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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젠, 피카드] 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5. 10. 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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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난젠 / 피카드 / 남기철

출판 : 오브제
출간 : 2019.03.04


       


오래 써왔던 휴대폰 단말기를 교체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몇 년이 지나버렸는데...

최근 작동 도중 멈추는 일이 종종 생겨 급작스레 바꾸게 되었다. 

 

막상 마음먹으니 주문부터 세팅까지 하루면 충분했다.

 

변화는 대개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뭔가 달라지고 있음을 예감하는 기간은 답답함, 조급증, 어색함 등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막상 변하는 순간은 번개같이 찾아와 경계를 지어버린다.

 

급작스레 찾아온 이번 겨울처럼.

 

아직 배관 청소라는 큼직한 월동 준비가 남아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포근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까운 도서관이 문을 닫아 심란했었는데, 며칠 전 조금 떨어진 곳에 새 도서관이 임시 개관했다.

거리는 좀 더 멀어졌지만 시설이 훨씬 깨끗하고 쾌적하다. 겨울에 눈이 쌓이는 정원이 보고 싶어지면, 그곳에 가서 책을 읽다 오면 될 것 같아 설렌다.

 

<에로틱 세계사>는 조각 칼럼을 모아놓은 듯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기이해 보이는 성 풍습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이 저자들에 따르면 'geek'한 것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왔다고. 그러니 조금쯤 특이한 건 별 일 아닐지도 -어쩌면 그 편이 더 제대로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섬세하게 표현된 색연필 삽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추천은 하지 않는다. 

끝.     

      


   

 

서기 2019년, <에로틱 세계사>가 출간되다



- 수메르인들은 분명 관음증 증세가 심했다. 그들은 남자가 아내의 음부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부자가 되거나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광란의 사도마조히즘 파티를 열었다. 기원전 600년으로, <그레이의 그림자 Shades of Grey>가 출간되기 2,600년 전이었다. 고대 중국의 의사들은 몸이 피곤한 여성들에게 애널 섹스를 추천했다. 인도의 <카마수트라>에는 연인의 등을 할퀴어 상처를 내는 여덟 가지 기술이 소개돼 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딜도를 즐겨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하룻밤에 최소 네 번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게 여성들의 권리였다.

- 1만 년이나 된 성의 역사를 조망하다 보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우리가 지금 도대체 어떤 세상과 시대에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인간들이 정말로 계몽됐으며 섹스에 능숙한가? 아니면 과도한 섹스를 하거나, 반대로 섹스에 불만족하며 사는가? 섹스에 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있는가? 아니면 늘 섹스를 하면서도 자신감을 갖고 섹스에 몰두하지 못하지는 않는가?  
 
- <Nymphomaniac>에는 섹스 집착증에 걸린 사람, 섹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 섹스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의사나 검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며 고소득을 올리는 도시인들이다. 이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섹스 생활에 만족할 줄 모른다.

- 이 책은 우리 인간이 늘 섹스를 과도하게 해왔음을 보여준다. 호모사피엔스 homo sapiens는 1만 년 전부터 섹스에 대해 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호모사피엔스는 동굴 벽에 포르노그래피를 그렸고 파피루스에 음담패설을 썼으며 이상한 계율이나 금기 사항, 견해 등을 생각해 냈다. 섹스는 어느 시대건 재생산을 목적으로 남녀가 성기를 결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섹스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베네치아, 그리고 1920년대의 베를린 사람들이 섹스를 하기 위해 변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무도회를 통해 지루하고 융통성 없는 일상의 '나'를 숨기는 게 가능했다. 1970년대에도, 통제를 벗어나 하룻밤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나 자신을 잊었다'라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요즘엔 자신을 잊으려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며 언제나 스스로를 통제하고 합리적이길 원한다.

 

-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섹스는 통제력을 잃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요즘엔 욕정을 억누르는 자들이 교무실이나 풍기 단속반 혹은 사제관에 있지 않고, 우리의 머릿속에 있다. 섹스가 마사지나 위스키, 레스토랑의 유기농 메뉴 같은 기호품이 됐다. 하지만 만족을 보증해주지 않으며, 반환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고 되돌리기도 없다.

 

- 길가메시는 섹스 여신 이난나에게 굴욕감을 줬으며 이난나는 보복 조치로 길가메시의 절친을 살해했다. 카사노바도 이따금 여성에게 퇴짜 맞은 적이 있었다. 잠자리의 승리자들에게는 패배의 순간도 있었음을 아는 자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삶과 섹스를 열망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다. 이런 용기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 이 책은 총 100개의 챕터로 구성됐으며, 당연한 얘기겠지만 완벽한 책은 아니다. 마땅히 언급해야 할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분명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섹스 이야기는 끝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분야에선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통해 인류 문화사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독특하고 황당하면서 문란하고 또 멋진 자신만의 연애 사건을 통해서 말이다. 

 

 


-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 Tom Ford는 "코카인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울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라고 스튜디오54의 분위기를 전했다. 디스코 음악과 아름다운 몸매의 젊은 남녀들, 알코올, 마약이 뒤섞여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겼다. 특히 스테이지 위편 발코니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파와 스툴, 방석 등은 청소하기 편하도록 고무 소재로 만든 제품을 이용했다. 누구나 스튜디오54에서 즐기고 싶어 했다. 동성연애자나 여자 옷차림을 한 남성 동성애자, 슈퍼 모델, 대학생, 앤디 워홀 Andy Warhol,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비앙카 재거 Bianca Jagger, 트루먼 카포트 Truman Capote,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등이 이곳을 찾았다. 뉴욕 코스모스 팀에서 기량을 발휘하던 독일 축구 영웅 프란츠 베켄바워 Franz Beckenbauer도 모습을 드러냈다. 

 

 

 

더보기

 

- 남녀가 몸을 밀착해 서로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하나가 된 듯 보인다. 한 사람이 파트너의 무릎 위에 앉아 두 다리로 파트너의 엉덩이를 감쌌다. 두 사람의 가슴도 거의 붙었다. <아인 사크리 Ain Sakhri 연인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은 약 10센티미터 길이의 방해석으로 만들어졌다. 먼 옛날 유대 왕국 팔레스티나 Palestina의 사막 지역에 살던 어느 이름 없는 장인이 단단한 도구를 사용해서 다듬은 것이었다. 이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언제 저런 섹스를 해봤더라' 하고 생각할 정도로 실감나게 만든 작품이다.

- <아인 사크리 연인상>은 남녀의 성교 모습을 표현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각상의 제작 시기는 약 1만 년 전으로 이스라엘 나투피안 Natufian 문화권의 예술가가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은 다면체 석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의 형체가 아닌 여자의 젖가슴 모양으로 보인다. 아래에서 보면 여성의 음부가 보이며 뒤에서 보면 남성의 발기한 음경의 모양이 분명하게 보인다. 에로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조각상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시기 즉, 신석기 혁명 시대의 작품이다.  

 

- 고대 이집트의 의사 앙크마호르 Ankhmahor는 의심이 많고 매우 꼼꼼한 성격의 남자였음에 틀림없다. 죽음도 그의 끝없는 통제욕구를 막지 못했다. 앙크마호르는 자신이 죽은 이후의 매장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해 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시 사항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 무덤이 될 곳의 벽에 지시 사항을 새겨놓았다. 기원전 23세기에 살던 그가 각별하게 여긴 사항은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는 장례 사제에게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깨끗이 씻으라고 그림과 글자로 주의를 줬다. 그리고 항명하는 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글을 써서 위협했다. 

- 게다가 앙크마호르는 맨스케이핑 manscaping을 대단히 좋아했다. 그가 지시해 무덤 벽에 새긴 그림에는 맨스케이핑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발사 두 사람이 한 남자의 음모를 다듬는 그림이다. 이발사 한 사람이 뒤에서 남자의 어깨를 잡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발사는 쪼그리고 앉아 고환에 난 털을 면도날로 다듬고 있다. 그 옆에는 일평생 환자들의 질병과 상처를 치료해 온 의사인 앙크마호르가 이발사에게 주의를 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고환에 상처 나지 않게 잘 잡고 면도해!" 

 

-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슴이나 겨드랑이, 은밀한 부위의 털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깔끔하게 면도했다. 특히 사제들은 정기적으로 몸 전체를 제모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그 부위'의 털을 깎는 데에는 종교적 이유도 있었다. 당시에는 성과 영성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Osiris나 이시스 Isis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아이를 낳았고, 그래서 진정한 섹스의 신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들을 모시는 신전에는 남성 사제들도 있었지만 매춘부들도 있었다.

- 고대 이집트인들은 몸에 난 털을 도덕적인 이유로 제거하기도 했지만, 가슴이나 아랫부분을 깨끗하게 제모한 몸이 아름답고 유혹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털을 제거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 이들의 제모 의식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사치스러운 의식이었을 것이다. 동시대의 다른 무덤들이나 의사 앙크마호르의 무덤에서 발견된 그림 상의 지시 사항은 맨스케이핑의 세부 진행 절차를 보여준다. 우선 이발사가 사제의 은밀한 부분의 피부를 팽팽하게 당긴다. 이때 음경은 손으로 잘 잡아야 한다. 사제의 눈길은 아래로 향해 있다. 이발사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림에 얼굴 표정까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제는 긴장을 풀고 편안한 자세로 면도를 받았을 것이다.
 
- "남편이 아내로 하여금 페니스를 늘 붙들고 있게 하면 남편의 마음이 더러워진다. 그러면 신이 그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다."
수메르의 섹스 예언을 분석해 보면 불길한 느낌을 주는 규범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성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즉, 당시 남녀들은 어떤 방법으로 섹스를 했으며, 금기시됐던 것과 허용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미동과 섹스를 하는 남자는 고난에서 벗어난다."라는 구절이 점토판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 글을 쓴 사람은 동성애는 물론 매춘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예언도 있다.

"동성과 항문 성교를 즐기는 남자는 형제나 한 집에 사는 사람들 간의 서열경쟁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수메르에서 항문 성교는 수음보다는 괜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는 수메르의 점토판에 기록돼 있지 않다. 다만 점토판에서 밝혀진 것은, 이러한 예언을 한 사람들이 예언의 주요 주제였던 남성의 사정 射精에 대해 각별한 흥미를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어느 이름 없는 예언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침대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일어나서 자위를 하면 이 남자에겐 행운이 찾아온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하고 싶은 일을 문제없이 이룬다."

- [고대 이집트의 피임 처방전 : 에버스 파피루스]
"이것을 밀의 씨앗과 함께 태운 연기를 자궁 방향으로 향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자궁이 음경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자궁에 약을 넣으라. 그러면 정액이 분리된다. 기름과 셀러리, 그리고 단 맥주를 섞어 끓여 나흘 후에 마시라."

- 기원전 1850년경 이집트의 의사가 에버스 파피루스에 써 준피임 처방전이다. 이 파피루스는 발견자인 독일인 이집트학자 게오르그 모리츠 에버스 Georg Moritz Eber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처방 내용은 다소 복잡했다. 자궁을 향해 연기를 피운다는 건 너무 지나친 방법 같지만, 이 여성은 태운 밀이 담긴 쟁반을 엉덩이 아래쪽에 두고 안전하게 앉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피루스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도 기록돼 있다.

"이렇게 하면 여자는 1년에서 3년 동안 임신을 피할 수 있다."

- 이집트는 고대 의학의 중심지였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가 이집트의 의학 교과서를 참고할 정도로 그곳에선 이미 의학의 전문화가 이뤄져 있었다. 내과 전문의들이 있었으며, 파라오를 돌보는 내과 의사에겐 '폐하 내장 지킴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이집트인들은 뼈가 골절된 환자에게 부목을 사용했으며, 발가락이 부러진 사람에겐 의족을 사용하게 했다. 당시 의사들은 열세 장의 파피루스에 감기를 예방하는 주문이나 신들이 아플 때 복용했다는 약품을 적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2,000가지가 넘는 처방전 및 치료법을 상세하게 기록해 뒀다. 거기엔 다양한 피임법도 적혀 있었다.

- 이집트인들은 임신이나 다자녀 가정의 빈곤 위험에 대해 고심했다. 그래서 다양한 피임법을 개발해 냈으며, 임신 위험이 없는 섹스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구강성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온다. 이집트 전설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그의 동생인 세트 Seth에게 토막 살인당했다.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는 토막 난 남편의 시신을 거둬 다시 이어 붙였다. 그런데 성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시스는 흙으로 성기를 만들어 남편의 시신에 붙인 다음 오시리스가 살아날 때까지 그것을 빨았다.

- 이집트인들이 남긴 파피루스에는 피임약에 관한 정보도 적혀있다.

"식물의 점액을 발효시킨 후 악어의 똥을 넣어 섞어서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피임약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식물의 점액과 악어의 똥을 섞어 좌약을 만들어 피임약으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질의 수소 이온 농도를 낮춤으로써 정자를 죽게 했다.  


- 메소포타미아의 에로틱 카니발 : 트라베스티
난쟁이 사제들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사원 내부에 짙은 긴장감이 감돈다. 여러 가지 색상의 복장을 입은 몸집이 작은 이 남자들이 창을 들고 흔든다. 트라베스티 travesti를 시작한다는 신호다. 사원의 왼편에 서 있던 남자들이 머리핀과 빗을 머리에 꽂고 목걸이로 몸을 장식한다. 남자들 서너 명이 작은 악기를 집어 든다. 원래는 여자들이 쓰던 악기다. 다른 이들은 여자들이 쓰는 비누를 한 조각씩 든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 옷을 입고 지팡이와 투석기, 돌로 만든 방망이를 든다. 트라베스티 행렬이 함성과 함께 사원을 출발해 시내로 간다.

-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우루크 Uruk의 사람들은 1년에 한 차례 이처럼 '남녀 역할 바꾸기' 축제를 열었다. 기원전 1500년경에 만든 어느 점토판에 우루크의 축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남녀가 옷을 바꿔 입는 축제를 하면서 섹스와 전쟁의 여신이자 양성의 특징을 가진 이난나를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우루크 신화에 의하면, 큰 잔에 맥주를 담아 지혜의 신 엔키 Enki에게 마시게 하자 엔키가 여신 이난나를 가리키며 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라고 불렀다. 점토판에는 "그들의 놀이는 전투다. 남자 영웅들을 살육하는 놀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사자를 애완동물로 삼아 노는 놀이도 있었다. 

- 여신 이난나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남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한편 이난나가 하라는 대로 하는 남자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난나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받았다.

 

- "나의 배꼽을 격렬하게 애무해주는 자여
내 부드러운 넓적다리를 애무해주는 자여
두무지 Dumuzi 목동이 크림과 젖으로 내 무릎을 감싸 주네

그가 내 은밀한 부분을 부드럽게 만져주네 

그가 내 무릎을 물에 적셔주네
그는 내 신성한 음부에 손을 올리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놓인 이 지역은 고대 문명의 뿌리로, 사원의 사제들이 국정을 관장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그들은 이난나를 숭배하는 사원을 관리했다. 이곳에서 사랑의 여신 이난나의 이름으로 행한 것은 매춘의 축제였다.  


- 고대 이집트의 고품격 최음제 : 맨드레이크 맥주
매의 머리 형상을 한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레 Re는 화가 치밀었다. 이번에도 이집트 사람들이 레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는 벌레 같은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학살을 저질러 수천 명을 죽인 자신의 딸 하토르 Hathor를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레는 딸 하토르를 사랑했고, 둘 사이에서 음악의 신 이히 Ihi가 태어났다. 그런 하토르가 피투성이가 돼 밤에 돌아오자 태양신 레는 죄책감과 함께 앞일의 걱정이 일었다. 하토르가 응징을 멈추지 않으면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레는 시종들에게 일러 붉은빛 맥주를 만들어서 특별 첨가물인 '맨드레이크 mandrake 뿌리'를 아낌없이 넣으라고 지시했다.

- 이 신화는 하늘의 황소에 관한 책에서 유래하며, 기원전 1279년에 사망한 세토스 파라오의 묘비에 적혀있다. 전능한 신들도 맨드레이크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 마법과도 같은 식물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맨드레이크는 지중해 연안이나 중부 유럽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꽃잎이 제비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열매에선 ... 

- 아게실라오스의 가족들은 마지못해 납치범을 뒤쫓으며 마치 의례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이 납치범에게 작은 소리로 욕을 퍼부을 뿐이었다만일 비천한 집안 출신의 남자가 아게실라오스에게 관심을 갖거나 납치를 했다면 그건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도 아게실라오스에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납치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파르타를 대표하는 군인인 리산드로스 장군이 아이를 데려갔으니 부모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아게실라오스도 스파르타의 양대 로열패밀리 중 하나인 에우리폰티드 Eurypontid 가문의 후손이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결합이었다.

- 물론 아게실라오스와 리산드로스의 관계가 약간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긴 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성인 남자 에라스테스 Erastes가 나어린 소년 에로메노스 Eromenos을 연인으로 취하는 일은 흔했다. 스파르타에서 이런 관계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전쟁 국가 스파르타는 사내아이들 교육을 매우 중요시했으며 엄한 규정에 의해 그들을 훈육했다. 남자아이들은 열두 살이 되면 청소년 교육 기관인 아고게 Ago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은 매우 혹독한 교육을 하는 기관으로, 사내아이들을 인간 병기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내아이들은 경험 많은 군인이 선발하거나 납치했다. 그렇게 형성된 성인과 나어린 소년 간에는 ...

- 침침한 숲 속을 과감하게 돌아다니며 이들을 살펴본 로마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은 이들 야만족들의 풍습에 관해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글을 남겼다. 기원전 100년경에 이 지역을 다녀온 그리스의 철학자 포세이도니오스 Poseidonios는 켈트족을 심하게 비난하는 글을 썼다.
"그들은 상당한 미모의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아내와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성과의 불같은 연애에 쉽게 휩싸인다. 그들은 모피를 바닥에 깔고 누워 동침 상대와 뒹군다."

- 켈트족 남성들 간의 동성애가 어느 정도 만연됐는지 입증해 주는 자료는 없다. 병사들 간의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한 풍습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예를 들어, 갈리아 Gallia 지방의 켈트족은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에게 신병 두 명을 붙여줬다. 이들 신병들에겐 선임 병사가 전장에서 부상을 당할 경우 들것으로 실어 나르는 임무가 주어졌다. 아마 세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잤을 것이다. 소년과의 동성애는 도시국가 스파르타처럼 전쟁이 일반화된 지역에서 특히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병사들은 오랜 시간 동안 약탈 행각을 함께하는 가운데 육체를 가까이 함으로써 서로 맞서 싸우는 일을 피해야 했을 것이다. 
 
- 포세이도니오스의 글을 예로 인용한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Diodorus Sikelos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면서 야만족들에 대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가장 황당무계한 일은 그들이 자신들의 행실을 깊이 생각지도 못하며 꽃 같은 육체를 다른 남자에게 흔쾌히 내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구애를 받지 못하거나 총애를 잃는 것을 오히려 불명예로 여겼다."

- 남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모습만을 보고 지중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노예와 소년, 그리고 여자들이 욕정의 대상으로 이용됐을 뿐 아니라 노련한 전사들도 그렇게 이용되는 모습에 경악했던 것이다. 켈트족은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모습을 갖추지 못했기에 야만스럽다는 소리를 들었다. 

- 중국 전한의 13대 황제 애제는 동현 董賢이라는 미소년과 사랑에 빠졌다. 동현은 황제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난 후에는 황제의 품에 안겨 잠이 들곤 했다. 하루는 애제가 동현과 함께 낮잠을 자다가 먼저 잠에서 깼다. 황제는 조정 일을 보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동현이 황제의 긴 소매에 머리를 얹은 채 자고 있었다. 황제는 동현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옆에 있던 칼로 자신의 소매를 잘랐다. 황제는 옷소매가 잘린 옷을 그대로 입고 조정 회의에 참석했고 동현은 값비싼 베개인 황제의 옷소매를 머리 아래에 받치고 계속 잠을 잤다. (단수 斷袖)

- 프리아포스의 여사제를 찾았다. 그녀는 우선 상한 돼지머리를 내어와 그에게 대접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여사제가 가죽으로 만든 남근을 가져왔다. 그녀는 기름과 곱게 빻은 후추, 그리고 분말 쐐기풀 씨앗을 가죽 남근에 바른 다음 내 항문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동시에 그 인정머리 없는 여사제는 그 기름을 내 허벅다리에 발랐다. 이어 겨자씨를 개사철쑥과 섞어서 내 페니스에 발랐다. 잠시 후 여사제가 쐐기풀로 만든 채찍을 들고 배를 후려쳤다."

- 여사제가 약속한 대로 엔클로피우스의 페니스가 '황소의 뿔'처럼 단단해졌는지는 <사티리콘>에 언급돼 있지 않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 발기불능 남성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당시에도 잠자리에서 성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남자는 배우자와 불화를 겪었으며, 본인의 자의식도 약화됐다. 또한 그런 남자는 자신의 지위를 염려해야 했다. 개선식 행렬에서 전쟁 영웅들은 커다랗게 발기된 페니스를 내보였다. 그리고 가정에선 대문에 남근을 새겨놓아 나쁜 기운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가장이 성적 능력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발기불능에 대한 큰 두려움을 안고 살았으며, 애인이 도망가거나 ... 

- 황제의 딸을 사랑한 참모 아인하르트 : 임마의 발자국
아인하르트 Einhard는 샤를마뉴 Charlemagne 황제가 독일 아헨 Aachen에 세운 궁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다. 그는 학술 서적을 편찬했으며, 황실 2세들의 교육을 책임졌다. 또한 황제를 위해 다리와 성, 그리고 교회를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황제의 수석 참모 자리에 올랐다. 당시 아인하르트를 싫어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황제의 예쁜 딸 임마 Imma가 그를 각별히 좋아했다. 그리고 아인하르트도 그녀의 좋은 감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인하르트는 별 볼 일 없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공주의 남자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공주는 비잔틴제국의 후계자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에겐 암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로맨스는 흔히 있는 법. 금지된 사랑은 남녀의 감정을 가로막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들이 불길에 휩싸일 때까지 부채질했다.

- 어느 봄날 밤, 아인하르트가 임마를 찾아왔다. 그리고 연대기 작가들이 언급했듯이, 임마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인하르트가 공주의 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려는데 눈이 내려 마당이 온통 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렸다. 그대로 떠난다면 그의 발자국이 마당에 남을 테고 동시에 임마와 몰래 만난 사실이 들통날 판이었다. 그 순간, 사랑에 빠짐으로써 똑똑해진 젊고 예쁜 공주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임마는 아인하르트를 등에 업고 궁정 마당을 지나 그의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그리하여 궁정 마당에는 임마의 발자국만 남았고 그들은 의심을 받지 않았다.

- 이처럼 감동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12세기에 라인강 중류 지역에 위치한 도시 로르쉬 Lorsch의 수도사들이 편찬한 역사서 <로르셔 코덱스 Lorscher Codex>에 나온다. 그리고 내용이 약간 다른 두서너 개의 버전이 19세기까지 전해져왔다. 전설이란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법이다. 당시 프랑크 왕국 Frankenreich에 아인하르트와 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부부 관계였으며, 게다가 엄마는 황제의 딸이 아닌 왕실의 먼 친척이었다. 원래 <로르셔 코덱스>에는 러브 스토리가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적 구호가 실린 책이었다. 

-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한 성직자가 악마에게 수난당하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악마는 은둔 생활을 하는 가난한 성직자의 오두막을 여러 차례 파괴한다. 그러나 은둔자를 무력으로 제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악마는 전략을 바꿔 은둔자의 욕정을 시험한다. 악마는 벌거벗은 젊은 여자 둘을 나타나게 해 성직자를 침실로 유혹한다. 그런데 은둔 생활을 하는 성직자가 젊은 여인들의 유혹도 뿌리치자 크게 분노한 악마는 용감하고 순결한 성직자에게 마구 폭행을 가한 뒤 사라진다. 미덕과 선한 힘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다. 

- 그런데 오리악의 제라드는 은둔 거사가 아니었다. 그는 가문에 대한 의무를 가진 귀족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밤에 천사가 나타나 성 제라드에게 아달트루드를 임신시키라고 설득하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유명한 수도원을 세울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이는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제라드는 그게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고 천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도 폰 클뤼니 Odo von Cluny 베네딕트 수도원장 연대기를 보면, 서기 855년에 제라드 주니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즉, 아달트루드와 제라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오베르뉴에 큰 수도원을 만들었고, 자신의 이름을 따 그곳을 성 제라드 오리악 수도원이라고 명명했다.  

- 이누이트들의 스와핑 : 샤먼의 불 끄기 놀이
끝없이 눈으로 뒤덮인 극지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추위를 이겨내야 하지만, 고독을 견딜 줄도 알아야 한다. 서기 1100년경 알래스카 Alaska의 이누이트 Innuit들은 그린란드 Greenland로 이주해 고유한 북극지방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작고 고립된 마을 공동체들을 만들어 살았다. 각각 삼백 명이 채 안 되는 마을 공동체들이었다. 주변 수백 킬로미터에 보이는 것이라곤 눈과 얼음, 그리고 사냥용 곰과 고래, 바다표범뿐이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이러한 생활은 이누이트 부족의 존속을 위협했다. 작은 공동체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섹스 파트너는 한정돼 있었기에 언젠가 어쩔 수 없이 부족민 모두가 혈연관계가 될 운명이었다. 이들도 근친상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흥미로운 생존 전략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아내를 바꾸는 방법이었다. 다만 기간을 정해놓고 며칠 동안만 아내를 바꿨다. 

-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사냥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개썰매나 보트를 타고 인근 마을로 갔다. 보통 서너 주의 짧은 기간 동안 사냥을 했지만, 이 기간은 이누이트들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몽골의 역사에서 칭기즈칸의 죽음은 온갖 추측을 난무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딱 한 문장뿐이다.
"돼지해에 칭기즈칸이 하늘로 올라갔다."

- 지금도 존재하는 섹스 파트너 공동체 : 모수오족
마르코 폴로 Marco Polo는 1265년 아버지, 그리고 삼촌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여행했다. 중국 남서쪽을 둘러보던 열일곱 살 베네치아 Venezia인 마르코 폴로는 모수오족을 만났다. 마르코는 이 부족이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방견문록>에 이렇게 적었다. 
"모수오족 남자들은 아내나 여동생 또는 딸들이 낯선 남자와 함께 집에 들어와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 정반대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을 숭배하는 방법이자 신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간 남자들은 이런 바보 남편들의 아내와 며칠 동안 침대에서 뒹굴며 실컷 즐긴다."

- 모수오족은 옛날부터 루구호라는 호수 주변에 살았다. 그곳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모계사회다. 모수오족 여자들은 열세 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바바후아고’라고 부르는 화방 花房을 받는다. 이 방에는 문이 두 개다. 하나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앞마당을 향해 있고, 다른 문은 거리 방향으로 나 있다. 이들 모수오족 여자들은 자기만의 화방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들을 마음대로 불러들인다. 하룻밤에 여러 명의 남자들을 불러들여도 상관없다. 한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된다. 이들 밤손님들은 동트기 전에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 

- 모수오족에겐 결혼이란 개념이 없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내라는 낱말이 없으며, 그 대신에 '아즈부'라고 부르는 섹스 파트너만 있다. 모수오족은 이러한 파트너 선택 원칙을 '함께 걷는다'라는 의미의 '세세'라는 말로 표현한다. 모수오족 여인은 임신을 해도 아이가 어느 아즈부의 자식인지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아이의 육아는 여자의 어머니와 자매들, 그리고 오빠들이 책임진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아이의 친아빠가 누구인지는 안다. 

- 기원전 2세기에 만든 <페르가몬 대제단 Pergamon Altar> 부조는 가는 허리를 가진 그리스의 여신 아르테미스 Artemis가 거인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서기 117년부터 138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던 하드리아누스 Hadrianus 황제는 제국 전역에 자신의 총애를 받았던 안티노우스 Antinoüs의 조각상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우울해 보이는 시선과 오뚝한 코,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의 외모가 미의 표준이 되도록 했다. 중세의 여성들은 거의 자웅동주의 모습으로 표현됐으며, 얇은 실루엣을 입고 어깨가 앞으로 늘어진 모습이었다. 

- 루벤스는 새로운 모습의 이상적 육체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들이 볼륨 있는 몸매의 여인들을 그림으로 묘사했으며, 루벤스는 그러한 트렌드를 더욱 강화해 풍만한 허벅다리와 부드러운 엉덩이, 피하지방으로 인해 주름진 팔을 그렸다. 그리고 여성의 섹시한 이중 턱을 묘사하는 데 ...

- ... 공개적으로 언급한 첫 번째 사람으로, 프리데스도르프가 갖은 방법으로 왕자를 즐겁게 해 줬다고 비난했다. 볼테르는 프리드리히 2세를 루크라고 불렀다. 
('luc'를 거꾸로 읽으면 'cul', 즉 프랑스어로 '개자식' 또는 '궁둥이'란 의미.)

- 당시 프러시아 군대 내에서 동성연애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당시 귀족의 자식들은 엄격하게 통제된 군대에서 장교 경력을 쌓아야 했으며, 군대 내에는 여성이 없었으므로 젊은 병사들은 밤마다 차가운 침상에서 서로 끌어안고 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장성들은 병사들이 결혼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결혼을 하면 용사들이 응석받이가 되며, 군대의 전투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적지 않은 프러시아 병사들이 동성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동료 병사들과 동성애를 하는 불쌍한 병사들에게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징계를 내리는 무자비한 국왕이었다. 한편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동성연애 사실이 발각된 고위 장교들에게 계급을 강등시키는 조치만 내렸다. 

- 프리드리히 2세는 본인의 동성연애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고고학자이자 작가인 요한 요하힘 빈켈만 Johann Joachim Winckelmann은 동성연애자로서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을 방문하고 나서 이렇게 언급했다. 

"나는 성적 쾌락을 충분히 즐겼다. 다시는 이런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리라." 

 

- 프리드리히 2세의 상수시 Sanssouci 궁전에는 여자들이 거의 없었다. 대왕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베페른 Elisabeth Christine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Bevern도 마음대로 궁전에 출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베를린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프리드리히 2세는 아내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를 무려 6년 만에 보면서 "여자들이란 점점 살만 찐다!"고 험담을 늘어놓았다. 

- 프리드리히 2세가 가장 좋아했던 남자는 그의 최측근이자 시종이었던 프레더스도르프 Fredersdorf로, 프리드리히 2세는 그에게 애정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썼다. 그리고 프레더스도르프가 어느 날 몹시 심한 병으로 병상에 눕자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의사가 너의 병을 낫게 해 준다면 그 의사에게 입을 맞춰주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를 돕고 싶구나."

 

- 프리드리히 2세에겐 그만의 통치 원칙이 있었다.

"내 나라에선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생식기로 악수하던 남성 전용 클럽 회원들 : 베거스 베니슨
영국의 어느 남성 클럽은 고유의 목판으로 만든 벽과 굴뚝이 있는 곳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그곳에는 항상 위스키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와 기대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견디어 내거나 왕실과 제국의 번영을 축하하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1732년 스코틀랜드의 도시 앤스트루더 Anstruther에서 남성 클럽 '베거스 베니슨 Beggar's Benison'을 만든 남성들에겐 다른 의도가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딱 한 가지 의도가 있었다. 더 상세히 말하면 그들만의 목적이 있었다. 즉, 이 클럽은 남성 간의 섹스를 즐기고 동성애에 대한 터부를 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 이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엄격한 의식을 통과해야만 했다. 지원자들은 기존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전부 벗고 본인의 페니스를 손으로 ... 

- 1777년 3월 29일, 서태평양을 탐험하던 제임스 쿡 James Cook 선장이 섬 하나를 발견했다. 쿡 선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쿡 제도의 군도 가운데 두 번째로 큰 망가이아 Mangaia 섬이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영국인 뱃사람 쿡 선장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쿡 선장의 배 HMS 레절루션 호는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 섬사람들은 유럽인 항해자들에게 자신들의 비밀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쿡 선장보다 200여 년 늦게 이곳을 찾아 일 년 넘게 거주했던 미국인 인류학자 도널드 마셜 Donald S.Marshall의 주장에 의하면, 망가이아 섬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를 존중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마셜은 남태평양 원주민들의 독특한 성교육을 최초로 취재한 학자이기도 했다.

- 망가이아 섬 아이들은 8세 무렵부터 성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5년 후에는 특별 성교육을 받는다. 성인 여성들이 소녀들에게 성교육을 하며, 남자 어른들은 사내아이들에게 다양한 성교 체위를 가르쳐주고 성교 시간을 늘리는 방법 등의 조언을 해준다. 약 2주간에 걸친 이론 교육을 마치면 남자아이들은 본인들의 성적 능력을 처음으로 사용해볼 기회를 얻는다. 즉, 섹스 경험이 있는 성인 여성들이 사내아이들의 섹스 체험 파트너가 돼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사내아이들과 소녀들이 서로 뒤엉켜 섹스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파트너를 자주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다. 본인들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섹스 파트너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으면 결혼을 하게 된다. 섹스 연습 단계에서 만난 파트너와 함께 잠을 자보는 일이 허용되기도 한다.

- 제이차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전투에 참여한 바 있는 마셜은 군인 정신에 입각해 망가이아 섬사람들의 성생활을 상세히 분석했다. 마셜에 의하면, 18세의 원주민 남자들은 평균적으로 매일섹스를 했다. 28세의 남자들은 일주일에 5회 내지 6회 섹스를 했고, 38세가 되면 3회 내지 4회, 그리고 48세에 이르면 일주일에 2회 내지 3회 섹스를 했다. 원주민들의 기대치이기도 한 성교 시간은 최소 15분에서 최대 30여분에 이르렀다. 이들은 여성도 오르가슴을 느껴야 성행위를 즐겼다고 봤다. 망가이아 섬에서 여성 파트너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남성은 약한 남자로 여겨졌다. 그곳에서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성적 능력 여부에 좌우됐다.

-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들의 하얀 모래사장은 문명의 이기에 지친 북반구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는, 벌거벗었지만 숭고하기 이를 데 없는 원시 문명과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채 행동 규범에 얽매여 사는 유럽인들을 비교 분석한 바 있다.  

- 1975년 인도의 푸나 Poona에서 로테는 구루 Guru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후일 오쇼 Osho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바그완 Bhagwan의 암자를 찾았다. 당시 스와미 Swami D. 페터 D. Peter라는 이름으로 푸나에서 활동하던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 Peter Sloterdijk는 후일 이렇게 시인했다.

"바그의 암자에서 행해진 정신적 섹스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지루한 성교에 불과했다."

- 그런데 안드로 로테는 정신적 섹스가 지루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터키를 거쳐 쿠르디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발루치스탄, 파키스탄, 인도, 실론, 네팔, 티벳 등을 돌아보고 독일로 돌아온 로테는 1978년 베를린에 '정신적 탄트라 센터'를 열었다. 로테는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탄트라 마사지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탄트라 마사지'의 저작권을 등록했다. 한편 로테는 작가 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의 손자인 사라남 루드비크 만 Saranam Ludvik Mann을 잠재적 고객이자 연인으로 생각했다. 독일 지식계급의 아들인 그도 인도의 에로틱을 전파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 인도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종합적 생활예술인 탄트라가 한날 섹스 테크닉으로 축소되는 것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안드로로테는 세기말의 신지학적 철학과 인도 전통 바즈라야나 Vajrayana탄트라, 그리고 선불교의 문헌들을 당당하게 증거로 제기했다. 로테는 현대 미국의 인간 심리학,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의 오르곤 이론, 아메리카 인디언 샤머니즘의 뉴에이지 치료법, 프라이멀 스크림 정신요법과 가족 치료법,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 Kübler-Ross의 죽음을 앞둔 환자 연구, 릴리 Lilly와 리어리 Leary의 항정신성 의약품 실험, 양자역학 등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로테의 이론은 오르가슴을 보증하는 것으로, 글로벌 정신세계를 리믹스한 최고의 이론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2004년에 생긴 '독일 탄트라 협회'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

- 워홀·베켄바워·트럼프, 현대판 고모라의 마지막 파티 : 스튜디오54
마지막 밤, 스티브 루벨 Steve Rubell은 DJ 박스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클럽에 모인 손님들을 내려다봤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하마터면 바닥으로 쓰러질 뻔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누군가 그를 붙잡아줬다. 루벨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의 노래를 불었다. '아이 디드잇 마이 웨이' 역시 루벨다운 노래였다.

- 스티브 루벨이 동업자 이안 슈레거 Ian Schrager와 함께 1977년에 문을 연 뉴욕의 나이트클럽 스튜디오54 studio54가 1980년 2월 4일 마지막 파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 날 파티의 주제는 '현대판 고모라 Gomorrah의 멸망'이었다. 절대 지나친 주제가 아니었다. 지난 3년간 사람들이 스튜디오54를 찾은 이유는 춤을 추고 알코올에 취하며 애인을 구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뒤로하고 그것을 한순간이나마 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 뉴욕은 1970년대 말에 파산했다. 물론 요즘과 달리 당시는 영업시간 규정이 느슨했으며, 지금보다 자유로운 섹스가 가능했다. 에이즈 AIDS가 사람들의 성생활을 바꿔놓기 전까지 스튜디오54에서는 무분별한 성관계가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해졌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 Jimmy Carter의 어머니 릴리안 카터 Lillian Carter는 스튜디오54에 다녀온 뒤 이런 발언을 했다.
"내가 천국에 다녀온 건지 지옥에 다녀온 건지 종잡을 수가 없군요. 어쨌거나 대단한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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