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

일루젼 2021. 3. 2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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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마빈 해리스(박종렬)
출판 :  한길사
출간 :  2017.08.18


블로그를 쉬면서는 한 동안 독서 자체를 완전히 쉰 시기도 있었고

읽더라도 딱히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읽은 책들은 완독 후에도 대략 어떤 인상이었다는 이미지로만 남아있다. 

가끔은 읽었던가.... 싶기도 해서 발췌문을 남길 겸 주절주절도 거릴 겸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2012년에 이 책의 구판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래도 몇 줄 끄적여놓았다고 세부적인 단어는 까먹었어도 큼직한 내용은 대부분 기억이 난다는 게 기쁘다.

(혹은 2012년의 내 뇌는 좀 더 싱싱했...) 

 

최근 읽은 <믿습니까? 믿습니다> 라는 책에서

<만들어진 신>의 나는 스파게티와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영아살해 부분을 좀 들어낸 발췌 인용들을 접했다.

인용을 보자마자 이 책의 키워드들과 작가 특유의 흥미로웠던 논리 전개가 생각이 나 다시 읽고 싶어 졌다.

 

찾아보니 마침 개정판도 나왔기에 바로 재독. 

일독 때보다 훨씬 와 닿는 부분도 많고, 눈에 걸리는 단어도 늘어난 기분이다.

 

보통 비문학은 문학과 함께 읽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함께 읽은 책들이 서로 연결이 되며 얽혀버려서 거의 동시에 다 읽어버렸다. 

겹쳐 읽기는 원래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도움을 받은 면이 더 많으니 잘 된 일이다.

 

예전 기억으로 마빈 해리스와 리처드 도킨스는 조금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마지막 챕터인 '마녀의 복귀'를 다시 읽어보니 전개 방식이 다를 뿐이었던가 싶다. 

혹은 읽고 있는 내가 좀 달라져서 일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읽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내친김에 3부작 전부 재독으로 결정. 음식 문화와 식인 문화로 바로 이어서 읽을 예정이다.

 

요약하자면

일견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적, 문화적 현상의 기저에는 다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뒤집어쓴 허물 때문이다. 

진정한 과학은 숫자 놀음으로 그들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보다 넓고 현지화된 시각으로 접근하여 그 컨텍스트 안에 숨겨진 인간의 합리를 깨닫고

이제는 변화한 상황에 맞추어 최대 다수의 선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데 이렇게 읽으면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막상 책을 집어 들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다만 독실한 기독교인에게는 조금 힘들 수 있겠다.

 

 

- 생활양식의 배경에 감춰진 원인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나쳤던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대답은 신밖에 모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 결국 해리스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현대 과학 문명이 과거 문화에 대한 과학적 객관성을 지닌 올바른 인식을 통해 발전해왔다기보다는, 과학문명사회라고 하는 현대에서조차 무지, 공포, 갈등이란 의식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기아, 성차별, 고문, 착취는 현대문명 속으로 사라져 갔다기보다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상황인식이다.

 

- 생활양식을 설명하는 것은 봉지에 든 감자튀김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 먹는 것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이 책의 주제가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인도에서 아마존강으로 그리고 예수에서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 야키족 Yaqui 인디언 중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은 신비적 초의식의 소유자 돈 후안 Don Juan 의 제자가 되어 훈련받고 경험한 것을 책으로 출판해 관심을 끈 젊은 미국 인류학자)로 옮겨가는 이유 말이다. 그러나 감자튀김 봉지를 비우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든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당신의 호기심을 단 한 번에 충족시키려고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마녀들에 대한 설명은 메시아에 대한 설명과, 메시아에 대한 설명은 대인(bigman)에 대한 설명과, 대인은 성차별주의(sexism)와, 성차별주의는 돼지숭배(pig love)와, 돼지숭배는 돼지혐오(pig hate)와, 돼지혐오는 암소숭배(cow love)와 관계된다. 이 세상이 암소숭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여러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암소숭배부터 연구해보려 한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독단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 이 책의 목적은 외견상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생활양식들의 근거를 밝혀보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관습 가운데 어떤 것들은 문자 이전의 인간들이나 얼마나 부자인지 과시하기 위해 재산을 불태우는 허풍스러운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들 같은 원주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어떤 관습은 굶어 죽을지언정 쇠고기를 먹지 않는 개발도상 사회의 힌두교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어떤 관습들은 주류 문명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마녀와 메시아들과도 여전히 관계가 있다. 나의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풀기 어렵고 수수께끼처럼 기이하며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례들을 일부러 선택했다. 

 지금은 우리의 문화(서구문화)가 지성에 대한 과신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다. 

 

- 생활양식이라는 수수께끼는 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현대사상 가운데 많은 부분이 베네딕트(Ruth Benedict)의 저서 <문화의 유형들(Patterns of Culture)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베네딕트는 콰키우틀족, 도부안족(Dobuan), 주니족(Zuni) 등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타나는 현저한 차이점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디거 인디언 (Digger Indian) 신화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들었다. 그 신화는 다음과 같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진흙으로 만든 물잔을 하나씩 주었다. 인간은 그 물잔으로 자기들의 생명을 떠마셨다. ... 인간은 누구나 물을 떠마시지만 그 물잔은 모두 달랐다. 

- 일상생활의 의식은 그 의식의 존재를 밝혀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도록 개발된 능력 덕택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 자기들의 꿈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더욱이 생활양식을 직접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설명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 솔직히 신비적인 관점에서 그 금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요즘에는 더 호감을 얻게 되었다. 이 신비적 관점은 신의 금기들을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받는 신의 은총은 야훼가 심중에 지닌 의도를 정확히 알려하지 않고 그것을 밝히려고도 하지 않는 마음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다. 

 현대 인류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곤경에 처했다. 예를 들면 하이모니데스에게 오류가 있기는 해도 <황금의 가지> (The Golden Bough, 황금가지)의 지은이로 명성을 얻고 있는 프레이저 경(Sir James Frazer)보다 그가 이 금기에 관해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레이저 경은 돼지가 "이른바 불결하다고 열거된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돼지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대부분의 동물이 원래는 신성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돼지 혐오의 이유를 밝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양, 소, 염소도 중동지방에서 숭배 대상이 된 적이 있었지만 그런 동물의 고기는 그 지역의 모든 민족과 종교집단이 즐겨 식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나이산 기슭에서는 황금 송아지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프레이저의 논리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에게는 돼지보다 소가 훨씬 더 불결한 동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일지도 모른다. 

 

- 우리는 룸빔 대신 미사일을 심어놓고 있는 나라들에 관해서도 이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 전쟁 때문에 한 부족의 생존문제에 남성과 여성이 이바지하는 상대적 가치가 전도되고 있다. 전쟁의 필요성 때문에 원시 사회는 군인이 될 수 있는 남성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여성의 양육은 제한한다. 전쟁이 효과적인 인구조절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지 전쟁 그 자체가 바로 인구조절 수단인 것은 아니다.

 

- 나의 이런 추론이 비열하다거나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18세기 영국사를 잘 읽어보시라. 영국에서는 알코올에 중독된 산모 1,000명당 10명꼴로 자기 아이들을 템스강에 빠뜨려 죽이거나 천연두로 죽은 사람들의 옷에 아이들을 싸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눌러 질식시켜 죽이거나 그 외 여러 가지 직, 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해 아이들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아 살해가 미개발 국가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들은 독선적일 뿐이다. 사실 미개발 국가 사회에서 1세 이하의 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250명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수치다. 

 

- 요약하자면 전쟁은 미개 사회에서 딸을 양육할 여유가 없을 때 아들을 길러야 했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 우리는 무력을 사용하는 전쟁이 인류 역사에 보편적인 것으로 항상 존재해왔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본능이 어떻다느니 전쟁의 동기에 괴팍한 어떤 것이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때, 내부 집단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른 수단이 전쟁을 대체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충분히 바랄 것이다.

 

- 야노마모족 남성 지배권의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남성들이 환각제를 독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환각제(가장 일반적인 것은 에베네(Ebene)라는 것으로 밀림의 야생 포도에서 짜낸 것이다)를 사용하게 되면 남자들은 여자는 경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환상을 맛보게 된다. 이런 환각 속에서 남자들은 무당이 되어 괴물들을 만나고 악마들을 지배하게 된다. 

 

태초에는 달의 피에서 태어난 사나운 남자들만 존재했다. 이 최초의 인간 중 한 사람은 카나보라마(Kanaborama)라는 자였는데, 그는 두 다리에 임신을 했다. 그의 왼쪽 다리에서는 여자가 태어났고 오른쪽 다리에서는 여성적 남자들-결투를 싫어하고 전쟁에서 겁이 많은 야노마모족의 조상-이 태어났다.

 

- 세계 민족지학 박물관에 전시된 생활양식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위신을 얻으려는 충동(drive for prestige)이라고 알려진 이상한 갈망의 흔적이다. 고기를 먹고 싶어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생활양식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영토나 단백질 또는 성 문제로 서로 경쟁하는 데 비해 여기서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들의 열망이 너무 지나쳐서 때때로 그 열망 때문에 서로 피나는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 경쟁이 지나치게 격해져 나중에는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그 경쟁은 합리적인 물질적 손실에 대한 계산과는 전혀 무관하거나 또 어떤 경우에는 이에 전적으로 대립하면서 오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 미국이 위신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패커드(Vance Packard)의 견해는 많은 호응을 얻었다. 미국인 가운데 많은 사람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감명시키기 위해 사회라는 피라미드 위로 더 높이 기어오르려고 노력하는 데 전 생애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크롬 조각이나 부담스럽고 쓸모없는 것들로 구성된 재산, 즉 실제적인 재산을 모으는 것 자체보다 무조건 긁어모아 놓은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열망 때문에 일을 한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콰키우틀 족의 포틀래치가 단순한 과대망상적인 변덕 때문이 아니라 분명히 경제적, 생태학적 조건들 때문에 생긴 결과임을 밝히고 싶다. 이러한 경제적, 생태학적 조건들이 없어지자 존경받고 싶은 욕구나 지위를 얻으려는 행동은 전혀 다른 생활양식의 관행으로 표현되었다. 무절제한 소비 대신에 절제하는 소비양식이 생겼고 낭비는 금지되었으며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자도 사라져 버렸다.

 

- 우리가 호혜성의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준수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화폐와 매매가 전혀 없는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봐야 한다. 호혜성이란 어떤 것을 정확히 계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계산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사실 누군가가 실제로 어떤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고다. 혹자는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말하는지 안 하는지에 따라서 생활방식이 호혜성에 기초하고 있는지 또는 그 밖에 어떤 기준에 기초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물품이나 용역을 제공받았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을 무례한 태도로 여긴다. 중부 말라야의 세마이족(Semai) 사이에서는 사냥물을 친구에게 균등하게 나눠주는 사냥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마이족과 같이 살아온 덴탄(Robert Dentan)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받는 사람이 자기가 받은 고기의 크기를 정확히 계산하고 있거나 받는 사람이 사냥꾼의 성공이나 관대함에 놀라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 "좋소, 물론 우리가 이 수소가 굉장히 좋은 고기를 제공했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런데 한 젊은이가 많은 사냥감을 잡게 될 때에 자신을 마치 대인이나 추장이라고 생각하곤 하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마치 자기 종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자랑하고 다니는 놈들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자만심이 언젠가 그가 누군가를 죽이게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가 잡아온 고기가 별 쓸모없다고 하지요. 그래야만 그는 진정하고 겸소해지니까요."

 

- 예컨대 서구에 자본주의가 출현하자 경쟁적으로 재산을 축적하려는 욕구가 또다시 대인의 신분 획득에서 근본 범주가 되었다. 이 경우만 보더라도 대인들은 서로의 재산을 약탈하기 위해 경쟁했고 가장 많은 부를 축적, 보유하는 자들에게 최고의 명예와 권력이 돌아갔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면서도 가장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명예가 수여되었다. 자기들의 재산이 더 안전해지자 자본주의 상류계급은 무절제한 소비를 해 경쟁자들의 기를 꺾었다. 그들은 대저택을 짓고 어마어마한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을 입었으며 가난한 대중에게 경멸적인 언사를 던졌다. 

 그동안 중하류 계급은 아직도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검소한 사람에게 최고의 명예를 돌렸고 무절제하게 소비하는 모든 낭비 형태에 냉엄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산업발달로 소비시장이 확대되자 중하류 계급도 검소한 습관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광고와 매스미디어가 결탁해 중하류계급을 현혹해 그들에게 저축을 그만두고, 소비하고, 낭비하고, 파괴할 것을 권장했다. 점점 늘어나는 상품과 서비스를 써 없애라고 했다. 그래서 중하류계급 내 신분 추구자 간에는 이제 돈을 가장 잘 쓰는 소비자에게 최고의 명예가 주어지게 되었다. 

 

- 뉴헤브리디스(New Hebrides)의 주민들은 프럼(John Frum)이라는 미군 병사가 미국의 왕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 1970년 인터뷰를 했던 한 프럼 부락의 추장은 "사람들은 거의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프럼을 그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했다.

 

- 공업 재화들이 생산되고 분배되는 방식에 어떤 신비로운 요소가 없다면 이 논리는 납득할 만한 이론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규명해본다면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 않으며 또 현대국가들의 재화의 분배 양식에 왜 이렇게 심한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지금 제시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도 정말로 화물신화가 있다는 점과 원주민들이 그 신비를 풀려고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이다. 

 

- 그들은 유럽인 대인들이 진정한 대인처럼 행동하기를 주장했다. 그들은 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부를 분배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구인들은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경제적, 종교적 생활양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늘 그렇듯 원주민들은 미개하고 어리석으며 미신에 사로잡혀 문화의 원리들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인상이었다. 이런 인상 때문에 얄리의 사례에 분명히 나타난 사실들이 왜곡되어 전달됐다. 얄리는 그런 문화의 원리를 파악할 수 없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얄리는 원주민들이 그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후견인들은 현대적 공장들의 공정을 시찰하고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 여전히 화물신화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얄리가 유럽인들이 재화를 생산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는 더욱 자신과 자신의 종족들이 그 재화를 나눠가질 수 없는 이유에 관한 유럽인들의 설명을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 ...... 공개적 선동, 파업, 노동조합, 정당활동 등 모든 형태의 저항을 억압할 때마다 유럽인들은 스스로 '화물의 승리'를 약속했다. 열심히 일하면 화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교사들이 말했을 때, 그 말이 거짓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인들과 미국인들이 향유했던 부와 원주민들의 노동이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명확히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원주민들의 값싼 노동력과 땅을 착취하지 않았다면 식민지 세력들이 그렇게 부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원주민들에게는 산업국가의 생산물을 살 돈은 없었을지라도 그 생산물을 소유할 자격은 있었다. 화물신화는 이 점을 설명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화물신화의 진짜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 기독교 복음서는 예수와 유대인 해방투쟁과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복음서만으로 판단할 경우 당신은 역사상 가장 격렬한 게릴라 투쟁의 발상지의 한 중심부에서 예수가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는 사실마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복음서 독자들은 이 투쟁이 예수가 처형된 후 여러 해 동안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기원후 68년에 유대인들이 전면적인 혁명을 일으켰고 그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미래의 로마 황제가 될 두 사람이 지휘하는 로마 군단 여섯 개가 필요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두 로마군 사령관은 유대인 혁명이 진압되기 전에 차례로 로마 황제로 즉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예수가 유대 혁명군들의 전투적 메시아니즘 의식을 말살하려는 로마제국의 기도 때문에 희생된 정치범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 처음에 로마인이나 유대인 지배계급은 이 게릴라를 단순한 강도단(그리스어로는 레스타이 lestai)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강도단의 목적은 강도질이 아니라 유대인 부재지주들과 로마 세리들에게 항거하는 것이었다. 이 게릴라 투사들을 지칭했던 또 다른 용어는 '젤롯당' (Zealots, 열심당)이다. ... 이들 중 특수한 전술을 가진 도시 게릴라 집단은 '검을 지닌 자들' (라틴어로는 시카리 sicarii)이라고도 불렸다.

 

- 예수는 우리가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 예수의 교훈의 원형과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예수와 세례 요한이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속에 드러난다. 짐승 가죽을 걸치고 메뚜기와 석청만 먹었던 세례 요한은 요르단 계곡 광야를 방황하며 농민과 노예들에게 로마인과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유대인들을 괴롭히라고 선동했던 자로 요세푸스가 분류한 '성자의 장르' (the genre of holy man)에 속한 사람이었다.

 

-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에서 세례 요한이 차지했던 위치는 <사해문서> (The Dead Sea Scrolls)의 발견으로 명백해졌다. 이 문서는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던 광야에 존재하던 쿰란 (Quamran) 공동체 -고대 기독교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던 신앙공동체- 의 폐허들이 남아 있는 지역의 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쿰란 유적 속에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을 씻는 시설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것을 발굴했다. 요한의 세례의식은 쿰란 공동체의 목욕탕에서 행해졌고, 오랫동안 정신을 정화하려고 했던 유대적 착상의 일부인 복잡한 세정식이나 청정식을 간단하게 줄인 형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 <스가랴서>(Zechariah)에 기록된 메시아적 상징을 민중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예수는 의도적으로 나귀(또는 조랑말)를 타고 성문을 통과했다. 주일학교 선생들은 예수의 이 행위에 이교도들에게 평화를 선포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주일학교 선생들의 주장은 <스가랴서>의 모든 기록이 압도적으로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스가랴가 예언한 메시아가 비천하게 나귀를 타고 나타나면 시온의 아들들은 "...삼키고 ...복종시키고, 대적들을 싸움터 진창 속에 짓밟아버리는 전능한 자들이 될 것이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며, 말 탄 자들은 기가 꺾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귀를 탄 비천한 인물은 평화의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는 그 작은 민족의 메시아였고 분명히 선한 전쟁의 왕자였다. 

 

- 한 사람은 시몬(Simon)으로 '젤롯당'이라고 불렸고(Simon the Zealot), 또 한 사람은 가룟 유다로 '이스가리옷' (Iscariot, 배반자)이라고 불렸다. (Judas Iscariot) 이스가리옷이라는 말은 칼을 휘두르며 암살 행위를 하는 자들을 요세푸스가 지칭했던 말인 시카리와 비슷하다. 그리고 어떤 고대 라틴어 필사본은 유다가 실제 젤롯당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른 두 제자도 호전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세배대(Zebedee)의 아들 야고보(James)와 요한(Johannes, 사도 요한)이 그러하다. 그들은 '보아너게'(Boanerges)라고 불렸는데 이 말은 마가(Mark)가 '천둥의 아들들'을 아람어(Aram)로 번역한 것으로 '사납고 격노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다. 

 

- 또한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수가 한 대답이 기독교 전통에서 왜곡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여기에서 밝히고 싶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쳐라." 이 대답은 갈릴리인 유다가 이끈 세금 폭동에 참가했던 갈릴리인들의 귀에는 "바치지 말라"는 단 한 가지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갈릴리인 유다가 팔레스타인의 모든 것이 하느님께 속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 기록자들과 독자들은 아마도 갈릴리인 유다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 멘체스터 신학교의 학장을 지냈던 브랜던(S.G.F Brandon)은 예수가 혼자 십자가형을 당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복음서는 예수가 처형됐을 때 다른 죄인 두 사람도 같이 처형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 처형된 두 사람의 죄목은 무엇이었을까? 영역본 복음서에는 '도둑'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어 필사 원본에는 레스타이라고 되어 있다. 레스타이라는 말은 요세푸스가 젤롯파 강도단들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브랜던은 이 '강도단'들이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 훨씬 전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예수가 재판받을 당시 예루살렘 감옥에는 '반란을 일으킨' 수많은 죄수가 있었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 처형된 두 사람이 그 반도들의 한 무리였다면, 골고다의 무시무시한 처형광경은 그 당시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가상의 유대 메시아가 중앙에 있고 그 양 옆에 두 사람의 젤롯파 강도단이 처형되어 있는 광경-이는 반란을 일으키는 원주민들에게 법과 질서를 가르치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식민주의 제국 관료들의 심리를 표출해주는 모든 행위와 일치한다. 

 

- 외형상 예수에게 메시아적 권능이 없어 보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진 후부터였다. 많은 제자가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환상들을 통해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메시아가 갖는 자격, 즉 메시아는 꼭 승리해야 한다는 자격이 예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환상을 통해 영감을 얻은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자체가 예수가 거짓 메시아라는 점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놀라운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죽음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절정의 기회를 주시어 계약을 이행할 수 있는 백성인지 증명해보도록 한 은총의 증거로 여겨졌다. 사람들이 예수를 거짓 예언자라고 의심했던 것을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면 예수는 다시 올 것이다. 

 

- 예루살렘 공동체는 '필라즈(The Pillars)'라고 하는데 이는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삼두체제로 운영되었다. 

 

- 예수의 언행을 보존하고 있는 어느 기록에서도 해외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바울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은 없다. 예컨대 <마가복음>에는 이런 설화가 있다. 시리아 지방에서 사는 헬라 여인이 예수 발아래 엎드려 신들린 자기 딸에게서 악마를 쫓아달라고 애걸한다. 예수는 이를 거절한다. "자녀를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라. 자녀의 빵을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느니라." 그 시리아의 헬라 여인은 예수의 이 말에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에 예수는 불쌍히 여겨 그 여인의 딸을 치유해준다. 여기에서 '자녀'는 오직 '이스라엘의 자녀'를 의미할 뿐이고 비유대인들, 특히 시리아 지방의 헬라인과 같은 적대자들은 '개들'이었다. 이러한 사건들과 언사들은 <마가복음>과 그 외 다른 복음서에도 보존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원한에 찬 자민족의 우월적인 언행들이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완전히 제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인한 일련의 현세적인 사건들을 충분히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 결정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대제가 스스로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눈에 기독교는 이제까지의 평화의 메시아 종교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기원후 311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태양 위에 십자가가 나타나는 환상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 십자가 위에 'IN HOCSIGNO VINCES' (이 표적 때문에 그대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예수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나타나서 군기의 문장을 십자가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 기묘한 군기 아래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군대는 결정적인 승리를 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군대는 제국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평화의 메시아가 매달려 죽은 십자가가 수백만의 기독교 군인과 당시까지 그들의 적이었던 자들의 말 없는 죽음을 지배할 것이 보장되었다. 

 

- 나는 마법에 관한 수수께끼를 두 가지 독립된 주제로 분류하고 싶다. 하나는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또 하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 16세기와 17세기에 이런 마녀 사상이 그토록 널리 일반화된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이 두 가지 수수께끼가 모두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해답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사실 초기에 가톨릭 교회는 하늘을 나는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기원후 1000년에는 그렇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1480년 이후부터는 날아다니는 존재가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 기원후 1000년경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라는 말은 악마가 조작해낸 환영에 불과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500년 후 교회는 날아다니는 마녀는 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잡은 사람들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전자의 경우는 <에피스코피 경전>(The Canon Episkopi)의 주장에 그 근거를 두었다. 그 경전은 마녀 떼가 밤하늘을 날아다닌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그 신앙 없는 자들은 그러한 일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즉 악마는 당신이나 다른 사람이 밤에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게 하지만 '실제로'(really)는 당신도 다른 사람도 날아다니지 못한다. '실제로'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면 '실재'(reality)라는 용어를 규정했던 1480년 이후의 정의와 그전(기원후 1000년경)에 사용되었던 '실제로'라는 말의 의미에 결정적으로 어떤 차아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 교황은 남프랑스를 기독교국으로 유지, 보존하기 위해 성전, 즉 알비겐시안 십자군 전쟁(The Albigensian Crusade, Cathari)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비겐시안들은 마침내 사라졌지만 발도파(Waldense, Vaudois) 등의 이종교파들이 또 일어났다. 교회는 이런 체제 전복적인 움직임을 제거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다. 

 

- 인스티토르(Henricus Institor)와 스프렌거(Jakob Sprenger)는 그들의 저서 <마녀들의 망치>(The Hammer of the Witches)를 통해 교황을 납득시켰다. 이 책은 그 후 오랫동안 마녀사냥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들은 상상만으로 마녀 연회에 참석하는 마녀들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마녀가 물리적으로 참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상으로 참석하든 물리적으로 참석하든 죄는 마찬가지다. 

 

- 로렌 지방에서 개업한 16세기 외과의 라구나(Andrés Laguna)는 마녀의 항아리를 발견한 것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 항아리 안에는 이상한 녹색 연고가 반쯤 담겨 있었다. ... 마녀들은 그 연고를 몸에 발랐다. 냄새가 아주 강렬하고 불쾌한 것을 보니 헴록(Hemlock)이나 나이트셰이드(Nightshade)나 사리풀 또는 만다라화 등 극도로 차갑고 최면 효과가 있는 약초들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 마법연고를 가장 세밀하게 연구했던 연구자는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한 동료인 포르타(Giambattista Porta)였다. 그는 나이트셰이드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고약의 제조법을 알게 되었다.

 

- 페루 히바로족 인디언들의 무당이 사용하는 환각제를 연구해온 하너는 마법 연고 속에 들어있는 강렬한 환각작용물은 만다라화, 사리풀, 벨라돈나(Belladonna)나 치명적인 나이트셰이드 등 유럽산 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강력한 알칼리 성분인 아트로핀(Atropine)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트로핀은 외상 없는 피부에도 흡수되는 성질이 있으며 근육통을 없애기 위한 벨라돈나 피부연고에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최근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옛 기록에 보존되어 있는 조제 공식에 따라 마법 연고를 재현해냈다. 독일 괴팅겐의 한 집단은 24시간 동안 수면에 빠져 '거친 말을 타고 광란의 춤을 추고, 중세에서 볼 수 있는 난장판 연회를 여는 등 별난 모험을 한' 꿈을 꾸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 환각 연고는 마법 신앙의 여러 가지 특징을 설명해주고 잇다. 고문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실제 환각 연고를 사용하는 자들 말고도 훨씬 넓은 범위에서 마법 신앙이 유행했음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50만 명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몽상 속에 끼어들어 있었다는 죄목으로 죽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전투적 메시아니즘 전통을 더 깊이 고찰해야만 한다.

 

- 서유럽 메시아니즘의 최고 이론가는 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이었다. 콘(Norman Cohn)은 그의 예언 체계를 "마르크스 주의ㅡ 이전까지 유럽에 있던 예언체계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체계"라고 극찬했다. 요아킴은 1190년부터 1195년까지 칼라브리아 대수도원장이었으며 현세의 고통이 영혼의 왕국에 무릎을 꿇는 시기를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는 세계의 제1시대를 성부의 시대, 제2시대를 성자의 시대, 제3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믿었다. 제3시대는 안식기 또는 휴식기로서 부, 재산, 노동, 식량, 주택 등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순수하게 영적인 것뿐이고 모든 물질적인 요구는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교회나 국가 같은 계급제도들도 완전한 존재들로 구성된 자유공동체로 대체될 것이다. 요아킴은 성령의 시대가 1260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시기의 도래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194-1250)가 제3시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신앙을 토대로 하는 몇 개의 전투적 메시아니즘 운동의 목표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대놓고 교황권에 도전했다. 그 결과 교황은 그가 통치하는 왕국 내에서 세례, 결혼, 고해 등 모든 성례전을 금한다는 파문을 내렸다. 유심론자로 알려진 프란치스코회의 열광적인 청빈파들이 프리드리히 2세를 지지했다. ... 그들은 교황을 비난하고 스스로 성례전을 베풀어 교황의 파문에 도전하고 사면을 승인했다. ... 1250년 프리드리히 2세는 그 시기까지 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서 통치할 것이라는 환상을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잠자는 황제'가 되었으며, 1284년에는 부활한 프리드리히 2세라고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 독일 노이스에서 추종자들을 모으다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 됐다. 그 후 수백 년에 걸쳐 여러 명의 구세주 프리드리히가 화형 당했다.

 

- 나는 여기에서 내가 이미 이야기했던 몇 가지 이득과 보잘것없는 이점-마녀들의 재산 몰수, 고문과 처형 비용의 청구 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보상들이 있었다는 것은 마녀사냥 기술자들이 광적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했던 이유를 밝혀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점들은 마녀사냥의 원인이 될 수는 없었고 단지 마녀사냥의 부분적인 도구가 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마녀광(witch mania)의 원인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녀광의 천상적 목적보다 마녀광이 초래한 세속적 결과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숯으로 변한 몸뚱아리들은 차치하더라도 마녀사냥 제도의 주된 결과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영주나 교황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마녀나 악마들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 당국은 그 악마들을 격퇴하려고 아낌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따라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 전투에서 보이는 당국의 정열과 용맹성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녀광의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시켰다는 데 있다. ...... 속죄양은 누구였는가?

 

- 미신으로 낙인찍히고 비웃음을 당하던 시절을 겪은 후, 마녀는 이제 상당히 고상한 흥밋거리(tilillation)의 원천으로 복귀했다. 마법뿐만 아니라 점성학부터 선, 명상, 하레 크리슈나, 아이 칭(고대 중국의 마술 체계로 <역경易經>을 뜻함)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은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특징을 지닌 고상한 흥밋거리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포착해 1974년에 나온 교과서 <현대문화인류학>(Modern Cultural Anthropology)은 "인간의 자유에는 믿음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선언해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 오래전부터 서구 과학기술의 발달과는 모순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태도와 이론들이 예기치도 않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은 '반문화'라는 생활양식의 전개와 관련이 있다. 이 운동을 예언했던 사람 가운데 로샤크(Theodore Roszak)는 "반문화가 '객관의식이라는 미스테리'에서 이 세계를 구해낼 것이다. 반문화는 과학적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그 대신 '비지성적 능력'이 최우위를 차지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최근 반문화의 미성년 예언자인 라이히(Charles Reich)는 스스로 제3의 의식(Consciousness III)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천년지복 상태(millennial state)에 대해 "제3의 의식에 도달하려면 논리, 합리성, 분석, 원칙 등에 깊은 회의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 반문화 관점에 선 인류학에서 원시인들의 의식은 빛과 힘을 갖고 있으나 전기료를 지불해 본 적이 없는 무당들의 의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당은 원시사회에서 존경받는 존재다. 그들은 기이한 의식 상태에 몰입해 들어가는 방식을 능숙히 연마할 수 있고 비밀스러운 우주의 어떤 힘 속을 능숙하게 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당들은 '초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이 세계의 일상적인 상태를 통해 타오르고, 기이한 사건과 공포 너머를 지각하는 불의 눈"을 가지고 있다. 로샤크는 무당들이 환각제나 가사상태, 최면을 유도하는 북소리, 댄스 리듬 등의 기술을 이용해 마치 "과학자들이 객관 타당성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것처럼 성심성의껏 비지성적인 인격체들과 접신할 수 있는 영교 능력을 연마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비적 초의식을 소유한 야키족 인디언의 '지식인'(man of knowledge) 카스타네다의 저서에 등장하는 인기 있는 주인공, 후안을 고찰하면 반문화운동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유럽의 마녀들이 피부에 침투할 수 있는 알칼리성 아트로핀이 함유된 고약이나 연고를 몸에 발라 하늘을 나는 것임을 하너 박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너 박사는 또한 아트로핀이 신세계(아메리카)에서는 흰독말풀(jimson weed), 아가위 열매(thorn apple), 가브리엘의 트럼펫, 가지(mad apple), 악마초 등이 있다고 알려진 다투라(Datura), 즉 가지과 유독식물들-이 악마초의 뿌리의 변종이 카스타네다가 비행하는 데 사용한 약초일 것이다- 등의 활성성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 카스타네다의 두 번째 저서 속의 한 사건은 무엇보다 무당의 초의식은 도덕 감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돈 후안의 교훈>(The Teaching of Don Juan)이라는 저서로 명성과 돈을 얻은 카스타네다는 자기 스승에게 책을 한 권 주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후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카스타네다는 호텔 식탁에서 남은 음식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가는 거리의 개구쟁이 일당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 카스타네다는 자기의 풍요로운 생활이 자기가 성공적인 마법사가 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후안은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저 아이들이 불쌍한 까닭이 무엇이겠소?'

 

- 객관성에서의 도피, 반도덕적 상대주의, 사고의 전지전능성을 인정하기 등은 마녀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용어들이지 구세주를 설명하는 용어는 아니다. 제3의 의식에는 이단들의 에너지를 분산, 해체시키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생활양식 몽상이 지닌 모든 정통적인 징후가 내포되어 있다. 이 의식은 '당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과 구분해야 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일만 한다면 혁명을 달성할 수 없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녀의 복귀가 이해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일은 아니다. 현대적 마법의 부활에는 사멸한 중세의 마녀광란과 명백히 유사한 점이 있다. 물론 그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도 많다. 현대의 마녀는 찬양받고 있지만 중세의 마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의 마녀를 믿든 안 믿든 반문화운동가들은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라이히나 로샤크는 이스티토르나 스프렌거가 아니다. 그리고 반문화운동은 다행히도 어떤 특수한 교리 체제에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반문화운동과 종교재판은 마녀가 날아다닌다는 것에 대해서 같은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 나는 생활양식을 잘 이해할 경우 도래하게 될 천년왕국적인 찬란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인 의식을 비신화화하려 애씀으로써 평화와 정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강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만약 사회의 불평등한 요소를 우리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토록 희박하다면 생활양식이라는 수수께끼의 영역 속으로 과학적 객관성을 확장하는 것이 도덕적 지상명령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 손도 대보지 않은 것이다.

 

- <문화의 수수께끼>가 출판된 지 35년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이 책이 여전히 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해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옮긴이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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