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독립근무자의 자유롭고 치열한 공적 생활

일루젼 2025. 4. 1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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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서메리(서유라)
출판 : 미래의창
출간 : 2019.03.29


       

           

월급의 노예에서 벗어나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길로 떠날 수 있을까?

이렇게 묻는다면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그것이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라며 동경 반 자조 반의 웃음을 되돌려 줄 것이다.

 

파트타임에 발 걸치지 않은 완전한 프리.

어느 업계에서나 가장 크게 성공한 이들은 그렇게 양 발 모두 온전히 자기 길을 걷는 이들이다.

그와 동시에, 가장 밝은 곳이 그러하듯이, 가장 어두운 곳 또한 그러하다. 

 

온전한 프리랜서로 수주를 받으며 일해 본 적은 없지만 자영업의 경험은 있는 처지에서 말하자면, 매일매일 매출이 얼마가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불투명함이 주는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사업이 성장세인 상태에서 그렇다면야 어깨춤을 출 상황이겠지만, -사실은 그런 상태여도 당장 다음 달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불안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번 달 고정비는 무사히 메꿀 수 있을지 매 순간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저자 서메리는 그런 불안정함까지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시야를.

 

저자는 딱히 끼가 넘치지도, 엄청난 재능이나 기막힌 기획으로 승부하지도 않았다.

이 책은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하는 저자가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다가, 그 길을 벗어나 평범한(?) 프리랜서로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가는 이야기이다.

기왕 직장이라는 고정된 속박을 벗어난 처지에, 어느 한 가지에만 묶이지 말라는 것이 프리랜서를 꿈꾸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한다.

출판 번역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출판사 대표이자, 크리에이터인 N잡 프리랜서로서 알려주는 그녀의 경험담을 즐겁게 읽어보자. 

   

 


   

 

 

- 아침 8시쯤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업무 시간에 제약이 없는 프리랜서는 마냥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고객들 대부분이 업무를 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편이 좋다는 것이 업계 선배들의 조언과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배운 사실이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트레칭... 아, 아니다. 일단 화장실에 갔다 온 후 꼬박 10분 전신 스트레칭을 한다.

- 밤사이 굳어진 근육을 풀고 정신을 좀 차리고 나면 커피를 내린다. 줄곧 스틱 커피나 드립백 커피를 이용했는데, 얼마 전 큰맘 먹고 캡슐형 에스프레소머신을 구입한 뒤로는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아침 식사로는 빵을 즐겨 먹는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때는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모닝 세트를 먹으러 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에서 빵에 커피를 곁들여 먹는다. 식빵을 구워 잼을 발라 먹거나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식이다. 아침 식사를 주로 이렇게 먹다 보니 최근에는 토스터에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머신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참아보려고 한다. 
 
- 식사를 마치면 간단히 세안을 한 뒤 달력에 적어 둔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오늘은 요즘 한창 작업 중인 단행본과 잡지 번역을 할 예정이다. 단행본은 지구력에 대해 다룬 교양 과학 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번역을 맡은 작품이고, 잡지는 3개월에 한 번씩 발간되는 철학·인문 계간지로 번역가 5명이 공역을 하고 있다.

- 할 일을 확인한 후에는 필요한 자료와 노트북, 마시다 남은 커피를 챙겨 들고 책상으로 가서 오전 내내 작업에 매진한다. 가끔은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까먹기도 하면서. 지금은 번역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때는 하루에 몇 시간씩 스케치를 하거나 포토샵으로 채색을 한다. 번역을 할 때는 텍스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요한 환경에서 일하는 편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틀어 놓기도 한다.

- 배꼽시계가 정확한 편이라 12시에서 1시 사이가 되면 자연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점심에는 주로 밥을 먹는다. 한 끼 분량씩 나눠 얼려 놓은 밥을 해동하고, 냄비에 들어 있는 국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낸다. 국이나 찌개는 보통 내가 직접 끓이지만, 밑반찬은 고향에 계신 엄마가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재료를 봐 가며 달걀말이나 제육볶음처럼 든든한 단백질 반찬을 하나 만들어 먹는다.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에게도 점심은 일과시간의 큰 낙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급한 게 아니면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차리고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한다. 

-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오후 작업 시간이 찾아온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프리랜서 생활 초기에는 집에서도 종일 집중이 잘 되었는데, 최근에는 특히 배가 부른 오후에는) 종종 나른하고 도통 집중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분위기도 바꾸고, 사람 구경도 할 겸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카페로 나간다. 오후 1시경에는 어느 카페에 가도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지만, 딱 30분만 지나면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거짓말 같이 한산해진다. 내가 노리는 건 바로 이 타이밍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와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편다. 집에서는 글을 읽고 쓸 때에는 음악 소리나 TV 소리가 방해처럼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카페에서 틀어 주는 음악은 집중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마도 음악과 풍경, 주변 사람들의 잔잔한 대화가 뒤섞여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일 터이다. 

- 여기까지가 매일매일 비슷한 평일 낮의 일상이다. 가끔씩 직장인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거나, 문득 예정에 없던 조조 영화를 보러 가는 소소한 일탈을 누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 일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저녁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이보다 조금 더 다양하다. 지인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면 치킨과 맥주, 돗자리를 싸들고 한강 둔치에 마실을 나가기도 한다. 이때 맛집 앞에 나란히 줄을 서거나 북적대는 한강에서 자리를 물색하는 역할은 대개 내 몫이다. 물론 일이 많은 날에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남은 작업을 마무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런 약속 없이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 요리나 손바느질처럼 혼자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약속이 없어도 특별히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지만, 갑자기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맥주 한잔 살 테니 나오라며 동네 친구들을 꼬드기기도 한다. 스무 살 때 상경한 이후로 쭉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아직은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몇 명쯤 남아 있다.

 

-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 후에는 찬찬히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오늘 한 일, 내일 할 일을 하나씩 짚어보다가 잠이 든다. 눈을 뜨고 나면 내일도 오늘처럼 소소한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 처음 만나는 사람이 직업을 물으면 나는 "프리랜서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역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립니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이것들은 모두 내 일이자 직업이다. 하지만 4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번역과도, 글과도, 그림과도 아주 거리가 먼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오로지 회사가 싫다는 마음 하나로 기술 하나 없이 퇴사를 선택한 백수였다.


- 그때까지의 나는 어떻게 보면 성실하게, 또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남들처럼 대학에 갔고, 졸업할 무렵엔 정해진 수순대로 취업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직업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매달 25일이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회사였다. 그나마 한 번도 멈추거나 턱에 부딪히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었다. 

- 하지만 돌이켜 보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다. 내 인생은 오롯이 나의 것인데, 나는 어째서 남들의 시간표에 내 인생을 짜 맞추려 그렇게 발버둥을 쳤을까. 뚜렷한 목표도 없이 공부하고, 오로지 성적에만 맞춰서 대학과 전공을 정하고, 졸업이 다가올 무렵에는 허둥지둥 토익과 인·적성검사를 준비했다. 이런 내가 월급이나 복지, 업무 강도처럼 피상적인(그리고 막상 다녀 보면 대부분이 알려진 것과는 다른 기준만 놓고 직장을 선택한 ...

-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퇴사란 회사와의 완전한 작별이 아니라 또 다른 회사로 향하는 길목이다. 나 역시 그랬다. 특별한 사업 아이템도, 자본금도 없는 데다, 당장 돈 벌기를 중단하면 누구도 나를 먹여 살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직을 전제로 하지 않은 퇴사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나 같이 평범한 월급쟁이들에게는 이전 회사에서 느꼈던 단점을 조금이나마 덜 가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 퇴사의 또 다른 정의였다. 굳이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다음 회사로 들어가기 전에 쉬는 시간(혹은 공부하는 시간)을 조금 길게 가지면 퇴사, 쉬는 시간이 없거나 아주 짧다면 이직이라고 ...

- 입사 지원서에 취미와 특기를 기재하라고 요구했다(요즘에도 이런 구시대적 기업이 있을까? 아마도 있겠지. 회사란 그런 곳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 두 칸을 채운 각종 활동들은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지, 실제 나의 취향이나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조업 영업직에 지원할 때는 일요일 아침마다 등산을 간다던 내가 패션 업계 MD에 지원할 때는 일요일 아침마다 동대문에 쇼핑을 가는 인간으로 둔갑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늦잠을 잤다. 

- 이번에는 달랐다. 태어나서 나 자신의 취미와 특기가 이토록 진지하게 궁금한 적은 없었다. 어떤 직업을 택하든 경력도 인맥도 없이 회사 밖에서 자리를 잡는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고,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려면 내가 조금이라도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틈틈이 내 취미와 특기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기쁠까? 어떤 일을 할 때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던가?

 

- 일상을 돌아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 내는 경험은 참으로 묘한 감정을 자아냈다. 분명히 막연하고 두려운데, 어디선가 근거도 없는 희망이 나타나 조심스레 숨어 있던 설렘을 부채질했다. 잘만 된다면, 나는 회사를 벗어나 지금 적은 것들 중 하나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 그리고 현재의 나는, 거짓말처럼 회사를 벗어나 그때 적었던 것들 중 여러 개를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 굳이 취미와 특기를 별개의 항목으로 분리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아마추어의 영역인 이상 요리는 취미이고 글쓰기는 특기라는 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둘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아 성찰용이 아니라 퇴사 후 가질 직업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목록인 만큼,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버리고 도전할 정도로 좋아하는 분야인지, 콘텐츠로 삼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분야인지 따져 가며 나름대로 신중하게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그래도 저 목록이 너무 평범한 취미의 집합 같아 보이는 것은 실제로 내가 너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일들인 동시에 내가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한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혹시 저 목록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전공으로 따지면 몇 개의 단과대학을 넘나들 정도로 관련 없는 항목들이 섞여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혼자서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목록 중 유일하게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일인 외국어 공부조차도 나는 학원이나 스터디 대신 외국 방송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혼자 하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내가 어째서 회사 생활을 그토록 힘들어했는지 새삼 이해가 되었다.

- 개중에는 나름 알찬 커리큘럼을 보유한 곳도 있었지만, 딱 봐도 사기성이 짙어 보이는 곳도 수두룩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기술부터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시간과 돈을 허무하게 날리고 싶지 않다면 배움터를 고를 때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았다(실제로 프리랜서로 독립한 지금의 관점에서 조언하자면, '일정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데뷔, 고객 연결, 혹은 월 수익 얼마를 보장한다'는 식으로 광고하는 기관은 분야를 막론하고 일단 거르길 바란다. 프리랜서 바닥의 철칙 중 하나는 절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프리랜서에 도전하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내다봐도 얼마간은 배고픈 생활을 할 것이 뻔했다. 소심한 내가 그 기간을 온전한 정신으로 버텨 내려면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직업의 성격이 내 개인적인 성향과 맞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약 없는 발버둥을 치다가 지레 포기하지 않으려면 일정한 기간 안에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야 했다. 

- 통역사와 요리사는 통·번역 대학원과 요리학교라는 공인 교육기관이 있는 만큼 저 조건에 안정적으로 들어맞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만큼이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현직자들의 조언이 많아 후보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핸드메이드 소품 판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드는 것까지는 혼자 할 수 있다 쳐도, 한 회사에도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내가 물건을 광고하고 판매하며 수많은 고객을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다(물론 고객이 많지 않다면 이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심각한 문제 아닌가).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는 홀로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는 점에서 내 성향과 맞아떨어졌지만,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입상하지 않는 한 초심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은 직업이라 선뜻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가 바로 번역가, 그중에서도 출판 번역가였다. 출판 번역가는 내 취미와 특기 중에서 책 읽기, 글쓰기, 외국어 공부라는 세 가지 영역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직업이었고, 온전히 혼자서 작업하는 일이기도 했다. 대학원은 물론이고 믿을 만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도 몇 군데 보였고, 그곳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실낱같은 기회나마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뭘 잘 모르던 당시에는 내 전공이 영문과라는 사실도 출판 번역가라는 선택에 힘을 실어 주었다(영문과는 사실 출판 번역 업계에서 득이 되는 전공은 아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 나는 그렇게 프리랜서 출판 번역가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그렇게 길고 험난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그리고 그 길목에서 웹툰 작가부터 1인 출판까지 온갖 낯선 분야에 휘말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 어쨌든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목표를 정한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정말이지 나다운,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퇴사 준비를 시작했다.

- 아무리 회사에 남은 미련이 없다 해도, 지금껏 쌓은 경력이 아깝다는 마음이나 월급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희한하게도 모순적인 조급증이 되어 찾아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떠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아마도 다가올 월급일이나 카드 대금 결제일쯤에 결심이 약해져 발목이 잡힐 것만 같았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당장 이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절차에 맞춰 입사한 이상 퇴사하는 순간까지도 절차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다달이 나가는 월세며, 아직 만기를 채우지 못한 적금을 생각하면 무작정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도 분명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다. 나는 사직서를 던져 버리고 당장 다음날부터 출근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3개월 안에 다가오는 적금 만기일을 잠정적 퇴사일로 점찍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만기가 될 때까지 월급으로 적금을 붓다가이자까지 야무지게 타서 시원하게 그만두는 편이 퇴사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 물론 달라진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미 곤죽 상태인 팀원들에게 추가 업무를 얹어주면서 "혹시 힘들어? 힘들면 꼭 솔직히 말해야 해"라고 덧붙이던 상사에게 처음으로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가 아니라 "힘들 것 같습니다. 이미 다른 일이 너무 많아요"라고 대답해 보았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용기 내 던져 본 대답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어깨를 까딱이는 정도의 반응만 남기고 허무하게 흩어졌다. 덕분에 나는 새삼 내 결심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 기왕 3개월을 더 버티기로 한 거, 남은 기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퇴사 후의 생활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을 보태야 한다는 오기도 생겼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보낸 마지막 3개월 동안 '지름'을 최대한 자제하고 악착같이 저축을 했다. 지금 구입하는 구두 한 켤레, 원피스 한 벌 값이 언젠가는 절박한 일주일치 최저 생계비가 될지도 몰랐다. 회사 생활이 미치도록 답답할 때마다 위안 삼아 접속하던 인터넷 쇼핑몰도 끊고, 은근히 생활비를 많이 잡아먹는 외식 약속도 최대한 자제했다. 

- 하지만 이런 절약은 퇴사까지 남은 기간 동안 내가 했던 소심하디 소심한 다른 준비들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했다. 나는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의 유효기한을 최대한 연장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은행을 찾아가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도 최대로 늘렸다. 더럽고 치사하긴 해도, 회사가 보장하는 월급과 4대 보험을 잃는 순간 우리나라 금융권이 나를 헌신짝처럼 버릴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이건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4대 보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은행과 카드 회사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정말이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 업무 중에는 다른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에 없이 열심히 관찰했다. 번역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예전 같았으면 담당자에게 휙 전달하고 말았을 번역 서류를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리부나 총무부의 업무를 최대한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는 두 부서에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었던 여러 가지 일들(연말정산, 세금 계산, 비용 처리, 물품 주문, 하다못해 프린터 토너 교체까지)을 이제부터는 스스로 처리해야 할 테니까.

-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머핀의 포장지를 벗긴 뒤 해시포테이토와 커피를 번갈아 먹고 마셔가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눈을 떴을 때 느껴졌던 위장이 사라진 듯한 허무함은 우습게도 패스트푸드점의 모닝세트 하나로 쉽게 채워졌다. 마음도 뱃속도 든든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더 이상 회사에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 이제 나는 우중충한 기분을 감춘 채 좋은 아침이라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안녕한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의 안녕을 물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 대가로 매달 25일 들어오던 월급을 포기한 기분은 뭐랄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 나는 퇴사 후 약 3개월 뒤에 개강하는 아홉 달 코스의 출판 번역 아카데미에 등록해 둔 상태였고, 그 3개월 사이에는 영어 학원에서 두 달짜리 집중 강좌를 수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퇴사 후 한 달 동안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장기 여행을 떠날까 생각해 봤지만, 수입 한 푼 없는 상황에서 목돈을 쓰는 것이 찜찜해서 우선은 뒤로 미뤄 두었다.

- 기왕 퇴사까지 했으면서 여행도 포기하고 집에 처박혀서 시간을 보내기가 아깝지 않았냐고?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돈도 거의 쓰지 않고 보낸 퇴사 후 그 한 달은 지금 돌이켜 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선 책장에 꽂힌 채 먼지만 쌓여 가고 있던 책들을 실컷 읽었다. 독서 따위는 거들떠볼 시간도 없었던 직장인 시절, 그저 사놓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던 책들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레시피를 찾아보고 집에서 20분 거리의 마트까지 걸어가 장을 본 뒤 직접 만들어 먹었다. 어떤 날은 면부터 육수까지 직접 치대고 썰고 우려서 칼국수를 만들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하루를 꼬박 투자해 빵 굽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처음 시도하는 요리에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이야, 서메리, 칼국수집 차려도 되겠는데?), 또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빵은 그냥 빵집에서 사 먹자) 이 모든 기억들은 소소하게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 가끔씩 약속이 잡힌 날에는 운동화를 신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갔다. 집에서 도보 1시간 반 정도 거리인 망원동이나 한남동 정도는 망설임 없이 걷기를 택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내가 가장 아까워하던 자원은 바로 시간, 그중에서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운전면허가 없던 나는 늘 버스와 전철, 택시 중에서 조금이라도 이동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교통수단을 택했고, 행여 그 선택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가는 내내 세상을 잃은 듯 우울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효율 따위는 접어 두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이동방법을 택한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두 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지금껏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던 거리의 풍경을 새삼 깨달았을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쫓기듯 살면서도 내가 원했던 행복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고, 저렴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아주 사치스러운 행복.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 각각 3개월 과정의 입문반, 중급반, 실전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강좌 설명을 보니 입문반에서는 번역에 필요한 영문법과 국문법 강의가, 중급반 이상에서는 본격적인 번역 기술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돈과 시간 면에서 한정된 자원밖에 갖고 있지 못했던 나는 '기초 번역 테스트에 통과하면 입문반을 건너뛰고 바로 중급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문구를 읽은 순간부터 곧바로 중급반에 편입해 입문반 3개월에 해당하는 시간과 수강료를 아낄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내 실력이 바로 프로가 될 만큼 빼어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색이 영문과 출신인 데다, 평소에 책도 좀 읽고 글쓰기도 남들보다 못하지 않는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내가 입문반 수업부터 들어야 할 거라고는 솔직히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수강 신청서와 함께 테스트 번역문을 제출하고 마음 편히 결과를 기다렸다. 자신감이 너무 넘친 나머지 신청 메일의 말미에는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따위의,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멘트를 덧붙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며칠 후 내게 날아온 답장에는 '현재 수준으로는 입문반부터 시작하셔야 할 것 같다'는 단호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답장을 읽는 순간 등이 뻣뻣해졌다.  

 

- 어쩌면 이미 직장마저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내 실력이 생각보다 형편없이 모자라다는 초조함을 잊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단어 외우기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찾아오는 '고등학생 때 이렇게 노력을 했으면...' '대학생 때 이렇게 고시 공부를 했으면...' 하는 식상한 잡념을 몰아내며 두 달을 꼬박 투자한 결과, 내 영어 실력은 아직 부족한 와중에도 스스로에게까지 느껴질 만큼 훌쩍 성장했다. 코스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턱걸이로나마 하나 남은 상급반의 진급 테스트에 통과하기도 했다. 

- 나는 그렇게 어깨를 짓누르던 육중한 불안에 티끌만큼의 희망을 더한 상태로 본격적인 번역 기술 공부를 시작했다. 부디 이 기술이 회사 밖에서 먹고살 길을 열어 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 그 긴 시간을 투자해서 얻어 냈건만, 회사의 톱니바퀴에 몸을 끼워 넣지 않고는 쌀 한 줌, 라면 한 봉지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타이틀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배울 기술은 (물론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전제 하에) 내가 세상 어느 곳에 있든 적어도 내 입에 풀칠 정도는 시켜 줄 것이다. 그 시점에서는 그게 바로 내 목표였다. 뭐가 됐든 회사 없이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

- 아카데미 과정은 번역에 꼭 필요한 문법 지식을 배우는 입문반과 문맥을 살리고 오역을 없애는 훈련을 받는 중급반, 고난도의 텍스트를 반복해 실습하며 데뷔 평가를 받는 실전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3개월 동안 입문반 수업을 들으면서 중급반 편입 테스트에 떨어진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직 영어 실력도 국어 실력도 모자란 내게는 기초 강의도 낯선 지식 투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입문반 수업을 듣는 그 3개월은 내가 그때부터 첫 계약을 따내기 전까지 겪은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아니 사실상 거의 유일하게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던 기간이었다.

 

- 하지만 수준에 안 맞는 성인용 도서에 집착하지 않고 어린이용 책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어른용 책을 읽고 번역한담...' 했던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일단 영어책의 구조에 익숙해지자 텍스트의 수준을 높여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길지 않았다. 20년 이상 깔짝깔짝 영어 공부를 해 온 세월이, 그리고 한글로나마 다양한 책을 읽어 온 노력이 아주 의미 없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동화책 시리즈 10여 권을 몇 주 만에 다 읽고 초등학교 고학년용 원서인 <해리 포터>로 넘어갔을 때는 확실히 서점에서 같은 페이지를 넘길 때 들던 당혹감이 상당히 줄어 있었다. 

 

- 호기심으로 수강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었고, 수업 분위기 또한 프로 출판 번역가를 꿈꾸는 수강생들에 맞추어 진지하고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번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과 '프로 번역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내 관심사 또한 전자에서 후자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입문반에서 기초 지식을 쌓을 때까지만 해도 내 주된 고민은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을 만나면 어떡하지?', '마감에 늦으면 어떡하지?' 같은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배움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생각 자체가 지극히 안이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다. 업계를 막론하고 한 분야의 프로라면, 그것도 경력과 평판이 전부인 프리랜서라면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고 납기에 맞추지 못한다는 건 애당초 자격 미달이었던 것이다. 

- 한때 최종 목표라고 생각했던 자질이 프리랜서에 입문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새로운 종류의 초조함이 나를 엄습했다. 알고 보니 세상에는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번역가들이 수두룩했다(마찬가지로 꽤 괜찮은 그림 실력, 글 실력, 요리 실력, 영상 편집 실력을 가진 프리랜서들은 정말 수두룩 빽빽하게 존재한다). 특별히 천재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존재를 어필하고 일감을 따내려면 업계와 관련된 기술 이외에도 무언가 내세울 수 있을 만한 플러스알파가 필요했다.

- 아카데미 생활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찾아온, 고만고만한 실력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은 맨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당시 내 마음을 괴롭혔던 질문을 또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평범한 전공에, 평범한 경력에, 취미와 특기마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도대체 무슨 수로 눈에 띄는 플러스알파를 만들어 낸단 말인가?

- 도전장을 내민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영문과'라는 전공은 출판 번역가의 세계에 진입하고 살아남는 데 전혀 유리한 요소가 아니었다. 외국에서 나고 자라거나 유명 외국 대학을 나온 경쟁자들이 파다한 현실에서 국내 4년제 사립대학 영문과 졸업장은 전혀 대단한 명함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세상에는 영어와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가지고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경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펌에서 일했다고는 하지만 변호사도 아니고 평범한 사무직원이었던 내겐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전문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원어민이 아닐 바에야 평범한 어문계열 전공이나 애매한 사무직 경력보다 특색 있는 전공이나 경력을 가진 경쟁자가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 통째로 읽고 요약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하는 일이었다(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책 전체가 아니라 나 같은 '리뷰어'들이 요약해 준 A4 10~15장 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그 책의 출간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출판이 확정된 번역서를 옮기는 정식 번역가는 수백만 원의 번역료를 받지만, 그 선택에 몇 숟갈 정도의 확신을 기여한 리뷰어에게는 권당 1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수료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책이 출간된다 해도 리뷰를 한 사람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평균 200~300페이지에 달하는 원서를 읽고 분석하는 데 못해도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 내내 일해도 통장에 50만 원이 꽂힐까 말까 한 단가는 받을 때마다 자부심이 아닌 자괴감을 유발했다.

- 내가 어떻게든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싶어 쥐꼬리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자투리 일에 매달리던 몇 개월 사이, 함께 번역가를 준비했던 동기들 중 세 명이 정식 번역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차례차례 들려왔다.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남들보다 이르게 데뷔 기회를 잡은 동기들은 실력과 더불어 각각 미국 대학 졸업, 화학공학과 전공, 교사 자격증 보유라는 '눈에 띄는'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다. 

 

- 주어진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었다. 자투리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입을 올리지 못했던 나는 5년간 조금씩 모아 온 저축이 떨어지는 순간 이 도전도 끝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끼고 아껴봤자 추가적인 수입원을 만들지 못한다면 앞으로 고작 1년 정도가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일 터였다.

- 나는 자신을 타일렀다. 어차피 그만둔 회사, 어차피 단절된 경력이라면 그냥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한번 견뎌 보자고. 지금 포기하나 1년 뒤에 포기하나 별로 다를 것도 없지 않느냐고. 만약 그 기간이 지날 때까지도 눈에 띄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취업 준비를 하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든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고. 

- 그렇게 버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 해 봤자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A급 인재가 못 된다면 B급 인재 중에서 B+급이라도 한번 되어 보자는 것이 내가 택한 전략이었다(사실상 유일한 옵션이기도 했고). 별다른 특장점도 없으면서 성실하다는 평판마저 잃으면 끝이라고 생각한 나는 마감 절대 어기지 않기, 까다롭고 돈 안 되는 일도 웃으면서 받기, 업무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 유지하기 등 나만의 룰을 세운 뒤 정말 이를 악물고 지켰다. 

-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들어온 웹툰 일감에 어설프게나마 도전하는 동안, '프리랜서는 내키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유튜버가 TV에 출연하고, 작가가 콘서트를 여는 시대인데 나는 어째서 한 우물에만 목을 매고 있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번역가 지망생'에서 '프리랜서 지망생'으로 넓히고 점점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 다만 내가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애매한 웹툰 하나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프리랜서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업로드가 몇 화쯤 진행됐을 무렵부터는 긴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 다른 일감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답답하고 지지부진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기회의 물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트이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 사소해 보여도 이 노력은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에이전시에서 요리와 일러스트에 익숙하다고 적힌 내 이력을 감안하여 새로 들어온 일러스트 요리책의 번역가 후보로 나를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식 번역서 하나 없는 내게 수백만 원짜리 일감이 덜컥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얻은 것은 정확히 말하면 기성 번역가 몇 명과 같은 부분을 번역한 샘플 원고를 제출하고 출판사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명 '경쟁 샘플'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분량은 A4용지로 2페이지, 주어진 시간은 3일이었다. 경쟁자가 몇 명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충 눈치를 보니 나를 포함해 3명 정도가 참여하는 것 같았다.

 

- 함께 참여한 다른 번역가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내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얻어 낸 첫 기회였다. 보통 A4용지 기준 영한 번역 2페이지는 검토와 수정을 포함해도 대략 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지만, 나는 주어진 3일을 꼬박 투자하여 내 능력 안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샘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사이에 원문과 번역문을 번갈아가며 못해도 100번씩은 읽었던 것 같다.

- 하지만 약 일주일 만에 나온 결과는 일말의 여지도 없는 시원한 탈락이었다.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부족한 실력과 모자란 경력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솔직히 이 시점에는 내게 번역가로 일할 깜냥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도저히 떨치기 어려웠다.

- 그로부터 1, 2주쯤 지났을까? 평소처럼 번역 공부와 자잘한 아르바이트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던 내게 또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 연락을 준 사람은 예전에 로펌에서 함께 일했던 변호사였다. 아마도 이름이 비슷한 사람에게 걸려다가 잘못 걸었겠지 하고 짐작하면서도, 동시에 요즘 들어 희한한 곳에서 자꾸 연락이 온다고 생각하며 누른 통화 버튼 너머에서 나는 두 번째 입사 제의를 받게 되었다. 그가 같은 로펌에서 일하던 다른 변호사 한 명과 독립하여 사무소를 차렸다며, 사무직원으로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 처음에는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기왕 직원을 뽑을 거라면 같이 일해 봤던 사람이 편하리라는 그의 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로펌이 싫어서 뛰쳐나온 사람이 또 로펌으로 들어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마음이 흔들렸다. 어렵게 얻은 샘플 기회를 날려 먹은 뒤, 내 마음속에는 번역가로 먹고살 자질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지난번 입사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5년을 애면글면 모았건만 허무하게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 잔고도 신경 쓰였다. 게다가 갈팡질팡하는 내 태도를 눈치챈 변호사는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을 구워삶아 본 사람답게, 딱 좋은 타이밍에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을 쓱 내밀었다. 어차피 이제 시작하는 회사이고 베테랑 사무장은 따로 채용할 예정이니, 일단은 일주일에 20시간만 근무하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해도 된다는 옵션을 제시한 것이다. 근로시간을 반토막 내는 대가로 그가 제안한 급여는 예전에 다니던 대형 로펌의 반의 반 수준이었지만, 내게는 당장 돈보다 프리랜서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다. 

- 결국 나는 현실에 굴복했다. 어차피 가진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버틸 참이었고, 퇴사한 지 한참이 되도록 아무도 나를 찾지 않다가 몇 주 새 두 번이나 뜬금없이 입사 제의를 받은 걸 보면 이 상황 자체가 일종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나를 설득했다. 이건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일종의 신의 계시 같은 거라고. 회사를 뛰쳐나온 지 1년 반. 나는 그렇게 절반이나마 다시 직장인 신분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 마음의 절규를 애써 모른척해야 했다. 프리랜서에 도전한다는 꿈과 함께 퇴사를 선택했고, 그 이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번듯한 대형 로펌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던 내가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다는 짜디짠 현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줄어든 근무시간을 감안한다 해도 새 직장의 급여는 이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회사 생활의 큰 보람 중 하나였던 자기계발비나 사내 도서관, 직원 식당 같은 복지는 기대 자체가 무의미했다. 게다가 같은 법률사무소라고는 해도 전통 있는 대형 조직과 이제 막 시작한 소규모 조직의 업무범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 퇴사 전에 기획팀 소속으로 일했던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말 그대로 '기획'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 담당이 아닌 일들은 해당 팀에게 전화로 요청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변호사를 제외한 소속 직원이 고작 1.5명에 불과한 이 회사에서는 업무 분장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손님 안내나 소송 서류 제출 같은 평범한 사무직원의 일은 물론이고 번역, 리서치, 사업자 등록, 명함 제작, PPT 작성, 주차권 관리까지 전부 내 업무에 포함되었고, 심지어 ... 

- 당연한 일이지만,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포부를 품고 안정된 로펌 자리를 박차고 나온 변호사들이 '언제까지나 우리 넷이서 오순도순 일했으면 좋겠다'는 내 나약한 바람대로 초미니 사이즈 법률사무소에 안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적극적인 영업 덕분에 고객들은 순조롭게 늘어났고, 얼마 안 가 신입 변호사며 로스쿨 인턴들까지 채용되었다. 초반에는 사무장 한 명에 파트타이머 한 명으로 어찌어찌 돌아가던 사무실 업무에 차질이 생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일주일에 5일 내내 출근하라는 압박이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 사무장님의 건강이 조금 악화되었는데,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병가를 낼 수가 없으니 병원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송구한 상황도 자주 연출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혼자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자연스레 '이 조직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 두 번째 변화는 드디어 내게도 제대로 된 프리랜서 일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2016년 늦가을의 어느 날, 첫 공역 의뢰가 들어왔다. 다섯 명이 나눠서 진행하는 경제 전망서 번역 건이었는데, 비록 혼자 ... 

- 프리랜서의 일상 속으로 또박또박 걸어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커피를 내려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작업을 한다. 점심때가 되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차려서 내 속도대로 먹는다.

- 점심시간이야말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가장 큰 혜택 중 하나였다. 식도락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살지만 먹는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직장인 시절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고역스러울 수가 없었다. 일찍 입사해 늘 막내였던 내게는 메뉴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네다섯 명의 인원이 메뉴에 대한 합의를 보고, 식당을 찾아가고, 종종 긴 줄을 견뎌 가면서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하고,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허겁지겁 쑤셔 넣은 뒤 오후 업무 시간을 견디게 해 줄 커피를 사기 위해 튕겨 나듯 일어나는 그 모든 과정이 싫었다. 이제 나는 전날의 과음으로 부대끼는 뱃속에 크림 스파게티를 욱여넣거나, 씹지도 못한 채 삼키느라 명치에 그대로 얹혀 버린 밥알을 커피로 눌러 내릴 필요가 없었다. 오전 작업을 하다가 배가 고파 오면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따져 가며 메뉴를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집 앞 ... 

- 본문이나 주석은 그렇다 치고, 표지 뒤에 쓰여 있는 원서의 미국 출판사 이름이나 인쇄소 정보까지 전부 번역하는 게 맞을까? 맨 뒤에 달린 참고문헌의 제목도 몽땅 우리말로 옮겨야 하나? 헷갈릴 때는 일단 전부 번역해 버릴까 싶다가도, 번역문의 글자 수를 기준으로 정산되는 원고료를 떠올리면 괜히 불필요한 부분까지 기재했다가 '청구 금액을 부풀리려고 한다'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렵기도 했다. 직장생활로 따지면 신입사원이 복합기나 업무용 전화기사용법을 몰라 쩔쩔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프리랜서에게는 짜증을 내면서라도 가르쳐 줄 상사나 선배가 없으니 그저 하염없이 막막할 때가 많았다.

 

-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영상을 찍든, 대부분의 프리랜서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 이런 종류의 문제들일 것이다. 일은 밖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업계의 룰은 직접 뛰어들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으니까. 물론 에이전시나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한 명의 프로로서 일감을 맡아 놓고 사소한 질문 때문에 너무 자주 연락을 하면 경험이 부족한 티가 날까 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인터넷을 뒤지거나 서점에 달려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책들을 열심히 살피면서 모르는 부분을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

 
-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가 이야기지, 수입 이야기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건당 단가가 아무리 높은 업계라도 일감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한다면 그 일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감 하나당 프리랜서에게 떨어지는 외주비가 300만 원이라고 치자. 얼핏 들었을 때는 꽤 괜찮은 금액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 달, 최소한 두 달에 한 건 이상 끊김 없이 일감을 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휴업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없는 프리랜서의 특성상, 단가가 아무리 높은 작업을 하더라도 몇 달, 몇 년짜리 공백이 밥 먹듯 생긴다면 평균 소득은 형편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작가든, 프로그래머든, 웹 디자이너든 프리랜서라면 누구도 이 법칙의 예외가 되지 못한다. 

- 이것이 바로 첫 번째 단행본을 넘긴 후 내게 닥친 상황이었다. 오랜 노력과 기다림 끝에 내 이름으로 된 번역서를 따냈고, '나쁘지 않은' 원고료 또한 떼이는 일 없이 무사히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 찾아온 것은 안정적인 프리랜서 생활이 아니라 제2의 백수기였다. 첫 번째 단행본 작업을 끝낸 직후 일주일은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밀린 문화생활도 해 가며 마음 편히 휴식을 취했다. 그다음 일주일은 조금 초조하면서도 달리 할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쉬었다.

 

- 어느덧 그 카페의 존재는 다른 여러 사이트와 함께 내 뇌리에서 까맣게 잊히고 말았다.
그곳에서 온 쪽지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게 없는 전체 공지에 불과했다. 한 달째 하릴없이 백수 생활을 이어가던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것은 그 쪽지로 인해 불현듯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1인 출판의 존재였다. 발신자 칸에 찍힌 카페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내 절박한 머릿속에서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뒤섞인 생각 무더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인 출판사? 1인 출판사라면 혼자 운영하는 출판사잖아. 그럼 나도 차릴 수 있는 거 아냐? 잠깐만, 왜 지금껏 누군가 책을 맡겨 주기만 기다리고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을 한 번도 못했지? 출판사 등록을 하고 내가 번역한 책을 내 손으로 팔면 되잖아!

- 내가 그 카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문제의 쪽지를 받기 1년도 더 전이었다. 정작 가입할 당시에는 초짜 번역가로서 일감을 받아 보려는 목적뿐이었던 내가, 어떻게 별 내용도 없는 쪽지 한 통에 직접 출판사를 차려 보자는 말도 안 되게 진취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 당시에는 매일이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서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러한 심경 변화의 배경에는 단순한 백수의 절박함뿐 아니라 그사이에 얻은 여러 가지 경험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약 1년의 기간 동안 나는 한 권이나마 내 이름으로 된 번역서를 냈고, 블로그와 웹툰을 통해 직접 쓴 글과 그림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작은 법률사무소의 개업을 도우며 사업자등록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출판계 언저리를 맴돌며 출간프로세스나 저작권 관련 풍월(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 저작권이 없는 무료 작품이 꽤 많다는 유용한 정보)도 조금씩 주워 들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얻은 지식과 경험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1인 출판'이라는 키워드가 입력된 순간 '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아주 작은 자신감으로 출력된 것이다. 그야말로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결심은 백수의 초조함을 추진력 삼아 즉시 행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당장 그날부로 출판사 설립 과정을 알아보고 첫 책 출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설립'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막상 체험해 보니 1인 출판사를 세우는 과정은 김이 빠질 정도로 간단했다. 마음에 드는 출판사 이름을 정한 뒤 주민등록증 하나 들고 구청과 세무서에 방문하여 신고를 하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백설공주니, 신데렐라니 하는 동화들의 뒷이야기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거라고. 첫눈에 반했던 순간의 로맨스는 얼마 안 가 사그라지고, 결국에는 그들 중 대부분이 부부 싸움에 지쳐 성격 차이로 이혼했을 거라고, 아직 마음 한구석에 동심을 간직하고 있던 당시의 나는 친구의 시니컬한 주장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 그렇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몰라도, 현실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라는 수식어로 포장해서 어물쩍 넘겨 버릴 수 있는 일이 거의, 아니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백설공주와 왕자가 분명 이혼했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두 주인공이 365일 꿀만 떨어지는 결혼 생활을 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 

- 나는 외부에서, 특히 직장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프리랜서의 삶에도 어느 정도 동화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이 마법과 모험이 넘쳐나는 신비의 세계에 정신을 빼앗기듯, 직장인들은 자유와 가능성이 가득한 프리랜서의 세상에 로망을 느낀다. 그 로망에 홀려 기술도 없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온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직장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자유와 행복만큼이나 다양한 불안과 고충이 존재한다. 회의적인 내 친구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동화의 뒷이야기처럼. 

-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화 속 커플들이 매일 불같은 로맨스를 이어가진 못했겠지만, 나는 그들 중 상당수가 가끔 지지고 볶으면서도 소소하고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해 나갔으리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혼자라서 외롭고 을이라서 서러울 때도 분명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분야의 많은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일에 애정을 느끼며 나름대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그 세상에 속한 일원으로서, 프리랜서가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들려주는 것이 지금부터 이어질 글의 큰 주제다.

- 프리랜서의 희로애락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우선은 그 모든 좌절과 보람의 원천이 되는 회사 밖 인간의 일과를 잠깐 들여다보도록 하자. 프리랜서의 일상은 이미 앞에서도 살짝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번 장에서는 점심식사나 산책에 집중하는 생활 밀착형 일상보다는 직장인의 '업무 시간'에 해당하는 일과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애초에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일부 예외적인 (더불어 부러워서 배가 아픈) 경우를 제외하면, 생계와 직결된 업무 시간보다 누군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사례는 흔치 않을 테니까.

- 나는 번역을 포함한 글과 그림을 주업으로 삼고 있지만, 어떤 분야에 속해 있든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영업·수익 창출·지원·배움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테트리스처럼 적절히 분배하여 일과 시간을 구성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영업부서와 수익창출부서, 지원부서, 교육부서, 하다못해 부서는 아니더라도 그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라도 꼭 필요하듯이, 네 가지 업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 프리랜서의 밥벌이에는 당장 심각한 애로 사항이 생긴다. 정말이지, 모든 프리랜서가 1인 기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 영업은 말 그대로 돈이 될 만한 일감을 따오려는 노력을 말한다. 보통 '영업'이라고 하면 일명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기 위한 각종 활동들(무작정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이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영업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고, 이런 노력이 일감으로 ... 

- 물론 직장인에게도 자기계발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실력과 포트폴리오가 전부인 프리랜서에게 지속적인 자기계발은 곧 업계에서의 생존과 직결된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어떤 베테랑 영상 번역가 분은 수십 년의 경력에 안정된 거래처까지 다수 확보하고 있지만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미국 드라마나 쇼프로그램 한 편 이상은 꼭 보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영어가 유창하다 해도, 요즘 사람들이 쓰는 신조어나 최신 표현을 계속 익혀 두지 않으면 즉시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의 설명이다. 

- 이처럼 프리랜서는 혼자서 최소한 네 사람 몫을 해내야 하고, 그 일들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의 일이 직장인보다 네 배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직장인과 프리랜서를 모두 경험해 본 장본인으로서 얘기하자면,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힘들거나 덜 힘들다고 단정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극히 무의미한 짓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프리랜서의 일과에 일반적인 직장인보다 더 큰 자유와 책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적 특징이 프리랜서의 삶에 직장인과는 또 다른 명암을 안겨 준다.

- 한 회원이 올린 질문을 발견했다. 그는 오랜 노력 끝에 겨우 출판사와 첫 번역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런 경우에 단가를 얼마나 불러야 할지 선배 번역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평소 남의 글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 나지만, 그 이름 모를 초보 프리랜서가 쓴 질문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느끼고 있었던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나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일반적인 출판 번역 업계의 시작 단가(원고지 1매당 3,500원)를 알려 준 뒤, 조금 뿌듯한 기분으로 일을 시작했다. 

- 한 시간쯤 후, 휴대폰 진동이 울리더니 내 댓글에 답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질문을 했던 사람의 감사 인사이려나?'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접속한 카페에서, 나는 뜻밖의 격한 항의와 마주치게 되었다. 내게 항의성 댓글을 단 주인공은 자신을 작은 출판사의 대표라고 소개하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높은 단가를 알려 준 바람에 자칫 질문자의 계약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그는 내 답변이 이 공간을 찾는 다른 번역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출판업계의 물을 흐릴 수 있으니 그 글을 당장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두고 싶은 점은, '원고지 1매당 3,500원'이라는 금액이 신인 출판 번역가들에게 지급되는 최저 단가이며, 오히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아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조금 부당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액수라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논조로 내가 쓴 금액은 신인 번역가에게 지급되는 단가가 맞으며 실제로 현직자인 나도 그렇게 받고 일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자칭 작은 출판사의 대표라는 그분은 이번에도 득달같이 댓글을 달았다. 본인은 베테랑 번역가에게도 원고지 1매당 2,500원 이상 주고 일을 맡긴 적이 없으며, 지금 이 질문을 올린 신인 같은 경우에는 경력을 감안했을 때 2,0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네가 얼마나 대단한 거래처를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운이 좋은 줄 알고 조용히 네 할 일이나 하라고. 이쯤 되니 '내가 정말로 어딘가 잘못 알고 있나? 나는 단순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나?'라는 당혹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당 2,000원이라는 번역료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단가 3,500원인 신인 번역가가 100만 원을 받고 해 줄 일을 거의 절반 수준인 57만 원에 해준다는 뜻이고, 한 달 내내 일해도 한 사람의 생활비를 벌기조차 빠듯할 게 분명했으니까.

 

- 내가 번뇌에 빠져서 말을 잇지 못하던 사이, 다행히도 다수의 현직 번역가분들이 댓글 전쟁에 뛰어들어 내 답변을 옹호해 주었다. 그중에는 출판된 번역서만 수십 권에 이르는 진짜 베테랑 번역가도 있었다. 그분은 본인이 이 일을 시작한 십수 년 전에도 신인 번역가의 최저단가는 3,500원이었다고 확실히 못을 박아 주었다. 최초의 댓글을 단 사람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그 대신 내 글을 내려 달라는 항의자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격한 비난을 퍼부었던 그분은 사람들에게 출판 업계의 팍팍한 현실과 중소기업의 비애를 토로하다가 사라졌다. 

- 이 사태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기 마음대로 업계 단가를 43%나 파격 세일해서 지급하는 그 출판사 대표가 번역가들의,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의 '갑'이라는 사실이다. 나로서는 그 사람이 그저 지나가는 악플러이고, 실제 업계 사람도 아니면서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 출판사 대표를 사칭한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확신해 버리기에는 내가 직접 겪거나 주변에서 보고들은 부당한 사례들이 너무 많다.

-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생각과 정보들을 조심스레 공유하는 동안, 나는 이 세상에 경력이 부족한 사람이 더 잘 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받은 질문들을 쭉 돌아봤을 때, 그 누구도 내게 "어떻게 하면 번역계의 거장이 될 수 있나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연 수입을 10억 정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의 해답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나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내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겁도 없이 프리랜서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온갖 삽질 끝에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내 쪽지함을 채우는 질문들은 대개 "어떻게 하면 그 분야에 진입할 수 있나요?", "일감은 어떻게 따셨나요?"와 같이 3년 차쯤 된 프리랜서에게 딱 어울리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하긴, 이제 막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이가 박찬욱 감독에게 일감을 어떻게 따시냐고 물어본들 그 대답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는 답변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 자신을 포장해서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 가면 손가락으로 쿡 찌른 달팽이마냥 껍데기 안으로 움츠러들기 일쑤다.
이런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애당초 직접 영업을 뛰는 대신 '에이전시'와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간접수단의 힘을 빌리는 길을 택했다. 에이전시는 말 그대로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고 영업이나 정산 등의 일 처리를 도와주는 대행사다. 나 같은 경우, 적어도 번역 부분에서는 초창기부터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경력을 쌓아 왔다. 수수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혼자 영업을 했다면 애초에 수수료를 뗄 돈조차 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다. 특히 프리랜서 경력이 거의 없는 초심자라면 특정 회사의 이름을 등에 업는 것만으로도 인지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에이전시 계약을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 

- 번역가의 길을 뚫는 데 에이전시가 큰 도움이 되었다면, 내가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은 순전히 인터넷의 힘이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백수시절의 내게 웹툰 연재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매일 그림을 그려 올렸던 블로그 덕분이고, 지금 이렇게 책으로 출간될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은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글이 운 좋게 출판사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 블로그나 SNS, 유튜브를 통해 스타가 된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강력한 영업 수단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 영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100% 무료인 데다 얼굴이나 이름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나처럼 매사에 소심한 프리랜서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홍보수단이 있을까? 만약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사회생활'에 자신이 없는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지금 이 시대는 그야말로 기회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리랜서를 꿈꾸면서도 영업에 자신이 없다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거의 호소에 가까운 조언을 한다. 제발 지금 생각한 것들을 인터넷에 올려 보라고 망해도 좋고, 인기가 없어도 좋으니 딱 한 번만 해 보라고.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 '노하우'라는 거창하고 쑥스러운 단어까지 써 가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사실 아침형 일상이나 에이전시 계약, 인터넷 영업을 포함하여 그 어느 것도 프리랜서 라이프의 확고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자유이고, 따라서 ...

 
- ... (애초에 영상 번역과 출판 번역은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인세 수입으로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면서 적당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 전체 프리랜서 중 90% 이상은 나처럼 스타나 예술가와 거리가 먼 생계 밀착형 직업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업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작가'라고 하면 조앤 K. 롤링, ‘개발자’라고 하면 스티브 잡스,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면 요시토모 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범한 프리랜서가 이런 사람들과 비교된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저런 이들이 있기에 그 업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개인적으로 자극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프리랜서'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통하고 특출 난 재목이다 보니, 프리랜서를 꿈꾸면서도 자신에게는 저 정도의 끼가 없다는 이유로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의 야망이 프리랜서 세계에 뛰어들어 부와 명예를 거머쥔 업계의 1인자가 되는 것이라면, 압도적인 재능을 갖추는 것 외에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세상에는 책임감과 인내심을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지어 나는 업계에서 수십 년 이상 잔뼈가 굵은 분들이 이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프리랜서가 '매우 드물다’거나 ‘거의 없다'고 평하는 이야기마저 들었다. 다시 말해서,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자질들은 전쟁 같은 프리랜서 세상에서 당신을 돋보이게 해 주고, 콧대 높은 클라이언트가 앞다퉈 당신을 찾게 만들 것이라는 말이다. 책임감과 인내심이란 자질은 부와 명예는 몰라도, 최소한 생계걱정을 하지는 않도록 도와줄 마법의 열쇠다. 

 

- 3개월 작업 일정으로 수백 페이지짜리 번역서를 계약해 놓고 두 달 반이 넘은 시점에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번역가, 잡지에 정기적으로 그림을 싣기로 해놓고 매번 마감일만 가까워지면 갑자기 중요한 경조사가 생기는 삽화가, 이미 선금까지 받은 상태에서 오류투성이의 코딩을 내놓는 개발자, 기본적인 틀조차 어긋나는 편집물을 내놓는 디자이너.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업계의 일원으로서 이런 낯부끄러운 일들이 예외적인 사례이자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잠적한 번역가 때문에 또 애를 먹었다는 에이전시 담당자분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이 바닥에 무책임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책임감을 갖춘 프리랜서, 혹은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마감을 성실히 지키며 맡은 작업을 성의 있게 해 낸다는 평판만 얻는다면, 당신은 업계를 막론하고 클라이언트의 섭외 1순위에 오를 것이다.

- 책임감이 프리랜서의 친구인 성수기를 빛내 줄 자질이라면, 인내심은 프리랜서의 피할 수 없는 적인 비수기를 버티고 극복하게 해 줄 자질이다. 제아무리 '잘 나가는'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경력 초반에 일시적인 공백기 몇 번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프리랜서 세계의 불문율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 공백기를 묵묵히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인내심을 발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번뇌를 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개중에는 비수기를 기회 삼아 훌쩍 장기 여행을 다녀오거나 운동으로 체력을 쌓으며 다음번 성수기에 대비하 ...
 
- 하지만 개중에는 누가 봐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순간들이 있다. 여전히 회사 체질이 아닌 채 회사에 갇혀 있을 분들에게 미약한 가이드나마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퇴사를 결심하고 프리랜서를 준비하면서 내린 숱한 결정 중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솔직히 고백해 보려 한다. 이는 또한 변변한 정보도 없이 절박한 마음으로 이 길에 뛰어들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 앞에서도 스치듯이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회사를 나오기 전에 최대한 저축을 해 둔 것, 그리고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을 비롯한 금융 혜택의 기간을 최대한 연장해 둔 것은 내가 내린 모든 결정 중에서도 최고의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당장 독립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배움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프리랜서에 도달하기까지 걸릴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 아무리 여유 있게 기간을 잡는다 해도 그보다 더 길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배움에는 돈이 든다. 당장 나만 해도 돈 한 푼 벌지 못하던 프리랜서 지망생 시절, 아카데미 등록금부터 각종 장비와 프로그램 구입비까지 생활비와 별개로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해야 했다. 

- 본인이 조금이라도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에 다양하게 도전해 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얻어걸린 웹툰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오직 번역가가 되겠다는 하나의 목표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 하지만 경력도 없는 신인이 누구나 그렇듯 일감을 따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그나마 간신히 잡아낸 번역을 한 권 끝내면 어김없이 불안한 백수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웹툰에 발을 담근 우연한 경험은 닫혀 있던 내 시야를 확 넓혀 주며 프리랜서가 반드시 한 가지 직업만 가져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 주었다. 

- 그날 이후로 나는 짬이 날 때마다 흥미로워 보이는 분야에 다양하게 뛰어들었고, 그 결과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1인 출판사 대표 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지금 내가 프리랜서로서 성수기를 보내고 있는 건 기본적으로 예전보다 경력이 쌓이면서 지명도가 올라간 덕이지만, 번역 일감의 공백을 잡지 기고로 메우거나 일러스트 일감의 틈을 1인 출판으로 메우는 등 활동 반경 자체를 넓혀 둔 덕도 크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여러 가지로 고민도 훨씬 줄어들고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려면 애초에 재주가 많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타이틀을 몇 개씩이나 가질 수 있냐고.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주가 아니라 취미와 호기심이다. 나 또한 퇴사를 결정할 당시에는 번역도, 글쓰기도, 그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매일 공부하며 조금씩 연습하다 보니 단순한 취미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을 뿐이다. 전공자도, 경력자도 아닌 내가 이런 기술들을 익힐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분명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흥미와 애정이었다. 실제로 프리랜서의 세상에는 글을 쓰는 개발자나 사진을 찍는 요리사처럼 취미를 토대로 본래 직업과 전혀 다른 일을 병행하고, 그 부분을 자신의 차별화 포인트로 활용하는 분들이 아주 많다.

- 끝으로 한 가지 현실적인 팁을 전하자면, 프리랜서 생활 초기에는 보통 남는 시간이 심각하게 많기 때문에 한두 가지 다른 분야에 도전할 시간적 여유가 넘쳐난다고 보면 된다.

- 사실 프리랜서라는 목표를 갖고 달렸던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못한 점보다는 잘한 점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내가 언제나 현명한 결정만 내리는 능력자여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요소가 개입하여 대부분의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 회사를 그만둘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나왔다는 사실은 한동안 내 가장 큰 후회거리였다. 만약 그 당시에 이 책을 썼다면, 내가 못했던 일에 이 경험담을 쓰며 '어차피 때려치울 회사, 속마음을 시원하게 내질러 버리고 나오라'는 조언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만한 퇴사라는 당시의 선택은 얼마 뒤 스카우트 제의와 고정 거래처라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변화무쌍한 회사 밖 세상에서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는 동안, 나는 어떤 경험이든 결국에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어쩌면 저질렀을지도 모를 실수를 피해 가고, 보다 빠르고 평탄하게 꿈을 이뤄 나간다면 글쓴이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성 프리랜서의 어떤 조언보다도 자신이 직접 부딪쳐서 얻은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거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도 지나치게 당황하거나 지레 포기할 필요 없다. 책임감과 인내심을 갖고 버틴다면, 시간은 그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만들어 줄 것이다. 
 
- ... 재능이 없는 편이라 수수료를 떼더라도 에이전시에서 일을 받는 게 마음 편하지만, 자신이 직접 일을 받아오고 수수료 부분까지 챙기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 어떤 분야든 프리랜서의 수입은 보통 이런 식으로 정해진다. 자기 일에 해당하는 단가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본인이 일감을 얼마나 잘 따올 수 있느냐, 작업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느냐, 그 일에서 파생되는 부수입을 얼마나 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각자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출판 번역가가 외주 서류 번역까지 영역을 넓힐 수도 있고, 웹디자이너가 일러스트 실력을 무기로 삽화 작업을 할 수도 있다.

 

"10개월 뒤는 불안하지만, 10년 뒤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 이는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인 "불안하지 않나요?"에 대한 답이다. 이 대답은 어떻게 보면 직장에 다니던 때와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회사원 시절, 운 좋게도 규모가 꽤 있는 조직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던 나는 당장 몇 개월 뒤의 생계를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10년, 혹은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언제나 목구멍에 걸린 작은 생선 가시처럼 따끔한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당장 몇 달 안에 잘릴 일이야 없겠지만, 조직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인재도 아닌 내가 정년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이 아주 좋아서 정년까지 버틴다 쳐도, 그 이후로 남은 30~40년의 생계를 생각하면 다시금 묵직한 압박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프리랜서의 계약은 길어야 몇 개월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그 어떤 계약직보다도 불안한 처지다. 마지막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아직 다음 일감을 얻지 못한 상태라면 손바닥에서 수시로 땀이 나고, 동공은 자주 초점을 잃으며, 창밖을 지나는 오토바이 소리부터 전기밥솥에서 배출되는 증기 소리까지 주파수 1,000Hz 전후의 모든 소음을 휴대폰 진동으로 착각하는 극도의 초조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10년, 20년 후의 생계를 생각하면 딱히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정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경력이 쌓일수록 안정감이 생기며 오히려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방향으로 끝없이 변주되어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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