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아주, 아주, 아주 애석하다.
'내 안의 물고기'나 '기생충 제국'만 해도, 번역이 조금 아쉽다 정도였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문단을 다시 읽고 다시 읽어도 눈에 안 들어와!!!!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번역으로 난리를 쳤던 책이더군....
그래서 감수를 거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던데 (하단 이미지) 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아...
괴로움을 꾹 참고 초판으로 일독했다.
각 도서들의 최초 발간 시기를 비교해보지는 않았으나, 연구라는 것이 그렇듯 얽히고 섥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데, 단 한 권을 읽을 거라면 '붉은 여왕'을 읽으라!!!!
(얼마나 더 나을 지는 모르겠지만 개정판으로!!! 발 번역일지언정 좋다!!)
"붉은 여왕" 이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그 에피소드를 가볍게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앨리스와 붉은 여왕은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달렸으나 주위의 사물들도 똑같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그녀들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앨리스 : 우리 나라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달리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되요.
붉은 여왕 : 이런 느림보 같으니! 여기서는 이렇게 달려도 제자리야.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두 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하지.
즉, 진화는 한 종과 그 기생생물 간의 끝나지 않는 레이스이며 한 종이 달려나가 일시적 우세를 점하더라도 기생종 역시 곧 진화하여 따라잡기 때문에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중반부까지의 골조.
이전에 지인과 잠시 설전을 벌이던 도중 나온 이야기인데, 그는 생물학의 정설은 '환경이 좋으면 유성 생식을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물론 '기생충 제국'에서는 그것을 골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번에는 만족스럽게 설득되었다.
변절자 : 성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무성생식을 하던 종도 변화가 많은 환경으로 변화하면 유성 생식을 선택한다.
뒤엉킨 강둑 : 성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포화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유성 생식을 선택한다.
붉은 여왕 : 기생 생물이 함께 존재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유성 생식을 선택한다.
책에서는 '기생충 제국'에서도 나왔던 커티스 라이블리의 달팽이 실험을 예로 들어 검증하는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녀는 뒤엉킨 강둑 이론의 추종자이다. 또한 '기생충 제국'에서는 (내 기억이 맞다면) 뒤엉킨 강둑은 조금 변질되어 등장했는데, 번식하기 좋은 환경의 경우는 비용이 더 드는 유성생식을 한다라는 골조로 가정되었었다.
변절자의 경우는 라이블리의 민달팽이 실험에서 보기 좋게 참패한다.
처녀생식과 유성생식이 가능한 이 민달팽이는 주 서식지가 호수인데, 그렇다면 환경적 변화가 많은 개울 쪽에서 유성생식이 일어나야 하지만 실제로는 잔잔하고 환경이 더 좋은 호수에서 수컷 개체의 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뒤엉킨 강둑은 말이 안된다. 모든 유전자는 환경을 자신에 우선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려들 이유가 없다. (기생충이 없다면) 따라서 번식하기 좋은 환경에서라면 속도에서보나, 비용에서보나 유전적 동일성에서 훨씬 월등한 무성생식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실제로 '붉은 여왕'에서는 좋은 환경에서 무성생식을 하는 예를 들어 이 가설을 부정한다)
추가적인 실험에서 기생생물군을 제거하자 민달팽이들은 호수에서도 무성생식에 가까워졌다. (고도의 유성생식군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름답기까지 하지 않은가?? 아주 만족스러운 설명이다.
따라서 진화의 원동력을 기생생물과 환경에의 적응으로 놓고 훑어나가게 되는데, 후반부에서는 진화심리학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나는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역시 꽤 재미난 책이라고 생각해서 추천하곤 했는데, '붉은 여왕' 쪽이 훨씬 간단 명료하게 설명된 것 같다. (드는 예시 역시 유사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책 쪽이 매트 리들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만족스럽게 읽을 뻔... 했으나 젠장, 망할 번역.
평점 : ★★★★☆
반응형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윌리엄 S. 버로스] 정키 (0) | 2012.01.17 |
---|---|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0) | 2012.01.16 |
[정도언] 프로이트의 의자 (3) | 2012.01.16 |
[폴린 레아쥬] O의 이야기 (2) | 2012.01.14 |
[윌리엄 S. 버로스] 네이키드 런치 (6) | 2012.01.13 |
[제수알도 부팔리노] 그날 밤의 거짓말 (0) | 2012.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