 연 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프로스포츠에 지원하는 업무도 단순한 예산 승인에 그치지 않는다. 연맹과 구단의 요구를 조율하고, 정부 지원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24년도 KBO 리그에 도입하여 화제가 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프로스포츠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 등은 문체부의 지원과 조정 역할이 없었다면 실현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프로스포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과도하다는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프로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는 관료의 역할이 아예 무가치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 우리나라 정부의 관료는 불쉿 잡이 아니다. 거듭 말하건대 법적인 권한과 수단을 갖고, 사회적인 필요가 있는 업무를 담당하며, 관료 스스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공직사회에 대한 시각은 불쉿 잡에 가깝다. 공직사회를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복지부동, 무사안일 아니던가. 하지만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해야 올바른 해결 방안이 나온다. 만약 관료가 정말 불쉿 잡이라면 그저 공무원의 숫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될 일일 것이다. 필요도 없는 직위를 유지하느라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대응방안은 정치적 구호는 될 수 있어도 정확한 문제 정의와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지금도 중앙부처에서 한 명의 관료가 담당하는 업무 범위는 너무나도 넓고, 따라서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다시 말해 중앙부처 공무원의 숫자를 줄인다고 해서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전혀 해소할 순 없다는 뜻이다. 

-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무원이지만, 특히 중앙부처 공무원의 업무는 무척 바쁘다. 해야 할 일은 항상 밀려있고, 사회와 변화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여러 번 상술했듯이, 관료에겐 무의미한 업무가 너무 많아 지금 세상의 변화를 쫓기는커녕 이 사회를 위해 진짜 해야 할 일까지도 쳐내는 경우가 많다. 공직사회 내부의 평가도 악화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수행한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느끼는 흥미, 열정, 성취감 등을 측정하는 직무만족 인식은 2018년 3.6점에서 2023년 3.38점으로 지속적인 하락을 기록하는 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무원의 절반은 이직을 희망하는 상황이고, 공시 경쟁률도 한창때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 공직사회에는 유의미한 업무와 무의미한 일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어, 관료가 진정 필요한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나는 그것이 공직이 내부에서부터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을 해소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업무의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정의가 끝났다고 해서 해결책이 바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관료의 무의미한 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의미한 업무가 관료와 공직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갈 것이다. 
 

- 공직은 '불쉿 잡'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쭉 다루었듯이, 관료의 업무는 때때로 '불쉿 잡'이라고 보일 만큼 비생산적인 헛짓거리로 가득 차 있다. 공직사회의 무기력을 해소하려면 어떤 업무를 걷어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먼저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가짜 노동은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ormark)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이 2018년 펼쳐 낸 동명의 책에서 만든 개념이다. 책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이 노동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노동과 닮아 보이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하며 임금을 받는다. 가짜 노동은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유사한(하지만 노동은 아닌) 활동, 무의미한 업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듣는 회의, 프로젝터가 꺼지자마자 잊어버릴 프레젠테이션, 일이 잘못되는 걸 막지 못하는 감시나 관리가 모두 가짜 노동의 예시이다.

- 공직사회에서 가짜 노동은 만연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뿌리 깊게 퍼져 있다. 국회가 열리기 전날 정부 부처의 전 직원이 새벽까지 질의를 기다려 만드는 장관의 답변 자료, 작성할 땐 밤을 새우지만 정작 발표하고 나면 누구도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매년의 업무 계획,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지만 심하면 몇만 페이지에 달하는 부처별 예산 사업 설명자료, 어차피 한 페이지로 정리하여 보고할 수십 페이지의 경제장관회의 자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풀 버전, 요약 버전, 장관 버전, 차관 버전, 국장 버전으로 한없이 나누어 작성하는 법안 자료, 하루에도 같은 내용을 양식만 조금씩 바꿔 취합하는 수십 가지의 업무 메일, 그저 윗사람의 자기효능감을 위해 만드는 현장 간담회와 그에 필요한 인력 섭외, 자료 작성, 의전 등등. 공직사회에서의 가짜 노동은 열거하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어쩌면 이 책 안의 모든 에피소드는 그저 내가 경험한 다양한 상황의 가짜 노동을 묘사해 둔 것인지도 모른다.

- 가짜 노동은 그 자체로 비효율적인 행위지만, 만연한 가짜 노동이 남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직사회가 진짜 해야 하는 일을 등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 공직사회에서 진짜 해야 하는 일은 일단 손을 대기 시작하면 무수한 고민이 따라온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가 저작권료를 정하는 권한을 시장에 돌려주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같은 독과점 단체의 지나친 가격 설정 능력은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현재는 비영리 법인만 저작권을 신탁받아 관리할 수 있는데, 경쟁의 활성화를 위해 영리법인의 참여도 허용할 것인가? 또 저작권료에 대한 분쟁 해결은 지금처럼 민사 법원에 맡길 것인지, 아니라면 특허심판원과 같은 저작권 심판소를 만들 것인지, 문체부와 같은 행정기관이 재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정책의 변화로 인해 고민이 필요한 논점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관료도 이와 같은 진짜 일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1~2년 있으면 자리를 옮길 테니 말이다. 고위공무원은 그저 대통령실과 장관의 단편적인 지시나 신경 쓸 것이고, 실무자는 양식만 조금 바뀐 채 같은 내용을 수십 번 요구하는 업무 메일 답장에 치여 하루하루를 견딜 것이다.  

- 지금의 구조 안에선 이 문제의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장수익은 경기장의 물리적 한계로 전 경기에서 매진을 기록해도 유의미한 수익의 증가를 가져오지 못한다. 중계권료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미디어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고, 그들의 지급 능력은 한계에 처해있다. 해외 중계권료가 변수지만 로컬 시장인 한국의 프로스포츠 리그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쟁력을 갖긴 어렵다. 기타 광고 수익 역시 포화상태에 직면한 건 마찬가지다.  

- 관료의 쓸모는 무엇인가? 정권이 바뀌고 정치적인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도, 한 분야의 관료는 30년을 바라보고 정부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하므로 우리 사회는 관료에게 그토록 과분한 혜택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 공직사회는 일을 못 한다. 관료가 게을러서도, 철밥통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은 공무원이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생긴다. 겉보기에 정교해 보이는 공직사회는 실상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으로 가득 차 있어 본질적인 업무를 왜곡하고 무기력을 양산한다. 우리는 그동안 무능의 본질을 외면한 채, 관료가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비효율과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방치했다. 

-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일을 걷어내고, 관료가 본래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관료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공직사회의 자기 방어적인 거짓말을 들춰내야 한다. 나는 공직사회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 실패했지만, 나의 실패를 딛고 누군가는 성공담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반대로, 관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짜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하였는가? 혹은 어려운 상황을 능숙하게 헤쳐 나갈 실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 나는,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윗사람의 심기를 보좌하는 데 익숙하고 남이 써 준 자료에 의존하며 진짜 일은 등한시하는 공무원은 어려운 정책적 환경과 관계없이 공직사회의 무능한 시스템이 길러내는 결과물이다. 옛 동료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정치인의 실력과 선의를 믿지 않는 만큼 관료의 그것 역시 믿지 않는다. 

-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 이상 공직자로서 나라의 녹을 먹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관료로서, 내가 이것만은 사회에 기여했다고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이제 공무원도 아닌데 굳이 책까지 써가며 공직사회를 비판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인생의 선배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겐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퇴직 관료로서 친정에 잘 보여야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을 텐데, 공개적으로 공직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든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 하지만 공직사회의 다양한 헛짓거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10년 이상 세금으로 월급을 받은 공직자로서 나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공직사회가 겪고 있는 붕괴 현상은 단순히 처우의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의 월급을 올린다고 해서 공직사회의 체계적 무능은 해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라는 그럴듯한 말로 무능과 무기력을 숨기는 공직사회의 관성에 있다. 이 관성이 지속되는 한 공직사회와 관료는 점점 더 굵어지는 눈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끝내 서해대교를 건너지 못할 것이다. 

- 공무원을 그만두고 꼬박 일 년 동안 이 책을 썼다. 그간 엄마에게는 내가 퇴직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초등학생 딸의 입단속을 해야 했다. "할머니에겐 아빠가 공무원 그만둔 것 비밀이야." 딸은 거짓말은 나쁜 거라며 학교에서 배운 대로 나를 가르치려 들었지만, 기특하게도 끝내 비밀을 지켜주었다. 고시를 붙고 승진까지 한 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쓴다고 하면 연로하신 부모님이 괜한 걱정을 하실까 봐 퇴직 사실을 숨겼지만, 사실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이 복잡한 마음과 상황을 모두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어릴 적 엄마가 그토록 강조했던 차원이 다른 삶. 내가 결국 그 삶에 어떻게 실패했는지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결국 한 권의 책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화곡동 빵집에서 시작하는 긴 이야기를 차근차근 시작하려 한다. 

- 끝으로, 이 책이 단순히 나의 실패담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공직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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