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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일루젼 2012. 4. 2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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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정기문
출판 : 푸른역사 200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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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여성사' 라는 단어가 아직은 낯선 시대에 남성인 저자가 '여성'에 주목해 이런 책을 엮게 한 데는 정기문 교수 본인의 가치관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어쩐지 딸 사랑이 더 큰 것 같다. 하하. 

 

그가 선정한 여성들은 잘 알려진 인물도 있고, 다소 낯선 인물도 있다. 

그녀들은 각각의 삶을 살아오며 역사에 힘겹게 (여성으로써 이름을 남기기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고 본다) 이름을 남겨냈고, 정기문 교수는 몇 되지 않는 이들 중에서도 고심 끝에 그녀들을 선정했을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여성으로써 이런 글과 시각은 반갑고 또 고맙다.

 

아직은 주장해야 돌아봐주는 시대다.

남성적인 시각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꼬집어 말해야 그런가? 하는 시대다. 아직은.

남성과 여성의 입장 차이를 보수와 진보로까지 비약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성들에게 편하고 익숙한 질서는 중성적임보다는 남성적임을- 그것을 조금은 생각해보기를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적이라는 것을.

 

반대로, 이전부터 수없는 여성들이 소리높여 외치고 투쟁하여 얻은 것을 누리는 세대로써, 그것을 누리기에 합당하다는 자격 증명을 그 삶으로 보여야 하지 않는가 할 때가 있다.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를, 종속물이 아닌 인격체로 대우받기 위해 배움과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노력해왔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만, 마가렛 대처에 관해서는 큰 관심을 두었던 일이 없어 판단이 좀 모호하지만, 그녀가 훌륭한 여성이었음과는 별도로 그녀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나 자신의 평가가 다소 심하게 엇갈린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녀에 관해서는 내가 좀 더 자료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녀보다는 에바 페론에게 더 이끌린다.

 

으흠. 또 개인적으로 엘리자베스 1세는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기우이길 바라지만, 마가렛 대처나 엘리자베스 1세를 이미지로 잡은 대선 후보를 보는 건 조금 괴로울 것 같다;

그것이 좀 조심스럽다.  

 

 

[발췌]

 

목차

1. 용기 있는 여자 다말, 예수의 조상이 되다

2. 태양을 삼킨 야심가, 클레오파트라

3. 그리스 최고의 지성, 아스파시아

4. 로마법의 구원자, 테오도라

5. 대서양 시대를 연 전략가, 엘리자베스

6. 세계의 절반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선구자, 월스톤크래프트

7. 이스라엘의 건국 영웅, 골다 메이어

8.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9. 아르헨티나 민중의 어머니, 에바 페론

 

 

 

 

#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딸과 아내를 위해서 따뜻한 밥을 준비하고, 매일 밤 아홉시 반이면 딸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삼고 있다.

 

(그 행동 자체도 무척 놀랍지만! 자신의 이념,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 딸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 대한 나의 동경 때문이다.

... 우리 딸들은 어릴 적부터 남녀의 불평등을 배워가고 있다. 동요, 동화, 교과서, 선생님, 언론 매체 등 모든 제도들이 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동원된다.

우리 아이에게 들려줄 제대로 된 '여자 이야기'가 필요했다. 역사적 위치와 업적, 후세에 끼친 영향과 개인적 탁월성 등이 '훌륭한' 여성을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었다. 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정직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 여성들이 살았던 시대를 먼저 조명하고, 그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으며, 그 결과 자신의 시대에 어떤 문제와 빛을 던졌는지 추적해보는 것이다.

 

 

# 가령 사람들은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와 사랑, 그리고 자살 이야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클레오파트라가 파라오가 되었고, 남동생과 권력 투쟁을 벌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만난 것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미녀' 클레오파트라의 로맨틱한 행동은 기억해도 '영웅' 클레오파트라의 진면목은 볼 수 없는 것이다.

 

 

# 이런 '일탈'을 범하지 않은 여성들을 선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세계사 속에서 일탈을 범하지 않고도 비범하게 산 여자들은 별로 없었다. 19세기까지도 제도와 관념, 남자들의 지배에 조금이라도 도전하지 않은 여자들은 기억될 수 없었다.

 

 

# 여자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어서 세상의 선을 이루는 천사라고, 그리고 그 순전함과 희생을 통하여 모든 악에서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구원자'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를 보고 느낀 감상이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합쳐져 그런 생각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이런 생각은 여전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해온 여성상, 특히 20세기 이전의 여성상은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 이래 세상에는 두 가지 계급이 존재해왔다. 남자라는 폭군과 여자라는 노예. ... 한 마디로 여자는 노예보다 훨씬 못한 존재였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남자들이 여자를 사악한 존재로 규정해왔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노예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여 노예가 수도사가 되면 종교적 자유를 허락해주었다. 노예는 지력이 부족한 존재이긴 해도 영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세 이래 서양인들은 여자를 악마의 화신 혹은 대리인이라고 규정했다. ... 그러므로 남자는 사악한 존재인 여자를 능 경계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온갖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지도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세 교회는 남편이 아내를 때릴 수 있도록 하고, 다만 그 몽둥이 크기만 제한했다.

.... 그 뿐인가. 세계 곳곳에서 남편들이 아내들을 팔아먹었다. 이른바 '마누라 팔아먹기' 제도가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신사의 나라' 영국에 있었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영국의 마누라 팔기 관습을 이야기 했더니 한 학생이 "도대체 그런 비상식적 제도가 선사시대도 아니고 불과 100-200년 전에 존재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 제도가 있었다면 문학 작품을 통해서라도 제가 알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누라 팔기 제도는 엄연하게 존재했다.

 문학 작품 속에서 그 실례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은 영국 소설가 토마스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이 최근까지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랄 것이다.

 

 

# 흥미롭게도 전쟁놀이나 운동 경기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소년들은 규칙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그 규칙에 어떤 문제가 있다거나 규칙을 바꾸자는 생각은 잘 갖지 않는다. 이는 과거 사냥을 하면서 명령을 따르는 데 익숙해진 습성의 잔재일 것이다.

 

 

# 메리의 생각을 정교하게 체계화시킨 사람이 영국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다.

 

나는, 아내들이 일반적으로 노예보다 좋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떤 노예도 아내와 같이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문자 그대로 노예이지는 않다.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

 

... 밀은 여자들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선천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자들의 억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윌스턴크래프트의 [인간 권리의 옹호[와 함께 영미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은 사실상 밀과 그의 부인인 해리엇 테일러 밀의 공동 작업물이다. 밀의 또 다른 저작인 [정치경제학 원론]과 [자유론] 또한 밀 자신이 모두 공동 작업물이라고 밝혔음에도 모두 존 스튜어트 밀의 개인 저작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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