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서형 지음/후마니타스 264쪽 | 223*152mm (A5신) | ISBN(13) : 9788964371480 2012-01-25 (개정판) |
드디어 읽었다.
늦었다면 늦은 감이 있지만, 다소의 변명을 더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 시선의 방향에 대해 갖은 논란이 일 때 쯔음.
아무래도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이전에 출간되었던 책은 재고가 없는 상태였고, 새로이 발간되는 책은 예약판매조차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였다.
해서 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읽었다는 그런 이야기.
글쎄... 발언이 조심스럽다.
이 글은 소설은 아니지만, 사실 기록이라 보기도 다소 어려운 '르포'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데 이 '르포'라는 것은 내 나름대로 설명해보자면 '방향성을 가진 기사'를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방향성'이라?
현재 우리가 자주 접하는 '기사'는 보통 'fact', 즉 약간의 정보와 사실관계로 이루어져있다.
이를테면 '스포츠팀 oo이 오늘 몇 대 몇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라거나 '내달, 기온 이상으로 xx 품귀 현상, 물가 상승할 듯' 이런 것.
하지만 해외. 적어도 프랑스에서 (라고 해봐야 내가 조금이라도 읽어봤던 건 르몽드 뿐이다. 그것도 들춰본 수준) '기사'가 의미하는 것은 '속보'에 가까운 정보 전달이 아니다.
한 사건에 대한 밀착 취재. 그 사건이 가지는 양 방향 중 한 쪽에 더 가까운 시각, (이를테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고,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입장들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비교에 국한시킬 만큼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기서 나오는 그 사건의 의미, 사건의 발생 경위와 사후 미칠 파급력, 그 사건이 해외에 가져올 영향력 등등등.
조악한 예를 들자면, '기온 이상으로 인한 농작물 작황 악화'가 쟁점이 되었다고 하면 예년에 비해 어째서 '이상'이라고 판단하는지와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소견, 그리고 추정되는 원인 같은 제반 지식 역시 충분히 제공하고, xx의 기본 생육 환경까지도 언급한 다음 그제서야 그 작물의 작황이 좋지 못함을 밝히고,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이 (그 작물과 연계된 산업 -옥수수라면 과자부터 화장품까지 다양하겠지-, 주식으로 하는 계층, 그 작물의 대체 작물 작황은 어떤지, 관련 주식은 어떨 것인지) 영향을 받을 것인가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등등의 의미 분석을 싣는 것이다.
(테러로 내용을 바꾸면 훨씬 적절한 예가 되겠으나.... 내키지 않았다)
따라서 대개의 기사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가 아닌 (그런 경우는 말그대로 속보, 호외) 며칠, 심지어는 몇 주가 지난 다음에야 심도 깊은 분석을 통한 하나의 '기사'가 되어 실린다. (즉, 신문은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 월간지의 개념이 더 강하다고 본다)
그런 '기사'는 어느 정도의 방향성 (정파적인 방향성이 될 수도 있겠고, 가치 이념적인 방향성이 될 수도 있겠다) 을 띨 수 밖에 없어지고, 그것이 바로 신문의 색채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여러 신문을 구독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나갈 수 있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다른 생각들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덧붙여 사건이나 사실을 접했을 때 그 이면이나 영향력을 가늠하는 통찰력 역시 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부러워하는 점이다)
이야기가 자꾸 길어지는데, 그런 문화 속에서 태어난 말이 '르포', 혹은 '르포르타주 (Reportage)'다. 즉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 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한 것을 말하며 (네이버 지식사전 참조), 통상 기록문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자의 것이냐 소설가의 것이냐와, 문화적인 배경 차이 등으로,
'르포'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기사와 문학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르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기사만큼 '사실성'을 인정받지는 못하되 '소설'처럼 아예 허구로 치부하지도 못하는, 그러면서 어떤 '의도' (방향성의 변질이다.)를 가지고 쓰여진 글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르포'라는 단어는. (그러나 이것을 달리 무어라 할 것인가!)
읽는 동안 때로는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도록 분노했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주 가끔.
'대중'과 다른 입장에 서게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다소 특수한 집단에 소속될 때가 있기 때문에.
솔직히 어느 정도는 법조계의 반응에도 동조를 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라면. 솔직히, 솔직히 너무했다.
극히 드문 소수만의 일은 아닐 것만 같아 더욱 마음이 아팠고.
이런 경우들을 없애나가기 위해서 넘어야 할 벽과 나아가야 할 길 (그나마 명확히 보이지도 않는다) 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이 암담했다.
그래도.
이런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죄이므로.
적어도 외면하고 모른 척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정말 쓰잘데기 없다고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듣고 읽고 같이 아파하는 것만이라도 '할 수는' 있는 것이므로.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재미 없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책 맨 뒤에 함께 실린 판결문들 역시 본문과 함께 읽어주기를 바란다.
[발췌]
-짧은 서문-
결과적으로, 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채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김 교수의 생각대로만 책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김 교수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을 긴장시킬 만큼 상당한 법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런 김 교수는 재판 과정의 "불법성" 내지 "법대로 하지 않는 판사"의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했다. 게다가 내 법률 지식이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는 '저급하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그것은 사법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김 교수의 방법과 관련해, 좀 더 유연한 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변의 시각이 원고에 포함된 것을 김 교수가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우선 평범한 보통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이고 권위적인 법률의 언어에 의해 압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판사가 몇 조 몇 항의 법조문을 위반했는지를 따져 보고 법에 따라 재판을 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법의 수호자라는 이유로 권위와 존경을 요구하는 이른바 '판검사 양반'들의 실제 모습과 그들이 주관하는 법정의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풍경이었다.
김 교수는 법만 지키면 누구에게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입법부에 개정 청원을 하면 된다고 확신한다. 이 점에서 김 교수는 재판이 법에 따른 것인지를 당당하게 따지지 않고 판결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법 피해자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법의 원칙이 지배하는 그런 세상에 익숙하지가 않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적 원칙이 우선하는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법치는 그 하위 원칙 내지 수단적 가치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 점에서 나는 법조문을 이용하면서도, 때로는 선처도 구하고 필요하면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판사들을 압박함으로써 원하는 판결을 얻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이 법을 다루는 방법도 긍정할 만하다고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김 교수처럼 판사들과 법률 내용을 다투는 방식으로 싸울 수도 없고,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울 뿐이다.
또한 나는 이 책을 통해 김 교수를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김 교수를 권력화된 사법부에 맞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불굴의 싸움을 벌인 '위인'으로 서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고 신화로 만드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부터 김 교수를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누군가가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많고, 타인의 선처나 바라는 비굴한 사람일지리도, 체제로부터 부당하게 핍박받는다면 그를 옹호하는 것이 좀 더 인간적이고, 그럴 때 용기를 내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생각했다. 김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 불편한 성격을 갖고 있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멍청이', '쓰레기', '개소리', '개판'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책을 쓰면서 김 교수로부터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좋은 감정을 갖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호 교수의 싸움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의 허상과 어리석음을 객관화해서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는 그의 독특한 성격 덕분에 사법 권력과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결국 이 책은 어떤 대단한 사람의 존경스러운 행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살면서 주변에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판사와의 한판 승부라고 할 수 있다. 쓰면서 괴롭긴 했지만 내 생각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견과 차이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사법부에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넓은 합의의 범위 안에서 그런 차이와 이견이 공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감사한다.
2009년 6월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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