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오노레 드 발자크] 곱세크

일루젼 2021. 5. 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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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노레 드 발자크 / 김인경
출판 : 꿈꾼문고
출간 : 2020.05.01



삼세판의 곱세크.
이런저런 사정으로 앞선 두 번의 시도에서는 일부를 읽다가 중단해야 했었다.
이번에야말로 즐겁게 완독.

사실 '중간에 끊지 말고 이어서 읽기'를 시도한 덕에 이룬 결실이다.
아니었다면 낯선 단어나 당대 풍속을 발견하면 그걸 찾아보다가 곁길로 새서 중도하차했을 텐데....
덕분에 전체를 읽어나갈 힘은 붙었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며 그려 읽기는 하지 못해 좀 아쉽기도 하다.

<고리오 영감>으로 유명한 발자크.
화려한 수사 속에 인간 군상과 행태에 대한 날카로운 칼날을 박아둔 작가.
나는 <연민>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를 살펴보다 그의 <발자크 평전>을 통해 처음 발자크를 접했다.
(사실 나는 <고리오 영감>을 아직 읽지 않았다.)

인물들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을 먼저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까 싶은 궁금증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드 레스토 백작부인은 고리오의 첫딸인 아나스타지이며 곱세크는 그 곱세크이다. 그리고 이후 중요하게 등장하는 데르빌. 데르빌과 백작부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된 것은 아니었으나 1835년 <고리오 영감>을 집필하며 수정되었다. 발자크는 [인간 희극]을 구상한 뒤 이전 작품들도 조금씩 수정하여 거대하게 연결되는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작품 속의 작품이기도 하며 하나의 세계이기도 한 [인간 희극]을 완성했더라면 현재 그에 대한 평가는 또 달랐을 텐데.

다시 <곱세크>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후에 수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불과 약 30세의, 갓 20대를 벗어난 나이에 집필한 작품이라고 보기엔 놀라운 부분이 많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 이 책은 단 하룻밤 동안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화자인 '데르빌'과 그 중심에 있는 '곱세크',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드 그랑리외 자작부인'이 핵심인물이다.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생활상,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찰과 고찰, 그리고 신랄한 듯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일침은 발자크의 삶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아직 환상이나 낭만이 녹아있을 법한 나이에 쓰인 글일 텐데....

물론 수정되지 않은 1830년의 초판은 보다 낭만적인 면이 두드러졌고 그로 인한 비판도 받았다고는 하지만, 수정되었다는 부분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놀라운 부분이 많다. 당대의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현대의 30대보다는 4-50대와 유사하다 하더라도.... 이제는 독자보다 어린 작가를 경험하게 되었다. 받아들여야 하지만 미숙한 나로서는 당황스러움이 앞선다.

발자크는 <신곡>이 신의 희곡이라면 자신은 인간의 희곡을 쓰겠다는 포부로 약 100여편에 이르는 <인간 희극>을 1부 풍속 연구, 2부 철학 연구, 3부 분석 연구의 3부작로 계획했다. 그리고 각 부는 6개의 장면으로 나뉘는데, 사생활, 지방 생활, 파리 생활, 정치 생활, 군인 생활, 시골 생활이다. <곱세크>는 1부 풍속 연구의 사생활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파리 생활이기도 하다. 발자크의 이 장대한 설정은 혁명과 왕정복고, 그리고 그 다음 시대의 흐름과 풍속까지도 세밀히 살펴 실로 '인간'을 그리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작가 본인이 자수성가한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의복, 식기, 예절에 대해 박식했을 뿐 아니라 법대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실제 소송 절차 및 사건, 그 배후에 숨겨진 사연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다양한 계층을 접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19세기의 풍속이 자연스럽지만 섬세하게 녹아있는 이 작품은 단어 하나까지도 곱씹어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에게는 샛길로 빠지게 되는 지뢰가 너무 곳곳에 숨어 있었음이다....

이 소설은 1829년 12월 31일 밤부터 1830년 1월 1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하룻밤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날 데르빌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1816년부터 현재(1830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로, 소설에서는 시점을 변경하지 않았음을 보이기 위해 " " 로만 표기한다. 즉, 약간의 희곡과도 같은 장치가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데르빌이 말하는 내용은 " "로 이어지고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발언은 다시 그 속에서 " " 로 등장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고 읽다 보면 그가 이야기를 끊고 현재 청자인 자작 부인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혼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의도된 장치로 보인다.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다. 되려 직접 보지 못했을 화자가 그 상황을 본 듯이 묘사하는 부분이 당황스러웠는데, 이는 '이야기'라는 형태가 가지는 과장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가 1830년을 시점을 잡은 이유가 있을까? <레 미제라블>의 1830년이다. 이때의 혁명으로 잠시 찾아든 듯했던 복고의 왕정은 무너지고 완전한 부르주아의 시대가 열린다. (루이-필립 왕조를 과연 왕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는 독일-오스트리아의 비더마이어와 동시대인 프랑스의 쁘띠 보뇌르이다. 같은 시대이기 때문일까? 잠시 살펴보았던 비더마이어 시대의 풍경이 국경을 넘어서서 펼쳐진다.

거울을 통해 나를 살피듯, 여러 작품에 녹아든 시대상을 겹치다 보면 하나의 상이 맺히기도 한다. 작품 자체로도 즐거웠고, 이전에 찾아보며 이해되지 않던 부분들이 더 깊게 이해되는 경험도 즐거웠다. 또한 작가에 있어서는 현재 읽고 있는 <해시시 클럽>에서도 만나고 있어 역시 반갑다.

곱세크라는 인물이 표상하는 "자본력"에 관해서는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렵겠다.
<곱세크>에 대한 리뷰는 좀 더 생각 정리를 하고 쓰는 것이 맞지 않나 싶어 미루려 했었는데, 작품 자체에 대한 감흥이 자꾸만 옅어져 추후 재독 하고 다시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급하고 미진한 부분을 감안하고 작성한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입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평면적이고 일관적인 인물이다. 역자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의 곱세크를 타락한 자본주의자로 보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물질주의의 본질이며 인물이라기보다는 속성에 가깝던 '곱세크'에게 인간의 본성을 부여한 부분이라고 본다. '드 레스토 백작'의 죽음 직전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과 겹쳐 읽어본다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해지리라 생각한다. 작가는 결국 '곱세크' 역시도 한 개체였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19세기의 통찰은 현시대까지도 꿰뚫고 있다. <곱세크>는 발자크 특유의 화려하고 만연한 문체도 많이 절제되어 있으므로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19세기와, 인간과, 자본주의에 조금이라도 연이 닿아있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현시대는 자본주의 시대이고 우리는 인간이므로, 결국 모두에게 해당된다.



- 1829년에서 1830년에 이르는 겨울 어느 날 새벽 1시, 드 그랑리외 자작부인의 살롱에는 가족 이외의 사람이 아직 두 명 남아 있었다. 괘종시계가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 그중 한 명인 젊은 미남자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를 태운 마차 소리가 안뜰에서 울렸을 때 자작부인은 남아 있는 사람이 '피케 카드'의 승부를 결정 지으려고 애쓰고 있는 자기 오빠와 가족의 친구 한 명밖에 없는 것을 보고서 딸 쪽으로 다가갔다.
(리뷰자 주 : 피케 카드는 가장 오래된 카드 게임의 일종이다. 스코파처럼 트릭테이킹 게임인데 2인용이다! 상세하게 쓰기에는 잉여력이 부족하다.)

- 딸은 살롱의 벽난로 앞에 서서 리토파니 램프 갓을 살피는 것 같았지만 실은 떠나가는 카브리올레 마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태도가 어머니를 걱정시킬 만했다.

출처 : Le Jardin d'Antoinette


- "소송대리인의 귀를 가졌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군요!"
(역자 주 : 현재의 제도에서는 이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증인, 집달리 등 법정에서 양측을 대표하고 소송 서류를 책임지는 법원 보조관의 하나"인 소송대리인은 변호사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와 달리 법정에서 변론은 행하지 않았다. 그 이외의 모든 소송절차상의 문제에서 소송당사자를 대리했으며,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의 일을 담당했다.)

- "내 인생만큼 빛나는 인생이 있겠나?"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의 눈은 빛이 났지요. "자네는 젊네. 자네는 혈기 왕성한 생각들로 가득하지. 자네는 벽난로의 불씨 속에서도 여자들의 얼굴을 보지만, 나는 그 불씨 속에서 그저 재가 보일 뿐이네. ... 인생이라는 것은 자신이 선호하는 환경에 능숙한 습관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는 나이가 결국 오고야 만다네. 그렇게 되면 행복이란 우리의 능력을 현실에 맞추어서 행사하는 데 있는 거지. ... "

- "유럽에서 경탄하는 것이 아시아에서는 벌을 받네. 파리에서는 악습으로 간주하는 것이 조레스 제도를 지날 때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네. 이 세상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 풍토에 따라 변하는 관습이 있을 뿐이네. ... 자네도 나만큼이나 오래 살다 보면, 한 남자가 관여할 만한 확실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물질적인 사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일세. 그 사물은 바로 '금'이네. ..."

- 이웃보다 그들이 단지 사흘 먼저 구매할 수 있었던 어떤 말이나 마차에 대해 거드름 피우거나 하는, 이러한 것들로 기뻐할 수 있는 자는 그저 그 멍청이들뿐이네. 이것이 바로 몇 마디로 요약된 자네들이 말하는 파리 사람들의 삶이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고 있는 곳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도록 하세.

- "사르다나 팔루스!"
(역자 주 : 데르빌이 입버릇처럼 혼자 욕으로 하는 말로 호사로운 방탕 생활로 일생을 보낸 고대 아시리아 왕의 이름이다. 소송대리인 치고는 매우 낭만주의적인 이 언사는 바이런의 희곡 <사르다나팔루스>와 들라크루아의 그림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의 유행에서 온 것이다.)
(리뷰자 주 : 들라크루아는 발자크와 로쟁 백작의 호텔에서 연이 깊다.)

- "젊은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좋네, 소송대리인 씨, 자네도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알아두어야 할 일인데, 서른 살까지의 사람이라면 그의 성실함과 재능은 아직 저당 같은 것으로 믿을 수 있네. 그러나 그 나이를 넘기면 그 사람은 더는 신용할 수 없는 거라네."

- 그러나 그처럼 강하게 담금질이 되고, 잘 단련된 영혼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장담합니다. 그에게 내가 빚진 돈을 완전히 청산하러 간 그날, 나는 말투에 주의하면서 물었지요.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나에게 그 많은 이자를 받게 되었는지, 또 친구인 나를 친절히 돌보아주면서도 무슨 이유로 완전히 무상으로 자선을 베풀지 않게 되었는지를요. '내 아들, 나는 자네가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한 것이네. 나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할 권리를 자네에게 제공한 것이지.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일세.' 이 대답은 다른 많은 말보다도 이 남자를 잘 설명해 줄 겁니다."

- 만약에 죽어가는 사람의 침대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장면을 보였겠습니까? 음모가 정교해지거나, 계획이 형성되거나, 모략이 꾸며지거나 하는 그 동기는 늘 재산이지요!

- "레스토 가의 문장은 검은 바탕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은으로 된 가는 띠가 달리고, 각각 검은 십자가 달린 금으로 된 방패가 나란히 네 개 있는 매우 유서 깊은 문장이야."
(리뷰자 주 : 가문의 문장은 그 가문이 결합한 가문들의 문장과 합쳐져 만들어진다. 따라서 이 발언의 의도는 가문 대 가문으로 비교 시 레스토가가 더 유서 깊다는 의미이다.)

- 발자크가 이탤릭 체로 강조한 '달 같은'이라는 형용사의 함의는 음산함과 관련되어 있다. 데르빌이 말하는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을 편찬하는 프랑스 한림원의 한 기관이며, 이 사전(6판, 1835년)은 달에 해당하는 형용사 lunaire의 본래 의미만을 수용하고 있다. 즉, 달처럼 둥근 얼굴이 아니라, 낮에 빛나는 해와 비교되는, 밤에 빛나는 달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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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 그랑리외 자작부인은 그 재산과 유서 깊은 가문의 이름으로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가장 유력한 부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집에서 파리의 일개 소송대리인이 부인과 그리도 친근하게 말을 나누고 자유분방한 태도로 처신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일을 설명하기란 쉽다. 전에 왕가의 일족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온 드 그랑리외 부인은 파리에 거주하러 왔는데, 애초에는 루이 18세의 왕실 세비의 재원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으로만 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 처지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소송대리인 데르빌은 공화국이 예전에 행한 드 그랑리외의 저택 매각에 관해 형식상의 결함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고, 그 저택이 자작부인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 자작부인이 소송대리인의 직을 팔고 법조계로 들어갈 것을 권했는데도 응하지 않았다.

 

- 이따금 나는 이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자문했던 적도 몇 번 있습니다. 만일 고리대금업자들이 이 사람과 흡사하다면 그들 모두가 중성일 거로 생각됩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어머니의 종교를 충실히 지키고 있어서 기독교도들을 먹잇감으로 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가톨릭교나 이슬람교, 브라만교 혹은 루터 신교로 개종한 걸까요?

(역자 주 : 어머니의 종교는 유대교를 암시하며, 유대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고리대금업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민족에게는 허가된다.)

 

- 역자 주 : 댄디즘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 18세기 말 영국에서 생겨났다. 물질적 속물주의로 [인간 희곡] 당대 사회의 신흥 부자들인 부르주아 은행가들은 쇼세당탱에 거주했다.

 

- 나는 이 표정을 보고 백작부인의 앞날을 읽을 수 있었네. 금발에 냉정하고 인정 없는 노름꾼인 이 미남자는 머지않아 파산하고, 백작부인을 파산시킬 것이고, 그 여자의 남편을 파산시킬 것이며, 그 자식들을 파산시키고 자식들의 몫도 먹어치울 거네. 그리고 아마 적의 한 연대에서 곡사포의 포격이 일으키는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파리의 사교계를 통해서 만들어낼 테지.

 

- 행복이란 말이네, 우리의 생명을 소모하게 하는 강렬한 감동이든가, 그게 아니면 일정한 시간에 따라 작동하는 영국식 기계처럼 굴러가는 규칙적인 일거리든가 그 어느 쪽에 있다네.

 

- 자네들의 사회질서 전체도 단적으로 말하면 '권력'과 '쾌락'으로 환원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우리는 열 명쯤 되네. 모두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왕들로 자네들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지. 인생이란 돈이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기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수단들은 언제나 그것의 결과들과 혼동된다는 점을 알아두게. 사실 자네는 결코 감정과 감각, 정신과 물질을 구별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금은 자네들이 사는 현 사회의 정신이라네.

 

- 우리가 카브리올레 마차에서 내렸을 때 그레 거리에 삯 마차가 한 대 나타났습니다. 그 젊은이는 매의 눈초리로 그 마차 속에 앉은 한 여인의 모습을 즉시 알아보았는데 그 순간 그의 얼굴에는 거의 야생적인 기쁨이 어려 있었지요.

 

- 드 트라유 씨는 고리대금업자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으려고 공손한 신하의 자세를 취했는데, 그 우아한 비굴함은 당신들도 매혹시킬 만한 태도였습니다.

 

- 이 노인의 기쁨에는 그 어떤 무시무시한 것이 있었지요. 그가 내 앞에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은 단 한 번 뿐이었습니다. 비록 그 기쁨의 시간이 순간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 그의 창백한 얼굴은 보석들의 광채에 너무나 잘 반사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얼굴을 지방 여인숙에서 볼 수 있는 초록빛이 도는 오래된 거울들과 비교하게 되었지요. 광선을 빨아만 들이고 반사하질 못하는 거울, 대담하게도 거기에 자기 얼굴을 비추는 여행객에게 중풍에 걸린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그런 거울 말입니다.

 

- "그렇지만 신문들은 몇 천 배나 더..."

"아니, 데르빌 씨!" 자작부인은 소송대리인의 말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다. "당신,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내 딸이 신문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그 귀족은 죽음의 문턱에 있네.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이런 사람은 슬픔을 없애는 방법을 알지 못하지. 역으로 슬픔이 자신을 죽이게 내버려 둔다네. 인생이란 하나의 일이며 직업이니,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네. 다양한 고통을 겪은 덕분에 그 인생이 어떤지를 알게 될 때는 그 사람의 기질이 강화되고, 일종의 유연성을 획득하게 된다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 감수성을 제어할 수 있거든. 그 신경은 일종의 강철로 된 용수철 같은 것이 되어서, 휘긴 하지만 꺾이지는 않거든.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인간은 소화기관만 좋다면 레바논의 삼나무만큼 장수할 게 틀림없지, 이것은 아주 훌륭한 나무야."

 

- 예전에는 훌륭하고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었던 그가 지금은 그 방의 울적한 광경에 만족해하고 있었습니다. 벽난로와 책상, 의자들에는 병에 필요한 물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지요.

 

- 이 보기 흉한 카오스의 하나하나의 세부에서 파괴라는 감성이 표현되고 있었지요. 죽음은 인간을 덮치기 전에 우선 사물 가운데에 모습을 나타냈던 겁니다.

 

- "바로 여기서 떠나가는 거지! 나는 카르폴로지를 하네."

 

- 고리대금업자는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작은 구멍으로 누가 왔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문을 열어주었지요. 서른다섯 살가량 되는 웬 남자가 들어왔는데, 그의 격앙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마 곱세크에겐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 인물은 간소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죽은 리슐리외 공작과 닮은 데가 있었습니다.

(리뷰자 주 : 이 당시가 1820년)

 

- 그는 사막의 광신적인 수행자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렇게나 뛰어나며 행복한 남자로 파리 사교계에 알려져 있었는데, 정신적 괴로움 때문에 이제 겨우 쉰 살이 되었을 뿐인 이 남자의 안에서 인간다운 감정이 모두 소거되었던 겁니다. 1824년 12월 초의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아들 에르네스트가 침대맡에 앉아 자기 쪽을 고통스럽게 응시하고 있는 것을 쳐다보았습니다.

(리뷰자 주 : 불과 4년 만에 35세처럼 보이던 46세의 남자는 겨우 쉰이 되었는데 삶을 놓고 퀭한 수행자의 모습이 되었다.)

 

- 그리고 역사적 인물인 탈레랑의 불가사의 한 면모와도 관계가 있는데, 주교였던 탈레랑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왕정복고, 루이 필리프 통치에 이르기까지 격동기에 줄곧 고위 관직을 지낸, 변신에 탁월하고, 냉철한 권모술수로 평생 권력과 돈을 손에 쥐었던 인물을 지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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