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길보라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1.05.20
이 도서는 출판사 동아시아로부터 제공받았음
시작하는 말
나는 '이길보라'라는 사람을 이번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굳이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이 책을 추천한 '이랑'의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라는 책을 매우 좋게 읽었던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끌어당겼다. 그것은 '이길보라'의 이야기였고, '코다 CODA'의 이야기였으며, '젊은이'들의 이야기였고 '한국'의 이야기이며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각의 개체이면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이며,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들을 공유한다.
때로 우리는 '내'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에서 낯섦과 동질감을 함께 느낀다. 낯설음은 개인의 세계를 확장하고 동질감은 나의 세계를 공고히 다져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제와 내일을 이어 말하는 오늘.
나와 당신, 우리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로 이어지는 이야기.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우리를.
그 목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기 전에,
이어서 말한다.
이길보라와 나에 대하여
내가 이 책을 통해 만난 '이길보라'라는 인물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은 사람이다.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글과 영상을 선택했고, 그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아티비스트(Artivist, Artist + Activist)이자 농인 부모를 가진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다. 이는 작가의 부모님께서 단순히 소리가 없는 세상을 사신다는 의미를 넘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자연스러운 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분들께 박수는 소리가 아닌 반짝임이며, 모자람 없는 완전한 세상 속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수화가 제1언어인 사람들을 농인이라 한다. 그리고 입술을 읽어 소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화인이라 하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청인이라 한다. 흔히 한국인이라면 한국어가 제1언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수화 수업을 들었다. 그때 수화가 공통어가 아니라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수화와 미국, 일본, 각 나라의 수화가 다르다는 것과 한국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할 뿐인 수지한국어와 대부분의 농인들이 주 언어로 사용하는 한국 수어는 다르다는 것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가를 읽으며 망연했다. 자막으로 표기된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고, 수화 통역사가 영상에 나온다고 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렇기에 인식하지 못한 부분은 공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에 대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을 느끼고, 그 다름을 인지하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자연스러움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의 편안을 공존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막막한 순간에서도, 나의 작은 시도는 그다음으로 이어질 것이고 끊어지지 않는 이어짐 속에 무언가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었고, 나와 다른 생각에서는 갸우뚱하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놀라기도 하며 듣고 보았다. 어쩐지 이길보라의 글은 '읽었다'가 아니라 '보았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
다름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동질감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다시 고쳐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당연스러운 편안함. 하지만 때로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알게되는 차가운 순간들 때문에 '인간관계'란 항시 어려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수와 다수의 역학관계는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다름'에 대해 생각했다.
오이와 생토마토를 싫어하던 한 친구를 떠올렸다. 익히지 않은 토마토에서는 비릿한 맛이 난다며 -사실 토마토에는 철분이 많으니 정확한 맛 평가다- 싫다고 했었다. 인구 전체를 보면 그 친구와 같은 사람은 소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은 아닐 것이다. 그 또는 그녀들에게 너희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생토마토를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으니 너희도 참고 먹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나에게 그들이 생토마토를 먹지 않/못하니 너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다름'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그것이 존재함을 아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었다. 때로 불편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하는지, 그것은 나의 '외부'에 있는지 '내부'에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자에게 완전히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지점에서는 나와 저자는 갈라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이길보라'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 순간과 시도를 마주할 때마다 희망이 생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각자가 가진 고유성을 인정하기에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가져다 쓰지 않아도 될 때, 사회의 '소수자', '마이너리티', '장애인'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다수'가 '소수'에게 매번 자신의 소수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된다.
나는 이 문단을 처음 읽고 '다수'와 '소수'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다수'와 '소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연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나를 중심으로 이어진 사회에서 '다수'가 숫자로 이루어진 '다수'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매번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의 '다름'을 헤아릴 수 있는 세상, 그로 인해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따스할 것 같다. 가불가를 논하기보다, 그런 꿈을 꾸어도 되는 삶이었으면 한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조금 움찔하게 된 문장도 있었다.
촛불 집회가 확산 및 확장되면서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등의 온갖 탈것이 거리에 등장했고 농인,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노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도 모였다. 기존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광장에 모인 만큼 모두가 동등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청인들에게 농인들의 세상이 낯설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실수와 오해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준비한 저자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부분에서도 조금 더 넓은 시야를 보여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한 문장 내에서 '농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시각장애인 외에 다른 표현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나는 듣는 자이며 말하는 자이고 보는 자이므로, 맹인과 시각장애인 사이에 어떤 다른 의미들이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 잠시의 불편으로 여전히 내가 모르는 세계들이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영역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저자에게 감사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가 수화를 글로 풀어 묘사해놓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그런 부분들을 보면 잠시 읽던 것을 멈추고 따라해보거나, 어려우면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문득 주석이나 첨부로 수화 동작을 그림으로 묘사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 불편함, 낯섦이 농인들이 느끼는 청인들의 표현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좀 더 뒷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사용한 표현들을 접하고, 그림 자료는 일부러 배제했겠구나 싶었다. 수화는 기호로 표현될 수 없음을, 그 동작의 형식과 형태뿐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도 하나로 '보이는' 언어라는 것을 외치는 저자의 문장을 보자 나의 짧은 생각이 민망했다. 어쩌면 나는 농인과 코다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알기 전과 후의 내가 조금은 다르다면, 이를 이어가는 그다음과 또 그다음은 서로 조금은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찾아본 자료 : 수어는 수형, 수위, 수동, 수향과 비수지 표현으로 구성된다. 수형은 손의 모양, 수위는 손의 위치, 수동은 형상을 그리며 움직이는 손의 동작, 수향은 손의 방향이다. 비수지 표현은 표정을 말하며 수어 통역 시 결정적이라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처음 알게 된 반짝 반짝한 사람.
이런 기회를 주신 동아시아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 이 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말하며 당신과 나의 서사를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 존 맥나이트는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혁명은 시작된다" 라고 말했다. 다름을 장애로 인식하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온다면 나의 농부모는 당신의 장애해방 서사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궁금하다. 당신이 말하는 장애해방, 농인의 눈으로 본 청인들의 비장애인 중심 사회.
-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농인 소녀, 어려서부터 부모와 수어로 소통하며 농문화 속에서 자라 온 소녀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키가 큰 갈대숲을 달린다. 나무 막대기를 든 손 아래로 갈대들이 누웠다 일어선다. 소녀는 방향을 바꾼다. 손이 닿는 시점에서 갈대는 누웠다가 소녀의 뒤로 하나둘씩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풍부한 이 장면은 농인에게 소리란 어떤 것인지, 음악은 어떤 개념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 보여준다. 청인으로 살아온 내게 '음악'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에게는 고유한 언어인 '수어'가 있고 '농문화' 속에서 살아간다고 긍정 하는 순간 그는 '농인'이 된다. 한국에서는 '농인'과 '청각장애인'을 정체성에 따라 분리하여 표기한다. 미국에서는 병리학적 관점의 'deaf'가 아닌 농인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강조하는 뜻으로 대문자 'D'를 사용해 'Deaf'라고 표기한다. 한국인이 'korean'이 아니라 'Korean', 일본인이 'japanese'가 아니라 'Japanese'인 것처럼 말이다.
- '나'와 '너'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상상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서 '너'가 되어보아야 한다. 당신과 나의 차이가 틀리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지난하고 어렵겠지만 '나'와 '네'가 함께 할 수 있는 공존의 바탕이 될 것이다. '나'는 '너'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러나 되어보려는 시도와 노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학교에서는 외국인을 만날 때 상대방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해야 한다고 배운다. 외국인뿐 아니라 타인에게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농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하고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 나와 다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타인이다. 이상하고 특수한 곳에서 온 '언터쳐블 외계인'이 아니다. 답은 간단하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나'와 '너'가 되어볼 것, 그래보려고 노력해볼 것. 타인을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무언가를 선언하는 사람들, 발화되지 않은 것을 발화하는 일, 선언하는 행위로서 말해지지 않은 것을 실재하게 하는 일.
- 세상은 변하고 있고 우리는 "이기고 있다". 나보다 앞서 간 이가 해온 말과 행동 위에 내가 서 있다. 내가 하는 선언과 행동 위에 나중에 오는 이가 서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의문을 품고 용기를 내어 말하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지형을 바꿔나간다. 당신과 나의 말하기는 판을 바꾸고 뒤집는 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이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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