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324쪽 | 210*150mm | ISBN(13) : 9788956606125 2012-04-25 |
은교를 통해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알았다. 이전까지 이미 많은 유명작을 썼던 작가라 하나, 나와는 이제야 연이 닿았다.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딱 꼬집어 누가 정했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우나, 어느샌가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걸작이라 말하는 글들이 생긴다. 그런 글들은 설사 내 취향이 아닐지라도 왜 그리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혹은 회자되는지는) 알 듯 싶어진다.
(간혹, 아주 간혹 영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이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랬던 적이 있을 법 한데- 아직 왜 괜찮다는 건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내가 탐탁찮아 했던 건 '만들어진 신' 정도인데, 그것도 왜 다른 이들이 좋다고 하는지는 알 수 있다. 책이면 다 좋아하는 건지, 허용 폭이 넓어진 건지.)
한데, 그렇다면 '걸작'이라는 분류는 고정적인 것인가?
시대에 따라 반짝이고 스러지는 글을 '유행작'이라 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흔들림 없는 글을 '고전' 또는 '명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그렇다면 '고전'은 새로운 '고전'을 수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지금 태어난 신생 '걸작'들은 다음 세기까지 빠르게 변하는 세태의 흐름을 견대내며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다음 세대의 '고전'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지금은 그것이 가능한 시대인가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해서인지 즉각적인 반응과 자극을 즐기게 되어서인지 모르겠으나 현 시대에서 이미 '글'이라는 것은 나라를 막론하고 다소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이런 때에도 새로운 '고전'은 태어날 수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다보면 별이 연상된다. 지금 내게 도달한 저 별빛이 수억광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동안, 이미 그 빛이 출발한 모성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게 와 빛나는 저 반짝임은 아릅답게 실존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시대에서 태어난 글은 그 시대에서부터 긴 반짝임을 가지고 깊은 시간을 흘러 많은 이들에게 그 빛을 나눠주며 달려간다. 내가 저 별빛을 보았다고 다른 이는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내가 오늘 지구에서 저 빛을 보았다고 내일 저 빛이 다른 은하로 흘러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에 이어서.
나는 새로운 별의 탄생을 꿈꾼다.
그것이 새로운 별이 되어 내가 죽어 스러진 어느 때에 찬란히 빛을 낼 것인지 내 생 동안에는 알 수 없는 일이나,
그렇다해도 '어쩌면 이 것은 별이 될지도 몰라'라는 희망으로 반짝이는 글들을 읽고 싶다.
(물론 이미 별이 된 별빛들, 즉 고전들 역시 읽어야하겠지. 그러나 수많은 고전이 있듯이, 수많은 신생아들이 있다. 나는 지나간 것의 깊이 역시 존중하지만 새로 탄생한 것들의 앳됨 역시 좋아한다)
라는 생각을 다소 깊게 하게 만든 것이 이 책이었다.
책의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문학이 이런 것이라면, 나에게 '글'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나에게 '글'은 '문학'만이 아니다. 많은 '비문학' (인문에서 과학, 때로 몇몇 숫자로 이루어진 통계조차) 역시 나에게 기쁨을 주는 '글'이며 때로 '문학' 이상 가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박범신'은 아주 약간 비겁하지만 그것은 그의 변명처럼 작가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사람으로써 당연한 것이며. (나는 그보다 더하다)
은교의 '이적요'는 많은 부분 그를 닮은 캐릭터인 듯 하고, 그의 아내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잠시 든 다른 잡생각들은,
나 역시 그처럼 자연적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 (그러면 돈은 어떻게 벌지)와
나의 본성은 그처럼 살며 그의 처 같은 이를 얻어 내멋대로 살고 싶은 것이나 (훌쩍 떠나고 싶다고 짐을 싸 분가해버리는 초연함이라니. 물론 논산행에서는 아내에게 같이 갈 것을 청했으나 그 전의 행보를 보면... 그러나 그가 너무했다는 생각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였군! 하는 생각이 더 큰 걸 보면 나는 기본적으로는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다)
단 한 사람에게만은 그의 처가 되어 그가 갑갑증을 앓을 때면 아무렇지 않게 이불 보따리를 싸서 내어주며 잘 다녀오라고,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잡생각.
[발췌]
# 흐르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 '흐르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 시간이며, 시간은 언제나 먼 시간에서 와 먼 시간으로 흘러갔고' 그 재빠른 유속에 한 시절의 순결한 나와, 나의 정겨운 '통학기차'도 더불어 먼 곳으로 흘러갔다고 느꼈다. 돌아온 것은 예전의 내가 아니었고, 돌아온 곳도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 나는 비로소 '돌아왔다'고 여긴 것이 나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 작가는 뱀처럼, 들끓는 세상의 밑바닥에 배를 대고 가야 하는 사람이다. 소설은 사회의 거울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스탕달. 한숨이 나온다. 내가 사는 세상이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쓸 문장이 없어진다.
- 안락은 작가의 몫이 아니다.
# 하늘과 호수가 접붙어 있다. 내가 꿈꾸는 것이 저것. 찰나와 영원, 현실과 초월의 두 세계를 내 나머지 삶에서 접붙여 사는 것.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역사는 명분의 기록이지만 소설은 명분 너머의 오욕칠정에 대한 통절한 기록이다.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선언하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사랑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나는 젊은 날, 나라는 존재가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나의 청춘은 늘 어둠이 가득 쌓여 있다고만 생각했다. 바보같이. 젊은 내 안에 차 있는 빛을 보았더라면, 그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보다 우렁차고 깊어졌을 것이다. 청춘이었을 때, 내 자신이 그리도 빛나는 별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회한이 가슴을 때렸다. 지금의 어떤 어두운 청춘들도 그러하겠지. 젊은 당신 자신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는 걸 보지 못하겠지. 당신을 보는 내 눈엔 당신의 광채가 환히 보이는데.
# 오늘날 젊은이의 가장 큰 결점은 제 안의 빛을 스스로 보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 어떻게 해도, 나 자신을 변화시켜 보다 높은 지점으로 삶을 계속해서 들어 올릴 수 없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다시 직면한다.
#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 삶은 벼랑과 벼랑 사이다. 그렇지만, 벼랑 위의 길을 걷지 않으면 갈망도 깊지 않을 터이다. 내가 작가로 살아가는 연원이 거기 있다.
- 작가는 그리움이 많은 자들이다.
# 사랑조차 그러하다. 큰 목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얻겠는가. 내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할 때, 그러면서도 사려 깊고 단단한 주체로서, 상대편에게 물처럼 스며들고자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얻는다.
# 2011, 가을과 겨울에 나는 조정리의 물가에서 나의 '한 시기'가 장엄하게 침몰하는 걸 보았으며, 또 다른 '한 시기'가 미완의 어둠으로 내 앞에 놓여 있는 것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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