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호시노 유키노부 / 김완
출판 : 애니북스
출간 : 2010.04.16
설거지를 직접 하지 않게 되었더니, 컵 사용량이 급증했다.
물 한 잔,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새 컵을 쓰는 호화로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스팀 & 고온 건조가 손 설거지보다 깨끗하다
지름신의 단계는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하고,
물건들도 그럭저럭 자기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이제는 관리와 솎아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을 외부에서 새롭게 들이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하고 정리할 시간.
그 결심을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책들도 연결된다.
얼마 전 <이순신의 바다>를 정리하며 '해전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는 취지의 리뷰를 썼더니,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가 툭 튀어나왔다. 발간일도 4월 16일로 딱 떨어진다.
나는 어째서 이 책이 있을까-
확인해 보니 18년 3월 말, 여러 책들을 구매하며 함께 구매했었다.
하지만 기록만 남아있을 뿐, '왜' 선택했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책들이 줄어야 한다
호시노 유키노부의 다른 작품들은 접해본 적이 없지만, 허구와 현실을 연결하는 번뜩이는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고 느꼈다.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과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연결 짓는 이야기들이었다.
<경귀전>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당시대 일본의 포경 문화와 연결 짓는 대범함이 인상적이다.
사라진, 그리고 사라져 가고 있는 스텔라 바다소와 아마존의 우림을 현시대와 함께 바라보는 <죄의 섬>과 <아웃버스트>도 좋았고.
하지만 역시 '바다'가 중심이 되는, 그러면서도 '멸망'이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와닿는 작품은 표제작인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와 <레드 체펠린>이었다. 시대가 변화하며 사라져 간 기술, 사라진 함정(艦艇)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표제작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는 정말 그렇게 연결지어질 줄은...!
아주 흥미로웠다.
다른 작품을 좀 더 찾아 읽고 싶어지는 작가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체도 호.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뒤적거리다 이런 보물들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지껏 묵혀뒀었다는 죄책감보다는 이런 게 있었네!라는 즐거움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식빵과 레몬딜버터를 꺼내 토스트를 해 먹기로.
맛있길 바라며.
- 미국 해군 노틸러스 호, 1954년 취역. 수중 최대 속력 23노트.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 "하지만 슈타이너. 우리의 코스는 미그기에게 완전히 노출된 상태인데?! 차라리 잠항 상태로 배로우 해곡까지..."
"어디 해보시오! 이번에도 해빙(海海)과 해저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게 될 테니."
"!"
- "측심(測深) 소나 요원! 빈둥대지 말고 그래프나 잘 보게. 해저가 깊어지면 즉시 내게 알리고!"
"쳇... 하일, 히틀러~"
"잠자코 지시에나 따르라고, 양키. 무엇 때문에 서독 해군인 내가 항법 고문으로 승선해줬는지 모르나? 어설픈 네놈들이 작년부터 두 번이나 이 잠항에 실패했기 때문이잖아! 그리고 세계대전 때 독일 해군은 그런 경례는 하지 않았어! 다시는 입에 담지 말도록."
"어디서 잘난 척이야, 독일 놈이!"
- "지난 대전 때 'V2호'를 만든 독일 과학자들을 몰래 납치해 로켓 연구를 시켰다더군요."
"피차일반 아닌가? 자네들이 올해 허겁지겁 발사한 인공위성은 그 독일인 중 하나인 폰 브라운의 협력 덕에 완성했잖나."
"아무튼! 놈들은 자국에서 지구상 어느 곳에나 수폭을 처박을 수 있는 미사일을 얻은 거야! 그에 비해 미국이 개발한 것은 사정거리가 짧은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뿐. 이 '미사일 갭'을 극복하고 소련의 ICBM에 대항할 방법은... 상대국의 근해에서 IRBM을 쏘는 '폴라리스(북극성) 프로그램' 뿐일세!"
- "후후, 애들 싸움도 아닌데 그런 짓을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체펠린은 사람 이름일세. 독일의 비행선을 창시한 체펠린 백작의... 설마... 아니겠지."
"슈타이너 중령님?"
"부장님! 북서 방향에서 스크류 소리가 잡힙니다!"
"잠수함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당히 강력한 데다, 무언가 지진 같은 굉음도..."
"잠깐 줘보게!"
- 똑똑.
"무슨 일인가?"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부장이었군..."
"그냥 버트라 부르..."
"이거 말인가? U보트 시절의 기념일세. 영하 50도의 북극해에서 무심코 강철 해치를 맨손으로 잡았다가 이렇게 됐다네. 손바닥 가죽만 해치에 달라붙었지. 마지막 잠항땐 해빙 밑에서 더러운 공기로 이틀 밤낮을 버텼는데... 미국 구축함이 더 집요하더군. 뭐, 덕분에 버지니아 수용소에서 영어를 배웠네만."
"슈타이너 중령님, 당신의 경험과 기량은 훌륭합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함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이젠 서독도 자유진영의 일원이고..."
"다행이군. 동독인이었다면 적이었을 텐데."
"아,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은..."
- "또 연속 폭발음입니다! 이번엔 훨씬 먼 곳입니다!"
"러시아어로 '폴리냐'라고 하는데.. 해빙에 틈새가 생기거나 살얼음만 깔린 곳을 말하오. 그곳이라면 통상형 잠수함도 얼음을 깨고 부상해 공기와 전력을 보충할 수 있소."
- "즉, 그 폴리나를 이용하면 소련의 잠수함도 북극해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자연의 산물이잖나! 어떻게 그런 걸 믿고 작전을 짜나!"
"미그기가 해빙을 폭격해 인공적인 폴리냐를 만든다면? 두꺼운 얼음을 깨 쇄빙함 전진까지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작전이 되지 않겠소? 레드 체펠린을 중심으로 한 공·해군 합동 대잠(對潛) 부대라고나 할까- 폴라리스 프로그램이란 것도 낙관적이지만은 않겠소만?"
"...!"
- 1958년 8월 3일 오후 11시 - 북극점
"틀림없습니다. 레드 체펠린은 정지했습니다. 좌현 후방 300m!!"
"자기 소리를 끄고 우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
- "레드 체펠린을 포착할 수 있는 위치 아닌가, 함장!!"
"이런 예정이나 명령에 대해선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함수 5도 들어! 발사 후 즉시 심도 150까지 잠항!"
"...!!"
- "무슨 수작이냐! 격침했다간 우리도 끝장이야! 전쟁이 난단 말이다!!"
"슈, 슈타이너를 붙잡아라!"
"레드 체펠린이 위협이 될 거라 판단될 경우엔 격침해도 좋다는 지령이 있었나?!"
"그렇다, 여차하면 대서양 방면에 대기 중인 제3호 원잠 스케이트 호도 지원을 위해 달려올 예정이지! 설령 전쟁이 난다 해도, 지금이라면 놈들의 ICBM 따위는 숫자도 정밀도도 한참 뒤떨어지니까! 지금이라면 우리 측 전략폭격기가 소련 전역을 핵폭격할 수 있어!"
- "항공모함?!"
" 그, 그럴 리가! 소련이 항공모함을 건조했다는 말은 한 번도...!"
"... 역시 '그라프 체펠린'이었어."
"네?"
"독일 해군의 유일한 항모, 그라프 체펠린!"
- "킬 조선소에서 본 적이 있지. 미완성인 채 종전을 맞아 소련에서 압수했다고 들었네만... 연통이 없는 걸 보니 원자력으로 개조한 것인지도 모르겠군."
"원자력 쇄빙 항모...!!"
"하지만... 연통이 없는데 저 연기는 뭐죠?"
- "자침이다...! 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원자로에 물을 주입한 거야!"
"독일의 마지막 망령이 가라앉는다..."
- 북극해 횡단을 마친 노틸러스가 무엇을 목격했는지,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있다 해도 원자력 함대 구상을 추진하던 미국에게 있어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 3년 후인 1961년, 베를린에 세워진 '벽'은 독일을 동서로 완전히 분단했다.
차가운 전쟁- 초대국 간의 암운은 그 후 28년에 걸쳐 이어지게 된다...
<레드 체펠린>
- 히젠 지방 샤키지마 섬의 마을 기록-
"... 노인이 이르기를, 텐포(天保) 11년의 일로, 이형자(異形者)가 표류해 왔다고 하니 필시 남쪽 쿠로시오에 떠내려 온 만국(蠻國)의 귀인(鬼人)이었으리라. 그가 바로 샤키 마을 쉬운의 장본인일진대..."
- "히라도시마 섬 후미에 남만 배에서 나온 듯한 표류물이 떠내려왔다네. 나라에서 내려온 통지는 잘 알겠지? 이국 것을 발견하면 그게 무엇이건 즉시 신고하도록."
"야아, 여부가 있것으라."
"시마바라 동란이 끝난 지 오래라곤 하지만, 윗분들은 아직도 눈을 번뜩이고 계시네. 알겠나, 촌장? 어흠..."
- 히라도시마 섬 : 현재의 나가사키 현 북부에 위치한 섬. 포르투갈과의 무역 거점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금교령이 내려진 후에도 촌락단위로 몰래 신앙하는 자들이 많았다.
- 시마바라 동란 : 1637년, 아마쿠사 시로가 그리스도교도들을 규합해 일으킨 민란. 진압 과정에서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반란군 37,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 "... 살 길은 하나이고 나뉘면 둘이며 깨뜨리면 일곱...
성부님 배를 타고 성자님 바지랑대를 쥐고
성신님 줄을 당겨 하라이소가 항구에 들어오나니
돌나라의 달문으로 들게 하옵소서.
사카라멘토님 글로리아님 안으로 드시옵소서.
비루젠 산타 마리아 님...
아아멘..."
- 하라이소 : 포르투갈어 '파라이소(paraiso)'가 변한 말. 천국.
- 비루젠 : 포르투갈어 '비르젠(virgen)'이 변한 말. 동정녀 마리아를 일컬음.
- "큰고래는 이인이 불러들인 악마이거나, 이인을 거둔 것이 재앙의 원흉이었으리라."
"그리 증언한 노파는, 자신이 들었던 이인의 이름인 듯한 것을 수십 년간 잊지 않고 있었다는데"
"실로 무서운 그 이름은 에이하부(鱏波布)라 들렸다 하였노라..."
- 일본어로 에이(鱏)는 가오리를, 하부(波布)는 반시뱀을 말한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경귀전(鯨鬼傳)>
- 남미 브라질의 아마존이 지구 최대의 밀림 지역은 현재 급속도로 파괴되어가고 있다.
거목의 벌채, 퀘이마다. 난개발의 파도는 밀림을 가르는 교통로와 함께 안으로 안으로 퍼져간다...
이 녹색 낙원이 모조리 불모의 황야로 바뀌는 데 불과 20년도 안 걸릴 것이라 한다.
- 퀘이마다(Queimada) : 포르투갈어로 산불이라는 뜻. 여기서는 벌채를 위한 의도적인 방화를 뜻한다
- "숲의 신 자가! 잉카제국 시대 (14~16세기) 내지는 프리 잉카 문명 때의 것인가요...?"
"그거, 순금제라고."
"어... 어디서 이것을...!"
"아마존 강 상류 쿠루피라 산맥 기슭의 밀림지대지요. 목장을 만들기 위한 벌채가 진행 중인 곳이며, 우리 회사는 차후 관광 거점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그 현장에서 인부가 우연히 이걸 주워 고대도시의 유적을 발견했다더군."
- "틀림없이 잉카 시대 전후의 유적일 거야. 최후의 도시 빌카밤바와 비슷해..."
"이런 비유는 좀 이상하겠지만, 동충하초가 생각나는군. 유적 전체가 식물에 침범당한 느낌이야..."
"더 안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최근에 뜯어낸 흔적이 있어요."
"빌어먹을! 역시 인부 놈들이 명령을 무시하고...!"
- "옛날에 저 도시는 숲의 신이 노했을 때 멸망했어. 지금 또 숲의 신이 노했다. 거대한 분노야!"
"숲의 신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우리도 조금은 알 것 같군..."
"아직은 몰라. 너희 세계로 돌아갈 때면 알게 되겠지."
- 남미의 어떤 균류는 번식을 위해 개미에 달라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미의 몸에 들어가면 그 모자는 뇌에 침투해 행동을 컨트롤하기 시작한다.
개미는 원래의 행동을 모두 잊고, 식물의 줄기 등을 타고 가능한 높은 곳을 찾는다.
바람에 멀리까지 실려가기 쉬운 곳 그곳에서 포자가 온몸에 퍼져 아웃버스트(파열)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웃버스트>
- "쇠고기 비슷하지만 아니야. 난 이누이트 출신이라 바다표범 고기도 먹어본 적 있거든. 그거랑 좀 비슷해."
"바다표범?"
"멸종 위기종이라고 환경단체가 난리치긴 하지만, 모피 팔아보려고 밀렵도 했거든."
"해체된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바다표범 치고는 너무 컸어. 거의 코끼리 만하더군."
"코끼리?"
- "코끼리도 바다표범도 아닌 것 같아!"
"이 안쪽에 대장균이나 박테리아를 배양하기 위한 배양기며, 생화학 실험장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
"무 슨 소리야, 그게?"
"유전자 조작...!"
"저쪽에서 주운 책에 끼어 있던 사진이야. 러시아 해안에 떠내려온 것 같아. 이 시체를 통해 유전자를 채취했겠지."
"바다사자인가?"
"아마도 스텔라 바다소일걸...!"
"스텔라 바다소...?"
- 스텔라 바다소의 발견은 지금으로부터 2백 년쯤 전, 북태평양에 이름을 남긴 러시아의 베링 탐험대 소속 선의 스텔라의 보고를 통해 알려졌다.
베링 해 인근의 섬에 최대 11m에 달하는 해양포유류 무리가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사자나 코끼리물범의 두세 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으며, 매너티나 듀공과 동족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코끼리에 가깝다고 한다.
- " 그런데 동작이 둔하고 고기가 맛있던 탓에 뱃사람들이 앞다투어 남획했지. 그 결과 스텔라 바다소는 발견 후 겨우 30년 만에 멸종됐어...!"
"하지만 사실은 몇 마리가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유전자도 그걸 통해..."
"스텔라 바다소 부활계획이야... 한 마리당 3톤에 달하는 고깃덩어리니, 바다에서 방목하면 생산성 높은 식육이 되겠지."
- "정말 끔찍해. 옛날에 자기 손으로 멸종까지 몰아넣었던 생물을, 유전자 공학으로 억지로 되살리다니! 그것도 다시 한번 식량으로 삼기 위해...!"
- 인간은 죄를 조그마한 섬에 묻어둔 채 잊어버리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는 인간을 잊지 않는다-
- 그것은 영원히 우리를 고발하고 있다.
<죄의 섬>
- 먼 옛날, 지구의 생물사상 가장 강대한 짐승들이 융성의 극에 달했던 시대가 있었다.
- 중생대 백악기...
육지에서, 바다에서, 그들- 공룡은 온갖 생물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백악기의 종말과 함께 돌연 쇠퇴해 사라질 때까지는...
- 참고로 '백악기(白堊紀)'라는 이름은 그 지층이 영국에서 유럽에 걸쳐 분포된 백악질층에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중에서도 영불해협을 마주 보는 영국 도버의 하얀 단층이 가장 유명한 백악기 노두(露頭)였다.
- 영국과 유럽을 둘러싼 바다는 태고 시절부터 수많은 짐승들의 투쟁과 멸망을 지켜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 "저딴 양철 장난감 때문에...!"
"린데만 함장이다! 수리반을 타기실(舵機室)로 보내라! 이대로 가다간 크게 반전해 적 함대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된다!"
"비행기에서 떨어뜨린단 한 발의 어뢰 때문에 불침함 비스마르크가 발이 묶이다니-!!"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5월 27일 독일 해군이 자랑하는 5만 톤급 대형 전함 비스마르크는 영국 함대의 추격을 받으며 대서양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보다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항공모함을 조심하십쇼, 제독님. 함재기는 38cm 주포가 닿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니까요."
- "저기 떠 있는 초대형 소시지 같은 건 뭐야?"
"시험 잠수함 V100 '베오울프' - 발터 터빈인지 뭔지를 탑재한 비밀병기라더군."
- 독일의 과학자 헬무트 발터가 개발한 발터 터빈은 과산화수소를 사용해 수중에서 무산소로, 그것도 고속으로 항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추진기관이었다.
- 1940년, 최초의 발터 실험함 V80은 수중력 28노트를 기록했다고 하며, 이는 원자력 잠수함이 출현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 "터빈 출력 최대, 속력 20 노트!"
"심도 24, 각부 이상 무!!"
"아마 정찰기의 보고를 듣고, 영국 함대의 반수는 허겁지겁 초계에 나서고 있겠지. 하지만 나머지 몇 척은 비스마르크의 현재 위치가 확인될 때까지 항구에서 대기할 것이다. 2년 전 1939년 U-47이 잠입해 전함 로열 오크를 격침시켰던 스캐퍼 플로 군항... 우리는 군항째로 함대를 박살내 잠수함의 힘을 세계에 과시해 주자!"
- "후, 후방에서 스크류 소리가 고속으로 접근!"
"구축함이다!"
- "좋았어, 숨기 딱 좋겠다! 구축함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어!"
"이 부근에 다수의 침몰선이라면... 혹시-"
"대해함대(大海艦隊)?!"
"지난 대전 때 독일 해군의 침몰선인가...!!"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역사상 유명한 유틀란트 대해전을 치러낸 독일 해군의 자랑, 대해함대-
하지만 조국 패전 후 영광의 전함들은 전리품으로 인도 협의가 이루어지던 도중, 이곳 스캐퍼 플로 근해에서 모두 자침시켰다. 1919년의 일이었다.
- "..."
"..."
"이곳에서 구축함이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지."
- "후속함 프린츠 오이겐으로부터 발신- 후방에도 여전히 영국 중순양함으로 보이는 물체가 추적하고 있음!"
"이상한 걸... 이곳 덴마크 해협의 짙은 안개 속에서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다니."
"함장님, 아무래도 그 소문이 사실인 것 아닙니까...?"
"영국 해군이 우리의 'DT 게레이트'보다도 고성능인 실전 레이더를 배치했다는 것 말인가?!"
"레이더 따위가 비스마르크를 멈출 수 있을 것 같나?! 전함이여, 나오너라! 지난 대전의 원한을 갚아주마!"
- "적에게 완전한 레이더가 있다면, 우리는 벗어날 수 없어...!"
"베오울프는 아직 멀었나...? 이제 곧 스캐퍼 플로에서 전 함대가 출격할 텐데."
- "끄... 끈질긴 놈! 그 구축함입니다!"
"큭...!"
"발사 중지! 급속 잠항! 발사관 폐쇄!!"
"젠장, 레이더다! 우리가 부상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 "하. 함장님! 4번 발사관이 닫히지 않습니다! 고장입니다!"
"탄두가 아직 노출돼 있어서... 수압 때문에 폭발할 겁니다!"
"심도 유지! 전속 전진! 좌현..."
"늦었습니다, 적함 접근! 지금 폭뢰가 투하된다면..."
- "하우젠, 적이 바로 위에 오면 알려라!"
"예?!"
"4번 발사관 점화 준비!"
"무... 무모한 짓입니다. 함장님!! 수중발사를 할 수 있는 설계가 아닙니다!! 우리까지 당할 텐데...!"
- "왔습니다! 바로 위입니다!"
- 하지만 영국은 전 해군력을 투입해 비스마르크를 포위하려 했다.
각 함대에 장비된 최신식 수색 레이더가 대서양에 탐지망을 펼쳤다.
한때 세계의 대양에 군림했던 전함이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는 바다는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해저에 충돌하지만 말아라. 함저의 과산화수소 탱크가 파손됐다. 대폭발을 일으킬 거야."
- "힘내라! 마지막 전지로 배수펌프를 돌리면 기관을 쓸 수 있을 거다!"
"... 이런 바다 밑바닥에 자연 터널이 있을 줄이야... 2, 3노트의 해류로 남쪽을 향해 흐르는 모양인데..."
"벌써 사흘째입니다. 부장님! 함내 공기가 이젠.."
- "어뢰가 주타를 직격했다고?!"
"키가 90도 구부러진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크게 반전해적 함대 한가운데에 들어가게 된다!"
- 5월 27일 새벽부터 시작된 최후의 해전에서 비스마르크는 조함 불능 상태에 빠진 채 분전했으나, 30척 이상의 영국 함선에서 퍼붓는 집중포화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 "이 불침함 비스마르크가 가라앉는다면, 앞으로 그 어떤 나라도 전함 따위는 만들지 않겠군요, 제독님... 멸종한 종족... 백악기의 공룡처럼..."
"나이트하르트 대위가 할 법한 소리로군... 결국 그 친구가 이긴 모양이야. 자침 명령을 내리게, 함장."
- "그리고... 권총 있나?"
- "이 호수로군... 봐라, 스캐퍼 플로 군항, 포스 만(灣) 해군기지, 글래스고 공업지대가 모두 사정거리에 들어있다! 그 어떤 레이더를 쓴다 해도, 설마 국내에서 공격당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겠지!"
"탄도탄 전 탄 발사 준비! 서둘러라! 존불 놈들에게 독일의 힘을 깨닫게 해 주자!"
- 존불(John Bull) : 영국 사람의 별명. 전형적인 영국이름에서 유래.
- 북스코틀랜드 스캐퍼 플로 앞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든 그 가느다랗고 깊은 호수는, 일설에 따르면 지하를 통해 바다와 이어졌다고 하며 예로부터 전설의 안개에 에워싸여 있었다.
- 멸망한 짐승들의 전설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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