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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머니게임 1-4 (완) -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원작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5. 11. 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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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진수
출판 : 글의온도
출간 : 2024.05.17


       


문득 든 생각인데, 살아온 나날 중 가장 안정적이고 깨끗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전자기기들의 도움으로 매일 진공청소 + 물걸레질을 하고, 주 1회 정도 침구류를 세탁 + 살균 건조한다.

건조 일체형 세탁기라 한 번 빨래를 돌리면 도중에 열어서 옮기지 않아도 보송보송하게 나온다. 

식세기를 돌리면 되니 설거지가 쌓일 염려 없이 요리할 수 있다.

상시 분리수거가 가능하니 재활용품을 따로 집 안에 모아둘 필요도 없다.

 

어... 잘 살고 있네.

 

이제 슬슬 신체 활동과 재정 안정성, 자기 계발에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뭔가 더 놀고 싶단 말이지.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발견했다. 

 

<머니게임>.

동명의 웹예능을 쇼츠에서 봤는데,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 '뭐든지' 거래가 가능하다는 룰이 신선했다. 

좀 더 찾아보니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알고 원작부터 찾아 읽게 되었다. (나는 대부분 뒷북을 치는 편이다) 

그림체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용과 잘 어울리는 작화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원작은 훨씬 단순한 룰이었다.

그래서 더 잔혹해졌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절대 다수의 절대 선은 개인의 이익 앞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독재와 철인정치는 이상향일 뿐인가?

 

왜, '나'는, '너'와, 다른가?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와닿는 부분들이 많아 오싹하게 읽었다. 주인공인 8호와 사고 흐름이 비슷한 편이었는데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비겁하다는 점에서 대다수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교육기관에서는 '도덕'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이미 그걸 배우는 교실 안에서조차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면- 

'인간'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적절한 시작점이 아닐까 싶어진다. 

 

연작으로 이어지는 <파이게임>과 <퍼니게임>도 있다고 한다. 

평은 대체로 <머니게임>만 못하다 쪽인 듯한데, 일단 <파이게임>까지는 읽어볼 생각이다. 

재밌었다.

 


   

 

- "너, 부자와 가난뱅이의 차이가 뭔 줄 아냐? 찬스가 내 앞에 왔을 때 그걸 잡느냐 놓치느냐. 부자는 과감히 그걸 잡지만 가난한 놈들은 고민만 ㅈㄴ게 하다 놓치지8천 박아서 세 달 만에 5억 넘겼다. 지금 코인판에서 못 벌면 ㅂㅅ인증이야.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씨드머니부터 만들어 와. 무조건 5배 이상 띄워 줄게. 그래ㅅㄲ야. 최소 5배. 형이 책임진다." 

-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있다고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오늘도 수백 개의 점포가 새로 생긴다.
주식으로 수익 내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통계를 내밀어도 오늘도 수천 개의 구좌가 새로 개설된다.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건 초딩도 아는 상식이지만 오늘도 수만 개의 승무패 사이트가 돌아간다.

- 왜냐고?
착각 때문이다.

- 너는 잃지만 나는 벌겠지.

너는 지지만 나는 이기겠지.

너는 망하지만 나는 흥하겠지.

- 불행은 항상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 보통의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그 사회가 오랜 기간 시간과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 이룩한 기반 시설을 공기처럼 누리며 살기 마련이다.
[운송 인프라]
[상하수도 인프라]

[전력 인프라]
공기처럼 누린다는 말은 필요하면 언제나 거기 있었기에 그것의 결핍으로 아쉬웠던 경험이 없다는 말과 같다.

 

- 아쉬운 경험이 없다는 말은, 인프라에서 격리된 상황이 얼마나 X 같을지... 몰랐다는 의미다.

몰랐다고 ㅅㅂ. 그딴 상상해 본 적도 없다고.
전파가 없으니 통신을 할 수 없다. 전력이 없으니 조명과 가전제품을 이용할 수 없다. 상하수도와 배관 시설이 없으니 몸을 씻을 수도 없다. 그리고 내 몸에서 나온 오물을 처리할 수도 없다.
 
- 오해했다. 아니, 오해하도록 유도당했다.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맹점을 보기 좋게 찔렀다.
필요한 건 구입할 수 있지만 가격은 천 배? 그럼 100일 동안 최대한 안 먹고 안 마시면 되는 거 아냐.
너무 간단해 보이는 룰이었다. 때문에 가려진 무게를 간과했다.
개인이 절대 구입할 수도 구축할 수도 없는 사회 인프라에서 참가자를 격리시키는 게이 게임의 첫 번째 악질적인 설계였다.
마침내 두려워졌다. 무게에 눌려 오금이 저린다.
악의가 요의를 불러온다.

- 물 한 통 백만 원.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숫자.
네. 사겠습니다. 

 


 

-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사람 또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 "와 오늘도 졸X 빡셌다. 손 안 벌리고 등록금 마련하려니까 힘드네."

- 평균 정도의 양심, 정의감, 선의지 같은 걸 지니고 살아온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오빠! 꽁초 좀바닥에 버리지 마!"
"ㅋ 미화원분들도 할 일이 있어야 안 짤릴 거 아냐."
"으이구! 하여튼 말은 잘해요!"
"맛난 거나 먹으러 가자. 알바비 나왔으니까 쏠게."

- 가끔 적당히 착하고 가끔 적당히 나쁜.
그 정도 양심의 농도를 가진 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곳엔 내가 평균이라 상정한 기준과는 너무도 먼 인간들만 모여있다. 평균 위로도. 또 아래로도.

- "그게... 제가 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2억 5천짜리 약을 매일 사 먹겠다고요? 자기만 살겠다고? "
 
- "복지의 종류는 광범위하고 다양해요. 최저 생계비, 노인연금, 장애인 지원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직접 복지'에서 도시환경 정비, 교통망 확충, 치안 유지 등의 '간접 복지'까지 그 개념을 확장해 본다면, 국가가 행하는 대부분의 사업을 복지라 부른다 해도 크게 잘못된 설명은 아녜요."

- <복지의 뜻>
: 행복한 삶
welfare : well (좋은) + faran (평안)

- "삶의 질을 높여 국민의 행복도와 소속감 증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사회복지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인간은 덜 주고 더 갖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진 존재라는 거죠."

 

- "이 부분에서 이해가 상충합니다. 복지의 존재 이유는 납득하겠으나, 그걸 내 노력이나 돈을 들여 하는 건 싫다. 많이 들인다면 더욱 싫다. 그래서 국가는 법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제어해요. 법령으로 조세를 징수하고 인력을 징발... 아. 벌써 마칠 시간이네요. 그럼..."

- "그럼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욕망을 법이란 강제력을 동원해 제어한다는 게 재밌는 부분인데."

- "전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합니다. 그, 그게 공평한 거 아니에요?"

- '공평함'이란 말의 뜻과는 달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a. 함께 수확한 과일이니 똑같이 나누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b. 더 많이 수확한 사람이 더 많이 가지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c. 더 많이 수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몫까지 딴 거니 덜 나눠 주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해.

d. 덜 수확한 사람은 더 많이 수확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애초에 덜 땄을 새X 아님?

- 차별이 생기는 건 공평한 게 아니지!
기계적으로 나누는 건 공평한 게 아니지!

- 공평함의 정의는 입장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 "말해보세요. 제 말이 트, 틀리나요?"

- 1호의 나댐은 물론 꼴 보기 싫지만, 체제나 잔액에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었다.
"8호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그러니까,"
진짜 거슬리는 부분은.
"할 말이,
무슨 이유일까. 빠르게 방 안을 스캔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잃었던 내 신용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단 사인이란 건 알 수 있다.
"3호 님 건에 대해 다른 분들에게 의견 구해봤는데, 2:2로 의견이 갈려서요."

- 풀어주자 의견 냈다가 혹시라도.
힝 속았지? 내 미친ㄴ 연기.

 

- 묶어두자 의견 냈다가 혹시라도.
아아... 전 그만 심신이 쇠약해져 죽고 말았답니다.

- "그러니까 8호 님은,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이 말이 이렇게 들림.
'아 대충 아무거나 픽해.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어차피 너한테 책임 다 떠넘길 거니까 멍 때리지 말고 암거나 빨리 정하라고.'

- 아니 평소엔 나한테 이것저것 잘만 상의하더니. 왜 이번엔 내가 마지막인데? 일부러 저러는 건가?
"당장 급한 거 아니니 생각 좀 해볼게요. 들어가세요."
살짝 짜증이 난다. 


 

- 자정에서 8시까지, 문이 잠긴 후 물건 구매 시에만 열리는 곳.

그러니 방주인 외엔 절대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

- 배송구.

- 이게 내일도 그대로 있다면...
만약 외부에서 넣은 물건이 수거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면.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거기야말로.
철통 보안의 개인 금고.
타인에겐 절대로 노출되지 않는 절대은폐의 보관처가 된다.

- "8호 님은, 확증편향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 "취사선택. 자신의 선입견을 뒷받침해 주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외면하거나 버리는 경향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상이나 심리를 말해요." 

- "방에 불을 피운 것도, 환 사재기를 종용한 것도, 그리고 지금 말하신 투입구 이야기도 마찬가지. 8호 님은 늘, 결론을 먼저 내려두고 그 결론에 이야기를 짜 맞추려 해요."
갑자기 왜 저래? 뜬금없는 장황한 인신공격에 화가 난다.
"보통은 그 반대로 진행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아 네. 물론 제가 등신짓한 건 인정해요. 근데 투입구 건은 너무 섣불리 판단하시는 거 아닙니까? 제 말이 맞으면 어떡할 건데요?"
"맞고 틀리고를 말하는 게 아녜요. 이번 역시 8호 님은, 투입구를 이용해 돈을 빼돌린다는 걸 기정사실화한 채 말하고 있잖아요."
와 몰랐다. 저렇게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일 줄은. 걍 범인 좀 같이 잡자는데 왜 저렇게 혓바닥이 길지?
"그리고 8호 님의 그 사고방식, 선입견이 바탕이 된 자기 확신은타인을 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돼요. 아닌가요? 제가 잘못 본 건가요?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씀하세요."

- 아니라고 헛소리 말라고 반박하고 싶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 NTP :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TP. 즉 핵확산 금지조약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외의 나라는 핵을 가질 수도, 개발할 수도 없다는 국제조약입니다."

 

- "본인들은 핵을 소유하면서 타국의 보유나 개발을 금지한다는 건 일견 강대국의 무력 독점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NTP가 현재 국제정세 안정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죠. 그럼 약소국들이 이 강력한 규제조약에 저항하여 강대국의 제제와 억압 속에서도 기를 쓰며 핵을 보유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만화영화에서 흔히 보듯, 세계정복을 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님 영토나 자원 확장전쟁을 하기 위한 준비일까요?"

 

-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제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핵이 있는 나라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종말병기라 불리우는 핵무기가 오히려 평화의 오브제 역할을 한다는 게."

- "하지만 약소국의 핵 보유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합니다. 협박에 의해서든, 협정에 의해서든. 즉 굴복하거나 속거나, 그 어떤 이유로든 핵을 보유했다 폐기한 나라의 말로는. 늘 처참했거든요."

 



 

- "안녕! 꼬꼬마 여러분! 싸움박사 퍽퍽박사예요! 세상에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 "첫 번째는 만두귀를 가진 사람. 그리고 두 번째는 감자주먹을 가진 사람이랍니다."
 

- "제가 바라는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언제나' 이럴 거란 걸. 이젠... 알았습니다." 

- 슬프지만, 맞는 말이다.
인간은... 아니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존재들이고 그렇게 설계된 덕에 살아남은 거니까.
좋게 말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나쁘게 말하자면 '절대 만족을 모르도록', 로직이 짜여진 덕에 끊임없이 발전하고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 그리고 물론, 이 로직의 순작용만큼 존재하는 부작용은, 나도, 5호도, 모든 사람이.

지난 70일 동안 지겹도록 겪었다.

- "제발... 그러니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가 나쁜 선택을 하지 않게, 제발... 힘을 보태주세요..."

 

- 분명 부탁의 대사지만.
두려운 건 저 대사에 감춰진 진짜 뜻.

간청의 형식을 빌어 찔러오는 날 선 협박.

-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제가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 "죽는다구요? 죽는다고?"
뿌득-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진짜 그럴 마음이었으면!! 진작 다 죽여버렸어!!!!"

- 그래. 감히 누가 부정하겠는가.
깡패도 순살치킨, 아니, 순삭시킨 저 실력이라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 숨통을 끊는 것쯤이야.

- 그래.
결정했다.
건다.
5호에게.
나머지 우리들의 시간을.
5호의 제안이 합리적이어서? 아니면 그의 무력이 무서워서? 그것도 아니면, 나머지 인간들이 못 미더우니까?

- 이해한다. 건강한 사람도 몸과 맘이 터져 나가는 곳이니, 난치병자인 2호에겐 더욱 가혹한 환경이겠지.
"제발! 제발! 약속했잖아요!! 제발!!!!!"
처절히 매달려 울부짖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들만의 기구한 드라마, 절절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 그 드라마는 오직 본인이 감당해야 할 본인만의 것. 타인에게 동정과 온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린 범부이자 필부일 뿐. 성인(聖人)이 아니니. 

 

- 그래.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까지 했었다. 충분히 즐겼다면, 즐거우셨다면, 기꺼이 상금을 하사할 맘이 생기실 테니까.
"돈만 줘..."
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었다.

- 다음 날.
놀랐다.
많이.

- 5호실 앞에.

평소와 다름없이 4개의 도시락과 4개의 물이 배급돼 있었다.
나라면, 아니 누구라도 이렇게 하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유책자인 2호 몫은 빼는 게 당연할 것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늘 그래왔듯 변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 7호는 말했다. 본인의 말과 행동이 늘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그런 오만은 스스로도 늘 경계한다고. 다만 돈과 생명 중 무엇이 더 높은 가치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문제라고.

- 7호는 말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럴 자격은 세상 누구에게도 없다고. 그럼에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을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 무려. 
두 번.

타인의 죽음이 본인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이곳에서 두 번이나 타인에게 목숨을 빚졌다.

- 나란 인간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제 그만 좀 죽었으면.'

1,172,969,000.
물론 큰돈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단 걸 참작해도 2호가 쓴 돈은 매우 큰 돈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사람이 죽어 마땅할 이유가 될 수 있나? 언제부터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 쉽게 생각했나?

 

- 반대 입장이었다면, 내가 2호처럼 불치병에 걸렸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다 양보하고 흔쾌히 죽음을 택할 수 있나?
아니 아니었겠지. 그러지 않았을 테지.
나 또한 2호처럼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쳤겠지.

 

-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이해가 됐고.
그렇게 이해하니.

조금 더

2호에게 동정이 갔다. 

 


 

 

- 명탐정 셜록홈즈는 이런 명언들을 남겼다.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불필요한 단서들을 제거한 후 남는 것이 진실이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 관찰하자, 비로소 깨달았다. 깨닫자, 비로소 도달했다. 

- 내가 좀 더 빨리 힘을 보탰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폭력에 맞섰다면... 
나를 원망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차라리 원망해 준다면 마음 편할 것 같다.

아마 나였다면, 소인배 같은 나였다면.

-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이 사람들 때문에 죽게 생겼다면, 억울해서라도 남은 돈을...

- 그리고 내가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다면.
5호 역시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 "저 역시...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죠. 여기서 이대로 죽게 된다면... 당신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 "왜 그러신 거죠. 아니,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신 거죠? 왜 절제하지 않은 거죠? 왜 믿지 않은 거죠? 그리고 왜 맞서지 않은 거죠?"

- "왜, 어째서... 그 모든 걸 나 혼자만 감당했어야 했나요."

 

- 5호의 회한 어린 항변이 심장을 찔러온다.
 
- 돈을 나눈다고? 싫은데!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7호의 말대로 그는 혼자서 너무 많은 걸 희생했으니.

- 권선징악...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말한다. 사람 목숨에 경중은 없다고.

하지만 목숨에 경중이 없단 말은, 둘 중 누구의 목숨도 똑같이 하나의 목숨으로 카운트된다면,

5호의 목숨이 아니라 3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게 바른 선택 아닌가?
 
-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뭘 하려 한 거지?

'살인'을 방조하겠다고? '살해'를 권장하겠다고?
그게...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생각인가?
 
- 이렇게 끝나버렸다. 결국 이딴 식으로.

어긋나고 망가지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수많은 선택지들이 우리 앞에 있었지만
욕심 때문에
불신 때문에
오해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그 기회들을 모두 놓쳐버렸고.
그 대가가 업보가, 바로 지금, 여기 이곳.

 

- 다 잃으니 비로소 보였다. 이 게임의 진짜 무서운 점, 진짜 잔인한 설계가 무엇이었는지.

- 상황을 악화일로로 치닫게 한 건 참가자들을 미쳐 돌아가게 한 건 
인프라의 부재도 아니었고
욕망의 자극도 아니었고
정보의 통제도 아닌
'사회에서의 격리' 그 자체였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 인간을, 사회화된 '동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깨달았다.
사회에서 인간을 격리시키자, 인간에게서 사회를 잊게 하자,
'동물'만이 남았다.

법도 규범도 도덕도 없는, 모르는 동물만이.

 

- [왜 저래?]
내 입장에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불가였지만

[왜 저러지?]
그녀 입장에선 내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불가였을 수도 있겠구나.

- 내가 살기에도 급급한 이곳에서 남을 살릴 물건을 사 모으고, 심지어 사진... 을 반납하지 않은 일련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납득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최 측이 심은 페이스메이커라 의심을...

- "네. 이해해요, 8호 님. 그런 말... 평생을 들어왔으니까. 별종이라고, 착한 척만 한다고, 눈치 없이 나대서 주변에 피해만 준다고. 하지만 저는 그냥...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했어요.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니, 그렇게 한 것뿐이에요."

- 아.
깜빡였다.
분명.
분명.
계시였다.

- 여기까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힘도 능력도 없는 일개 참가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내 간절함이 그들의 뜻에 닿아 기적을 내려주시기를 기다리는 것뿐.

- " 당신이... 당신이 정말 2호 님을 위한다면! 왜 끝끝내! 끝까지! 지켜보고만 있었던 거죠?! 전혀 관심 없잖아요! 이분들의 고통 같은 건! 관심 있는 건 오직 돈! 돈 뿐이잖아요!그게 바로 주최 측이 바라는 거잖아요! 돈에 눈이 멀어 인간성을 버리는 거! 그게 이 게임의 잔인한 함정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여자와 대화를 하면, 늘.
"사람이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건!! 8호 님도 알고 있잖아요!"
이 여자 앞에 서면, 늘.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왜 항상 본인 편한 대로만 상황을 해석하시는 거죠?"

- 그래. 구구절절 옳은 말. 하지만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 저 옳음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일 뿐이니까.

- "네. 맞는 말입니다. 당신은 늘 맞는 말만 하니까. 그런데요, 7호 님. 그래서 당신은, 그 잘난 이상론으로 뭘 이뤘죠?"

 

- 일방적인 이상론은.

본인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라 설정하고 내려찍는 설득이나, 지탄이나, 혹은 시혜적 계몽은.
그딴 것들은 반론을 원천봉쇄한 일방적 가학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 "지금까지 복지의 정착/확대를 방해하는 요소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회 비통합이 복지에만 국한돼 있는 게 아니란 걸 늘 체감하며 살고 있을 거예요. 크게는 국가 단위에서, 작게는 소속 단체. 심지어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인간은 원만한 소통을 이루지 못해 갈등을 빚는 존재들이니까요."

 

- heuristics : 복잡한 과제를 간단한 판단 작업으로 단순화시켜 의사 결정하는 경향

 
- "재미있는 건, 이 상호 몰이해는 진화 과정에서 얻은 효율적 판단 매커니즘의 부산물이란 점이죠. 정보처리에 필요한 인지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에 뇌는 더 짧은 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어림짐작을 행하도록 진화했어요. 이 스킬은 인간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부작용도 엄연히 존재해요 대부분 사회에서 극복하지 못한 구성원들 간의 반목과 오해, 혐오와 미움이 그 예들 중 하나겠죠."

- "휴리스틱을 진화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자 저주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판단의 기로에 섰을 때 본강의 내용을 한 번쯤 되짚어본다면, 더 좋은 선택의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이번 학기 수업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 "하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그렇기에. 해야만 해요. 그 고통을, 이 손으로, 내 손으로, 끝내줘야만 해요. 내 고통을 바쳐 타인의 고통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희생이니까."

- "그러니까!!!! 제발!!! 8호 님 제발!!!! 그만 좀 괴롭혀요 저를!!"
어떠한 호소도 어떠한 논리도 통하는 존재가 아니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보편적 선악의 개념조차 닿지 않는.

저 무분별하고 무차별한 7호의 '선의지'는.
어쩌면, 과거 그 어떤 성인(聖人)보다도 신에 가까운 성정에 도달했을지도...

- ...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니.
아니다.
그건 선의도 정의도 뭣도 아냐.
당신은 그냥.
그냥.

 

-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굴러간다.

 

 

- 여전히 수백 개의 점포가 생기고 망하고 수천 개의 구좌가 열리고 닫히고 수만 개의 승무패 사이트가 돌아간다.

나만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만은 잃지 않을 것이라는

나만은 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즉 착각 때문에.

- 그러니 앞으로도 세상은 착각과 희망을 구분할 수 없도록 설계한 그 '누군가'들의 바람 그대로.

망하고 잃고 지는 순환을 거듭하겠지.

 

-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그들 중 하나였지만
3년 전의, 
그 100일을 거쳐오며 내가 배운 건,
희망과 착각을 격리하는 방법.

- 불로소득, 일확천금, 인생역전... 따위에 대한 희망.

아니 착각을 버리니.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 그리고 그 100일은 또한.

진짜 공포와 거짓 공포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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