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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투루넨, 마르쿠스 파르타넨] 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일루젼 2021. 6. 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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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리 투루넨, 마르쿠스 파르타넨 / 이지윤
출판 : 지식너머
출간 : 2019.10.23



재미있었다. 가볍게 읽기에 아주 좋았던 책. 
유쾌하게 읽었다. 

처음에는 인문 교양서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저자들의 의견이나 해석이 많이 들어간 편이었다.

이 책은 지켜야 할 매너를 나열하는 사전식 도서는 아니다. 당대의 풍속은 최대한 생생하게 전하려 노력하되, 어째서 그런 형태의 예법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앞뒤 전후 맥락을 따져 풀어내는 책이다.

 

적당한 유머도 곁들여져 있는데, 공동저자들이 어떤 식으로 작업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챕터를 나누어 썼는지, 집필과 감수를 나누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나 읽는 동안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굳이 꼽아보자면 마지막 두 챕터는 좀 겉도는 느낌이긴 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태양왕 시기의 파리에 대해서는 조금은 각오를 하고 읽었는데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향수와 화장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 가발 속에서 생쥐가 나왔다는 괴담(또는 사실)의 시대임을 고려해도 좀 괴로웠다. 
모든 시대에는 그 나름의 장단과 낭만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지금에 존재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씻고 살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문화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는 종종 이 격언이 떠오른다. 무엇인가를 접하고 바라볼 때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벗어두고 그 안에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즐겁게 읽고, 교차검증이 어려울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기억해두기!)

 

 

 


 

- 이 책을 쓰는 데는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대표작인 <문명화 과정, 매너의 역사>가 중요한 영감을 줬다.

 

- 원래 인사는 안전장치이자 폭력 방지책 역할을 했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인사에는 그 상황이 품고 있는 사회적 예측 불가능성을 완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 앙투앙 드 쿠르탱이 쓴 1671년 작에는 '사교의 요령'에 해당하는 대화 주제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이에 따르면, 교양 있는 사람은 절대 진부한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어려워할 것 같은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적이거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는 함구한다. 실연이나 재판 과정, 전쟁, 죽음 같은 슬픈 주제는 무조건 피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삼가고, 다른 사람의 흠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 

 

- 세계가 자기네 저녁 식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건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생각 중 하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음주 습관이나 식문화는 미덕으로 여기면서, 이웃의 습관에는 자꾸만 천박하다거나 야만적이라는 꼬리 표를 갖다 붙이려고 한다.

 

- 영국에서도 공공연하게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아 졌다.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영국 신사'는 주점에 모습을 나타낼 수 없게 됐다. 주점이 노동자 계급이나 드나드는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악마의 삼지창'으로 불리던 포크는 서유럽 교회가 오랫동안 사용을 금지했다. 16세기까지도 이탈리아 몬테베르데의 왕자는 세 번씩 기도를 올리고 나서야 포크로 밥을 먹었다. 하지만 이는 예외였고 이미 이탈리아와 프랑스 왕실에서는 포크를 흔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새로운 문물 다루는 법을 배우는 데 연습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였다. 포크를 프랑스에 들여온 헨리 3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궁궐 사람들이 포크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접시에 담긴 음식의 절반은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반면, 영국인들은 17세기 무렵까지 포크를 미심쩍게 생각했다. 식사 때 항상 포크를 사용했던 한 영국인은 자기 나라 사람들로부터 '푸르치페루스 furciferus'란 별명으로 불리며 경멸을 당했는데, 이는 '포크를 들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웃는 것은 궁정 광대의 전통에서도 드러난다. 규정상 궁정 광대는 난쟁이나 정신 이상자 혹은 다른 어떤 방면에서 비정상적으로 판명된 사람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군주 로렌조 드 메디치 Lorenzo de' Medici의 광대였던 프라 마리아노 Mariano는 타고난 익살과 함께 괴이한 식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닭을 응접실으로 갖고 와 식탁 위에서 잡아 죽였다. 그러고선 그 피를 온몸에 발랐다. 식사 중에는 다른 광대들을 불러다 격투를 시켰는데, 그들은 식기를 무기로 싸워야 했다. 

 

- 광대들은 일반적으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미쳤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내뱉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광대들은 일종의 심신 상실의 상태로 여겨졌다. 정신이상자는 모욕과 비웃음을 사긴 했어도 공동체에서 내쳐지진 않았다. 어떤 광대들은 교육을 받고 똑똑했지만, 실제로 정신병에 걸린 광대들도 있었다. 당시 중세 사람들은 정신병에 별 다른 선입견이 없었다. 수용시설이 없었으므로 어디서나 미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병자들은 전문 광대가 되어 귀족들의 성 안에 살며 오락을 담당했다. 귀족들이 미친놈들을 고용했던 셈이다.   

 

- 19세기 초가 되자 처형 장면은 점점 대중들의 시야 밖으로 밀려 나갔다. 공개 처형은 더 이상 대중들을 위한 수난극이나 매력적인 공연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부감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 철학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주장에 따르면, 공개 처형 풍습은 관중들을 잔인함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겁을 주기 위해 처형 장면을 공개했던 상류층의 의도는 빗나갔다. 

 

-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난 뒤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좀 더 조심히, 그리고 절제하며 대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국가 권력의 중심, 즉 궁궐에서부터 확연하게 나타났다. 궁궐 사람들은 정확한 예법에 통달해야만 했다. 엄격한 궁중 에티켓이 만사를 규정했다. 궁궐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그 에티켓에 통달하는 것이었다. '에티켓'은 원래 프랑스 궁궐에서 입장을 허가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름표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점차 '사회가 허용한 태도'를 일컫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루이 14세가 이 개념을 발명한 장본인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 개념이 확장할수록 자신의 영향력은 커지고 귀족들은 쇠퇴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 오늘날 사람들은 기사도라고 하면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정중한 태도를 규정하는 규칙을 떠올린다. 하지만 11세기 기사들이 여자를 대했던 태도를 배려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더보기

- 예절을 가르치는 전문가들이 쓴 안내서의 대부분이 상류층의 자녀교육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드 라 살을 비롯한 몇몇 교육학자들은 낮은 사회계층에도 예절이 확산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쓴 소책자들은 주로 식기 사용법이나 사회에서 적절하게 처신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가정용 핸드북으로 활용되었다.

 

- 오늘날엔 식탁은 물론 집안의 다른 곳을 청결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를 위생에서 찾는다. 적어도 어른들은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중세와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겐 위생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 깨끗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중세 초반까지는 식기가 없고 손가락을 이용해 식사했기 때문에 식전 손 씻기가 매우 중요했다.

 

- 어디에나 배설물이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배 물을 아무렇지 않게 다뤘다. 오늘날 관점에선 아무렇지 않아도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하물며 어떤 독특한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  이로부터 2백 년간 유럽에는 사회 최상류층도 개인의 청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했는데, 그마저도 '필요하면 하고 아니면 건너뛰는' 식이었다. 손과 얼굴만 매일 씻으면 그만이었다. 식기가 들어옴에 따라, 사람들은 식전에 손을 씻는 것마저도 그리 중요치 않게 생각했다. 영국은 위생 관념이 대륙보다도 떨어졌다.

 

- 새로운 위생 관념을 사회 전반에 안착시킨 건 도시의 시민계층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통해 더 낮은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그래도 일반 민중들은 특정 부위 몇 곳만 씻었다. 손은 자주 씻는 편이었고, 얼 굴과 치아, 적어도 앞니는 매일 닦았다. 반면 발은 한 달에 한두 번만 씻었고, 머리카락은 감지 않았다.

 

- 일반인들은 사실상 위생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훌륭한 외모라고 하면 곱게 빗겨진 머리카락이나 샤워코롱, 혹은 세련된 매너를 떠올렸다. 프랑스 소설가인 질 르나르 Jules Renard가 설명하길, 19세기 유명 신사였던 라고테 Ragotte에게 위생이란 수프를 점잖게 먹는다는 뜻이었다 한다.

 

- 옛날엔 이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운다고 해서 난처할 게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울 수 있는 능력은 연민과 품위의 증거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지체가 높은 사람일수록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눈물이야말로 엘리트 계층이 '감정적일 수 있는 특권'을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였다.  당시를 지배하던 사고방식은 이 특권은 타고 나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의 땀이나 짐승들의 배설물과 다르게 눈물은 귀족계층의 감수성을 나타내는 정결한 분비물로 대접받았다.

 

- 15세기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지역 도시 몽스의 주민들은 돈을 모아 강도 한 명을 보석으로 꺼냈다. 그 의사 지를 찢어 죽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동시대인의 중언에 따르면, 민중들은 이 사건을 너무 즐거워한 나머지 "마치 죽은 예수가 다시 깨어난 것"보다 더 기뻐했다고 한다. 

 

- 수많은 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멀쩡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일상을 보여주며 웃음거리로 삼는다. 이런 형식 중 어떤 것들은 경쟁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참가자들에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임무를 강요한다. 여기서 터져 나오는 시청자들의 웃음은 분명히 잔인하다.

 

- 웃음 속에는 섬뜩한 무언가가 들어 있기 때문에 웃음은 광기와 직결된다. 누군가가 버스에 혼자 앉아서 울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저 그 사람이 슬픈 일이 있겠거니 한다. 반면, 누군가 혼자서 웃고 있으면 사람들은 당장 그가 미친 게 아닐까 의심하고 본다.

 

- 이후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도 웃음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웃음의 이면에는 언제나 일종의 비밀스러운 유대감이 숨어 있다. 심지어 함께 웃는 사람과 공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실제 웃음이든, 웃는 상상을 한 것이든 간에. (…) 웃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웃음을 본래의 환경으로, 즉 사회 안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 그런데 공동체가 커짐에 따라 적과 친구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이 소수와만 좋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심리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울타리를 친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 

 

- 하지만 이와는 상반된 주장도 있다. 어떤 커다란 그룹의 일부가 되면 사람은 관계의 공포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군중과 권력을 연구해온 엘리아스 카네티 EliasCanetti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정반대인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모하는 독특한 상황을 발견했다. 몸과 몸이 붙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집단 안에서는 갑자기 그 집단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순간 두려움은 힘으로 바뀌고 군중은 공격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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