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존 켄드릭 뱅스 / 앨버트 레버링 / 윤경미
출판 : 책읽는귀족
출간 : 2016.11.1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느낌을 잘 이용해 사회를 풍자한 글이다.
언어유희에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돋보인다. 각 등장인물의 특성을 잘 살려 재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주석이 원체 많아 아예 왼쪽 페이지는 본문, 오른쪽 페이지는 주석 또는 부연설명으로 지정했는데 처음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으나 적응하고 나자 나름대로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작품 자체로 매우 훌륭하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스틱스 강의 하우스보트>까지만 추가로 읽어볼까 싶다.
- 이 책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는 존 켄드릭 뱅스의 최대 장기인 인문학적 패러디와 사회 풍자, 정치 풍자의 글맛이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물론 이 책은 오래전에 발표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현재 우리 사회와 시대의 문제가 오버랩될 정도로 작가의 인문학적 통찰력은 탁월하다. 그게 바로 어느 시대, 어떤 사회라도 관통되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과 문제점을 통찰해내는 고전의 향기와 품격이 아닐까.
- "빠른(fast) 열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히 고정시켜서(fast) 만들면 된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열차가 어디에도 갈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하죠?" 앨리스가 물었다.
"그건 간단해. 열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되지. 게다가 열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릴 때의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거든."
- "그렇진 않지." 도마우스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저 그걸 해주겠다고 약속만 하지. 그게 바로 시유제의 장점 중 하나란다. 약속하는 건 아주 간단하거든. 우리는 뭐든지 약속해 줄 수 있단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면, 더 좋은 걸 약속해 주면 그만이야. 한 마디로 약속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셈이지."
- "여기에 있는 작은 책에는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개인마다 부여된 '시유 전화번호'가 나와 있단다. 신문팔이 소년에서부터 브리지 게임을 즐기는 상류층 사람들까지 신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각자의 고유번호가 이 책에 나와있지.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느 때건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단다. 비록 태생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귀족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지. 누구나 '시유 전화'를 통하기만 한다면 설령 사회 계층이 달라도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거든."
-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의 모든 가정들이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하지. 우리가 정한 규칙 중 하나는, 바로 전화를 받은 사람이 상대의 질문을 받은 즉시 진실한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거란다. 물론 아주 예의 바른 말과 태도로 말이다. 네가 직접 한번 체험해 보려무나. 블루밍데일 83115번으로 전화를 걸어서 S. 반 리빙스턴 스미드 부인을 바꿔 달라고 하렴. 그 부인은 마을에서 가장 지체 높고 멋진 여성이지. 전화를 걸어서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뭐든지 물어보려무나. 그러면 우리 시유 전화 체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될 거야."
- "채권 발행 가격은 2센트이고 금리는 10퍼센트란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이들을 위해 단단한 견과류를 씹어 줄 때마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그에게 1센트를 지급하는 거지. 그 사람은 현금 기록카드를 조끼 주머니에 항상 꽂고 다니며, 서비스를 해줄 때마다 돈을 받고 그 돈의 액수를 기록해 두는 거지. 그리고 주말마다 시의 재무부에 그 돈을 반납하는 거야. 그렇게 모인 돈은 채권의 이자로 지급되고 말이지. 이렇게 했을 때 추가적인 이점이 있는데, 바로 치아가 유통 가능한 자산이 된다는 거야. 이전의 체제에서는 치아로 돈을 벌 수 없었지만, 새로운 체제 하에서는 돈이 궁할 때 여차하면 그 채권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도 있게 된 거지. 어디 그뿐이겠어? 시 정부에서 치과 비용을 대주고 기타 치아 관리 용품까지 제공해 준단 말이지. 그러면 개인이 치아 관리에 드는 비용도 아낄 수 있어. 시에서도 치아 조사관에게 연간 1200 달러를 지급하는 것 이외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뭐 그 정도야 껌 값이지. 사람들이 공공 치아 서비스를 충분히 많이 이용해서 수익 배당금이 늘어나면 그걸로 충당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어쨌든 우린 마침내 이 엄청난 일을 해냈단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치아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도 얼마든지 시유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
- "그러니까 1달러당 43과 3분의 1퍼센트 기준으로 38달러니까 연10%짜리 3급 채무 증서를 적용하고... 인쇄비와 광고비, 그리고 견본을 제외하면 채권으로는 약 97,347.83 달러에 해당하는군."
-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시유제 조직 내에 상당수의 유권자들을 고용했거든. 우리 임기가 끝나면 정확히 그네들의 임기도 만료되지. 그러니까 유권자들이 우리에게 반대하는 투표를 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표를 던지는 셈이야.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리 시유제 체제는 자기 범죄(self-perpetrating)를 유지하는 거지."
"모자 장수가 말하려는 건 시유제 체제가 자기 영속적 (self-perpetuating)이라는 거야."
- "우리는 또 독자가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시만 쓰도록 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지. 예전에는 시를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했기에, 운만 맞춘다면 세상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시를 써도 무방했지. 예컨대 "아레투사 스핑크"의 '열망'이라는 시처럼 말이야. 이 시를 기억하니?”
- 뱅스는 '뱅스 판타지 (Bangsian Fantasy)'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뱅스 판타지란 셰익스피어,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공자, 허풍선이 남작 등 유명한 역사적 또는 문학적 인물들을 한 곳에 끌어와 사후세계를 무대로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말한다. 뱅스 판타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스틱스 강의 하우스보트(A House-Boaton the Styx)>, <하우스보트의 추격(Pursuit of the House-Boat)>, <마법에 걸린 타자기(The Enchanted Type-Writer)> 등이 있다.
- 파로(Faro)는 17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카드 게임의 일종으로 규칙이 쉽고 간단하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전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카드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벙코(bunco)는 주사위 게임의 일종으로 19세기 영국에서 시작하여 미국으로 전파되어 도박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 알라바잠(Alabazam)은 칵테일의 일종이다. 물리가타위니(Mulligatawney)는 인도 음식에 뿌리를 둔 수프의 일종이다.
- 아레투사(Arethusa)는 '물 뿌리는 자'라는 뜻으로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이며, 스핑크(Spink)는 새의 한 종류이다.
- 온정주의(paternalism)는 정부나 조직이 그 종사자에 대하여 가부장적 가족 관계의 모델에 따라 보호하고 규제하는 체계를 말한다. 이때 그 관계는 아버지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 즉 명령적이고 인자한 관계와 유사하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권력자가 피지배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사회적 ·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을 합법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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