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미예
출판 : 팩토리나인
출간 : 2021.07.27
지금의 행복에 충실하기 위해 현재를 살고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을 위해 미래를 기대해야 하며,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행복을 위해 과거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무척 즐겁게 읽었다.
중간 중간 가볍게 툭툭 치고 나가는 유머도 마음에 들었고, 고심해서 다듬은 대사들도 좋았다.
쉽게 읽히면서도 여러 번 다듬은 티가 나는 문장을 보면 눈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내게' 그렇게 느껴지는가이긴 하지만)
https://illusionofmoon.tistory.com/546
<달러구트 꿈 백화점> 1권을 읽고 궁금했던 점이 모두 해결이 되어서 무척 시원했고,
또 기분좋게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언제부터 2권을 구상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자신이 어떤 부분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저자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꿈은 무엇으로 만드는지, 왜 상하는지, 제작자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외부 손님들과 주민들에게는 어떤 차이를 두고 작용하는지.
확장보다는 지금까지 펼쳐졌던 이야기들을 곱게 다독여 모은 듯한 2권이었다.
3권이 나온다고 해도 즐겁게 읽을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2권이 적절한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잠들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이 판매하는 꿈을 꾼다.
매일 만나지만 기억나지는 않는 애틋한 사람들.
꿈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게 하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갑갑함을 대리만족시켜주기도 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을 데려와주기도 하고
꽉 막힌 상자에 딱 바늘구멍 만큼의 숨통을 틔워주어
희미한 빛의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꿈은 꿈.
미래에 삼켜지지도 말고
과거에 붙잡히지도 말고
양쪽을 오가며
"현재를 살 것"
그 모두를 가진 것이
"지금의 나"
- "꿈을 꾸고 나서 일기를 쓰다니. ... 굉장해요. 평범한 손님들이라면 내용을 기억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일어나자마자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나 기록하는 것 같더구나. 하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단다. 그래서 꿈 일기는 참 귀하지. 그래서 이렇게 매년 수집한 꿈 일기를 따로 모아두는 거란다. 우리처럼 손님을 직접 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귀중한 정보는 없을 거야."
- "내 생각도 그렇단다. 그러니까 우리 백화점의 꿈을 좋아해서 단골까지 된 그들이 갑자기 오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야. 입이 무거운 손님들은 구구절절 불만을 말하기보다 매섭게 발길을 끊어버리지. 직접 와서 환불 요청이라도 하는 손님은 오히려 고마울 정도란다."
- "우린 살면서 한 번도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나를 보는 표정, 목소리 같은 정보로 그저 추측할 뿐이죠.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진실을 가릴 때가 있잖아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처럼요. 어차피 알 수 없다면,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우리도 지금 그렇게 당신을 보고 있어요."
- 꿈은 제작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꿈꾸는 당사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전개하는가, 아니면 그 바탕부터 제작자의 의도와 생각으로만 채워 한 편의 가상현실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가다.
- "조향 키트는 초보 제작자들이 사용하기 좋아. 배경을 만들어내는 게 익숙하지 않을 때는 꿈을 꾸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배경을 불러내는 게 훨씬 효과적인데, 기억을 불러내는 데는 익숙한 향기만 한 게 없거든."
- "촉각이 주특기라는 게 비슷하죠. 제작자들은 데뷔하기 전부터 알고 있어요. 자기가 어떤 감각에 소질이 있는지 말이에요."
- 페니는 어떤 일에 대해 스스로 재능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 "이 테스트 카드는 고유한 성향을 알아보는 도구가 아니야.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손쉽게 확인하는 도구지. 테스트할 때마다 결과가 바뀌는 게 오히려 당연하단다."
- "모든 힘은 제가 가진 행복에서 나오고, 의욕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와요. 저는 이곳에서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의 희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기쁜 일이죠. 하지만 제가 하는 행동은 대부분 그저 내가 행복하기 위함이에요.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기 위해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처음 만든 꿈도 마찬가지예요. 그 꿈은 해안에서 멀어지는 범고래의 시점으로 진행돼요. 그건 저 자신을 나타낸 거였어요. 제가 살아가기에 너무나 제약이 많은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 다리를 아예 쓰지 않아도 더 큰 세상을 보는 범고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바다에 빠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아래에 더 큰 세상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참 다행이다 싶어요. 만약 내가 해안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굳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리뷰자 주 : 그리고 같은 꿈이지만 꿈을 꾼 사람마다 와닿는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같은 체험이 같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심지어 제작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꿈은 꾸는 자의 것이기도 했다.)
-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요즘 들어 너무 지쳐버렸거든요. 하지만 당신이 써준 꿈 일기를 보고 깨달았어요. 나는 당신 같은 손님들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요. 그 깨달음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를 거예요."
- "어쩌면 당신의 어려움이 당신다운 모습을 더 짙게 만들고 있는 것 같군요." 킥 슬럼버가 불쑥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누군가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잘 알게 됐잖아요. 같은 일을 겪어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은 받은 만큼 남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때요? 당신다움이 뭔지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제쳐두고 자기 마음을 봐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가 제 모든 다른 면들을 가릴 만큼 크고 빠르게 번지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저는.. 전 그냥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박태경이예요."
- "나도 그랬어요. 나는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았어요. '나는 킥 슬럼버인데, 다리 한쪽이 불편해.' 적어도 이 수준까지는 닿길 바랐어요. 그건 아주 큰 차이예요. ... 우리를 나타내는 어떤 수식어도 우리 자신보다 앞에 나올 순 없어요. 그리고 우리 같은 제작자가 있고 꿈을 사러 오는 당신이 있는 한, 아무도 당신에게서 잠자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을 뺏어갈 순 없어요."
(리뷰자 주 : <사이보그가 되다>의 저자 김원영은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휠체어만 탔을 뿐(탔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나는 휠체어를 탔고 그 점에서 당신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동등하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달러구트 꿈 백화점2>의 대사도 충분히 와닿지만,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출두하는 김원영의 발언 역시 무겁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의 문제다.)
-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개최했다가 아주 쓴 맛을 본 적이 있어요. 첫 파자마 파티는 완전히 실패했지요."
- "손님처럼 아주 수준 높은 루시드 드리머는 대개 스무 살 이전에 그 능력을 잃거든요. 지금까지 오래 버틴 셈이지요.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그들은 온갖 일에 사정을 들먹였다. 집안 환경이 좋지 못해서, 몸이 안 좋아서, 사는 게 힘들어서. 다른 사람의 인정사정은 봐주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행동에는 갖다 붙일 수 있는 모든 이유를 붙여서라도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리뷰자 주 : 최소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거울에 비추어 본다면. 아주 잠시지만 멈칫 멈추는 틈이 생기는 것 같다.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 "페니, 아주 단단하게 박혀 있는 결정들이 보이지? 보통은 저런 결정들 주위로 더 많은 양의 추억들이 생기곤 해. 추억 하나는 다른 기억들까지 지탱하는 힘이 있어. 그 덕에 이 동굴은 다른 어떤 구조물보다 튼튼하지."
- "그래. 사람들은 이따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피곤하지 않은데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곤 한단다. 그렇게 잘 때는 어떤 꿈도 필요 없고, 그저 세상과 완전한 단절을 원하게 되지. 그런 손님들은 정처 없이 길을 걷거나, 우리 백화점뿐만 아니라 어떤 가게에도 들어가지 않고 오도카니 서 있곤 한단다. 자. 여기까지 들었으니 그들을 이곳까지 인도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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