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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수] 파이게임 1-5 (완)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5. 11.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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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배진수
출판 : 글의온도
출간 : 2024.09.27


       

배진수 작가의 <게임 3부작>은 <머니게임>, <파이게임>, <퍼니게임>의 순서로 진행된다.

작중 표현을 빌자면 '주인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은 모두 동일.

 

처음 <머니게임>을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흥미가 생길 줄 몰랐다. 

그런데 한 번 시작했더니 다음 권을 읽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날 정도로 빠져들고 말았다.

설정이나 내용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작품이 '현실'과 '사회 현상'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닫힌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각각 떼어놓고 보면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동기와 감정과 생각들은 일상 곳곳에서 접하는 사회적 '사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작 <머니게임>이 사회적 합의와 금기에 대한, 사회화된 인간이란 환상 자체에 대한 작품이었다면,

이번 <파이게임>은 성장과 분배라는 사회의 동력, 소득 격차라는 익숙한 차별에 대한 작품이었다.

 

'이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층 별로 차등을 둔 시간당 적립금액.

시작할 시엔 미미했던 차이가 두 배 이상으로 벌어지며 나타나는 박탈감. 

전편부터 이어지는 '공평이란 무엇인가', '권력이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영향은' 같은 의문. 

 

'선을 넘을 수 있는가?'

 

'선이란 무엇인가?'

 

'선(線)은, 선(善)인가?'

 

발췌를 정리하며, 작품 내 등장인물이 던진 화두가 다시금 머릿속을 맴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약자는, 가난한 자는, 장애인은 선하다'라고 단정 짓는 건 올바른 사고인지 되물어 봅시다. 물론, 아니겠죠? 그러니까 분리해야 해요. 약자를 돕는 행위와 그들을 단정하는 행위는, 함께 묶일 이유가 없어요. 약자는 '선할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도 '선해야 한다'라고 바라는 것도 약자를 향한 또 하나의 편견일 뿐이니까요."

 

"자, 이렇게 한번 도식화해 보죠. 부자였던 A는 투자에 크게 실패해 전 재산을 잃었어요. 반대로, 가난했던 B는 복권 1등이 당첨돼 수십억의 상금을 받게 됐죠. 그럼, A는 악인에서 선인이 되었고, B는 선인에서 악인이 된 것일까요?"
 

<게임 3부작>을 하나의 허구적 이야기로만 접근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와 자본주의 그 자체를 녹여낸 통찰로 보고 접근한다면, 의외로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조금 더 젊은 나이에 깨달았다면 좋았을, 하지만 지금이라도 감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인. 

 

 


   

 

 

 

- 인간이 불행한 첫 번째 이유는.

그 비교의 시선이 언제나 위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비교하기 때문이다.

- 부지런히 일하면 생계가 유지된다. 가끔은 작은 사치도 부릴 수 있다. 최저한의 삶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도 있다.
제3빈국의 누군가가 본다면,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천상계, 심지어 판타지 같은 삶이지만.
그럴 테지만, 굳이 빈국의 누군가와 비교해 위안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항상 나보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잘난 파트너를 가진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 인간은 그렇게 행하도록 설계됐고 그래서 인간은,
불행하다.
 
- 인간이 불행한 두 번째 이유는.
늘 쟁취와 포기 중간 즈음, 애매한 지점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 큰 차와 넓은 집과 기깔나는 파트너를 원한다면 쟁취하면 된다.
힘들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하루 서너 시간 자며 파트타임 잡을 돌리고 최저생계비 아래의 생활비로 버텨내다 보면, 언젠간 다가설 수 있다. 수십 년이 걸릴지언정 언젠가 어느 정도는 쟁취할 수 있다.

- 하지 못하겠다면, 포기하면 된다. 비교를 멈추고 그들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면 된다.

-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행하지 못하도록 설계됐고 그래서 인간은 불행하다.

- 인간이 불행한 세 번째 이유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식음료의 제공, 제한 없는 구매. 상호 상해 불가.

언뜻 관대해 보이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경험으로 체득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전략... 아니, 계략이란 걸.

쉽고 빠른 일확천금 획득의 찬스를 제공.

하는 듯 보이지만 이게 덮이라는 걸, 안다.

이 게임에서 상금은 재능이나 노력의 대가가 아닌 절망과 절규와 교환되는 가치라는 걸, 안다.

 

- "그럼 분명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이 있을..."
한 번의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지만 반복된다면 동정도 못할 멍청한 짓거리일 뿐.
"아니 시X 집어치워. 이딴 고민을 왜 처하고 있어."
그걸 알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병X이 아니다.
교통비 2천만 원을 챙기고, 미련 없이 뒤돌아 나갈 것이다.

- 심지어 인간의 가치가 인간마다 다름을, 법에서도 인정한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 [네, 시청자분 말씀 잘 들었구요. 그 경우 교통사고 피해자, 즉 고인에게 지급되는 장례비와 위자료는 동일하지만 상실수익은 고인이 앞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벌어들일 예상수입을 바탕으로 산정하기에, 더욱 많이 주장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
[도움이 되셨나요, 시청자님?]

- 그 말은...
실수로 교통사고 내도, 가난한 사람 치여 죽이는 게 더 낫다는 말이잖아.

- 인간의 가치는 동일할 리도 동일할 수도 없다.

- "길고 치열했던 경제 이데올로기 전쟁은 당장으로선 자본주의의 승리처럼 보입니다만. 모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양극화의 종말을 떠안게 되기에 어쩌면 여러분들 세대가 끝날 때 즈음엔 자본주의의 퇴락을 직접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제가 '필연적인 종말'이란 강한 표현을 쓴 이유는, 자본에는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어느 정도 질량을 갖춘 후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몸집이 불어나 종국엔 블랙홀처럼 주위 자본을 끝없이 잠식, 자본의 양극화와 계급화를 막을 수 없게 되죠. 네, 부익부 빈익빈이 바로 그것입니다."

- "좀 더 쉬운 예를 들어 볼까요? A, B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둘은 모든 가용자산을 투자해 가상의 상품인 'X'에 투자하기로 했어요. A는 100만 원 치, B는 1억 원 치의 X를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3년쯤 지나 X의 가격이 두 배가 됐어요. A는 100만 원의 수익을 올렸고 B는 1억 원의 수익을 올려 각각 자산이 200만 원과 2억이 되었네요."

- "자 그러면, 좀 더 시간축을 길게 늘여 동일 수익률로 15년이 더 흘렀다 가정하면. A는... 괜찮은 투자였네요. 100만을 투자해 원금 제외, 6300만 원을 벌었습니다."

 

- "그리고 B는, 63억 원을 벌었네요."
 
- 지난 4일 내내,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거 아냐?라는 의심이 들었다.
전 게임과는 다르게, 문은 방 주인의 지문으로만 열린다. 즉 안전이 보장된다.
그래, 이거면 안심할 수 있지.
하지만, 이 '안전'과 '안심' 제공의 의도가 위층, 즉 권력자들을 향한 것이라면?

- 들은 적 있다. 역세권 어쩌고 하는 좋은 아파트는, 애매한 부자들을 위한 동네라고,
진짜, 찐 부자들은, 지하철도 버스도 안 다니는 곳에 그들만의 성을 꾸리고 산다고.
왜냐면, 엮이기 싫으니까.

본인 경제력과 권력에 걸맞는 '고상한' 사람들이랑만 '안전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그러니 이 잠금장치의 목적은 모두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위층들을 지키기 위한...
 
- 아니, 눈치채지 못했던 것뿐인가? 애초에 사이코패스였는데, 철저한 계획과 완벽한 연기로 모두를 속여 넘긴 게...
"에~ 흔히들 그런 편한 결론을 내리곤 하죠. 악인이니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이코패스였을 것이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다. 흑 아니면 백이다."
 
- 2층과 6층.

둘 모두 딸이 있다.
2층과 6층.

모두 딸을 사랑한다.

여기까진 같다.

 

- 다른 점은,
한쪽은 딸을 사랑하기에 게임을 계속 하고 싶어 하고

다른 한쪽은 딸을 사랑하기에 그만두고 싶어 한단 것.

- 하지만 양극을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의 쟁의가, 늘 위층의 의지관철로 끝나는 건.
배웠던 내용 그대로다. 

6층은 잃어봤자 돈이지만 2층은 잃는 게 목숨이기 때문.

- underdog (약자) + dogma (독단) = 언더도그마 (undergoguma)
"언더도그마라는 말이 있어요. 약자에게 가지는 비이성적 동정을 뜻하는 말로서 쉽게 설명하자면 강자(부자)는 악하고 약자(빈자)는 선할 것이다,라고 믿는 심리를 뜻하죠. 용어는 낯설지만 개념이 낯설지는 않죠? 약자를 향한 동정은 일반적인 측은지심이니까. 계층에서의 대표적 약자인 빈곤층, 노년층, 장애인 등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투입하는 것도 이 같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것이구요.
 
- "하지만 그닥 유쾌하지 않은 숫자를 알려드리자면, 소득별 범죄 비율은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이 훨씬 높았어요. 이 주장이 틀렸다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개개인이 처한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럼 이 숫자를 근거로 삼아, '부자는 선하고 빈자는 악하다'라고 주장하면 될까요?" 

-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약자는, 가난한 자는, 장애인은 선하다'라고 단정 짓는 건 올바른 사고인지 되물어 봅시다."

- "물론, 아니겠죠? 그러니까 분리해야 해요. 약자를 돕는 행위와 그들을 단정하는 행위는, 함께 묶일 이유가 없어요."
 
- "약자는 '선할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도 '선해야 한다'라고 바라는 것도 약자를 향한 또 하나의 편견일 뿐이니까요."

- "여러분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저 말도 안 되게 비싼 아파트는, 으리으리한 건물은 어떻게 사는 걸까? 저 수십억짜리 집은 수백억짜리 건물은 누가 어떻게 사는 걸까? 월급 몇백 받는 걸로는 한 달 생활하기에도 빠듯한데, 아끼고 아껴도 수십 남기는 게 고작인데. 그런 생각,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해 본 적 있냐구요."

- "자, 그렇다면 다시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언제, 어디서 '부'를 시작했을까? 이게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 "알고 싶어요? 도전자 중 '일부'가 쟁취하는 거예요. 사업이든, 주식이든, 코인이든, 심지어 범죄든. 내가 가진 모든 걸 판돈으로 걸고 뛰어든 도전자 중에서 '일부'가 쟁취하고 '영원히' 대물림하게 돼요."

- "여기까지 들은 사람은 보통 두 가지 양상을 보이더라구요. 일부만 성공한다고? 그럼 대부분 실패한단 거잖아. 그런 모험은 못해. 일부만 성공한다고? 그래도 일부 안에 들면 리틴이 어마어마하잖아. 걸어볼 만한데? 4층 님과 대화해 보며 느꼈어요. 아, 이 사람은 리스크를 짊어질 각오가 된 사람이구나. 가진 모든 걸 걸 사람이구나. 그렇죠. 이런 사람들이 해내는 거죠."

- "이런 사람들 중 일부가 극한의 확률을, 극악의 리스크를, 뚫어내고 견뎌내고 이겨내서 마침내 돈복사의 경지에 도달하는 거죠. 그 경지에 오르면, 연 1%의 시시한 이율이라도 상관없어요. 통장에 백만 원 있는 사람에겐 만 원짜리 한 장 수익일 뿐이지만, 백억 자산가에겐 놀며 버는 일억이니까요."

- "이해하겠어요? 여기까지만 올라서면, 써도 써도 줄지 않는다구요. 줄지 않아 부루마블 하듯 구매한 건물이, 빌딩이, 또 돈을 벌어다 준다구요. 가속한다구요. 이 가속의 끝의 끝의 끝의 끝까지 가면."

-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 했다. 이곳이지만 높이가 다른.

 

- 오판했다. '겉모습'만 보고.
심지어 굳이 속이려 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속내를 보이지 않았을 뿐인데.
혼자 추측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속아 넘어간.
여전히 확증편향을 버리지 못한.

 

- 나만.
바보였다.

- [다음화 예고]
갑작스런 위층의 호출에 당황한 주인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3층!
아니?! 여기 불꽃펀치가!
영문 모를 폭력에 그만 못 참고 쓰러져 버린 주인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3층!
대 위기!!
과연 주인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3층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디 헤쳐나갈 것인가?!

힘내라 주인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놈아!
[파이게임 - episode.57]
<암청의 하늘과 암청의 바다는 그들이 하나라 믿고 있었다. 하늘을 찢고 나온 달이 바다를 비추기 전까지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3층 님은 혹시 간츠펠트 효과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아시다시피 뇌란 건 말이죠, 365일 24시간 내내 외부 자극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일을 해요. 깨어있을 땐 물론이거니와 잠들었을 때도 쉼 없이. 그게 뇌의 본업이니까요. 그런데, 뇌가 이 작업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완전한 시각 박탈 상태에 놓인다면 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설계된 실험이 있었어요. 완전한 암흑과 완벽한 무음의 공간에 사람을 넣어 관찰한. 반응은 즉각적이었죠. 피실험자들은 실험 내내 지독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고, 심지어 자해를 하기도 했대요. 실험이 끝난 후에도 인지장애나 현실감각 박탈 등의 후유증에 시달렸구요. 아, 피암시성 증가는 보너스."

- "됐어요. 충분히 들었어요. 우리 걱정해서 알려준 건 아닐 테고, 원하는 걸 말해봐요. 괜찮은 조건이면 거래해 줄 테니."
끝까지 '내가 허락하는 입장이야'라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이젠 안다.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위엄 있게 쓰고 있던 왕관도, 우아하게 쥐고 있던 왕홀도, 조잡한 장난감에 불과했단 걸.
"요청드릴 건 세 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쉬운 거래를 제안한다. 나는 당신의 상금과 안위에 위협되는 존재가 아니란 걸, 믿을 만한 동맹임을, 어필한다.

- 권한도 정보도 힘도 가지지 못한 내가 그 전부를 독점한 위층(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위치로 올라서는 게 먼저라 판단했다.

- "나로선 당연한 선택이죠. 의리고 신의고 다 의미 없는 헛소리다. 오로지 이익만 좇는 사람이 이긴다. 이거, 당신들이 가르쳐준 방법 아닌가요?"
"하지만 그걸 저한테 다 오픈하신 이유는... 아, 경우의 수가 다르네요. 어느 쪽이 살아남느냐에 따라 이후의 양상이 달라지니까."
역시 똑똑한 인간. 한 마디를 꺼내면 열 마디를 이해한다. 꺼내지 않은 말까지도 파헤쳐 간파한다.
1층의 말대로, 이 싸움은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진행 방향이 달라진다.

- "지난 수업에서 언더도그마(underdogma)의 함정에 대해 배워 보았죠. 약자를 '선(good)'이라고 단정 짓는 것 또한 편견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그 반대의 질문은 어떨까요? 강자는 '악(evil)'일까요? 자본주의의 강자라면 흔히 부자나 재벌로 상징되니, 부자는 '악'일까요?"

- "자, 이렇게 한번 도식화해 보죠. 부자였던 A는 투자에 크게 실패해 전 재산을 잃었어요. 반대로, 가난했던 B는 복권 1등이 당첨돼 수십억의 상금을 받게 됐죠. 그럼, A는 악인에서 선인이 되었고, B는 선인에서 악인이 된 것일까요?"

- "이에 사람들은, 기득권의 상한 없는 욕망을 '악'이라 규정하고 규탄해요 그들이 많이 가질수록 나의 몫이 작아지는 게 사실이니까. 이에 우리는 명확히 구분해야 해요. 부의 축적 과정에서 발생한 비위는 '악'이 맞지만, 부 자체가 '악'은 아니라는 걸."

 

- "또한 공/수의 개념이라 말했듯, 이 구도는 끊임없이 변하고 역전되기 마련입니다. 부를 악이라 규정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 위치에 올라설 수도 있단 거죠. 그럼 이 사람은, 아, 나는 악인이 되기 싫으니 가진 모든 걸 나눠 주겠어,라고 결심할까요? 아니죠. 장담하는데, 이 사람 역시 부를 차지하는 순간 이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은 수성전을 시작할 겁니다." 

- 사람의 성정이란 건 그리 평면적이지 않다. 삶의 깊이란 건 그리 얕지 않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기구한 인생사가 있다.
"됐어. 이미 끝난 일이야..."
됐다. 털어낸다. 그녀가 기구한 사연이 있다면 우리도 있다. 참가자 모두 그런 드라마쯤 가지고 있다. 그게 뒤늦은 선처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냥, 부디, 잘 견디고 잘 살아 돌아가기를. 최하층이라 해도 2억. 그걸로 치료 잘 받고 그만 가게라도 열어서 딸이랑 잘 먹고 잘살길.
이 정도 기원만이,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기만.

-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인생이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 선택(Choice)의 연속과정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죠. 경제학이란 바로 이 'C'를 연구하는 학문임을.
대중들이 '선택'에 다다르는 매커니즘은 어떻게 되는가. 재화, 시간, 에너지 등의 한정자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선택하는 게 효율적인가. 어떤 선택 모델을 개발하고 선도해야 인류 보편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 "조금 힘주어 말하긴 했는데, 그리 거창한 건 아녜요. 여러분들도 매일 숨 쉬듯 하는 게 선택이니까요."

- "저녁은 돈까스를 먹을까 짜장면을 먹을까? 새 신발을 살까 지금 걸 좀 더 신을까? 하교 후에는 알바를 할까 공부를 할까? 이렇듯 누구나 하루의 처음과 끝을 선택으로 채우며, 이 하루를 평생 반복하는 것이 바로 삶이죠. 그리고 이쯤에서 눈치챈 학생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선택의 기회란 게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건 아녜요. 개인의 가용자원의 양에 따라 스펙트럼 차이가 크게 벌어지니까."

- "여러분이 돈까스냐 짜장면이냐를 고민할 때, 누군가는 편의점 김밥 외엔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호텔 코스 요리를 먹는 선택을 할 수도 있죠.
여러분이 새 신발을 살지 말지 고민할 때, 누군가는 새 신을 산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명품 브랜드 카탈로그를 뒤지고 있겠죠. 여러분이 알바와 공부 사이에서 고민할 때, 누구에겐 알바 외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누구는 무엇도 고민할 필요 없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가 이미 보장되어 있겠죠." 

- "학생의 신분이 끝나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이 선택 권력의 차이는 더욱 무겁게 다가올 거예요. 노동, 거주, 연애, 결혼, 육아, 노후 등. 인생의 모든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를 끊임없이 상기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 "요약하자면 이렇게 되겠네요. 자본주의 하에서의 권력은 경제력으로 상징되며, 그리고 경제력이 경제 권력으로 화할 수 있는 이유는 선택 권력의 작용 때문이다,라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부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넓은 선택지를 누리는 사회인이 되길 바라요. 이 수업은 그 방법론을 조금이라도 제시해 주기 위해 개설된 거니까요." 

- "마지막 수업이라 생각하니 조금 감정적이 됐네요. 들은 학생도 있겠지만,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저는 강단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경제적 이유로 학교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거죠."

- 왜?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저들은? 대체 뭘 보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저들은?
혹시, 저렇게 되는 게 당연한 건가? 권력의 정점에 서면, 타인의 기분도 눈치도 장길 필요가 없어지면, 예외 없이 그렇게 되는 건가? 그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본성인가?

- 인간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다른 동물에겐 없는 단 하나의 본성은. 
욕망의 상한선이 없게 설계된 존재라는 것.

-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자비와 베풂이야말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라고.
그러니 자비로이 모두 베풀어 무소유를 이뤄낸 사람을 심지어 성인(聖人)이라 우러러보고 존경한다.

 

- 그렇다면 애초에,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는 짐승이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까 인간의 타고난 성정은 어쩌면 짐승보다도 못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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