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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다. 정말로 좋다.
처음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는, 곧 개봉할 영화의 포스터 때문이었다.
'김무열', 쓰릴미에서 주목받으며 영화계로 건너간 이 청년을 나는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날렵한 선을 드러내며 내가 좋아하는 짙은 니트를 입고 등장한 포스터를 보았기 때문에.
물론 박해일 역시 좋아하고 멋진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연기 변신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 만큼 강렬하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못했다.
'활'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두 남자가 동시에 캐스팅된 작품.
반드시 볼 작품.
그래서 이번만큼은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원작을 읽고 싶다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나는 읽을 책을 선택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그나마 솔직하고 빈 눈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선택하는데 관련된 기억이나 감정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감흥에 크게 영향을 준다.
내 방에 쌓인 대부분의 책들은 내가 읽고 싶다고 생각해 데려온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번엔- 하고 손을 냉큼 뻗게 되는 책은 매시 매분 매초 다르다. 한 번 쥐면 시간이 걸려도 보통은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내지만, 간혹 지금은 도저히 때가 맞지 않는다 싶어 덮고 미뤄두는 경우도 있다.
본시 산만하고 한 번에 하나를 하는 일이 드문 나는, 책 역시 한 권을 쉼 없이 한 번에 완독하는 일이 드물다.
몰입도와는 또 다른 문제로 읽어나가는 동안 다음을 읽기 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덮고, 생각해보고, 일정 수준 이상 납득이 되면 다시 읽고.
'은교'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은교.
책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가만히 불러보고 말았다.
이야기의 흐름, 남겨진 노트를 통한 회상, 회상자에 따른 어휘와 문장의 변화, 또한 교차되며 다각도에서 드러나는 진실ㅡ,
그리고 은교,
은교.
작가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다면 극히 교묘하고 그렇지 않다면 실로 절묘한 '이입의 흐름'이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자연스레, 나도 모르게 서지우의 입장에 가까이 서 있었음을 고백한다. 강퍅하고 모진 한 시인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일어난 비극이 아닐까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맞춰질수록, 나는 서지우보다는 이적요에게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이 가까워 오고, 끝내 티끌 같이 남아있던 나의 묵직함마저 날려버린 이 소설은,
최근 읽었던 모든 글들을 밀어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사실적이고, 또 냉소적으로 서술된 문단의 관례와 분위기도, 간간이 드러나는 끈적함조차도 '은교'가 풍겨낸 맑고 투명한 여향을 찢지는 못했다. 이 소설에는 보송하게 따스한 봄볕이 있고, 노오란 개나리 같은 밝음이 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그 맑음은 부서지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은교'다.
'이적요'. 그의 계산도, 세상을 향한 냉소도, 버겁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남자의 욕망도, 시와 문(文)에 대한 주관과 사랑도 낯설지 않았다. 이 소설은 그가 남긴 노트를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의 타계 1년 후의 시간의 흐름도 순행이고 그의 일기 속의 시간도 순행이다. 부분 부분 '서지우'의 일기 역시 들어가지만, 그 역시 바로 앞 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다른 시각에 가깝다.
소설의 시간은 그렇게 큰 두 줄기의 강으로 함께 흘러간다. 현재와 과거, 그 하나의 끝은 다른 하나의 시작이며.
그 강들은 동시에 '이적요'와 '서지우'이기도 하다.
그것을 잇는 것이, 내 멋대로 말하자면, 마치 은으로 빛나는 교각같은- 가느다랗고 섬세하며, 빛나는 '은교'.
그렇게 뒤섞여버린 두 강은 결국 서로의 흐름을 잃고 고인 하나의 호가 되어 멈추는 것.
내게 '은교'들은 그런 이미지이다.
'서지우'. 나는 중반까지 그에게 연민을 느꼈고, 동병상련에 가까운 마음으로 몰입했다. 뛰어넘을 수 없음에도, 내 것이 되어주지 않을 것임에도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과 열등감. 그는 '시'를, '글'을 접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치달아갈수록 그가 보여준, 섬뜩할 정도로 두려운 사고방식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부디, '서지우'로 나타난 그것이, 대다수의 남성이 가진 프레임은 아니기를.
하지만 아니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미 그럴 것이라는 결론을 세워놓고 있다. 그것은 젊음이 가진 속성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음.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
문학인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더불어 재능이 없는 자의 비애와 슬픔, 그러면서도 우직하고 순한.
보는 이에 따라 깊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한 쌍꺼풀을 지닌.
그러나 그런 그의 욕망과 경애. 초조함과 절박함. 그러나 여전한 순애.
잠시 엇나가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김무열'이 아닌 누가 '서지우'를 연기할 것인가!!!!
소설 속에 묘사된 외양대로 하자면 키가 조금 크지만, 아....
나는 몸서리치면서도 그의 '서지우'를 원할 것이고, 그러면서도 그에게 빠져들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이적요'를 품을 것이나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적요와 서지우는 단순히 한 여자아이를 놓고 사이가 벌어진 두 남성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으며 깊은 유대를 갖고 있었다. 그걸 뭐라고 이를 수 있을까.
이 셋의 관계에서 가장 사랑에 가까운 건 차라리 그들이 아닌가 한다. 진정으로 소외당했던 건 자신이라고 부르짖는 은교의 울먹임처럼.
은교.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리고 끝까지 속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대상이었고, 또 동시의 가교였다.
욕망과 애정의 대상이었고, 가지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녀의 감정에는 전혀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전개는 두 남자의 시선을 통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녀의 자신의 오롯한 감정은 당연히 드러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벗어나서도, 그녀는 두 남자를 만나고 웃었지만 '서지우'를 대할 때와 '이적요'를 대할 때가 달랐다. 그러나 그건 두 사람 중 누구를 더 좋아했느냐의 차이는 아니다.
그녀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둘 모두를 정말로 좋아했다.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이적요'도, '서지우'도, 강렬하게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원한다면 내어주고 싶을 만큼, 좋아했다.
그녀에게는 없는 '아버지'.
'남성'으로 다가오는 '이적요'와 '서지우'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이적요'의 절제와 자제, 그 자신은 거짓되었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배어나올 수 밖에 없었을 그의 천성적인 고요함과 편안함이 '은교'를 '한은교' 그녀 자신으로 있게 했을 것이다.
원한다고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도,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욕망하는 '이적요'.
젊다는 것으로 자신이 당연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서지우'가 어려보일 정도로.
그녀가 '이적요' 앞에서만큼은 '서지우'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환한 미소를 지은 건 그런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두 사람은 서슴없이 '나의 것'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타인이 누군가의 것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녀에게서 아무런 사랑의 서약을 듣지 못했음에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쏟아지는 욕망.
그것을 다른 말로, '남성적'이라면 또 그리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한 젊은. 아니 어린 여성에 대한 대상화나 구도를 탈피하는 장면.
내게 있어 마지막 찝찝함을 털어준 장면은 '호텔 캘리포니아'다.
이 장면에 있어서는 읽으면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과연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마 삭제되거나 각색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
상대가 불편해지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싯구를 인용하는.
기품까지 느껴지는 '이적요'의 문장들. (저자의 시집에서 인용한 시들은 조금 묘한 기분이 들게 했지만)
대조적으로 간결하고, 다소 투박하기까지한 '서지우'의 문장들.
결국 그들은 '은교'에게 이끌렸지만, 그렇게까지 빠져들게 된 것은.
어쩌면.
그들이 생각했던, '질투'에 가까운 감정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녀를 욕망한다는, 그 사실이 오히려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단상들이 떠오르고, 타자를 치는 동안 스러진다.
보통은 이렇게 어지러울 때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데, 은교는 그러고 싶지 않다.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를 다 남겨놓고 싶다.
이적요의 내면.
서지우의 내면.
그리고 서로가 본 서로와, 서로가 보지 못했던 서로.
그 아슬아슬함을 잇는, 은교.
영화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이 영화의 '키 포인트'는, 김무열도 박해일도 아니다.
'은교'다.
김고은, 그녀가 어떤 '은교'가 되느냐에 따라 영화는 명작에서 걸작, 혹은 B급까지 변화할 것이다.
'은교'.
좋았다.
[발췌]
발췌는 좀 조심스럽다. 혹여나, (뭐 이미 할대로 했지만)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 두렵기도 하고.
내 자신이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일단은, 블링크.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김무열 씨.
..... 당신, 너무 섹시해.
이번 영화에서도 곧 또 찌질해지겠지만....
그게 잘 어울리는 거 보면 약간 천성... 크흠. 그래도. 좋아.
은교 - |
오해하진 말라. 반성문 따위나 쓰자고 이 글을 남기는 건 아니다.
나는 반성하지 않는다. 회한도 없다. 서지우는 죽어도 좋을 무가치한 인간이었다.
그는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작가로 살았고, 끝끝내 내 시를 한 편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를 어떻게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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