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엘리엇 카원 / 배민경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6.01.15
이사하며 들인 식물들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버텨주어서 고맙고 기쁘다.
겨울을 잘 보냈으니 이번 여름에는 더 튼튼해지길.
몇 년 전에는 잘 읽히지 않는 책도 꾸역꾸역 끝까지 쥐고 읽어냈다. 독서를 오래 쉰 뒤라 끈기가 부족해서라고, 익숙지 않은 분야의 책들을 읽는 거라 눈이 헛도는 거라고 생각했다.
의미 없는 행위였던 건 아니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경험을 할 때는 훨씬 힘이 덜 들고 자연스럽다는 걸 이제는 안다. '노력하는 경험'을 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게 '열심히 살아간다'는 느낌이라고 착각하는 건 곤란하다.
물론 여기서 살짝만 삐끗하면 나태와 안주가 되니-
뭐든 '적절'한 것이 중요하겠다.
<식물 정령 치유> 또한 그렇다.
저자의 경험과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가르침은 '적절함'이다.
여러 구루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믿음과 옳음으로 사람들을 돕는다.
개별 존재의 경험과 상태에 따른, 그가 가진 전통에 이어지는, 그에게 가장 '적절한' 만남과 연결.
자신이 표면적으로 인식하고 있건 그렇지 않건, 타인의 도움을 구하건 그렇지 않건, 자신이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옳음'.
절대적인 '옳음'이나 '정답'은 없다. 그 순간 가장 '적절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와 다른 선택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적절'할 수 있을 뿐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주파수를 하나로 동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떤 것이 정말 내면의 소리인지 모르겠다거나,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거나 등이다.
하지만 한 번에 '이거다!'하고 깨닫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그보다는 서서히 익숙해져 가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항상 자신의 상태와 느낌을 예민하게 살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방향을 잃지 않을 때.
이성의 '옳음'과 감성의 '옳음'과 영혼의 '옳음'이 모두 같은 것을 향할 때.
그 선택이 자신에게 가장 '적절'하다는 걸 의심치 않을 수 있을 때.
그날의 꿈에선 예상치 못한 반가운 방문을 받을지도 모른다.
-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스승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위대한 위촐 샤먼 돈 호세 리오스는 1990년 1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 도제 생활을 했던 돈 과달루페 곤살레스 리오스 Don Guadalupe González Rios 역시 2003년에 세상을 떠났고, 저명한 영국 침술가이자 나의 오행 五行 선생님이었던 J. R. 워슬리 Worsley 교수도 같은 해에 별세했다. 나에게 돈 과달루페를 소개해주었던 위촐족 예술가이자 샤먼인 돈 호세 베니테스 산체스 Don José Benitez Sánchez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유트족 치유자 그랜마 버사 그로브 Grandma Bertha Grove는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
- 날씨와 소통하는 샤먼이자 치유자였던 돈 루시오 캄포스 엘리살데 Don Lucio Campos Elizalde도 2005년 아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런 원로 한 명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가르침과 희망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Don José Rios. 마츠와 Matsuwa라고도 불렸다. 멕시코에서 Don은 스페인어 존칭으로, 이름 앞에 붙여 존경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어의 Sir에 해당한다. Don의 여성형은 도냐 Dona다.
- 원로의 역할 중 하나는, 가장 현명한 원로인 자연 그 자체의 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준다'고 말하는 이유는,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자연은 균형 잡힌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유지하며 우리 삶 속의 균형, 치유, 지속 가능성도 회복시켜 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말은 듣기에는 매력적이지만 결국에는 생각에 불과하므로 얼마 안 가 관심을 달라고 외쳐대는 다른 생각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린다. 설령 이 생각에 동의한다 해도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반면, 경험은 부정당하거나 잊혀질 수는 있을지언정 경험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경험은 우리를 영원히 바꿔놓는다.
- 어떤 식물 정령의 메디슨을 접함으로써 가슴이 울리는 경험을 하면 당신은 자연의 사랑과 지혜를 '느끼게' 된다. 생각으로는 이 같은 감동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정보 서적도, 실용서적도 아니며 이야기가 주가 되는 책이다. 이야기는 경험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지점인 가슴에 직접 ...
- medicine. 원주민 전통이나 샤머니즘 또는 영적 수행 등에서 쓰이는 용어로 '술' 또는 '약물'이라는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심원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단어다. 메디슨은 치유에너지, 신성한 힘, 영적 지혜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기에 문맥에 따라 치유, 치유력, 치유법, 영약, 메디슨 등으로 달리 번역했다.
- 과연 피터는 약용 식물들을 어떻게 조제하고 또 사용하는지 다시 한번 사냥꾼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사냥꾼이자 샤먼인 그는 피터를 보고 미소를 짓더니 이내 웃기 시작한다. 그는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불러 모은 다음 함께 웃는다. 모두가 실컷 웃고 난 후에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건 그냥 몇 가지 식물들을 소개해준 것뿐이네. 식물을 직접 사용해보고 싶다면 식물의 정령이 자네의 꿈속으로 찾아와야 해. 식물의 정령이 자네에게 조제 방법과 그 효능을 알려주면 그때 사용할 수 있는 게야.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요. 아무튼 덕분에 한바탕 크게 웃었구먼! 기억해 놨다가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겠어!" 그가 다시 웃는다.
- 한편, 미국 코네티컷에서는 한 대형 제약회사가 아마존의 샤먼들에게서 약용 식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샤머니즘 연구소에 연락을 취한다. 이 회사는 약초 샘플을 채취하여 유효 성분을 분리한 후, 이것을 실험실에서 합성하여 약으로 생산해 낼 계획이다.
이들이 아마존에 도착한 뒤의 광경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샤먼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례금을 받으며 호탕하게 웃었을 것이고, 파견된 직원들은 서둘러 실험실로 표본을 가져갔을 것이다. 회사는 새로운 화합물을 연구하느라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제약 기술자들은 실망스러운 결과만 연달아 내놓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샤먼들은 신용을 잃었겠지만 그런 것쯤이야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그 정글에 살면서 수 세기 동안 사용해 온 그 식물들로 ...
- ...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에는 이런 꿈을 꾸지 않게 됐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꿈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에게 예지몽을 꾼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75퍼센트 정도가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대답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몸이 잠들어 있는 침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이 벌어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먼 곳으로 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미래를 알 수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앎을 얻기도 한다.
-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놀라운 꿈의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잠든 채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위촐족과 아마존의 마체스족은 꿈속에서의 배움을 진정한 배움으로 여긴다. 실제로 우리 문화를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꿈속 배움을 진정한 배움으로 존중한다. 반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갈고닦아온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학습 방법을 숭배한다. 인류 역사상의 수많은 샤먼들이 또 다른 배움의 방편을 오랜 시간 갈고닦아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 이 꿈의 방편은 이성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다.
이 방편의 핵심은 배우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꿈의 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꿈의 상태로 들어가는 방법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 그녀는 내게 왜 왔냐고 묻는다.
"먼저, 지난 몇 년 동안 저와 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잎으로 많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었어요. 저는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른 도움, 더 깊은 차원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당신을 찾아왔어요. 사람들이 입은 신체적인 상처나 생채기는 우리 가슴의 고통과 오염된 정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당신이 이런 고통도 덜어줄 수 있을까요?"
창질경이 여인이 잎사귀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곁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잠시 내 얼굴 앞에 맴돌면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물론이죠. 당신을 돕겠습니다. 나의 형제자매들도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당신을 돕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가 이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200년간 기다려왔습니다. 우리는 요청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요청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식물 아니랄까 봐, 이 얼마나 겸손한 한 마디인지! 식물이 요청을 받았을 때 하는 일을 보라. 모든 인류 문명은 잉여 곡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식물이 베푼 아량에서부터 시작됐다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식물이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안락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식물들에게도 줄곧 그것만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안락함이란 그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진정한 삶의 만족으로 향하는 데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잠시라도 안락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식물에게 기쁨과 풍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면, 식물은 지금까지 내어주었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질 역시 우리에게 내어줄 것이다.
- 모든 만물은 자연과의 황홀한 합일을 즐긴다. 황홀경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며, 살 가치도 없다. 황홀경이 없으면 영혼이 움츠러들고 비뚤어지며, 마음은 오염되고 육신은 고통을 겪는다. 자연과 하나 되는 황홀경은 정상적인 건강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식물이 황홀경을 모르는 멍청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 또는 비극적이고 오만한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 언제 한 번은 학생들이 환자를 데려오고 내가 그들을 치유하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환자 중 한 명은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으며 죽음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남은 시간 동안의 고통을 덜어줄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그의 영혼으로 꿈 여행(dream journey)을 가보니 험악한 사막 지형과도 같은, 황량하고 쓸쓸한 내면의 풍경이 드러났다. 나는 두 식물의 정령들로 이 남성을 치유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남성의 치유를 인계해 준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 치유는 얼마나 온전하고 충만하게 사느냐에 관한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예술가가 이후로도 오래오래 잘 살았기를 바라지만, 사실 언제 세상을 떠났든 간에 그는 참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미 위대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 오해의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독자 여러분의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확실히 해두자면, 나는 이 남성의 백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지 않았다. 식물 정령 치유는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지 않는다. 나는 약초 치료와 같은, 어떤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제안하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식물 정령 치유를 실천하는 사람은 환자에게 어떤 식물을 사용할지 정할 때 그의 증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식물이 자연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사례는 많이 있다. 한 번은 열여섯 살짜리 소년이 심한 꽃가루 알레르기를 호소하며 나를 찾아왔다. 소년은 정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증상은 그에게 있어 꽤 심각한 일이었다. 첫 치유 세션이 끝난 뒤 소년은 다시 센터로 찾아와 내가 그에게 행한 그 '이상한 짓'이 뭐냐고 물었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소년은 "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든 나무와 관목들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식물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으며, 꽃가루가 더 이상 그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 가능하다. 갑자기 평화와 에너지로 충만해진 기분이 들고, 삶은 깊은 의미로 가득하다. 잠시나마 생생히 살아 있게 된다.
- 나의 두 살짜리 딸처럼, 당신도 아주 어렸을 때는 아마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영혼의 충만함'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이런 경험들이 뇌리에 남을 만큼 드물어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쩌면 당신은 가슴 아픈 일을 겪었거나, 불안과 걱정이 많아졌거나, 자존감이 무너졌거나, 두려움이나 분노에 휩싸이는 경험을 했을지 모른다. 뭐든 간에 이 끔찍한 경험들은 당신의 영혼을 깊이 다치게 했다.
- 이를 인식하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척이나 솔직한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혼이 고통을 느끼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영적 고통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그 무언가를 잃는 고통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 우리는 이 고통을 견뎌낼 수 없기에 일, 음식, 권력, 소유물, 섹스, 로맨스, 종교, 술과 마약 등으로 고통을 덮어버린다. 이런 것들을 통해 얻는 일시적인 쾌락은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에 힘을 보태면서 영적인 고통을 감춰버린다. 우리는 몸과 마음에 아낌없는 관심을 쏟음으로써 이 거짓을 더욱 견고히 다진다.
- 지금 우리는 음식, 주거, 의료 서비스, 오락거리 등의 모든 사치품을 누리고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교육과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작 무시무시한 영혼의 결핍은 아무도 직면하지 않고 있다. 성인이 되면서 영혼의 결핍은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 중산층 청소년의 주요 사망 원인은 자살이다. 성인들은 청소년들처럼 직접적이지 않아서 암, 심장병, 약물 중독 같은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자살을 택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질병들이 아니라 영혼의 병이다. 암, 심장병, 약물 중독 등의 증상을 포함한 대부분의 다른 증상들은 사실 영적 고통이 우회적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고통을 줄여주지 못했으며 부와 기술은 오히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우리 영혼을 위한 약이 절실하고 절박하게 필요한 때다. 나는 위촐족과의 첫 만남에서 이 약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 신성한 식물에게서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법을 배운 위대한 위촐족 샤먼이 멕시코 서부 시에라 마드레 산맥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마츠와 또는 돈 호세 리오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돈 호세를 수소문하면서 주소를 알아낸 다음 그의 집으로 찾아가 만남을 갖기까지 어언 1년이 걸렸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굽이진길을 돌자 그의 마을이 눈앞에 나타난다. 흙바닥에 나무막대기를 세워 만든 초가집 몇 채 사이로 아이들과 개, 돼지, 닭이 돌아다니고 있다.
- 마음은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틀 후, 집에 도착한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다. 아내가 문 앞에서 나를 맞이해 준다. 내 눈을 바라본 그녀는 내 안의 망령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린다.
문맹이었던 그 원주민 남성은 내 영혼을 치유함으로써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음에도 나에게 큰 보물을 안겨주었다. 식물로부터 깊은 치유를 배우기 위해 꼭 가난하거나, 문맹이거나, 원주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식물은 관심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치유를 가르쳐준다. 만약 당신도 관심이 간다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보라.
- 식물정령과 도제 관계를 맺어보고 싶다면 아래에 소개한 방법을 시도해 봐도 좋다. 이 방법이 당신을 돈 호세 같은 엄청난 치유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라도(물론 당신이 돈 호세만큼 훌륭한 견습생이라면 말이 다르겠지만), 내 학생들과 나는 이를 통해 얻은 힘으로 많은 치유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 먼저,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라. 우리 마음이 정령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지는 못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어떤 일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지를 과연 우리가 알 수 있을까? 식물에 깃든 정령은 우리에게 자비심을 내어 우리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줄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식물 정령들에게 도움과 친절에 대한 감사 인사를 미리 전하라. 소리 내어 직접 말하라. 이렇게 하면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되며, 정령들도 좋아할 것이다.
- 아래의 것들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계속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
북과 북을 쳐줄 사람(구하기 힘들다면 샤먼 북 음원을 활용해도 된다)
소량의 담뱃잎
휴대가 간편하고 신뢰도 높은 식물도감
노트와 펜(색연필이나 마커도 괜찮다)
- 다양한 야생 식물이 자라나는 시기와 장소를 선택해 야외로 나간다. 목적지를 따로 두지 말고 걸으라. 유독 마음이 끌리는 식물을 발견했다면 그 식물에게 다가간다. 소리 내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이 식물 종의 정령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설명하라. 식물이 당신을 불러준 것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이 식물이 줄지도 모를 도움에 대해 미리 감사하라. 무언가를 요청했으니 그 대가로 식물에 담뱃잎을 살짝 뿌려주는 것도 좋은 매너다.
- 이제 식물도감에서 당신이 말을 걸었던 식물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보통은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식별이 쉽다.) 이때 식물에 독성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자격을 갖춘 식물학자에게 식별을 요청해야 한다. 치명적인 독초는 거의 모든 지역에 다 있다.
-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것의 모양, 색상, 기하학적 구조 등을 기억하라. 식물의 그림을 그려보라. 그것이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지, 빛은 어느 정도로 쬐는 것을 좋아하는지, 동물, 곤충, 다른 식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찰하라. 여러 부위에서 향을 맡아보고 만약 독성이 없는 것이라면 식물에게 허락과 용서를 구한 뒤 꽃, 잎, 뿌리를 조금씩 조심스럽게 맛본다.
- 이제 이 식물에 친숙해졌으니 그것과 교감해 볼 차례다. 그저 여유를 가지고 가만히 있어보라. 식물과 하나 되라. 식물 자체가 되어 주변 세상을 경험하라. 이때 이미지, 느낌 또는 정보가 마구 떠오를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의식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경험한 내용을 노트에 적는다.
- 이제 조용하고 편안한 실내로 돌아간다. 1초에 2~4번 정도 울리는 일정한 북소리가 필요하므로 북을 쳐줄 사람이나 오디오 장치를 준비한다. (음원을 사용하는 경우 길이는 10분 정도가 좋고, 마지막에는 빠른 템포의 북소리가 1분가량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닥에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목이나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치는 것을 편안하게 느낀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하라. 숨을 한번 쉴 때마다 더 깊게 이완되는 것을 느껴본다. 당신이 알아가고 있는 그 식물의 정령을 만나 그 정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겠다는 의도를 확고히 세우라.
이제 북소리를 들으라.
눈을 감고 동굴이나 샘, 동물이 파놓은 땅굴과 같은 지하구멍으로 들어가는 자신을 상상해 본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터널을 따라 ...
-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자격을 갖춘 운전 강사가 필요한 것처럼, 성지 순례를 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정식으로 입문 과정을 거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안내자가 필요하다. 각 지역의 '도로 규칙'은 협상 가능한 것이 아닌, 그 지역의 일부다. 이 규칙에 대한 지식은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온다. 나의 스승인 돈 과달루페 곤살레스 리오스도 바람나무를 순례하며 많은 메디슨을 얻었다. 돈 루페(나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는 위대한 샤먼이었던 자신의 삼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그 삼촌은 또다시 자신의 선대 어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위촐족의 이러한 계보는 인류의 기원 이래 계속해서 이어져왔지만 다른 지역들에서는 그 지식이 소실되어 복구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나 운전면허를 딸 수 있지만 '순례 면허증'을 따려면 헌신과 인내가 필요하며, 당신이 찾아가고자 하는 장소로부터 초대를 받아야 한다. 초대장은 선조들로부터 전해지는데, 선조들은 당신이 그 땅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핀다. 초대장 없이 그곳을 가는 이는 침입자로 간주되며, 신성한 장소에는 침입자를 처리하는 크고 건장한 경비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처리'란 당신이 겪고 싶어 할 만한 일이 전혀 아니다!
- 또, 인간 형태의 수호자들도 존재한다. 바로 그 땅을 고향땅으로 물려받은 원주민들이다.
- 이제 왕의 불안은 위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외쳤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거지인가, 왕인가? 이 두 세계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왕궁의 그 누구도 감히 이 질문에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왕은 답답한 마음에 왕국의 모든 철학자들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큰 상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 나라의 지식인 대부분이 왕궁의 지하 감옥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한 현자가 왕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는 흉측한 외모로 멸시받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가 왕에게 한 대답은 이랬다.
"꿈도, 깨어 있는 경험도 모두 진짜가 아닙니다."
- 이처럼 시적인 방식으로는 아니어도, 현대 과학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물질은 사실 대부분이 빈 공간이며,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입자들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입자들조차 에너지 현상일 뿐이다. 우주에 '물질(stuff)'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 양자물리학이 에너지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특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입자'를 관찰할 때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특성을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그 특성을 확률적인 상태에서 실제 상태로 도약하게끔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다른 모든 특성들은 여전히 확률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자면, 에너지에는 특정 성향들이 있다. 우리가 그중 한 성향을 관측하려는 순간, 그 성향이 나타나고 다른 모든 성향들은 잠재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분노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 사람의 애정표현 성향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쩌면 에너지는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듯하다. 에너지는 우리에게 반응한다. 그것에는 의식이 있다.
-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우리 세계는 현실적이고 견고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실체가 따로 없으며, 관찰자의 정신 상태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장의 첫 단락에서도 꿈의 세계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므로 어린 현자가 왕에게 한 말은 진실이었다. 화려한 궁전과 농부의 막대는 모두 환영이자 같은 '본질(stuff)'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많은 형태의 샤먼 치유법에서는 샤먼이 꿈의 무시간성과 투과성을 이용해 병의 원인을 진단한다. 현대 과학과 고대의 지혜는 우리 세계를 꿈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즉, 우리 세계가 에너지와 의식이 얽혀 만들어낸 현상망(a tissue of appearances)일 뿐이라는 것이다.
- 깨어 있는 동안의 꿈은 밤에 꾸는 꿈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처럼, 적어도 더 반복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모든 꿈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 나는 인류학과 학생이던 시절에 호주 원주민들과 상당한 시간을 보낸 민족지학자(ethnographer)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 잡아먹히는 것은 모두를 위한 일이다. 가축 무리는 건강하게 유지되고, 포식 동물은 사냥감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연의 꿈은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복잡한 상호성의 그물망이다.
이것이 인간의 꿈과 자연의 꿈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자연은 합일과 행복의 꿈을 꾸는 반면, 인간은 고립과 폭력의 꿈을 꾼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일과 행복이 필요하다. 이원론적 꿈은 영혼을 굶주리게 하여 몸과 마음에 온갖 질병을 일으킨다. 따라서 메디슨의 역할은 사람들을 웰빙의 근원인 자연의 꿈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영혼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 자연은 신들(gods)이 꾸는 꿈이고, 신들은 하느님(God)이 꾸는 꿈이다. 자연과의 교감은 신성과의 교감이므로, 치유는 치유자가 제사장이 되어 행하는 진정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 한 환자가 호흡기 감염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고 해보자. 나는 그녀의 폐에 있는 미생물을 죽이려 들지 않는다. 사실, 나는 환자의 증상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 맞서 싸워야 할 '그들'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 여성을 위해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중이다.
우리 모두가 해결하려는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억눌러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음을 통해 배출되어야 할 것이 폐에 쌓여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된 것이다.
- 최소한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이라도 듣고 싶어서 식물 정령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그것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한 수 접고 이사를 가겠다고 약속했고, 그 즉시 어깨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나는 이 일로 가족을 데리고 완전히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사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북부 캘리포니아로 이사한 직후, 아버지께서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 새집에서 아버지의 집까지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돌보고,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산타바바라를 떠난 후 발생한 큰 산불이 시속 130킬로미터의 강풍을 타고 번지면서 우리가 원래 살던 집을 포함한 집 700채가 불에 타버렸다. 이 화재로 인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녀의 유해가 우리 집 옆 개울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북쪽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어깨가 완전히 나았지만 이건 그냥 미끼 같은 것이었다.
- 오십견이든 폐 감염이든 상관없이 모든 병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 유익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갈등도, 적도, 질병도 없다. 오직 누군가를 분열과 고통의 꿈에서 일체성의 꿈으로 이끌어줄 기회만 존재할 뿐이다.
- 일체성의 꿈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메디슨은 많이 있다. 하나 됨으로 들어가는 작업에는 식물이 딱 어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식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메디슨에는 두 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첫째는 이원적이지 않은 메디슨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꿈의 힘을 지닌 메디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 정령 치유를 연습하는 이가 이러한 힘을 우연히 얻는 경우는 없다. 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고결하고 명확한 의도가 필요하며, 그 의도는 지식과 기술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 꿈의 세계에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특히 식물은 치유의 근원, 즉 자연의 신성한 꿈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앎을 위해 우리는 책의 1부에서 식물, 정령, 메디슨, 꿈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식물 정령의 메디슨 드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샤머니즘, 순례, 아메리카 원주민과 호주 원주민의 철학 그리고 인간, 시간, 현실의 본질에 관해 탐구했다. 우리는 이러한 치유 방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지금, 우리는 마침내 "다 내가 지어낸 거 아닐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나는 식물 정령들이 내게 주는 것들이나 그들이 내 환자들을 위해 해주는 것들을 지어내고 있지 않으므로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나는 그 외의 내 삶 대부분을 지어내며 살아가고 있기에 맞다고도 대답한다.
- 그로 인해 자연환경이나 후손들에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 사회는 두려움에 깊이 빠져 있으며, 위태로울 정도로 균형을 잃어버렸다.
-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현실과 싸움을 벌이는 우리 마음은 비슷한 혼란을 일으킨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마음은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각각의 감정은 삶의 여러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라오는 것이다. 감정은 그 자체로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되어 있고, 그에 반응하여 또 다른 감정이 일어난다. 즉, 감정은 본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흘러간다. 마음이 이 흐름을 막아버리는 것은 강에 댐을 건설하는 것과도 같다. 상류에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물이 차오르면 막힘없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가는 감정이 된다. 감정은 흐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정을 경험하거나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 식물 정령 치유를 하다 보면 환자들에게서 이러한 감정의 댐 또는 블록 block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감정 에너지가 쌓이면 신체 증상이 나타날 뿐 아니라, 심각한 정서적 장애도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내가 '심각한 장애'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리가 감정을 통해서만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불균형하면 관계와 행동 또한 불균형해진다. 어느 한 지점에 막힘이 존재하면 모든 흐름이 멈춰버리기 때문에, 감정적 블록이 있는 사람은 건강하게 잘 살 수가 없다.
- 고립되어 있는 상상의 나라로 도망간다. 마음은 생각에는 감정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거짓이다. '머릿속'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단절되었다는 뜻이고, 감정과 단절되었다는 것은 곧 다른 존재들, 세상과도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생각은 감정 없음이 아닌,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마음이다.
- 또한 마음은 감정적 무감각, 즉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도 도망칠 수 있다. 이러한 분리 전략은 앞서 말했던 생각과 매우 유사하다. 무감각도 생각과 마찬가지로 중립적이거나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감정적 무감각은 인식되지 못한 두려움이다.
- 직접적인 감정 경험은 설명할 수 있거나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감정에는 과거도, 미래도, 의미도 없다. 예측 불가능하며 통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마음은 감정을 두려워한다.
- 이제 우리는 앞서 나왔던 "감정이 항상 존재한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를 보는 걸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감정이 항상 존재하긴 해도, 마음에 의해 심하게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무언가는 살아있음을 느끼길 원하고, 좋은 영화는 적어도 잠시동안은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영화 속 공격성과 폭력성, 성과 공포의 자극적인 활용은 우리 감정이 얼마나 많이 억압되고 왜곡되었는지, 그리하여 그것이 얼마나 불어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치유자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의례를 진행했고, 마을 전체가 이 의례에 참여했다. 그 결과 환자와 공동체 전체는 건강을 되찾았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사악한 악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식물 정령들은 사랑과 존중, 주고받음으로 엮여 있는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이며 우리 인간도 그것의 일부이다. 우리가 이 그물망을 찢으면 마을로 전령이 찾아온다. 전령은 '불행'이라는 글씨가 적힌 가방을 들고 와서 우리가 그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길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전령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창조물들을 위해 그물망을 복원하라. 당신과 타인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생명은 사랑과 존중, 주고받음을 통해 유지되고 있으니 그것으로 돌아가라."
- 식물과 상호작용할 때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페요테 peyote, 아야후아스카 ayahuasca 또는 환각 버섯과 같은 신성한 식물 스승들과 교류하고 싶다면 이 이야기에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잘 기억해야 한다.
- 폐요테는 작은 선인장으로, 주로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서부 사막 지역에 자생한다. 이 식물은 메스칼린 mescaline이라는 강력한 환각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수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영적 의례, 예언, 치유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 아야후아스카는 아마존의 샤먼 전통에서 유래한 신성한 식물 혼합물로, 바니스테리옵시스카아피Banisteriopsis caapi 덩굴과 프시코트리아 위리디스 Psychotria viridis 잎이 주성분이다. 전자는 MAO 억제제를, 후자는 DMT라는 강력한 환각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두 식물이 함께 조합되면 체내에서 환각 효과를 일으킨다. 아야후아스카는 비전적 통찰, 트라우마 해소, 영적 치유 등의 목적으로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서구의 심리학적·영적 치유 영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 환각 버섯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주요 활성 성분은 실로시빈 psilocybin과 실로신 psilocin이다. 이들은 고대 마야, 아즈텍 문명에서도 신비 체험과 신과의 소통을 위한 신성한 식물로 여겨졌으며, 현재는 의식 확장, 내면 탐색, 우울증 및 PTSD 치료 등 다양한 심리적·정신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 식물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신은 '그들'의 메신저가 가방을 들고 찾아오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나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이 식물을 존중하니까 별문제 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는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물론 때로는 순진하게 접근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만약 당신이 지식, 지혜 또는 치유의 축복을 원한다면 식물에게 그 대가로 무엇을 줘야 할까? 당신이 그 식물을 존중한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나타내야 할까? 이는 식물의 정령이 결정할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 위대한 스승들과의 존중 어린 관계를 이해하려면 신들이 위대한 이야기, 즉 세상의 이야기를 노래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신들의 노래는 이 세상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을 창조했다.
- 다윈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관해 최선의 추측을 하긴 했지만, 원주민의 지혜를 전수받은 이들에 따르면 그들도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족들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향이라는 자궁에서 태어났다. 인류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각 집단은 해당 지역의 동식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곳 생태계의 일부였다.
- 식물은 당신을 무시할 수도 있고, 작은 장난을 칠 수도 있으며, 불행 가방을 든 메신저를 보낼 수도 있다.
- 요즘에는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봄으로써 특정한 식물 스승이 당신 영혼의 동반자가 맞는지를 확인해 주고, 당신이 식물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안내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신성한 식물들이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한다. 식물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들은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는 탐험할 수 없는 광대한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러한 영역을 혼자 탐험하다가는 길을 잃기 쉽다. 길을 잃은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저 반면교사가 될 뿐이다.
- 좋은 안내자는 그 자신도 훌륭한 안내자 밑에서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전부터 식물의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길의 마디마디를 꿰뚫고 있다. 그는 이 치유의 길에 속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그는 축복을 받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불행을 겪은 일부 사람들을 목격해 왔다. 성공한 이들은 그와 같이 식물이 전해준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 선조들이 수 세대에 걸쳐 이어온 방식을 따랐다. 반면, 실패한 이들은 '자기 방식대로' 하고 싶어 했다.
- 양식은 영양가 있는 것들이었는가? 배가 잘 채워지면 만족감이 든다. 만족한 사람은 시기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으며,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만족한 사람은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만족은 감사와 연민을 불러온다. 오늘 당신이 먹은 마음의 양식은 만족을 가져다주었는가? 오늘 당신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과 인류애를 먹었는가, 아니면 스트레스와 폭력을 먹었는가?
- 요즘은 누구나 마음의 식단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와 폭력을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과하게 먹지만 않으면 건강한 위장은 이것들을 휘젓고, 섞고, 썩혀서 소화 가능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위장에는 마음의 경험을 소화시키는 능력도 있다. 서양에서는 이를 '반추'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장이 사람들에게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고 본다. 위장이 약하면 부드러운 음식도 소화가 어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별거 아닌 경험도 몇 번씩 곱씹으면서 그것을 소화하고 흡수하려는 헛된 시도를 반복할 수 있다. 이러한 곱씹음은 걱정과도 같고, 걱정은 결국 집착으로 이어진다.
-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장의 숙고 능력은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의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에도 잘 나타나 있다. 로댕이 프랑스인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위장 중심적인 사람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이들은 곰팡이 핀 치즈, 오래 숙성시킨 와인, 복잡하게 조리된 소스와 같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정성 들여 썩힌 음식들에 집착 ...
- 연로한 샤먼 돈 과달루페 곤살레스 리오스는 우리를 영적인 순례길로 이끌었다. 그가 모시는 신들이 있는 성지로 향하는 길이었다. 우리는 순례를 준비하며 금식했고, 길을 떠나 성스러운 샘에 다다랐다. 거기서 돈 루페는 우리에게 성수를 발라주었다. 그 후 그는 우리를 광야로 인도했고, 우리는 불 할아버지(Grandfather Fire) 앞에 서서 지금까지 성관계를 맺었던 모든 파트너들의 이름을 고백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해질 수 있었다.
-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둠이 깔렸고, 달이 떠오르자 코요테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여전히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불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돈 루페는 이제야 우리가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무언가를 받기 위해 이곳까지 먼 길을 여행해 왔고, 또 많은 희생을 치렀네. 나는 아까 자네들 안에 내 비밀을 넣어주었어. 그래야 '위대한 샤먼을 만나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일이 없을 것 아닌가? 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기 싫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라. 나도 때가 되면 죽을 텐데 내가 배운 것을 전수해 줄 수 없다면 이제까지의 배움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 난 내가 아는 것을 모두가 다 알 수 있으면 좋겠다네!"
- "내가 아는 모든 게 다 우리 아버지께 배운 것이라는 걸 자네들이 알아두면 좋겠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마 서너 살 정도였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등에 업고 바람나무가 있는 성스러운 산에 올라가신 적이 있네. 아버지는 산 정상에 도착하신 뒤 날 위한 촛불을 켜고 공물을 바치셨고, 나를 위해 밤새도록 기도하셨지. 나는 그게 뭐 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잠이 들어버렸어."
- "아버지가 정말로 내 생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분이 내 진짜 아버지라는 것을 아네. 왜냐면 내 안에 지혜의 씨앗을 심어주신 분이 그분이니까. 내 모든 것은 우리 아버지 덕분이네. 내 아버지를 주신 신께 감사를! 내가 자네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전부야. 이제 자네들도 우리 민족의 전통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구먼. 자, 이제 자네들이 말해보게나. 자네들의 전통에 대해 알려달라고."
"돈 과달루페, 우리 민족은 전통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가 물었다. "영적 전통은 근본적인 것이라서 사람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저희에게는 인도해 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길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저희가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당신처럼 가르침을 주셨던 아버지를 둔 사람은 저희 중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베티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돈 루페에게 이 말을 전해주세요. 어제 그가 나의 모든 성적 파트너들을 불할아버지께 고백하라고 했는데, 내가 말한 첫 번째 이름은 제아버지의 이름이었습니다."
베티의 말을 전해 들은 그는 깜짝 놀랐다.
"자기 딸에게 그랬다는 것인가? 짐승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짓을..."
"우리 민족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제 아시겠지요."
- "알고 싶다는 갈망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농업은 너무 하찮은 일처럼 느껴졌고, 상업이나 전문 직종에 종사한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지요. 그래서 귀중한 무언가를 찾아 떠돌아다녔지만 모두 허사였고 삶이 그저 무의미하고 우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위대한 지혜를 지녔다는, 어쩌면 신성한 현자일 수도 있는 한 노인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저는 그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 "제가 찾아갔을 때 그분은 태극권 동작을 수련 중이셨습니다. 고령임에도 중년 남성처럼 활기차 보였지요. 수련을 다 마친 후에는 저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면서 어떤 일 때문에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수년간 방황하며 찾아 헤맸는데도 저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허망함과 비통함만 느껴집니다. 듣자 하니 선생님께서 위대한 지혜의 보물을 갖고 계신다던데, 선생님의 총기 있는 눈과 평온한 표정을 보니 정말로 아직 제가 이르지 못한 어떤 경지에 이르신 분 같습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러자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여기까지 먼 걸음 해줘서 고맙네만, 나는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만을 제자로 받아들인 다네. 스승은 능동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야. 자신의 지혜를 제자에게 쏟아붓는 것은 찻잔에 차를 따르는 행동과도 같네. 실지로, 자네의 잔은 깨끗이 비어 있기에 채울 필요가 있네.'
그분은 끌끌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네는 아직 잔을 가만히 들고 있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만약 내가 자네를 가르치려 한다면 내 차를 탁자에 전부 흘리게 될 걸세...'
이것으로 대화가 끝난 것 같아서 저는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떴습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었기에 그분의 말씀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탐구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만 하고 한 곳에 오래 머물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안절부절못하고 성취감을 못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아예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결혼도 하고, 형님의 도움을 받아 이 마을에 자리를 잡기로 한 겁니다."
- 열심히 일을 도운 동생은 몇 년 뒤 형이 운영하는 회사의 공동 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독창성과 생산성을 키워나가면서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그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한편, 형은 동생만큼 잘 지내지 못했다. 사업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었지만 그는 동생의 높은 위상을 시기했다. 그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고, 이에 따라 무기력증이 찾아오면서 건강도 나빠졌다. 그러던 중 그는 나이 든 현자에 대한 소문을 다시 듣게 되었고, 직접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형은 동생이 나약하고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현자가 동생의 찻잔에 지혜를 부어주지 ...
- 시골뜨기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소리쳤다.
"그만 따르세요! 이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당장 멈춰요! 찻잔 넘치는 거 안 보여요?"
현자가 말했다.
"아, 자네 잔이 넘치고 있구먼, 자네는 '나는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야. 내가 동생보다 훨씬 나아'라고 생각하지. 이렇게 가득 찬 잔에 어떻게 차를 더 부어줄 수 있겠나? 자네 동생은 빈 잔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었네. 그래서 3년 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 잔부터 비우게나."
- 노인의 말을 들은 형은 큰 충격을 받아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머릿속의 모든 생각과 판단이 사라지면서 텅 비워졌다. 그는 그제야 배울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영을 받아들이는 그 언어도단의 순간에 대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 멕시코 중부의 어느 산 정상에는 엘 테포스테코 Tepozteco는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건축물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건 도대체 어떤 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을까? 용도가 뭐였을까?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도 나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었고, 다만 이 건축물이 케찰코아틀 Quetzalcoatl과 틀랄록 Taloc이라는 두 신에게 바쳐진 것이라는 설명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피라미드에 대해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산을 오르고 피라미드 벽을 기어올라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의례용 제단에 누웠다. 가이드 없이 이곳에 와도 되는 걸까?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이 자리가 흑요석 칼을 든 제사장들이 희생자 ...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물은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자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무언가일 뿐이지. 이들에게 비란 운전을 힘들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야. 이들은 나를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존재처럼 대해. 그래서 나도 그들을 똑같이 대우하지. 질병, 공포증, 탈진, 홍수, 가뭄... 원래 주는 대로 받는 거 아니겠어?"
"제가 이런 걸 사람들에게 전하길 원하시나요?"
"그래, 가서 전해. 사람들은 이런 걸 좀 알아야 해."
"하지만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예요! 저조차도 제가 진짜 틀랄록 신과 대화를 나눴다는 걸 믿기 힘든데요! 어쩌면 다 제가 지어낸 것들 아닐까요?"
"두고 보면 알겠지." 틀랄록이 말한다. "얼마 있으면 너는 우연을 가장한 신호를 목격하게 될 거야. 그 신호를 통해 내가 진짜라는 걸 확신하게 될 거고.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 이제 가봐도 좋아."
나는 틀랄록에게 감사를 표한 뒤 재규어에게 나를 원래의 세상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 이로부터 몇 달 후, 캘리포니아에 사는 여동생의 집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동생의 책장을 둘러보던 나는 <메소아메리카 신화>(Mesoamerican Mythology)라는 제목에 눈길이 가서 그 책을 꺼낸 다음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아즈텍 문명의 조각품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조각의 맨 위에는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게 하여 양 옆구리에 대고 있 ...
- 방광의 기운은 수를 모아둔다. 우리의 에너지 역시 액체처럼 흐르다가 방광에 모이게 된다. 그러다 웅덩이가 가득 차면 우리는 변화에 맞춰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웅덩이가 마르면 두려움과 마비(즉, 흐름의 정체)가 생긴다.
- 신장의 기운에는 물의 깊은 신비가 담겨 있다. 수를 상징하는 계절인 겨울을 생각해 보라. 존재의 씨앗은 눈 아래 잠들어 대지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어두운 고요 속에서 잉태되고 있다. 그러다 내면 깊은 곳에서 이 세상을 낳은 태초의 혼돈을 발견한다. 생명의 샘에 이른 것이다. 존재의 씨앗은 샘물을 마심으로써 생의 의지를 흡수한다. 그 물에는 죽음에서 생명을, 무에서 유를 불러오는 힘이 깃들어 있다. 씨앗은 이 힘을 세상으로 가지고 나간 뒤 그 일부를 자신의 성적 체액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한다.
- 신장이 품고 있는 이 힘은 완벽히 설명될 수 없으며, 그저 그것의 영향 몇 가지만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중국의 현자들은 신장이 생명력의 근원이자 기초라고 보았으며 중동의 한 현자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식물은 신장이나 방광이 없지만 우리처럼 체액을 저장할 수도, 신비로운 생명의 샘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식물은 우리의 물 원소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 조금 세게 표현하자면 불안과 긴장은 '두려움'과 동의어이며, 걱정도 두려움의 한 형태다. 대부분의 스트레스와 근심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졌다는 것은 두려운 감정을 외면했다는 말이다. 생각이라는 행위조차 두려움이 무서워서 피하려는 움직임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불안, 긴장, 걱정, 스트레스, 감정적 무감각, 끝없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반면에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게임, 독서, 스포츠 관람, 과식, 마약, 알코올, 병든 연애, 포르노, 과로, 쇼핑 등과 같은 도피 전략에 빠져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기피하고 싶은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해 보자.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두려움의 역할은? 두려움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 우선, 두려움은 감정이다.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두려움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나름의 역할이 있다. 두려움은 위험 요소로부터 도망치거나 그것과 맞서 싸워 이기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지킨다. 이것이 그 유명한 투쟁-도피 반응인데, 이는 신장에 붙어 있는 분비샘인 부신이 분비하는 아드레날린에 의해 일어난다. 우리 몸은 이러한 반응을 촉진함으로써 돌진해 오는 버스를 잽싸게 피할 순간적인 힘, 공격자와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낸다.
- 식물 정령 치유에 대한 나의 관점에 따르면, 대부분의 건강 문제는 화, 토, 금, 수, 목 원소의 힘들이 균형을 잃었음을 알려주는 메신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소와 상관없는 불균형도 존재하는데, 이 장에서는 그중 두 가지인 빙의 그리고 남성적 힘과 여성적 힘의 불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 영화에서는 빙의와 퇴마 장면을 과장되게 묘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단순 미신으로만 치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빙의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내가 접해본 여러 의술 중에서 유일하게 빙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현대서양의학이다.
- 빙의된 사람은 기존의 자신으로 있을 수 없으므로 빙의가 풀리지 않는 한 그의 본래 인격과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빙의되었음을 스스로 자각하곤 한다.
어느 젊은 남성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가끔 이상하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라면서 능수능란하게 나를 설득하는 목소리가 들려요."
또 어느 젊은 여성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빙의 같은 그런 허튼소리는 안 믿어요. 그렇지만 만약 그런 걸 믿는 사람이었다면 저는 제가 빙의됐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교통사고가 난 이후로는 저답지 않게 우울감에 빠져 있기 일쑤거든요."
이들 모두 빙의가 풀리자 환청과 우울증이 감쪽같이 나았다.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빙의된 상태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또한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바로 이러한 특성, 즉 외부와의 인위적 단절이 빙의 여부를 식별하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사례자의 과거를 살펴보면 특정한 트라우마나 정서적 스트레스가 에너지적인 '피부'를 손상시킴으로써 빙의가 일어났음을 알게 될 때도 많다.
- 그렇다면 빙의를 일으키는 이 외부 영향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귀신? 특정한 감정 에너지? 몸에 쌓인 독소나 마음의 병? 식물 정령 치유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공명장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해결책은 식물을 통해 그것을 쫓아내 줄 유익한 정령을 불러오는 것이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는 나쁜 것들을 쫓아주는 이런 유익한 정령들을 '용'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 문화권에서 용이 복을 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용의 본질 역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 현대 의학에서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것이 바로 부부간의 불균형 상태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불균형이 적절히 해결되지 않으면 조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이는 빙의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부간의 불균형을 이해하려면 먼저 '균형이 잘 잡힌 부부 사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 모두를 갖춰야 한다.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목표를 이루려는 태도도 필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돌보고 지지하며 있는 그대로 두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옛 시대의 남편과 아내처럼 서로를 보완해주어야 한다.
- "그럴 때마다 저는 '나는 의사야, 샤먼들이 쓰는 그런 치료법은 쓰지 않을 거라고' 하고 되새기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아요."
- 식물 정령 치유는 식물 신들이 은총을 내려주는 주술-종교적인 의례다. 그렇다면 그 은총을 불러오는 방법은 뭘까?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알약과 물약을 사용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치유할 부위에 손을 얹고, 깃털을 흔들고, 춤을 추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방식들이 발견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방식들이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어떤 방식을 쓰든,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연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정령들을 불러오는 일이다. 이는 병마와의 싸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식물 정령 치유에는 관절염이나 편두통, 우울증, 암에 좋은 약초라는 개념이 없다. 식물 정령이 어떤 메디슨을 주든 그것은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존의 마체스족이 피터 고먼에게 말했듯, 식물을 치유에 사용하려면 그 식물의 꿈을 꿔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두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한 식물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 특정 종의 질경이(Plantago psyllium)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팽창성 완하제의 주재료인 차전자의 원료다. 또한 민간 약초 전문가들은 질경이를 다른 용도로도 많이 사용한다. 나는 버몬트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질경이를 즐겨 썼다. 질경이즙을 고름이 나는 상처에 바르면 24시간 이내에 대부분의 감염과 염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앞서 언급했듯, 질경이는 내 꿈에 처음 나타난 식물이었다. 질경이 정령은 날개 달린 요정의 모습이었는데, 한 손에는 마법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액상 수면제가 든 병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메디슨으로 정신적·영적인 고름과 변비에 해당하는 증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온화하면서도 강력한 영혼의 청소부로 표현했다. 그녀는 옛 오물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럽혔을 때 자신이 순수와 활기를 되찾아줄 수 있다고 말했는데, 특히 금 원소 그리고 결장과 상성이 잘 맞는다고 알려주었다. 만약 이러한 문제로 불면증이 생겼다면 질경이 정령의 메디슨이 특히 더 필요할 것이다.
- 역자 주 : 한방에서는 질경이의 씨를 차전자라고 부른다. 다만 본문에서 언급하는 Plantagopsyllium은 한방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인도 혹은 지중해산 질경이다.
- 작은 원뿔 모양의 말린 쑥을 몸의 경혈지점에 놓고 태우면 환자의 생명력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쑥은 침술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쑥은 세계 각지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식물이다. 캘리포니아의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쑥을 신성하게 여겨 점술과 영적 치유에 사용하며, 메소아메리카 민간요법에서도 중요한 식물로 여겨진다. 쑥은 앵글로색슨 시대 때부터 마법 수행과 관련이 깊은 식물이었고, 유럽의 어떤 전통에서는 베개 아래에 그 가지를 놓아둠으로써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한다.
- 식물 정령 치유에서도 쑥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락의 에너지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귀중한 레메디이기 때문이다. 기의 흐름을 뚫어주는 작업이 요구되는 경우는 꽤 많다. 기가 한 경락에서 다른 경락으로 흐르다가 막힌 상황, 또는 몸 한쪽의 기가 다른 쪽의 기보다 현저히 떨어져서 신체 기능이 한쪽으로 치우쳐진 상황이 바로 그런 경우다. 진맥에 능숙하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고, 쑥의 정령을 통해 이를 치유할 수 있다.
- 엘리엇 : 그렇다면 타라후마라족은 식물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배우나요?
엔리케 : 우리는 자라면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데, 이건 책을 읽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특정 식물을 치유나 음식, 음료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우죠. 우리는 누군가가 몸소 보여주는 예를 통해 배움을 얻어요. 어떤 식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도 그런 본보기를 통해 배우고요.
그러나 일반적인 수준보다 조금 더 깊이 배우길 원하는 타라후마라 사람은 정령들에게 접촉해 꿈을 꾸길 기다려요. 그 꿈이 그를 참된 세계로 데려다주거든요. 우리가 지금 사는 이곳은 단지 물질과 육신의 세계일 뿐, 참된 세계가 아니에요. 참된 세계는 오샤의 정령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곳이죠. 참된 세계는 과학 기술이나 책더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비전과 꿈속에 있어요. 꿈을 꾸거나 비전을 볼 때마다 우리 앞에는 문이 열려요. 그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 순간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알게 돼요. 그것이 바로 '앎'이에요. 배움은 그렇게 이뤄져요.
내가 만약 평범한 타라후마라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면 나는 반드시 비전과 꿈을 통해 그것을 경험해야 해요. 그러나 모든 타라후마라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 다른 길을 부여받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훌륭한 농부로서, 어떤 사람은 치유자로서, 또 어떤 사람은 뛰어난 바구니 제작자로서 이 땅에 태어났어요.
어떤 타라후마라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나 가톨릭 신자가 되기도 하는데, 가톨릭 신자가 되는 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가톨릭에도 일종의 의례가 존재하고 그 의례가 사람들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줄 수 있으니 유익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과 개신교는 타라후마라 사람들이 진정한 앎으로부터 멀어지게끔 만들어요. 왜냐하면 기독교인에게 있어 앎이란 책, 즉 성경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앎은 글에 있는 것도, 책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과학자들의 방식이죠. 전통적인 타라후마라 사람들은 여전히 꿈과 비전 같은 앎의 방식을 존중하며 살아가요. 그래서 어떤 타라후마라 사람들은 진정한 앎을 지닌 사람을 찾아 배움을 얻기 위해 며칠 동안 긴 여행을 하기도 해요.
- 엘리엇 : 이 '아는 자(knower)'들이 타라후마라족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인가요?
엔리케 : 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시간을 내어 이러한 것들을 배우고, 배운 것을 전수하면서 전통을 이어가는 원로들이에요. 저의 어머니를 예로 들어볼게요. 저희 어머니는 학교를 마치지는 못하셨지만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현명한 분이세요. 만약 대학 교수들이 어머니를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면 아마 최하위권에 속한 사람이 될 거예요. 하지만 그건 백인 사회에서나 적용되는 기준이죠. 만약 제가 아직도 옛 방식을 존중하는 호피족에게 어머니를 데려간다면 전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저희 어머니는 매우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질 거예요. 호피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고 이렇게 말할 거예요. "와, 땅에서 바로 재료를 뽑아와서 전통 음식을 만들 줄 아시네. 마트에 갈 필요가 없겠어. 게다가 이분은 바구니도 만드실 수 있고 약초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시잖아?!" 이 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요? 이건 정말 위대한 일이에요! 그것이야말로 평생을 통해 얻은 배움이죠!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런 다른 의미의 앎을 이해하지 못해요. 미국인들에게 앎이란 셰익스피어의 작품 암송하기, 원자 쪼개기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그게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걸 가지고 논문을 쓰고, 논문을 읽고도 정작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밖에 더 있을까요. 저도 박사 과정 중에 있지만 박사라는 두 글자가 저를 더 강력한 치유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해요. 약초에 대한 배움에도, 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토르티야를 만드는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박사라는 걸 내세우면 제가 쓴 기사나 책을 사람들이 기꺼이 읽어주긴 하겠죠. 좀 슬픈 일이에요.
- 엘리엇 : 이번엔 완전히 다른 주제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토착 식물을 사용하는 것과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엔리케 : 저는 누군가를 치유할 때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의 식물을 쓰는 걸 선호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지역 식물들과 접촉하고 있어요. 의식할 순 없어도, 식물들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요. 이 식물들은 강인해요. 그들은 메시지를 내보내요.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쩐지 이곳 식물들과 많이 닮아 있는데, 그들도 강인한 사람들이에요. 척박한 환경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곳을 사랑하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니까요. 그러다 보면 그런 환경이 지역 사람들의 일부가 되죠.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그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식물을 쓰려고 해요. 심지어 의례에 쓸 식물을 환자에게 직접 채취해 오라고 시키기도 해요. 그 약초가 어디서 온 건지 알아야 환자가 그 식물의 치유 정령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양약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니까요. 가끔 식물로 만든 약이 있긴 하지만 알약이나 액상 형태로 바뀔 때쯤이면 식물의 정령은 거의 죽어버려요. 물론 화학 성분은 남아 있겠지만 그것도 살아 있는 화학성분이라고 볼 수는 없죠. 이런 이유로 저는 환자가 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을 주로 사용해요.
- "질병을 위한 약초는 없다고 말해요. 그러면 그들은 다시 말해요. '이 병에 딱 맞는 식물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저도 다시 대답하죠. '글쎄, 그 병에 딱 맞는 식물이 있어야 한다면 직접 나가서 찾아보지 그래요!'"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어떤 증상이든 간에 항상 같은 식물들을 써요. 우리 어머니가 쓰시던 바로 그 식물들이죠.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마을 최고의 치유자셨고, 지금은 제가 최고가 됐어요."
- "도냐 모데스타, 치유에서 식물 정령이 하는 몫은 얼마나 되나요?" 내가 물었다.
"대단히 크죠. 식물의 즙은 그들의 피고, 이 피에는 태양의 치유력이 담겨 있어요. 저는 식물을 딸 때 우리 식물 형제들이 그 치유력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느껴져요."
- "도냐, 저는 식물 치유에 대해 혼자서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에요. 저희 어머니는 당신 어머니처럼 저를 가르쳐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식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고 있어요."
"정말요?"
"네. 선생님도 식물들과 대화하시지 않나요?"
"물론이죠!" 그녀가 윙크하며 속삭였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아요!"
"왜죠?"
"믿지 않는 제자들도 있을 테니까요."
- 나는 루시오의 귀 가까이로 몸을 기울인 다음, 양손을 입 주변으로 모아 소리쳤다.
"저는 식물의 정령으로 사람들을 치유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시죠?"
"그렇지! 식물 정령! 바로 그거야! 식물에는 움직임이 있네! 그들에게도 영이 있고, 심지어는 혼까지 있어! 그렇지 않다면 식물은 살아 있을 수 없네. 주님께서 이 땅에 두지도 않으셨을 거야!"
"선생님께서는 환자를 치유할 때 식물로 만든 약을 먹으라고 하지 않으시죠?"
"그럼! 나는 오직 의도로만 치유하네!" 그는 검지로 자기 이마를 톡톡 쳤다.
"그런 식으로 치유하시는 분은 흔치 않지요." 내가 말했다.
- 여기서 돈 루시오는 좀 난해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말할 때는 남은 손으로 내 손을 살짝 건드리기도 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먼 도시에서 부당하게 투옥된 남자, 그것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자를 그가 주술로 풀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남성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돈 루시오의 마을로 찾아왔고, 두 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돈 루시오는 남성이 누군지 알지 못 ...
- "그게 세상의 이치야. 그래서 내 치유 작업도 그리 아름다운 것이지!"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돈 루시오." 내가 말했다. "만나 뵐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사는 지역에 들를 일이 생기신다면 저의 집에서 편하게 머무르셔도 됩니다."
"고맙네. 다음 만남을 기다리고 있겠네. 아, 다음번에 올 때는 미국인 아가씨 한 명 데려와주게. 참한 아가씨로!"
다음 만남 때 미국인 여성은 데려가지 않았지만 돈 루시오는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의례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응접실에는 신아즈텍(neo-Aztec) 그룹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문과 창문에서 향 연기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의례 진행자들은 스페인 침략 이전 시대의 의상을 입고 류트를 연주하면서 베들레헴의 별과 십자가의 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 역자 주 : 베들레헴의 별. 신약성경에서 동방박사들을 예수의 탄생지로 인도한 별로, 예수 탄생의 상징이다.
- 16세기 스페인 침략 이후로 아즈텍 문명은 붕괴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가톨릭 신앙을 강제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토착 신앙을 가톨릭적 형식 뒤에 숨겨 결합하는 식으로 전통을 이어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과달루페의 성모(Virgin of Guadalupe) 이야기다. 멕시코시티 북부의 테페약 Tepeyac 언덕은 본래 아즈텍 여신이자 대지모신인 토난친 Tonantzin을 숭배하던 장소였다. 그리고 1531년, 바로 이 언덕에 있던 원주민 남성 후안 디에고 Juan Diego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스페인인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토난친 신전이 있던 자리에 과달루페의 성모를 위한 성당을 세웠고, 원주민들은 토난친이라는 어머니 여신의 상을 성모 마리아와 결합시키게 되었다.
-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멕시코에 원주민 정체성 회복 운동이 일어났고, 일부 그룹이 아즈텍 전통의 춤, 의례, 복장, 상징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을 신아즈텍 그룹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이 재현하는 의례는 실제 전통이라기보다 가톨릭적 상징과 아즈텍의 요소가 뒤섞인 형태다. 돈 루시오는 이러한 외형적 전통이 아닌, 토착 신앙의 영적 본질을 진정으로 계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토고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3시 30분부터 6시까지 요가와 명상, 기도를 했고요. 이렇게 하는 제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 치유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그의 치유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소우가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왠지 정이 많이 가요.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런데 사실, 당신이 아직 나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좀 힘들어요. 내 주변에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령들을 보거나 감지하지 못한다면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거든요. 한 사람에게 어떤 힘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 알 수 없어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당신에게 비전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식물 정령이 있는데, 괜찮다면 그 정령을 불러내는 법을 알려줄게요. 필요한 약초를 구해놓을 테니 2주 후에 다시 나를 찾아오세요."
- 그는 또, 제가 토고에 온 이후로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두 시간 반 동안 아침 운동을 할 때 옆에 함께 있었고, 제가 하는 그 운동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면서요. 그는 제가 했던 운동 중 일부, 그러니까 쿤달리니 요가를 직접 따라 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본 것들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제가 연습하던 호흡법과 우리 집에 있는 꽃에서 나는 향기가 매우 좋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그 꽃들, 즉 투베로즈 tuberose가 나에게 매우 유익한 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된 향을 피우고 있다고 말하면서 올바른 향을 구해주겠다고 했어요. 또, 흰색 양초만 쓰는 건 너무 제한적이라서 일곱 가지 색깔의 양초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 아소우는 실제로 우리 집에 와본 적이 없었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에 영적 수행을 할 때 아내 말고는 누군가가 집 안에 있던 적이 없어요. 실은, 그가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죠.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을 다 알고 있다 보니 마치 그가 아침마다 우리 집을 찾아왔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 2주 후 제가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때, 약초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크고 강인한 손으로 쉽게 부서질 수 있는 마른 약초들을 완벽하게 골라냈습니다. 그가 약초를 다루는 그 경건한 태도는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유의 감동이었어요. 그가 약초를 대하는 방식 자체로부터 무언가 중요한 걸 배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세 가지 다른 약초를 고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 가지 약초의 잎을 일곱 개의 초 아래마다 놔두고, 내가 준 향을 피운 채로 평소처럼 두 시간 반 동안 명상과 요가를 하세요. 그리고 수행을 마무리할 때 식물 정령들을 불러내는 이 주문들을 외우면 그 정령들이 내 영혼을 불러올 거예요."
- 저는 그의 말에 따랐고, 당시 아내와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방 안에서 번개가 치는 것을 보았어요.
진동이 느껴지고 몸집이 큰 동물의 포효가 들려왔는데, 마치 사자의 울음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우리 둘은 마음의 눈으로 방 안에 있는 악어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소우가 방 안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투명한 모습의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자신의 몸속으로 들였고, 저는 그의 가슴에서 통증을 느꼈습니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런 것이었죠. 또, 그의 몸은 알코올로 인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그 사람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한 인간이 타인을 위해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는 항상 채널링 상태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었는데, 저는 인간이 영적 에너지를 그렇게 끊임없이 통과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는 모순도 존재했습니다. 그는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내적 딜레마에 빠져 있었어요. 저는 거기서 아소우라는 한 사람의 순전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뒤 아소우를 직접 만나 내가 어떤 걸 했으며 어떤 걸 보았는지 말해주자 그는 사자와 악어가 실제로 자신의 수호 동물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 두 동물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는 가슴에서 정말로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길 두려워했고, 그래서 담배를 적당히 피워야 한다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소우는 내가 솔직히 말해준 것을 고맙게 여겼습니다.
- ... 어가는데도 나는 젊은 사람들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어요. 혼자 힘으로 일어나서 오랫동안 걸을 수 있고, 집안일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요리도 해줄 수 있어요. 참 감사한 일이죠. 나는 내 존재의 본질과 사명을 실현할 수 있도록 훈련받아왔고, 원로들이 왜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는지도 깨닫게 되었어요.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하나 맞춰졌죠. 특히 북부 유트족 출신의 한 원로께서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그분이 정령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북쪽 출신이신 또 다른 분도 계셨는데, 그분은 정령과 할아버지, 할머니들, 전통 한증막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선댄스와 비전 퀘스트를 통해 배운 것들도 있고요.
내 눈엔 세상 모든 것이 선하게 보여요. 창조주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들었다는데, 그건 지금도 그래요. 다만 우리 인간이 "저 식물은 나빠, 저 동물은 나빠"라고 생각할 뿐이죠. 신께서 그것을 창조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뱀이나 파리가 존재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고요. 우리는 그들을 없애버리려고만 하죠. 하지만 내가 어느 날 깨달은 건, 대화를 통한다면 그들도 더 이상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정령들은 실재해요. 만약 당신이 정령들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들도 당신을 도울 거예요. 서양 의사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해요. 이 창조된 세계 그리고 정령들을 믿기만 한다면 ...
- 역자 주 : sweat lodge. 북미 원주민이 전통적 정화 의례 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뜨거운 돌 위에 약초 달인 물을 부어 증기를 발생시키는 한증막이다. 이곳에서 땀을 흘리는 것은 기도, 치유, 정화를 위한 영적 의례이며 전통 언어, 노래, 관습, 안전 수칙을 아는 원주민 원로들만이 이 의례를 주관할 수 있다.
- 엘리엇 : 세이지에 얽힌 치유 경험담도 있으신가요?
버사 : 세이지로 뭔가를 많이 하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마도 기억하면 안 되는 거라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딱 할 일만 하라는 거겠죠. 어디 보자, 세이지 이야기가 뭐가 있지... 한 번은 우리가 유타 주로 가던 중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차를 세워보라고 했어요. 그러고서 남편에게 말했어요. "저기 저거 네 개만 따와, 딱 네 개만." 그래서 남편은 시키는 대로 그걸 따왔어요.
엘리엇 : 세이지 말씀하시는 거죠?
버사 : 네, 작은 세이지 네 개를 땄다는 얘기예요. 우리는 그때도 어떤 의례에 참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느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여는 의례였어요.
- 버사 : (세이지나 페퍼민트를) 흐르는 물에 네 번 담그고 자연 세계, 네 방향 그리고 대지 어머니께 요청을 드려요. 식물을 물에 담그기 전에는 물 할머니께 도움을 청하고요. 모든 존재들에게 "이 식물 할머니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청하는 거죠. 세이지도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태가 정말 고와요. 그러고 나서 환자 몸에 그걸 대고 입김을 불어넣기만 하면 돼요.
가끔 세이지를 그렇게 쓰게 되면 환자 몸 안에 있던 것들, 그러니까 고통 같은 것들이 빠져나가요. 당신도 그 안에서 뭐가 빠져나오는지 보면,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면 놀랄걸요. 뭐,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요. 사람들은 이런 걸 주술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만약 그 사람에게 주술이 걸려 있다면 그것도 풀 수 있어요.
자연 세계와 네 방향에는 정말 강력한 힘이 있고, 바로 이것들이 세이지에 힘을 보태줘요. 당신도 영혼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세이지에 힘을 보태는 거고요. 식물 정령을 포함한 모든 영혼들은 함께 일해야 해요. 당신에게 때로 지원이 필요하듯이, 세이지도 자기가 나고 자란 대지 어머니의 힘을 받아야 해요.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 열심히 이 세계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어쩌면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웠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나는 식물의 힘으로만 치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그러니까 자연 세계 전체의 힘을 빌려 치유하는 사람이에요.
- 공동체는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가능케 하는 걸까? 바로 의례를 통해서다. 의례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도 존재할 수 없다.
진정한 의례를 허울뿐인 예식과 혼동하면 안 된다. 허울뿐인 예식은 모두가 익숙함에 빠져 하품만 하고,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의례는 생생히 살아 있는 영적 변형을 일으키고, 이러한 변형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성인 입문 캠프에 들어가는 청소년은 공동체의 품에 마땅히 안겨 있어야 할 아이로서 그곳에 들어가지만, 떠날 때는 '공동체의 품' 그 자체인 젊은이가 되어 그곳을 떠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변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의례다.
- 내가 식물 정령 치유를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은, 알맞은 때가 되면 신성께서 오랜 세월 잊혀져 있던 선조들의 관습을 되살리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성스러운 불 공동체는 성인식, 참된 장례 의식, 남성들만의 리트릿과 여성들만의 리트릿을 되살려냈고 기도와 출산전통에 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지역 고유의 전통들이 발굴되어 부활하면서 참된 공동체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들이 다시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폭력과 파괴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을지라도 내가 풍요롭고 기쁨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자신하며 평안을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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