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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파 핸더슨]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개정판) -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

일루젼 2021. 10. 12.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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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캐스파 핸더슨 / 이한음

원제 : The Book of Barely Imagined Beings
출판 :  은행나무
출간 : 2015.03.10 / 2021.04.15 (개정)


환상동물보다 더 환상같은 지구상의 생물들을 A-Z순으로 한 종씩 뽑아 정리한 책이다. 어쩌다보니 과학 도서 위주로 읽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과학 도서라고 분류하기가 좀 애매하다. 보르헤스와 칼비노에게 많은 부분을 내어주며 철학과 문학, 예술사와 사상을 넘나드는 저술은 과학이라는 한 단어에 가둬 표현하기엔 아깝다.  

 

이전에 읽은 책들에서 인용을 뽑는 것이 필요한가 생각하던 시점인데, 이렇게 다양하게 쓸 수 없다면 당분간은 그냥 가볍게 감상을 남기는 정도로 그치기로 했다. 주석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은 검색해가며 읽느라 자주 끊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유일한 지성 존재이며 만물의 지배자'라는 인간의 생각이 오만이라고 말하며 익숙한/익숙치 않은 동물들의 경이를 보여주는 시도는 지금까지도 많았지만 이 책은 그런 의도를 뛰어넘는 재미와 가치가 있었다. 각 챕터별로 놓고 본다면 결코 해당 동물의 습성에 대한 연구저술만큼 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에 관련한 사회적, 문화적, 때로는 종교적으로 폭넓게 접근하고 다루는 저자의 글은 상당한 매력이 있다. 

 

전체가 부담스럽다면 관심이 가는 몇 챕터 정도만 훑어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마 틀림없이 생각한 것보다 적어도 한 챕터 정도는 더 읽게 될 것이다.  


- <상상동물 이야기>에서 보르헤스는 오징어 또는 참오징어처럼 긴 '아 바오 아 쿠(A Bao A Qu)'라는 동물을 묘사한다. 이 동물은 컴컴한 탑 안에 사는데 사람이 들어올 때에만 깨어난다. 탑 꼭대기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가 이 동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사람이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할 때에야 아 바오 아 쿠는 깨어나서, 방문자의 발뒤꿈치 쪽에 달라붙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순례자들의 발길에 가장 많이 닮은 계단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간다. 계단을 오를수록 이 동물은 점점 더 색깔이 짙어지고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가며, 내고 있던 푸르스름한 빛도 점점 더 밝아진다. 그런데 이 동물은 맨 위의 계단에 오를 때에만 최종 형태를 갖춘다. 오르는 자가 열반의 경지에 이르고 번뇌를 완전히 떨쳐낸 사람일 때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아 바오 아 쿠는 마지막 계단에 이르기 전에 마치 마비된 양 주춤거리고, 몸은 불완전한 형태로 변하고 파랗던 빛은 점점 창백해지고 흐릿해진다. 이 동물은 완전한 형태를 이룰 수 없을 때 고통스러워하며, 고통에 겨워 내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리기도 한다. 비단이 스치는 듯한 소리다. 이 동물이 깨어 있는 시간은 짧다. 여행자가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하자마자, 아 바오 아 쿠는 첫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기력을 잃고 거의 형태도 잃은 채 이 동물은 다음 방문자를 기다린다." 
 

- 이 다양한 속성들 -불의 동물, 미덕의 상징 또는 독의 상징- 은 중세 유럽의 동물우화집들에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르네상스 무렵이 되자 불과의 연관성이 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타지 않는 천을 '도롱뇽 울(salamander wool)'이라고 한다(아마도 이것이 석면을 언급한 초기 사례일 것이다). 파라켈수스 같은 유럽의 연금술사들에게, 도롱뇽은 우주의 네 가지 기본 물질 중 하나의 정수인 '불의 원소'로서, 연금술사가 필요할 때 소환할 수 있었다. 불 속에 있는 도롱뇽은 왕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금란의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에서 영국의 헨리 8세와 맞서고 있던 프랑수아 1세의 깃발에 바로 그 도룡뇽이 그려져 있었다. 그 뒤로 여러 세기에 걸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서 조앤 K. 롤링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꾼들은 불 속에 사는 도룡뇽의 환상성을 활용해 왔다. 

 

- 도롱농과 불을 결부시키는 시각은 사실 기독교보다, 아마 유대교보다도 더 앞서 나타났을 것이다. '삼 안다란(Sam andaran)'은 조로아스터교도의 언어인 페르시아어로 '안쪽의 불'이라는 뜻이다. 조로아스터교도는 불을 '신의 상징'이라고 본 초기 일신론자였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의 사람들은 도룡뇽에게서 불꽃만 본 것이 아니었다. <애시몰 동물우화집>에 따르면, 도룡뇽은 대량 파괴의 동물이기도 하다. 

 

- "우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제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면 절망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즉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자. 일단 시작한 뒤에는 결코 방치하지 말라."

 

- 이 동물들이 '지배한' 세계는 오늘날의 세계와 전혀 달랐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지금보다 빨랐다. 하루는 21시간이었고 1년은 417일이었다. 달도 지구에 더 가까이 있어서 자세히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황당무계하면서도 아름다운 단편소설인 <달과의 거리>에 표현된 것처럼 실제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듯 바다 위로 밝게 떠서 흔들거리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달이 더 가까웠다는 것은 오늘날보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더 심했다는 의미다. 그에 따라 해양 생물의 성장 속도도 영향을 받았다. 현생 앵무조개는 매일 달의 조석 주기에 맞추어서 물질을 분비하여 껍데기에 조금씩 층을 만든다. 그럼으로써 조금씩 나선형 껍데기가 자란다. 오늘날 방 하나에 들어 있는 이 생장층의 수는 대개 29개다. 한 달의 길이와 일치한다. 화석 기록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층의 수는 줄어든다. 오르도비스기의 나우틸로이드는 생장층 수가 여덟아홉 개에 불과했던 듯하다. 당시의 한 달은 오늘날의 일주일에 불과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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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블릿이 나오기 전이라 가방에는 책, 잡지, 신문 따위가 들어있었다. 나는 미처 다 읽을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의 읽을거리를 가득 들고 다니곤 했다. 생태계 파괴, 핵무기 확산, 고문자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려는 최근의 시도 같은 주제들을 다룬 자료들이었다. 한마디로 시덥잖은 짓을 하고 있던 셈이다. 그날 가방에는 아르헨티나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967년에 처음 펴냈던 동물우화집인 <상상동물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거의 20년 전에 보았던 책이었는데, 뒤늦게 생각이 나서 가방에 쑤셔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편 순간부터 나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라고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삼나무 숲의 수호자 홈바바(Humbaba)가 실려 있다. 홈바바는 온몸이 각질의 비늘로 덮여 있고, 사자의 발과 독수리의 발톱, 들소의 뿔, 끝에 뱀의 머리가 달려 있는 꼬리와 음경을 지닌다고 묘사되어 있다. 프란츠 카프카가 상상한 동물도 실려 있다. 캥거루 같은 몸에 거의 사람의 얼굴 같은 납작한 얼굴을 지닌 동물이다. 그 동물은 이빨로만 감정을 표현하는데, 카프카는 그 동물이 자신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칠레 설화에 등장하는 뿔 두꺼비도 나온다. 이 동물은 거북의 등딱지 같은 것을 몸에 두르고 있고,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처럼 빛나며, 너무나 강해서 재가 될 때까지 불에 태우는 방법 말고는 죽일 수가 없다. 시선이 닿는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존재를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매료시키거나 물리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동물들 -대부분은 전 세계의 신화와 전설에서 얻은 것들이고 저자 자신이 상상한 동물도 있다- 각각은 매혹적이거나 기이하거나 섬뜩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이 네 가지를 버무린 모습으로 삽화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은 현실에 반응하고 현실을 재창조하는 인간의 상상력을 탁월하게 보여준 걸작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따스한 햇볕 아래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 동물우화집이라고 하면 으레 중세 사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머나먼 낯선 곳에 사는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동물들의 모습을 금을 비롯한 값비싼 색소를 써서 그린 삽화를 보면서 즐기기 위해 만든 책이라는 식이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보들리언 도서관에 소장된 13세기 원고인 <애시몰 동물우화집 (The Ashmole Bestiary)>이 좋은 예다. 여기에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바다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피운 모닥불 위에 얹은 냄비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실려 있다. 

 

- 중세 중기의 멋진 삽화가 실린 동물우화집들의 기원과 영감의 원천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고대의 위대한 과학적 저술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원전 4세기에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사>와 서기 77년에 플리니가 쓴 <자연사>가 특히 그렇다. 그리고 <피지올로구스>(라틴어로 '자연 사학자'라는 뜻,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처음 쓰였다고 하며, 나중에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많은 판본을 낳은 동물우화집의 원형-역자주)라는 문헌과 로마 약탈(1527년 독일군과 에스파냐 용병군이 로마를 약탈함으로써 르네상스의 쇠퇴를 가져온 사건- 역자 주) 이후 장기간에 걸친 혼란의 와중에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전염병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이런저런 원천에서 뽑아낸 이야기를 어떻게 성서 이야기 및 기독교의 가르침과 결합시켰고 온갖 자연사 지식과 영적 가르침 속에 끼워 넣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기 700년경 노섬브리아 해안에서 발간된, 햇살 가득한 지중해 동부에서 유래한 만다라식 디자인에 북방의 이교도들이 그랬듯 동물 문양으로 장식한 <린디스판 복음서 (Lindisfarne Gospels)> 같은 중세 암흑기의 걸작들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추적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더 오래되고 더 항구적인 현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나기 1,000여 년 전에 각각 이집트와 크레타에서 그려진 다양한 새들의 모습을 담은 경관과 춤추는 돌고래 그림 같은 것들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플리니의 <자연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온갖 의외의 조합'이라는 말을 쓴다. 한 예로 플리니의 책은 어류를 이렇게 분류한다. "머리에 돌이 든 물고기, 겨울에 모습을 감추는 물고기, 별자리에 영향을 받는 물고기, 값이 아주 비싼 물고기." 이 책에 실린 글들도 마찬가지다(새뮤얼 존슨의 정의를 빌리자면, '마음의 산만한 번득임, 고르지 않게 소화된 단편'이다). 

 

- 신화와 전설만으로 얻을 수 있는 인식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보람차게 존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진화에 비춰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라고 한 진화생물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Theodosius Dobzhansky)의 말은 옳을 뿐 아니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 경이감과 감탄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는 점에서도 참이다.

 

- 로버트 포그 해리슨(Robert Pogue Harrison)의 말처럼, "상상은 사례의 측정된 유한성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다." 급진적인 정치 활동가이자 환경 보전 운동의 선구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 호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현실적인' 동네 사람들과 달리, 다림줄을 집어넣어서 실제로 호수의 수심을 쟀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상상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허구적으로 상상할 때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극도로 발휘된다." 진화론 덕분에 세계는 생명의 역사 전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표면이 된다. 

 

- 여기에는 더 큰 현안이 있는데, 그 점은 소설가 이언 매큐언이 그 다음 해에 우리와 똑같은 탐험에 나섰다가 혼란의 도가니를 겪은 뒤 쓴(처음에는 신문 기사로 실었다가 나중에 장편소설인 <솔라(Solar)>[2010]에 수록했다) 글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 배에는 혹독한 날씨에 쓸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누구 것이든 개의치 않고 원하는 장비를 집으려고 앞다투어 밀려드는 바람에 금세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매큐언은 이렇게 묻는다. 세심하고 지적이며 재능 있다고 널리 인정받은 사람들이 창고조차 관리할 수 없다면, 그들이 지구를 구할 것이라는 희망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철학자 레이먼드 게스(Raymond Geuss)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보지 말고,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며, 그 결과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라." 

 

- 브라운은 <전염성유견(Pseudodoxia Epidemica)> 또는 <통속적인 오류들(Vulgar Errors)>이라 불리는 그의 저서(당대의 <사이비 과학>이라고 할 만한 책으로, 1646년부터 1672년까지 26년간 6판까지 나왔다)에서 사람들이 환상에 빠지는 원인을 "잘못된 성향, 잘 믿는 성격, 게으름, 융통성 없이 기존 것에 집착, 악마의 시도" 등 다양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환상 자체를 파괴하는 데에 거의 전력을 쏟는다. 도롱뇽 신화는 "잘못된 확장(fallacious enlargement)"의 한 예로서, 탄탄한 영국 경험주의를 조금만 적용해도 쉽게 무너진다. "우리는 도롱뇽이 뜨거운 석탄불을 꺼트리기는 커녕 그 위에서 즉사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브라운은 현실적인 사람이었지만, 상징과 수수께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지은 <키루스의 정원(Garden of Cyrus)>은 예술, 자연, 우주의 상호 관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브라운은 신이 우주의 기하학자라고 보며, 신이 생물과 무생물의 모든 곳에 5점 모양(quincunx, 주사위의 5점 면에 찍힌 점처럼 다섯 개의 점이 X자 모양으로 찍힌 것)을 찍어 놓았다고 본다.  

 

- 열정만 충분하다면 누구든 도롱농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5점 모양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불의 원소'는 플라톤이 불을 이루는 원소라고 믿은 완벽한 형상인 사면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사면체는 삼차원 단체(Simplex, 해당 차원보다 한 개 더 많은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도형 같은 것-역자 주)다. 거기에서 유추하자면, 사차원 단체는 오면체, 즉 정사 투영을 통해 5점 모양 의도(별 모양을 비롯한 다른 모양으로도) 될 수 있는 사차원 형상이 된다. 생명의 암호에서도 이 형상을 찾을 수 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iranklin, DNA의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경쟁했던 과학자 중 한 명-역자 주)의 <사진 51>이 대표적이다. 이 사진에는 5점 모양 같은 DNA가 찍혀 있다. 

 

- '암본의 눈먼 예지자' 게오르크 에버하르트 룸피우스(Georg Eberhard Rumphius)가 사망한 지 약 3년 뒤인 1705년에 나온 그의 저서 <암본 진귀품 방(The Ambonese Curiosity Cabinet)>은 당대의 걸작 중 하나다. 오늘날 나온 책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이 책에는 정확한 묘사에 세밀한 그림을 곁들인 열대 해양 생물 수백 점이 실려 있다. 

   

- 러셀 자신도 그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신비주의적이라고 할 말을 했다. "세계는 우리의 지혜가 더욱 예리해지기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마법 같은 것으로 가득하다." 

 

-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경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 눈으로 보는 우리 인간에게는 시각이야말로 살면서 얻는 경험의 가장 직접적인 구성 요소다. 우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혹은 그렇다고 여기듯이), 그냥 보면 안다. 일상 언어에서 '보다'와 '이해하다'는 동의어로 쓰인다.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베다(véda)와 본다는 뜻의 라틴어 비데레(videre)는 어원이 같다. 심오한 깨달음을 가리키는 독일어 샤르프 블리크(Scharf blick)는 '예리하게 보다'라는 뜻이다.)

 

- 그리고 내 현실 감각을 통째로 의심하게 만드는 더욱 기이한 동물이 하나 있다. 바로 '배럴아이 (barrel-eye, Macropinnamicrostoma)'다. 이 동물의 앞쪽 윗부분은 액체로 차 있는 투명한 주머니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주머니 안에 초록색의 수정체가 위에 달린 두 개짜리 관 모양 눈이 있다. 수정체는 헬리콥터 좌석에 놓여 조종사와 항해사의 엉덩이를 기다리는 방석처럼 놓여 있다. 

 

 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

 
 -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13세기에 한 말이 딱 맞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면 보이는 것을 볼 수 없다." 

- 우리 눈이 신속 운동을 하는 동안 -0.2초까지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신속 운동이 멈춘 뒤 길면 0.1초까지, 뇌는 눈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 우리 눈은 보통 하루에 수만 번 신속 운동을 하므로, 우리는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사실상 눈이 먼 상태로 지낸다는 의미다. 하지만 뇌가 추론을 통해 '그 빈틈을 메우므로', 우리는 대개 그 사실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썼다. "환각은 기둥 구조를 비롯한 일차 시각 피질의 상세한 해부 구조, 즉 세포학적 구조와 신경세포 수백만 개가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복잡한 패턴을 형성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우리는 그런 환각을 통해 사실상 큰 집합을 이룬 살아 있는 신경세포들의 동역학, 특히 복잡한 활성 패턴이 시각 피질을 통해 출현하도록 허용하는 수학자들이 결정론적 혼돈이라고 부르는 것의 역할을 볼 수 있다. 이 활성은 개인적 경험이라는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기본적인 세포 수준에서 작동한다. 이 환각은 원형, 어떤 의미에서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형태다."(2008) 

 

- 이 논리의 한 형태는 적어도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야크(1715~1780)는 이렇게 썼다. "원래의 몸짓과 춤의 언어가 말의 언어로 대체될 때, 원래의 표현 형식이 지닌 특징은 보존되었다. 격렬한 신체 움직임 대신에 목소리가 힘이 담기는 방식으로 오르내렸다. 사실 최초의 언어에서 이런 높낮이가 매우 독특했기 때문에 음악가는 그것들을 악보로 기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목소리는 말보다 성가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 기원전 5세기의 작품인 <역사>에서 헤로도토스는 인도 사막에 여우보다 크고 개보다는 작은 사나운 동물이 있는데, 모래를 파헤쳐 황금을 찾아낸다고 적고 있다. 그 금을 약탈하러 가는 사람들은 가장 빠른 낙타를 타야 하며, 이 동물들이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동안 재빨리 달아나야 한다. 그들이 가장 빠른 낙타도 거의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중세 동물우화집의 원전인 6세기의 <피지올로구스>에 재수록되어 있다)에 얼마간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면, 이 동물은 일부에서 주장해 온 것처럼 마멋이 아니라 벌꿀 오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 꿀잡이새, 즉 인디카토르 인디카토르(Indicator indicator) -그렇다. 진짜 학명이다- 는 겉모습보다 이름이 더 독특하다. 외모만 보면 그저 작고 칙칙해 보이는 새이기 때문이다. 이 새는 밀랍을 잘 먹는데 벌집을 뚫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고 또 벌침에 쏘이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오소리와 인간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하도록 맡기는 방법을 찾아냈다. (오소리나 인간은 보답으로 꿀을 얻는다.) 꿀잡이새는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먼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상대의 근처에 앉아서 독특한 소리를 반복하여 낸다. 이렇게 동물이나 인간의 주의를 끈 뒤에는 벌집이 있는 방향으로 짧게 급강하하는 비행을 되풀이한다. 점찍은 동료가 잘 볼 수 있도록 연한 색깔의 꼬리 깃털을 반짝거리며 가는 길을 따라 자주 나무 위에서 휙 내려오곤 하는 것이다. 동료가 따라오지 못하면 이전 위치로 돌아가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벌집에 도착하면, 이전의 소리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소리를 내고는 동료가 벌집을 깨고서 꿀을 채취해 떠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그런 뒤 남은 밀랍을 먹는다. 

 

- 영국식 영어는 육지에 살면서 발이 넓적한 종류를 토터스(tortoise), 민물에 살면서 지느러미발을 지닌 종류를 테라핀(terrapin), 바다에 살면서 지느러미발을 지닌 종류를 터틀(turtle)이라고 구별하지만, 미국식 영어는 모두 뭉뚱그려서 터틀이라고 한다. 거북에 아주 기 발한 이름을 붙인 언어도 있다. 독일어에서는 방패-두꺼비라는 뜻의 쉴트크뢰테(Schildkröte)라 부르고, 헝가리어에서는 그릇-개구리라는 뜻의 테크뇌스베커 (tecknösbéka)라고 부른다. 

 

- 과거에 아주 많았다는 이야기를 불신하는 경향은 지금은 잘 알려진 현상으로, 기준선 이동 증후군(Shifting Baseline Syndrome)이라고 한다. 사람은 어릴 때 안 생물의 수, 다양성, 크기를 기준선이나 기준점으로 삼고서 세계가 늘 그래왔다고 가정한다. 세대가 지나면서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옛사람들의 '기준선'은 더 젊은 세대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 일본의 카레산스이는 자갈이나 모래 위에 암석과 식물을 배치한 뒤 자갈이나 모래를 갈퀴로 긁어서 선이나 무늬를 만든 정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잔가지, 바위, 모래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문 없는 문', 구름 사이로 솟아오른 산이 보이는 장문, 강 속의 호랑이, 물결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의 섬으로 보인다. 물론 정원에 있는 것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임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그 거북의 밑에는 뭐가 있냐고 물으면, 그 우주론자는 이렇게 답한다. "거북 밑에 또 거북이 있지. 무한히 죽 이어져.") 하지만 과학 이전 시대의 개념이라며 폐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신화와 상징의 힘을 결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마음의 특성과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과정들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말해줄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 몇 주 전에 다른 장수거북들이 낳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로서, 마치 터치라인을 향해 달리는 작은 럭비 선수들처럼 결연하게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각 새끼의 등에는 진주색 반점들이, 화성 표면에서 본 태양의 아날렘마(평균 태양일과 진태양일의 차이에 따른 태양의 높이 변화의 궤적으로 8자 모양을 띤다-역자 주)처럼 눈물방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좌) 지구 - 서울신문 / (우) 화성 - LG사이언스랜드 

 

- 우리가 아는 세계가 거북, 혹은 무한히 쌓인 거북들의 등에 타고 있다는 개념은 비유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 이치에 닿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우주론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따라서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의식하고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드넓은 바다의 거대한 거북처럼, 전체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훨씬 더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많은 우주론자들이 믿는 바처럼, 우리 우주가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로 이루어진 다중 우주의 하나에 불과하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주는 사실상 '무한히 죽 이어지는 거북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거북은 브라만의 부적이 된다. 물질, 에너지, 시간, 공간을 토대로 한 무한하고 투명한 현실을 의미한다.

 

- 몇 년 전 요크셔의 한 토마토에서 신의 메시지가 발견되었다. 먹을 수 없는 껍질을 절반으로 가른 만다라 안에 얌전히 들어 있는 과육, 내과피, 씨가 뚜렷하게 아랍어 글자들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 글자들을 볼 수 있는 이들의 눈에 말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적어도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신이 회오리바람과 퀘이사(quasar)에서처럼 토마토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메시지를 본 이들이 아포페니아(apophenia)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아포페니아는 실제로는 없는데도 의미 있는 패턴과 연결을 보는 경향을 말한다. 그 토마토에 관한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이 실제로는 없는 무언가를 보곤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실제로 무생물에서 얼굴을 보곤 한다. 이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6년에 더 간결하게 썼다. "잊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어리석음도 극복한다." 아마 제정신은 너무 많은 기억과 너무 적은 기억 사이를 잘 해치고 나아가는 데 달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중도를 걷다가도 망상에 빠지기 쉽다. 
 

- 로탄은 고대 셈족의 바다신인 야우(Yaw)의 동물이다. 성서의 레비아탄에 해당하는데, <욥기>에 따르면 레비아탄은 고래보다는 거대한 바다뱀에 더 가깝다. 레비아탄은 "깊은 바다를 도가니처럼 끓일" 수 있고, 생물발광 능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뒤쪽으로 빛나는 길을 만든다. 심해를 백발인 양 보이게 한다." 헤라클레스가 죽인 레르나의 히드라도 머리가 일곱 개였다. 자연 세계에서 비슷한 동물을 찾는다면, 일곱팔문어(Haliphron atlanticus)가 아닐까? 그런데 일곱팔문어는 사실 팔이 일곱 개가 아니다. 수컷의 팔 하나가 오른쪽 눈 아래에 달린 알주머니를 둘둘 말아 감싸도록 변형되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 컴퓨터과학자이자 음악가이자 가상현실의 선구자인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두족류의 열광적인 애호가다. "그들은 우리 종의 잠재적인 미래에 관한 단서들을 들이대면서 우리를 힐책한다." 

 

- 날 수 있는 현생 조류 중에서 가장 무거운 새는 아마 느시(Otis tarde, 들칠면조)일 것이다. 느시는 예전에는 몽골에서 스페인까지 초원에 흔한 새였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초원이 농경지로 바뀌고 고속으로 날다가 전깃줄에 걸리곤 하게 되면서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 자란 수컷은 날개폭이 2.4미터에 몸무게가 약 12킬로그램까지 나가는데, 21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Jordi Bas 

 

-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는 개 짖는 소리같이 무작위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리듬 있게 일정한 순서에 따라 정확히 반복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 점에서 볼 때 진정한 '노래'라고 할 수 있었다. 페인은 맥베이를 비롯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고래의 노래를 담은  앨범을 제작했다. 1970년에 나온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the Humpback Whale)>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3,0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 노래는 북극고래가 얼음과 어둠을 뚫고 돌아다닐 때 무리를 유지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수단 중 하나다. 또 이들은 수명이 길다. 적어도 2006년까지 날루탈리크(Nalutaliq)라는 이름이 붙은 독특한 흰머리를 지닌 북극고래가 100년 넘게 배핀 섬에서 정기적으로 목격된 바 있다. 1995년에 알래스카 웨인라이트의 이누피아트족 고래잡이 어부는 잡은 북극고래를 해체하다가 지방층에서 돌 작살촉 두 개를 발견했다. 돌촉은 북극권에서 100여 년 전에 상업용 포경선들이 금속 작살을 도입하면서 그것들을 원주민에게 넘긴 이래로 쓰인 적이 없다. 

 

-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그림은 기원전 6,0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그려진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다. 작은 배에 탄 사람들이 작살과 밧줄로 고래에 묶은 공기가 채워진 방광을 써서 긴수염고래처럼 보이는 것을 뒤쫓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거치적거리는 방광은 고래를 지치게 하고, 사냥꾼이 고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며, 고래가 지쳤을 때 잡아서 끌고 오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태평양 북서부에서는 같은 기술이 쓰였다. 

 

경향신문

 

 - 한때 무자비하게 사냥당했던 귀신고래가 현재는 캘리포니아 만에서 이따금 사람들에게 다가온다고 하면서, 해양생물학자 토니 프로호프(Toni Frohoff)는 이렇게 말한다. 

"행동학과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중대한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고래들은 눈을 맞추고 촉감을 이용하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또 아마 우리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음향학적 방법을 통해서 인간에게 의사소통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 같다. 혹여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내 모든 경력을 걸고서 맞서련다. 현실이 고래를 다룬 과거의 모든 신화들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 시베리아 추크치족 사이에 전해 오는 옛날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옛날 옛적에 한 젊은 여성이 북극고래와 사랑에 빠졌다. 북극고래는 여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젊은 남자로 변신했다. 그들은 혼례를 올렸고, 여자는 자식들을 낳았는데, 인간도 있고 고래도 있었다. 아이들은 해안과 물웅덩이에서 함께 놀았다. 여자는 인간 쪽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늘 말하곤 했다. "바다는 우리에게 식량도 주지만, 너희 형제자매인 고래들도 거기에 산다는 점을 명심하거라. 결코 고래를 사냥해서는 안 되고, 그들을 지키렴. 그들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 필립 호어는 이렇게 썼다. "고래와 우리의 관계는 끝난 것이 아니다. 놀라운 점은 고래도 아직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생물학자 스티븐 파인(Stephen Pyne)은 <불, 그 간략한 역사(Fire: A Brief History)>에서 인류 이전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이 장엄한 불길을 "첫 번째 불(first fire)"이라고 말한다. 
 

- "세계의 역사는 한 줌의 은유들에 주어진 상이한 억양들의 역사일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혜스 

 

- 바로 영어로 비너스의 허리띠(Venus's Girdle)라는 이름을 가진 띠빗해파리다. 햇빛을 받을 때마다 물에서 반짝이면서 여러 가지 색깔로 물결치는 투명한 띠처럼 생긴 존재다. 띠빗해파리는 빗해파리, 즉 유즐동물의 일종이다. 빗해파리는 해파리처럼 생겼지만 해파리는 아니며, 약 5억 4,000만년 전 캄브리아기 때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들의 계통은 불분명하지만, 실제로는 해파리나 다른 자포동물보다 우리와 유연관계가 더 가까울 수도 있다. 

Nerdist

 

- 인류가 우주의 더 넓은 공간에서 더 항구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은 곰벌레(Waterbear) 즉 완보동물 덕분일지도 모른다. 2007년에 '우주의 완보동물(Tardisrades in Space)'이라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제목의 실험이 이 루어졌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지구 상공의 궤도에 이 작은 동물들을 열흘 동안 놔두는 실험이었다. 그들은 섭씨 -272.8도(절대 영도에 아주 가깝다)에서 섭씨 151도까지 오르내리는 온도와, 거의 완전한 진공상태에서 살아남았다. 인간의 생명을 해칠 수준보다 1,000배 더 강한 우주선(cosmic ray)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견뎌냈다. 우주선에 덧붙여 태양 복사선에 직접 노출되었을 때 상당한 비율로 개체들이 죽었지만(거의 진공 상태인 우주 공간에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많은 개체는 살아남았다. 이들 외에 이런 능력을 조금이라도 지닌 다세포 동물은 없다. 아마 우리 인류... 혹은 우리의 후계자는 결국에는 이들의 이런 놀라운 특징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비교적 단순한 생명체도 제대로 이해하면, 경이로운 복잡성을 지닌다는 것이 드러난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짬을 내어 인터넷에서 세포 안의 분자생물학을 다룬 애니메이션들을 한번 보기 바란다. 

 

- 우주 전체를 6분 만에 여행하고 싶다면, 온라인에서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알려진 우주(The Known Uinivenve)>라는 동영상을 찾아보라. 


https://www.youtube.com/watch?v=17jymDn0W6U

 

- 1675년에 아이작 뉴턴이 한 말은 전반적으로 옳다. "자연은 고체에서 액체를 만들고 액체에서 고체를 만들며, 휘발성 물질에서 응고물을 만들고 응고물에서 휘발성 물질을 만들고, 둔탁한 것에서 미묘한 것을 만들고 미묘한 것에서 둔탁한 것을 만드는, 영구 순환을 일으키는 노동자다." 

 

- 우주에서 가장 흔한 수소 원자는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그 주위의 궤도를 도는 전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의 반지름은 전자가 도는 궤도 반지름의 1만 분의 1이다. 전자는 양성자와 비교해 크기가 1,000분의 1도 안 된다. 따라서 수소 원자는 99.9999999999999퍼센트 이상이 텅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다른 원자들도 비슷하다. 조약돌에도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리처드 파인만이 "자연의 상상할 수 없는 본성"이라고 정확히 표현한 것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과학은 원시적이고 유치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닌 가장 고귀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제노피 오포어가 돌아다니는 심해저와 암석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을 통해, 적어도 생명을 보는 우리의 관점은 더 확장되어 왔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현재가 무한히 이어지며, 미래는 현재의 희망에 불과할 뿐 실체가 없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의 기억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면서 시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학파가 있다고 상상했다. 물리학자 줄리언 바버(Julian Barbour)는 뉴턴의 주장과 상식에 맞서서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직관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조약돌이나 커다란 돌, 혹은 바위를 쥐거나 잡을 때면(혹은 새뮤얼 존슨이 권했을 법하게 발로 그 돌을 걷어찰 때면) 무언가가 실제로 있음을 실감한다.  

 

- 1977년에 이루어진 또 하나의 선구적인 사건은 세균과 별도의 고세균 영역을 설정한 칼 워즈의 분류 체계가 발표된 것이었다. 

 

- (재담을 대단히 중시한 사르트르는 라틴어 homarus에서 유래한, 바닷가재를 뜻하는 프랑스어 오마르(homard)가 '인간'에 경멸을 의미하는 접사가 붙어서 '별 볼일 없는 역겨운 인간', '같잖은 녀석'을 뜻하는 단어인 오마르(homme-ard)와 동음이의어라고 했다.)

 

- 이것이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고 세계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는 문턱을 건너고 있다는 의미일까? 과학과 기술의 사회학자인 셰리 터클은 로봇의 돌보는 능력, 즉 인간의 욕구를 보듬는 능력이 킬러앱 (killer app)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터클은 인간이 새로운 것에 애착을 갖기 쉽기에, 우리를 돌보는 로봇이나 애완용, 반려 로봇처럼 우리가 돌봐야 하는 기계들에게 감정적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기계들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척하겠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교적인 로봇에 푹 빠짐으로써 우리는 전에 없이 새로운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겠지만, 터클은 이 접촉이 다른 인간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구수가 줄어들지 않을까까지 우려한다. (프리츠 랑의 1927년작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인간이 기계에 성적으로 의지하는 미래를 극단적으로 묘사한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기계 인간들은 남자들을 굴종하는 짐승으로 만든다.)

 

- 인류가 창안한 창세 신화들은 놀라울 만치 다양하다. 상당수는 복잡하고 폭력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온건한 것도 있다. 일본 아이누인의 신화에서는 창조신이 할미새를 내려보낸다. 할미새는 바다 위에서 날개를 파득거리며 물을 튀기면서 작은 공간의 물을 옆으 로 밀어내어 그 아래 진흙을 드러내고는, 진흙을 발로 짓밟고 꼬리로 두드려서 단단히 다진다. 그렇게 하여 아이누인이 살 섬이 만들어졌다. 반면에 중국 신화는 최초의 존재인 거인 신 반고가 하늘과 땅을 떼어내는 일을 한 뒤에 지쳐 쓰러지자, 그의 신체 부위들이 산, 강, 나무, 풀로 변했다고 말한다. 말리의 만데족(Mandé) 신화에서 창조신은 유달리 단단하고 가시투성이인 아카시아의 씨로 생명을 창조하려 하다가 실패한 뒤, 쌍쌍이 대조적인 특성을 지닌 풀씨 네 쌍을 써서 다시 시도를 했다. 서아프리카판 음양 이론인 셈이다. 아메리카의 태평양 북서부 원주민들의 신화에서는 장난꾸러기 큰까마귀가 대왕조개와 짝짓기를 한다. 9개월 뒤 큰까마귀가 대왕조개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서 껍데기를 열었더니 그 안에 작은 남자들이 들어 있었다. 큰까마귀는 나중에 딱지조개 안에서 남자들의 짝이 될 여자들을 찾아냈고, 남녀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 이 새끼는 처음에 알의 가장자리에 난 검은 줄이었다가, 고동치면서 변형되어 간다. 등뼈, 심장, 눈을 만들어감에 따라, 이제 완전히 투명해진 배아 안에서 꿈틀거리는 온전한 물고기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이 변신에는 약 이틀이 걸린다. 

 

 

- 예를 들어 2010년에 해밀턴 스미스(Hamilton Smith)와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연구진이 무에서 생명을 창조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기존 미생물의 유전체를 잘라서 복제한 뒤 다른 미생물의 세포벽 안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반면에 아직까지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또는 좀 더 중요하다고 판명될 발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의 암호를 '재프로그래밍'하여 고세균 이래로 생명이 쓴 적이 없는 아미노산을 이용하는 새로운 체계 -일부에서는 라이프 1.0(Life 1.0)이라고 한다- 를 만들기 직전에 와 있는 연구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연구자 제이슨 친(Jason Chin)은 그것이 모든 생물이 지금까지 써온 20개의 아미노산을 넘어서 "세포 내에 최초로 진정 독자적인 별도의 유전 암호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태껏 세포에 없던 중합체를 생합성할 새로운 유전 암호 해독 체계를 말이다. 

 

- 2008년 여름에 세계 최초로 한국의 한 회사가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복제했다. 한국의 손꼽히는 과학자가 인간 배아 복제와 줄기 세포 연구의 증거를 조작했다고 폭로된 지 3년밖에 안 된 시점에 발표가 나왔기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진짜였다. 핏불테리어인 부거(Booger, '허깨비', '유령'이라는 뜻도 있다- 역자 주)에게 육신이자 자식(이 단어를 써도 된다면)을 만들어 주었다. 부거의 주인인 조이스 매키니라는 미국인은 새로 얻은 이 보배들에 자신과 그 강아지들의 처녀 수태를 도운 과학자들의 이름을 따서 부거 매키니, 부거 리, 부거 나, 부거 홍, 부거 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매키니는 젊은 시절 큰 추문을 일으켰는데, 에롤 모리스의 영화 <타블로이드>가 그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하지만 2008년에 한국 연구진이 썼던 방법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있다. 연구자들은 전혀 새로운 능력을 갖춘 동물을 만드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극도의 운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슈퍼마우스(supermouse)가 이미 나와 있다. 이 생쥐의 능력은 사람으로 치면 높은 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아직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 슈퍼마우스는 보통의 생쥐보다 수명이 더 길고 교미도 더 자주 하며, 매우 공격적이다. 

 

- 동물(animal)이라는 영어 단어는 '숨을 쉬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동물은 '종속영양생물', 즉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를 스스로 고정할 수 없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생물, 주로 식물에 의존해야 하는 생물이다. 반면에 탄소를 고정할 수 있는 생물은 '독립영양생물'이라고 한다. (다른 동물만을 먹는 동물도 여전히 식물에 의존한다. 자신이 먹는 바로 그 동물이 식물을 먹거나, 그 동물도 식물을 먹는 동물을 먹기 때문이다.) 

 

- 커즈와일 같은 이들이 상상하는 특이점(singularity), 즉 다양한 기술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독자적인 초지능을 갖추고 '인류 1.0 (Humans1.0)'이 저 뒤에 남겨져서 먼지가 되어 스러질 만큼 대단히 빨리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 앞으로 수십 년 안에 가능한 핵심 기술을 논의한 부분에서 커즈와일이 '틀렸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하지만 과학 저술가 올리버 모튼이 말하듯이,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합성생물학을 비롯해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들 중에서 혁신적인 것들이 나올 가능성은 높다. 

 

- 루이스 토머스(Lewis Thomas)는 1974년에 발표한 <세포의 삶(The Lives of a Cell)>에 이렇게 썼다. "우리의 비존재(non-existence)를 뒷받침할 좋은 사례가 하나 있다. 우리는 공유되고 빌려주고 점유된다." 우리 자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라, 그때 그때 형성되는 연결망과 더 폭넓은 패턴의 일부다.

 

- 루이스 토머스는 지구의 생태에 인간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 지구의 형태 형성 과정에서 특수한 단계임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당분간 우리 같은 존재가 필요한 시기일 수 있다. 에너지를 가져오고, 운반하고, 새로운 공생 관계를 찾고, 미래의 어떤 시기를 위해 정보를 저장하고, 어느 정도 치장을 하고, 태양계를 위해 씨 앗을 운반할 수도 있는 존재가 말이다. 그런 일들을 하는 자, 바로 지구를 위한 잡역부다. 나로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듯한 본질적으로 초현실적인 존재보다, 이 쓸모 있는 역할 쪽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 스스로를 자연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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