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일루젼 2021. 5. 2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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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미예
출판 : 팩토리나인
출간 : 2020.07.08


시작하는 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가볍게 통근길에 읽으려고 골랐던 책인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살짝 아쉬울 정도.
내가 취향이 변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 소설이 딱 맛깔나게 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적당하게 생각해 볼 거리들, 유쾌하면서 모나지 않은 캐릭터들, 늘어지지 않게 끊어지는 개개의 에피소드들.
그 중심에 어느 정도 경험담이 묻어나는 루시드 드림과 꿈에 대한 표현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기도 했고,
몇 년 정도 지나 예전에 꾸었던 꿈의 뒷부분을 이어서 꾸기도 했고,
같은 꿈속에서 다른 등장인물이 되어 알지 못했던 비하인드 퍼즐을 맞추고 펑펑 울기도 했었다.

아직은 정말 깨고 싶을 때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깨는 정도지만...
글쎄. 꿈이란 참 신기한 영역이다.  


리뷰


처음에는 텀블벅에서 펀딩으로 진행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제목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2019년 가을에 진행했었고 그 후 약 1년의 시간이 지나 ISBN을 발급받아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된 작품.

이전 펀딩 작품을 읽어보지 못해 비교는 어려우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읽으면서 느낀 건 상당히 매끄럽다는 느낌이었다. 가벼운 듯한 이야기일수록 기본 설정이 틀어지면 흔들리게 마련인데, 차라리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조금 있더라도 (이 작품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기본 설정 안에서 깔린 떡밥이 제대로 회수되는 걸 보면 묘한 쾌감이 생긴다. 이 작품은 적절히 일상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재미가 있었고, 전 연령대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인 작가라는 설명이 있어서 회사를 다니면서 작품을 준비한 줄 알았는데, 지금 리뷰를 쓰면서 찾아보니 퇴사 후 1인 출판사를 준비하며 내놓은 작품이라고 한다. 집필 활동은 직장과 병행했지만 좀 더 작품에 매진하고 싶어 퇴사했다고. 막상 퇴사하고 나니 방황기가 찾아와 후회하기도 했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첫 작품이 주목받은 만큼 기대의 무게가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다감한 이야기를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의외로 전혀 다른 장르에서 빛나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잠들어야만 갈 수 있는 세계.
그 세계가 현실인 주민들은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꿈을 판매한다. 손님들에게 어디에서도 체험하기 힘든 생생한 꿈을 선사하기 위해 꿈을 만들어내는 '꿈 제작자'들과 그 꿈을 받아 진열하고 판매하는 '꿈 판매자'들.

매일 만나지만 매번 아무 기억을 하지 못하는 손님들은 때로는 스스로 고르고, 때로는 추천이나 선물을 받아 꿈을 꾼다.
꿈 값은 깨어난 손님들이 그 꿈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의 일부를 후불제로 받게 된다. 어떤 꿈은 기분 좋은 활력을 주기도 하고, 어떤 꿈은 괴로운 기억을 떨쳐낼 연습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꿈은 꿈이다'는 신념을 가지고 손님들이 현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신조로 운영하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 소설은 그 백화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전제이기 때문에 어쩐지 정말 있었으면 싶어지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하지만 동화 같기만 하다고 넘기기엔 적당히 현실의 양념이 뿌려져 있어서 더더욱 이런 일이 있었으면 싶어지는 이야기였다.

오늘 밤은 모두 행복한 꿈을 꾸셨으면.

잡생각


나에게는 세부 설정을 찾아보려 하는 습관이 있는데, 사실 그리 꼼꼼하거나 섬세하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궁금해하곤 한다.
딱히 그럴 필요가 없을 때 오히려 더.

손님들은 잠 속에서 꿈을 구매한 다음 다시 꿈을 꾸러 간다. 그렇다면 백화점은 잠에 드는 과정 중에 거쳐가는 마을인 걸까?
포장된 꿈상자를 들고 가는 곳은 어디일까? 꿈은 마시는 걸까, 상자를 열면 팍! 펼쳐지는 걸까?
꿈을 꾼 뒤에 다시 돌아갈 때는 마을을 거치지 않는가? 그럼 꿈을 사서 다시 몸으로 돌아가서 꾸는 걸까?

그럼 이미 잠들어서 온 세계의 주민들은 잠들거나 꿈을 꿀 때 어디로 가는 걸까? 그들도 꿈을 사서 꾸는데.

만든 꿈이 상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래되면 색이 바래거나 부분 부분 흐릿해지기도 한다고. 어떤 물질로 만드는지, 똑같은 꿈을 한 번에 몇 개까지 만들 수 있는지, 한 번 만든 꿈은 제조법대로 다시 만들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말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절벽 위에서 날아가는 독수리가 되는 꿈'을 꾸기 위해 직접 절벽으로 갔던 킥 슬럼버의 예시를 보면, 아마도 스스로 영화 제작처럼 직접 세세하게 상상해낸 환상이나 의도대로 꾼 꿈을 희석해서 나누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부분이 다뤄진 연결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 싶다가도, 또 너무 설정이 들어가면 환상적인 느낌이 줄어들 것 같기도 하다. 흠. 하지만 역시 궁금한데.

꿈값으로 받은 감정들은 은행으로 가지고 가 예탁하며 그 세계의 화폐인 고든으로 교환한다. 감정들은 조금씩 섞어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뿌리기도 하는 등 용도가 다양하다. 추출되어 모인 감정들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걸까? 꿈은 감정들로 만드는 걸까?



발췌


- "자극적인 꿈을 파는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어요. 달러구트 님께서도 일간지 '꿈보다 해몽'의 인터뷰에서 언급하셨죠. 몇몇 꿈 상점들은 충분히 잔 사람도 더 자게 만들고, 쾌락만을 좇아 꿈을 사러 오게 만든다고요. 하지만 달러구트 님의 꿈 백화점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어요. 필요한 만큼만 꿈꾸게 하고, 늘 중요한 건 현실이라 강조하시죠.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도 딱 그 정도일 거예요.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 그래서 여기에 지원했어요."

- "연구하다 보면 진짜 예지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앞일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에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요!"
"연구하는 건 네 마음이지만..., 그걸 연구하느라 인생을 허비한 사람이 여태껏 얼마나 많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네가 생각하는 대단한 미래는 여기에 없단다. 즐거운 현재, 오늘 밤의 꿈들이 있을 뿐이지."

- 꿈속의 그는 순식간에 일어난 장면 변화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 남자가 꿈에서 깬 것은 바로 그때였다. 땀에 젖은 이불이 축축했다. 남자는 참았던 욕을 쏟아부으며 일어났고, 3초 만에 '진짜 현실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휴... 역시, 꿈이었어.'
꿈에서 깨고 꿈속의 상황을 다시 더듬어보면 모든 장면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꿈속에서만은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 남자는 선택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그는 나이에 맞는 평범한 삶을 포기했다.

- 매카트니를 사로잡은 걱정은, 다른 누군가의 곡을 들었던 것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었다가 다시 떠오른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의 벤젠고리 구조론은 유명하다. 케쿨레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꿈을 꾸면서 벤젠의 구조를 생각해냈다는 일화다. 그간 분자 구조가 직선 형태일 것이라는 종래 통념에서 벗어나 고리 모양을 생각해낸 것이다.... .

- "그뿐만이 아냐. 사실 쟤는 파는 것보다 빼돌리는 게 더 많을걸. 달러구트 님이 그걸 모를 것 같니?"
"그럼 왜 계속 일할 수 있게 봐주시는 거예요?"
"그게 말이지. 모태일이 찜하거나 빼돌리는 꿈들은 꼭 히트를 하거든! 쟤는 진흙더미 속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재주가 있어. 작년에는 모태일이 어느 이름 없는 신인 제작자의 꿈을 골라서 가져갔었거든. 사람들이 다 상품권을 왜 그런 데 쓰냐고 비웃었는데, 그게 꽤 대박을 터트렸지 뭐야."

- "스승님의 이 꿈이 얼마나 긴 꿈인지 궁금하지 않아요?"
"얼마나 긴 꿈이죠?"
"자그마치 50년이에요, 70년. 믿어지나요? 그는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70살 평생을 꿈에 담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물려주셨죠. 난 가끔 스승님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저 꿈을 열어서 꿔 버릴까 생각해요. 그럼 그가 날 처음 봤던 순간부터, 굉장한 꿈을 만들어냈던 노하우까지 전부 엿볼 수 있겠죠."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한 번 꾸고 나면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

-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지는 몰라도, 요즘 사람들은 타인과의 비교를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게 하는 면이 있어요. 물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죠."
오트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내 삶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건 분명 문제가 있어요. 이건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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