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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3 (완)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5. 11. 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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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산호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5.10.15


     


약속 시간까지 기다리려고 우연히 들어선 카페에서 발견한 <연옥당> 1권.

이후로 이야기를 맺는 3권이 출간되어 읽기까지, 나 역시 나름대로의 시간과 기억들을 쌓아왔다.

 

한 사람의 삶은 참으로 복합적이라, 완전히 선하기만 하지도 악하기만 하지도 않다.

성장은 다른 말로는 변화, 또는 변절이다.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과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 전에는 선이었던 것이 더 이상 선이 아니게 되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의 '나'에게,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이해한다는 연민을 보내라-

 

그것도 좋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러므로 항상 '다른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는 한 걸음의 유예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연옥당>은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달콤함'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죽은 후 49일 동안 연옥의 긴 들판을 건너야 한다.

생전의 기억과 감각이 남아 있는 영혼들에게 이 여정은 무척 힘겹지만,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괴롭고 무거웠던 기억들에서 벗어나는 해방이기도 하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울 것인가.

 

마지막까지 남길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해주는,

마지막까지 걸어갈 힘이 나게 해주는,

한 입의 달콤함.

 

다정함에 맛이 있다면,

저자는 그것이 '단 맛'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틀림없다.

 

즐거웠다. 

 

 

 

사족.

배가 고플 때 단 걸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는 거 아니었나...?

... 역시 세상엔 다양한 경험과 감각들이 존재한다...     

 

 

   


   

 



 

- 아무것도... 
모르겠어.

- 그런데 왜인지 저 너머로 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겠어.


- "나처럼 영혼들을 홀대하는 주인보다야 훨씬 낫지. 나는 아무리 애써도 그들을 사랑할 수 없었어."
"그래서 제가 성년이 되자마자 시원하게 은퇴하셨죠."
"그래, 하지만 적임자가 있었으니 걱정 없이 내려올 수 있었던 거야. 마음 없는 자에게 강권하는 사랑은 지옥이란다."

- "영혼을 순환하게 하는 일... 그것이 연옥을 지탱하는 근간이고 아무나 가능한 일도 아니야. 이 정도 업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달리 없지, 그럼."

"또 그러신다..." 
"미안, 미안. 하지만 정말 그런 걸."

- "힘내렴, 마고. 헤매는 것이 연옥의 본질이니 길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 그대에게 연옥 달의 광채가 깃들기를!"

-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우아하고 빠른 동작!
그 뒤로는 가족과 얼굴을 마주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 자고, 혼자 먹었습니다.

- 중학교 때쯤 학부모회의 권고로 헬멧을 쓰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눈에 띄는 바람에 학교에 나쁜 소문만 돈다는 반대 의견이 있어 곧 그만뒀습니다. 
누구도 나의 눈을 본 적 없지만, 모두가 나의 왼눈을 알았습니다.

- 면전에 대놓고 험담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돌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다들 무서웠겠지요.

- '쟤 왼쪽 눈이랑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린대.'
그런 말들은 사실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교정에 있는 초대 교장 동상을 제가 만든 거라는 소문은 조금 억울했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인데... 

'게다가 그건 청동상인걸!'

- "나는  
그 집 개랑 밥을 같이 먹어."
"차라리 너네 친척인지 뭔지를 돌로 만들어달라고 했으면 잠깐이라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봤을 텐데."

- "내가 바보라서 그런가 답을 모르겠어. 그냥... 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그냥 아무것도 못 느끼고 아무것도 못 보는 상태가 되고 싶어. 어딜 가도 앉아 있을 자리, 딱 앉아 있기만 할 자리. 그 한 뼘이 없어."

- "자. 죽고 싶은 이유 다 말했어. 이제 나를 돌로 만들어줄 마음이 생겼어?"

- 솔직히 괜히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꾸할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 다들 의미 같은 거 모르고 꾸역꾸역 살아.
그러니까 나도 살고 있잖아.

그런데 왜 거기 서서 너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어?

- 너라면

이해해 줄 거라는 듯한
눈을 하고서.

- "파히르. 이 영혼들 말이에요. 환생하기를 포기하는 걸까요? 배고파, 배고파... 하는 소리만 중얼거리고 움직이질 않는데... 배고프다는 게 뭐예요, 파히르?"
"마고는 몰랐겠구나. 우리에겐 그런 감각이 없으니... 배가 고프다는 건 '허기'를 느끼는 거야. 허기는 말이지, 속이 텅 비었다는 거란다. 산 사람들은 뱃속이 비면 쉽게 쓰러져. 안이 채워져 있어야 움직일 수 있지. 영혼들도 똑같아."
"음... 뭘로 채워야 하는데요?"
"글쎄... 피나 물 같은 것으로는 부족해 보이더구나. 궁금하니?"
 
- "속을 채울 뭔가를 찾으면 다들 힘내서 더 나아갈지도 몰라요."
"너는 이상하게도 영혼을 아끼는구나. 세상의 원본은 연옥이고 지상은 열화된 복제판이지. 영혼은 연옥의 연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다. 지상의 모두가 얼마나 지독한 악의에 차서 살아가는지 아니? 그 일생의 찌꺼기로 남는 영혼이란 불결한 잔여물이야."
"그치만... 어떤 영혼들은 허기에 정복당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걸요."

- "네가 그렇게 궁금하면 지상으로 한번 가보겠니?"

- "마고도 참. 그런 곳보다는 나랑 피크닉이나 가는 것이 더 즐거울 텐데... 그러나 불의 뜨거움을 깨닫기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불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게 더 빠르고, 간단하고, 쉽게 잊히지도 않아. 약간의 흉터는 남겠지만..."

- "연옥의 본질은 헤매는 것이야. 여기서 태어난 너도 그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

 

 

 

 

 

- "안녕."

 

 




-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까? 배고파...

- "이 언덕의 꽃들은 살이나 기억을 먹어. 무사히 지나가고 싶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도록 해."

- "'미안해'나 '좋아해' 같은 걸 말할 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반의 반이라도 겨우 전해질까 말까 하잖아..."

- "가장 기본적인 재료와 레시피만으로 만든 팬케이크예요. 시판 믹스에 계란과 우유만 넣었지요. 어떠세요."

"이것보다는 조금... 조금 더 폭신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믹스에는 설탕, 소금, 바닐라 외에 따로 첨가물이 없으니 버터밀크와 베이킹파우더가 유력하네요."

- "버터밀크는 우유에서 버터를 분리하면 남는, 산미가 있는 재료예요. 베이킹파우더와 함께 쓰면 반죽에 공기층을 만들어줘서 케이크가 한층 푹신해진답니다. 이 근방은 버터밀크를 시판제품으로 팔지 않으니 직접 만드셨을 거예요. 우유에 식초나 레몬즙을 쓰면 비슷한 걸 만들 수 있거든요."
"... 냉장고에 레몬은 왜인지 항상 있었어요."
"그럼 확실하네요!"

- "간단한 레시피일수록 이처럼 섬세한 손길 하나가 돋보이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엿보여요."

- 먼저, 버터밀크와 액상 버터 혼합물을 만들어봅시다.
그릇 하나에 우유를 담고 레몬즙을 약간 섞습니다.
한데 넣고 저어주기만 하면 돼요.
"버터밀크는 이것으로 끝!"

- 만든 버터밀크에 계란을 넣고 잘 섞는데, 이때 녹인 버터를 조금씩 뿌리며 함께 저어줍니다.
액체 혼합물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 "바닐라를 넣어도 좋지만 오늘은 믹스를 사용하니 생략할게요."
이미 가향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 버터밀크는 무가당 요거트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세나님의 레시피를 따라해봅시다.

- 팬에 버터와 식용유를 두르고 충분히 달굽니다.
버터와 식용유를 함께 쓰면 버터가 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 "세나님의 팬케이크는 바삭한 편이었나요, 혹은 부드러운 편?"
"부드러웠던 것 같아요."
"그럼 팬을 한번 닦아내서 매끈한 상태로 만들게요. 버터가 많이 남아 있으면 팬케이크 끄트머리가 바삭바삭해진답니다."
닦아낸 팬에 반죽을 올립니다.

- "고생 많으셨어요. 향은 박스 앞에 붙여놨어요."
"아... 감사합니다."
"물어봐도 돼요? 꼭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못했어요. 그 말의 반의 반이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어요. 직접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 "그래도... 그래도, 아주 보통인 날에 아무 의미도 없이 이걸 같이 먹는 게 더 좋았을 거예요..."

- 그때라면 돌아갈 수 있었어.
나는 왜 항상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만 하는 걸까?
내 선택은 왜 언제나 나쁜 일로 이어질까?

살면서 했던 가장 멋진 선택마저 저 아래에서 피를 흘리고 있잖아.

- 미라야, 나는 그날 너의 방에 들어가선 안 됐어.

- 배고파... 
한 걸음도 더 못 걷겠어.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남겨버려서 벌 받는 걸까?
그 애한테 상처를 줬어...

- "아, 여기 계셨군요."

 



- "안녕하세요. 세나님. 배달부입니다. 세나님의 장례식 케이크를 가져왔습니다."

- "그럼... 이 들판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네. 하나의 군체로 살아 있습니다. 망자의 기억을 거두어 이 모든 풍경을 유지하지요."

-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나쁜 기억만을 소거합니다. 그다음에는 다른 것보다 무거운 기억을 버리게 합니다. 그렇게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을 때... 영혼의 옅은 자의식 속에는 가볍고 산뜻한 기억만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문을 마주하는 순간, 주저 없이 뛰어들게 되지요."

- "환생문의 생김새는 영혼마다 다르거든요. 망자가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형태를 빌리죠. 그런 식으로 영혼을 문 너머로 초대해서 기억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다시 '먹이'를 잔뜩 안고 올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내보냅니다."
"먹이..."
"연옥은 그런 방식으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애초에 기억이라는 것을 좋고 나쁨의 기준만으로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 동안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경계 없이 뒤섞였고 그 결과 기억을 분별해 소거하는 들판의 원리가 흔들린 듯합니다. 지금쯤 당신도 텅 비었어야 합니다. 저와 대화하는 일 따위 없이 오직 맹목으로 문을 열었어야 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요..."

- "당연히 케이크를 구워야죠. 하나라도 더 많은 영혼에게 정확한 레시피를 찾아주겠어요."
"꽤나 품이 드는 일이겠구나."
"하지만 원래 위로와 안녕이란 엄청나게 고된 일이랍니다."

- "케이크를 굽는 것이 우리가 지상에 관여할 수 있는 최선일걸요...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단것 한 입에 그 길고 괴로운 삶을 기꺼이 다시 살아보고자 한다고요.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 빚어졌는걸요. 바깥의 저 사람들은."

- "하여간에 신기하다니까... 그저 이 모든 게 연옥의 존속을 위한 노력이라고 이야기하면 편할 텐데."
"그 이유가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연옥의 산물이라고요."

- "개양귀비가 핀 초원을 사랑하는 영혼은 그다음 생에서도 같은 광경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아세요?"

- "저는 그런 영혼이 있다면 그가 넘실대는 초원의 풍경을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기를 기도해요. 왜일까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살아 있는 몸과 눈으로 그 모든 풍경이며 순간을 느끼는 게 영혼의 일이라는 건 알아요."

 

- "그러니 연옥은 연옥의 일을 해야지요."

 

 


 

 

- 연옥당의 한쪽 벽에는 지상과 연옥을 잇는 반달 모양의 붉은 창문이 있습니다.    

제작노트 안에 담긴 그림과 말들이

칸과 말풍선 바깥에서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분만의 붉은 창이 되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사랑하는 사이의 두 사람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 케이크'라는 것이 등장해야만 하는 만화를 그리면서 사랑하는 사이의 두 사람을 등장시키려 하다니... 물론 <연옥당> 시리즈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하고 있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사랑이란 방황하던 두 사람이 겨우 찾은 안식처로서 상대와 입맞춤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상대도 무너져버리는 그런 사랑이지요. 둘 중 하나의 죽음을 가정하며 남은 하나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 시놉시스 쓰는 내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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