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잭 케첨] 이웃집 소녀

일루젼 2012. 5. 11. 02:44
728x90
반응형

이웃집 소녀 - 10점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크롭써클

448쪽 | 210*140mm

ISBN(13) : 9788992723428

2009-06-22

 

 

 

 

세상에.

 

 

책을 덮고도 하루 정도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나를 괴롭혔다.

처음부터 실화라는 것을 알고 읽긴 했으나, 그 정도일 거라고는.

가장 소설 같고 영화 같은 건 현실이라 하긴 했으나 이런 쪽에서는 정말.

 

어떤 순간에서도 뱀처럼 매끄러웠던 글줄은 읽는 순간보다는 다 읽어나간 다음 선뜩하게 팔과 어깨를 휘감아왔다.

 

브람 스토커 상을 4회 수상한 작가의, 그리고 2번이나 영화화된 실화 공포 소설.

 

공포라, 공포라기에는 차라리 소돔 120일에 더 가까운 이 소설이 실화라니.

그것도 지나치게 심한 부분은 덜어낸.

 

본편 뒤로 부록처럼 실린 두세편의 단편은 앞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함인지 적당히 감성적이었으나 크게 뛰어나다는 생각도, 혹은 희석된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호흡을 애써 고르고, 인물들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의 말은 옳다.

'데이비드'의 시선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독자는 강제적으로 그와 함께 하게 되고, 그러나 그렇기에 결국 함께 관음한 독자 역시 공범이 되고 만다. 나는 몇 번이나 쉬어가며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차마 그만두지 못하고 읽어나가면서 몇 번이나 괴로웠다.

 

후반의 고뇌하는 데이비드는 편안했다. 차라리, 차라리 인간다웠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반의 데이비드도 이해할 수 있다. '맥'을 한 인간이라기 보다는 객체로 보고 호기심을 느끼는, '루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십대 소년이니까.

 

내가 가장 소름끼쳐했던 것은 초반의 데이비드다.

마치 '크리스 린치'의 '용서할 수 없는'을 읽는 듯한 그 기분은....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 현대의 결혼 문화에서 마찰이 발생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맥'은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아름답고 신비한 소녀다. 그녀의 낯섬은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그녀의 '낯선' 생활양식을 느낄 때면 그녀와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난 지금까지 아주 즐겁고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어. 네가 이상한 거야' 라고 아주 간단히 그녀를 'abnormal'의 범주로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랬기에 데이비드는 '루스'와 아이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맥'의 이야기에 그들이 그럴리 없다, 라고 한 발 물러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퍼는 '우리 엄마에게!'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거겠지.

 

 

아이들.

십대.

라는 것은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들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겠다고 수긍되기도 하는, 양면적인 칼이다.

 

 

세상에.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는데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맥'

그녀는 아름다웠고, 강했고, 용감했다.

다만 그녀가 살아왔던 지극히 상식적이었던 세상 외에, 인간이 아닌 자들이 살고 있는 천외천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겨우 열네살이었기 때문에.

더 일찍 달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전'

나는 내내 그녀가 자살할까봐 무서웠다.

자신이 언니를 옭매는 족쇄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까봐.

다행히,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기억에서 결코 벗어나지는 못하겠지.

 

 

'제닝스'

어째서-?!! 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싶지만.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 그는, 상식적인 선에서,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최선은 너무 아프다.

 

 

'데이비드'

그는 아주 평범했던 한 소년이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초반의, 그런 회피적인 사고가 보통 소년의 사고방식인가?

그것이 이 소설과는 별도로 이어지는 나의 두려움이자 고민이다.

남성들 역시 여성 소설가나 화자에게서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낯섬을 느끼는가?

그러나, 정말이지, '그건', 정말 두려운. 두려운 것이다.

 

'이웃집 소녀'와 '용서할 수 없는'을 연달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루스'

그녀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행해져서는 안될 것이었다.

자신이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과 질시, 그리고 이미 제동력을 잃어버린 그녀의 판단력.

그녀의 만행은 인간 이하의, 정말로 괴물같은 짓들이었지만, 그녀의 행동들을 단순히 질투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맥'에게 행한 단죄들은 그녀에게 투사된 젊은 날의 자신에게 내려지는 것이기도 했으며, 어느 정도까지 그녀는 진심으로 그것이 '맥'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것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맨처음은 '너는 이렇게 살지 말아라'였겠지....

 

 

'아이들'

학대 당하는 '에디'와 '데니스'의 잔혹성은 그렇다 치자.

루스의 아이들은... 실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서는 딸과 아들들이나, 저자는 조금이라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인지 아들들로 설정했다.

그것이 소설적으로는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도, 그래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어지기 때문에,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를 바라고, 또 읽지 않기를 바란다.

 

 

 

[발췌]

 

 

# 당신은 자신이 고통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가?

 

 

# 때로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고통의 가장 잔인하면서도 순수한 형태다.

 

 

# 그제서야 나는 다른 아이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들이 맥에게 화를 내는지. 나도 이 모든 것이 정말 맥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우리를 꼬드겨서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하고, 수많은 감언이설로 우리를 들뜨게 해놓고는 결국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 우리를 버려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도 안되는 억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 당황스러웠다. 맥이 지금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었다.

"내 말 들어봐. 나도 오늘 루스가 너에게 심했다는 건 인정해.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아마 컨디션이 안 좋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다른 애들은 안 그랬잖아. 윌리, 우퍼, 도니, 그 애들은 너에게 기분 나쁠 이유가 없어."

.....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루스가 아니었다. 윌리, 우퍼, 도니가 맥 주변에만 가면 얼마나 이상하게 행동하는지는 나도 잘 안다. 그것은 맥이 여자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루스는 우리에게 항상 잘 대해줬다. 마을의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그녀는 늘 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 가끔은 맥주도 마시게 해주었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 "나는 이런 거 필요 없어."

당황스러웠다. 루스가 그림을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잠시 동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그냥 서 있었다. 그림을 손에 든 채 그것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다시 루스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 루스에게 주려고 그린 거예요. 거짓말 아니라고요. 얼마 전에 우리 둘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맥이 아줌마에게도 하나 그려주고 싶은데..."

"데이비드."

내 말을 막은 것은 맥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경고의 의미까지 담긴 단호한 어조였기 때문에 나는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자기를 위해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기를 쓰며 변명을 해대고 있는데, 맥은 도와줄 생각은커녕 오히려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

그녀는 나를 지나쳐 맥에게 걸어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우리 쪽으로 돌려세웠다.

"저 그림 네게 가지고 가. 데이비드에게 주려고 그린 거 다 알아. 그러니까 나한테 어설픈 수작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데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도대체 저 그림을 주고 데이비드에게 뭘 얻어내려고 했던 거니? 저 애가 너에게 뭘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 그건 네 빌어먹을 '예술작품'이 아니거든."

나는 맥의 얼굴에 경련이 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녀가 울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

그녀는 맥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며 물었다.

"자, 맥주 마실 사람?"

루스는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투명한 느낌으로 그린 것 같다, 그렇지?"

그러면서 맥주로 손을 뻗었다.

 

 

# 맥은 얼굴을 찡그렸다.

"난 도둑질 안 해."

이런 까다로운 요조숙녀를 봤나.

약간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도둑질을 한다. 그것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냥 돈만 빌려줘. 그럴 수 있지? 갚을게. 약속할게."
이상학도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 맥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웃음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냥 장난치는 걸 거야."

맥이 갑작스럽게 돌아섰다.

"무슨 장난이 저녁도, 아침도, 점심도 안 주니? 하루 종일."

 

 

# "데이비드."

루스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침착했다.

"예?"

"이건 흔히들 얘기하는 가정사야."

그녀가 말했다.

"단지 가족 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네가 본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 일어난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 가족 간의 문제야. 내 말 이해하겠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맥주를 마시며 맥을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도우려고 노력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나는 맥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도니와 루스는 그녀보다 훨씬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들이었다. 맥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맞으면서 큰다. 때로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맞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 그때, 나는 '적어도 내가 때리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원하기만 했다면 나도 그들의 폭력에 합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도 권력을 가진 자였다.

그때 이래로,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그래,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타락하기 시작한 거지?'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정확히 그 순간, 그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나는 그녀가 이렇게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왜 다들 나를 싫어할까?' 그때, 나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었기에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 놓친 것일까? 혹시, 이 모든 상황이 그녀의 숙명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나만 모르는 그녀의 결점이라도 있는 것일까? 처음으로, 나는 어쩌면 맥이 우리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정당하다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다.

지금 나는 심한 수치심을 느끼며 이 말을 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세상의 본질에 해당하는 어떤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비눗기를 헹궈줘야지, 이렇게 말이다.

그는 싱크대의 물을 빼버리고 깨끗한 물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뜨거운 물만 틀어놓았다. 루스가 욕실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물이 다 받아지자, 에디 혼자서 맥의 얼굴을 싱크대로 밀어 넣었다. 그가 손에 힘을 풀었을 때 물 위로 올라온 맥의 얼굴은 또다시 가재의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다. 곧이어 그녀는 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에디의 손도 빨갛게 변해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참고 있엇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 나는 이것만은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보기 전에 차라리 죽어버렸어야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보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 맥이 입술을 움직이며 미소 지었다.

"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며 수전의 손을 잡았다.

"곧 괜찮아질 것 같아."

작업등의 인공적인 번득임 속에서 새벽이 밝아 왔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새벽이 아니었다.

그 새벽에 맥이 죽었다.

 

 

 

# '실비아 마리 라이큰스 사건' (Sylvia Marie Likens)

'더 걸 넥스트 도어' (The Girl Next Door)

'아메리칸 크라임' (American Crim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