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앤 라이스 / 이미선
출판 : 포이에마
출간 : 2016.03.31
앤 라이스의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앤 라이스는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원작 소설의 저자이기도 하다. 사실 그 책은 '뱀파이어 연대기' 시리즈로, 더 긴 흐름의 이야기 중 첫 번째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는데, 내게는 오히려 꿈결처럼 느껴지니 이상한 일이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내가 정말 경험했던 것인지, 꿈에서 본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 상상 속의 기억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앤 라이스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자면, 그건 어느 할인행사장의 가판대에서였다. 집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런 행사를 벌일 만한 장소가 없는데도- 내 기억에는 별다른 그림이 없는 베이지색 표지의 10권짜리 세트였다.
<뱀파이어 연대기>.
그곳에는 앤 라이스 외에도 소소생이나 포송령의 책들도 있었고, 대부분 '페이퍼백' 형태의 거의 디자인이 들어가지 않은 낯선 출판사의 책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해적판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떨이, 특가 같은 단어들이 형광지에 검은 매직으로 써붙여져 있었지만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저학년에게는 가볍지 않은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거기서 책을 샀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서건 구해 읽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그랬던 내가 다른 책을 찾아 도서관 코너를 돌다가 '앤 라이스'를 마주쳤을 때의 반가움이란!
그 앤 라이스가 맞나, 약력을 확인하고서야 반가움 속에 온전히 잠길 수 있었다. 이런 작품도 썼었구나!라는 놀라움은 한참 뒤에야 찾아들었다.
<영 메시아>는 예전에 출간되었던 <어린 예수>의 개정판이다. 예수의 유년기를, 아직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 -이자 아이- 예수의 시선에서 고증과 이입을 적절히 섞어 써내려 간다. '신의 아들'이자 '전 인류의 대속자'로서의 예수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앤 라이스의 예수는 내가 겪어온 그 나이대의 아이와 아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는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지만, 아직은 -그리고 여전히- 육신을 입은 인간이기도 했다.
인간이자 신.
그 미묘한 지점.
앤 라이스는 아주 적절하게 그것들이 공존하는 좁은 포인트를 집어낸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이 뱀파이어나 악마를 다룬다고 해서 미리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다. 어느 한쪽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그 반대쪽 역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에- 그녀의 작품들은 각각의 세계에서 온전하고 훌륭하다.
울림 있게 읽었다.


- [작품 속 예수의 가족과 친척]
마리아 : 예수의 어머니
요셉 : 마리아의 남편
야고보 : 요셉의 아들
알패오 : 요셉의 형제
살로메 : 알패오의 아내
실라, 레위 : 알패오의 아들
시몬 : 요셉의 형제
에스더 : 시몬의 아내
유스도, 에스더 : 시몬의 아이들
글레오파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오빠
마리아 : 글페오파의 아내
살로메 : 글레오파의 딸
요세, 유다, 시므온 : 글레오파의 아들
엘리사벳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요한 : 엘리사벳의 아들
세베대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마리아 : 알렉산드라 세베대의 아내
CHRIST THE LORD
- 나는 일곱 살이었다. 일곱 살에 뭘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다른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목수들이 사는 거리에서 살았다. 세상에 태어난 뒤로 나는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 늦은 오후였다. 우리는 편을 갈라 놀고 있었다. 상대편 아이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더니 나를 쓰러뜨렸다. 나보다 몸집이 더 크고 우락부락한 아이였다. "가다가 팍 쓰러져라!" 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 애가 모랫바닥에 핏기 없이 푹 쓰러졌다. 아이들이 전부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햇살이 뜨거웠다. 쓰러진 아이를 바라보자 숨이 찼다. 그 애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한순간에 아이들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온 거리가 조용해졌다. 목수들의 망치소리만 들려왔다. 이렇게 조용한 적은 없었다.
- 누군가가 나를 들어 올려서 집 밖으로 안고 나왔다. 길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도 숨이 차고 온몸이 아팠다. 거리 전체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보다 비명소리가 더 커졌다. 누군가 율법 선생님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글레오파 외삼촌이 그리스어로 엘르아살의 아버지 요나단에게 고함을 질렀다. 요나단도 맞받아 고함을 질렀다. 엘르아살은 "다윗의 자식, 다윗의 자식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요셉이 나를 안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려 했지만 사람들이 막아섰다. 글레오파 외삼촌이 엘르아살의 아버지를 밀쳤다. 그러자 그가 외삼촌을 때리려 했다. 그러나 다른 남자들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멀리서 엘르아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그때 율법 선생님이 외쳤다. "저 아이는 죽은 게 아닙니다. 엘르아살, 조용히 해라. 누가 저 애가 죽었다고 말했습니까? 엘르아살, 소리 좀 그만 지르라니까! 누가 이 애를 보고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살려낸 겁니다. 저 애가 그렇게 한 거예요."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 우리가 우리 집 안마당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모두 밀치고 따라 들어왔다. 외삼촌과 엘르아살 쪽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율법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막 잠에서 깬 알패오 삼촌과 시몬 삼촌이 나왔다.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부릅뜬 채 손을 들어서 사람들을 밀쳐냈다.
살로메 숙모와 에스더 숙모 마리아 외숙모도 와 있었다. 사촌들은 잔치라도 벌어진 것처럼 깡충거리며 뛰어다녔다. 실라와 레위, 야고보는 어른들과 함께 가만히 서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어두웠다. 에스더 숙모와 살로메 숙모도 따라 들어왔다. 다시 집에 돌 던지는 소리가 났다. 율법 선생님이 그리스어로 목청을 높였다.
- "저 안 다쳤어요." 나는 상처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다시 사촌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살로메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엘르아살을 다시 살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로메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
- 율법 선생님이 손을 들고 뒤쪽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커튼을 젖히자 방 안이 환해졌다. 요셉과 삼촌들이 들어왔다. 글레오파 외삼촌도 들어왔다. 모두 조금씩 움직여서 자리를 만들었다.
"요셉과 글레오파, 알패오를 쫓아내자는 게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칠 년이나 함께 지냈습니다!" 율법 선생님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맞아요. 칠 년이나 되었는데 왜 갈릴리로 돌아가지 않는 거죠? 저 사람들 전부 말입니다!" 엘르아살의 아버지가 소리쳤다. "칠 년이면 정말 긴 시간입니다. 저 아이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아들은 죽었다 살아났습니다."
"지금 당신 아들이 살아났다고 불평하는 겁니까?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글레오파 외삼촌이 물었다.
"미친놈 같은 소리를 하는군!" 알패오 삼촌이 덧붙였다.
- "그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요셉이 말했다.
"그렇다면 왜 떠나겠다는 겁니까? 예수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필론이 예수의 뛰어난 학습 능력에 얼마나 감탄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야고보도 비범한 아이입니다. 또..."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이스라엘은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글레오파 외삼촌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 고향도 아니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 애들에게 그리스어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성서 말입니다!" 알패오 삼촌이 말했다.
- "선생은 히브리어를 모르지요. 그래서 우리는 애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율법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학교입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성서를 당신은 토라(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율법-옮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필론, 아니 그 위대한 필론이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그렇게 해주었고요. 모두 좋은 일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왔고 그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렇지만 그 역시 그리스어로 말하고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애들이 그리스어로 공부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고 있고요..."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전부 그리스어를 쓰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모든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이 그리스어로 말하고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읽고 있습니다." 율법 선생님이 말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어를 쓰지 않습니다." 알패오 삼촌이 말했다. "갈릴리에서 우리는 히브리어로 성서를 읽었습니다. 율법 선생이라 자처하시는데, 히브리어를 알아듣기나 하는지요?" 글레오파 외삼촌이 말했다.
요셉은 거기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당신이 예수를 데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필론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율법 선생님이 물었다.
"필론이 내 아들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가 말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마음이 불편했다.
- 얼마 전에 율법 선생님이 나를 부자 학자인 필론에게 데려갔다. 필론은 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며 유대교 대회당으로 데려갔다. 다른 이교도 사원들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운 회당이었다. 안식일에 부유한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회당에 다녔다.
그렇게 몇 번 방문한 후부터 필론이 우리에게 자기 집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나무 문과 의자, 새로 만든 서재에 놓을 책장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곧 필론의 친구들도 우리 가족에게 비슷한 일거리를 맡겼다. 그들은 보수를 두둑하게 지급했다.
율법 선생님을 따라 그를 찾아갈 때마다 필론은 나를 손님처럼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오늘도 문을 맞춰 끼우고, 도색을 한 의자들을 찾아서 가져갔을 때 필론이 요셉에게 내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필론이 나를 총애한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적절치 않았다. 남자 어른들이 율법 선생님을 바라보며 불쾌해했다. 그들은 필론과 필론의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 율법 선생님은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내 요셉이 말했다. "내 아들이 나와 함께 나사렛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으면 필론은 놀라겠죠."
- "나사렛이라고 했습니까?" 율법 선생님이 쌀쌀맞게 물었다. "나사렛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베들레헴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당신들이 겪은 끔찍한 이야기, 왜 당신은... 필론은 지금까지 본 아이 중에서 예수가 가장 전도유망한 학자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필론이 당신 아들을 공부시킬 겁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필론과 당신 아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필론이 그렇게 말했고, 필론은 그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필론과 우리 아들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나서서 말하자 다시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어머니가 양손으로 내 어깨를 꼭 껴안았다.
- 대리석 마루가 깔린 그 부잣집에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양피지 두루마리로 가득한 서재에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잉크 냄새가 떠올랐다. 그리스어가 로마 제국의 언어란다. 이것 봐라. 이것이 로마 제국의 지도다. 거기 좀 붙잡아 주겠니? 보아라. 이 모두를 로마가 지배하고 있단다. 저기 로마가 있고 여기 알렉산드리아가 있다. 여기가 예루살렘이다. 봐라, 저기 안디옥과 다메섹, 고린도, 에베소가 있다. 이 모든 큰 도시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어를 쓰고 그리스어로 된 토라를 읽으며 살아가고 있단다. 그러나 로마를 제외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만큼 큰 도시는 없단다.
-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 아, 내가 공부를 잘해서 필론과 율법 선생님, 다른 아이들을 미소 짓게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나는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잘 알고 있었고 요셉과 글레오파 외삼촌, 알패오 삼촌 덕에 히브리어로 된 성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이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셉을 깨워 그에게 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절대 내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고 묻지도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른 것들을, 곧 어른들의 대화 내용을 궁금해해서는 안 되었다. 이 힘 때문이었다. 이 힘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말하고 있던 것들과, 그들 모두를 침묵하게 하고 율법 선생님을 노려보게 한 그 이상한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 그러자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졌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은 다 내 탓이었다. 비록 모두가 떠나는 것을 기뻐한다 해도 나는 슬펐고 나를 비난하고 싶었다.
이 모든 생각은 가슴속에 묻어둬야 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고 말 것이다. 물론 요셉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했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것에 도사리고 있는 은밀한 비밀은 무엇일까?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나 자신을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된다.
추위가 느껴졌다. 고요함이 느껴졌고 내 자신이 매우 작게 여겨졌다. 담요를 끌어당겨 몸을 덮었다. 잠이 몰려왔다. 천사가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처럼 잠이 왔다.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을 때 잠자는 것이 더 좋았다.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들이 믿는 대로 따라 믿는 것이 더 ...
- "아버지, 어떻게 하시겠어요? 만약 아버지가 나사렛에서 주님의 천사를 직접 목격한다면요?" 살로메가 외삼촌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누이가 했던 대로 하는 거지. 천사가 하라는 대로 따를 거야." 외삼촌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은밀하게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화를 내며 외삼촌 쪽을 노려보았다. 외숙모가 그냥 내버려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외숙모가 남편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대개는 어머니 역시 외삼촌이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 그때 뭔가가 내 뇌리를 확 스쳐갔다. 왜 전에는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요셉이 글레오파 외삼촌을 애써 참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외삼촌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요셉은 외삼촌을 위해 육로 대신 이 바다를 택했다. 예루살렘에 문제가 있건 없건 간에 요셉은 그곳에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한 번도 외삼촌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외삼촌의 웃음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남자 말이야.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단다. 내가 그 애 오빠야. 나는 네 엄마의 말을 믿었단다." 뒤에 쌓아놓은 옷 보따리에 외삼촌이 몸을 기댔다. "그 애가 동정녀로 수태를 했어. 선택된 다른 아가씨들과 큰 휘장을 짜며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였지."
외삼촌이 몸을 떨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외삼촌의 눈길이 어머니에게 머물렀다. 어머니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엘리사벳 아주머니 옆에 앉았다.
엘리사벳 아주머니가 외삼촌과 나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아주머니가 외삼촌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외삼촌을 내려다보았다. 가르랑거리며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들썩였다. 외삼촌이 다시 몸을 떨었다.
- 외삼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동원해서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남자 어른들, 여자 어른들과 함께 한방이나 그 옆방에서 잠을 잤고, 무더운 여름에는 그들과 바깥 안마당에서 잠을 잤다. 항상 어른들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도 외삼촌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한테 해준 말을, 내가 네 엄마 말을 믿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렇지만 정말로 믿지는 않죠, 그렇죠?" 내가 속삭였다.
외삼촌이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열기에서 깨어난 것처럼 얼굴에 새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요셉도 그 말을 믿지 않는 거죠, 그렇죠?" 내가 똑같이 속삭이며 물었다. "그래서 요셉이 어머니 옆에 안 눕는 거죠?"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내 말에 외삼촌 못지않게 나 자신도 놀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따끔거렸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되돌리고 싶진 않았다.
- "그 반대야." 외삼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요셉이 마리아의 몸에 절대로 손대지 않는 이유는 정말로 마리아를 믿기 때문이란다. 모르겠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 아이를 만질 수 있겠니?" 외삼촌이 미소를 지은 다음 평소처럼 낮게 웃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웃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외삼촌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너는? 예언을 이루려면 먼저 자라야겠지? 그래, 꼭 그래야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려면 먼저 아이 시절을 거쳐야 하는 법이지. 맞아. 안 그럴 수가 없지."
- 앞에 있는 것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외삼촌의 눈빛이 흐려졌다. 외삼촌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윗 왕도 그랬지. 선택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은 후 양 떼에게 돌아와 목자로 지냈지. 그렇지 않니? 사울이 그를 데리러 사람을 보낼 때까지, 주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러 사람을 보낼 때까지 말이야. 모르겠니?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이 헷갈리는 거야. 네가 여느 아이들처럼 자라야 하니 말이야. 그래서 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거야. 그래, 맞다. 나는 믿어. 항상 믿었지."
외삼촌은 말을 잇지 못하고 기진해서 다시 몸을 뒤로 기댔다. 그러나 눈길은 내게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외삼촌은 웃음 지었고,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었다.
- "이 애는 아직 너무 어려요." 어머니가 내 뒤에 서서 말했다. "그래도 봐야 하오." 요셉이 말했다.
불길이 점점 더 커지며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널름거렸다. 갑자기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너무 맹렬해서 하늘에 떠 있는 별에라도 닿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실이 조금씩 풀려나오듯이 울음이 계속 터져 나왔다. 내 눈에 펄럭이는 불꽃이 보였다.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 올리려 했다. 어머니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요셉이 나를 붙잡고 내 이름을 계속 불러대며 말했다.
"저기는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는 안전해. 내 말 잘 들어!"
그의 가슴에 꼭 안겨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엘리사벳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가만히 붙잡았다. 아주머니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얘야, 내 말 들어라. 울음을 멈추렴. 네가 안전하지 않은데 천사가 네 아버지 요셉에게 찾아와서 널 고향으로 데려오라고 말했을 것 같니?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니? 이제 울음을 멈추고 주님을 믿어라. 어머니 가슴에 안기렴. 자, 울음을 뚝 그쳐라. 어머니에게 안겨라. 너는 주님의 손안에 있단다."
- "우리가 나사렛에 가게 되면 어느 누구도... 약속하마, 얘야. 어느 누구도 그곳에서 너를 찾을 수 없을 거야."
졸렸다. 갑자기 너무나 졸렸다. 그런데 외삼촌의 말이 무슨 뜻이지?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누가 나를 찾고 있는데? 나는 잠들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찾는다니, 누가 나를 찾고 있을까? 온갖 이상한 이야기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천사가 찾아왔다는 어머니의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이 모든 불행과 비통함 때문에 예루살렘의 옥상에서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엘리사벳 아주머니는 천사가 요셉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요셉은 천사가 왔었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 나는 달콤한 휴식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것에서 뭔가를 찾아내야 했다. 맞다! 천사들. 전에 천사가 찾아왔고 다시 천사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도 천사가 있다고 했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었던가? 아니다. 더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무척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글레오파 외삼촌이 배를 붙잡고 절룩거리며 다가와 둥글게 앉아 있던 우리 곁으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바로 옆에서 외삼촌을 도와 옷을 당겨 똑바로 입혀주었다. 외삼촌이 말을 계속했다. "다윗 가문 출신인 어머니와 아론 가문 출신인 아버지를 둔 요한을 에세네파(바리새파, 사두개파와 더불어 유대교의 3대 교파의 하나. 사해 주변에서 종교공동체를 형성해 살았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동물을 바치는 제사를 반대했다 - 옮긴이)에게 보내다니요? 에세네인한테? 무엇이 좋고 나쁜지, 누가 옳은지, 주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요?"
"그렇다면 자네는 에세네인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엘리사벳 아주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참을성 있게 이해를 구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가? 그들이 다윗 가문과 아론 가문의 출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이 경건하지 않은가? 그들이 열심히 율법을 지키지 않는가? 내가 말해주지. 그들은 저 애를 황무지에 데려가서도 교육시키고 돌봐줄 걸세. 그리고 저 애 자신이 그것을 원하고 있네.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 사촌 요한이 나를 보았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지 않고 그의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데 왜 요한은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는 것일까? 요한의 얼굴은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고요할 뿐이었다. 그는 어린 소년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은 어른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내 옷이나 우리 식구들 옷보다 훨씬 좋은 무늬 없는 흰색모직 튜닉에 똑같이 촘촘히 짜인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것들을 보았지만 그때는 별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다윗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나 다윗이 선택된 왕을 죽일 수 있었을까? 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외삼촌의 신기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주님이 더는 자신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자 사울은 엔돌의 무당을 찾아갔다. 그는 죽은 예언자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내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해달라고 무당에게 간청했다. 다음날 아침, 큰 전투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더는 주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된 사울은 절박함을 느끼고 죽은 사람과 말을 나눌 수 있는 여자를 수소문했던 것이다. 사울 자신이 예언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하지 말도록 금지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가 주술을 부리자 땅에서 예언자의 영혼이 나와 사울에게 물었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 나를 왜 귀찮게 하느냐?” 그는 사울의 적들이 이스라엘을 물리칠 것이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에 처음으로 나타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물살을 헤치고 외삼촌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팔로 외삼촌의 등을 감쌌다. 물속에 늘어진 옷자락 아래로 외삼촌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외삼촌은 내가 거기 있는지조차 몰랐다.
- 나와 함께 있게 하소서. 주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부디 외삼촌을 저희와 함께 있게 해 주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부탁드립니다. 너무 큰 부탁인가요? 제가 여러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면 제발 이 사람과 잠시만, 주님이 허락하는 동안까지만 같이 있게 해 주소서.
- 기운이 빠졌다. 외삼촌을 붙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쓰러졌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재빨리 일어났다가 다음에는 천천히 일어났다. 강물도, 검은 하늘도, 노랫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내 주변을 온통 다른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 사막이나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더 많아 보였다. 제발, 제발, 나랑 있게 해 주소서. 부탁드리나이다. 그러나 그가 죽어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소서... 두 팔을 내밀고 위로 뻗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사라져 버렸다. 이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내게서 멀어져 위쪽으로 가버렸다. 그들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 어둠. 고요함. 밤늦은 시간이면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다. 눈을 떴다. 무엇인가가 내게서 사라졌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너무나 크고 강력한 뭔가에 이끌려서, 해변에서 바닷물이 쏴하고 빠져나가듯이 내게서 뭔가가 빠져나갔다. 그것이 무엇이건 지금은 사라지고 없 ...
- 나는 다시 울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행복하면서도 슬펐다. 물이 가득한 잔처럼 내 마음이 감정으로 가득 찼다. 완전히 꽉 찼다. 담요 밑에 몸을 오그리고 누워서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가 내 손가락에서 손을 뺐다.
어머니가 내 곁에 누웠다. 나는 비몽사몽 헤매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어느덧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 꼬마 살로메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말자. 절대 말하지 말자. 그렇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내가 한 짓을 분명히 아실 거야. 나는 베들레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꼭 알아내고 말 거야. 모든 것을 알아내고 말 거야.
- 그들이 다시 왔다. 너무나 많은 천사들이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지그시 웃음만 짓고 눈은 뜨지 않았다. 오세요. 그러나 당신들이 와도 나는 벌떡 일어서거나 깨지 않을 거예요. 아니, 와도 돼요. 설사 너무 많아서 도저히 셀 수 없다 해도 괜찮아요. 당신들은 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오니까. 당신들은 도적도, 불도, 창에 찔려 죽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오니까 오세요. 그러나 당신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아시나요? 아니, 당신들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 "반군 지도자들이 이 나라를 통일할 가능성은 전혀 없소. 그럼에도 그들은 왕관을 쓰고 왕을 자처하고 있소.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나타난 조짐들은 더 나쁘오. 군대의 상당 부분이 예루살렘을 향해 남쪽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거요, 그렇지 않소?"
"죽음이 우리에게 닥치면 기도하리니. 우리 영혼이 생명의 무리 속에 다 함께 있기를." 할머니가 말했다.
병사들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의 영혼처럼, 새총을 쏘듯이 내던져진 무리 속에 우리가 들지 않게 해 주소서." 할머니가 말했다.
"좋은 기도로군."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 술을 마실 때까지 기다리시오." 병사가 말하며 우두머리에게 포도주 부대를 건넸다.
우두머리가 그 술을 마셨다.
"아, 좋아요. 정말 좋은 술이오."
"내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나쁜 술을 드리겠습니까?" 할머니가 물었다.
그들이 다시 웃었다. 할머니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 우두머리는 술 부대를 할머니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할머니가 그것을 거절했다.
"가져가십시오. 당신들이 해야 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하긴 힘든 일이오. 전투와 처형은 별개지요." 병사가 말했다.
모두 조용해졌다. 우두머리가 말을 하려는 듯 우리와 할머니를 둘러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리오, 노인. 이 마을은 그냥 두겠소." 그가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서 길 쪽으로 말의 방향을 바꿨다.
우리 모두 고개를 숙여 절했다.
- 할머니가 말을 하자 우두머리가 말을 멈추고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당신들을 지켜주시길.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미소를 지으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호의를 보이시고,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길."
우두머리가 할머니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말이 날뛰며 앞발로 땅을 차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타고 사라졌다.
- 나는 주변의 들판과 나무들을 빨리 보고 싶었다. 길을 따라 위아래로 뛰어다니며 동네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상황이 끝날 때까지 그 모든 것을 미뤄야 했다.
우리는 이제 안전했다. 여자 어른들은 분주하게 일을 했고 남자 어른들은 아이들과 놀았다. 화로의 불빛이 예쁘게 빛났다.
여자 어른들이 말린 무화과와 꿀에 절인 건포도, 달콤한 대추야자, 양념한 올리브와 다른 좋은 음식들을 내왔다. 이집트에서 짐 보따리에 넣어 가져온 것들이었다. 거기에다 진짜 양고기와 렌즈 콩이 가득 든 진한 고기 수프와 함께 갓 구운 빵을 먹는 것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 요셉이 식전 기도를 드렸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 했다.
"오, 우주의 주인이시자, 포도를 만들어 우리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해 주시고 밀을 만들어 우리에게 빵을 먹게 해 주신 주님, 마침내 고향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온갖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마을에 누가 더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사라 할머니는 우리에게 인내심을 지니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일러주었다.
- "그런데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마시는 신들과 여신들에 대해서는 뭘 알고 계세요?" 외삼촌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른 남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관심 있는 사람은 양피지 상자들을 들여다보게. 우리 아버지에게 상자 안에 호메로스나 플라톤을 넣어둘 공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저녁에 책을 전혀 안 읽어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아는 것을 자네들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게."
- 어머니가 나를 재우기 위해 남자 어른들 방으로 왔을 때 나는 왜 남자 어른들이 할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속삭였다. 여자가 남자들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래도 여전히 여자이고 그들은 남자잖니." 어머니가 대답했다.
- 야고보의 말은 매우 분명하고 확고했다. 그가 내 옆에 누워서 몸 위로 팔을 둘러주었다.
빨리 날이 밝기를 바랐다. 날이 밝으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 수리해야 할 곳을 잘 살펴보는 것은 우리 몫이었다. 먼저 진흙과 나뭇가지로 만든 옥상으로 올라가서 막아야 할 구멍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진흙 회칠이 잘되어 있는지, 위층 마루들이 제대로 지탱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회칠이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한 부분에는 흰색 칠을 해야 했다. 열린 문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다른 색과 모양으로 칠해진 색의 경계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오래전에 집 밑에 있는 바위에 파놓은 커다란 목욕의식용 웅덩이였다.
그것은 정결예식을 위한 웅덩이로 이집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웅덩이에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머리를 숙이지 않고도 다시 물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지금은 웅덩이에 필요한 물의 반 정도만 채워져 있었다. 이 웅덩이의 벽도 많은 곳이 벗겨지거나 검어져서 다시 손을 봐야 했다.
- 요셉이 물을 퍼내고 웅덩이 전체에 다시 회칠을 하자고 말했다. 이 웅덩이의 물은 물통에서 관으로 공급되었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린 덕에 물통마다 물이 가득했다.
- 밤이 되자 식구별로 방을 배정받았다. 알패오 삼촌과 숙모가 두 아들과 함께 한쪽 방들을 차지했고 글레오파 외삼촌과 마리아 외숙모가 어린애들과 함께 또 다른 한쪽 방들을 차지했다. 어머니와 요셉, 야고보와 내가 한쪽 방들을 차지했다. 우리 방은 마리아 외숙모네 방들과 맞붙어 있었고 사라 할머니와 유스도 할아버지 방과도 이어져 있었다. 시몬 삼촌과 에스더 숙모, 아기 에스더는 마구간 근처의 가운데 방들을 차지했다.
브루리아와 하녀 리바도 따로 방을 썼다.
- 내 눈길은 내 앞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작은 벌레들이 부서진 흙부스러기 위로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누우면서 벌레들을 몇 마리 눌러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수많은 벌레들이 죽었을지도 몰랐다. 벌레들을 오래 바라보면 볼수록 작은 벌레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들의 세계는 풀밭의 세계였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곳에 누워서 잔디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풀냄새에 기뻐하고, 작은 벌레들의 생명을 빼앗아간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 그것이 유감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런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풀잎 위에 손을 대자 벌레들이 그 밑으로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들의 세계가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퍼덕거리고 있었다.
흙이 내 침대가 되어주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노래였다. 새들이 멀리 하늘을 가로질러 번개처럼 날아가 눈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내 앞쪽에 자라고 있는 작은 꽃들이 보였다. 너무 작아서 아까는 알아보지 못했다. 흰 꽃잎에 노란색 꽃밥이 달린 꽃이었다.
바람이 강해져서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나뭇잎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 한 남자가 언덕 아래쪽나무숲에서 나오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요셉이 고개를 숙이고 비탈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겉옷과 술 장식이 바람에 나부꼈다. 알렉산드리아를 떠났을 때보다 더 말라 보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살이 빠졌을지 모른다.
나는 경의의 표시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풀밭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너무나 기분 좋았고 마치 내가 콧노래를 하는 것처럼 콧노래 소리가 계속 귓전을 울렸기 때문에 다가오는 그를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 그동안 지각능력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나무 밑의 풀밭에 누워서 보낸 이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온전히 혼자서 보낸 최초의 시간이었다.
- 그러나 이 평화가 깨졌다. 깨져야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세상이 한없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시간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마침내 난 일어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 "안다." 그가 슬프게 말했다. "이곳은 이 세상에서 별 것 아닌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알렉산드리아 같은 큰 도시와는 비교가 안 되지. 어쩌면 네 친구 필론과 다른 모든 친구들, 우리가 두고 떠나온 것들이 수백 번 생각났을 거야."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답하려고 했다. 내가 이 마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기가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널 찾아내지 못할 거야. 너는 지금 숨어있는 거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숨어 있다니.
"그렇지만 제가 왜...?"
"안 된다. 지금은 아무 질문도 해서는 안 돼. 때가 올 거야. 그러니 듣기만 해라.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말을 멈추고 내가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나를 바라보았다. "화가에서 들은 것을 절대 얘기해서는 안 된다. 집 밖에서는 절대 어느 누구와도 말하지 말거라. 우리가 어디에 있다 왔는지, 또 왜 그랬는지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마음속에 묻어둬라."
- 그때 요셉이 말했다.
"제 아들입니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그 말이 요셉의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뒤에 있던 남자 어른들이 내게로 바싹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글레오파 외삼촌이 내 등에 손을 올려놓자 알패오 삼촌도 그렇게 했다. 시몬 삼촌 역시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수염을 기른 남자가 손으로 나를 막고 있었지만 얼굴은 상냥했다. 그가 나를 보았다가 곧 다른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이전처럼 명확한 사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가 우리 모두의 뒤에 서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안네우스의 아들 세레비야시여,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 겁니다. 오늘이 안식일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애를 들여보내세요."
- 랍비가 틀림없이 할머니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뒤돌아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흙마루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격자를 통해 들어온 햇빛을, 아니면 우리 쪽을 보고 있는 모든 얼굴들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를 보았건 랍비가 몸을 돌렸다는 것을 알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다른 두 명의 랍비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우리는 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 삼촌들이 의자의 맨 끝에 앉았고 글레오파 외삼촌이 바닥에 앉으면서 내게도 그렇게 하라는 몸짓을 보냈다. 이미 안에 들어가 있던 야고보가 글레오파 외삼촌 옆에 앉았다. 그러자 다른 두 소년이 일어나서 우리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는 안쪽 구석진 곳을 차지했다.
사라 할머니는 살로메 숙모와 마리아 외숙모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여자들이 앉아 있는 의자로 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올 수도 있었다. 아이들을 리바에게 맡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랍비가 기도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다.
"이것은 위대한 솔로몬 왕의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주이시자 자비의 주이신 하나님, 지혜롭게도 주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관리하는 집사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올바른 마음으로 정의를 베풀게 하셨나이다. 주님, 제게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의 왕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의 하인이 될 자리를 제게 달라는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남자 어른들과 소년들이 천천히 그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가 각 구절을 따라 할 수 있도록 그가 말하는 속도를 늦췄다.
-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잊었다. 그러나 랍비가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는 사실은, 랍비가 우리를 막으려 했다는 것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상한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경고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 ...
- 그러다가 외삼촌이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친척들이 갔으니까 나도 간 거야. 너와 내 누이, 매부와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모두 갔으니까."
내 물음에 알맞은 답은 아니었다. 진짜 대답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다른 누구보다 글레오파 외삼촌을 통해 여러 궁금한 것들을 알아내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제는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져서 우리 몸을 적셨다.
작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작은 생각이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이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이 비를 그치게 하고 싶어. 그런 것을 생각하다니 내가 참 바보스러웠다. 일어난 일들을 전부 떠올려보았다. 참새들, 엘르아살. 그러다가 고개를 들었다.
비가 그쳐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멍하니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모두 기뻐하며 다시 길 위로 돌아와 집으로 향했다.
-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고민스러웠다. 정말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나는 요셉의 태도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길이 요셉을 향했다. 나는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그래도 울음을 삼키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요셉이 기도문을 외듯이 말했다.
"다윗 가문의 엘리웃이 왕에게 땅을 하사 받고 이방인들이 살고 있던 갈릴리 지방에 이주하기 위해 나사렛으로 왔습니다. 그는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았습니다.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요셉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예수를 낳았고요. 그리고 다윗 가문의 엘리웃이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삭개를 낳았습니다. 삭개는 사무엘을 낳고 사무엘은 요아힘을 낳았습니다. 요아힘은 맛디아의 딸 안나와 결혼해서 딸 마리아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습니다. 안나와 요아힘의 딸 마리아는 열두 살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 여든네 명의 아가씨 중 한 사람으로 뽑혀서 예루살렘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마리아는 성년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성전을 위해 매년 두 개의 베일을 짰습니다. 성전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봉사한 햇수와 이 혈통이 이 아이가 할례 받은 날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를 바라보는 랍비의 표정이 만족스럽고 부드러워졌다.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내 옆의 요셉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서 당신의 약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다른 일들도 있지요. 당신도 분명히 알 겁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랍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전처럼 부드러웠다. "당신의 약혼녀가 집 밖으로 나와서 마을에 대고 소리쳤던 그 아침을 말입니다..."
"선생님, 이 아이들은 아직 어렵니다. 이런 일은 나중에 때가 되면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요?"
"아버지들이라니요?" 랍비가 물었다.
"율법에 따라 제가 이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디에서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렸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아들은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 "베다니에 있는 친척집에서 결혼했습니다. 아내의 친척이 성전의 사제였습니다. 아내의 사촌인 엘리사벳과 엘리사벳의 남편 사가랴의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그곳에서 아기가 태어났습니까?"
요셉은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러는 것일까?
"아닙니다.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유대 지방의 베들레헴입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 "날 봐라. 요셉의 아들 예수야." 랍비가 말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랍비가 히브리어로 물었다.
"왜 페니키아인들이 삼손의 머리를 잘랐느냐?"
"선생님께 용서를 빕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페니키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히브리어로 대답했다. "블레셋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삼손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그의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 랍비가 아람어로 물었다.
"마차에 태워진 엘리사는 어디에 있느냐?"
"선생님께 용서를 빕니다." 나도 아람어로 대답했다. "마차에 태워진 것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 그가 그리스어로 물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더냐?"
나는 잠깐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곧 그리스어로 대답했다.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에덴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랍비가 뒤로 기대앉으면서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른 랍비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세 랍비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에덴동산에서 적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기억해 낸 것일까? 내가 그리스어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에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모든 세상이 다시 에덴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까지 에덴은 비어 있습니다."
- 랍비가 아람어로 물었다.
"왜 주님께서 다윗 왕과 맺은 약속을 깨셨느냐?"
"주님께서는 약속을 깨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것은 항상 알고 있던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약속을 깨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좌는..."
늙은 랍비는 아무 말이 없었고 다른 두 랍비도 마찬가지였다. 세 랍비는 서로 눈길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 왕좌에 왜 다윗 가문 출신의 왕이 하나도 없느냐?" 랍비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왕은 어디에 있느냐?"
- "그는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랍비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더 상냥해졌다.
-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목수가 그것을 지을까?" 랍비가 물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양쪽 랍비들이 먼저 웃자 바닥에 앉아 있던 소년들이 따라 웃었다. 그러나 늙은 랍비는 웃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 그의 얼굴에 슬픈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 슬픔을 지운 그가 부드럽고 큰 눈으로 나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습니다. 목수가 왕의 집을 지을 것입니다. 항상 목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따금 목수가 되십니다."
늙은 랍비가 놀라서 몸을 뒤로 젖혔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이 대답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 "주님께서 노아에게 방주가 몇 큐빗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어떤 종류의 목재를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목재에 송진을 칠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방주가 몇 층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일 큐빗까지 딱 맞는 창문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디에 문을 내야 하는지도 노아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늙은 랍비의 얼굴에 미소가 천천히 번졌다. 나는 다른 사람은 바라보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우리말로 계속 말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새로운 성전의 상상도를 가져다주시지 않았습니까? 회랑과 기둥, 성문과 제단의 크기를 제시하시고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져야 하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선생님, 느부갓네살이 목을 베는 대신에 바빌론으로 데려간 것은 목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집을 짓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 고레스가 우리에게 돌아가도 된다고 포고했을 때 목수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성전을 지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랍비가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 그러나 어른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늙은 랍비가 내게 많은 질문을 한 까닭을 절대 알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다. 어머니는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음식 시중을 드는 어머니의 모습은 소녀 같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자꾸만 더 먹으라고 권했다.
하루 종일 대리석 까는 일을 한 것처럼 피곤했다. 나도 모르게 여자어른들 방으로 가서 어머니의 돗자리 위에 누워 잠을 잤다.
- 방에 돌아와 앉자 글레오파 외삼촌이 내게 사발을 건넸다. 그 안에 꿀로 잰 맛있는 것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먹어봐라. 무엇인지 모르겠니?"
그러자 옆에 있던 요셉이 살짝 웃었다. 미풍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삼촌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 글레오파 외삼촌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낮게 말했다. "옳지 않은 것을 거절하고 올바른 것을 선택할 줄 알 때까지 이 아이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겁니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아니?"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버터와 꿀을 충분히 먹은 다음 야고보에게 사발을 건넸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것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발을 요셉에게 주었더니 요셉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넸다.
"이사야가 한 말로 알고 있어요." 내가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것 말고는 기억이 안 나요."
그 말에 또 모두가 웃음 지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정말로 기억이 안 났다. 아니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 글레오파 외삼촌에게만 따로 질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러나 마땅한 때가 오지 않았다. 벌써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을 너무 많이 잤다. 방과 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오전의 공부 시간이 좋아졌다. 세 랍비들은 '원로들'로 알려졌고 그중 가장 나이 많은 랍비가 큰 선생님이었다. 그는 사제였지만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예루살렘에 갈 수가 없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 그의 이름은 비느하스의 아들 베레가야였다. 초저녁이면 그는 항상 집에 있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나고 싶으면 언덕 꼭대기에 있는 그의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는 부자 아내 덕에 넓은 집에 살고 있었다.
- 아침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서 구절을 따라 읽고 외웠다. 이곳에서는 공부할 때 항상 히브리어를 썼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대개 우리말을 썼다. 우리가 조르면 베레가야 랍비가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저녁이면 그는 안뜰로 난 문들을 열어둔 채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서재가 수수하다고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물론 필론의 큰 서재에 비하면 수수했다. 그러나 그곳은 내게 따뜻하고 매력적인 곳이었다. 어떤 질문을 하러 가더라도 항상 그곳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 일하느라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곳으로 올라가서 적어도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그의 발치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상냥한 하인들이 우리에게 시원한 물을 대접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곳에서 몇 시간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세레비야 랍비는 나서서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 역시 사제이지만 더는 성전에 갈 수 없었다. 그는 성전에서 임무를 마치고 나오다가 노상강도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강도들에게 두들겨 맞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다리 아랫부분이 으스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의사가 이 부분을 잘라냈다.
긴 겉옷으로 잘 가렸기 때문에 그가 의족을 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진 않았다. 그는 민첩하고 건강한 태도 때문에 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지가 성하지 않은 사제가 주님 앞에 나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을 학교에서 랍비가 되었다. 사람들이 가르침을 듣고자 그를 찾아왔다. 그는 성전에 갈 수 없게 된 후 바리새파가 되었다. 그의 형제들 역시 사제였는데, 그리 멀지 않은 가버나움에 살았다.
- 회당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사람은 야시무스 랍비였다. 그는 훌륭한 바리새파였다. 야시무스 랍비는 모든 관습을 매우 엄격하게 지켰고 그것을 우리들에게도 가르치려고 애썼다. 세 랍비 모두 겉옷에 파란색 장식술을 달고 있었다.
- 사라 할머니에게도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라 할머니는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지혜롭고 기민해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일개 여자로 여기지 않았다.
- 사람들이 찾아와서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도 많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 목수는 일을 맡긴 사람의 집을 말할 땐 늘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집은 사적인 공간이었다. 항상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필론의 집에는 어린 학생들이 득실거렸고 알렉산드리아의 랍비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렸다. 그래서 대리석 바닥의 문양이라든가 천장까지 걸려 있는 두루마리 선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미리암과 늙은 랍비, 랍비의 장인의 질문에 답하면서 많은 것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렉산드리아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또한 율리우스 가이사가 바보같이 불태운 다음 다시 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율법과 예언서들, 온갖 성스러운 책들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을 축하하는 유대인 축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곳 나사렛에서는 아무도 그리스어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특히 세포리스 같은 곳에서는 왕의 병사들이 모두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대부분의 장인들이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고 이 랍비들도 그리스어로 말하고 읽을 줄 알았다. 그들은 그리스어로 쓰인 성서를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어 성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공부할 때는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우리말인 아람어를 썼다. 회당에서는 성서를 히브리어로 읽은 다음 랍비가 그것을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했다. 설사 성스러운 언어를 모른다 해도 그것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 "어쩌면 우리가 멀리 있다가 돌아와서 병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사람 중에는 아픈 사람이 없는데 우리 집 아이들만 병이 났구나."
그러나 마리아 외숙모도 아팠다. 글레오파 외삼촌이 외숙모를 데려와서 눕혔다. 외삼촌이 외숙모의 이름을 불렀다. 화가 난 듯 이름을 불렀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숙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비몽사몽 상태에서 이런 것을 보았다. 사라 할머니가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할머니가 그늘진 곳에 있어서 뚜렷하게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어깨와 엉덩이, 무릎 할 것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나는 잠을 자며 꿈을 꾸었다.
처음으로 잠이 하나의 장소처럼 보였다.
-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까지 항상 잠과 싸웠다. 나는 잠으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언덕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불길이 타오를 때조차도 나는 불길이 없어지기를, 도적떼가 사라지기를 바랐다. 잠으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어머니의 품속과 우리의 안전한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잠으로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아프다 보니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기분 좋았다.
- 깨어 있으면서도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까지 꾼 꿈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꿈이었다. 나는 지금 나사렛에 있다. 어머니가 거기 있고 마리아 외숙모가 가까이에 누워 있다. 나는 안전했다.
- 그러나 동시에 나는 궁전을 걷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필론의 집보다 훨씬 더 컸다. 방 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푸른 바다가 보였다. 바위가 양쪽에 솟아 있고 해안선이 동그랗게 굽어 있었다. 아래 정원에 횃불이 켜져 있었다. 횃불이 굉장히 많았다. 내 머리 위로 기둥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기둥의 양식을 알고 있었다. 코린트식 아칸서스 무늬가 기둥머리에 새겨져 있었다.
대리석 의자에 날개 달린 존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처럼, 매우 잘생긴 남자처럼 보였다. 다윗의 잘생긴 아들 압살롬이 생각났다. 그러자 너무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의자에 앉은 이 남자의 머리가 더 길어지고 숱이 많아졌다.
- "지금 압살롬처럼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내가 물었다.
"오, 나이에 비해 매우 똑똑하구나, 그렇지?" 그가 말했다. "랍비가 널 사랑하는구나."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음악 같았다. 눈은 바다처럼 푸르고 반짝거렸다. 튜닉은 녹색과 빨간색으로 수가 놓여 있었다. 아주 작은 꽃들로 가득한 넝쿨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것을 좋아할 줄 알았다." 그가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네가 여기서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여기에서요? 이 궁전에서요? 당연히 저는 꿈을 꾸고 있지요." 내가 그를 보며 웃었다. 꿈속에서 내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에 층층이 떠 있는 구름을 보았다. 멀리 바다 끝에서 배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물속으로 들락거리는 노와 키를 잡고 앉아있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보름달 빛에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 "그래, 황제에게 적합한 궁전이지. 이런 궁전에 사는 게 어떻겠니?" 그가 물었다.
"제가 왜요?"
"흙먼지 날리고 지저분한 나사렛보다 훨씬 좋잖니." 그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우아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두 곳에서 다 살아보았단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가 나를 경멸하듯이 바라보았다.
다시 배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달빛 아래로 너무나 부드럽게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배 타기에는 위험한 시간인 이 밤에 그들은 배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아름다웠다.
- "넌 누구지?" 그가 물었다. 그가 조바심을 냈다. 결국 이 꿈은 곧 끝나고 말았다. 모든 꿈은 끝이 난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화가 났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숨길 수가 없었다. 그를 보자 어린 형제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 "그리고 너도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그가 말했다.
"오, 이제 알겠어요." 나는 만족스러워져 대답했다. "전에는 몰랐어요. 당신이 나와 이렇게 있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같군요, 그렇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거예요!" 나는 웃고 또 웃었다. "일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에요."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계속 미소를 짓지 못했다.
미소가 사라지자 그가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지 못했다. 다 큰 어른이 이렇게 끊어질 듯 우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내가 사랑으로부터 나와서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지? 내 존재는 사랑에서 생겨난 것이야."
나는 그 때문에 슬펐다. 그러나 조심해야 했다. 그가 얼굴에 손을 대고 손가락 사이로 나를 바라보았다. 울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내 마음이 끔찍하게 비참해졌다. 그를 바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너는 누구냐!" 그가 다시 물었다. 화가 난 그가 우는 것을 멈추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빨리 말해!"
나는 뒤로 몸을 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손 치워요" 내가 말했다. 나는 화가 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다시는 내 몸에 손을 대지 마요."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니?" 그가 물었다. 화가 난 그의 얼굴이 빨개졌고 눈은 더 커졌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보여주겠다. 어린 천사!"
"번거롭게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 우리 앞에 푸른 바다 대신 갑자기 성전의 큰 안마당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 갔을 때처럼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훨씬 더 끔찍했다.
회랑 꼭대기에서 사수들이 로마 병사들에게 활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돌을 던졌다. 기둥 바로 아래에서 불길이 치솟을 때까지 온갖 형태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불길들.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불길이 솟아올라서 순식간에 유대인들을 덮쳤다. 회랑이 불길로 가득 찼고 건물 외부에 붙어 있던 금장식들이 불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불속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주님께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안마당 전체가 불길에 뒤덮였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고함을 지르며 갑옷과 투구를 던지고 불길 속으로 달려갔다. 어떤 로마인들은 도망갈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어떤 로마인들은 보석이 박힌 무기들을 들고 나왔다. 성전의 보물, 성스러운 보물, 주님의 보물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 계신 주님,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가 외쳤다. 너무 두려워서 온몸이 떨리고 흔들렸다. 두려움이 전부 다시 몰려왔다. 이전에 느꼈던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었다. 불길들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채웠다. 불길이 점점 더 커지다가 마침내 화염이 하늘의 별에라도 닿을 정도로 치솟았다.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나이다.
-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니?" 이 이상한 존재가 내게 물었다. 좋은 옷을 입은 잘생긴 그가 내 곁에 바싹 서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푸른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귓전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널 보고 있다, 꼬마 천사.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계속하렴. 애처럼 걷고 애처럼 먹고 애처럼 놀고 애처럼 일하렴. 그러나 내가 보고 있다. 그리고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은 알고 있다. 네 어머니는 매춘부이고 네 아버지는 거짓말쟁이다. 네 집의 바닥들은 온통 오물투성이야. 네 존재의 근거는 없어졌다. 나는 그걸 알아. 매일, 매시간 없어지고 있다. 너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지. 네 작은 기적들이 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네게 알려주마. 혼돈이 지배한다. 그리고 내가 혼돈의 왕이다."
-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이 술술 나와서 나도 지금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말들이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만큼 확실하게 내 마음에서 이 지식을 끌어내줄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해답이, 모든 시간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안 된다.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안돼. 이 방법도, 저 방법도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비참함에 내 마음이 아팠다. 그의 어두워지는 얼굴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의 분노가 나를 아프게 했다.
- 나는 소리 없이 일어났다. 나는 어두운 방에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목이 말랐다.
등불이 유일한 빛이었다. 사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방. 이곳은 어딜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옆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였다.
- 나는 눈을 감았다. 꿈을 꿨다. 나사렛 근처의 밀밭이 보였다.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지나가며 보았던, 꽃이 만발한 아몬드나무들이 보였다. 언덕 위로 무너지던 마을의 하얀 집들이 보였다. 얇게 말린 나뭇잎들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물 꿈을 꿨다. 그 존재가 다시 오고 싶어 했지만 나는 오지 못하게 했다. 안 돼. 궁전과 배의 세계는 싫어. 안 돼. "멈춰요." 내가 말했다. "못 오게 할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지금 꿈을 꾸는 거야. 내가 널 안고 있단다. 넌 안전해." 그래 안전하다.
- 물을 뿌린 다음 우리는 목욕의식용 웅덩이에서 목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 뿌린 날 해가 지자 사람들과 집이 모두 정결해졌다.
이것은 우리 지붕 아래에서 마리아 외숙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긴 불순함으로부터 깨끗해지기 위한 의식이었다. 우리 모두, 특히 글레오파 외삼촌은 이 의식을 엄숙하게 치렀다. 외삼촌이 이 정결예식과 절차에 대해 알려주는 민수기 구절을 낭송했다.
- 나는 이 의식에 매료되었다. 언젠가는 예루살렘에서 붉은 새끼 암소를 죽이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볼 것이다.
물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언젠가 평화가 찾아와서 우리가 그곳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붉은 새끼 암소를 죽여 가죽과 살, 피와 똥까지 통째로 태워서 정화의 재를 만드는 광경은 장관일 것 같았다. 성전에는 볼 게 너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성전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렇게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본 적이 없었다. 갓 태어난 알패오 삼촌의 아들이 그곳에서 죽었을 때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진 않았다. 그러나 이곳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에 따라 이렇게 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의식을 즐거워했다.
- 그날 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며 좋은 포도주를 마셨다. 요셉이 등잔불 옆에 앉아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두루마리 중에서 그리스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토빗 이야기였다.
모두 이 이야기를 들으러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여자 어른들도 합류했다. 우리 모두 천사가 토빗의 아들 토비야를 찾아온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변장을 한' 이 천사는 토비야에게 그의 발을 삼키려고 한 물고기의 내장을 활용한 치료법들을 알려주고 라구엘의 딸 사라와 어떻게 결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또한 천사는 사라에게 일곱 명의 남편이 있었는데 모두 결혼 첫날밤에 악마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토비야의 질문에 답해준다.
- 다시 결혼식 잔치가 더 오랫동안 이어졌고 모두가 행복해했다. 그런 다음에는 토빗의 길고 아름다운 기도문이 이어졌다. 우리 모두 그것을 그리스어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 같이 그리스어로 낭송했다.
- 기도문이 다 끝날 무렵 우리를 이끌던 요셉이 이집트에서와는 달리 이 단어들을 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는 듯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아, 그분께서는 네 자녀들의 행실 때문에 벌을 내리시지만 다시 의인들의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예루살렘아, 주님을 올바로 찬양하여라. 영원하신 임금님을 찬미하여라. 네 성소가 다시 기쁨 속에 지어지리라."
- 내 마음속에서 불빛이 보였다. 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잠에 빠져들었다. 돗자리 위에 누워서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지만 잠결에 기도문이 들렸다. "모든 세대 사람들이 영원히 너를 선택된 자라 부르리라."
그렇게 우리 집에서 역병이 물러났다. 죽음도, 부정함도, 눈물도 떠났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날개 달린 이상한 존재의 꿈 때문에 괴로웠다.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더욱더 괴로웠다. 그러나 피로 범벅된 성전의 모습을 마음속에서 없애버린 것처럼 나는 그 꿈도 곧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행복했다. 불행이 무엇인지, 두려움이 무엇인지, 병과 슬픔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불행과 두려움, 병과 슬픔이 모두 사라졌다.
- 두려움이 너무 커져서 배가 아팠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윗의 왕좌를 물려받을 또 다른 왕을 가질 수는 없나요?"
외삼촌이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 집을 짓고 회칠을 하고,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내 식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야. 그리고 그게 모든 로마인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 거야. 그들은 자기네 신을 숭배하고 로마 여자들은 정숙해. 우리에게 우리 방식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는 거란다. 여기 사람들은 모든 이교도가 법도 없는 악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자식들을 자기네 이교도 신에게 불에 태워 바치고 매일 오후마다 집에서 혐오스러운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하고 있어."
- 우리 여자들은 훨씬 더 빠르게 베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다. 어머니는 살로메의 도움으로 꼬마 시므온과 유다를 돌보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얻은 시간에 베를 짰다.
어머니는 그 일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선택된 여든네 명의 아가씨들과 예루살렘에 살면서 성전의 휘장을 짰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빠르게 베를 짤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어머니가 짠 베는 시장에서 최상품에 속했다. 어머니는 염색에도 능해서 베를 자주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 성전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건은 순결한 사람이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에 알맞은 여든네 명의 아가씨들이 선택되었다고 들었다. 특히 열두 살 이하의 아가씨들만이 순결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는데, 그것도 전통 있는 집안의 아가씨들이 선택되었으며 어머니의 가문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시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우 크고 정교한 베일을 일 년에 두 개씩 만들었다고만 이야기했다.
그것은 주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장소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는 베일이었다.
- 어떤 여자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로지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베일 만드는 일을 무척 좋아했고 당신 손으로 만든 베일이 지성소에 들어갔다.
- 우리가 나사렛에 도착했을 때는 우기가 지난 후였다. 그래서 목욕의 식용 웅덩이가 비어 있었다. 우리는 웅덩이에 회칠을 다시 하고 오랫동안 고여 있던 통 속의 물로 웅덩이를 채웠다. 분명히 그것은 빗물이었다. 아니었나? 이렇게 웅덩이를 물로 채웠을 때 과연 그것이 '생명이 있는 물'이었을까?
- "그게 생명이 있는 물이 아니었나요?" 내가 물었다.
"만약 그게 생명이 있는 물이 아니라면 목욕의식 후에도 우리가 정결해지지 않은 거잖아요." 야고보가 말했다.
"가끔 시냇물에 목욕하잖아, 그렇지 않니?" 글레오파 외삼촌이 물었다. "그리고 목욕의식용 웅덩이로 말하자면 맨 밑바닥에 작은 구멍이 있어서 항상 물이 흐르게 되어 있잖아. 그리고 비로 물통을 채운 거니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물이야. 생명이 있는 물이 맞아."
"그렇지만 야시무스 랍비가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셨어요. 왜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죠?" 야고보가 말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해. 그분은 바리새파이고 바리새파들은 꼼꼼하단다. 네가 이해해야 해. 그들은 생활의 모든 부분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 율법을 위반하는 것에서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한단다." 요셉이 말했다.
- "자, 들어봐라. 산등성이에 두 개의 길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절벽 가장자리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길이 당연히 더 안전하다. 그것이 바리새파의 길이지. 절벽 가장자리에서 더 멀어지니 절벽에서 죄로 떨어지는 것에서 더 멀어질 수 있는 것이지. 야시무스 랍비는 그렇게 자기네 관습을 믿고 있는 거야." 요셉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율법은 아니에요. 바리새파들은 이 모든 것을 율법이라고 말하죠" 알패오 삼촌이 말했다.
"세레비야 랍비는 그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야고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모세가 글로 적혀 있지 않은 율법을 받았고 이것이 현자들을 통해 전해졌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율법에 적혀 있지 않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율법이래요."
요셉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지금 비가 왔지? 그럼 목욕의식용 웅덩이는? 깨끗한 물로 가득 차 있는 거지!"
요셉이 이렇게 말하며 양손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모두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랍비를 비웃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는 항상 그렇게 웃었다.
- 야시무스 랍비는 자기 방식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러나 그는 상냥하고 현명했으며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가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전에는 그것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명확해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성전으로 여행하기에는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싸움이 끝났고 성전이 정화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것이 괜찮다는 봉화 신호를 보내왔다.
그래서 우리는 속죄일 새벽에 일출을 보러 나갔다.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이 일출과 함께 일어나서 의식을 시작했다. 대제사장은 그날 계속해서 목욕의식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반역이나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 이날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사죄해 달라고 청하는 날이었다. 그는 가장 좋은 예복을 차려입었다. 그 자신이 선택된 사제인 야시무스 랍비가 우리에게 이 성스러운 예복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이 예복을 어떻게 입는지를 배웠다.
대제사장은 긴 파란색 튜닉을 입고 허리띠를 맸다. 단에는 술과 작은 금종들이 달려 있었다. 대제사장이 걸으면 이 종들이 울렸다. 이 튜닉 위에 에봇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예복을 입었다. 에봇에는 금으로 된 멋진 장식이 달려 있고 가슴받이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주님 앞에 나가면 주님 앞에 열두 지파가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머리에 금관이 달린 큰 터번을 둘렀다. 그것은 '영화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세상의 그 어떤 사원에서 그 어떤 이교도 사제가 입은 예복보다 더 영화롭고 아름다운 예복이었다. 그러나 이 예복을 입기 전에 대제사장은 희생제를 치르기 위해 먼저 깨끗하고 하얗고 소박한 리넨 옷을 입었다.
- 이날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을 위한 희생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두 마리의 염소에 손을 얹는데, 이 중 한 마리는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고 광야로 풀어주었다. 그것이 아사셀의 염소이다.
- 그러면 아사셀은 무엇인가? 우리 어린 소년들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사셀은 악이고 악마들이었다. 그것은 '저기' 광야에 율법 없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광야'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약속된 땅으로 돌아오기 전에 한때 광야를 방황했다. 그리고 염소는 모든 죄를 가지고 아사셀에게 가서 이스라엘이 주님께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악이 악한 것을 회수하게 됨으로써 우리에게 더는 악이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대제사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께서 친히 임재하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계시는 주님의 힘이 대제사장에게 쏟아지지 않기를, 그 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그의 속죄 기도가 주님께 들리기를, 그가 주님의 임재 안에 있다가 백성들에게 다시 나오기를 기도했다.
- "그런데 밤에 이 사람들이 왔어. 그들은 동방, 페르시아에서 온 박사들이었어. 별자리를 보고 마법을 믿는 사람들이었어. 이런 전조를 보고 페르시아의 왕들에게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었지. 그들이 하인들을 데리고 왔어. 부자인 데다 좋은 옷을 입고 있었지. 그들이 와서 널 보게 해달라고 청했고 네 앞에 무릎을 꿇었어. 선물을 가져왔고 그들이 너를 왕이라 불렀어."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큰 별을 보았대. 그리고 그 별을 따라서 우리가 있는 집에까지 왔다고 했어. 너는 구유 안에 있었지. 그들이 네 앞에 선물을 놓았어."
나는 감히 야고보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 나는 그가 내게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고보 형의 입에서 거짓말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집트에서 그 아이를 죽게 했다가 다시 살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내가 진흙으로 만든 참새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이라. 다윗의 자식, 다윗의 자식, 다윗의 자식.
-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뿐히 내리는 눈을 맞으러 갔을 때 요셉이 조용히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눈을 내려달라고 빌었니? 그래, 이제 눈을 보게 되었구나."
"아니에요. 저는 안 그랬어요. 제가 그랬나요?"
"너는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한다. 알겠니?" 요셉이 속삭였다. 이번엔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가 나를 끌고 나가서 눈송이를 직접 만져보게 했다. 그가 웃으며 행복해하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 그러나 안마당에 깔린 돌 위에 튀어나온 지붕 아래 혼자 서있던 야고보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요셉이 떠나자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늘에서 금덩어리가 떨어지게 해달라고 빌어보지 그러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가버렸다. 우리는 거의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 팔일 동안의 등불 축제가 끝나는 새벽이 지나갔다. 그날 늦게 나는 나무숲을 찾아갔다. 그곳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두꺼운 샌들을 신고 발에 두툼한 양털을 둘렀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양털이 젖었고 매우 추웠다. 나무 아래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서서 생각에 잠겨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여자처럼 들판을 아름답게 만들어준 눈의 경이로움을 바라보았다.
모든 게 너무나 신선하고 깨끗해 보였다.
나는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이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십시오. 모든 것에는 사연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사연은 무엇입니까?
- 여리고에서도 성을 다시 짓고 있었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대추야자들과 큰 발삼나무 숲이 건재해 있었다.
발삼나무는 세계에서 오로지 이곳에서만 자라는 나무였다. 발삼 향수는 잘 팔려나갔고 로마인들이 그 향수를 많이 샀다.
- 그가 그리스어로 말을 계속했다.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너무나 의기양양했으며 확신으로 가득했지.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말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였어. 아무도 그러지 않았지." 그가 조용해졌다.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 같았다.
-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내게 감춰온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맞다. 이제야 그들이 그것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까닭을 알았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도 전부 알아내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찾아온 천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했다.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왜,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살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는지, 비를 멈추고 눈을 내리게 하는 힘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야 했다. 내게 그런 힘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꼭 알아내고 싶었다.
순간 글레오파 외삼촌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그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외삼촌은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답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질문들을 짜 맞추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 "
어느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단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 아직 날이 밝지 않은 때였지. 일어나서 방에 서 있는데, 어머니가 날 필요로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어머니에게 갔더니 잘 주무시고 계시더구나.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지. 방 안은 완전히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순식간에 조용히 일어난 일이었지. 빛이 사방에 있었고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방 안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어. 눈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매우 밝았단다. 네가 해를 보았는데 그 해가 눈을 아프게 하지는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렴. 그 빛이 그랬지.
나는 두렵지 않았다. 그곳에 서서 빛 속에 있는 한 형체를 보았지.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사람보다 훨씬 컸고,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단다. 나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
- "그 형체가 내게 말을 걸었어. 내가 주님의 은총을 입었다고 말하더구나. 내가 여자들 중에서 축복을 받았으며 내 자궁에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아이가 장차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지. 그가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했단다. 또한 주님이 그에게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좌를 줄 것이며 그가 야곱의 가문을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 목소리에게 말했지. 나는 한 번도 남자와 지낸 적이 없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성령이 내게 내릴 것이라고 대답했어. 성자가 내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이야."
- 어머니가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이 목소리, 이 존재, 이 천사는 내 답변을 원했단다. 나는 '저는 주의 종입니다. 그렇게 하소서'라고 대답했지. 즉시 내 몸속에서 생명이 느껴졌단다. 오, 나중에 나오게 될 아기의 무게나 움직임이 아니었어. 변화가 일어났지. 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깨달은 거야!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 깨달았지. 나는 거리로 뛰어나갔어.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 나는 소리쳤지. 천사가 나를 찾아왔다고, 천사가 나타나 내게 말했다고 외쳤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나는 나사렛에서 몇 사람들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조롱을 받게 되었단다, 그렇지 않았겠니?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었지만 말이야."
- "가장 힘든 건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 알리는 일이었지.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기다렸어. 그분들은 나를 믿었지만, 그래, 그래도 기다렸어. 그리고 처녀 딸이 몸속에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요셉에게 알렸지. 그리고 그분들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었단다.
그러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났대. 그는 나처럼 길에서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 그러나 그것은 나를 찾아온 천사가 아니었어. 방을 빛으로 가득 채운 천사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천사였고 그 천사는 나를 아내로 맞으라고 말했지. 그는 마을 전체가 수군대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단다. 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야 했을 때 그는 글레오파와 상의했고, 그래서 우리 모두 함께 베다니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 어머니의 눈길이 내게 머물렀다.
어머니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서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너는 남자를 통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너는 가이사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의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착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때의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선택된 왕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때의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너는 하나님에 의해 잉태된 거야!"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양손으로는 여전히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 낮고 더 부드러웠다.
"너는 주 하나님의 아들이다! 바로 그 때문에 네가 사람을 죽였다 되살릴 수도 있는 거야. 바로 그 때문에 요셉이 본 것처럼 네가 눈먼 사람을 고쳐줄 수도 있고 바로 그 때문에 눈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수도 있는 거야. 바로 그 때문에 네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글레오파가 너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거야. 바로 그 때문에 네가 찰흙으로 새들을 만들었다가 그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거야. 네 능력을 안에 잘 간직하도록 해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힘을 쓸 시간을 알려주실 거야. 만약 주님께서 너를 아이로 만드셨다면 그것은 네가 다른 모든 것뿐만 아니라 지혜 안에서 크길 바라셨기 때문일 거야."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나사렛으로 가자꾸나. 성전으로는 가지 말자. 물론 네가 얼마나 성전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다. 알아. 그렇지만 안 된다. 하늘의 주님께서는 널 성전의 선생님이나 성전의 사제, 혹은 서기관이나 부유한 바리새파의 집으로 보내시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너를 야곱의 아들인 목수 요셉과, 나사렛에 사는 다윗 가문의 일족인 그의 약혼녀에게 보내셨다. 그러니 너는 우리와 함께 나사렛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래!" 내가 속삭였다. “내가 왜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말해봐."
"아주 간단한 거야. 어떤 일이 네게 일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네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네가 누구이건 간에."
"나도 알고 싶어."
"바로 이거지. 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 태어나건, 어떻게 태어나건, 무슨 이유로 태어나건 그것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는 거야."
그 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부드러운 풀밭이 있는 언덕으로 갔다.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숲이나 다름없는 울창한 나무들 옆에서 쉬는 것이 좋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몇 개의 별이 어슴푸레한 황혼 사이로 비치고 있었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 우리는 죽기 위해서 태어난다. 내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이유가 그것 말고 무엇이 있을까? 내가 죽지 않는다면 피와 살을 가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그것을 참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면 집에 울면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래, 안 되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돼.
- 언제나 천사들이 밝은 빛과 함께 나를 찾아올까? 얼마나 지나야 천사들이 노래로 하늘을 가득 채워서 내게 보여줄까? 언제나 천사들이 내 꿈에 찾아올까?
-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고요함이 밀려왔다. 땅에서, 별에서, 부드러운 풀밭에서, 근처 나무들에서, 저녁의 가르랑거리는 소리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그 답이 나타났다.
나는 천사를 만나라고 이곳에 보내진 것이 아니었다. 천사들의 꿈을 꾸라고 이곳에 보내진 것이 아니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라고 이곳에 보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살아가라고 이곳에 보내졌다. 숨 쉬고, 땀 흘리고, 목말라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라고 이곳에 보내진 것이다.
- 그리고 내게 일어난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주님의 무한한 마음속에는 모든 일을 통해 내게 뭔가를 가르쳐줄 공간이 충분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통해 아무리 힘들더라도 교훈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부디 이 깨달음, 이 순간을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기를.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도 절대 그것을 잊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슨 일을 겪더라도 그것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물론 나는 커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나사렛을 떠날 것이다. 나는 세상으로 나가서 내게 정해진 일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든 것이 분명했다. 두려움은 사라졌다.
- 세상 전체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왜 내가 혼자라는 생각을 했을까? 세상이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이해하건 상관없이, 항상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저 별들도.
- 내가 말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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