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제프리 버튼 러셀 / 김영범
출판 : 르네상스
출간 : 2006.03.22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읽기 힘든 책이었다.
번역 오류나 비문, 오타가 좀 있는 편이지만 큰 맥락을 따라가는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저자는 각 장을 나누어 각각의 세계관 안에서 '악마'를 살펴본다.
즉 '악마'의 정의와 개념, 존재 의의, 그 세계관 안에서의 역할과 한계 및 관련 논쟁 등을 다룬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접근이 아닌, 각 시대와 관점에 맞춰 그 안에서 살펴본다는 방식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적인 흐름을 고려하고 관련 인물과 저술과 문헌들을 다양하게 다루어주었다.
음- 하지만- 재미있었는가를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자신의 생각을 정해두고 풀어가는 것은 모든 학자들의 특징이지만.
사실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에서의 토끼몰이가 독자로서는 상당히 큰 재미인데, 이 부분에서는 큰 강점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이해한 저자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어째서 '악마'라는 개념이 나타났고 필요했는가.
. 그리고 그 개념과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악'은 어떤 점에서 합치하고 분리되는가.
. 그것을 논하기 위해- 이미 너무 긴 시간 광범위하게 고착된 기독교적 개념와 분리하여 살펴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들을 다루며 세부적으로는 현대 또는 당대에 제기되었던 수많은 의문점들을 제시하고 논의들을 살펴본다.
.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 악을 창조했다면 그것은 왜인가?
. 전능한 신이라면 어째서 고통과 악이 발생하기 전에 막지 않는가?
. 신은 악과 분리되는가?
. 악이란 무엇인가?
.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디에 위치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가장 납득이 가능한 설명을 하는 것은 영지주의 쪽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사실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조심스럽다. 이런 논의들을 전개해나가면서도 '무신론'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총 4권의 저서 중 3권만 읽었기 때문에 총합적 평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아주 개인적으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나 다른 종교학자들의 저서들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자신의 믿음을 일관된 세계관과 조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면 어떤 것이든 미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미신을 무지에 기반한 믿음이라고 정의하는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와 차이가 있다. 사전의 정의는 옳지 못하다. 한 사람의 무지는 다른 사람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 고대와 신플라톤주의에서는 마술을 초자연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힘을 조작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전통에서 마술의 뿌리를 끌어오고 있다. 그러한 가정들은 죄를 짓지 않으면서 마술을 실행하도록 허락했으므로, 많은 사제들은 신도들을 위해 마술과 기도, 주문, 기원을 결합했다. 그러한 마술은, 마술의 도움에 의존하기보다는 악령을 쫓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 우주에 대한 좀 더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는, 마술이 주장하는 초자연적이고 관찰 볼 가능한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의 가정들과 결합하여, 마술은 반드시 악령의 대리인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귀착된다.
- 튜튼족의 신은, 다른 모든 일원론의 신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양면성을 지닌다. 인간의 지배자이자 신들의 지배자인 보탄(Wuotan) 혹은 보덴은 또한 분노와 파괴의 신이자, 유령들의 사냥을 지휘하기도 한다. 토르(Thor) 혹은 도나르(Donar)는 인간과 신들을 위해 싸우는 전사이지만 또한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는 천둥의 신이기도 하며, 붉은 옷을 입고, 두 마리 염소가 끄는 짐마차를 운전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욕과 결혼, 다산의 여신인 힐다(Hilda) 혹은 홀다(Holda)는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지하의 신이기도 하다. 힐다는 아름다운 처녀나 뾰족한 코와 긴 이빨을 가진 무시무시한 노파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여자 유령들의 사냥을 지휘한다. 어떤 이야기에 따드면 에시르가 힐다를 지하세계로 내던졌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헬(Hel)로서 지하세계와 죽은 자들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영어의 "hell"과 관련되는데, 이것은 어원적으로 동굴, 구덩이와 연관된다. 독일어로는 Hohle.)
- 어린아이를 훔치거나 남몰래 바꿔치기하는 것은 항상 인간 의식 속에 깊은 두려움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것은 아이의 실망스러운 행동이나 아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부모의 억압적인 환상에 대한 변명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이것은 악몽의 주된 주제인, 친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아이 도둑이나 바꿔치기에 관한 이야기 중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들은 못된 성격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아이의 이전 성격이 남아 있어서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따라서 이것은 영적인 성장과 전환을 나타내는 은유가 된다.
- 스콜라 철학이 출현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의 양대 기둥은 성서와 전통이었다. 스콜라 철학은 여기에 제3의 기둥인 이성을 더했다. 성서와 전통, 그리고 관찰의 분석적 해석이 그것이다.
- 완전히 선하고 전능한 신이 어떻게 우주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도록 우주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오직 네 가지 설명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무신론이다. 둘째는 절대적 이원론이다. 셋째는 하나의 신이 사실은 반대편도 포함할 수 있다는 양 극단의 일치로,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의 입장이다. 넷째는 악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것으로, 이는 스콜라 철학자들의 입장이다.
- 명상주의자들은 이렇게 믿고 있었다. 악마는 다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자신들에게 악한 관심을 쏟아붓고, 사탄은 신과 합일되는 영혼을 가장 간절하게 부러워하면서도 혐오한다. 신비주의자들은 악마야말로 명상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모든 원천이 된다고 생각했다. 악마는 기도와 명상에 간섭하려고 한다. 악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런 짓은 환상에 불과하며, 기도와 명상은 어느 곳으로도 이끌어주지 않고, 시간 낭비이며,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라고.
- 15세기 말과 16세기에 새롭게 나타난 마술적인 세계관은 오컬트라고 하는 자연관을 부활시켰고, 매우 정교하고 일관된 지적인 체계를 가지고 오컬트를 설명했다. 피치노나 지오다노 부르노(1548-1600)와 같은 근대 초기의 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마법사들이었다.
- 그레고리우스 1세는 9개의 계급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세 개씩 이루어진 세 개의 등급인 것을 몰랐으므로, 프린시펄리티스와 버츄즈의 자리를 바꾸어놓았다.
(리뷰자 주 : 주석을 살펴보면 에녹은 "형체 없는 천사의 무리 10개"라고 표현했다고 되어 있다.)
- 하디스는 천사들이 빛(nur)으로부터 창조된 반면, 정령은 불(nar)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이 두 단어는 소리와 어원 모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창조물 중 가장 천한 것”이란 말은 타락 이후의 이블리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몇몇 논평가들은 이블리스를 정령이라고 정의한 <코란> 18.50의 구절이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 “신은 악마에게 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 그리고 인간은 악마에게 그를 물리치고 그가 빼앗은 것을 되찾아올 대리인을 제외하고는 빚진 것이 없다. 신이 그 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에게 진 빚이지, 악마에게 진 빚이 아니다."
- 악마가 늙은 뱀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요한계시록> 12:9), 스콜라 철학자들은 악마가 뱀을 이용했거나, 뱀의 형태를 띠고 있었을지 몰라도, 진짜 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 구절에서 "늙은(ancient)"이라는 단어는 신에게 적용되는 "태고식(ancient of days)"(<다니엘서> 7:9)이라는 구절에 쓰인 단어와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 - 이 책은 <데블(Tbe Devil)>(1977)과 <사탄(Satan)>(1981)에 이어 악마의 개념사를 다루는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신약 시기에 있어서의 그 개념을 추적했고, 두 번째 책에서는 5세기 중반까지의 개념을 다루었는데, 그 시기까지 기본적인 노선이 이어져 내려왔다. 이 책에서는 중세에 만연했던 악마에 관한 관념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동방 정교나 이슬람교의 관점을 포함하지만, 악마를 다룬 서구의 기독교 사상에 집중한다. 이슬람을 세밀하게 연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언어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악마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기의 기독교 악마론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은 교부적이고 스콜라 철학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신학론과 예술, 문학, 극예술, 대중 종교, 설교학, 그리고 성인의 삶, 민속학 등이다.
- 역사가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신학자들도 자신들이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 그들 자신의 인식은 사적인 것이며, 어떤 체계를 그들이 만들어내거나 받아들이더라도 다른 체계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불확실한 체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제한을 염두에 둔 채, 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이 인간의 인식을 능가하는 신과 악마에 대한 지식을 적어도 일부는 얻을 수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모든 신학과 역사와 과학의 체계들은 가정들에 기반한다). 개념의 역사는 신학자들에게 역사적 실재와 명백히 조화되는 악마에 대한 유일하게 일관된 그림을 제공한다. 역사신학자들은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전통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다른 방법으로 악마를 의미 있게 정의할 수 없다.
- 악령들은 우리를 파멸시키고자, 우리를 유혹하고, 구원으로 가는 길에 세 개의 함정을 판다. 첫 번째 함정은 우리가 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판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어떤 선행을 하든지, 그것을 신의 의지에 따라서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첫 번째 두 함정에 우리를 빠뜨리지 못하면, 세 번째 함정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훌륭한 삶을 자랑스러워하도록 한다.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선한 것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가장 위험한 이 함정을 피할 수 있다.
- 아담 이후에, 신은 또한 악마로 하여금 이브를 창조하도록 도왔다. 뱀의 형태를 띤 사타나엘은 꼬리를 가지고 이브와 육체관계를 가져서,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카인과 그 여동생 칼로메나이다.
- 악령은 악취나 연기와 관련되므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때는 굵은 장작, 혹은 가장 좋은 것은 회향의 나무진을 태워 나는 향과 연기로 악령을 그을릴 수 있다.
(리뷰자 주 : '회향'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가 성 금요일과 부활주일 사이에 죽은 이들 사이에 있었다고 가정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교 공동체인 이들은 하늘나라를 통한 상승이라는 신플라톤주의의 용어보다는 지하세계로의 하강이라는 용어로 이러한 견해를 표현했다. 지하세계에서 예수는 죽음의 세력과 맞서 그들을 물리쳤다. 아주 초기부터 이러한 견해는 성육신 이후에 죽은 사람들의 운명이라는 별개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만약 성육신으로 인해 인간이 원죄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면, 예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리뷰자 주 : 융의 저작에서 궁금했던 부분이 풀렸다. '지하세계로의 하강'이라는 테마는 국내에서는 강조되지 않는 것 같다.)
- 그리고 869년, 대머리왕 샤를은 요한에게 그것을 번역하도록 했다. 에리게나는 디오니시우스를 깊이 존경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누구나 디오니시우스가 바오로의 제자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저작이 바오로의 생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요한의 그리스어 실력은 그 일을 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단순히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독창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디오니시우스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향으로 수정하는 한편, 디오니시우스와 자신이 번역했던 그리스의 다른 신비주의 작가들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고백자 막시무스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사상 또한 변화했다. 에리게나의 신학은 홀로 우뚝 서있었다. 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저작을 모두 읽고, 스스로 생각했던" 저술가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저작은 <자연의 구분(The Divtsion of Nature)>으로, 862년과 867년 사이에 저술되었다.
(리뷰자 주 : 대머리왕은 샤를 2세를 말하는데, 승계할 왕위가 없었다는 의미로 쓸 왕관이 없다는 Calvus다. 나중에는, 모르겠다.)
- 신은 인간의 본성이 우주 및 신과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한다. 조화는 인간이 신의 계획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들과 식물들은 자연적으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우주 안에 존재하므로, 그들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자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거나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 십자가 위에서 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들은 아벨라르에게 중요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 의도였다. 인간이 됨으로써, 신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었다.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는 인간의 고통을 나누었고, 고통으로 가득 찬 우주를 만든 이가 정작 스스로는 그 고통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면했다. 이 모든 것을 신은 겸손과 자신의 창조물들에 대한 사랑으로 행했다. 신이 인간에게 쏟는 자유롭고, 관대하고, 분수에 넘치는 사랑은 그 보답으로 사랑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과 신 사이의 소원함에 다리가 놓인다. 이 흥미로운 견해는 널리 보급되기에는 지나치게 전통의 범위를 벗어났다.
- 초서는 도덕적인 행위의 중심을 신과 악마 사이의 보편적인 투쟁에서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선과 악의 투쟁으로 전환하였다.
- 또한 악은 결핍이고 비존재이며, 신이 스스로를 우주 안에 제한하고 축소하면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신의 영광은 악을 초월하면서 표출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결핍을 허용한다. 이러한 관념들은 성서의 논리보다는 신플라톤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고 니콜라스가 이 주제를 간단하게 처리한 것을 보면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던 듯하다. 니콜라스의 이론은 대립물의 일치로서 악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기회를 제공했다. (C. G. 융은 5세기나 지나서야 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이 문제를 입증하는 것은 불경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 유명론자 장 제르송(1363-1429)은 1402년과 1403년에 쓴 자신의 논문 <사변적 신비주의 신학에 관하여 (On Speculative Mystical Theology)>에서 두 가지 전통이 본질적으로는 일치한다고 파악했다. 제르송은 신비주의 신학과 스콜라적인 신학의 차이점을 이해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훈육된 이성, 신의 외적인 영향력을 강조했고, 진리이신 신을 추구했다. 신비주의자들은 훈련된 사랑, 신의 내적인 영향력을 강조했고, 사랑인 신을 추구했다.
- 디오니시우스에서 유래하면서 에크하르트와 라인 지방의 신비주의자들로 간주되는 또 다른 전통은 한 방울의 물이 바다가 되듯 영혼이 신이 되는 통합을 이야기한다.
(리뷰자 주 : '라인 지방'이 자주 언급되는데, 여기서의 신비주의자들은 튜튼을 말하는 듯하다)
- 그래서 사람들이 영적 성취를 뽐내게 만들고, 우리들이 영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동정심이나 경솔함 같은 잘못된 감각을 갖게 하고, 시각적· 청각적 망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감각이나 시각은 정말로 신에게서 오는데, 악마는 그것들을 이용해서 우리들이 경험에 집착하게 만들거나 신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는 진정한 목적에서 빗나가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할수록, 악마는 하나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악마는 더욱 분투하게 된다. 신비주의자들의 이러한 설명은 모든 종교적 맥락에서 하나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상당히 일맥상통한다. 통합의 과정에 대항하는 엄청난 힘과 공세는 놀랍고도 두렵다.
- 명상가들은 악마의 유혹을 느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저항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생각을 돌려 신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악마는 우리를 물리칠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톨러는 "어떤 사람이 악마로 하여금 자신을 이기도록 허락하는 것은 중무장한 군인이 한 마리 곤충에게 굴복해서 그 곤충에게 쏘여 죽음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신의 은 중으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심과 동정심, 복종과 사랑, 그리고 환희를 통해서 악마를 물리치게 된다.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우리를 위협해서 절망에 빠뜨리려는 악마를 이기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웃음과 환희를 권장했다.
-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가 부활되면서 인문주의자들의 행동지침에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는 발생할 때부터 주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플라톤주의는 감추어진 "오컬트"를 당연시했지만, 현인들이 조정할 수 있는 우주 안에는 자연의 힘도 존재했다. 돌이나 풀, 별 등이 지니고 있는 오컬트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서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작용할 수 있다. 중세 초기에, 다양한 영태의 플라톤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때, 신이 일으키는 기적과 악마가 주도하는 환상 사이에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중간 단계의 주술이 존재했다고 추정되었다. 이러한 주술은 사실 변형된 형태의 기술이다. 어떤 사람은 생산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들에다가 분말을 뿌리고, 또 어떤 사람은 화학물질을 뿌린다.
- 연금술, 점성술, 본초학, 그리고 이와 유사한 학과들은 강력하고 훌륭한 지적 체계의 일부를 형성하였고, 그래서 17세기에 등장하였던 과학적 유물론에 효과적으로 반대하게 하였다. 더 나아가, 신플라톤주의-오컬트-마법 체계는 우주를 관장하는 운명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따라서 초자연성이나 신의 섭리가 개입하거나 악마가 끼어들 여지가 매우 적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1463-1494)와 피치노와 같은 인문 주의자들은 주술을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적어도 중립적이라고 인식하였다.
- 15세기에 이르러, 악마적인 마법의 전형이 등장하였다. 목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몇몇의 남자들, 좀 더 많은 여자들이 배우자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침대에서 조용히 기어 나온다. 회합 장소나 "시나고그" 근처에 있는 마녀들은 걸어서 오지만, 불편할 정도로 멀리 사는 마녀들은 동물의 형상을 하고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연고를 몸에 바르고, 다른 마녀들은 빗자루나 울타리를 타고 온다. 이들은 "시나고그"에서 10이나 12명의 동료 마법사들과 합류한다.
- 도덕적 상대주의가 오늘날 여러 방면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보다는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선이나 악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불평하거나 뭔가를 희망할만한 실질적인 근거가 없어지는 셈이고, 사람들의 관념이나 가치는 자의적이거나 인위적이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러한 신념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정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악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고문, 기아, 그리고 잔혹함은 받아들일 수 없고 무시될 수도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악은 고통의 연결고리이며, 고통을 의식적으로 촉발시키려는 의도이다.
악마라는 개념은 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 실재를 향해 끝없이 펼쳐나가는 지혜를 따라 세상의 모든 풍성과 모든 조직에 도달 흡수해야 한다. 기독교와 힌두교가 창조적으로 만나려면 일정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에게서 뭔가를 덜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 전통의 모든 지혜를 모아서 그것을 통해서 진리를 바라볼 때 가능하다.
- 창조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교의는 이를 대담하게 표현한다. 신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혼돈도, 제일 물질도, 악이라는 독립적인 권능도 없다. 뭔가로부터 나올 수 있는 원리란 아무것도 없다. "무"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우주가 만들어지는 "무"란 구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은 무로부터가 아니라 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모든 것들은 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것들 은신의 확장이고 현시이며 표현이다. 모든 것은 신의 현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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