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토머스 헤이거] 공기의 연금술

일루젼 2021. 10. 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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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토머스 헤이거 / 홍경탁

원제 : The Alchemy of Air
출판 : 반니
출간 : 2015.09.10


술술 풀려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질소 연구에 관한 역사적 흐름에서 세계대전 전후의 과학자들로 유명한 하버와 보슈의 전기로 이어진다. 가볍게 언급할 줄 알았으나 사망 시점까지 꽤 상세하게 두 인물을 파고드는데, 그 두 사람이 개발한 하버-보슈 공법이 현재까지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암모니아 합성법이기 때문인 듯 하다.

 

질산을 이용해 비료를 만드느냐 폭탄을 만드느냐는, 잘 만들어진 검을 두고 사람을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 하는 문제와도 같다. 이 두 사람이 애초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업적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히틀러에게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저자가 두 사람의 삶을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가며 일대기 형태로 조명한 것은 이들의 의도에 대해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막에 굴러다니던 화이트솔트와 새들의 배설물이 굳어진 구아노 섬을 지나 독일의 화학 공장을 둘러싼 각국의 정치적 암투에 관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마침내 2000년대에 도착한다. 이 재미있지만 정신없는 흐름의 끝에 서면, 저자는 묻는다. "이대로 괜찮을까?" 

 

기후 변화와 자원 순환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주목받는 것은 탄소 순환이다. 이산화탄소 배출권 및 오존에 관한 논의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저자는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한 질소야말로 그 모든 순환의 중심에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이것은 내가 먹고 마시고 숨쉬고 내딛는 모든 것, 그리고 '내 몸의 절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를 찾아내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에도 그렇듯 과학자들의 몫이 되겠지만, 그들이 그것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다. 관심이 가는 곳에 돈이 따르고, 그것이 결과물을 낳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른 의도는 결과물을 사용할 때에도 필요하다. "과학적 이타심이 정치와 권력, 돈, 개인적 욕망과 맞닥뜨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진짜 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나는 그렇게 읽었다. 

 


   

- 과학자 이야기는 대개 이타적인 사람이 더 나은 인류 운명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찬양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이 이야기에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책을 쓰고 싶었다. 과학적 이타심이 정치와 권력, 돈, 개인적 욕망과 맞닥뜨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진짜 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졸업 후 알코올 증류소, 셀룰로스 공장, 암모니아 소다 공장, 당밀 공장 등의 실험실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따분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한 군데 집중하지 못했다. 성취한 것이 거의 없었다. 실패라고 할 만한 이 시기의 하버에 대해서 가장 친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그는 이것저것 건드리며 시간만 축냈다." 

 

- 하버에게 신은 모세가 섬겼던 신도 아니었고, 베드로가 섬겼던 신도 아니었다. 과학이란 신이었다. 합리성이야말로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고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였다.  

 

-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정상에 오르거나 인생이 제공하는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내 인생관이다." 클라라가 죽기 몇 년 전에 쓴 글의 일부이다. 

 

- 1932년, 히틀러가 처음 권력을 차지하기 직전 보슈는 하버-보슈 암모니아 공정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자문을 자주 해봤습니다. 아마도 전쟁은 더 일찍 끝나 고통은 적었을 테고 좋은 점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런 질문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예술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처럼 조금씩 하라고 설득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은 결국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렇게 너무 거대해서 우리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산업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들 공장이 없었다면 전 세계 인구의 약 40퍼센트인 20~30억 명이 기아로 사망했을 것이다. 아직도 분명히 기아로 굶어 죽는 지역이 존재한다. 매년 수천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거의 흉작(대개 가뭄과 홍수, 전쟁 때문이다)과 운송 시스템의 붕괴(역시 주로 무력 분쟁 때문이다)가 원인이다. 식량이 부족해서인 적은 없었다. 식랑량은 넘쳐난다. 문제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 더 직접적으로 하버-보슈 공정의 영향을 가늠하고 싶다면 자기 몸을 보면 된다. 내 몸 안의 질소 중 절반가량이 하버-보슈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질소는 질소일 뿐이다. 하버-보슈 암모니아에 존재하는 원자들은 최상의 천연비료에 존재하는 원자들과 정확히 똑같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내가 숨 쉬는 공기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내 피와 피부, 머리칼, 단백질, DNA에 존재하는 질소의 절반은 인간이 합성한 것이다. 

 

- 우리에겐 여전히 연구해야 할 것이 많다. 하버-보슈 공정으로 생산한 고정 질소가 얼마나 공기 중에 남을지 혹은 정확히 어떤 분자 형태로 남게 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단지 많다는 것만 알 뿐이다. 물론 오염물질은 거기 계속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리면 다시 땅으로 내려와 비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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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이유는 우리는 공기로 이루어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 즉 피부와 뼈와 피, 뇌 등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주로 대기에서 온다 그 경로는 직접적일 때도 있고 간접적일 때도 있다. 이를테면 탄소는 이산화탄소에서 얻어지는데,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인간은 식물을 섭취한다. 산소는 호흡을 통해 인간의 피로 유입되고, 수소는(산소와 함께) 물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 물은 끊임없이 기체 액체, 고체 사이를 순환하며, 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눈이나 비가 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온다. 이 세 가지 원소, 탄소, 산소, 수소는 우리 몸의 질량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는 공기로 이루어진 고체라고 할만하다. 

 

- 질소가 생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우리는 질소의 바다에 살지만 언제나 질소가 부족하다. 질소는 대기의 거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우리는 온종일 질소를 들이마시고 내쉰다. 하지만 대기에 질소가 이렇게 많아도 식물이나 동물이 성장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활성적이고 무효한 무기물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에 필요한 질소는 형태가 다르다. 학자들은 이를 고정 질소라고 부른다. 고정 질소를 얻을 수 있는지(보통은 얼마나 부족한지가 되겠지만) 여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생물에게 제약으로 작용하여, 식물계의 '제한 요소 limiting factor'가 된다(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초식동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최초의 항생물질을 발견한 독일 바이엘 연구소는 나중에 악명 높은 이게파르벤이라는 기업 카르텔의 일부가 되었다. 이게파르벤은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체되고 만다. 이게파르벤은 나치 정권을 위해 독일군이 사용하는 타이어 고무에서, 전투기에 공급하는 가솔린까지 모든 것을 만들었다. 파르벤은 히틀러의 광기에 힘을 더했다.

 

- 나는 파르벤의 첫 대표였던 카를 보슈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 보슈는 모순적인 인물이었다. 거물 기업인이면서도 노벨상을 수상했고, 열렬한 반나치주의자이면서도 악명 높은 나치 기업을 창립하고 이끌었다. 20세기의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사람 만나기를 꺼렸고, 기계를 사람보다 좋아했던 것 같다. 하이멜베르크 저택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저택은 개인적인 실험 장비와 박물관 급의 소장품, 연구소 급의 천문학 관측시설을 갖춘 그만의 놀이터가 되었다. 

      

- 하지만 하버에게도 여러 미스터리가 있었다. 전 세계를 먹여 살린 사람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의 전범으로 공격받게 되었을까? 원양 여객선 안 비밀 연구실에 숨어서 무엇을 했을까? 아우슈비츠에 사용된 독가스를 개발한 사람이 정말 하버였을까? 

 

- 옷차림은 흠잡을 데 없었고, 몸을 똑바로 세운 단호한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크룩스는 최근 물리학자로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크룩스 튜브를 발명했고, 주기율표에 새로이 탈륨이라고 이름 붙인 원소를 더하기도 했던 터였다. 크룩스는 두려움을 모르는 과학의 개척자로, 극단까지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심령술과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다루는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 영국 동인도 회사는 17세기 중반 화물선을 이용해 초석을 몇 톤씩 영국으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초석은 동인도 회사의 가장 중요한 화물이었다. 인도는 초석이라는 필수적인 천연자원 때문에 유럽인들의 식민지 확장에 매우 중요한 표적이 되었다. 또한 초석은 영국이 인도를 침략하는데 큰 영향을 준 요인이었다. 

 

- 공기 중의 질소는 화학자들이 N2라고 부르며 쌍을 이루어 존재하는데, 질소 원자 둘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하나의 분자를 형성한다. 두 원자가 서로 결합되어 있으면 매우 안정적이고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분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대기 중의 질소는 이질소 혹은 화학식으로는 N2라고 부르며, 모든 반응을 거부한다. 이런 형태의 질소 결합은 비활성이며, 죽은 상태이고, 생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모두 온종일 폐에 N2를 가득 들이마시고 내쉬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초창기 화학자들은 질소가스가 들어 있는 병 안에 불 붙인 양초나 동물을 집어넣으면 불이 꺼지거나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지금은 사라진 단어인 아조테 'azote'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의미다. 

 

- N2는 삼중으로 결합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화학결합이다. 이 결합을 끊고 개별적인 N원자를 자유롭게 하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 즉 구리를 녹이기에 충분한 대략 1,000도 대의 열에너지가 필요했다. 자연에서 N2를 분리할만한 열에너지는 번개가 칠 때만 발생한다. 

 

- 독일의 유대인 시인이자 수필가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세례 증명이 "유럽 문화계로 가는 입장권"이라는 글을 남겼지만, 당시 독일 유대인 사이에서 개종은 특별한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1890년에서 1910년 사이, 독일 유대인 1만여 명이 개종을 했다. 당시 유대인 인구는 50~100만 명 사이였고, 개종자는 갈수록 늘어났다(하지만 당시 독일 유대인 과학계를 이끌었던 과학자들은 결코 개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중에는 제임스 프랑크, 리하르트 빌슈태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있었다). 

 

- 오스트발트는 후에 고정 질소를 찾으려는 화학자들의 노력을 납을 금으로 바꾸어준다는 신비의 물질, 현자의 돌을 찾으려는 고대의 노력에 비유했다.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키는 저렴한 방법을 찾는다면 공기를 황금으로 바꾸는 셈이니 훨씬 더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위험도 뒤따랐다. 현자의 돌을 찾아 헤맸던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정신이 이상해지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강박증과 탐욕으로 고생했다. 돌을 찾으려는 행동이 그 사람의 운명을 파괴한다는 것을,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이해할 것이다. 오스트발트는 돈을 받고 아이디어를 팔려고 애쓰다 애송이에게 치욕을 당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고정 질소는 그 시대의 현자의 돌이었고,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강박과 비극을 경험했다. 

 

- 브룬크의 첫 번째 승부는 인디고 염료였다. 독일 염료 산업은 석탄에서 인공 색상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그동안 식물이나 동물에서 얻을 수밖에 없어 구하기 어렵고 비쌌던 천연 염직물을 대체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독일에는 석탄이 풍부했고, 독일 염료 화학자들은 값싼 석탄을 가열, 증류하여 뽑아낸 다양한 화합물로 값비싼 제품을 만드는데 전문가였다. 화학산업의 매력이 여기 있었다. 흔하디흔한 재료로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 독일의 인공 색상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새로움(거의 대부분 새로운 색상이었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거나 희귀한 색상들로, 메틸렌블루나 콩고레드 등이 있었다)때문이었는데, 몇 가지 단점도 있었다. 석탄 염료 중 상당수가 세탁을 하거나 햇볕에 노출했을 때 금방 색이 바랬다. 새로운 색상이 쏟아져 나왔지만 수백만의 소비자는 여전히 색이 오래가고 익숙한 천연염료를 선호했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값비싼 염료는 아름답고 오래가는 청색으로 인디고라고 불렀다. 인디고는 성배나 마찬가지였다. 인디고로 밝게 염색하면 옷감은 하늘색으로 바뀌었고, 진하게 염색하면 진한 자줏빛을 띄었다. 요즘은 대부분 청바지 색으로 알고 있지만, 그 기원은 훨씬 화려하다. 인디고는 고생스럽게 잡은 지중해의 달팽이에서 얻어지며, 이집트 파라오의 장례식에 쓰이는 장식이나 로마 황제의 예복을 염색하는 데 사용했다. 인도에서는 한 아열대 식물에서 비슷한 색을 얻었고, 양탄자와 사리를 염색하는 데 사용했다. 인디고라는 말의 어원은 인도와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세계 무역이 활발해지자 인디고는 동인도 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으며, 유럽으로 가는 배의 화물칸을 가득 채우면서 무역업자에게 부를 안겼다. 인디고는 세계적으로 아주 귀하고 값비싼 염료였다. 

 

- 결국, 실망한 영국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이 작성한 노트 몇 권과 스케치밖에 없었다. 이것들은 화물 열차에 안전하게 실린 채 무장한 경비들이 지켰고, 영국인들은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누군가 열차 아래로 들어가 바닥을 열고 모두 훔쳐갔다. 영국인들은 결국 기억에 의존해 공식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보슈는 계속 시간을 끌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새로운 독일 정부가 회사를 도와줄 만큼 강해져 독일인들의 권리와 소유에 관한 법이 정해지길 기다렸다. 

 

- 독일을 무장해제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1920년대 초반 연합국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의 무장해제를 계속했다. 거기에는 화학공장을 조사하여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슈를 비롯한 독일 화학계의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서두르지 않고 협조했고, 연합국의 설문지 수십 장을 채워넣었으며, 가끔씩 실시되는 조사를 허락해주었다. 

 

- 1920년대 초반 잇따른 재정위기로 타격을 받았고, 단기적으로 해결하려다 엄청난 돈을 찍어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마르크 지폐가 쏟아져나오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마르크화의 가치는 빠르게 급락해 사실상 화폐로서의 가치가 모두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급여를 보따리로 받아 트럭 짐칸에 실어야 했고 그 돈으로 식량 가격이 오르기 전에 식량을 사러 달려갔다. 빵 1파운드(450g)의 가격이 8억 마르크까지 오를 정도였으니, 버터는 10억 마르크 정도 했을 것이다. 빈민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었고, 중산층은 저축했던 돈과 집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바스프는 회사의 채권과 해외 보유고의 지원을 받는 "아닐린 달러 aniline dollar"라는 화폐를 자체적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 저택에서는 네카 강 계곡이 내다보였고, 조금만 걸어가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나오는 곳에 있었다. 저택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고, 우아한 거실과 운전기사가 지내는 독채, 깨끗하게 단장한 잔디밭과 정원은 기업의 본질이 귀족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보슈의 성격이 집에 그대로 드러났다. 모든 장비가 갖추어진 기계 공장과 물리 실험실, 암실(사진이 새로운 취미였다)을 설치했고, 반구형 천체 관측소를 따로 지어 독일에서 가장 큰 개인용 망원경을 설치했다. 보슈는 직원을 고용해 동식물과 광물을 관리하도록 했다. 실험실과 망원경을 관리하는 직원들도 각각 따로 고용했다. 

 

- 1933년 4월 1일, 나치 지도자들은 전국적으로 유대인 사업을 보이콧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유대인은 종교가 아닌 혈통으로 정해졌다. 하버가 개종한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었다. 같은 날, 프러시아 법무부는 유대인 판사들에게 자진해서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 사건은 하버에게 우려를 안겨주었다. 판사라는 위치는 유대인이 독일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고 권위 있는 위치이자, 독일 유대인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 새로이 결성된 게슈타포는 뷔허와 보슈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었다(다행히도 누군가 뷔허에게 비밀 파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뷔허는 가까스로 보슈와 자신의 자료를 게슈타포 사무실에서 훔쳐냈다. 자료들은 그의 집 벽난로에서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 바로 3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날 중국은 심각한 비만 증가와 싸우고 있다. 그때와의 차이점은 하버-보슈 공법이다. 중국 정부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베이징 방문 이후 체결한 첫 번째 중대한 상업적인 거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최신의 현대적인 하버-보슈 고정 질소 공장 13곳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차지한 이래 중국이 서양과 처음으로 체결한 사업 거래였다. 기계는 중국으로 운송되어 설치되었고, 중국인은 운영 교육을 받았다. 몇 년 만에 중국의 생산 능력은 2배 이상으로 커졌다. 농업 생산은 크게 증가했다. 비료공장은 더 늘어났다. 

 

-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하버-보슈 공정으로 전 세계에 합성 질소가 엄청나게 투입되어 이러한 순환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마치 지구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식량을 배가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려고 실험을 하는 것 같다. 과학자들은 이제 막 결과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결과들은 비교적 추적하기 쉽다. 이를테면 학자들은 하버-보슈 고정 질소의 절반은 식량이 아닌 공기나 물에 흡수된다고 추정한다. 농부가 밭에 합성비료 1톤을 뿌린다고 생각해보자. 그중 절반은 작물을 키우는 데 쓰이고 일부는 공기로 되돌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은 비나 농업용수에 용해되어 땅을 통해 걸러져 하천이나 호수로 들어간다. 그리고 질소는 이동성이 좋아 다양한 분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섞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질산염의 형태로 물에 흡수된다. 

 

- 우리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합성비료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과 오용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오염을 피하면서 비료를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생태계의 토양과 변화를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의 위대한 기계를 조작했을 때의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 커다란 미스터리가 있고, 이를 해결하면 막대한 혜택이 있다. 지구에서의 복잡한 질소 순환 과정, 원소가 공기에서 생명체로, 기체에서 고체로, 고체에서 기체로,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그리고 반대로 전이하면서 형태를 바꾸는 과정, 그리고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수많은 생물체와 환경 등은 수많은 원자 순환 과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여기에는 파라켈수스, 갈릴레오, 토리첼리, 보일, 훅, 라부아지에, 베르텔로, 러더퍼드, 톰슨, 프리스틀리, 캐번디시, 데이비, 판 헬몬트, 폰 리비히, 로우스와 길버트 등 여러 명민한 학자들이 연구한 초석과 질소, 독성 기체, 플로지스톤 phlogiston을 비롯하여 불과 공기, 생명에 대한 관계를 다룬 여러 이론들이 포함되어 있다. 

 

- 1936년 미국 농부들이 사용한 고정 질소 가운데 3분의 1은 하버-보슈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1960년에는 90퍼센트에 달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하버-보슈 공장은 러시아에 있다. 매년 암모니아 250만 톤을 생산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공장인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에 있는 공장에서는 155만 톤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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