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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구의 증명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4. 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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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최진영
출판 : 은행나무
출간 : 23.04.26


       

읽다 보면 눈이 뜨거워지는 글들이 있다.

눈물이 고이는 것보다 빨리, 마치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처럼, 안구가 터져버릴 듯 뜨겁게 부풀어서 고통스러워지는 글들이.

 

<구의 증명>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글이다.

좋았다고 말할 수도, 울림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그랬구나라고 말할 수도.

그냥, 알게 되는 것처럼.

아무 설명도 없어도, 어느 것이 담이고 어느 것이 구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가장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던 문장은 작가의 글이었다. 

"소설에 관해서라면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텅 비어버렸다."

읽은 이 또한 그러했다.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 천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 궁금하다. 천 년 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일에 충격을 받을지, 혐오를 느낄지,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할지, 모멸감에 빠질지. 어떤 일을 비난하고 조롱할지. 어떤 자를 미친 자라고 부를지. 어떤 이야기에 공감하고 무엇을 갈망할지. 천 년 후의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그때에도 돈이 존재를 결정할까. 대체 뭘 먹고 살까.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 천 년 후 사람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리라 믿고 싶다. 아니, 천 년 후에는 글을 쓰고 읽는 인류 따위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다. 글을 쓰고 읽는 인간으로서,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는 그만큼,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경찰서에 가서 자백할 수도 있다. 성직자를 찾아가 고백할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을 먹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까? 그러면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처리해 주겠지. 나는 말하라는 것을 말하고 가라는 곳으로 가면 될 것이다. 

이 글을 끝내고,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내가 원하는 전부다.

-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죽은 구는 꼭 술에 취해 곤히 잠든 사람 같았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죽은 구를 안고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 ● 네가 올 줄 알았다.
오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 너를 기다렸지만, 내가 죽기 전에 오길 바라는지, 죽은 후에 오길 바라는지... 혼란스러웠다. 살아 있을 때도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해 종종 너에게 선택을 미뤘고 때문에 핀잔을 들었는데,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나는 내 마음을 읽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죽는 모습을 너에게 보이기 미안했다. 죄스러웠다. 너에게 그런 짐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 부재만큼이나 네 남은 생에 지우기 힘든 얼룩과 상처를 남길 테니까. 죽기 전에 너에게 꼭 해야 할 말은 없었다. 없는 줄 알았다. 말해야 할 것은 너와 함께했던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다 하였을 테고, 그럼에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은 말이 되어 나와버리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말이 진심에서 가장 먼 것이라고, 너는 나의 그런 마음까지 알고 있으리라 믿었는데... 내 믿음은 옳았을까? 나는 네게 해야 할 말을 다 했던가? 아니지. 무엇이 아닌가 하면, 말이고 진심이고 그런 게 아니라, 너는 내가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내가 그것을 바랐다는 걸 죽는 순간에야 알았다. 
너를 보고 싶었다.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 닳고 더러운 보도 블록 틈새에 핀 잡초가 아니라,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알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까? 네가 모른다면 나는 너무 서럽다. 죽음보다 서럽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 

- 구의 몸을 잘 감추고 나도 따라 죽겠다는 다짐은 취소다. 그건 구가 죽지 않았을 때에나 할 수 있었던 나약하고 병신 같은 생각이다. 구의 몸을 잘 감추겠다니. 대체 어디에 감추겠다는 말인가. 살아 있는 구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들켜버린 주제에... 나도 따라 죽겠다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 나는 이 역시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에 대해 자꾸 물었다. 나도 이모처럼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끈기 있게 대답을 해주던 이모는 결국 화를 냈고 나는 울었다. 울면서도 모르는 게 죄냐고 물었다.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이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대들었다.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그건 영영 모르는 게 되잖아!

이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잠시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 다른 일보다 몸은 덜 쓰는데, 몸을 덜 쓰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고. 그 생각을 불러오고 장악하는 감정은 대개 불안과 초조였다. 돈을 직접 만지는 것도 싫다고 했다. 손님이 밀려드는 시간에 오줌을 참아가며 물건을 파는 사람은 자기인데, 정산을 하다 보면 그 돈은 다 사장님 돈이지 자기 돈은 아니고, 자기 몫은 그중 십 분의 일도 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어쩐지 몸도 마음도 뒤틀리는 기분이라고.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주저하며 구가 대답했다. 한참 후에 덧붙였다.

그렇게 늙어버리는 거 순간일 것 같아.

주저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바로 대꾸했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절대로.

- ● 우리 사이에 노마가 있으면 묘한 안정감이 더해졌다. 긴장은 잦아들고 이상하게도,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기분. 어두운 밤이 그런 우리를 감싸안는 느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착해지는 것 같았다. 함께 걸으며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겨울에는 붕어빵을 사 먹었다.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과 밤바람에 들떠서 무엇을 사 먹을 생각도 못했다. 노마가 집에 들어가 문 잠그는 소리까지 듣고, 담을 들여보내며 내일 보자 인사하고, 집에 돌아와 대충 씻고 누우면 일어나야 할 시간까지 네다섯 시간쯤 남아 있곤 했다.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 ● 넌 이담에 뭐가 될래?

스스로 겁내던 질문을 노마에게 한 적이 있다.

형은 이담에 뭐가 될래?

노마는 똑똑하게 되물었다.

너 먼저 말해봐.
 
- ● 졸업을 며칠 앞둔 겨울에도 나는 여전히 시장과 공장과 편의점을 돌고 있었다. 방학 때는 거의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운전은 벌써 할 줄 알았고 곧 면허도 딸 생각이었다. 트럭 운전을 하게 되면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운전을 하게 된다면 옆에 담을 태우고 꼭 바다에 한번 가보리라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었는데. 누나에게 담이 얘기를 제대로 한 적 없었다. 누나는 나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 정도로만 담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도 담을 질투했다. 하지만 느꼈겠지. 내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돈 말고도 내 마음을 좌우하는 '어떤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랬을 것이다. 누나가 알고 있는 내 처지나 누나가 짐작할 수 있던 내 미래가 아니라, 누나가 모르는 '어떤 것'이 누나를 지치고 단념하게 했을 것이다.  

- ● 그즈음 누나에게 공을 들이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공장에 들러 물건을 확인하고 주문하는 남자. 그 남자가 오면 누나는 장부를 정리하고 차를 대접하고 시내의 중국요리점에 코스 요리를 예약했다.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 나이에 요구되는 것을 이룬 사람 같았다.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고 돈을 모아 작은 빌라를 얻고 자동차 할부를 갚고 있는 사람. 아직 하지 못한 것은 결혼뿐인 사람.

- ● 이전에도 누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는 있었다. 그때마다 누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그들에 대해 말했었다. 누나 나이쯤 되면 계산적으로 이성을 만나게 된다고. 만나자마자 서로의 처지와 조건을 재고 따져서 견적 내기 바쁘다고. 그런 만남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상품이 된 것 같고 상대 역시 상품처럼 대하게 된다고.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됨됨이를 알아가는 걸 번거로워하고, 결과로 남은 것만 보려 한다고. 그런데 나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진짜 살아 있는 마음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생생하게 숨 쉬며 시시각각 변하는 생물을 대하는 것 같다고, 말라붙지 않은 심장이 느껴져서 좋다고 말하곤 했다. 

 

- ● 그런 게 좋았는데, 그런 게 피곤해진 것일까.
그즈음 누나는 자주 짜증을 냈고 귀찮다는 말을,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과 니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나를 보면 안쓰럽고 신경 쓰여 절로 눈물이 나면서도 그게 내 처지 때문인지 자기 인생 때문인지 헷갈렸는데, 헷갈려서 자꾸 잔소리를 하고 간섭했는데, 더는 헷갈리지 않게 된 거다. 
헷갈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다해서.
내게 줄 마음을 다 줘버려서.
더는 내가 생생한 생물 같지 않아서.

 

- ● 이 겨울이 지나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누나는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고 나는 젊으니 더 늦기 전에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너의 집과 이 고장을 벗어나야 한다. 이제 학교도 끝났으니 다른 지방으로 가라. 여기서 멀고 큰 도시일수록 좋을 것이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어라. 기술을 배우면서 돈을 모아라. 그 돈은 너만을 위해 써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각자의 길을 가자는 말보다 뒤에 덧붙인 말에 나는 상처받았다. 자기 주변에서 꺼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함께하지도, 지켜보지도 않을 거면서, 이제 영영 남남처럼 살 거면서, 헤어지자는 마당에 날 위한답시고 그런 말을 하는 누나에게 분노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 나도 다 안다고, 근데 씨발 아는 대로 살아지지가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거리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굴었다. 누나를 만나서 잃은 것이라면 고통스러운 기억뿐인데도 훨씬 값진 것을 빼앗긴 사람처럼 누나를 비난했다. 누나는 봉인된 내 감정의 염통을 풀어주었고, 덕분에 내 안에 얼마나 시뻘건 핏덩어리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되었다. 모르고 살았다면 훨씬 편했을까?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표현하게 된다는 건 과연 좋은 일일까? 폭군. 억울한 아이. 겁 많은 소년. 냉혈한 섹스광. 독 같은 불안, 불만으로 달궈진 인두. 호탕한 웃음.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 끝없는 욕구.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 ● 아무 인사도 없이 입대했다. 부모님에게도, 담에게도, 누나에게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도, 내가 몸담았던 모든 곳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바꿀 수 없다면 버리고 싶었다. 버리고 다시 살고 싶었다.

-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고서 이모는 말의 시작과 끝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천만 번은 했을 것이다. 세상 누구도 나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호흡이 잦아들기 전에는 입 모양만으로 내게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잘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모 몸을 태우는데, 이모의 몸이 그렇게 사라지는 게 무서웠다. 고통에 시달리다 죽은 이모의 몸을 다시 불 속에 밀어 넣기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이모의 몸과 같이 살고 싶었다. 영혼이 없으면 어떤가. 몸이 내 옆에 있는데. 몸이 거기 있으면 분명 다 듣고 보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졌어. 내가 진 거지. 내가 진 거야.
화장하는 내내 홀로 중얼거렸다. 여명에 기댄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생각났다. 어린 날 새벽에 잠깐 깨었을 때 보았던 꿈같은 기억이었다. 그때 밖은 파랗고 할아버지의 몸은 검었다. 파랗고 검은 것은 외롭다. 외로운 색이다. 어느 새벽에, 아픈 이모가 꼭 할아버지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잠결에 그 장면을 보고 엉엉 울었다. 이모도 가겠구나. 할아버지처럼 가겠구나. 내 안에서 그런 소리가 왕왕 울렸다. 느닷없이 통곡하는 나를 보고도 이모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거야.

 

-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 할아버지도 이모도 죽고 이제 구마저 없고, 나만 살아 있다.
나는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 이어폰을 꽂고 들었다. 이모가 공장에서 일할 때 듣던 MP3였다. 이모가 떠난 후 그 MP3는 나의 보물이 되었다. 그것을 귀에 꽂고 있으면 그래도 조금 덜 외로웠다. MP3에는 음악이 한 곡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모는 그 MP3로 라디오만 들었던 거다. 처음 MP3의 전원 버튼을 눌렀을 때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이모가 즐겨 듣던 주파수였다. 나는 그것을 이모의 주파수라고 생각했다. 이모가 선곡하여 들려주는 음악이라고. 거기서 처음으로 들은 곡이 멘델스존의 피아노곡이었다. 제목은 듣자마자 까먹었다. 외우기는커녕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그 주파수는 웃기거나 울리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착한 척도 좋은 척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 라디오를 아껴가며 들었다. 아끼고 아꼈다가 쉬고 싶을 때, 힘들 때, 죽고 싶을 때, 잠들기 전에 기도하듯이 들었다.  

- 나는 매일 비슷한 말만 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이 정도면 될까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것 말고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기다렸다. 구가 돌아오기만을. 내가 기다릴 사람은 구뿐이었다. 그 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부모형제를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하고 기대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모가 떠날 때도 나타나지 않은 가족이었다. 이 세상에는 없는 게 분명했다. 있는데도 나타나지 않은 거라면, 그런 거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이모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이모를 갖는 것으로 나는 내 인생의 행운을 다 써버린 거다. 너무 강력한 행운이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한 거고.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뭐든 쌍이 있지 않은가. 쌍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들었다.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아주 거대한 별도 그렇고, 가장 작은 원자도 그렇다고. 그렇다면, 내 인생의 행운에 이모만 있을 수는 없다.  


- ● 부모님은 행방불명 상태였다. 먼저 아버지가 사라지고, 그리고 서너 달 뒤 어머니도 사라졌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 순서가 뭐 중요하겠는가.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이 차례로 사라졌고 부모님의 빚이 모두 내게 넘어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부모님이 원래 안고 있던 빚에다 성인이 된 나를 보증인으로 세우고 빌린 돈까지 눈덩이처럼 불어 있다는 것, 원금보다 이자가 더 크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이 문제였다.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그런 곳뿐이었다. 부모님은 어째서 자꾸 빚을 질까. 갚지 못할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그럴까. 그건 십 대 때의 의문이었다. 갚지 못할 걸 알기에 빚을 진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는 거라고. 빛이 내게로 넘어오자,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 ● 만약 그렇게 돈을 벌어서 담에게 좋은 음식을 사줄 수 있었다면, 난방비 걱정 없는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었다면, 담에게 생활비를 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얼마든지 애정과 서비스를 연기했을 것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상대를 만족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섹스를 하면 사채업자들이 돈을 가져갔다. 호스트바에서도 만족스러울 만큼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자 그들은 나를 바다로 보내려고 했다. 진짜 노예로 팔아버릴 셈이었다. 
도망가자.
담이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대답했다.
그만둬.
무슨 뜻이야?
씨발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낮고 차가운 소리가 나를 뚫고 나왔다. 담의 눈을 피하지도 않고, 말을 흘리지도 않고, 슬프거나 괴로운 표정도 없이, ...

- 국거리를 달라는 손님이 있어서, 어서 오세요, 인사하고 보니 그 친구였다. 그 자리에 선 채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원하던 대로 간호학과에 갔고 한 학기를 다니다가 휴학한 상태였다. 등록금에 생활비에 방세까지, 두 학기를 연달아 다닐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간호사를 꿈꾸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일단 돈이 있어야 했다. 생각처럼 살아지지가 않네. 국거리를 받아들며 그녀가 말했다.

- 헤어지고 너라도 제대로 살라고 구가 말했을 때, 나는 구 없이 보내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했다. 어릴 때 아이들과 싸우고 한동안 구와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 노마가 죽은 뒤 구와 멀어졌던 시간들. 그때에도 그랬지만 다시 만난 후에도, 나는 늘 구를 기다렸다. 다시 헤어진다면 평생 구를 기다리겠지. 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도 없이. 헤어진다면, 어쩌면 구의 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불행할 것이었다. 구를 잃고 얻은 삶이니까. 아주 작은 불행만 닥쳐도 구를 떠나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테고, 조금이라도 행복할 때면 구가 생각나 그 행복을 모른 척하려고 할 것이었다. 불행해도 행복해도 구를 생각할 텐데,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구를 생각하면서 살기는 싫었다. 구와 같이 살고 싶었다. 우리는 결코 좋은 사이가 아니라고 구는 말했다. 멍청한 집착이라고 했다. 분명 더 큰 불행이 올 거라고 했다. 불행이 커지면 함께 있어도 외로울 것이고, 자기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울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 되잖아. 앞으로도 쭉 안 될 것 같잖아.
구의 목소리는 냉랭했지만 구의 눈동자는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네가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외롭고 불행해.
나는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시람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 걸 나쁘다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어쩌면 자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저들에게 잡혔으니 이제 곧 먹히겠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고.
... 우리도 곧 먹히겠구나.
근데 어리기 때문에 살인과 강도를 하지 않은 애들도 있었을 거잖아. 어른들이 주는 고기를 받아먹기만 한 아이들. 그 아이들도 사형당했대.
애들은 자기들이 먹는 그게 뭔지 알았을까?

알았겠지.
알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겠지?
응. 다들 먹으니까.
그거 진짜 있었던 일이야?
모르겠어. 스코틀랜드 전설이래. 지금은 소니 빈가족이 살았던 동굴이랑 그 지역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놨대.
관광상품...
근데 소니빈 얘기가 지어낸 거라고 해도, 아무 죄의식 없이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는 분명 있지 않았을까.

- 빚이든 돈이든 뭐든 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다 해주고 그리고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말자.
그래 좋아. 그러자.
나는 산뜻하게 동의했다.

 

- 사람이란 뭘까.
구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사람은 수술을 하고 약을 먹어서 죽음을 미룰 수 있다. 불을 다루고 요리해서 먹는다. 불을 다루기 전에는 생고기 생풀을 그냥 먹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인간은 동족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배만 부르면,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의 성기가 탐나서 지극히 존경해도 먹었을 것이고 위대해도 먹었을 것이다. 사랑해도, 먹었을 것이다. 그들은 미개한가. 야만적인가.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 ● 네가 지금 죽더라도 우리 영혼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아직 마도 이모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 만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태어났고 죽었지만 아직은, 다시 태어나지 못했으니. 다시 태어나 다른 존재로 만난 너를 내가 사랑하게 될까. 다른 존재인 나를 네가 사랑해 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너 아닌 그 어떤 너도 상상할 수 없고, 사랑할 자신도 없다. 이승에서 너를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살고 살다 늙어버린 몸을 더는 견디지 못해 결국 너마저 죽는 날, 그렇게 되는 날, 그제야 우리 같이 기대해 보자. 너와 내가 혼으로든 다른 몸으로든 다시 만나길. 네가 바라고 내가 바라듯, 네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후에, 그때에야 우리 같이.

- ●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작가의 말

 


이전까지는 작가의 말에 꼭 담고 싶은 문장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속에 있던 -마치 자르지 않은 호밀빵처럼 커다란- 덩어리를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해치운 기분이다. 소설에 관해서라면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텅 비어버렸다. 

지난 1월, 한 달 내내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방구석 일인용 의자에 앉아 구와 담의 이야기만 썼다. 그래서인지 나의 새해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고,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고, 지난겨울은 전혀 없었던 것 같고, 눈 떠보니 모든 게 꿈이잖아... 그런 느낌이다. 내가 쓴 글인데도 내가 쓴 글 같지 않다. 그런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재교를 봤다.

글을 쓰다가 지치거나 불행해지면 벗어놓은 옷처럼 축 늘어져서 '9와 숫자들'의 <창세기>란 곡을 들었다. 삼분이 조금 넘는 곡인데, 한 번만 들어야지 하다가도 반복재생을 걸어놓고 한 시간 넘게 듣곤 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쏠쏠하고도 귀한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니 글을 쓸 때의 감각보다 그 곡을 듣던 때의 감각이 더 생생하게 남아버렸다.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종종 돌아봤다.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 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2015년 3월, 일인용 의자에 앉아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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