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신미경]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수집 에세이

일루젼 2021. 7. 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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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미경
출판 :  상상출판
출간 :  2020.03.23


 

저자가 원고를 집필하던 시기에는 아직 코로나가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쓴다는 언급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이제는 변화한 '일상'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마음 한 켠이 서늘하다. 

힘든 시기지만 이런 순간에도 작은 웃음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간이니까 더.

 


 

저자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혼자의 가정식>을 읽었었다.

그때는 담박한 느낌이 좋은 사람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에세이를 읽으며 혼자 내적 친밀감을 많이 느꼈다. 

본문 중에서는 그런 동질감도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감정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내 주위에는 각자의 취향은 다를지언정 책을 자주 읽는 지인들이 더 많은 편이다. 

자주 소통하는 사람들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평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항상 '나'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이미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유사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위안을 얻으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드러누워 있는 어느 주말에, 기분 좋게 읽었다.

 

 


 

- 예전에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몰랐고, 남들이 욕망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드러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안 해본 게 너무나도 많은데 아주 작은 경험만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라 애초에 선을 그을 수 없다. 남들이 별로라고 했던 것도 내겐 좋을 수 있고,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일 중 결과적으로 공허만 남는데도 습관이 되어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르륵 써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것도 같지만.

(리뷰자 주 : 반가워라. 보편적인 이야기라면 그건 그것대로 반갑다.)

 

- 좋아함이 기호를 넘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될 때 자신만의 견고한 취향이 탄생하는 것처럼. 이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기에 남들의 기준은 참고할 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 작가 수전 손택은 베니스에 갈 때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읽을 서너 권의 책을 포함한 '작은 베니스 키트'를 들고 간다고 했다. 도대체 작은 베니스 키트에는 책 말고 또 무엇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누군가의 커다란 생각보다 늘 이런 사소한 것들이 궁금하다. 그 사람의 작은 세계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취향적 소지품. 한때 나는 언젠가의 베니스 여행을 위해 여러 작곡가의 바르카롤(Barcarolle)이라는 뱃노래 음악을 모았다. 그 작은 베니스 키트에 음악도 있었을까.

 

- 최소한 나를 만족시키는 일. 일 할 때 언제나 영적 지도자인 람 다스(Ram Dass)의 말을 기억한다.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그 결과에는 집착하지 말라."

 

- 책을 편식하는 건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다. 3년간 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준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담아 먹는다. 물론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세상에는 수많은 지적인 책들이 존재하지만, 나는 감히 그런 이름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요, 책이라고 으스대듯 말할 수없다. 내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이 달라지듯 내가 읽은 책이 내 사고의 토대가 되었을 테지만 이제까지 읽은 어떤 책도 완벽하게 내 것으로 흡수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특히 지적 수준이 뛰어난 책은 내게 세상의 힘겨움을 보탰을 뿐이다. ... 어려운 책은 그 책의 발판이 되어준 기초지식을 미리 닦아놓은 다음 읽어야 비로소 이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꼭 기초, 중급, 고급으로 나누지 않더라도 갑자기 흥미가 생긴 분야와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 보면 연결고리가 생기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  한 가지 주제를 릴레이로 읽다 보면 언젠가는 깊은 지식을 쌓을 수도 있을법한 책 중독자의 막무가내 독서법은 내겐 앞으로도 짊어지고 살아야 할 습관이자 취미. 나는 책을 먹고 산다.

 

-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만한 부분이 전무하다 할 정도로 아웃사이더 취향이 강하다. 그래서 10년에 한 번 정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내적 동질감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왜 같은 부류라며 호들갑 떨지 않느냐면, 유별남이 아닌 개인의 기호 차이에 불과하다는 인정이 내겐 중요했듯이 상대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 '나와 다르다(그래서 같아져야 한다)'가 아닌 '나와 다르다(그러니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는 접근. 자신과 비슷하다는 동질감, 공감을 얻고자 한사코 싫다고 했던 내게 커피와 술을 맛보게 하려 설득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같은 걸 좋아하거나 싫어하면 타인과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다. 특히 먹는 부분이 가장 크다. 그들은 모를 거다. 내가 한때 어울리고 싶어서 술도 마셔보려 했고 고기도 먹어보려 노력했다는 걸.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술을 끊어, 고기를 끊어. 몸에 안 좋아”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는 걸. 보편적인 타인의 취양에 어느 하나 들어맞지 않아서 서글프다. 그러나 확고한 기호가 만들어낸 나만의 취향, 남들과 다른 선택이 나를 개성 있는 한 사람으로 만든다.

 

- 내게 좋은 사람은 나에게 안부를 묻고, 무엇보다 서로 기꺼이 시간을 내서 만나는 사람이다.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 맛있는 식사를 나눈다. 날 것의 속사정을 캐내려 하지 않고 어두운 감정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한다. 

가식적인 관계가 되지 않느냐고? 글쎄. 어쩌다 바닥을 봐버린 사람은 결국 서로 불편해졌던 기억. 약점을 공유하는 게 사람과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일일까? 나는 모르겠다. 어릴 때와 달리 모든 걸 터놓고 지내는 건 부담스럽다. 어른이 되어 만난 사람들은 평판에 신경을 쓴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너만 알고 있어 (모두에게 소문을 내주렴)'란 말로 시작하는 대화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이 말을 할까 말까 했는데'라고 운을 떼는 말도 참는다. 입에서 걸리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과 어울린다. 가까울수록 예의와 배려, 선을 넘지 않는 것. 편안한 사이여도 지킬 건 지킨다. 내가 계속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들이다.
 

- 그러고 보면 유독 담백한 사람에게 끌린다. 과장 없이 말하고, 자신의 의견은 있되 상대에게 바라는 건 없다. 무엇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머리 굴리지 않는다. 사사로운 욕심 없는 사람은 쉬이 만날 수 없다. 주변에 쉽게 찾아볼 수 없으니 귀한 사람이다. 한때 나는 지적이고 고상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 우아해 보였다. 훌륭한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몸에 밴 고급 취향이 기본인 사람. 그런 존재는 동경하는 이에 가까웠다. 이제 그런 외적 조건에는 잠깐의 호기심만 깃든다. 대신 내 취향의 성품을 가진 이를 만나면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근거 있는 긍정으로 가득 찬, 담백한 마음을 가진 나의 이상형, 이 모든 건 실은 내가 되고 싶은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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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난 통장, 망가진 건강으로 고생했던 과거가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길을 잃었을 때 무작정 시도한 미니멀 라이프에서 답을 찾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적게, 바르게'라는 자신만의 기준이 담긴 최소 취향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중에도 가끔 예측 불허의 일이 생긴다. 결국, 산다는 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임을 깨달은 후, 흔들리는 자신과 잘 지내고 있다.  

 

- 물건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자 내 몸과 마음을 편안히 돌보는 데 신경을 쓴다. 친절과 긍정을 가져온 운동과 좋은 식사, 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지는 이유다. 생활과 건강에서 최소 취향이 확고해진 뒤 내가 집중하는 건 배움. 머릿속에 든 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고 평생 가져가는 거라 하지 않던가. 물건보다 경험을, 경험보다 배움과 깨달음을 얻으며 충만함을 느낀다.

 

- 나는 이 모든 사소한 선택이 나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과정임을 안다. 

물론 평생이 지나도 나는 나를 모를 거다. 그저 미스터리한 나에게 호기심을 잃지 않고, 지금 관심 가는 것에 몰입하며 나와 잘 지내자는 마음뿐이다. 지금 내가 빠져 있는 것. 이 책에 담긴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지극히 사적인 기호보다 균형 잡힌 일상을 가꾸기 위해 내 마음이 나아가는 방향을 기록한 것에 가깝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 손을 뻗었을 때 필요한 게 즉각 있다면 편안함과 쾌적함이 배가 된다. 건조한 겨울, 집에서 자다가 목이 마를 때 마실 물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고, 영화를 보기 전 간식거리도 옆에 잘 준비되어 있을 때 나는 흡족하다.

 

-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느 정도의 수준이면 만족할지 결정하는 건 자신이다. 한 사람에게 적정한 물건의 양은 본인 빼고는 아무도 정할 수 없다. 많은 걸 갖추고 살지 않지만,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끼지 않는다.

 

- 나의 욕망은 그들이 가진 이미지였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걸 돋보이게 만드는 건 나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나보다 아름다운 타인의 선택을 따라 하는 건 손쉽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대부분이 감탄하는 인기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거야말로 가장 쉽게 타인의 욕망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같았다.

 

- 이제 유행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참고만 한다. 남을 따르기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분별력이 키워진다.

 

- 싸고 무이자 할부가 길다는 이유로 홈쇼핑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자꾸 주문해 쌓아 두고, 돈이 없는데도 명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세일한다는 이유로 십여 벌이 훨씬 넘는 옷을 사며 100만 원이 넘게 돈을 쓰고 태그도 떼지 않고 쌓아두는 것처럼.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어둡고 밝은 양면이 있기에 쇼핑은 제대로 하면 실제로 상처 난 마음을 달래준다.

 

- 가지고 싶은 물건을 손아귀에 넣는 순간 느끼는 성취감. 돈을 버는 건 언제나 어렵지만, 물건을 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며 돈을 벌 이유가 없었다. 지금의 나와 다른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게 맞는 방향 같았다. 가장 손쉬운 기분전환, 수집인지 호딩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돈과 시간을 많이 썼고 하나의 분야에 집요하게 빠져봤기에 나의 세계관 일부가 생겨났다. 경험한 만큼 자라는 견고한 개인의 내면이었다.

 

- 하나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걸 사야 소중해지는 법이다.

 

- 수집하고 있는 물건은 지금 내가 빠져 있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간결하고 명확한 증거물. 사람은 사랑에 빠진 대상에 시간과 돈을 쓰기 마련이고 많은 경험과 시도는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주는 비옥한 토양이다.

 

- 나는 불만족스러웠던 나의 많은 면을 지우고,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고 무척 느리게 나를 다듬었다. 그 후 사람은 어떤 방향을 갖느냐에 따리 충분히 변할 수 있음을 몸소 알게 되었다. 달라지고 싶다면 과거와 다르게 살아야 한다.

- 균형 잡힌 영양 상태는 긍정의 순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몸의 컨디션이 가뿐하면 자신과 주변에 친절한 사람이 되기 쉽다. 건강한 몸에는 늘 그렇듯이 의욕이 깃든다. 나는 건강하게 먹으며 행복한 기분을 평소보다 더 자주 높은 강도로 느끼게 되자 설탕 중독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의 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A Fugitive Crosses HisTracks)』(1933)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 얀테에서는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한다. 북유럽에서 보편적이고 일상에 녹아 있다는 이 사회 법칙은 나는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며, 더 똑똑하거나 더 많이 알지 않고, 더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지 말라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 내게 마사지란 예뻐지기 위한 몸 관리가 아닌 살기 위한 처방이다. ...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일이 끝난 후 자신만의 자축 방법에는 소문난 맛집에서 식사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마사지를 받는다. 정말 고생했던 내게 스트레칭으로도 풀 수없던, 자잘하게 몸을 풀어주는 마사지만큼은 내 몸을 살리는 보상이다. 

(리뷰자 주 : 동감.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먼저 받고 싶은 것이 아로마 마사지다.)

 

- 이건 내 건강이니까. 여름에도 상온의 물을 마시고, 겨울에는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산다. 물론 적당히 춥게 사는 게 몸에 더 좋다는 조언도 있지만 나는 추위에 약한 편이라 조금만 얇게 입어도 이내 몸살이 난다. 손과 발이 차지 않고 특히 배가 차갑지 않을 때 건강하다고 느낀다. 

 

- 더욱 차분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항상 건강할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아플 때 나의 노력이 헛되었다며 허망해하지 않고 간호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히려 이 병을 앓고 나면 면역력이 좋아질 거라 믿는다.

 

-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 확실히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일은 동경만 한가득한 예술과 관련된 분야지만 지금 생산하는 게 없다. 예술품 보는 걸 아무리 즐겨도 리뷰나 연구를 하거나 무언가 만들어볼 시도를 하지 않고 소비만 한다면 그건 취미이지 일이라 볼 수 없다. 돈을 떠나 무언가 재생산을 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 지금처럼 틈틈이 공부하며 물이 차올라 넘쳐흐를 때까지 준비하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지만, 평생 준비만 하고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되지 않을 거 같다. 

(리뷰자 주 : 나는 이대로 문화적 소비자로만 남을 것인가?라는 슬픔을 느꼈던 때가 있다. 아마 앞으로도 생산보다는 소비에 중점이 맞춰진 삶을 살겠지만, 그나마 이런 끄적임이라도 남겨놓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위안해본다.)

 

- 아흔을 넘긴 현역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하퍼스 바자>(2018) 인터뷰 기사에서 울림을 주던 조언 하나를 기억한다.

"늙어서 할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그게 바로 죽은 거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니 일할 계획, 그거 굉장히 중요해요. 체력과 능력의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해요. 10퍼센트를 남겨두세요. 뛰지 말고 걸으세요. 오래 살면서 오래 일할 플랜을 세우는 거. 이거 굉장히 중요해요. 꼭 기억하세요."

 

- 헤르만 헤세는 산문집 『밤의 사색」 중 「외로운 밤」에서 "고통을 잘 살아내는 것이 인생 전체이다. 고통에서 힘이 생기고, 통증에서 건강이 생긴다. 갑자기 쓰러져 허망하게 죽는 사람들은 언제나 건강한 사람들이다. 고통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고통이 사람을 끈질기게 하고, 고통이 사람을 강철로 단련한다”라고 말한다.

 

- 꿈이 정말 직업이 될 때까지 계속할 방법은 현실 감각을 잊을 때다.

 

-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나는 짐에서 보내는 휴가,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역시 좋아졌다. 호텔 조식 뷔페처럼 여러 과일을 잘라 둔 아침 식사, 아침부터 집에서 영화 보기, 점심 무렵 친구를 만나 브런치라 이름 붙은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전시회를 가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도심 곳곳을 걷다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흥미진진한 책 한 권을 모조리 읽다 모처럼 자정이 넘어 자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 평소 가까이 두고 살았지만 미처 탐방해보지 못했던 동네의 여러 구석을 탐험할 시간도 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거나 꿈틀거리는 내 안의 창조적 욕망을 끄집어내어 글을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평소 안 해봤던 요리를 하거나 무엇을 하며 보내든 내가 만족한다면 꽤 근사한 휴가다. 휴가를 쓰지 않거나 혹은 못 쓴다면 슬픈 일이고.

(리뷰자 주 : 나는 휴가나 공휴일 개념이 없는 근로자다. 휴가나 연차가 따로 없다면, 내가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  내 방에서 세상을 탐구한다. 언제나 끼고 읽는 수많은 책, 칼럼, 가끔 영화, 가벼운 지적 유희가 나를 들뜨게 하고 교재를 펼치고 하는 목적 있는 공부가 성취감을 자극한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니 비로소 생활에 지적 풍요로움이 감돈다. 수많은 관심사에서 방황하던 나는 머릿속에 동경만 한가득인 일 말고 지금 시간, 체력, 돈을 실제로 쓰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책 읽는 어린이는 집에 굴러다니는 모든 책을 그냥 읽는 법이다.

 

- 그러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숨겨진 함의를 파악하느라 혁혁대며 따라갔고 흥미가 엷어졌다. '누구든지 웬만한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는 문장에 동의하고 '왜 다수 대중이 용인하는 취향과 생활양식만 관용의 대상이 되는가?'라는 밀의 물음에 나도 똑같이 의문을 표하는 독서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은 수업이 끝나자 사라진다. 하나의 책을 깊이 파고들자 나의 뇌 어딘가에 지적 생채기가 진하게 남은 듯했다. 

 

- 나는 대부분의 감정에서 정신적으로 미숙하다. 사랑, 희생, 박애, 용기, 자유. 모든 감정을 깊게 겪어보기에는 나의 일상이 밋밋했고, 나의 모험심은 무모한 도전이 아닌 최소한의 위험을 지는 안정적 계획 위에 하나씩 실행되는 일이었다. 언제나 감정 기복을 심하게 겪을 만한 일은 피해 가는 선택을 했다.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 내 정신력은 취약했다.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나 사건이 생기면 전력을 다해 부딪히기보다 이해라는 이름의 회피와 받아들인다는 뜻에서의 정리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 레벨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키며 살았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경험의 총량 그리고 그 결과로 얻게 된 무작위의 감정이 결국 내가 살아온 범위 안에서만 세상을 보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책 그리고 영화가 없다면 나의 좁은 세계는 자라날 수 없었다.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자체가 실상 어렵다. 내가 마주하고 인식하기로 한 모든 것은 내가 해석한 상황이다.

 

- '읽을 책이 없다. 읽을 책이.'
물론 나는 책 한 권을 가볍게 다 읽고 덮은 뒤였다. 내가 한탄하는 이유는 읽을 활자는 넘치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근심을 녹아내리게 하고, 새로운 앎과 도전을 북돋우며 나의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 내용을 만나지 못해서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인정하는 책이 있지만 나는 도서관 한 귀퉁이나 서점의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책을 보물찾기 하듯 뒤진다. 읽고 나선 제목도 작가도 내용도 곧잘 잊어버리지만, 남들이 잘 읽지 않을 거 같아 보이는 책을 찾는 건 일종의 탐험이다. 물론 고전과 지금 가장 주목받는 소문난 책들도 곧잘 읽는다. 평점에 비례해 내게도 항상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면 책만큼 취향이 갈리는 분야가 또 있을까. 내가 처한 상황과 고민에 따라 베스트셀러 책도 다르게 해석되고, 와닿는 바가 다르다. 

 

- 내가 이렇게 서점과 도서관을 배회하며 살게 된 건 '서적병(Books Disease)'이라는 지병 때문이다. 기억하기론 유치원 때부터 조금씩 면역력이 약해지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본격적으로 병을 앓았다. 활자 벌레 감염은 잠복기를 거쳐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용돈이 오르고 돈을 벌수록 증세는 점점 악화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불치병이라는 '비블리오 바이불리'가 되었다. 그리스어의 책을 뜻하는 비블리오(Biblio)와 라틴어 어원으로 취한다는 의미의 바이불리(Bibuli)의 합성어로 지나치게 많이 읽는 책 중독자를 뜻하는 '비블리오 바이불리'. 사람들이 술이나 종교에 취하듯 그들은 계속 책에 취해 있다고 미국 문예 비평가인 헨리 루이스 멩켄(HenryLouis Mencken)이 창안한 개념이다.

 

- 내가 여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한 분야에 집요한 관심을 두고 나아간 사람들의 집념이 모인 공간이다. 한 분야에 들어 선 뒤로 방향을 틀지 않고 평생을 매달린다는 건 어떤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까. 내키는 대로 관심사를 옮겨 다니고 쉽게 흥미를 보이고 잃기도 했던 나로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세계였다. 특색 있던 서고를 둘러보며 나 역시 더는 방황하지 않고 한 가지 분야에 정착해 집중하고 싶다는 깊은 욕구를 끄집어낸다. 어떤 열정을 강제로 이식당한 기분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

 

-  지인은 말했다. "취미 공부는 하면 안 돼. 물론 교양은 쌓이는데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랄까. 예전에 수험 공부할 때처럼 온 시간을 다 바쳐서 해냈으면 금방 거머쥐었을 자격증도 취미로 어영부영하면 결국 중간에 포기하게 되더라고." 절박함이 없는 공부에 대한 한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지만 그래도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는 불안을 견디지 못함을 알았다.

 

- 내게 공부는 운동과 비슷하다.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루틴 근육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생활습관 아닌 어느 정도 훈련 끝에 얻어진 지적 활동에만 비추어 비교해 보면 내게 독서와 쓰기는 어릴 때부터 만든 아주 튼튼한 근육이 받치고 있는지 단 한 번도 하기 싫어 애를 먹거나(물론 일과 연결되면 읽기와 쓰기 모두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해본 적은 없다.  

 

- 완벽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고, 일정표대로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는 규율에서 벗어나게 될 때 더 큰 즐거움이 찾아왔던 순간들. 그러나 익숙한 일상은 실패를 쉽게 용납지 않는다.

 

- 소란스럽지 않은 공간은 언제나 사람들 관심 밖에 있다. 고요함 속에 오래 머물며 깊은 상념에 잠기면 나는 편안했다. 

 

- 내 옆에 전시를 보던 중국인이 펼쳐진 고려시대 고서적을 보며 한자어를 줄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해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모습까지 이어지자 나는 맹렬한 질투를 느꼈다. 내가 마땅히 가졌어야 할 나의 한 부분을 빼앗긴 기분, 이 모든 문자를 해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미 그 문자를 자신 안에 가진 사람으로 인해 깨어났다. 그리고 그날은 내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한가한 놀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는 확신. 

 

- 다재다능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늘 깔끔하고 성숙한 사람.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발견한 때였다. 언제나 다른 세계와 부딪힐 때 나의 세계는 넓어졌다. 충돌이 가져다준 약간 어지러운 지점을 지나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은 살짝이나마 내 것이 되기도 했다.

 

- 나는 이제 부러움을 긍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오히려 부러움이 생길 때 내가 깨어남을 느낀다. 부러움은 내가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삶의 무료함을 벗어나게 한다. 

 

- 지금 내가 타인을 향해 갖는 부러움은 콤플렉스, 열등감의 종류가 아니다. 아무런 갈망이 없어 어떤 발전도 없이 멈춰 있던 내가 ‘해보고 싶어'란 버튼을 누른 계기다.

 

-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달리 말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다. 그저 부러움에서 멈출 때 열등감이 생기는 거고,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면 부러움이 사라진다. 누군가 별로 고생하지 않고 해낸 듯 보이는 모든 업적을 직접 부딪쳐보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임을 알게 되고 그 입장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 외국어 배우기, 운동 모두 근성 있게 하지 않으면 초보반만 3개월씩 하다 쉬다 어물쩍 3년이 지난다. 내가 가진 게으름, 시작과 난도가 쉬울 때는 가볍게 하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이내 '하기 싫어 병'이 도지고 중단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특히 운동처럼 좋아하지도 않고 몸이 힘들기만 할 뿐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을 때, 살아가는 데 절박하게 필요치 않을수록 장벽을 만나면 넘어설 의욕이 소멸하였다.

 

- 그런 내가 겁을 상실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바로 동경하는 모습이 가지고 싶을 때다. 인간은 본래 남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단련시키도록 설계된 종이 아닐까.

 

- 바로 그 지점. 계속해야 할 절박한 이유, 혹은 재미있어서.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의지만으로 계속 끌고 나가기엔 한계가 있다.

 

- 놀이로서의 배움은 그런 거였다. 짧게 흥미만 남기고 사라진다. 

 

- 무엇이든 배우면 쓸모가 있다. 배움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 배우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렵지만 배울 노력조차 안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무엇이든 배운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욱더 많이 보고 배우고 흡수해야 하고, 그건 지겨운 의무의 일종이라기보다 고도의 지적 생명체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재미다.

 

- 나의 이런 성향 탓에 생긴 문제는 남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환대를 기대했다는 점이다. 나처럼 호들갑 떨기를 바란다기보다 나를 생각해서 호스트가 무언가를 준비하길 조금은 바랐다는 게 모든 실망의 시작이었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듯 보이는 케이크를 꺼내며 먹을 거냐고 묻기보다 미리 잘라놓은 케이크를 너를 위해 준비했다고 내어주길 바라는 정도의 환대라면 나는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였다. 

 

- 나는 타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꽤 오랫동안 나를 중심으로 살았고 남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건 쓸데없는 오지랖이라 여겼다. 어쭙잖은 위로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감정을 절제한 무생물에 가까웠다.

 

-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이야말로 진짜일 테고, 나의 경우는 너무 사소한 주변 챙김이라 실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하루를 마무리하며 곱씹을 만큼 엄청난 보람으로 여기지 않아서 더 흡족하다. 

 

- 이제야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게 된 뒤로 스쳐 가는 아무개가 아니라 나와 미약하게나마 연결된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 모든 하지 않는 일에는 그 사람만의 기구한 사연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나의 특이 취향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과자 같은 간식을 먹지 않는 것, 쇼핑과 여행에 큰 열정을 보이지 않는 것, 직장 상사 뒷담에 동조하지 않는 것, 심지어 일찍 잠드는 습관마저도 모두 내가 유별난 사람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 직장 상사 뒷말에 관해서라면 내가 성숙한 인격을 가져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해봤자 돌아오는 건 내 마음에 남는 미움뿐이고, 손톱만 한 허물도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손바닥처럼 커지는 걸 알기에 동조하지 않을 뿐이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그리고 일단 남 욕하기 전에 나부터 잘하자 하는 마음이다.

 

- 모국어라면 한 번에 훑어서 내용을 파악했겠지만, 영문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기사 하나를 붙잡고 읽는 데 오래 걸리고 그래서 곧잘 지루해진다.

 

앨리스를 재독할까 하던 참에 본문 속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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