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자크 카조트 / 최애영
출판 : 열림원
출간 : 2006.02.03
이 책은 악마를 소환하지만 사랑에 빠지고 마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그가 조심하고 경계하면서도 빠져들고 마는 과정을 읽고 있자면 같이 설득되고 만다. 처음의 태도와 어조에서 서서히 달라져가는 부분이 백미다.
프랑스 문학은 거의 접해보지 못해서 은근한 은유가 작가의 스타일인지 프랑스 문학의 특징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표현한 부분이 상당하다.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바벨의 도서관' 판으로 한 번 더 읽고 싶다.
추가로 보르헤스의 해제를 구해 읽어보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판본의 해설과 생각이 좀 다르다.
알바로의 어머니 돈나 멘시아는 성모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자를 위해 그의 영혼을 구해온다는 믿음이 겹쳐지는 묘사가 등장하는데, 어머니 또는 예수가 그들을 위해 변호하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결말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과연 진짜 어머니와 박사인지 의문이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가는 여정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모두 허구의 인물들이라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어머니 또한 허구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더군다나 비온데타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며 '끊을 수 없는 매듭'으로 얽혔다고 말한 뒤 '앞서 출발했다.' 합법적으로 맞게 될 신부를 '악마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하는 박사가 진짜 박사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부의 진실에 오해하기 좋은 양념이 더해진 교묘한 대사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성립할 수 없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인 대사도 등장한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다른 역자의 판본과 보르헤스의 해제로 한 번 더 도전하려 한다.
내 사랑,
당신은 가장 예외적인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나와 함께 인간들을, 우주의 요소들을, 자연 전체를 당신에게 복종시키고 싶지 않아?
내 소중한 알바로, 난 악마야.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내,
당신을 분별력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을 속여야만 했어.
당신네 인간들은 진실을 비껴가니까,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의 눈을 멀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아! 당신은 원하기만 한다면 정말 행복해질 거야!
난 당신을 완전히 만족시키고 싶어.
- "젊은 친구, 자네의 무지함이 참 마음에 드는군.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학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적어도 자네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일세. 그리고 지금은 자네가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이."
- 나는 가슴 깊숙한 곳까지 감동되었다. 그리고 나는 넋을 앗아가고 있는 그 매력의 창조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 정녕 이것이 나의 감각들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독특하게 결집된 찬란한 수증기 더미란 말인가? 이것이 내가 채색된 환영으로 취급하던 바로 그것이란 말인가?
- '너의 열정과 너 자신 사이에 상당한 거리를 두어라. 그리고 거기에 완수해야 할 의무를 놓아라. 그러면 뒤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이 너에게 모든 것을 선명하게 해명해줄 것이다.'
- "그래요.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할 수는 없었어요. 당신이 내게 약속했어요. 그리고 난 당신에게 약속했고요. 그게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당신들의 의식은 기만에 대비하기 위해 취해지는 예방책일 뿐이에요. 난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나머지가 내게 달려 있는 게 아니거든요. ..."
- 어느 날 저녁이었다. 군밤 몇 개와 아주 작은 키프로스산 포도주 한 병을 놓고 온갖 종류의 추론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던 무렵, 우리의 대화는 우연히 히브리 신비철학과 그 비법을 행하는 강신술사들에 관한 토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들 중 한 명이 그것은 진정한 과학이며 그 작업 또한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젊은 축에 드는 네 명이 그것은 불합리 투성이인데다가, 우직한 사람들을 속이고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딱 좋은 천박한 계략들의 원천이라고 반박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플랑드르 출신의 고참은 멍하니 파이프를 피우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무관심한 표정과 어딘가에 넋을 뺏긴 듯한 모습은 혼이 빠질 정도로 시끄러운 그 북새통 같은 불협화음 사이로 나의 눈길을 끌었다. 대화가 좀 산만하게 진행되어서 별 홍미를 느끼지 못하던 참에, 그 광경은 나를 설전에서 끄집어내 버렸다.
- '카발라(Kabbalah)' 라고 불리는 히브리 신비 철학은 유대교에 내재하는 비교적인 전통을 반영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비주의적인 생각에 따라 성경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문학작품을 만들었는데, 구약성서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시편>이나 <아가>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 "그건 내가모르는 것에 대해 무턱대고 동의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침묵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죠. 나는 신비술이 뭘 말하는지조차도 알지 못하거든요."
- "흥분을 잘 하는군, 친구. 하지만 자네는 아직 자네에게 예정된 시험을 거치지 않았어. 자넨 그 숭고한 범주에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조건들 중에 어떤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단 말이야."
"어!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아마 2년쯤..."
- "자네에게 꼭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혼령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허약함이, 그러니까 우리의 심약함이 그 혼령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지. 하기야 우리는 혼령에게 명령하도록 태어났으니까 말이야..."
- "모든 것이 자네에게 복종해야 하네. 그전에는 안 돼. 만약 두려움 때문에 잘못된 행동이라도 한다면, 극도로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 구약성서에 따르면, 낙타는 불순하고 부도덕한 동물이다. 카조트가 악마를 표현하기 위하여 구약성서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의도적으로 낙타의 이미지를 동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상징사전 Dictionnaire des symboles>(Jean Chevalier 편저, Laffont 출판사, 1969)에 따르면 왕의 종복인 동시에 신비 철학을 전수하는 자와 낙타를 동일시하는 여러 고서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알바로의 대사에 등장하는 히브리 신비 철학과 신비주의 비법을 환기시킨다.
- Che vuoi? : 무엇을 원하느냐?
- 나는 나의 모든 힘을 모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내 힘이 전부 흩어지려 하였던 것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시켰다. 분명 우리의 영혼은 아주 거대하고 경이로운 원동력을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다. 수많은 감정과 관념과 깊은 생각들이 나의 가슴을 두드리고 나의 정신을 통과하면서, 일제히 한꺼번에 내 존재에 강력한 인상을 새겼다. 급작스런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나는 공포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 Maravillas : 스페메인어로 경이, 불가사의 등을 의미한다.
- "그럼요, 신중함은 별개의 일이라손 치더라도, 확률에 행운을 거는 놀이를 배울 수는 있지요. 우연의 유희라는 나리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에요. 이 세상에 우연이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아요.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숫자의 과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필연적인 조합들의 연속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과학의 원칙들은 모두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도 심오해서 스승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것들을 파악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나 먼저 그런 스승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자신을 그와 결합시킬 줄 알아야 해요. 그 숭고한 지식을 나리께 이미지로만 설명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군요. 숫자들의 연쇄는 우주의 리듬을 만들어요. 그러니까, 흔히 우연적인 사건이라 부르는 것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연적인 사건이 사실은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들 한답니다. 다시 말해 머나먼 영역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서부터 오늘 나리를 무일푼으로 만든 그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운명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건이 보이지 않는 시계추의 조절에 의해 차례로 세상에 떨어지는 것이죠."
- ... 죽이려 하고 있어. 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문장을 결코 완성할 수 없었다.
- 우리는 협소한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자신 있게 그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손이 절벽으로 나를 떠밀었다. 난 그것이 누구의 손인지 알아보았다. 비온데타의 손이었다. 내가 떨어지려는 찰나에 어떤 다른 손이 나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품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여전히 무서움에 헐떡이면서, 나는 외쳤다. 자애로운 어머니! 당신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군요, 꿈속에서조차도.
- "그러나 인간의 오만은 다른 즐거움들을 열망해요. 인간은 그 천성적인 불안 때문에, 미래에 대한 전망 속에서 좀 더 커다란 행복을 예상하지 못하면 한 순간도 행복을 포착하지 못해요."
- 그때가 7월 중순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구 쏟아지는 우박 섞인 비를 맞게 되었다. 내 앞에 열려 있는 문이 하나 보였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커다란 교회 문이었다. 거기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베니스에 체류한 이래로 이렇게 교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런 사건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생각은 내 의무를 그토록 완벽하게 잊어버린 것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두 정령이 어떤 여성의 형상을 검은 대리석 무덤 속으로 내리고 있었다. 다른 두 정령은 무덤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각상들은 모두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의 자연스러운 광채가 어둠과의 대조 속에서 더욱 부각되면서 램프의 희미한 불빛을 강렬하게 반사하고 있어서, 마치 그 형상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 예배당 안쪽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당시로서는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어떤 경우에 우리가 강력하게 그것을 요구한다면, 비록 그 기도가 실현될 리 만무하다 할지라도 어쨌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킴으로써, 우리는 신중함을 다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떠올리고 그것들을 이용하는 상황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나의 신중함은 전적으로 신뢰받을만 하였다.
- "내가 내 의지대로 당신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항상 가능할까요? 난 내 선택에 의해 여자가 되었어요, 알바로. 그러나 난 결국 모든 감정과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어요. 난 대리석이 아니에요. 난 나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을 부위에 따라 선택했어요. 그 물질은 매우 민감해요.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게 할 것이고 나는 당신에게 무미한 존재가 되겠죠. 여성으로서의 매력들을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겸비하기 위하여 결국 여성의 모든 결점들까지 품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을 감행해 버렸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러나 무분별한 행동은 범해졌고, 난 현재의 이 모습으로 만들어졌어요. 나의 감각들은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격정으로 이루어졌고 나의 상상력은 화산과도 같아요. 만약 당신이 모든 열정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의 대상이 아니라면, 그리고 우리가 이 자연스러운 충동의 원칙과 귀결들을 살라만카 대학의 학자들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면, 한마디로, 이 열정의 격렬함은 당신을 공포에 떨게 하고야 말 거예요. 그들은 이 격정에 가증스러운 이름을 붙이고 오직 그것을 억누르려고만 해요. 영혼과 육체는 어떤 천상의 불꽃을 원동력으로 하여, 서로에게 상호적으로 작용하고 서로의 결합의 필연적인 존속을 위해 협력하도록 노력해요. 그런데 그들은 바로 그 불꽃을 질식시키려는 거예요!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에요, 알바로! 물론 그것의 충동들을 제어해야 해요. 그러나 때로는 그것들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어야 해요.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거역한다면, 우리가 그것들을 자극한다면, 그것들은 일제히 한꺼번에 우리들의 통제로부터 빠져나가버릴 거예요. 그러면 이성은 그것들을 다스리기 위해 어디에 좌정해야 할지도 모르게 되고요. 난 지금 바로 그러한 순간에 처해 있어요. 제발 나를 신중하게 대해줘요, 알바로. 난 6개월밖에 되지 않았어요. ..."
- "벼락이 당신에게 무슨 대수란 말이오? 당신은 공기 속에서 사는 데 익숙하잖소. 당신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으니 그것이 만들어지는 물리적인 생성과정을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그걸 잘 모른다면 무서워하지도 않겠죠. 난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물리적 원칙들에 순종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 원칙들이 죽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것들이 물리적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죠."
- 그들은 세비야의 판당고 무곡을 연주한다. 젊은 집시 여인들이 캐스터네츠와 바스크 북을 두드리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축하연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들과 뒤섞이면서 동작을 따라한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춤춘다.
- 파르테노페 : 순결한 처녀를 뜻한다. 19세기 <라루스 대사전>에 의하면, 그녀는 율리시스에 반한 세이렌 요정으로, 그에게 멸시당하자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녀의 시체가 파도에 휘말려 이탈리아 해안으로 밀려오자, 해안의 주민들이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고, 그 옆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파르테노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폐허가 되었고,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다. 네아폴리스(새로운 도시)라 불린 이 도시가 바로 오늘날의 나폴리다.
- "아니, 내 사랑 알바로, 아니, 그것은 전혀 실수가 아니었어.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내. 난 당신에게 그렇게 믿도록 해야만 했어. 당신을 마침내 분별력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을 속여야만 했어. 당신네 인간들은 진실을 비껴가니까,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의 눈을 멀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 아! 당신은 원하기만 한다면 정말 행복해질 거야! 난 당신을 완전히 만족시키고 싶어. 사람들이 나를 끔찍하게 만드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다는 것을 당신은 이미 인정하고 있잖아."
- "우리의 일이 이제 다 정리되었어. 당신이 날 찾아왔고, 난 당신을 따라와 섬기고 아꼈어. 결국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했어. 당신을 소유하고 싶었거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당신이 스스로를 내게 완전히 내맡겨야만 했어. 처음에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서 몇몇 계략들이 필요했던 것 같아. 하지만두 번째 경우에는, 나 스스로 내 이름을 불렀지. 당신은 자신이 누구 수중에 넘겨지는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무지를 내세울 수는 없을 거야. 알바로, 우리는 이제 끊을 수 없는 매듭으로 결합되었어. 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더 잘 아는 것이 중요해. 내가 당신을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는 만큼, 우리의 특권이 상호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당신에게 보여줘야겠어."
- 그러나 양쪽으로 땋아내린 머리 모양은 그 전날 상태 그대로이며, 장미꽃 모양의 8자 매듭 또한 그대로 끝에 달려 있다.
- 아! 내가 돈나 멘시아에게 다가가 무릎 끓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존경하는 어머니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악착스레 따라다니는 유령들이여, 괴물들이여. 너희들은 그래도 감히 그 피신처를 범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서 나는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멀어져 지냈던 유익한 원칙들까지 모두 되찾을 수 있으리라. 난 그것들로 너희들에 대항하는 성벽을 쌓으리라. 그러나 나의 방탕한 생활이 야기한 슬픔으로 인하여, 내가 나의 수호천사를 잃어버렸다면... 아! 오직 그녀의 원수를 나 자신에게 갚기 위해서만 살고 싶구나. 수도원에 칩거하리라...
- 스페인어를 그대로 풀어서 이해할 때, 케브라쿠에르노스(Quebracuernos)는 '뿔을 부러뜨리는 자'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인 교훈을 내리는 이 대학자의 이름 은성스러운 은총이 악마의 모든 사악한 시도들을 물리친다는 것을 암시한다.
- "살라만카 대학의 박사예요. 내가 신뢰하고 있는 분이지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요. 그대 또한 그를 신뢰해도 괜찮을 거예요. 그대의 꿈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를 당황하게 하는 사항이 하나 있어요. 케브라쿠에르노스 선생이 그와 관련된 항목들을 잘 알고 있으니, 그 의미를 나보다 훨씬 더 잘 정의해줄 거라오."
- *이 두 작품은 장 보댕(Jean Bodin)의 <주술사들의 악마 광증 La Démomanie dessorciers>(1580)과 발타자르 베케르(Balthasar Bekker)의 긴 제목의 책, <마법에 걸린 세상, 혹은 혼령들과 그들의 본성, 권능, 집행과 작업들에 관계하고, 인간이 소통과 덕성을 통하여 생산할 수 있는 효과들에 관계하는 공통된 감정들에 대한 검토, 4부작 Le Monde enchanté, ou Examen des communs sentiments touchant les esprits, leurnature, leur pouwoir, leur administration et leurs opérations et touchant les effets que les hommes sont capables de produire par leur communication et leur vertu, divisé en quatre parties (1694)>을 암시하고 있다.
- "진실과 거짓이 혼합된 모호함과, 휴식과 각성 사이의 비몽사몽의 상태를 조작하게 된 것이지요. 나리의 혼동된 정신은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나리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던 환영이 자신의 간교함의 효과가 아니라 나리의 뇌에서 발산되는 체기가 촉발한 꿈이라고 믿도록 말입니다."
- "나리의 소명은 아직 충분히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필요합니다. 제 말씀을 믿으십시오. 한 여성과 합법적인 관계를 맺으세요. 나리의 훌륭하신 어머니께서 그러한 선택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리와 결합하게 될 여성이 천상의 매력과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나리께서는 그분을 악마로 취급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그 시대의 도덕적, 미적 가치관에 대한 이 작품의 위상은 그것이 수정되고 완성되기까지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후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에 따르면, 당시 독자들은 초본에서처럼, 주인공이 악마의 유혹에 패배하는 순간에 이야기가 급작스럽게 마감됨으로써 상상하는 즐거움이 단숨에 박탈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 다음의 수정본에서처럼 그가 악마의 희생물이 되어 있을 법하지 않은 온갖 공상적인 모험의 수렁에 빠져 도덕적으로 타락해 버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이한 요구들과 타협하기 위해, 그는 미덕과 쾌락 사이의 갈등에 주안점을 두는 당대의 사실주의적 문학 기류에 충실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상상의 여운을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결과, 주인공이 어느 정도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들면서도 결코 그의 명예가 완전히 훼손되지는 않도록 두 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탈고된 최종 텍스트는 이야기 전체의 모호한 흐름을 통해, 사건의 진위를 되묻는 묘한 즐거움을 독자들로 하여금 맛보게 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기본 사유 원칙이었던 '회의'에 기댄 새로운 미학이었다.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이성의 합리성에 회의를 던지는 지적 불확실성'의 미학적 효과를 겨냥하는 환상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리고 있었다.
- 더구나 프로이트는 독일어 단어, 'das Unheimliche' 가 지니는 독특한 의미 파장을 추적한 끝에, 고전주의 미학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미학 개념을 제시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호프만의 환상소설 <모래 사나이>의 분석을 통해 묘하게 불안하거나 두려운 감정을, 억압된 것이 회귀해오는 순간을 가리키는 정서적 표시로 설명했다. 현실원칙에 따라 억압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무의식적, 태곳적 욕망은 또한 합리적 이성이 접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악마의 운명과 유사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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