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전지현 / 순두부
출판 : 팩토리나인
출간 : 2018.12.07
나는 리디 셀렉트를 이용 중이다.
국내서 기준으로 비중을 나누자면 전자책보다는 종이책 위주로 읽고 있어서 리디북스가 독서의 메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유용해서 만족하고 있다. 최신 업데이트를 둘러보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서 읽어보았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라니,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반박하기 힘든 말이다.
이 제목에서 저자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싶기도 하고, 부드러운 위트가 재치 있다 싶기도 하다.
의약 분업에는 예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수많은 세부 조항들이 뒤얽힌 결과로, 모든 과를 포괄해 먹는 약과 수액과 주사제 및 특수관리 약품들을 다루고 있는 입장에서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10명 중 8명이라는 수치보다 2명은 어떠한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벼운 부작용이 일상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그리고 또, 또, 기타 등등등.
저자의 표현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완전한 정상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기분 좋음이 또한 일정 범주를 넘어서면 조증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스펙트럼 안에서 존재하고, 그 범주의 경계선에서 조율이 조금씩 어려워질 때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일곱 의사의 모습들을 보며 나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전공의 의사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었고, 다른 치료방식과 응대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저자와 잘 맞았고, 어떤 경우에는 맞지 않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일대다의 입장과 일대일의 입장 사이에서의 균형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 전지현 : 본명이다. 첫째를 낳을 때 난산으로 고생한 뒤부터 우울증과 기약 없는 동거를 시작했다. 생명 탄생의 감동과 기쁨은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둘째를 낳고 용기를 내 치료를 결정했지만, 세상 모든 정보가 모인다는 맘 카페에서도 단 한 줄의 정신과 치료 후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후 8년 동안 7명의 의사를 경험한 베테랑 환자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후기도 나아야 쓸 수 있다는 것을.
- 누구나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내겐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 이 의사는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솔직히 이 시간을 빼면 누군가와 대화할 일도 없으니 소중하기는 한데,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졌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오늘 겪은 일상의 고달픔까지 얘기하고 또 얘기했지만 문득 풀리지 않는 내 상황에 대한 답답함의 크기가 상담으로 얻는 위로를 넘어서고 있음을 느꼈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 힘들었던 순간을 갈무리하는 것 자체가 겨우 앉은 딱지를 뜯고 상태를 확인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 "저도 결국 애들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 갑니다."
- "학부모의 일상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끌어올리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샐 것 같은 틈은 미리미리 찾아서 꽉꽉 메워 둡시다."
- 의사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책장 한 곳을 가리켰다. (어깨가 움직였다!)
"이거 다 제가 쓴 책인데 안 팔려요. 10년 전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 마세요. 망해요."
그러고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감정을 표현했다!) ... 이 의사, 책을 이렇게 많이 썼어? 게다가 그림책까지! 저 국세청 ARS 같은 사람이?
- 딱 세 걸음 앞에 접근했을 때 비로소 알았다. 그 무시무시한 아저씨는 카시트에 앉아 있는 자기 아이와 영혼을 던진 까꿍 놀이 중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순간 제정신이 들었는지 급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이성을 소환했다. 그렇다.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른다.
- 원래 잠 많던 애가 맨날 자느라 저러는구나 생각했음. -부모님
- 여행 못 다니고, 맛집 못 가고, 쇼핑 못해 저러지 싶었음. -형제
- "제가 좀 감정적으로 무뎌요. 그래서 신체 증상으로 알거든요. 몸의 긴장이 안 풀려서 물도 안 넘어가고 밤에 잠도 못 자고."
- "모든 책이 엄마는 화내지 말고 생각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감정을 계속 평평하고 두툼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집착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제가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 왜 이러지? 무슨 일 있었나? 엊그제 그거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이러고 있었어요."
- 그럼에도 절대로, 절대로 고쳐지지 않았던 나의 게으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내가 미웠다.
- 우울증. 누구에게,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그 '결'과 '층'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발가락 하나 잃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나만 알지. 다시 생겨나는 일은 없을 거다. '발가락은 열 개'라는 기준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는 약간 불편하고 숨기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거다. 남아 있는 발가락 아홉 개를 잘 보살피면서. ...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완전하게 갖춘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8년이 된 지금은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굵고 시뻘건 펜으로 벅벅 긋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뇌의 고혈압'이나 '뇌의 당뇨병' 정도로는 부족하다. '뇌의 심근경색'쯤 되어야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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