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 남명성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7.30
경계선
언덕 위 마을
임시교사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마지막 처리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다른 책을 구매할 때 함께 구매했는데, 막상 받아볼 때까지 <렛미인>의 원작 소설 저자라는 건 몰랐다.
팔리기 위한 글쓰기-다시 말해 카피라이팅-에 대해 잠깐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결국 마케팅의 성공은 목표한 타깃이 마침 그 시기의 '다수층'과 잘 맞아떨어졌느냐의 문제 같다. 관심사는 계속해서 변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채널도 빠르게 변한다. '다수층'은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지속해서 변화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결국 내가 노린 '타깃'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가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나는 상당히 귀가 얇으면서도 '전략대로' 걸려들지는 않는 편인 것 같다. <렛미인>의 외전도 실려 있다는 것을 책을 받고 띠지를 보고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소설가 김중혁 추천"이라는 문구도 있는데, 안타깝지만 '김중혁' 작가의 글도 읽어본 적이 없다.
(라고 생각했으나 확인해보니 <메이드 인 공장>을 읽었다. 음. 소설은 아니니까.)
내가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단지 제목과 표지 때문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재미있다. 흥미로운 단편들이다.
각 편마다 독특한 이미지와 설정을 보여주는데, <언덕 위 마을> 같은 경우는 일본을 배경으로 상상해봐도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크라켄과 범선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다다미 방이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햇살에 대한 묘사 때문인 것 같다.
각각의 단편은 자체로서 잘 완결되어 있다. 하지만 동일 작가가 쓴 단편들이라고 연결하기에는- 라기보다는 '한 단편집에 모아서 엮기에는'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통일성이 크지는 않다. 특히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와 <마지막 처리>는 내가 <렛미인>과 <언데드 다루는 법>을 읽지 않아서인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앞의 단편들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졌다. 이전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다루는 경우는 독자들 간의 지식 편차가 심해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건 띠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긴 하다.
<임시교사>는 흥미롭게 읽었으나 결국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경계선>은 무척 즐겁게 읽었고, <무민>을 이렇게 가져다 쓴다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 무민은 트롤이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해 찾아봤는데 관람은 조금 더 고민해보려 한다.
<마지막 처리>도 흥미로웠는데, 어떤 단편을 영상으로 보고 싶은가를 묻는다면 나는 이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박진감과 영상미가 훌륭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로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언덕 위 마을>이다. 세부적인 묘사들도 좋았고, 스토리도 마음에 들었고, 결말이나 복선들도 깔끔한 느낌이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음에도 마지막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제로 깨달은 것은 드라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였다. 그건 오스카르가 또 다른 호칸이 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엘리의 인간 조력자라는 끔찍한 역할을 떠맡고 그녀에게 피와 거처 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말하는 건 그것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미리 깨닫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알려주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그런 식의 결말이 완벽할 만큼 합리적이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물론 내가 책에서 일부러 열린 결말로 남겨둔 부분을 제대로 해석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결말은 아니다."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를 읽다가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토마스 알 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을 봤다. 원작과 영화들 모두 유명했던 건 알고 있고, 두어 차례 시도도 해봤으나 중도 포기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 왜 수작이라는 말을 듣는지 알 것 같았다. 북유럽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있었고,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두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읽은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의 결말은 영화에서의 결말과 다른 맥락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저자의 후기를 보니 어떤 의도로 이 외전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적인 단편으로 존재하길 원했다는 소망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 읽는 도중 원작을 찾아보게 하는 -읽고 나서가 아니라- 단편은 독립된 단편이 아니라 외전이 맞다. 전체 서사가 모두 그 한 점으로 집중되어 있으니.
????????????
5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 치고는 실린 단편의 비중이나 순서가 기묘한 느낌이라 혹시나 하고 원서를 찾아보았다.
수록 목록이... ???
1. The border
2. A Village in the Sky
3. Equinox
4. Itsy Bitsy
5. The Substitute
6. Eternal/Love
7. To Put My Arms Around You, to Music
8. Majken
9. Paper Walls
10. Final Processing (sequel to Handling the Undead)
11. Tindalos
12. Let the Old Dreams Die (sequel to Let the Right One In)
음- 이 정도면 다른 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일부만 발췌해서 실었다는 내용은 책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책 표지 앞날개에 "한국어판 <경계선>은 영화 원작 외에도 <렛미인> 외전 격인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언데드 다루는 법>의 뒷이야기 <마지막 처리> 등을 함께 묶었다."고는 되어 있지만 아마존의 영문판에는 외전들을 포함해 더 많은 단편이 실려있다. 흠.
- "이건 뭔가요?" 티나가 물었다. "맞혀보시죠." 사내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티나는 사내의 눈을 마주 보았다. 매우 평온해 보이는 눈빛이었고, 그건 둘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거나, 숨긴 것을 티나가 절대 찾아내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거나. 사내에게 숨길 것이 전혀 없다는 세 번째 경우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알았다.
- 삶이 감옥이라면, 갇힌 채 살아가다가도 벽이 어디 있는지,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깨닫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벽뿐인지 아니면 탈출 통로가 존재하는지도.
- 기분이 너무 좋아서 되레 겁났다. 술이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냥 술을 많이 마시기만 하면 다른 사람과 다른 이 능력은 사라진다. 어쩌면 능력을 막아주는 약이 있을지도 몰랐다.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지 못하게 해주는.
- 이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보겠다. 내 인생은 재미가 없다. 나는 자주 상상에 빠진다. 누구든 보기만 하면 모든 단서를 이용해 그 사람의 인생을 조합한다. 내용은 늘 미스터리다. 그는 왜 그리로 간 거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거지? 모두가 서재에 모여 마지막으로 전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구식 탐정소설에나 등장하는 장면이다. 실제 삶에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 내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시할 것이다.
- "티나." 보레는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남은 수가 많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이 모든 걸 잊는 편이 더 나아요. 새로 알게 된 사실로 인생을 바꾸지 마요."
- 라세는 그들이 건설하고 있는 건물만큼 높은 크레인을 가리키며 말했었다. "건물은 별것 아니야. 하지만 크레인은-그게 정말 기적 같은 놈이지! 그냥 가느다란 강철 구조물이거든. 자네가 성냥개비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야. 이것들을 사각형으로 쌓아 올리면 코끼리 한 마리도 들어 올릴 수 없어. 바로 무너지겠지. 하지만 삼각형으로 쌓으면... 서로 의지하면서 모든 무게가 지면으로 향하는 거지. 믿을 수 없을 정도야. 피타고라스를 성스럽게 여기는 게 놀랄 일도 아니라니까."
- 이사 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잊혔다. 이름만 남았다. 아무 할 말이 없다. 요즘은 모든 것이 그런 식이다. 항상 새로운 것들에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려난다.
-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외부에서 받아들일 것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그 대신 뭐가 나타나는 줄 알아?"
- 증언한다. 좀 거창하게 들린다는 건 나도 안다. 어쩌면 어떻게 봐도 놀랄 것 없는 사랑 이야기에 대해 과장된 기대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기적은 너무 적고 너무 먼 이야기여서, 기적이 나타나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야 알아볼 수 있다.
- 사람들은 내가 야망이 없다고들 했다. '야망'이 경력의 사다리나 신분 상승의 계단 같은 것들을 기어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면, 그런 평가는 어떤 면에서 사실이다. 하지만 야망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야망은 조용하고 품위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었으며, 그에 성공했다고 믿는다.
- 여러분은 위대한 사랑이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장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들이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온전히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상황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무슨 일이든 남북전쟁이나 난파선 혹은 자연재해를 배경으로 벌어지면 더 그럴듯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그림을 액자로 판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나리자>가 명작인 가장 큰 이유를 화려한 액자 모서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가 말했다. "카린은 내 삶이자 내 이야기야. 그 이야기의 마지막이 나 혼자 몇 년을 보내게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달리 방법이 없다면 우울하게 있어봐야 소용없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꾼다. 나는 그들이 찾고 싶었던 것을 찾았기를 소망한다.
-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였지만 칼레는 기쁨도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심연으로 달려드는 사람의,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의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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