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주경철
출판 : 생각의힘
출간 : 2016.05.04
라떼고가 무사히 도착해서 열일 중이다.
나도 함께 열일 중인데, 이중 유리컵에 각 메뉴를 내려보며 차이점을 익히는 중 -이라기 보단 커피 홀릭 중이다- .
현재까지 가장 마음에 드는 메뉴는 '라떼 마끼아또'.
설정은 원두는 extra shot, 물양은 30ml, 우유양은 270ml.
라떼는 샷이 먼저 나오지만 마끼아또는 스팀밀크가 먼저 깔린 뒤 샷이 떨어져 담긴 모양이 훨씬 예쁘다. -우유 양도 좀 다르다-
똑같은 조합으로 양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냥 식지 않게 다 마시고 한 잔을 더 마시는 게 나은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도서관에 들른 김에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본 책이다.
저자는 역사학 학자로 해당 주제뿐 아니라 중-근대 서양사 전반을 아우르며 폭넓은 연구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저서들이 주로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사료들을 분석했다면, 저자는 그보다는 당대의 권력과 실생활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 새롭다면 새롭다. 인용문에서 오랜만에 카를로 긴즈부르그 -본문 표기 상 진즈브루그-의 베난단티를 발견해 반갑게 읽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저자의 포부가 제대로 펼쳐지기에는 지면이 다소 협소했다는 점.
성과 속의 대비, 마녀와 성녀의 경계 등은 가볍게 언급만 되고 지나가버린다.
요하네스 니더의 <Formicarius>가 제대로 영역된다면 -한역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읽어보고 싶은데, 이렇게 2차 문헌으로밖에 접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 중 하나.
저자께서 번역에 도전해주셨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남겨 본다.
- 마녀사냥은 유럽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 중 하나다.
- 이웃집 아주머니가 알고 보니 오랫동안 악마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렇게 하여 얻은 마법의 힘으로 사방에 병을 퍼뜨리고 폭풍우를 일으킨 마녀였다고 누군가 주장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또 검은 염소 모양으로 변신하여 밤중에 산으로 날아가 마녀들 모임에서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혐의로 누군가를 기소하여 화형에 처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그런데 근대 유럽에서 실제 이런 사태가 벌어져서 적어도 수만 명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끔찍한 고문 끝에 마녀 판정을 받고 죽음으로 내몰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성의 빛, 세계의 진보를 거론하던 그 시기에 유럽 문명의 내부에서 왜 그런 참혹한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흔히 마녀사냥을 중세 현상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근대 초에 정점을 이루었던 사건이다. 르네상스 이후 찬란한 문화의 빛이 되살아나고, 과학혁명과 계몽철학의 결과 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가능해졌으며, 조만간 산업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될 바로 그 시대에 그와 같은 몽매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유럽의 긍정적인 측면과 마녀사냥은 전혀 별개의 현상인가? 그렇지 않다. 마녀사냥은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잠깐 일탈했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나 온 현상이다.
-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근대 유럽에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이 함께 규정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 문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다. 최고의 선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최악의 존재를 발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극히 엄격한 기준을 세운 후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수호하려 한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은 분명 서구 근대성의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 마녀 현상은 실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측면들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마녀 현상이 장구한 연원을 가지고 복잡한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마녀는 고대와 중세 이래 지속되어 온 '마술 magic'과 연관되어 있다. 기독교 이전부터 전해져 온, 혹은 기독교와 별개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마술이 강고하게 존속해 왔다. 교회와 국가기구는 마술 요소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두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이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 신비한 존재들이 있고 또 그들과 소통하는 특이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대개 어느 사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도 그런 태도를 지켜왔다. 점쟁이 혹은 민간 치료사 같은 사람들은 주류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간의 위험 요소들이 있지만 일반 민중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용인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럽 사회는 서서히 이런 느슨한 태도를 버리고 특이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각종 마술을 '마법 witchcraft'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카테고리로 파악하고 억압하기 시작했다. 단지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정도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 및 그 수하인 악마들과 연관된 사악한 힘으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가혹한 고문과 처형이 뒤를 이었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런 대처 방식이야말로 유럽 문명의 가장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 이런 일들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가 권위를 제고하기 위해 교리상 혁신을 꾀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적을 규정한 것일까? 국가가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민의 영혼을 장악하려는 계획이었을까? 남성 중심적 가부장 문화와 제도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여성성 자체를 억압하려는 무의식적 공격의 발로였을까? 지방 권력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의 결과일까?
- 역사학은 오래 전부터 마녀 현상을 다양하게 연구해 왔다.(Levack 2013, Introduction)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빌헬름 졸단 Wilhelm Soldan, 쥘 미슐레 Jules Michelet 같은 선구적인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천착했고, 요제프 한젠 Joseph Hansen과 헨리 찰스 리 Henry Charles Lea 같은 학자들이 방대한 자료집을 출간했다.
- 이 문제를 한층 더 심도 있게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시간이 갈수록 연구 영역이 더 확대되고 심화되어, 현재 마녀사냥은 가장 대표적인 학제 간 interdisciplinary 연구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을 비롯하여 인류학, 민속학, 문학, 사회학, 미술사, 심리학, 종교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있다. 각 지방의 자료들을 세밀하게 해석하는 지방사 연구가 증가하고, 중요한 고전 텍스트들의 번역·편집도 늘었다. 매년 전문 연구자들의 논문과 저서들이 출판되고, 최근에는 전문 학술지도 등장했다.
- 이제는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마녀사냥의 기본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우선 희생자 수가 중요한 문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소되고 사형에 처해졌을까? 물론 정확한 수치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8세기의 한 법률가는 희생자 수가 9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고, 20세기에도 일부 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홀로코스트보다 희생자가 더 많다고 주장했지만, 이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그와 같은 엄청난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현재 교과서적으로 언급되는 추산치는 '1400~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10만 명 정도가 기소되었고, 그중 5만 명 정도가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사료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치가 그런 정도라면 실제 수치는 적어도 그 두 배는 되리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Barstow, 22) 그러나 과거 마녀사냥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들이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희생자 수치를 과도하게 추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어느 지역에서 마녀사냥의 광기가 가장 심했을까? 역사상 벌어진 마녀사냥 중 50% 정도는 신성로마제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독일 지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여기에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동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더해야 한다. 즉,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으나 중요한 중심지들이 따로 존재한다. 왜 어떤 곳에서는 마녀사냥의 광기가 극성을 부리고 왜 어떤 곳에서는 그러지 않았을까? 이 역시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점들을 거론할 수는 있다. 예컨대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곳들은 대개 엘방엔, 뷔르츠부르크, 밤베르크 같은 독일의 작은 교회령 들이다. 이런 곳에서는 교회와 국가 권력이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사태가 진행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마녀재판 역시 엄연히 사법 재판이므로 해당 지역의 사법제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개 중앙 권력이 미약하고 사법제도가 미비한 곳에서 자의적이고 억압적인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크다.
-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그렇다고 수수께끼 같은 마녀사냥 문제가 본질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이 새로이 제기되었다. 이 책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들을 근거로 마녀 현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전반적으로 개관하고자 한다. 특별히 눈여겨보았던 것은 민중 문화와 엘리트 문화 간의 관계였다. 기본적으로 마녀사냥은 세속 당국과 교회라는 상위기구가 일반 민중들의 종교적 오류를 바로잡겠다며 가한 억압의 성격을 띤다. 그렇게 본다면 지배 문화가 위로부터 규율을 강제하며 아래의 민중 문화를 공격해 들어간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런 방향으로 마녀 현상을 설명하는 연구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견해다.
- 최고의 선과 정의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종교와 국가의 발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역으로 가장 심각한 악과 불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공격했는가 하는 '네거티브'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일견 죄와 참회의 문명이었다. 그 기이한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용어 문제가 그것이다. 우선 영어의 'magic'과 'witchcraft'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아야 한다. magic은 일반적인 초자연적 현상인 반면 witchcraft는 명백하게 악마가 배후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구분이 가능한 우리말 단어들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몇 가지 사전적인 용어 설명의 사례들을 보자.
- 마법: 마력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술법
마술: 재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임. 또는 그런 술법이나 구경거리
요술: 초자연적 능력으로 괴이한 일을 행함. 또는 그런 술법
- 어느 것을 고르더라도 이 책의 목적에 정확하게 맞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니 용어의 뜻을 미리 약속해 두고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마술'은 magic에 해당하는 용어로, '마법'은 witchcraft에 해당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하자.
- 영어의 'witch'에 해당하는 우리말 단어를 정하는 것은 더 힘든 문제다. '마녀'라는 우리말은 그 자체로 여성을 가리킨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마녀사냥의 광풍이 불 때 분명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이 희생되었고, 또 여성성이 마녀와 통한다는 중요한 이론적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결국 마녀는 여자라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분명 '남자 마녀'도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마녀'라는 말로 모든 대상자를 통칭하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런 난점을 피하기 위해 마녀라는 여성형 단어보다 차라리 마인이라는 중성 단어를 만들어 쓰자는 제안도 있었다(동시에 witchcraft를 '마인술 魔人術'로 정하자고도 한다). 이론상 맞는 말이지만 '마녀'와 '마녀사냥', '마녀재판' 같은 용어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이를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임시방편으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미리 약속하기로 하자. 굳이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여성은 '마녀', 남성은 '마법사'라고 쓰되, '마녀사냥'이나 '마녀재판'처럼 복합 명사를 만들 때에는 '마녀'라는 말만 쓰기로 한다.
- 이 글은 원래 '악의 연구'라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 얻은 약간의 성과들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고자 하는 생각이 이 책으로 이어졌다. 유럽 문명에서 유독 악의 세력을 상정하고 또 그것을 제거하려는 강박증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난제에 대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면 약간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어둠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도록 하자.
-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곳 중 하나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밤베르크시다.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하나를 들여다보자. 희생자는 다름 아니라 이 시의 시장을 역임했던 유니우스라는 인물이다. 생생한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봄으로써 마녀사냥의 실체가 얼마나 끔찍하고도 허황한 일이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앞으로 우리의 연구가 어떤 방향을 취할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옷을 벗기고 조사했다. 그의 옆구리에 클로버 잎처럼 푸르스름한 점이 있는데 세 번 찔러보았으나 고통을 느끼지 않고 피도 나오지 않았다.
스트라파도를 행했다. 그는 결코 신을 부인한 적이 없으며 신이 그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술은 무심한 듯 이어지지만 그 행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순순히 자백하기를 거부하는 피고에게 차례로 더 심한 고문을 가하는 중이다. 우선 엄지손가락을 죄는, 그나마 가장 약한 고문을 가했다. 유니우스는 이 고문을 이겨내고 자백을 거부했다. '다른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기독교를 부인하고 악마를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는 세례를 받았다는 뜻이니, 전적으로 악의 세력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유니우스는 고통을 견뎌내며 이런 혐의를 부인했다.
- 그런데 문서에는 피고가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과연 그럴까? 악마와 한편인 마녀. 마법사는 고문을 가해도 악마의 도움을 받아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잘 버틴다는 것이 당시 재판관들의 생각이었다. 이야말로 끔찍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문 끝에 자백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꼼짝 못 하고 마법사로 몰려 결국 화형대에서 불타 죽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이를 악물고 고문을 이겨내면 그 자체가 악마의 도움을 받는 증거로 여겨지고, 결국 더 끔찍한 고문을 받게 된다. 과연 다리를 죄는 고문이 뒤를 이었다. 문서에는 이번에도 '역시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 '어림없는 소리' 하고 말하자 그 말의 힘 때문에 혼령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곧 더 많은 혼령들과 함께 다시 와서는 그에게 하늘의 신과 모든 천상의 천사를 부인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고, 그런 가공할 협박에 밀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하늘의 신과 천사를 부인하며 이제부터 악마를 신으로 인정합니다.'
- 곧 그는 사악한 혼령들에 설득당해 그들의 이름으로 또 다른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크릭스 Krix가 되었고, 자기 연인을 빅센 Vixen이라 불러야 했다. 그곳에 있던 혼령들은 바알제불의 이름으로 그에게 축하하며, 이제 그들은 모두 다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이 세례식에는 크리스티아나 모어하웁틴 Christiana Morhauptin, 젊은 가이절린 Geiserlin, 파울 글라저 Paul Glaser도 함께 있었다. 이후 그들은 사라졌다. 그의 연인은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고 가끔 마녀 집회에 데리고 갔다. 그가 사바스에 가려고 하면 언제나 침대 앞에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개에 올라타면 악마의 이름으로 떠올라 둘이 함께 떠났다.
- 고문에 못 이겨 한번 자백하자 이제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차례로 다 불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돈 문제로 고민하다가 악마의 꾐에 빠져서 그들과 한패가 되었으며, 하느님을 버리고 악마의 일원으로 다시 세례를 받아 새로운 이름도 받았을뿐더러, 악마 '연인'도 생겼다고 자백한 것이다. 그가 마녀 집회에 참가하는 방식은 널리 알려진 대로 동물로 변신한 악마를 타고 날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유니우스는 검은 개로 변신한 악마를 타고 날아서 마녀 모임에 참가했다는 자백까지 해야 했다.
- [그리고 게오르크토어 Georgthor로 향하는 다리에 와서 그 양쪽 모두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단다. 성 안에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지. 그들은 모든 거리에서 끊임없이 나에게 요구했지만 나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단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고문 집행인에게 넘겨주어 옷을 벗기고 모든 털을 밀라고 한 다음 고문을 가했다. '이 늙은 악당 놈은 시장에서 한 사람을 알아보았는데, 매일 그와 만났으면서도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는군.' 그들은 디트마이어 Dietmayer를 의미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을 말해야 했다.
다음에는 내가 행한 범죄들을 말해야 했단다. '저 악당 놈을 일으켜 세워.'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을 죽여야 했지만 그 대신 말 한 마리를 죽였다고 말했지. 그래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병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니까 그들이 나를 풀어주더구나.
아가야, 이게 내가 자백한 것들이고 그 때문에 나는 죽어야 한단다. 그것들은 순전히 거짓말이고 다 지어낸 것들이야. 그건 내가 당했던 것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할 거라는 위협을 받고 공포 때문에 할 수 없이 말한 내용들이야. 그들은 무엇인가를 자백해야만 고문을 멈추거든. 거기 있으면 반드시 마법사가 되어야 해. 설사 백작이라 하더라도 그곳을 빠져나가지는 못해...
사랑하는 아가야, 이 편지는 반드시 비밀로 해서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장 가혹한 고문을 당할 테고 간수들은 목이 떨어질 거다. 그러니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가야, 간수에게 돈을 주어라. [유니우스는 간수들을 매수해서 딸에게 이 편지를 빼돌려 주었던 것이다] ... 나는 이 편지를 쓰는 데 며칠이 걸렸다. 내 양손은 모두 불구가 되었단다. 나는 극심한 고통의 상태에 있다...
평안한 밤을 보내도록 해라. 네 애비 요한네스 유니우스는 결코 너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구나.
1628년 7월 24일]
- 편지의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져 있다.
[사랑하는 아가야, 여섯 명이 동시에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단다. 의장, 그의 아들, 노이데커, 차너 Zaner, 호프마이스터스 우르셀 Hoffmaisters Ursel, 호펜스 엘세. 모두 강요에 따른 거짓이야. 그들 모두 처형되기 전에 하느님 이름으로 나에게 용서를 구했지. 그들은 나에 대해 좋게만 생각했었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말하라고 강요당했던 거야.]
- 이 편지 덕분에 우리는 마녀재판의 내밀한 속사정을 훨씬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짐작했던 대로 악랄하기 그지없는 고문이 계속 가해졌다. 스트라파도를 여덟 번이나 했다는 것은 유례없는 일에 속한다(중죄인이라 하더라도 3번 이상은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그의 어깨와 손목 등이 완전히 부서졌을 것이다. 원래의 신문 조서에서 피고가 악마의 도움을 받았던지 아무리 고문을 가해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 기록은 새빨간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가 사바스에 간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들 역시 모두 고문 때문에 거짓 증언을 했고, 마찬가지로 유니우스 자신도 결국은 무고한 사람들을 한패로 거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은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유니우스를 직접 끌고 거리로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마녀로 지목하도록 유도했고, 순순히 말하지 ...
- [(8장) 타락하고 불법적이고 절망적인 이 파당은 최하층의 쓰레기 같은 부류에서, 또 속기 잘하고 성적 욕망에 잘 휘둘리는 성질 때문에 굴종하는 성향이 강한 여성들 사이에서 신도를 모은다. 이들은 야밤에 모여 엄격한 금욕과 비인간적인 육식을 동시에 하면서 신성모독적인 음모를 꾸민다.]
- [(9장) 분명 이 파당은 근절하거나 제거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비밀의 표시와 휘장으로 서로 알아보며, 서로 알기도 전에 사랑을 나누곤 한다. 이들은 욕망의 믿음을 공유하며 난잡스럽게도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르고, 실제로 방탕함이 지나쳐 근친상간을 벌이는 일이 없지 않다... 그들은 당나귀 대가리... 를 찬양하며, 주교와 사제의 성적 능력을 공경한다. 잘 알려진 바처럼 젊은 신참자의 입회식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입회 의식을 치르려는 사람 앞에 아이를 뉘어 놓고 그 위에 음식을 올려놓아 방심한 자들을 속인다. 젊은 신도는 아무런 해가 없는 일인 듯 음식 위를 치도록 강요받아 은밀한 상처를 줌으로써 아이를 살해하게 된다. 오, 공포, 그들은 게걸스럽게 피를 핥아먹는다. 그리고 팔다리를 열심히 자른다...]
- 위 인용문이 기독교가 이단과 이교도들을 공격하는 내용이 아니라 당대의 주류 종교가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임을 주목하라.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박해받던 시절 기독교가 어떤 혐의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정통의 지위에 오른 후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신앙을 고발할 때 가했던 비판을 과거에 그들 자신이 똑같이 받았던 것이다. 대개 지배적인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단과 이교도들은 밤에 남몰래 이상한 집회를 하며, 악마가 주관하는 그 집회에서는 방탕한 성교, 심지어 근친상간 행위를 하고, 어린아이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구성원들은 흔히 하층민 출신이고, 무엇보다 성정이 저열하다고 치부되는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더 큰 틀에서 보면 이 악마 같은 파당은 세계의 질서, 혹은 우주 자체를 위협하는 근본적으로 사악한 집단으로 비난받는다.
- [(10장) 그들은 세계 전체, 더 나아가서 모든 별들을 포함한 우주 전체에 불을 지르고 파괴하기를 염원한다. 마치 신성한 자연법칙에 따르는 영원한 질서를 교란하고 모든 자연 요소들의 조합을 파괴하려는 듯하다.]
- 후일 소위 '마녀'들 역시 이와 거의 똑같은 비난을 그대로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 정통의 지위를 차지한 후 기독교는 스스로를 '렐리기오 religio'라 칭하고, 자신 이외의 다른 종교는 '수페르스티티오 superstitio'라 불렀다. 앞의 것은 종교 혹은 정교, 뒤의 것은 미신 혹은 사교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용어는 원래 로마시대에 통용되던 대척적인 개념이었다. 기독교는 이 구분상에서 사교로부터 정교로 자리바꿈을 한 셈이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자신이 당했던 비난을 다른 집단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 대개 다른 종교의 신을 악마로 부르는 법이다. 기독교가 정교의 자리를 차지하자 다른 종교와 신앙들은 '악마화'되어 갔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악마와 마술, 미신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 텍스트는 따로 있다. 그것은 <기독교 교육론 De doctriana christiana>이라는 책이다. 395~398년경 시작하여 422년에 완수한 이 작품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마술에 관해 쓴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제2권 20~24장이 주목할 만하다. 이 텍스트를 보면 그가 마술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조금 더 명료하게 알 수 있다.
- 그는 우선 기독교의 신이 아닌 다른 신, 다시 말해서 악마를 경배하고 그 힘을 이용하는 것이 미신이고 마술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은 사실 매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다. 호부와 부적, '자연물 physica'이라고 부르는 각종 치유 물질이나 치료책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예컨대 양쪽 귀에 거는 목걸이, 손가락에 끼는 타조 뼈로 만든 반지, 혹은 딸꾹질이 날 때 왼쪽 엄지손가락을 바른 손으로 쥐라고 하는 조언 등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소한 '미신'에 불과하여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그런 초자연적이고 악마적인 힘이라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수준이라고 놀리듯 거론한다.
- 기독교의 공식 종교법령집인 <캐논 에피스코피>에 디아나라는 고대 이교 여신이 등장하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디아나 여신의 지휘 아래 밤에 짐승을 타고 떼 지어 돌아다니는 존재들은 과연 무엇일까? 고대 종교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는 이와 같은 민중 신앙은 유럽 사회에 어느 정도 확산되어 있었을까?
-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로마가톨릭 신앙이 완벽하게 지배적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서기 1000년 이후에도 가톨릭에 적극 동조하는 흐름만큼이나 여기에서 이탈 혹은 저항하는 흐름이 매우 강했다.(코르뱅, 163~164)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민중 신앙이 끈질기게 존속하여 사람들의 심성과 생활, 사회와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
- 밤에 동물을 타고 영혼들이 이동하는 이야기는 유럽의 민간 신앙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한 학자로 진즈부르그 Carlo Ginzburg를 들 수 있다. 그는 이것이 기독교 이전의 고대 신앙의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비너스, 아분디아, 페르치나, 디아나, 사티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여신들의 인도 아래 죽은 영혼들이 무리를 이루어 밤에 이동하는 이야기는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퍼져 있었다. 진즈부르그는 더 나아가서 이 요소가 유라시아 문명의 성립 초기에 형성되어 장구한 시간 전해져 온 내용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와 같은 민간 신앙 요소들은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의 지위를 차지한 이후에도 일부 지역에서 거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진즈부르그의 고전적인 연구 내용을 살펴보자.
- 16세기 이탈리아의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재판 기록에는 아주 특이한 형태의 '마술사'와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나온다. 1575년에 마술사 혐의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은 파올로 가스파루토라는 사람의 경우가 그러하다.
- 어느 마을의 방앗간지기의 아들이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갔다. 그 방앗간지기는 이웃 마을에 사는 파울로 가스파루토라는 사람이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불렀다. 가스파루토는 마귀 들린 사람을 치료하고 밤이면 마녀나 마귀와 돌아다닌다는 풍문이 돌고 있었다. 병든 아이를 본 가스파루토는 마녀 때문에 병이 든 것이라며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부적을 주었다.
- 악마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 베난단테들은 아주 강력하게 반발했다. 우선 그들 자신이 교회에 규칙적으로 나가는 신심 깊은 사람들일 뿐더러, 그들이 마녀이기는커녕 바로 그 마녀들과 싸우는 투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베난단테들은 '신앙의 옹호자'로서 공동체의 복지(풍년)를 위해 싸우는 존재이다. 재판관들은 이런 주장을 접하고 꽤나 당황했을 것이다.
- 그러나 결국은 교회와 국가의 공격적인 대응이 민간 신앙을 눌러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실 프리울리의 종교재판 기록은 베난단테 신앙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기록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처음 재판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재판관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이 절대로 악마와는 관련이 없으며 오직 농사를 지키는 성격의 것이고, 그것도 하느님과 천사의 도움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기독교적인 외피를 둘러쓰려고 해도 그것이 기독교와 무관하다는 것을 교회 인사들과 재판관들이 모를 리 없었다. 이 지방의 재판관들은 피고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화형에 처하는 식의 야만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피고들을 윽박지르고 위협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베난단테 신앙이 결국 악마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감옥에 갇힌 채 위협과 회유를 받은 베난단테들은 조만간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스파루토 역시 나중에는 이렇게 진술했다.
- [저는 그 천사의 환영이 실로 저를 유혹하는 악마였다고 믿습니다. 악마가 천사로 둔갑할 수 있다고 당신이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 '그 사람 머리에 손을 얹고 있어요.'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니?'
'모두 사라져서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 이 이야기에 나오는 네크로만서는 원래의 점술사 원형에 가깝다. 이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아주 오랜 연원을 가진 기술이었다. 이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은 일찍이 7세기에 세비야의 이시도르가 저술한 <어원학 Etymologia>에서 찾을 수 있다. 네크로스 nekros는 그리스어로 죽음을 의미하고, 만테이아 manteia는 점복의 의미이므로, 네크로만시는 죽은 자를 불러내어 물어보는 것을 가리킨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어 부린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위험한 술법이라 할 수 있다.
- 원래는 이승의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들을 영혼에게 물어보는 것이었으나,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사악한 용도에까지 혼령의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시도르 역시 그와 같은 위험을 제시한다. 마술사 중 '사악한 행위를 하는 자 maleficius'들은 천기를 요동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며, 독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주문을 외우는 방법만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중죄인들인데, 이들은 주로 죽은 자의 시체와 피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친다는 것이다. 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것은 곧 악마와 소통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또 그렇게 얻은 힘으로 지극히 사악한 일을 한다는 점에서 네크로만시 계열의 마술은 후대의 마녀들이 사용하는 마법과 통하는 면이 있다.
- 민중 신앙과는 다른 고급 마술, 곧 오랜 공부와 수련을 통해 달성하는 박식한 마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이시도르
- 가장 대표적인 중세 이단으로는 왈도파와 카타르파를 들 수 있다.
- 왈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Shinners, 44~46) 그는 리옹 시에서 고리대금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시장에서 음유시인으로부터 알렉시스 성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받았다. 이 성인은 로마의 부잣집 젊은이였는데, 결혼식 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버리고 시리아로 도망갔다가 몰래 돌아와 아버지가 사는 집 계단 밑에서 심지어 부모도 모르게 숨어 살다가 죽기 직전에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이는 중세에 매우 인기 있던 이야기였다. 왈도는 음유시인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자세히 청해 들은 후, 신학자를 찾아가서 그 내용에 대해 물었는데, 신학자는 그 내용이 마태복음 19장 21절에 관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소유한 부를 모두 버리라는 가르침이었다. 왈도는 이를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처와 두 딸에게 일부 재산을 물려주고 나머지 재산은 빈민들에게 기부했다. 이렇게 자기 재산을 다 처분하고 스스로는 걸인이 되어 자기 옛 동료에게 찾아가 먹을 것을 구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분개하여 주교에게 가서 탄원하자 주교는 그에게 구걸을 금지시켰다.
- 왈도의 초기 삶을 말해 주는 이 스토리를 보면 12세기경 부와 빈, 그러니까 성속 가치 간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를 추종하는 종파는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교회를 비판했고 자신들의 윤리성과 순수성을 주장했다. 사실 이들이 애초부터 정통 교리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다른 극단적 이단과는 달리 예수의 육화와 속죄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하는 일보다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성경 주장(사도행전 5:29)을 근거로 삼아 교회와 성사를 부정했다. 그리고는 청빈을 주장하며 구걸하고 다니면서 스스로 설교하고 사람들의 고해를 받았다.
- 왈도파와 달리 카타르파는 교리상으로 훨씬 더 극단적이었다.(박용진, 158) 이들의 교리는 이원론을 특징으로 한다. 선한 하느님은 영적인 세계를 창조했고 악마(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악한 신'이 될 수도 있다)는 물질세계를 창조했으므로,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악하다고 보았다. 교회 건물, 성상, 성물, 십자가, 심지어 인간의 육신 역시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사악한 것이다. 예수는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육신의 형상만 가질 뿐이다. 구원은 콘솔라멘툼 consolamentum이라고 불리는 의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세례는 물질에 불과한 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세례 받는 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요한복음 1장을 낭송하는 식으로 수행한다. 세례 받은 자는 완덕자 完德子, perfecti라고 하는데, 이들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해야 했다. 고기, 우유, 계란 등 짝짓기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을 먹지 않으며, 그들 자신도 성행위를 하지 않았다. 이들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영혼이 불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굶어 죽는 '엔두라 endura'라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기존 교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순결하지 않은 성직자가 행하는 미사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대신 자신들이 신의 계시에 의해 설교할 권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 악마의 힘이 작동되는 방식을 언급한 중요한 문건은 1326년에 나온 교황칙서 super illius specula이다.
[이름만 기독교 신자인 많은 사람들이 악마에게 희생을 드리고 악마를 숭배하며 마술적인 목적을 위해 도상, 반지, 거울 혹은 작은 유리병 등을 이용하며 그들을 악마와 결부시킨다. 이들은 악마에게 간구하여 응답을 받고, 그들의 가장 사악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악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위해 스스로 가장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굴종하면서 이들은 죽음의 세력과 동맹을 맺고 지옥과 계약을 맺는다... 누구라도 그러한 비틀린 도그마들을 가르치거나 배워서는 안 되며, 나아가 더 흉악한 일로서 그 어떤 목적과 그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바이다. (Kors, no.21)]
- 여기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요소가 "도상 image, 반지, 거울, 작은 유리병" 같은 도구들이다. 이것들은 민중 마술에 등장하는 풀, 과일, 끈 같은 물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정교한 마술 도구들이다. 말하자면 이 칙서에서 경고하는 것은 학자들이 연마하는 고급 마술이다. 이들은 '이름만 기독교 신자'일뿐 실제로는 악마를 숭배하고 사악한 힘을 전수받는 자들이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니 이들에게서 배우거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거나, 혹은 그런 술수들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파문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 비난의 대상은 분명 학자층이다. 학자들은 오랜 노력을 통해 악마의 힘에 접근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요소는 '악마와의 계약 pact'이다.
- 사실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발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으로서 고대적 기원이 있다. 성경에서도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또 카타르파와 왈도파를 비난할 때에도 악마 계약이라는 혐의를 적용했었다. 이처럼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요소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변화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요소들이 중세 말 근대 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일반화되었다는 점이다. 악마 계약이 막연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에 실재하는 현상, 현재 우리를 위협하는 즉각적인 문제를 설명하는 개념 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악마와 계약을 맺어 초자연적인 힘을 휘둘러 사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교황청이 인정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는 일이다. 1320년대 이후 마술 문제를 다루는 지침서들이 여러 종류 출판되었다. 예컨대 우골리노 잔키니 Ugolino Zanchini (1340년 사망)는 로마법과 교회법에 근거하여 마술과 예언을 판정하는 책을 출판했다. 마술의 문제들을 법적으로 처리하는 지침서의 출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제 마술 문제는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세속 당국이 나서서 처리하고 처벌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과 실무 측면에서 따라야 하는 매뉴얼들이 필요해졌다.
- 가장 흔한 것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다. 고양이는 신참자에게 앞으로 계속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러면 신참자는 7가지 서약을 한다.
1) 마스터에게 앞으로 계속 충성을 다한다.
2) 이 모임에 참여한다.
3) 죽을 때까지 이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4) 가능한 모든 3살 이하 어린이들을 죽여서 시나고그로 가져 온다.
5)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시나고그로 달려온다.
6) 사악한 행위들 sortilegia, maleficia을 통해 부부간 결합을 막는다.
7)이 모임에 해를 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복수한다.
- 이런 서약을 한 다음 신참자는 악마의 항문이나 엉덩이에 키스한다. 이렇게 신참 의식이 끝나면 어린아이를 죽여 그것으로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촛불을 끄고 악마가 '메슬레 Mestlet' 하고 외치면 모두 음란한 정사를 벌이는데, 남자와 여자가 남자와 남자가, 때로는 아버지와 딸이, 아들이 어머니와, 오누이 간에 성관계를 한다. 그 후 다시 먹고 마신 다음 집으로 간다. 이때 죽은 아이의 살에 뱀, 두꺼비, 도마뱀, 거미 같은 것들을 첨가하여 만든 고약을 나누어 주는데, 이것을 다른 사람이 만지면 바로 죽거나 심한 병을 앓게 된다. 또 아이의 내장으로 만든 가루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데, 특히 이것을 흐린 날 공중에 뿌려 많은 사람들을 해친다.
- Johanna 문건에는 자신의 아들딸을 죽여 잡아먹었다는 요한나 바칸다 JolVacanda라는 사람의 예가 나온다. 로렌초 성인(큰 석쇠에 구워서 죽이는 식의 순교를 당한 성인)의 날에 화형 당할 때 그녀는 외손자를 죽여 다른 여인과 함께 먹었다는 사실도 공중 앞에서 고백했다. 그리고 재판에서 이미 그 여자의 이름을 댔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정형화된 사바스의 모습이 거의 완벽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인이나 종교인의 상상 속 ...
- 더구나 이곳은 과거 이단의 잔존 세력이 강했고, 여기에서 이단과 마녀가 혼동되며 악마화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때 민중적인 견해와 신학자들의 견해가 교환되며 사바스 개념이 만들어져 전 유럽에 퍼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이 정리되어 매뉴얼들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 1430년대에 출판된 여러 악마론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는 요한네스 니더(1380/85~1438년)의 <개미 나라>를 들 수 있다.
그는 남부 슈바벤 지역에서 태어나 1402년경 도미니칸 수도회에 들어갔다. 빈 대학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한 후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여했으며(1415~1418년), 1426~1429년에 뉘른베르크의 도미니칸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개혁파의 열렬한 지지하에 그는 1429~1436년에 바젤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1431~1434년 이곳에서 개최된 바젤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후, 아마도 1435년에 빈 대학에 돌아가 다음 해에 신학부 학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저서를 집필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이 <개미 나라>이다. 제목은 성경(잠언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개미 나라를 인간 세계의 모델로 비유한 것이다. 이 책은 모두 5권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마지막 제5권에서 악마와 마녀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구한다.
- 최악의 존재란 물론 악마의 하수인인 마녀다.
- 여성은 성녀가 될 수도 있고 마녀가 될 수도 있다. 니더의 시대는 성녀와 마녀가 혼동되던 시기이며, 성인전과 동시에 악마론이 생산되는 때였다. 바꿔 말하면 선악이 다시 정의되고 새롭게 구분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럴 때 성인 혹은 성녀로 추앙받는 존재가 과연 정말로 신과 천사가 인도하는 것인지 혹은 위장한 악마의 하수인인지 재검토하게 되었다. 그 이전 시대인 12~13세기에 등장했던 살아 있는 성녀들에 대한 평가가 뒤집어지는 일들도 벌어졌다. 예수와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자들은 합리적 인식을 거부하고 신과 직접 소통을 추구하며, 거식, 환희, 성흔 등을 강조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몸 자체에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표시가 나타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현상들이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 인간의 몸에 나타나는 신성함의 상징이 진실한 것인가? 후대에 '또 다른 예수 alter Christus'로 추앙받게 되는 프란체스코 성인도 이 시기에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1224년 9월부터 스티그마툼(성흔, 십자가에서 예수가 겪은 고난과 유사한 흔적, 곧 두 손, 두 발, 옆구리에 생긴 상처 흔적)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물며 여성의 경우에는 더 큰 의심과 더 엄격한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프란체스코식의 소박한 믿음과 공동체를 강조하고, 환상과 환희를 경험했다는 몬테팔코의 클라라 수녀원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녀의 심장에는 예수 수난의 표시가 완벽하게 나타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1308년 그녀가 죽은 후, 교황청은 일단 시성을 거부하고 시체를 철저히 검사하였다.
- 니더는 선악을 명료하게 재규정하는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성녀의 전성시대는 조만간 마녀에 대한 공포가 폭발하는 시기로 이어졌다. 그가 보기에 많은 여성들은 성녀이기는커녕 악마의 하수인일 수 있었다. 실제로 환상을 보는 여인들이 성녀 카테고리에서 점차 마녀로 전환되었다.(Viallet, 189~190)
-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계에 서 있는 존재였다. 천사와 악마 어느 쪽의 지도를 받는지 애매한 존재,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 무엇보다 신이 정한 남녀의 질서를 교란하는 자가 최대의 의심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극도의 의심을 받았다. 잔다르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니더 역시 잔다르크를 중요한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Nider, 8.09) "나는 신학자이며 파리 대학 대사인 니콜라스 아미쿠스 Nicolas Amicus에게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바젤 공의회에 참석했다가 잔다르크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Nider, 8.11) 그가 들어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는 그녀가 남자 옷을 입는다는 점, 그러면서도 자신은 여성이며 처녀라고 주장한다는 점, 그리고 신이 그녀를 보내 프랑스를 도우라고 주장한다는 점 등이다. 그녀는 군인처럼 말을 타고 장래 있을 수많은 승리를 예언하며, 실제 여러 번 군사적 성공으로 이끄는 등 많은 놀라운 일을 수행하여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놀라게 한다고 기술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니더는 놀라움과 동시에 강한 의심을 표한다. 당대 많은 사제들과 수사들 모두 그녀를 인도하는 게 악마적인 영인지 신적인 영인지 궁금해하며, 박학한 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의견이 다르다 못해 상반된다는 것이다.(Nider, 8.10) 니더 자신도 그녀가 성녀인지 마녀인지 고민하다 결국 마녀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 그녀의 성공은 몇 년 지속되지 않았으며, 잉글랜드 군에 잡혀 감옥에 갇혔다. 그녀는 자기가 신이 보낸 천사와 함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사악한 영이라고 본다. 이로 인해 그녀가 마술사라고 판단한 후 그녀를 화형에 처했다.(Nider, 8.11)
- 잔다르크는 어떤 식으로 마녀 판정을 받은 걸까? 그녀에 대한 재판 기록을 참조해 보자.(Hobbins)
잔다르크가 콩피에뉴를 공격하다 실패하고 사로잡히자 잉글랜드 측은 자신들이 점령하고 있던 루앙 성에 그녀를 감금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재판은 당연히 정치적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잔다르크가 주도하여 프랑스 국왕 샤를 7세가 대관식과 축성식을 치렀으므로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측은 잔다르크가 이단이거나 마녀임을 증명하여 프랑스 왕의 정통성을 훼손하려 했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13세부터 그녀가 들었다는 '목소리'였다. 프랑스 왕을 구하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누가 보내는 것이냐는 추궁에 그녀는 미카엘 천사, 가브리엘 천사, 알렉산드리아의 카테리나, 안티오크의 마가레트 성녀였다고 밝혔다. 심지어 재판 당시에도 천사와 성인들이 그녀에게 '담대하게 답하라'고 알려주고, 심지어 주교에게 '당신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신이 보내셨고, 당신은 큰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그녀가 듣는 목소리가 악마 혹은 악령의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재판관이 그녀에게 따져 묻는 내용 중에는 고향에 있는 '귀부인들의 나무 Arbre des Dames' 혹은 '요정들의 나무 Arbre des Fées'와 그 주변의 샘에 관한 것도 있다. 이런 곳들에 동네 처녀들이 모여 나무에 꽃줄을 걸고 춤추고 소원을 비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작은 숲 le Bois Chenus에 '언젠가 놀라운 일을 할 처녀가 나온다'는 전설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이때 재판관들은 그녀를 민중 신앙의 마술사로도 의심한 것 같다.
- 예비조사 끝에 그녀의 혐의는 모두 70개 항으로 정리되었다. 내용 중에는 자신을 우상화했다는 점, 마술로 적을 살해하려 했다는 점, 악령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신과 천사 목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지만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 포함되었다. 재판장인 피에르 코숑은 이를 다시 12가지로 재정리했는데,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사실은 유령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 남장을 하여 구약에서 밝힌 신의 섭리를 위반했다는 점 그리고 교회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점 등이 주요 혐의였다. 그녀가 마녀라는 주장은 입증하기 쉽지 않으므로 대신 이단이라는 주장으로 논점을 바꾼 것이다. 파리 대학에 이에 대한 의견 조회를 했는데, 대학 측은 47명의 사제와 박사들 중 42명의 찬성으로 잔다르크가 이단이며 그녀가 행한 모든 일들을 번복하지 않는 한 그녀를 세속 당국에 넘겨 처벌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 반대로 프랑스 군을 지휘할 때에 잔다르크는 살아 있는 성녀 취급을 받았다. 당대 기록에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이 그녀를 깊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놀라울 정도의 무리가 달려와 그녀를 만지거나 심지어 그녀가 타고 있는 말을 만지려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녀를 만지려 한다는 것은 그녀를 신성한 치유의 힘을 가진 '기적을 행하는 자 thaumaturge'로 본다는 이야기이다. 잔다르크는 성녀와 마녀(혹은 이단)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잉글랜드와 부르고뉴가 주도한 재판정은 그녀에게 이단 판정을 내려 사형을 선고했다.
- 흥미로운 점은 당시에 자신을 하늘이 보낸 사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으로 잔다르크가 유일무이한 게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거의 동시에 등장하여 잔다르크와 경쟁을 했던 '라이벌 성녀'인 카트린 드라로셸 Catherine de la Rochelle을 주목할 만하다. 잔다르크는 그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카트린에게 황금색 옷을 입은 하얀 부인 domina alba 이 찾아와서 국왕에게 충성하는 도시로 갈 것을 명했고, 또 카트린이 금은보화를 숨겨둔 자들을 다 알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찾아내어 잔다르크 휘하 병사들의 무장에 쓰겠노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진정 신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므로, 카트린에게는 '집으로 돌아가 남편 돌보고 아이나 잘 키우라고 면박을 주었다'.
- <개미 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니더는 잔다르크를 돕는 다른 '마녀'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신이 자신들을 보냈다는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났는데, 이 두 여성은 체포되어 이단재판을 받았고, 곧 사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이 사탄의 천사에게 속았다고 자백했으나,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다가 화형 당했다.(Nider, 8.12)
- 잔다르크처럼 자신이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남성 행세를 하는 여성의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Nider, 8.07~08) 니더에 의하면 헨리 칼티저 Henri Kaltyser라는 신학자가 이단재판관 자격으로 쾰른에 갔다가 그 근처에서 한 젊은 여인의 사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 옷을 입고 무기를 가지고 다니며 남자와 춤추었다. 성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이다. 당시 트리어 주교 자리를 놓고 두 후보가 갈등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마치 잔다르크가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를 위해 일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녀는 쾰른 근처의 비른부르크 virnenburg 백작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냅킨을 찢었다가 그 자리에서 도로 붙이고 잔을 벽에 던져 깨고는 다시 붙이는 식의 마술을 부리며 사람들을 속였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의 소환에 불응하여 백작의 보호하에 멀리 도주해서 궐석 재판 끝에 파문당했다. 후일 그녀는 프랑스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박해를 피하기 위해 한 군인과 결혼했다가, 그 후 다시 어느 방탕한 사제와 바람이 나서 메스로 도주하여 그의 첩으로 살아갔다.
- 잔다르크는 결코 유일무이한 사례가 아니며, 그와 유사한 신비한 인물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성녀와 마녀 사이를 오가는 여성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시대는 성스러움과 사악함이 재검토되는 혼동의 시대였다.
-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위험한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들을 잡아서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화되어 갔다. 실제로 니더의 책에 거론된 사례들에서는 당사자들이 모두 화형에 처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교회와 사법 당국은 악마의 세력을 찾아내서 없애는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그런데 악마의 세력이 정말로 강력하다면 재판관도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까?
- 마녀의 핵심 개념은 1430년대에 출판된 주요 저작들에서 거의 완성된 형태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개념을 근거로 실제 마녀사냥이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마녀에 대한 박해는 산간 지역을 비롯한 변방에서 일어난 국지적 사건에 속했다. 전 유럽에 마녀사냥의 불길이 퍼져가려면 마녀 개념이 더 정교하게 정비되고 확산되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Malleus Maleficarum>(1487, '악마에게 가하는 망치'라는 의미이며, 이하 <말레우스>로 약칭)이라는 저작이다. 이 책은 스콜라철학의 틀을 이용해 매우 치밀하고 탄탄하게 '악'의 개념을 구성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안출해 냈다.
- 사람들이 여전히 악마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었으며, 악마를 마치 박쥐처럼 검은색에 날개를 달고 있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제 사회 일부에서는(특히 엘리트층에서는) 순진한 사람들의 그런 믿음을 조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유럽 사회는 이렇게 서서히 악마의 환상에서 해방되어 갔다.
- 마녀사냥은 언제 어떻게 종식되었을까?
이는 실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마녀재판의 시작과 정점에 대해서는 많이 주목했으나 종식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했다. 유럽 문명이 어떻게 마녀사냥이라는 암흑의 덫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검토해 보자.
- 유럽과 유럽의 식민지에서 전반적으로 17~18세기에 마녀재판이 줄다가 결국 종식되는 장기간의 과정을 밟았다.(Levack 2013. 429~435) 점차 재판이 줄고 피고소인이 석방되고 판결이 번복되고 그리고 마침내 법자체가 폐기되는 수순을 밟아 최종적으로 마녀라는 죄가 아예 성립되지 않는 단계가 되면 마녀사냥 현상이 종식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실제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도, 또 단선적이지도 않았다. 우선 지역적인 차이가 매우 컸다. 예컨대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16세기말에 이미 마녀사냥이 종식되었지만,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종식 과정 자체도 차이가 커서 스코틀랜드의 경우 수십 년 걸렸지만, 프랑스의 프랑슈콩테 지방이나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같은 경우는 일단 방향이 잡히자 수년 내에 급속히 완료되었다. 또 프로이센의 경우 법의 변화가 선행하지만, 영국이나 덴마크 같은 경우는 실제로 마녀사냥이 먼저 사라지고 법이 나중에 정비되었다.
- 마지막 마녀재판이 일어난 연도를 보면 마녀사냥이 실로 늦은 시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뷔르츠부르크는 1749년, 바이에른은 1792년, 뷔르템베르크는 1805년에 최후의 마녀재판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한편에서 마녀재판이 여전히 진행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사라져 가는 복잡한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마녀사냥 종식의 최종 과정은 마녀 자체를 '비범죄화 decriminalization'하는 일이다. (Levack 2013, 433) 즉, 더 이상 마녀라는 죄로 기소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것, 다시 말해서 법적으로 더 이상 마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이전에 이와 같은 법적인 변화를 겪은 나라는 프랑스(1682년), 프로이센(1714년), 영국(1736년), 오스트리아(1766년), 러시아(1770년), 폴란드(1776년), 스웨덴(1779년) 등 7개국이었다. 특히 마지막 두 나라는 명시적으로 마녀재판을 완전히 금지시키는 법을 제정했다. 폴란드의 경우 도루후프 Doruchów 처형 사건 이후 의회 sejm에서 마녀재판을 금지시키는 법령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마녀 기소에 관한 1604년 법을 1736년에 폐지했고, 프랑스는 1682년에 루이 14세의 왕령으로 마녀재판을 금지했다(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마녀재판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프랑스혁명 중인 1791년에 가서의 일이다).
- 오스트리아 경우를 보면 마리아 테레사가 추진한 개혁의 일환으로 마녀재판을 규제하는 법령이 나왔으나 그렇다고 이 법으로 마녀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마녀로 몰아 사형에 처하는 행위를 막고자 한 것이지, 마술 행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악마와 결탁하여 사악한 행위를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형은 법적으로 여전히 가능했다. 프로이센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곳에서도 마녀의 '비범죄화'와는 거리가 멀고 단지 일종의 사법개혁에 가까웠다. 즉, 고문과 처형 시에 반드시 국왕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얻으라는 의미였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마녀재판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마무리 과정이라는 것은 맞지만, 다만 법의 변화만을 놓고 마녀재판의 종식 과정을 판단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실질적인 종식 과정과 법의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 그렇다면 마녀재판을 종식시킨 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기존 정설은 교육받은 엘리트에서층부터 시작된 의식 변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앞에서 인용한 데니스 그랜빌의 이야기가 그런 점을 말해 준다.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사상적 변화가 기본 동력이라는 것이다.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사고가 변화했고, 이들의 영향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났다는 논리다. 곧 근대적 의식, 과학적 사고, 기계적 우주론, 미신타파, 계몽주의 영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휘그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그 근거 자료로 대개 계몽적인 지식인들의 저서들을 제시했다.
- 이것이 20세기말까지 지배적인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 같은 설명 방식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기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 민중 문화에서 많은 것들을 끌어왔다. 마녀는 100% 엘리트가 창안한 순수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로 만들어낸 구조물이며, 여기에는 많은 민중 마술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 개념이 재판에 적용되고, 거기에서 얻은 결과가 다시 개념화를 강화하는 식의 톱니바퀴 효과 ratchet effect (정해진 한쪽 방향으로만 가게 된다는 의미이다)를 낸 것이다.
-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마녀사냥의 주체가 국가 혹은 중앙정부라기보다는 그 아래 층위의 지방 권력과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이 정점에 이른 시기를 살펴본 결과는 분명 이 주장에 더 부합된다. 지방 당국, 공동체 지도자들이 마녀사냥에 열심이었던 반면, 중앙정부는 오히려 이것이 법질서를 지나치게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 마녀사냥은 근대 국가 형성에 동력이 되었던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과연 공동체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 장에서 우리는 수년, 심지어 수십 년 누적된 공동체 내의 갈등이 마녀사냥이라는 채널을 통해 폭발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전염병이나 흉작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마녀사냥의 기회가 주어지면 주민이 이웃을 고발하여 본격적으로 적대감이 분출된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갈등이 지방 권력체의 마녀사냥이라는 사법 틀 속에서 점화된 것이다. 이런 민중 에너지가 연료가 된 것은 분명하다.
- 마녀사냥을 주도한 풀뿌리 조직은 일종의 민중 테러 양태를 띠기도 했다. 처음에 지방 권력이 이를 부추길 수 있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상층이 제공한 마녀 개념, 악마론, 사법 기구 등이 중요하다 해도 이것들이 힘을 얻어 작동하려면 하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국 희생자들을 마녀로 몰아 죽이는 데에는 '이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웃이 이웃을 죽인 셈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과거 공동체는 따듯하고 인간적인 곳이라고 일방적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늘 갈등이 잠재해 있다가 때로 강력하게 분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 특히 이런 측면을 부각시킨 연구자가 키스 토마스이다. 그는 마을 내에서 누가 누구를, 왜 마녀로 몰아갔는가를 살펴보았다. 그가 찾아낸 핵심 사항은 공동체 내 상호부조 전통의 붕괴다. 전통적으로 시행해 오던 부조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히 도와주어야 할 약자를 차갑게 되돌린 데에서 오는 죄책감이 역으로 상대방을 희생자로 몰아 아예 제거해 버리려는 경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 여성들이 주로 희생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원래 악마론의 설명에 의하면 여성성 그 자체가 마성을 띠며, 따라서 모든 여성이 마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않고 늙고 싸움 잘하는 여성들이 마녀로 몰렸는데, 이는 토마스가 말하는 방식의 희생자가 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 여성들이 훨씬 많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은 가부장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불손한' 여성들을 공격하는 사건이었다고 거론되곤 했다. 분명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 역시 전체의 큰 흐름 속에서 다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 이전 시기에는 초자연적 마술을 행하는 죄로 고소된 사람 중에 남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을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여성 희생자가 남성 희생자보다 더 많아진 것은 중세 말근대 초 이후의 일이다. 다만 이때에는 희생자뿐 아니라 고소자도 여성이 더 많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Borst, 302; Bever 2002,957) 그러므로 일방적으로 남성 중심의 질서가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 마녀사냥의 본질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근대에 국가 질서, 가부장적 사회 질서가 강화되는 현상과 맞물려 여성에 대한 공격이 일층 강화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명백하다.
- 이제 이 연구를 마감해야 할 때이다.
아직도 어떤 대담한 일반화를 시도하기에는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현상이 워낙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장구한 시간 동안 발전해 왔으며,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유럽 사회가 마녀라는 기이한 존재를 만들어냈는가, 왜 유럽 문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하는 원래의 질문에 잠정적인 답이라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 다시 강조하지만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지극히 사악한 존재는 지고의 선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했다. 신앙과 이성의 담당자인 교회와 국가는 자신을 정립하고 지배력을 강화해야 했다.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역으로 악을 규정하여 모든 사람이 영혼 내부로부터 악을 스스로 억압하고, 또 사악한 세력을 적발하여 처벌하는 것이다. 죄를 내면화하여 계속 참회하도록 하고, 여기에 복종치 않는 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의 초기 형성 과정에서 교회의 지지를 받은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을 이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 그러나 국가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더 이상 마녀사냥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아래의 지방 권력체들이 이런 방식을 악용했고, 때로 공동체 내의 갈등과 맞물려 폭발적인 양태를 띠기도 했다. 극단적인 마녀사냥이 일어났던 지역들은 대개 독일이나 스위스 등 아직 근대적 국가 권력이 자리 잡지 못한 곳들이었다.
- '중세' 국가와 교회의 정당화 과정에서 악을 재정립하는 데에 악마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근대' 국가가 강화되는 데에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정당화가 작동했다. 프랑스, 잉글랜드 같은 곳에서 근대 국가의 사법 체계가 일찍 마녀사냥 종식에 나선 것이 그런 까닭이다. 마녀사냥은 근대 국가 발전에 뒤쳐진 후진국에서 극심하게 터져 나온 현상이다.
-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현대까지도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험에 떨어뜨리는 마녀를 창안하고 동원한 것은 근대 초기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역할을 마친 후 마녀는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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