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오대우, 이지현, 이정우
출판 : 웨일북
출간 : 2021.7
알라딘 이벤트-<오필리아> 패브릭 포스터에 홀려서 낼름 질렀다.
자주 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지름신의 유혹에 넘어가다니.
<널 위한 문화예술>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읽기 쉽고, 눈이 즐거운 책이었다.
유튜브, 브런치, 네이버 포스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동명으로 연재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출간한 책으로
구어체 문장과 그림 중심의 구성이 편안하다.
처음 읽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예술가의 삶,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분석을 잘 풀어주었고
각 단락의 마무리에는 저자들의 단상도 조금씩 더해 대화하는 느낌을 주었다.
다시 말해- 글의 호흡이 포스팅에 가깝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볍고 편안하게 읽기를 원한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급은 되었지만 도록이 실리지 않은 작품들의 경우는,
독자가 찾아보기 편하도록 원제도 함께 표기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제목이 번역 과정에서 조금씩 토씨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아쉬웠다.
타겟이 명확한 책이므로
편안하고 가볍게 읽고 싶으신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듯 하다.
- 이 그림은 사실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만종>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부르는 제목입니다. 프랑스어 원제는 따로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사용되는 기도문의 이름을 딴 <안젤루스(삼종기도)>죠.
- 그리고 밀레가 그림을 그리기 전, 그림의 의뢰인이 지은 제목도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출신 이주자였던 토머스 애플턴은 19세기 아일랜드에 불어닥친 감자 기근에서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밀레에게 의뢰했는데, 그때 제목이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 즉 다빈치는 진짜 '살아 있는 인간의 감정'을 화폭에 표현한 것이죠. 그는 그림을 진실에 가까운 대상의 본모습까지 담아내는 것이고, 사람의 본질은 감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현재에 충실해야 하고 자신이 보는 것을 그려야 한다. -에두아르 마네
- 당대 비평가들은 이런 그의 작품을 보고 "'색채' 표현을 극대화한 예술"이라고 설명했지만 로스코는 이러한 해석에 직접 반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죠. "나는 추상화가가 아니고, 색이나 형태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비극이나 운명, 혹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신화에 감정을 투영해 관객이 완성하고 영혼을 성숙시키는 종교적인 경험. 슬프고 벅차며 때로는 숭고하기도 한 이 경험을, 단순해 보이는 작업을 통해 로스코는 관객에게 선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로스코는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45센티미터의 거리에서 바라보라고 조언했습니다.
- 누군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감각한 삶의 방식은 그 어느 것보다도 고귀할 테니 말입니다.
- 쿠르베는 진실을 숨기는 상류층의 위선을 꼬집는 시위를 코앞에서 벌인 셈이죠. 언제나 존재하고 있지만 예술에서는 부정당한, 돈 없고 힘없는 민중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고 외친 겁니다.
- 많은 학자가 셀레 그린을 '침묵의 살인자'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 대상을 앞에 놓고 빛이 그 대상을 비추는 모양새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하늘에는 파란색이 의외로 적다는 걸 알게 됩니다. 황금색, 보라색, 분홍색, 녹색과 노란색이 모두 들어가 있어요.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잎에는 군청색과 갈색이 어우러져 있죠. 빛을 직격으로 받는 사과의 표면은 하얗게 빛나고, 반대로 그림자 쪽은 검습니다. 이러한 관찰은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대상을 바라보고 현혹되어 마음을 뺏겨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여기서 쇠라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물론 당시의 색채 이론에 영향을 받은 화가는 쇠라 말고도 많았습니다.
- 죽은 아이를 땅속에 묻은 후 슬픔에 젖은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라고 달리는 주장 했습니다. "밀레가 과연 평화롭고 낭만적인 기도의 순간을 포착했을까? 고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그 사실주의 화가가? 그럴 리가 없다. 이 작품 역시도 기근과 질병을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들의 피폐한 삶을 드러낸 내용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달리의 근거였습니다. 이토록 파격적인 해석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자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루브르 박물관까지 나서서 직접 엑스레이로 작품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달리의 말처럼, 발치에 놓인 바구니 주변에 관과 비슷한 형태가 숨겨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이 한 명이 들어갈 법한 아주 작은 형태의 틀이었죠 그 형태가 불완전하여 정말로 관을 그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그림이 마냥 평화로운 순간을 포착한 것은 아니라는 달리의 주장만은 확실해진 셈이었습니다.
- 분홍색을 지칭하는 영단어 pink의 어원은 꽤 독특합니다. 다른 색상과 달리 pink라는 단어가 분홍색 자체를 뜻하게 된 것이 몇백 년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17세기 무렵이 다 되어서야 분홍색을 pink라 부르기 시작했으니 겨우 4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셈입니다.
- 물론 그 이전에 분홍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이름이 달랐습니다. 분홍색은 pink 대신 장미를 뜻하는 rose나 rosa로 지칭되었죠, 기원전 800년에 쓰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에서 이미 rosy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새벽의 빛깔을 묘사하는 단어였죠. <오디세이> 외에도 다양한 고대 문헌 속에서 새벽을 rosy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 작품 곳곳에는 상징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단 지금 프랑스 국기이기도 한 '삼색기'가 여기저기 나부끼죠. 삼색기 색깔은 현재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의미는 조금 달랐습니다. 흰색은 왕의 가문을, 빨간색과 파란색은 파리와 파리 시민을 상징하는 색이었죠. 왕가를 상징하는 색과 다른 색을 동등하게 배치한다니! 이는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는 파리 시민의 포부를 전면에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 참고로 이 담벼락 메시지에서도 바스키아의 상징 하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저작권을 뜻하는 기호 ⓒ인데요. 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소유권의 주장을 뜻했죠. 절대 '그냥 해본 낙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 미국의 록 밴드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가 2003년에 낸 앨범(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에 선정되었는데, 단 한 글자의 가사도, 단 한순간의 목소리도 담겨있지 않지만 그들이 무슨 감정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청자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 고대 신화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시간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 합니다. 로스코는 고대 신화의 어떤 점이 이러한 영속성을 가능케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가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은 곳은 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비극의 탄생>이었죠. 니체는 이 저서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은 관객을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특유의 풍부하면서도 깊은 분위기를 가진 색, 보라. 한글로는 보라색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불리지만 영어로는 purple과 violet, 이렇게 두 계통으로 나뉘어 칭하곤 합니다. 두 색 사이엔 약간의 차이가 있죠. purple은 붉은빛이 많이 도는 보라색이고, violet은 푸른빛이 많이 도는, 우리말로 굳이 표현하자면 '청보라' 정도의 색상입니다. 보통 한국인이 연상하는 보라색은 둘 중 purple에 조금 더 가깝죠.
- 그러나 새로운 화풍에 대한 호쿠사이의 집념은 스승 순쇼가 죽은 후 학교에서 쫓겨나는 결과로 치닫게 됩니다. 스승의 라이벌 화파뿐만 아니라 중국과 서양의 화풍까지 흡수해 익히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지요. 답습하고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진취적인 주변인은 큰 위협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니까요. 결국 호쿠사이는 "있는 곳에 물들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고 독립합니다.
- 아트 시어터에서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나요? 보통 상업성을 기대하지 않고 만든 영화, 즉 독립영화나 실험적인 외국 영화, 신예 감독들의 영화 등을 주로 상영하는 극장을 이야기합니다. 보통 단관 혹은 두 개의 관만을 운영하며, 상영관 안에서의 취식행위가 일절 금지되니 팝콘을 파는 매점 같은 곳은 존재하지 않죠. 입장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으면 광고 없이 곧바로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5분 후쯤 당황하며 입장하는 일을 종종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런 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가'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거죠. 두 시간을 보고 나면 이틀, 이 주, 두 달 동안이나 참혹했던 영화 속 서사와 고통받는 인물들이 머릿속을 떠돕니다. 외면하고 싶지만 사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는 분명히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진작 외면할 거였다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영화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 뒤상은 사서로 일하며 다양한 철학과 과학 서적을 파고듭니다. 특히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이론에 빠져들죠. 푸앵카레는 '사물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과학에 도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계 외에는 인식할 수 있는 실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뒤샹은 무릎을 치죠. "그렇지, 사물이나 작품 그 자체는 예술이 될 수 없어. 다만 작품을 통해 생겨나는 다양한 관계만이 예술의 본질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바로 예술이라는 뜻이었죠. 그 길로 뒤샹은 붓을 꺾습니다. 관습적인 '그리기'를 그만둔 것이죠. 다시금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샹은 그러나 전혀 다른 시도들을 합니다. 작품 속에 시공간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이전의 그림이나 조각과는 전혀 다른, 마치 과학 발명품 같아 보이는 작품들이 탄생했죠.
- 1968년 "하기야 죽는 일도 남의 일이지"라는 묘비명을 담긴 재 세상을 떠난 뒤상의 스튜디오 구석 밑실에서 대작이 발견됩니다. 죽기 전까지 약 20년간 작업한 마지막 대작 <에탕 도네>입니다. 나무로 된 남은 문 사이에는 작은 구명 두 개가 있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하얀 구름과 연못. 그리고 나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뒤상은 순식간에 관객을 목격자 혹은 관음 하는 이로 만들어버리죠. 관객은 이 작품을 '감상'한다기보다는 차라리 '경험'하게 되고 맙니다. 뒤상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작업실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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