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작자미상] 두자춘전

일루젼 2021. 8. 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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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작자미상 / 정환고 / 구들 / 김고은
출판 :  한국퍼킨스
출간 :  2004.09.07


 

'김태권'의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에서 당나라 <두자춘전>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 관심이 가서 찾아보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자료로는 아동용 도서밖에 찾지 못해 아쉽지만 그림책으로. 

 

몇 차례나 부귀영화를 즐길 만큼 즐기고 모든 것이 허망해져 신선이 되고자 하는 두자춘.

그와 연이 닿은 철관자라는 신선은 상제의 허가를 받기 위해 다녀올 동안 '절대'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이른 뒤 등선한다. 

두자춘은 마주하기도 두려운 시험들을 잘 이겨내었으나, 어머니 앞에서는 무너지고 만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것과는 이야기의 진행이 다르다고 들어서 일부러 찾아 읽은 것인데, 이 책 역시 '김태권'이 말한 버전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마지막 시험에서 어머니가 등장하는 것은 같으나, 흰 암소가 아닌 실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같은 버전을 찾아 읽으려면 품이 많이 들 것 같아 고민 중이다. 

 

류노스케의 <두자춘>에서는 두자춘이 환생하여 자신의 아이를 놓지 못해 탄식을 흘리지만, 중국의 <두자춘>에서는 어머니를 놓지 못한다. 둘 모두 사랑을 말하고 있으나, 중국 쪽이 조금 더 '효'에 가까운 듯하다. 두자춘의 실패에 대한 신선의 반응도 류노스케와는 다른데, 아동용이라 각색이 된 것인지 이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맞다는 전제하에서, 결국 이래도 저래도 두자춘은 신선이 될 수 없었다. 헛된 꿈을 품지 말고 땅에 발을 디디고 살라는 것이 교훈이었을까?

 

아무도 강제로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사회적 관습과 도덕적 관습들이 족쇄가 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규율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깨트려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임이다.

('정언명령'과 싸우자는 것은 아니지만, '실천이성'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 중인 것은 맞다.)

 

규제와 규율을 '준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준수는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보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일종의 융통성이다. 교통법규의 준수와 소방/경찰/구급차의 중앙선 침범처럼- 이해해야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헛소리였고, 다시 말해 재미있는 걸 즐기면서 쉬어간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

조급증을 내느라 손 안의 것을 잃지 않아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게으름에 대한 변명. 

 

 

 

 

 


 

- "맞다. 나는 아미산에 사는 철관자라는 신선이다. 몇 해 전에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영혼이 맑은 듯하여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인데, 이젠 도술을 익혀 신선이 되고 싶다니 기특하긴 하다만 신선이 되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고서 하는 소리냐?"   

 

- '모두가 헛것이었어. 스승님이 나를 시험해 보려 하신 거야.'

 

- "얘야! 네가 신선이 될 수 있다면 어미는 어떻게 되더라도 괜찮다. 절대 대답하지 마라."

 

- "결국 너는 입을 열고 말았구나. 신선이 될 수는 없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비록 신선이 될 수 없다고 해도 지옥의 귀신과 도깨비들에게 매를 맞는 어머니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자춘이 대답하자 철관자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만일 네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네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도 보살피지 않는 사람이 어찌 신선이 되겠느냐?"

     

- 중국 당나라 중엽 때 지어졌다고 하는 <두자춘전>은 문종 때 살던 '정환고'라는 사람이 썼다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복언'이라는 사람이 괴이한 이야기를 모아 펴낸 <속현괴록>에 실려 있습니다. 일본의 대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이 이야기를 <두자춘>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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