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그레천 바크 / 김선교, 전현우, 최준영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1.06.23
이 도서는 출판사 동아시아로부터 제공받았음
시작하는 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술도 더러운 잔에 따른다면 그 맛이 변질될 것이다.
하물며 그 잔이 깨어져 새는 잔이라면 어떨까?
저자는 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것과도 다르며, 그것을 전달하는 인프라인 '그리드' 역시 흔히 연상하는 수도관 같은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그만한 비유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전기가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휴대폰 배터리가 10% 남짓 남았는데 충전할 방법이 없을 때 덜컥 불안해지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온수, 가스 또는 하이라이트 불꽃, 냉장고, 휴대폰과 각종 전자기기 및 자동차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 전기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실체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콘센트나 충전단자, 혹은 스위치 정도로만 겨우 존재가 인식될 뿐이다.
요약
이 책은 2015년에 쓰여진 책이지만 21년의 지금 읽어도 전혀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의 특수한 지역적 특성이나 세세한 수치들이 약간의 장벽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을 과감히 흘려 읽는다 해도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놀라운 부분들은 그 외부에 있다.
그렇다면 '그리드'란 어떤 것인가?
먼저 1장에서 우리가 풍력 발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뒤집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 효율이 좋고 발전량이 큰 풍력발전기를 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낸 전력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그리드'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장에서는 우리가 '전선' 또는 이제는 조금씩 드물어지고 있는 '전봇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전기의 길, '그리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 그러다보면 전기의 발견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3장 인설의 법칙에서는 토마스 에디슨 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내게 그것을 상용화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사업가 '인설'에 대해 설명해준다. 어째서 지금의 그리드가 그렇게 조각 조각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거대 그리드가 중심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4장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은, 애초에 저자가 이 책의 독자층을 좀 더 확실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점이다. 학술서라고 보기에는 들고 있는 예시나 농담 등이 대중적인데, 그렇다면 수치보다는 도표와 V=IR 정도의 가벼운 기본 수식을 통해 "왜!?" 그런 상황이 되는지에 대해 더 설명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5장은 그에 이어 현재 '그리드'가 어떤 지경인지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는 4장보다는 5장에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미국이 그렇게 정전이 잦은 편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에어컨 사용 자제를 부탁한다는 자동응답 전화에 관해서는 솔직히 꽤 놀랐다.
6장은 늘어나는 재생 에너지 발전이 '그리드'를 중심으로 한 '유틸리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다룬다. 수익성을 위해서는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데, 현재 '유틸리티'가 가려하는 노선과 실 사용자인 대중이 원하는 노선 사이의 일치점과 괴리를 함께 보여준다. 휴대폰으로 집안의 전등을 켜고 끄고, 세탁기를 돌려두면 완료 알람이 오는 시대다. 우리는 이미 이 책에서 설명하는 스마트그리드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력 사용량과 파장만으로 내가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무엇인지까지 분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다소 섬뜩하다.)
7장에서는 다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재생 에너지, 녹색 에너지의 현실과 실제로 당장 직면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에 대해 살펴본다.
8장에서는 꿈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우리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찾아 헤매고 있는 에너지적 성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실 언제나 하나였다. "축전". 배터리 사용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전기란 당연히 저장되는 것이란 환상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9장에서는 이런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촉구한다. '그리드'는 계속 노후화되고 있고, 원하건 원하지 않건 에너지의 생산 형태는 변화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가 이동형 마이크로그리드의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진정한 성배인 전기의 저장이 가능해질 것인지는 보다 먼 미래의 일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예상치 못한 '피해자'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 -이미 전기에 중독된 자들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공존을 위해 현 상황에서의 최선을 위해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리뷰
예전에 읽었던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 많이 생각나는 책이었다. 거대 다국적 회사들의 방식과 국가 간의 알력 및 경제적 이해 관계의 첨예한 대립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그 책의 저자였던 '존 퍼킨스'가 은퇴 후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드>의 저자는 전기를 아껴쓰자거나, 불편을 감수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소비를 유지하되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소비하자!!고는 하지 않았다)
역자들이 역자 후기에서도 한국의 상황과 잘 비교하여 설명해주었지만, 한 때 우리나라도 세금 지원 혜택 등으로 태양광 패널 설치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현재는 아파트의 경우 미관 및 낙하 위험성 등으로 주민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원의 공급이 실상 얼마나 쉽게 끊어질 수 있는지, 그때 대체재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현대인이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떨었다. 한국의 환경상 미국처럼 개인용 발전기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점점 소형화되고 상용화되고 있는 휴대용 태양광 패널 등은 몇 년 안에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초와 라이터 몇 개 정도는 준비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단어나 개념을 언급은 하되 설명이 없었던 몇몇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예를 든다면 전압이 일정하다면 전류의 이송은 거리와 무관하다는 부분은 간단하게는 V=IR로 설명이 가능하다. 송전선이 끊어질 경우 교류의 병렬적 이송에서 전체 저항은 증가하는데, 이미 생산되어 흐르고 있던 전류량은 유지되므로 전체 전압의 상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특정 주가 전류량이 늘어나며, '싱크'가 된다는 설명은 그 전선이 '흐를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인지, 상대적으로 짧아 저항이 '최소'가 되기 때문인지 등의 설명을 조금 더 해주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무효전력 등의 개념이나, 교류와 다중 회선에 대해 설명하기는 어려웠겠지만 해당 현상을 예시로 들고 단어를 언급한 상황에서는 기본 주석이 있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나 해서 주석까지 다 읽었는데, 딱히 깊게 다루거나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아는 사람에게는 보다 직관적으로 와닿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몰라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썼다면,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전략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몇몇 번역 문장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겠지만 매끄럽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위트 있는 저자인 것 같았는데, 다소 딱딱하게 전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전기란 전하의 흐름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종의 순간적인 '힘'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른 형태로 치환해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즉, 지금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전기는 1분 안팎으로 생산된 '따끈따끈한' 전기라는 말이다. 배터리는 실제로는 전기를 담아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위상차 또는 잠재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산량이 요구량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가 되지만, 반대로 과잉 생산량이 생기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우리는 추가로 생긴 전류를 흘려보내 저장할 곳이 없다. 보다 멀리 보내거나 판매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의 문제도 있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현재의 '그리드'를 이용해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무리다. 수요의 예측과 그에 따른 생산의 조절이 '유틸리티'의 핵심 관심사이며, 이제 더는 생산보다는 유통에 가까워진 사업자에게 하루 중 몇 분 또는 몇 시간에 불과한 피크 타임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는 생사의 문제이다. (저자는 생산한 전기의 저장법으로 양수 발전소나 소금 용융 저장 기법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조금씩 발전의 형태가 다양해질 경우에도, 개인이 생산한 전기 역시 실사용을 위해서는 전력 회사의 전선망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전기의 생산자로서 얻을 수 있었던 이익마저 줄어들고 있는 '유틸리티'가 '그리드'의 개보수의 유일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해 묻는다. 또한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그리드' 의존자들은 점차 증가할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도 경고한다. 매우 인상 깊은 부분들이었다.
또 한 가지, 스마트 그리드가 사용자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생각하면 다소 우려스럽지만, 그 편리함과 유용성에 대해서는 상상 이상이었다. 확실히 볼더에서의 사례처럼 '유틸리티'가 지나치게 과한 결정권을 갖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정전이 일어나기 전에 실시간으로 수요를 계산하고 대기 전력으로 전환해 브라운 아웃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괜찮은 방안이다. 그에 더해 테슬라 등의 대형 모바일(움직이는) 배터리들이 사람들의 전기 사용이 많은 시간에는 일종의 마이크로 그리드 역할을 수행해주고, 요구량이 줄어드는-그래서 '유틸리티' 측에서는 더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간대에 충전함으로써 모두의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겠지만, 이미 전기가 '공유재'의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특히나 무선 전달 기술이 보다 원거리를 받쳐주게 된다면 말이다.
- 그리드는 기계이자 인프라이고, 문화적 성취이자 산업 활동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얽힌 하나의 생태계다. 이 기계는 우리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다.
- 미끈하게 뻗은 전력선과 높이 솟은 송전탑을 보면, 그리드를 초고속 전기 교통을 위한 고속도로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 즉 낡고 오래된 데다 울퉁불퉁하며 좁은 비포장도로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드는 여기저기 닮아 땜질투성이이며, 모두가 원하는 개선은 값비싼 투자 비용에 가로막혀 관료주의라는 진창에 처박혀 있다.
- 변덕스러운 이 지역의 바람이 완전히 멈추면, 이 거대한 장치로 공기 중에서 수확한 전자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리드는 균형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는 언제나 생산과 일치해야 한다. 전기를 나중에 사용하려고 저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은 없다. 만일 전력이 지금 당장, 어디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를 사용할 수 없다.
- 전기는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았다. 전기는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니다. 빛이나 열과도 아주 다르다. 바람이나 파도처럼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서 전기와 닮은 것을 굳이 꼽자면, 중력 정도일 것이다. 말하자면, 전기는 일종의 힘이다.
- 1901년 기준으로, 맨해튼 전체를 통틀어 냉장고의 수효는 불과 18대뿐이었다.
- 미국의 그리드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토머스 오너다, 니콜라 테슬라 또는 조지 웨스팅하우스라고 답하기보다는, 새뮤열 인설이라고 답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정확하다.
- 인설의 작업이 없었다면 수많은 공장, 공공건물, 주택의 지하에는 각각의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없을 것이며, 이들이 의존하는 그리드도 없었을 것이다. 인설은 전 깃봉과 전력을 소수가 아닌 대중을 위한 제품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전기사업은 독점이 자연스레 성립하는 산업이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어떤 시대든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던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정보를 사용했고, 이를 통해 공공투자에 영향을 미쳤다.
- 당시에는 그 의미를 깨달았던 사람이 드물었으나, 공공전력 규제 7 Public Utilities Regulatory Policies Act, PURPA 2103 전력 시스템으로 들어오고 통과하며 빠져나가는 모든 것에 대한 유틸리티의 통제력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린 법안이었다.
- 그런데 미국 풍력 산업의 선구자들이 대체로 공학자로 훈련받았다면, 덴마크의 선구자들은 대장장이로 훈련받았다. 캐시먼의 말은 이렇다. "이들은 금속과 전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커다란 농기계를 고지도 특기가 있었고, 이런 농기계야말로 이들이 제작한 풍력발전기의 모델이었습니다."
- 그리드는 다양한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원전은 낡을 수 있고,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으며, 균열이 일어날 수 있고, 폐로될 수 있으며, 계통 연계가 끊어질 수 있다. 이는 전력원에서 가까운 그리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아니면 전선과 목재 또는 도자기로 된 애자를 지탱하는 지역 유틸리티의 전봇대에 칡넝쿨이 기어올라, 주변을 녹색 피복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전봇대도 사고에 취약해진다.
- 정치가들과 유틸리티 경영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그리드의 제어 설비를 해킹하거나, 총격을 가해 변전소와 같은 몇몇 거점들을 장악하거나, 송전계통의 결절점을 폭파해 그리드 전체를 마비시킬 가능성을 우려하며 많은 말을 쏟아낸다. 그렇지만 나무야말로 미국 전력망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위협하는 압도적으로 중요한 원인이다.
- 저항이 동일할 경우에, 경로가 길든 더 복잡하든 우회가 극심하든 전력은 더 짧은 경로로 진행한 전력과 동일한 순간에 도착한다. 전력의 수송 경로는 거리와 무관하며, 오직 저항이 변수일 뿐이다.
- 리드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데다, 운영자들은 퍼스트에너지가 자신들의 그리드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가 상황을 처음 파악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블랙아웃이 발생한 지역의 서쪽 경계는 정확히 퍼스트 에너지의 운영 구역과 아메리칸일렉트릭파워의 운영 구역 사이에 놓였다.
(리뷰자 주 : 그러니까, 아메리칸일렉트릭파워가 문제 발생 리드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당사자인 퍼스트에너지보다도 문제를 먼저 파악하고 차단했기 때문에 실제로 '블랙아웃'이 발생한 경계는 두 회사의 운영구역 중간에 위치했다는 말로 읽힌다.)
- 퍼스트에너지가 보지 못했던 것은, 고유한 논리를 따르는 전력의 여러 움직임이 그리드 전체, 그리고 인간 운영자에게 해를 끼쳤다는 점이었다. 동부 해안 지역의 블랙아웃이 발생하기 30분 전, 오하이오 일대의 그리드는 일종의 거대한 싱크로 변해버렸다. 전력의 관점에서, 오하이오는 막대한 수요가 있으나 전력은 부족하게 공급되는 지역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그랬다. 인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류들이, 과부하가 걸려 전류를 통과시킬 수 없게 된 선로들 때문에 시스템을 통과해서 고장 나지 않은 선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오도 가도 못했고, 그래서 상당한 수의 선로에 실제로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많은 전류가 망에 걸려 있었지만, 바로 이로 인해 싱크가 발생하고 말았다.
(리뷰자 주 : 상황은 알겠는데, 어째서 그 결과가 싱크로 이어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흐를 선로가 모자라 과부하가 걸렸다면 전류량은 증가하지만 저항값은 감소하지 않는데 어째서 싱크가 생기는 것일까? 나의 지식 부족이다.)
- 순전히 설비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동 중단 사태는 거대한 골과 마루로 이뤄진 전압 파도를 오하이오와 미시간에 형성했고, 이 파도는 주 경계를 넘어 동부 해안까지 퍼져나갔다. 발전소, 변전소, 고전압 송전선, 저전압 송배전선에 이르는 모든 설비들이 가동을 멈췄다. 이 모든 것은 총 6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 매출 감소로, 그리고 블랙아웃 당시에 잉태되어 9개월 뒤에 태어난 아이들의 증가로 이어졌다.
(리뷰자 주 : 이런 유머라니.)
- 2011년, 독일의 한 연구진은 신형 디지털 미터기로 관찰할 수 있는 전기 사용의 미세 패턴만 가지고도 당신이 구동하는 가전제품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게다가 그 정밀도를 올리면 심지어는 당신이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이를 위해서는 관찰 시점에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송출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고유의 전기신호 패턴과 미터기로 수집한 전기 사용 패턴을 비교해야 한다). 워싱턴대학교의 연구자들도 비슷한 발견을 했다. 이들은 전기신호 패턴으로 실험대상 가구에서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슈렉 2 Shrek 2>를 보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었다.
- 전기 주전자가 널리 쓰이는 영국에서는 'TV 픽업'이라고 불리는 현상(TV 쇼가 잠시 멈추고 광고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부엌에서 찻물을 데우기 위해 전기 주전자를 켜기 때문에 벌어지는 전력 수요 파동)도 벌어진다. 이 현상은 잉글랜드의 유틸리티가 매일 3, 4번 정도 처리해야 하는 약 400 메가와트 규모의 수요 파동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규모다.
대부분의 경우, 전력 회사들은 이렇게 비싼 비용을 치러야만 하는 상황에 그저 늘 하던 내로 대응할 뿐이다. 하지만 스마트미터를 사용하면, 이때 늘어나는 바용을 소비자들에게 물릴 수 있다. 그 결과, 유틸리티는 피크 수요를 자신들과 그리드가 대응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수익이 집중되는 순간으로 바뀐다.
- 피터슨가에서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모델, 태양광 패널 그리고 배터리 팩으로 탄소를 얼마나 절약했든 간에, 이것으로는 결코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는 없다는 데(한 판조차도 데울 수 없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탄소로 전자레인지를 가동한다는 말은 석탄으로 비행기를 띄운다는 말이나 바나나로 급탕용 온수를 데운다는 말과 다름없다. 탄소는 동력원이 아니다.
(리뷰자 주 : 저자가 알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이슈가 되고 있는 탄소 절약은, 같은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원을 소모했을 경우 발생한 CO2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으로서의 탄소를 말한다. '탄소배출권'의 개념으로 사용한 '탄소가 절약된다'는 표현을 이렇게 꼬집음으로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었다고 본다.)
- 이 경험은 전기가 마법이 아니라 뼈에 사무치는 고통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로 다시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 음식물 쓰레기, 폐기저귀, 변기 물과 오물 따위가 탱크로 들어가면, 연료로 바뀌어 나온다. 병력 1명이 매일 생산하는 2~3 킬로그램의 쓰레기를 단지 태워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사'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발전기를 가동시키려면, 9 대 1의 비율로 여전히 TGER 생산 가스와 그에 혼합할 디젤 또는 바이오 디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THEPS와 TGER을 함께 활용할 경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트럭으로 운반해야 하는 액체 연료의 양이 기존 발전기 시스템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 오늘날의 성배는 전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저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전력을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수단을 개발하는 과업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설이 활동한 19세기 말부터, 전력 저장은 전력을 생산 해돈을 버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최우선 과제였다. 이 문제는 다시 떠올라 오늘날 성배의 자리를 장악했다. 미래에 에너지를 더 청정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면, 재생에너지에 의해 과잉 생산되는 전력들을 저장해 놓는 방법이 필요하다.
- 이 거대한 배터리는 일반적인 오피스 빌딩과 거의 똑같아 보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옆을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를 배터리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이 건물의 일부는 오피스 빌딩의 역할을 하겠지만, 이 건물의 공간 대부분에는 400 메가와트 용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물론 이용량으로 운전하면 건물에 저장된 에너지가 4시간 정도면 소진될 것이다) 수십만 개의 배터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 디자인 업계의 구루로 주앙 받는 도널드 노먼 Donald Norman에 따르면, 인프라는 가시적이지 않아야 한다. 인프라는 시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의식하면서 사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인프라는 시끄러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람들의 목적에 잘 부합해야 하고, 시야에 잘 들어와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인프라를 의식해서도 안 되고, 그에 대해 생각해서도 안 되며, 의식적으로 그에 대해 요구해서도 안 된다.
- (역자후기) 전력 거래소의 도해를 살펴봐도, 수도권과 전국을 잇는 방사형의 망에, 수도권 외곽순환망이 이들을 잇는 구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발전소의 배치는, 전기가 더 많이 움직일수록 송전망의 용량을 더 많이 잡아먹게 된다는 4장의 언급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권 외부 방사망의 끝에는 원전과 석탄화력과 같은 기저 전원이 연결되어 있다. 반면 비싸게 거래되어 가동 순서가 후순위인 LNG 복합 화력은 인천과 같은 수도권 내부에 다수 자리하고 있다. 이는 장거리 송전망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운전한다는 뜻이고, 중거리 및 단거리 송전망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만 운전한다는 뜻이다.
- (주석) 소리 연구자 머리 샤퍼(R. Murray Schafer)는 미국과 캐나다의 학생들이 이완된 상태에서 깊은 명상에 잠기게 한 다음, 그들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음을 허밍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가장 흔한 음은 '시'였다. 그런데 독일과 다른 유럽 학생들의 경우 '솔#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전기 시스템은 초당 60차례 방향이 바뀌는 교류로 운용된다. 이는 음계로 말하면 '시'로 공명하는 주파수다. 반면 유럽의 경우, 전류는 50차례 방향이 바뀌며, 이는 솔#에 대응한다. 사람들은 일생에 걸쳐 벽, 조명용 비품, 가전제품으로부터 아주 작은 노이즈에 노출되며,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와 같은 음으로 허밍을 부르게 된다.
R. MurraySchafer, The Tuning of the World (Toronto: McClelland and Stewart,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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