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케이틀린 도티]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From Here to Eternity

일루젼 2021. 4. 1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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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케이틀린 도티 / 임희근
출판 :  반비
출간 :  2020.10.31


찾아서 읽는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선입견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책은 내가 읽고자 하는 목적에 맞춰 미리 찾아본 정보들을 통해 선택했을 테니까.

기대치 또는 예상치가 있는 상태에서의 독서는
대부분 책이 그에 합당한가를 판단하는 일이 된다.

정보 습득이나 공부를 위한 경우에는 효율적인 독서가 될 수 있겠지만, 경계가 애매한 책의 경우에는 독이 되는 일도 있다. 

 

이번 책이 내게는 후자의 예인 것 같다. 책 자체가 정보와 자료적인 책인지, 내가 그렇게 읽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장례 제의와 매장 의례를 직접 체험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내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

심지어 나의 부모님의 '당연'과 나의 '당연' 사이에도 갭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보다 넓은 관점에서 나와 주변의,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의 바른 '죽음'을 생각하고 회피하지 않는 것.

 

저자는 여전히 유쾌하고, 에피소드들도 즐거웠던 것 같은데 묘하게 에세이를 읽은 느낌보다는 요약집을 읽은 기분이 든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처음 접하는 정보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죽음의 문화들을 읽고 있노라면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과 제이콥 브로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가 생각나는데, 어디까지가 원형적이고 어디서부터가 관습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유의미한가? 틀림없이 스펙트럼으로는 존재하겠지만 그 경계를 뚜렷하게 긋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다음 저서인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금 판단을 해보자면 -이라기보다는 그냥 제목을 읽자마자 드는 생각인데- 고독사에 관한 책이겠지. 

세 번째 책을 읽고 나면 두 번째 책에 대한 미묘한 감상은 방향이 정리될 것 같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지만, 같은 주제에 관해 굳이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을 할 수 있겠는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사족1. 조상이 아니라 어센던트.
사족2. 아마도, 청소가 아니라 정화.
사족3. 재물이 아니라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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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죽음이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었다. 옛날에 장례를 치르던 방식, 그러니까 가족과 공동체가 이런 일을 전담해왔다는 것을 시민들이 단 한 세기 만에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지금이 19세기였다면 주세핀의 딸이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다루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 물론 벨리즈의 대도시에는 미국식 사업 모델을 채택해, 가족들에게 값비싼 마호가니 관이나 대리석 묘비 같은 것을 사게 하는 장의사들도 있다. 이와 똑같은 '현대화'의 물결이 벨리즈에 있는 병원에도 들이닥쳤는데, 이런 병원에서는 가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검이 이뤄지기도 했다. 루치아노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부검을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홈쳐 냈답니다.” 루치아노가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뭐라고요?" 내가 맞게 들은 거였다. 그들은 할머니 시신을 병원에서 홈쳤다. 시트 한 장에 둘둘 말아 시체를 빼낸 것이다.

"병원이 우리한테 뭘 어쩌겠어요?" 루치아노가 물었다. 바로 이 호수에 빠져 죽은 그의 친구 이야기도 똑같았다. 루치아노는 굳이 당국에 전화해서 익사를 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었잖아요. 그들이 무슨 상관이에요?"


- 루치아노는 자기가 죽으면 그저 구멍이나 하나 파서, 무덤 벽에는 나뭇잎을 늘어 뜨리고 동물 가죽을 수의 삼아 그 속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는 동물 가죽 수의를 직접 디자인할 계획이다. 그는 자기가 '항상' 친구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서로 묻곤 한다.

"야, 넌 죽은 다음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루치아노는 물었다. "당신 나라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 2000여 년 전,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다른 문화권의 죽음 의례에 대해 얼마나 기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이야기를 남겼다. 이야기 속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는 일단의 그리스 사람들을 앞에 불러 모은다. 죽은 이를 화장하는 관습을 지닌 그리스인들에게 페르시아 황제는 물었다. "얼마를 주면 죽은 조상을 먹겠느냐?" 이 질문에 그리스인들은 사색이 되어, 세상 어떤 것을 준다 해도 절대 식인종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황제는 죽은 이의 시신을 먹는 관습을 가진 칼라티안 한 무리를 불러 모은다. 황제는 물었다. "얼마를 주면 죽은 조상을 불태우겠는가?" 칼라티안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소리" 는 부디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이처럼 다른 집단이 죽은 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진저리 치는 태도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다.

- ... 웬다트 부족이 어찌 믿을 수 있었을까. 많은 죽음 의례가 종교에서 기원한 만큼 종종 우리는 다른 이들의 의례를 폄하하기 위해 종교적 믿음을 들먹인다. 불과 1965년에만 하더라도 제임스 프레이저는 <화장, 그것은 기독교적인가?>라는 글에서, 화장은 "야만적 행동"이며 “범죄를 돕는 행위”라고 썼으며, 제대로 된 기독교인에게 "친구의 시신이 지방이 줄줄 흐르고 살점이 지글거리는, 오븐 속에 든 소고기 구이처럼 취급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라고 했다. 나는 어떤 장례 풍습에 대한 우열이 수학(예를 들어 36.7%만큼 '야만적인' 행위)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 즉 자기 자신이 속한 문화만이 고귀하다는 믿음에 기반한다고 믿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죽음 의례들이 우리 것과 맞지 않을 때만 야만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노엘리 비알은 프랑스의 음식 체계에 대해 썼는데, 아마 이는 거의 모든 서구 국가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도살은 산업적이어야 한다. 즉 대규모에 익명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도살은 폭력적이지 않아야 하며(이상적인 것은 죽을 때 고통이 없을 것), 보이지 않아야(이상적으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즉 도살은 마치 도살이 아닌 것 같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그것이 아닌 것 같아야 하는 것이다. 

- 다만 여기에는 속임수가 있다. 망자의 날 퍼레이드에 영감을 받아 제임스 본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고 그 퍼레이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멕시코 정부는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실제 있지도 않은 퍼레이드를 보러 올까 봐, 자원봉사자 1200명을 뽑아 1년에 걸쳐 네 시간짜리 가장행렬을 복원했다. 어떤 사람들이 볼 때 이 퍼레이드는 매우 사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축제, 즉 죽은 자들이 돌아와서 산 자들의 쾌락에 빠진다는 1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친 망자의 날을 무신경하게 상업화하는 행위였다. 또 어떤 사람들이 볼 때 이는 망자의 날이 좀 더세속적이고 국가적인 휴일이 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전 세계 관중들 앞에서 멕시코의 역사를 대담하게 되새기는 과정이었다.

- "오!" 그녀는 뭔가 중요한 것을 기억해냈다. "깜박했는데, 우리 호텔 옆의 스타벅스에서 망자의 빵을 팔더라고요!" 

 - 시에서는 미라가 된 시체들을 60여년 동안 계속 파내, 덜 인상적인 미라들은 화장하고 정말 인상적인 미라들은 시립 박물관인 과나후아토 미라 박물관에 전시했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 미라들을 1970년대 말에 찾아보고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 체험이 어찌나 상처가 되고 무서웠던지, 나는 내가 죽은 뒤 시신 안에 철사를 넣고 버팀목에 받쳐서, 꼿꼿이 세워놓은 시체들과 함께 죽음의 전당에 남겨지는 악몽을 꿨다." 라고 썼다. 

이 미라들은 일부러 누군가에 의해 보존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중 많은 미라들이 입을 딱 벌리고 있거나 양팔과 목이 배배 꼬여 있었다.  

산타 페 델라 라구나는 고유한 피라미드 건축과 소중한 벌새의 깃털 모자이크로 알려진 원주민 푸레페차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다. 1525년에 천연두로 인구가 감소하고 강력한 아즈텍 족도 이미 스페인 점령군에게 졌음을 알게 되자, 푸레페차 원주민의 지도자는 스페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오늘날은 이 지역의 학교에서 푸레페차어와 스페인어를 둘 다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죽은 자를 환영하는 요소인 음악, 향, 꽃, 음식은 16세기 스페인 점령 이전에 원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쓰이던 것이다. 콩키스타 시대에 어느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는 원주민들이 만성절과 만령절 같은 가톨릭 축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썼는데, 이 축일들이 기존에 원주민들이 망자를 기리기 위해 지내던 축제를 완벽하게 가려주는 위장막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 시신은 공동의 뼈 클럽에 합류할 준비가 될 때까지 무덤이나 납골함 속에 임시로 머물러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무덤을 '재활용'하는 것이 스페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런 관행은 유럽 대부분에 퍼져 있는데, 무덤을 영원히 머물 집으로 보는 대부분의 북미 사람은 이를 보고 새삼 당황스러워한다.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에는 묘지로 쓸 땅이 거의 없다.

 

-  "공과금을 낼 때가 되면 내지요. 회사에서는 내가 돈을 내고요. 여기 식당에서도 먹었으면 돈을 내야 해요. 우리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설혹 죽음이 두렵다는 감정이 들더라도, 그 느낌을 그냥 느낄 수밖에요. 청구서가 날아오면 지불해야 하는 거죠.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겁니다.

- 우리가 어둠 속에 서 있는 사이, 야지마 스님은 입구에서 키패드에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한 2000개의 불상이 빛을 발하며, 리듬에 맞춰 생생한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 화장하고 남은 각각의 유해는 벽에 있는 수정으로 된 불상 하나 하나에 해당했다. ... 이렇게 하면 벽면에 환하게 빛나는 백색으로 눈부신 불상 하나만 제외하고, 온통 청색 불이 들어온다. ​

 

- "우리는 행동해야 했고, 뭔가를 해야 했죠. 일본은 어린아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고요. 가족들이 무덤을 돌볼 것이라 여기지만, 모든 이의 무덤을 돌볼 만큼 젊은 사람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합니다." 

- 아이마라족과 냐티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 사람들에게 혹시 냐티타를 집에 두거나 냐티타의 힘을 믿느냐고 불으면 아직도 “오, 아뇨, 아뇨, 아뇨, 냐티타는 무서워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남들의 눈에 타락한 가톨릭 신자로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이 관행에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있다.

 

- “최근에 나는 한 친구와, 우리는 가톨릭과 민속 신앙의 '혼합물'이 아니라는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어요. 그 둘은 끈끈하게 엉겨 붙어 있는 것에 가깝죠." 그는 두 손등을 겹쳐 요상한 괴물 같은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내 여동생의 사무실에는 아직도 그곳을 청소하러 들어오는 '야티리(지유자 혹은 병을 고치는 마녀)'가 있지요. 우리 아버지는 지질학자였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난 아버지와 함께 광산을 찾아가곤 했죠. 그런 여행 중 한번은 광부들의 요구로 라마를 제물로 잡아 바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엘 티오' 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거죠. 이러한 마법의 명맥이 아직도 도처에 이어지고 있답니다."

볼리비아에서만 두개골이 신도와 신을 이어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풍습을 멸시하는 가톨릭교에서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경우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이 성인들의 유해와 뼈를 1000년 이상 신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그 목적으로 보면, 내가 몇 년 전에 이탈리아 나폴리 여행길에서 만난 두개골과 냐티타의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1876년에는 시체가 빨리 파먹히는 것이 정상이있다. "파르시 교도들은 독수리들이 침묵의 탑에서 시체를 기다리고 있던 시절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라고 하버드에서 조로아스터 교를 가르치는 강사 유한 베바이나는 설명했다. "지금은 독수리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불 없이 화장하기가 힘든 것보다, 독수리가 없는데 독수리를 통해 시체를 처리하기가 더욱 힘들다.

 

- 1990년대 초반에 인도 정부는 병든 가축에 대해 디클로페낙 (이부프로펜과 같은 계열의 가벼운 진통제) 사용을 허용했다. 디클로페낙 덕분에 가축들의 발굽과 젖통의 통증은 완화되었지만 이 약물이 투여된 동물의 사체를 먹은 독수리는 간이 완전히 망가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썩어가는 고기도 삼키는 습관이 있을 정도로 튼튼한 위장을 지닌 독수리가 애드빌 비슷한 약 때문에 쓰러지다니, 불공평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 화장을 하자니 불을 피울 나무가 부족하고, 매장을 하자니 땅이 얼어붙은 데다 바위가 너무 많은 티베트 산중에서는 수천 년 동안 천장을 해왔다. 망자를 연꽃잎 자세, 즉 태아 자세로 만들어 천에 싼다. 불교 라마들이 시체를 위해 독경을 하고 나서, 그를 '로가빠' 라는 시체 부수는 사람에게 건네준다.

 

- 내 어머니는 최근 70세가 되셨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연습 삼아 미라가 된 어머니의 시체를 인도네시아의 타나토라자 사람들이 하듯이 무덤에서 꺼내는 상상을 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유해를 끌어안고 일으켜 세운 뒤, 죽은 지 수년이 지난 어머니의 눈을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해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제 내가 이런 식으로 과업을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례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유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슬픔 속에 가둬 두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젓가락으로 뼈 하나하나를 정성껏 집어 유골함에 담는 의식부터, 제단을 만들고 1년에 한 번 혼령을 부르는 의식이나 심지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깨끗이 해서 다시 세우는 일까지, 이런 활동은 유가족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이는 유가족이 슬퍼하는 데 도움이 되고, 슬퍼하는 것은 치유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의례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먼저 참석하라. 그러면 의례의 의미가 다가올 것이다.

 

 

- 의례란 내가 사랑하던 누군가를, 그로 인한 나의 슬픔을 환한 대낮에 꺼내놓는 것이다. 이웃과 가족이 함께, 공동체가 곁에서 지지해주는 가운데 어머니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다. 햇빛은 모든 것을 소독해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두려움, 수치심, 슬픔을 소독할 수 있도록 햇빛 속으로 끌고 나오는 어려운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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