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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묵찌빠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by 일루젼 2026. 4. 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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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세화
출판 : 책과나무
출간 : 23.02.03


       

한국형 장르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대 배경은 코로나 시기, 팬데믹 현상을 자연발생이 아닌 의도적인 전파로 재해석해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생긴 대중들의 인식 변화와, 거기에서 큰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산업을 연결해서 바라본 시각이 신선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흑막의 거대함에 비해 다소 가볍고 엉성하게 느껴지는 작전 실행자들과 경찰들의 움직임. 일상의 사소함과 정보의 층위를 보여주고 싶은 연출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다만 '꼽다'는 좀... 꽂다와 꼽다를 잘못 쓰는 경우가 왕왕 있어왔지만 그래도 전직 기자 작가의 작품인데... 교정 교열이 아쉽다. 

사물을 연결하는 의미는 '꽂다', 순위를 매기거나 적절한 개념을 고르는 의미는 '꼽다'다.

(번외 격으로 좋지 않게 본다는 의미로 '아니꼽다'가 있다)

00을 업계 1순위로 꼽았다.

충전잭을 콘센트에 꽂았다.

 

바벨탑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지금의 방향으로 몇 년만 더 언어가 파편화되면 더 이상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보호자와 피보호자를 구분해서 쓰지 못하니 의미가 반대로 전달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생기고 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네.) 

 

동저자의 다른 작품을 더 찾아 읽진 않을 것 같다.

끝. 

 

 


  

 

- 발걸음이 경쾌하다. 투박한 스위스군 전투화를 신었지만, 뒤꿈치를 들고 가볍게 뛰는 아웃복서의 걸음걸이다.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은 언제든 잽을 날릴 수 있게 리듬에 맞춰 작은 폭으로 흔든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었다. 후드는 덮어썼다.

- K는 남자와 2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3초 안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남자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시장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골목 안은 어둡고 적막하다. 가게 앞 텅 빈 진열대와 간판들이 K를 노려보는 것 같다.

 

- "나에게 주사한 건 뭐요?"
K는 운전만 한다.
서울 시내로 들어왔다. K는 정 박사가 지시한 S 대학병원으로 차를 돈다. 병원 입구 안쪽에 선별 진료소가 보인다. K는 병원 입구에 차를 세운다. 목소리를 바꿔 위협적으로 그 남자에게 말한다. 
"살고 싶으면 당분간 병원에 숨어있어요, 조금 전 바이러스가 몸에 퍼졌으니까. 차에서 내리면 선별 진료소로 바로 가요. 안 그러면 한 시간 안에 살해당할 거요. 내려요, 이양 박사!" 
남자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알았다는 듯 차 문을 연다. K는 그가 선별 진료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다.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세 사람 가운데 브람스 회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큰 몸집의 영국인으로 팔십 대 후반이다. 브람스는 헬스케어 부문 세계 최대 기업이다.
"하하하... 어떻게 해야 모두가 기술 발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까요? 인간은 자원을 가공해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문명은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면서 자본을 흐르게 했습니다. 이 흐름이 끊어진다면 자본주의는 파멸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쟁, 대공황, 금융 위기에도 자본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고 세상에 자양분을 공급했습니다. 글로벌 밸류 체인은 끊어질 때마다 복구됩니다." 
브람스 회장의 말에 세 사람은 숨을 죽였다. 브람스 회장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그들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사람 간 접촉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단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절이 오히려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뭐겠습니까? 궁극적으로 노동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편리하게 사는 게 아닐까요?"


- K는 뛰어서 산에 올랐다. 보통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정해서 운동했다. 등산객 산책로를 출발해 숲 속 길로 산을 타기도 하고, 산등성이에 있는 암자를 거쳐 정상 부근을 왕복하기도 했다. 암자로 가는 길은 계단이 많아서 훈련 코스로는 최적이다. 간혹 정상에 있는 방공포병 부대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내려오기도 했다. 그 길은 숲이 깊다. 평일 아침에는 등산객이 드물어 마음껏 체력을 단련했다. 은신처로 돌아오면 음식을 해 먹고 차를 마셨다. K의 유일한 행복이다. 

- 동영상을 본 K는 몸이 굳어졌다. 이양 박사와 자신이 카메라에 찍혔다. 킬러는 깨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양 박사의 존재가 노출됐다. K 자신도 노출됐다. 킬러도 동영상을 볼 것이다. 킬러와 다시 대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이 공포로 바뀌었다. 이양 박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막했다. 그러면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이양 박사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를 죽이려던 킬러는 또 누구일까? 정 박사는 왜 이양 박사를 S 대학병원으로 보내라고 했을까?


- "거의 모든 국가가 바이러스 퇴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감염자 수를 경쟁적으로 줄이려고 하면서 방역체계의 우수성을 정치적인 선전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강요하고 발생 장소, 사업장, 일부 지역, 심지어는 도시 전체를 폐쇄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나도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필요한 자연면역 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이죠. 인간은 공기 중의 무수한 바이러스를 체내에 받아들이고 이를 퇴치시키면서 면역력을 증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외부와의 단절과 직장 폐쇄, 모든 인류의 마스크 사용은 자연면역의 기회를 빼앗고 있습니다. 인류의 면역기능이 갈수록 약해지는 만큼 바이오셀텍의 바이러스 방어 기능은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공포는 인간을 약하게 만들지요."


- 피터 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박사가 예상한 대로 피터 영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정 박사는 피터 영에게 고맙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대화는 30분 정도 더 계속됐지만, 같은 주제는 반복하지 않았다. 정 박사는 바이오쎌텍의 미래청사진만을 거론했다.  

- 이양 박사는 최근 뉴스의 흐름을 보고 바이오쎌텍의 미래성장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확신했다. 그렇다면 그 과실을 자신도 따야 한다. 아니, 자신이 먼저 가져야 한다. 하지만 당장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양 박사는 홍콩의 인터넷 신문에서 놀랄만한 기사를 발견했다. 칭다오 공안이 바이오쎌텍 팜칭다오 연구소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30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기사다. 공안이 나섰다면 타살사건이란 얘기다. 이양 박사는 소름이 돋았다. 팜칭다오에서의 타살사건은 이양 박사를 더 불안하게 했다. 

- 놀랄만한 기사가 하나 더 있었다. 미국의 한 의학연구소가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 표본을 중국 실험실로 보낸 일이 밝혀졌다는 뉴스다.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고 말하자, 중국의 일부 과학자들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곳은 미국의 실험실이라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했다. 
미국 언론이 어떻게 알았을까? 중국 측 누군가가 분명 정보를 흘렸을 것이다. 두 개의 기사는 바이오텍을 주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적어도 이양 박사에게는 그랬다. 
이양 박사는 피오나 정 대표에게 만나자는 메일을 보냈다.

- 숲 속의 집은 조용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승용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숨겨놓은 오토바이에서 곤충 드론과 리모컨, 모니터를 꺼내 배낭 안에 넣은 뒤 어깨에 멨다. 손전등도 챙겼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가 암자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암자에서 약수를 마시고 잠시 쉬었다. 또다시 정상을 향해서 걸었다. 거기서부터는 손전등을 켰다. 정상 군부대까지 두 시간 걸렸다. 

- 길은 잃어버렸다. 정상에 올라가 주변 지형을 살펴야 했다. 하산할 길을 찾는 일차 방법이다. 하지만 벽돌 담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는 담장 안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군부대라는 것을 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담장에 군부대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초소가 있는 정문도 곧 눈에 들어왔다. 수도 서울에 있는 산 정상에 군대가 주둔해 있다니! 그는 놀랐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래서 곤충 드론을 가져온 것이다.

- 부대 영역은 넓다. 밤이 깊고 고요하다. 정문 초소 안에는 경비병 두 명이 앉아 있다. 한 명은 정문 밖을 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졸고 있다. 부대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이 여러 채 보였다. 병사들 숙소와 병기 창고다. 중앙에는 2층 건물이 있다. 부대 본부일 것이다. 1층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상황실이다. 
부대 북쪽 높은 지역에는 작은 진지들과 큰 창고가 몇 개 있다. 하늘을 겨냥하고 있는 날씬한 형태의 화기 석 대가 흐린 조명에 빛을 발했다. 발칸포다. 그는 이 부대가 방공포병 부대임을 알았다. 진지 옆 창고 건물 안에는 호크 미사일이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발사 차량이 있을 것이다. 진지 앞쪽 초소에는 소총을 든 병사 두 명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 한국은 수십 년 동안 평화로웠다. 지금은 경제대국이다. 처음 본 서울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전한 모습이다. 그런데 서울 근교 산 정상에 중무장 부대가 주둔해 있다. 북한 전투기나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한테 점령당하면 어떻게 될까? 그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갈수록 늘었다.

- 상자를 열었다. 권총과 탄창이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꺼냈다. 그러고는 나무 상자를 원래의 위치에 갖다 놓았다.
그는 물러서서 철제 구조물을 천천히 다시 살펴보았다. 가장 아래 칸 구석에 긴 플라스틱 상자 두 개가 겹친 채 놓여 있었다. 그는 위에 있는 것을 꺼냈다. 묵직했다.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손전등을 입에 물고 상자를 열었다. 그는 하마터면 물고 있던 손전등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흥분한 상태로 손전등을 비추면서 부속품을 한 개씩 감상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상자 안에는 조준경과 탄창, 소음기, 받침대가 소총과 함께 들어있었다. 소총의 길이는 1미터를 훨씬 넘었다. 멋지고 날렵했다. 처음 보는 소총이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레토 검색창에서 한국군의 개인화기를 찾았다. 조금 전에 꺼낸 권총은 K-5 권총이다. 페이지를 넘겼다. K시리즈 가장 뒷부분에 지금 눈앞에 있는 소총이 나와 있다. K-14. 한국산 저격용 소총이다. 

- "대체로 그렇습니다. C-바이러스가 자산 재평가를 앞당겼습니다. 지금은 사업가가 비즈니스를 위해서 여객기를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이러스 팬데믹 현상이 끝나도 그럴 겁니다. 여행 수요를 제외하면 말이죠. 저는 세계 각국에 있는 현지 법인 대표들과 회의할 때 레토가 개발한 화상 연결 프로그램을 이용합니다. 여객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수요는 폭증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항공사 주식을 사지 않고 레토를 삽니다.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드론으로 배달받습니다. 테슬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구입합니다. 차량 정보를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며 운전자는 차량에 부착된 PC를 통해서 보험을 듭니다. 모든 결재는 온라인을 통해서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은 우리 레토의 소프트웨어입니다. 하드웨어는 중국의 '자이'나 한국의 '삼성'이 제공한 부품으로 만듭니다." 
"C-바이러스의 확산이 역설적으로 시장의 변화를 앞당겼다는 말입니까?"
"진보를 앞당긴 것이죠. 어차피 AI의 시대는 예고되어 있습니다. AI라는 것은 노동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 아닙니까? 그렇게 본다면 C-바이러스는 사람 손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자동화된 세계로 발전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죠."

"방금 든 생각인데, 당신은 AI의 시대가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서 조금 더 앞당겨질 거라고 예상하는군요. 인간의 육체는 갈수록 게으르고 나약해지겠군요." 
"하하... 그런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브람스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운동하고 브람스의 플랫폼을 이용해 건강 상태를 진단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브람스 AI의 처방을 받고 수술을 하거나 약을 먹게 될 겁니다. 노동 시간의 감소가 곧 육체의 약화는 아닙니다."

-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가치의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일자리가 줄어들고 빅테크 대주주인 당신과 대다수의 가난한 호모사피엔스 간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당신이 만든 AI 제품을 구입하지 못해 결국 당신도 파산하지 않겠습니까? 물건을 살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요."
"저의 파산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공멸한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공멸을 막으려면 기본소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산업이 재편되면 인력시장 구조도 조정될 겁니다. 과도기에는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업자를 위해서 또는 ... "

- 그럼에도 K는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음식을 억지로 넘겼다. 이 여사가 극구 자고 가라고 권했지만, K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섰다.
추위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 겨울밤이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살갗이 따가울 정도다. 거리에 행인이 한 사람도 없다. K는 가슴이 뛰었다. 흥분한 상태에서 앞만 보고 걸었다.
'그 시간, 그 장소, 이 세상에서 아는 사람은 나뿐이야.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그곳 좌표를 몰라.'
정 박사의 확신에 찬 말이 시간이 갈수록 K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 그러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계속 심부름을 시키는 어른의 의도를 순식간에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K는 그동안 자신을 억눌러왔던 의문들이 놀라울 정도로 확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경악했다. 

- "그랬군. 그 사람이 위험에 처해있어. 그 사람을 지켜야 해."

"지켜요?"
"그 사람이 매우 중요한 걸 알고 있어."
"그게 뭔데요? 중요한 걸 알고 있는데, 왜 위험한 상황에 있죠?"
"중요한 걸 알고 있으니까 위험한 거야."

- "앞으로는 내가 만지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조작해서 애인에게 전화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으며 집에 있는 에어컨도 가동시킬 수 있습니다. 모니터로 CNN을 보다가 월스트리트저널을 보고, 영화를 보다가 화면을 핸드폰으로 전환해 사업파트너와 통화하고 다시 화면을 전환해 계약서를 교환할 겁니다.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면서 모니터로 집에 있는 제습기를 켜고 아내에게 꽃을 배달시킬 수 있습니다. 차에서 내려 걷다가 길가에 있는 전자 간판을 터치해서 의사와 인터넷으로 만나 고혈압 치료제가 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약이 올 때까지 그 모니터에서 BTS 음악을 들을 수도 있죠.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서비스 간 경계, 사업 영역을 어떻게 고립화할 수 있을까요?"
레토 의장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이러스 팬데믹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기술 변화를 촉진시켰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하나로 통일됩니다. 그렇다고 혼자만이 승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은 통일하더라도 영역은 분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업사회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가 분업 아니겠습니까?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본능이라 하더라도 뒤도 돌아보고 옆도 보면서 함께 가야 진정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레토 의장의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었다. 논쟁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돌아가면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 "사회적이라는 인간의 속성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AI가 비대면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바이러스 팬데믹은 AI시대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일시적인 고통을 주긴 했지만, 그것을 극복한 이후의 더 안락한 AI의 세계를 미리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데 CEO가 대답을 하려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이러스는 그래도 탐욕을 전파하지는 않죠."

- 총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는 없다.
시체는 골프를 하러 오는 팀이 있을 때까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빗속에 혼자 필드에 나간 사람이 클럽하우스로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골프장 직원이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일 것이다. 그동안 그는 멀리 갈 수 있다. 
7번 홀은 롱홀이다. 그는 그린 뒤 낮은 절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7번 홀 티박스까지는 4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피터 영이 티박스에 나타났다. 비를 맞은 채 백을 끌었다. 움직임이 느렸다. 혼자서 라운딩을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을 것이다. 피터 영은 백을 세우고 드라이버를 꺼냈다. 그리고 박스 한가운데에 섰다. 연습 삼아 두 차례 휘둘렀다. 티를 꼽고 공을 그 위에 놓았다. 방향을 보았다. 그리고 공 옆으로 가서 휘둘렀다. 소리는 났는데, 공은 보이지 않았다. 피터 영은 티를 다시 꼽았다. 공을 그 위에 다시 놓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환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피터 영은 조용했다. 그는 드라이버를 백에 넣은 뒤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그와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440미터, 420미터, 400미터.
그는 SVDM 드라구노프 저격 소총의 방아쇠를 부드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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