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케이틀린 도티 (임희근)
출판 : 반비
출간 : 2020.01.22
출간 소식을 접하고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사선의 유머.
이번 주는 약간 이런 방향의 글들이 잘 읽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한 번은 죽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사실, 죽지 않게 된 존재는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에 명제는 파훼되지 않는다. 모순이다.)
죽음과 시신이라는 불편함으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되고 있는 현 시대의 도시인-블라인드-들에게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도서로 추천한다.
책 자체는 재미있고 신랄하다.
만약 죽음에 관심이 더 가는 경우에는 엮여져 있는 참고 도서들로 뻗쳐 나간다면 더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어지는 책인 동 저자의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도 읽어볼 생각인데 여기서는 저자가 장의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조금 주저된다.
아마 나와는 방향성이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방부 처리'란 우리가 생각하는 '염'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미국을 거쳐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방부처리'는, 단순히 부패를 늦추고 혈색이 있어 보이게 색을 덧칠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수 처리를 통해 고인의 생전의 모습에 가깝게 -어쩌면 그보다 더 생기 있어 보이도록- 만들어 내는 특수 처리를 말한다.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그런 방부 처리 중에서도 '보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이 처리를 '엠바밍(embalming)' 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개념이지만 국내업체도 생겼다고 알고 있다. 엠바밍 기술의 대표 국가는 미국으로, 일전의 한진 고 조양호 회장도 이 처리를 받아 장례를 치렀다.
혈액을 빼내고, 특수 액체를 혈관에 채워넣고, 꺼진 볼과 벌려진 입을 부풀리고 꿰매어 장례식장을 찾은 고인의 유족과 문상객들에게 고인의 마지막 모습만큼은 이상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이에 반대한다.
태어난 모습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시신에 노출된 삶이 당연했던 시대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그 방식이 망가짐으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삶에 대한 환상에 갇히게 되었고, 죽음으로부터 괴리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 결과 죽음을 제대로 맞지 못하고, 이미 결정되었던 당연한 결말을 급작스러운 재해인 양 우왕좌왕하며 혼란 속에서 잘못된 결정들을 내리게 된다는 주장.
여기서 나와 저자의 생각이 갈리는 것은, 죽음의 주체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나는 죽음과 장례의 절차에 있어서, -특히 사고사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주체는 유족이라고 본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장례는 그들이 남은 생을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한 의식에 가까우며,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모습을 위한 약간의 화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때 엠바밍 쪽을 알아보기도 했었고.
그에 반해 죽음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며 -죽음의 순간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생전에 자신의 사후에 대해 결정할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받은 원소를 다시 돌려주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사망자가 죽음으로 완결짓고 싶은 의식이 있었다면 논외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 스스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보다 좋은 생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요약하자면, 저자의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미 고인의 사후에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생의 세계의 일은 유족들에게 좀 더 맞추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남은 시간을 위해서. 저자의 말처럼 모두가 자연스러운 돌아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필요 없는 일이 되겠지만 모든 변화에 완충 지점은 필요하니까.
잡소리가 길었는데, 재미있는 책이었다.
한동안 잡생각 해 볼거리가 생긴 것도 기쁘다.
- 아끼던 사람들의 죽음을 몇 번 겪은 이후 죽음과 나의 관계는 늘 복잡한 것이었다. 상갓집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처럼, 죽음 앞에서 내 몸과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때로는 이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때로는 이 보다는 더 고통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 테니슨이 말했듯 "어머니 자연"은 "붉은 이와 발톱"을 가지고 있어서, 과거에 창조했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다 파괴한다. 뼈는 화장하면 무기물로 축소되어 매우 잘 부스러지는 상태가 된다.
- 화장장 직원들 사이에 도는 전설 같은 소문으로는, 심박조율기 속에 든 리튬 배터리를 화장 전에 미리 빼놓지 않으면 화장로 속에서 그것이 폭발한다고 한다. 이 조그만 폭탄은 가엾고 무고한 화장장 관리자의 얼굴을 박살 낼 만큼 힘이 세다는 것이다. 이제껏 그 소문이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만큼 레토르트 속에 그걸 오래 남겨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불타오르는 두개골을 실제로 보는 것은 그 어떤 상상보다도 강렬하다.
- 그러나 오하라는 사람들에게 이 이미지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며, 지금 처음으로 그것을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 이런 유형의 직면은 현실과 관계 맺는 일이었다. 그건 아주 소중했고, 나는 죽음을 직면하는 데 빠르게 중독되어 갔다.
- 인류학자 제프리 고러는 <죽음의 포르노그래피>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화장을 선택하는 것은 화장이 매장보다 더 완벽하고 최종적으로 망자를 제거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망자와의 달갑잖은 만남을 막는 체계를 만들어놓았다. 바로 이 순간, 시신은 크리스가 운전하는 차처럼 아무 표시도 없는 흰색 밴에 실려 고속도로와 주간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휴가를 가는 승객들이 위 칸에 타고 여행하는 동안, 시체들은 비행기 짐칸에 실려 지구 위를 종횡으로 누빈다. 우리는 아래칸에 죽은 이를 넣어놓았다. 지하에 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위장된 이송용 침대 아래에, 우리 여객기의 배 속에, 그리고 우리의 의식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 만약 우리가 와리족으로 태어났다면, 지금 밖에서 보기에 야만적인 습성이라고 경멸하는 식인 풍습은 우리가 아끼는 관습, 성실하게 확신을 갖고 참여하는 관습이었을 것이다. 북미의 매장 관행인 방부처리(시신 장기 보관)에 이어 무겁고 봉인된 관에 넣어 땅에 묻는 것은 와리족 입장에서는 모욕적이며 낯선 일이다. 서양식 매장의 '진실과 존엄성'은 오로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정한 진실과 존엄성일 뿐이다.
- 시신을 지키는 동안, 가족이나 그 지역의 관 짜는 사람들이 나무로 된 관을 만들었다. 육각형 관은 아래쪽이 점차 가늘어져 이것이 정말 죽은 인간을 담기 위한 것임을 나타냈다. 오늘날의 관은 평범한 직사각형의 모양도 그렇고 casket이라는 명칭도 그렇고, 그때의 관과는 다르다.
- 1500년대에 가장 잘 알려진 책 중 하나는 하인리히 크래머라는 종교 재판관이 쓴 마녀사냥용 교본이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이나 <마녀의 망치(Hammer of the Witches)> 같은 책은 자기 마을에 사는 마녀를 찾아내서 없애는 법을 알려주는 현지 안내서였다. ... 나는 죽은 영아들을 굽고 그들의 뼈를 간다는 혐의를 받은 중세 마녀들에 대한 논문을 썼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글자 그대로 영아들을 굽고 뼈를 갈고 있다. 마법을 쓴다는 혐의를 받은 여자들의 비극은, 실은 그들이 아기들의 뼈를 갈아 오밤중에 악마의 축제로 날아가는 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그 혐의로 부당하게 죽었다. 산 채로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반면 나는 아기들의 뼈를 갈았으나, 잘 보살펴주고 염려해줘서 고맙다고, 가엾은 부모들이 내게 감사까지 하는 일이 많았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 미트포드는 작가이자 기자로,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가족들이 모두 거칠고 괴짜 같았다. 자매가 넷 있었는데 넷 다 유명했다. 그중 하나는 나치 동조자이자 '히틀러의 절친'이었다. 미트포드는 크리스토퍼 히친스부터 마야 앤젤루까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J.K. 롤링은 작가로서의 자기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으로 미트포드를 꼽았다. 1963년에 미트포드는 <미국의 죽음 방식(The American Way of Death)>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장례를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우호적인 책이 아니었다.
- 왜 그녀는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장의사를 찾아 가격을 비교해보고, 친구들과 가족에게 물어보고, 무엇이 법적인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 그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하고 나서 그것을 "뜻밖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젊은 사람이 뜻밖에 죽으면, 가족은 아마 미트포드가 말했던 "전혀 모르는 물품을 사야 할 필요성"에 맞부딪칠 것이다.
- 죽은 사람은 매우, 매우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게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라도 황야에 돌아다니는 시체 무리를 우연히 마주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집에서 죽는 일이 드물고, 설령 집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숨을 내쉬는 즉시 시신이 장의사로 운송된다. 만일 북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시체를 "보고 왔다"고 하면, 그 시체는 아마 이미 장의사 직원의 손으로 방부처리된 후에, 얼굴에 화장(化粧)도 잘 되고, 의상도 일요일에 입는 제일 좋은 옷이 입혀진 상태일 것이다.
-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한 절차가 종종 몹시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는 것은 장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 웨스트윈드에 몸담고 일한 경험 덕분에 나는 예전에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곧장 웃거나 울기 시작한 것이다.
- 불행히도, 모든 시신이 다 이른바 '고상한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기증한 머리가 21세기의 대표적 질병이 지닌 신비를 풀 열쇠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 시신이 결국 얼굴 리프팅 기술을 새로 익히는 베버리힐스 성형외과 의사 무리들의 수련에 쓰일 수도 있다. 아니면 비행기에서 밖으로 떨어뜨려 낙하산 기술을 시험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시신은 과학을 위한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기증된 것이다. 몸의 일부가 어디로 가든, 그건 기증자가 관여할 바 아니다. 과학 발전에 시신을 사용하는 것에는 지난 400년간 많은 진전이 있었다. 16세기에 의학을 하던 사람들은 인체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다. ... (정답은 인체의 네 가지 체액인 점액, 피, 검은 담즙, 노란 담즙의 불균형)
- 기원 후 1세기에 푸블리우스 시루스가 글에도 썼듯이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하다". 중세 말기에는 '죽음의 무도', 또는 망자의 무도가 예술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부패하는 시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산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곁에 와서 씩 웃음 짓고 있는 장면을 그림들은 묘사했다. 웃고 있는 시신은 썩어서 익명의 몸이 되고, 두 손을 흔들며 교황이나 극빈자나 왕이나 대장장이나 할 것 없이 빙빙 돌아가는 원무 속으로 다 잡아 끌어들이며 발을 쿵쿵 구른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
-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린 시절에 알고 싶었던 버전의 이야기다. 어린아이를 사랑과 죽음의 실상 앞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를 해피 엔딩이라는 거짓말에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다. ...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현명하게도, 해피 엔딩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보는 세계는 오직 한 가지 결말만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습들이 멸하고 우리 심장이 죽고, 해체되고, 절단되고, 처절한 고통을 겪는다."
- 가장 부유한 교회의 후원자들일수록 성인에 가장 가까운, 가장 좋은 자리를 원했다. 만약 교회 안에 시신을 묻을 만한 크기의 호젓한 땅이 있다면, 그 안에 시체가 묻혀 있을 게 확실했다. 과장이 아니라, 여기저기 어디에나 시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위치는 에프스 주위의 반원과 입구 현관이다. ....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베르나르디노 라마치니는 이렇게 불평했다. "교회에 수많은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들이 종종 열려 있어 이 지독한 냄새가, 다른 냄새와 혼동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풍긴다." 고 한다. 향, 몰약, 그 밖의 향기로운 냄새로 아무리 많이 훈증 소독을 해도 이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해롭다는 것이 명백했다.
- 불완전함을 환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로우며, 부패를 확실히 드러내며 상기시키면 얻어지는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자. 감각적 욕망에서 초탈하여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기를 바라는 불교 승려들은 썩어가는 시신의 모습을 명상하곤 했다. 구상관으로 알려진 이 명상은 부패의 여러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 우리는 모두 앞으로 시신이 될 사람들인 것이다.
-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과 무관하게는 살 수가 없으며, 죽음을 마주하는 세속적 방법을 계발하는 것은 매년 더 중요해질 것이다.
- '닌자 쿠튀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무한 수의(Infinity Burial Suit)]는 검은 천으로 가로질러 흰 실 자국이 나뭇가지 모양의 패턴으로 쫙 뻗어 있다. 이재림은 버섯 포자에서 그 실을 만들어냈다.
- <유혹에 대한 승리(Triumph over Temptation)>라는 제목의, 15세기 중반 독일 목판화가 있다. 한 남자가 임종을 앞두고 침상에 누워있다. ... 이 모든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죽어가는 남자는 지복에 넘치는 듯한 표정이고 내면의 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얼굴에 언뜻 어린 웃음이 보는 사람에게 지금 그의 생각을 말해준다. "아, 그래, 죽음. 이걸 맞아들이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문제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침착하게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이 목판화는 중세 후기에 인기 있었던 장르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즉 죽음의 기술을 표현한 것이다.
-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죽을 시간이 왔을 때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지만, ...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죽음과 맺는 관계는 오직 그 사람만의 것이다.
-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는 <뉴요커>에 실린 대단한 노화 관련기사에 이렇게 썼다. "노화에 대한 베스트셀러는 수십 가지나 있지만, 그 제목은 '내년에는 젊게', '젊음의 샘', '나이에 구애 없이' .... 같은 것이다. 우리가 현실로부터 눈을 돌린 데는 대가가 따른다...". ... "나는 존스홉킨스 대학교 노인병학 교수인 차드 보울트에게 물었다. 미국의 증가하는 노인 인구에 충분한 노인병학과 의사를 확보하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늦었어요.'."
- 불자들은 말한다. 생각들은 뇌에 맺힌 물방울들과 같다고. 같은 생각을 계속 강화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의식 속에 새로운 물길이 뚫린다. 마치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산의 한쪽 면이 침식되는 것과 같다.
- 옛날 이디오피아 인들은 고인이 생전에 고기잡이를 했던 호수에 고인을 안치하여 물고기들이 반대로 시체를 뜯어먹을 기회를 준다고 한다. 지구는 훌륭하게도 자기가 창조한 것에서 반대로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죽음과 묘지의 정적은 형벌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삶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시자와 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0) | 2021.04.17 |
---|---|
[케이틀린 도티]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From Here to Eternity (0) | 2021.04.16 |
[김민정]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 지속 가능한 1인용 삶을 위한 인생 레시피 (0) | 2021.04.15 |
[애슐리 브롬, 루시 앤젤맨] 우아하게 랍스터를 먹는 법 - 미식가를 유혹하는 음식 교양 사전 (0) | 2021.04.08 |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개정판) (0) | 2021.03.21 |
[오카 에리]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0) | 2021.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