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제프리 버튼 러셀 / 김영범
원제 : Mephistopheles : the devil in the modern world
출판 : 르네상스(최미화)
출간 : 2006.03.22
<악의 역사> 4부작 중에선 가장 수월하게 읽혔다. (발췌 정리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근대의 악마의 개념은 주로 문학작품과 사조 속에 드러난 것들을 통해 설명하는데, 읽어본 작가나 작품인 경우에는 저자의 설명을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그 주장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로) 편했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의 이름이 대거 튀어나올 때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무래도 선과 악, 신학, 그노시즘은 당대의 거대한 유행이었던 게 틀림없다. 밀교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유명 작가들이 언급된다는 건, '나 좀 잘 나간다'하는 사람들은 다 한 발씩 걸쳤다고 봐야한다. 물론 진지한 신앙심 속에서 글을 써나간 작가들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작가들도 있겠지만... 읽어봐야 할 목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매우 서글프다.
이전의 나의 독서 목록과 취향을 돌이켜보면 계몽주의보다는 낭만주의에 쏠려있다. 사드나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등...
빅토르 위고나 브람 스토커, 메리 셸리나 포, 허먼 멜빌, 윌리엄 블레이크, 발자크부터 톨킨과 C.S. 루이스, 융, 프로이트 등등등.... 사실 뭔가 하나 걸치지 않기가 어려울 듯 하다.
바꾸어 생각하면 항상 세계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것은 삶 속에 고통이 반드시 존재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본다.
긴 대장정의 끝 치고는 결말이 다소 말랑했지만 어차피 답이 나올 수는 없는 문제였으니까.
수많은 이론과 논증과 반박들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였다.
(개인적으로는 이전 저작에서 정리한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끝.
- 이 앞의 세 책은 악마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일치된 발전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 네 번째 책은 전통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은 이러한 전통의 분열 과정을 반영한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이름은 16세기에 파우스트의 전설에 나오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파우스트 전설은 괴테에 의해 만들어진 명백한 비기독교도인 파우스트의 비전통적 관점 속으로 서구문학을 이끌고 갔다. ... 지난 20년 동안 나는 이 주제를 탐구하고 숙고하면서 내 견해는 계속 발전해왔다.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에 남는 것이라곤 알고자 하는 욕망뿐이었다. 왜냐하면 지혜가 지식보다 위대하고 지혜보다 더 위대한 것은 사랑이므로.
- 악마도 역시 수도사나 신비주의자들의 견해 속에 자신의 관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명상을 통해 신과의 강력한 결속을 체험하는 기독교의 특징은 어디서나 신이 함께 한다는 강한 믿음과 신과의 합일을 향한 부단한 기도생활의 강조에 있다. 신비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는 영혼과 우주의 진행을 가로막으려는 어떤 것이라도 모두 악마의 수작이다. 당신이 그러한 목표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수록, 악마는 당신의 관심을 돌리려고 더욱 노력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비주의자들은 종종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악마를 경험하곤 한다. 그들은 깊은 자기반성을 통해 영혼 안에 내재된 악한 경향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 16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수도사들은 카르멜파의 수도사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루터주의자 야코프 뵈메, 그리고 예수회(제수이트)의 창시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였다. 영적인 훈련을 위해 체계적인 규율을 제안한 로욜라는 인간의 치명적인 적은 그리스도를 섬기려는 올바른 목표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돌리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 연극 〈아담의 추방(Adamus exul)〉에서, 루시퍼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래서 하늘 나라의 기쁨으로부터 자신을 쫓아냈기 때문에 하나님을 "난폭한 뇌신"이라고 부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을 그의 왕좌에서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루시퍼는 그에 대한 복수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창조물들을 파괴할 계획을 세운다.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킬 수 있으면, 그들과 함께 지옥의 비참함에 동참할 수 있다. 아담을 유혹하는 데 실패한 후에, 악마는 설득력 있는 감언이설로 이브를 꾀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아담도 충성과 사랑을 저버리고 그의 부인과 함께한다. 사탄은 그 후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감상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로티우스는 사탄을 내부로부터 이해하면서 독자들에게 악마의 감정과 모티브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낭만주의의 모티브가 될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그로티우스가 그리는 사탄은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을 억울해하고, 그리고 자유롭지 못하다면 더 나을 것도 없다고 절규하면서 자유를 갈망한다. 대표적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와 프랑수아 라블레(1483-1553)와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회의론과 마찬가지로 풍자의 목소리는 그 세기 초에 약화되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최초로 악마적인 존재들을 동정적이고 심지어는 그들이 일으킨 반란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제시한 중요한 저작이었다.
- 가장 흥미로운 등장인물은 파눌주인데 그의 이름 "모든 일을 하는 자"는 악마의 다면적인 성격을 암시한다. 전통적인 악마처럼, 파눌주도 자신의 외모나 의상, 목소리, 그리고 예절들을 상황에 맞게 변화시킨다. 그는 연금술의 중심지로 알려진 톨레도에서 공부를 했고, 거기서 그는 "악마 학부 학장이며 수도원장인 피카트리"와 함께 연구하였다. 파눌주는 18, 19세기 파우스트 문학에 나오는 세속적인 메피스토펠레스의 전형이다. 큰 키, 잘생긴 외모, 우아함, 그리고 귀족의 혈통, 가만히 살펴보면 창백하고 얼굴에 난 작은 돌기들, 그리고 300살이 넘은 나이로 그의 악마적인 태생을 분별할 수는 있지만. 파우스트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그리고 악마 이후에 는 서구의 기독교 문화사에서 유일하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다. 16세기에서 현재까지 연극, 회화, 시, 소설, 오페라, 칸타타, 그리고 영화에서 파우스트와 그의 악마적인 동료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했다. 파우스트의 전설과 밀접하게 연관된 돈 후안의 전설까지 포함하면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로부터 쇼의 <지옥의 돈 후앙>에까지 나타났던, 이 이야기는 500년 동안 서양 예술의 중심 테마가 된다. 파우스트의 전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 이 인물은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후에 연금술로 바꾸었으며, 그 후로 타락해서 돈을 받고 별점을 쳐주거나 미래를 예언해주었다고 한다. 수많은 영향력 있던 사람들이 그의 기지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을 협잡꾼으로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의 신원이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가장 최초의 자료는 트리테미우스가 1507년에 쓴 것이다.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 역사적인 인물을 전설상의 인물로 바꾸어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연금술을 인간의 지성으로 신성한 지식을 얻으려는 헛되고 오만한 시도로 간주한 루터는 서둘러서 모든 마술을 마녀의 기술과 연관시켰다. 루터는 어떤 사람이 마술을 부리려 한다면, 악마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악마와 파우스트의 연관성이 최초로 증명된 것은 154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악마와 파우스트가 한패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늦어도 1580년 경일 것이다. 전설상에 파우스트가 행한 위업이 비범할수록, 루터주의자들은 더욱 단호하게 그가 악마와 연합되어 있다고 선언하였다. 일단 이런 기본적인 전제가 설정되면, 시몬 마구스, 테오필루스, 키프리안, 그리고 마녀의 기술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의 전통적인 무리들과 파우스트가 연결될 수도 있다.
- 이런 우주 안에서, 하나의 원은 동시에 원이 아닌 것이 될 수 없고 원이 사각형이 될 수도 없으며, 신이 스스로 설정한 규칙에 따라 신은 원을 사각형으로 만들 수 없다. 신은 다를 수도 있었고, 다르게 창조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신의 본질에 잘못된 우연성을 끌어들인다. 신은 절대적으로 신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신이 다를 수도 있다거나 다른 세계를 창조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은 절대로 그리고 반드시 신이 창조한 세계를 창조한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세계"라는 말은 전우주를 의미한다. 여러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임에도, 라이프니츠는 그 모든 것을 "세계"라는 말로 포섭한다. 이 우주는 신의 선함과 사랑, 그리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쳐서 만들어진 것이다(<변신론>, 412쪽). 우주는 신과 더불어 살아 있다. 라이프니츠는 순수 유물론을 거부했다. 형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은 분화되지 않을 것이고, 개와 철학자 사이에는 어떠한 구분도 없게 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조물주가 기계적인 우주를 태엽 감았다가 내버려 둔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폐기했다. 오히려 그는 온 우주를 신에 의해 충만된 것으로 보았고, 비활성적이지 않고 실제로 활동적이며 원시적인 마음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모나드들은 실질적으로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신에 의해 형성된 선재하는 조화에 따라 모나드는 우주를 형성한다. 이러한 우주에서, "악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 모든 존재들을 신으로부터 끌어오는 우리들은 어디에서 악의 근원지를 찾아야 할까?" (<변신론>, 135쪽)
- 신이 만일 선하면서도 전능하다면, 악은 존재할 수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악은 단지 의미없는 겉보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선언하는 데서 머무르는 쉬운(그리고 변론의 여지도 없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는 악이란 본질적으로 결핍이고 자기 자신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스콜라적인 관점을 받아들였지만, 그와 윌리엄 왕은 이 세상(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일부에서)은 실재적인 고통에 대한 실재적인 예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대담하게 직시했다.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고통은 신의 존재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라이프니츠와 윌리엄 왕은 이전보다 전통적인 견해를 더욱 명확하게 표명했다. 세 가지 종류의 악이 존재한다. ① 형이상학적 악, 대체로 우주에 내재하는 결함, ② 자연발생적인 악, 암으로 인한 고통과 같은 종류, ③ 그리고 도덕적인 악, 또는 죄(<변신론>, 136쪽). 이러한 악은 신의 선함과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창조된 우주이든지 간에, 신을 닮지 않은 우주이든 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라고 주장한 점에서 데카르트의 논리를 계승했다. 신을 닮은 우주라면 신이 될 것이고, 그런 우주라면 자체적인 실존도 없고 따라서 목적도 없게 되므로 진정한 창조가 될 수 없다. 신만이 완전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창조된 우주에는 불완전함이 수반된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은 우주를 그런 식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위대한 선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상태라고 반복해서 대답하곤 했다. 왜냐하면 양립 가능한 것들이 최상의 상태로 혼합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지금이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생각에 상상할 수는 있지만 자체의 고유한 모순들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우주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 악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고, 우리가 능력만 있다면 완전함에 가장 가까운 근사치로 우주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능한 최상의 세계이고, 정말로 신의 전능함과 자비가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이다.
- 형이상학자들의 모든 견해를 살펴보면, 17세기 지식층과 일반 대중의 관심의 초점은 여전히 구세계관 내의 문제에 머물러 있었고, 자유의지에 관한 고색창연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루터주의자와 칼뱅주의적 예정론자들의 관념은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아르미니 주의적 입론(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 1560-1609)에 도전을 받았다. 가톨릭 측에서는, 예정론을 주장하는 얀센 주의자들(코르넬리스 얀센, 1585-1638)은 몰리노스 주의자들(루이 드 몰리노스, 1535-1600)과 제수이트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 편에 선 견해에 도전을 받았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예정론자들이 여러 차례의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18세기에 이르러, 자유의지 편에 선 견해가 실제적 관행으로 사용될 만큼 지배적이었다. 또 다른 저자들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대해 주장했다. 이레나이우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최소주의적" 입장을 따르는 몇몇 사람들은 최초의 조상들이 죄를 짓기 전에는 아이와 같은 천진한 상태에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타락은 죄에 상당하는 실수였으며 인류의 영혼이 점차로 완성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앞의 주장과 대립되는 "최대주의적" 입장에서는 최초의 조상들은 죄를 짓기 전에 신과 같았고, 그래서 그들이 타락한 것은 사탄만큼이나 괘씸하고 중대한 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도적인 입장을 채택했었고, 아담과 이브의 주권과 무고함을 묘사할 때 밀턴도 중도적인 입장을 따르려고 하였다.
- 밀턴은 미학적인 이유에서 그 유혹을 강조하였다. 즉, 예수가 받은 유혹은 아담이 받은 유혹을 반영하며, 유혹을 이겨내는 데 성공한 예수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아담의 사건을 극복한다. 성경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예수와 사탄이 직접 대면한 것은 단 한번인데, 극적인 논리를 위해 둘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밀턴의 작품은 전통적인 악의 왕에 대해서 전체적인 모습을 마지막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것이다. 18, 19세기에 이 개념은 합리주의에 의해 약화되었고 낭만주의에 의해 왜곡되었다.
- 사드의 <규방 철학>(La Philessophite clans le houtdoir)에 나오는 등장인물, 생-아르게 부인은 악마에게 간절하게 기도한다. "루시퍼, 내 영혼의 유일한 신이여!" 얄궂게도 사드는 스스로 악마의 행동강령을 만들면서, 마찬가지로 경멸하면서 신, 악마, 자비로운 자연이라는 관념들을 폐기해버렸다. 목적의식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온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자연은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연은 선한 자들이 벌이는 투쟁에 미소를 보내는 만큼 적어도 악한 자들이 거둔 성공에도 미소를 짓는다. 더 나아가, 사악한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움켜잡을 수 있을 만큼 현명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기로 되어 있는 자는 "최고로 사악한 존재이다. ... 우주의 창조자는 모든 존재 가운데서 가장 사악하고 잔인하며 무서운 존재이다." 사드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현명한 행동은 자기 자신의 쾌락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유물론자였던 라 메트리(170) 1751)는 이러한 원칙을 이미 제안하였다. 그는 관능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없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사드는 이 이론에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고 확대해나갔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당신에게 좋은 것이다.
- 즉, 신과 사탄의 궁극적인 통합, 인간의 영혼에내재하는 대립되는 요소들 사이의 결합과 초월, 다음 세기가 시작되면서 칼 G. 융의 견해들은 낭만주의를 위해 준비되었고 낭만주의에 의해 예견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또한 혁명 이후 부르주아들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에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들의 미적인 취향은 부르주아들이 의도한 행동, 의복, 매너, 그리고 입장들을 채택하게 해서 실리주의자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이 세기말에, 낭만주의가 데카당스와 댄디즘으로 옮아갈 때,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초록색 카네이션, 무명 벨벳 정장, 아편, 풍자시, 그리고 파렴치한 성생활 등과 더불어 전통적인 인습을 비아냥거리곤 하였다.
- 아마도 이 시기에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이자 작가는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였는데, 그의 신화론과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너무나 독특해서 범주화할 수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을 거부하고 기독교의 예배를 회피했던 블레이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떤 종교를 가져야만 하고 가질 것이다. 인간이 예수라는 종교를 갖지 않으면, 아마도 사탄이라는 종교를 가질 것이다"라고 단언하였다. 블레이크는 자신만의 종교를 구축하였다. 인간의 정신을 초월하는 영적인 실체를 그가 믿었건 그렇지 않든 간에, 그는 자신만의 상상력 속에서 자신의 종교적 근원과 상징들을 발견하였다. 그가 채택한 상징들은 외견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였으므로, 악마를 통해 그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낭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블레이크에게도, 악마와 신은 도덕적으로 모호했다. 결과적으로, 블레이크가 악마에 대해 말할 때,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관습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그 상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신에 대해 언급할 때면, 기독교인들이 악마라는 말을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로 그러한 상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인 용법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블레이크에게 선이라고 하면, 그것은 시적인 상상력, 예술적인 영감, 창조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신이라고도 악마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시적인 영감이 발휘되는 순간은 악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블레이크에게서 신성이란 그 자체가 음악, 미술 또는 문학으로 표현될 준비가 된 현실을 전달하면서 어디에든 존재하는 것이었다. 감성, 감수성, 사랑, 그리고 헌신 등은 모두 신성한 영으로 현시되었고, 반면에, "예술이나 직관적인 천재성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사탄적인 것(악)이다."
- 하지만, 블레이크는 이러한 악은 신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에서도 나타났다고 믿고 있었고, 여러 노골적인 별칭 가운데 그것을 노보데디(Noleoclackely, 어느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다)라고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셸리의 주피터나 스윈번의 "최상의 악, 신"과 마찬가지로 신은 악한 전제군주였다. 최상의 악인 신은 분명히 전통적인 악마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레이크나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이란 종종 "악마"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낭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신"이라는 이름에서 악한 것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징들을 바꾸면서 낭만주의자들이 주목했던 것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의도는 실제로 악한 전제군주였던 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진정한 종교를 사랑, 감수성, 영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했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 대신에 이성과 형식적인 도덕성을 지닌 전제적인 체계를 창조했던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블레이크는 관념적인 추론을 악의 핵심이라고 파악했고, 적어도 전통적인 기독교만큼이나 계몽적인 합리론을 경멸했다. 블레이크가 보기에 계몽사상가들은 기독교를 비판한 점에서는 옳았지만 그들이 취한 방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마치 감정과 사랑이 목사든, 왕이든, 선생이든 아니면 부모이든 간에, 모든 형식적인 권위를 대신하였던 것처럼, 이성도 거부되고 감정과 사랑을 지지해야 했던 것이다. 루소와 마찬가지로, 블레이크도 인간의 본성이란 본질적으로 선해서 거짓된 형식적인 제한들로부터 정말로 해방되어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성이 솟아나게 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계몽주의가 가지고 있는 안이한 낙관론 또한 공격하였다. 그는 "인간은 유령이나 사탄으로 태어나고 전적으로 악이므로 계속 새로운 자아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블레이크의 "악마"는 두 개의 상반된 의미를 지녔다. <밀턴(Milton)>(1804)이라는 작품에서, 사탄은 자신의 독선 때문에 악해졌지만, 신이라는 전제군주에 맞서 저항하면서 선해졌다. 블레이크가 보기에, 밀턴이 그리고 있는 신은 적어도 사탄과 마찬가지로 악하다. 원래 블레이크는 대립물의 일치라는 생각에 매료되었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일찍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임마누엘 스웨덴보그의 천국과 지옥을 부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집필했던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이란 작품에서 분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란 작품에서, 사탄은 창조성의 상징으로 나온다. 사탄은 적극적이고 자유로워지려는 에너지로 충만했다. 블레이크는 능동적인 악이 수동적인 선보다 낫다는 것을 밀턴이 무의식적으로 깨달았으리라고 믿는다. "밀턴이 천사나 신을 속박된 존재로 서술하고, 악마나 지옥을 자유로운 상태로 묘사했던 이유는 그가 진정한 시인이었고 의식하지 못했지만 악마의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자신은 율법에 따르지 않고 기꺼이 "모든 계율을 깨뜨리며 충동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사탄적이었다. 사랑스런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밀턴이 생각하기에 정말로 악한 심판하는 신과 대비되었다.
- 블레이크에게 선도 악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모든 신성은 인간이라는 짐승 안에 귀속되며, 영혼을 이루는 어떤 요소들도 전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진정한 악은 영적인 요소들이 부족하게 결합되어 생긴 것이다. 진정한 선이란 균형과 통합, 그리고 대립물들의 결합에서 생기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결혼의 원본 표지에, 블레이크는 천사와 악령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성과 정열, 사랑과 증오, 수동성과 능동성, 명백한 선과 명백한 악은 창조적 정신 하에 탁월하게 통합된 전체 안에서 모두 융화되어야만 한다. 진정한 신은 시적 창조력, 즉 영혼, 시인, 작가인데 그는 예술뿐만 아니라 실재적 의미에서의 온 세상을 만든다. 왜냐하면 전 우주는 시적인 영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블레이크가 외재적인 우주는 위대한 창조자인 신의 시적인 산물이라고 믿었는지 아니면 인간들이 자신들의 우주를 직접 만들었다고 믿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이성을 궁극적인 진리로 이끄는 안내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블레이크는 철학적이며 우주론적인 정합성에는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진정한 신은 인간의 창조성 속에서 자신을 표출했다. 이것만이 그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었다. <유리젠 1서(The First Book of Urizen)>(1794)에서 다시 "신"과 "악마"라는 말이 혼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다윈, 마르크스, 그리고 니체가 기독교 신앙에 가한 타격은 프로이트로 이어졌다. 기독교 신앙의 네 기둥은 성서, 전통, 이성, 그리고 경험이다. 앞의 세 가지는 이미 철학, 역사, 그리고 성서 비판 등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제 네 번째 개인의 경험이 종교적인 경험과 신경계를 통한 경험을 비교하는 정신분석에 의해 문제가 제기될 차례가 되었다. 19세기 말까지, 심리학은 철학의 한 분파였다. 비록 기본적인 방법론과 인식론이 정착되지 않았지만,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심리학은 독립되어 하나의 학문으로 성립하는 과정에 있었다. 대체로 근대 심리학은 종교를 일종의 환영으로 거부하고 선과 악의 뿌리를 "의식"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의식"에서 찾는다. 사실, 근대 심리학에서는 "악"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악"은 형이상학적 용어로 인식되고 "폭력"은 사회적인 용어로 인식된다. 대체로 심리학자들은 "공격성"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공격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커다란 범주로 설명된다. 심층 심리학은 공격성을 신경의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집단행동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고, 민속학자들은 공격성을 식량과 성을 쟁취하기 위한 동물적인 생존 경쟁이라고 언급한다.
- 종교를 정신과 인간 문명에 필요한 부분으로 보았던 융은 종교적인 표출을 신경증적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신이나 악마가 형이상학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융이 늘 일관성 있게 이야기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융은 그런 것들을 신화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융이 보기에, 신화는 무의미한 창조물이 아니라 강력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심리적 실체이다. 분석 심리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융의 체계가 가지고 있는 핵심은 무의식의 힘과 의식의 힘을 적극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개인을 재구성하는 개체화와 통합의 과정이다. 심리적인 온전함과 건강은 무의식의 요소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성을 통해 우리의 의식 안으로 그런 요소들을 통합하면서 자각하는 데 달려 있다. 융은 우리가 어떤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건강한 과정으로서 억제와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부인하고 그것을 다루려 하지 않는 불건전한 과정인 억압을 면밀하게 구분지었다. 억압은 부적절한 방식과 파괴적인 행위로 폭발할 수도 있는 무의식에 담겨진 모종의 힘을 창조한다. 무의식의 강력한 내용은 오로지 억압의 산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융은 프로이트 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무의식을 이루는 어떤 요소들은 개인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들을 포괄하는 집단 무의식의 일부라고 말했다. 유전적인 진화의 산물인 뇌의 심리학적인 구조는 모든 호모 사피엔스에서 유사하고 그래서 융이 원형이라고 말했던 무의식적인 사유의 기본적인 구성이 유사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유사성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유사한 신화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적인 전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서는, 우리들 각각은 우리들 각자의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양상 모두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악마는 프로이트 주의보다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악마는 개별적인 억압을 표출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이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보편적인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융은 빙의를 영적 현현이기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 현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즉, 그것은 그림자적 요소들이 인격을 통제하면서 자아를 대체할 때 발생하는 신경증적 혹은 정신병적 상태라는 것이다. 융은 특이한 원형들과 악마를 연관 지었다. 즉, 고통을 통해 지혜를 깨닫는 현명한 노인, 우리에게 비합리적인 무의식을 이야기해주는 트릭스터, 헤르메스 혹은 신의 전령사, 남자가 가지고 있는 억압된 여성성 또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억압된 남성성을 상징하는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 일자와 전체, 시작과 끝, 대립물의 결합을 상징하는 뱀 또는 우로보로스, 그리고 우리가 그림자라고 불렀던 것 등이 그것이다.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꿈일 뿐이다. 신-인간-세계, 태양, 달, 무수한 별들, 그저 한 편의 꿈. 이 모든 것들은 한 편의 꿈일 뿐이므로 이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텅 빈 공간과 바로 당신! 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몸도 피도 뼈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신은 그저 하나의 사유에 불과하다. 나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한 편의 꿈, 당신이 꾸고 있는꿈일 뿐이다. 수년 전, 수세기, 수시대, 영겁 전에 당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하군! 왜냐하면, 그 영겁의 시간 동안에 동료 하나 없이 존재해왔으므로, 당신의 우주와 그 내용물이 오직, 꿈, 환영, 허구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하군! 그것들이 모든 꿈과 같이 그토록 노골적이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미쳤으므로, 이상하다. 착한 아이들도 나쁜 아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신도 나쁜 아이들 만들기를 더 좋아했다. 신은 그들 하나하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있지만 단 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쓰라린 삶을 알게 신랄하게 고단한 삶을 잘라버린다. 신은 진리를 뽐내어 말하며 지옥을 만들었다 입으로는 자비를 말하지만 지옥을 만들었다 입으로는 황금률을 말하고 칠십 번에 일곱 번 용서를 말하지만 지옥을 만들어냈으며 입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덕을 말하지만 스스로는 아무런 도덕률도 없다. 신은 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만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 마침내, 신의 무심함 때문에, 이 불쌍하게 학대받은 노예가 그를 숭배하는구나! 내가 당신에게 밝힌 이 모든 것, 신도, 우주도, 인류도, 지상에서의 삶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 편의 꿈, 기괴하고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사탄이 그저 자기 자신에게 주절거렸을 수도 있는 이 말들은 트웨인이 마지막으로 문학에 남긴 주장이다. 이런 말들은 낭만주의적인 사탄 주의와 니체적인 허무주의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고, 20세기 후반으로 향한 절망적이고 무의미한 길을 향해 똑바로 그리고 넓게 나 있는 다리가 된다. 해설자가 말하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라졌고 내게 두려움만을 남겼다. 그가 말했던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되었으므로.”
- 어떤 곳에서 진보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퇴보로 여겨진다. 우리 시대의 과학은 바울 시대보다는 발전했지만, 신학은 상당히 약화된 것일 수도 있다.
- 베르나노스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 <사탄의 태양 아래서> (Soleil de Satan)를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시절에서 시작해서 1926년에 출판하였다. 여기서 은유로 사용된 것은 어두운 빛, 그리고 사탄의 태양, 잘못된 태양 혹은 반태양이라는 참을 수 없는 차가움, 이 세상에서 악마의 권세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징표인 하늘에 나있는 텅 빈 구멍 등이다. 이 소설의 주요 부분은 상파뉴라는 마을의 대리 목사였다가 나중에 뭐브르의 교구 목사가 된 아베 도니산이라는 인물에 할애된다. 도니산은 아르스의 교구 목사 성 장 비아니를 모델로 하고 있다. 베르나노스가 묘사하는 다른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신에게 헌신한다. 그 결과, 그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없어서, 늘 따로 떨어져 있어서 유혹에 빠지기 쉬웠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의 영혼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깊은 직관에 열려 있다. 한 번은, 마을길을 잃게 되었을 때, 그는 도움을 주겠다는 쾌활한 작은 사람을 만난다(pp. 167-184). 다정하고, 동정심도 많고 식견이 풍부한 이 사람은 도니산의 신뢰를 얻는다. 그 사람은 도니산을 안내해주고, 자신의 외투도 주고 심지어는 마음을 달래서 잠을 자게 해 준다. 이 착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에 관한 단서를 흘린다. 그는 사는 거처도 없고, "고통과 결혼" 했다. 그는 날카롭고 말울음소리 같은 웃음을 가지고 있다.
- 이 장면의 중요성을 내게 전해준 오코널(Michael O' Connell) 교수에게 감사한다. 에드가가 미친 사람 "톰"으로 변장해서 방황하면서, 그는 제수이트 윌리엄 웨스톤이 1585-1586년에 악령들을 물치칠 때 나왔던 악령들의 이름 Flibbertigibber, Hobbibidence, Mahu, Modo, Obidicut, 그리고 Smulkin 을 읊조린다(<리어왕> 3.3; 4.1). 셰익스피어는 사무엘 하스넷의 Declaration of Egregious Popish Impostures (London, 1603)이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정보도 주신 오커넬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 종교개혁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가 갈라지면서 분열의 과정이 시작되지만, 원래 프로테스탄티즘은 악마론에 관한 한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왔기 때문에, 이 개념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은 17세기 말에야 겨우 가시화된다. 그 당시에, 마녀광란이 불신을 받게 되자 악마의 개념도 함께 불신을 받게 되었고, 18세기 계몽주의에 나타난 합리론적인 철학들은 기독교 전통의 인식론적인 토대를 침식해 들어갔고 더 나아가 악마론도 약화시켰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대부분의 교육받은 사람들(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은 악마의 개념을 폐기할 태세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강력하고 양의적인 상징으로서 악마가 되살아났다. 낭만주의 시대의 악마는 독재에 대항하는 고귀한 저항으로 인격화되거나 적어도 자유와 자기애(自己愛)라는 다소 모호한 전형의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악마는 인간의 타락과 어리석음에 대한 냉소적인 은유로, 문학, 미술, 그리고 음악에서 상당히 대중적인 상징이 되었다.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전쟁은 근본적인 악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악마는 다시 한번 근대 신학이 다루는 진지한 주제가 된다. 역사에서 다루는 개념처럼 이렇게 미묘한 분야에서 번역은 뉘앙스와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극소수를 제외하고 내가 원어로 읽을 수 있는 저작들만을 논했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여기 나온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나는 줄곧 악마의 이론을 지칭할 때 "디아볼로기(diabolog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용어는 "디아볼롤로기(diabolology)" (그리스어 diabolos+logos)가 되어야 하겠지만, 익숙하지도 않고 현학적이며, 발음하기도 너무 어려워서 내가 현대어로 바꾸었다.
(리뷰자 주 : 주석에 따르면, 도스도예프스키는 예외다. 러시아 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너무 중요한 작가라 다루었다고 한다.)
- 16세기를 거치면서 루터 시대와 셰익스피어 시대 사이가 연결된다. 영혼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악을 인식하는 무게 중심에 심원한 변화가 목격되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에 신학적인 차이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처음에는 작은 것이었지만 급속하게 벌어지면서 마침내 서구사회를 지배하게 된 비기독교적이고 세속적인 견해가 성장하도록 추동하였다.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을 담고 있는 종교개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학식 있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개신교의 지도자 마틴 루터(1483-1546), 존 칼뱅(1509-1564), 그리고 울드리치 츠빙글리(1484 1535)가 주도한 "주교에 의한 종교개혁"과, 재침례교도, 유니테리언교도, 그리고 토마스 뮌처(1489-1525)가 주도한 "급진적인 종교개혁", 그리고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의 생애와 트렌트(1545-1563) 공의회로 대표되는 "가톨릭의 종교개혁". 이러한 운동들은 또한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2-1536)로 상징되는 인문주의적 학문의 성장과도 연관(때로는 일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면서)된다. 전통적으로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가 면죄부에 관한 95개의 반박문을 발표했던 1517년, 10월 31일로 기록된다. 루터는 1521년 1월 3일 파문을 당했다. 1529년, 슈파이어 의회에서 독일의 루터파 귀족들의 항의(Protest)에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나왔다. 분열주의에서 시작된 종교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래로 기독교와 서구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들이었다.
- 16세기에 나타난 악마에 대한 가설들에는 대부분 본질적으로 전통적이거나 심지어 중세적인 견해가 존속되었다. 마술, 루터, 칼뱅, 가톨릭의 종교개혁, 신비주의자들, 파우스트 이전 문학 등이 모든 것에서 악마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악마론의 역사에서 나타난 급격한 변화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18세기의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모두 종교개혁의 사상은 중세 사상의 연속이었다. 루터, 칼뱅 심지어 츠빙글리까지도 지난 천년 동안 서구사상을 규정해왔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스콜라주의,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적인 양태를 띠고 있었다. 한편,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세계관 이교도의 마술과 물질과학 이 나타나 전통적인 기독교 체제에 전면적으로 도전해오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의 논쟁은 좁게는 이전의 아우구스티누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 안에서 경합하는 견해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후기 중세 사상의 많은 지류들이 종교개혁이라는 해협으로 자유롭게 흘러들었다. 유명론, 특히 가브리엘 비엘(14252-1495)의 오컴주의는 커다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였다. 14, 15세기의 "새로운 방법"인 유명론은 인간의 책임에 관한 논쟁에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입장과 운명 예정론을 주장하는 입장 모두를 지지하였다. 오컴주의는 신과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를 강조했다. 한편으로 오컴주의는 신의 절대자유와 그에 따르는 신의 전능함을 확신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자유도 강조하였다. 비엘처럼 자유의지에 대한 극단적인 옹호자는 진실하게 도덕적으로 노력하고 선행을 베풀면 은총을 받을 수 있고, 은총에 힘입은 도덕적 노력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대하는 루터는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일반적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은 은총이란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거저 주시는 신의 선물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였다. 16, 17세기에 벌어진 논쟁은 다소 협소한 문제들, 즉 신의 은총은 모든 것에게로 확대되는지, 그리고 일단 신의 은총이 확대되면 그에 반대할 자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당시 신론의 대체적인 경향은 운명 예정론이었지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은 신도들에게 자신들의 구원과 벌은 영원히 정해져 있던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는 않았으므로, 교단에서 자유의지를 설파하는 "실재론적인 펠라기우스 주의자들"로 남아 있었다.
- 신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논리적인 능력에 대한 유명론적인 회의론은 종교개혁의 사유에서 두드러진 여러 사상을 낳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성보다는 신앙을 강조하는 신앙주의였다. 신앙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이성적인 담론보다는 계시적이고 성서를 통한 종교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두 경향은 종교개혁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오직 신앙만으로, 오직 성경만으로, 이러한 관념들은 한편으로 교회의 타락(비록 다소 과장되었더라도)과 15세기의 후스주의와 같은 중세의 반교권 운동에서 기인하는데, 한편으로는 주교나 목사들의 권위적인 구조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오직 신앙만으로, 오직 성경만으로 에서 추론된 반교권주의를 강화시켰다. 교황권의 자격에 대한 회의론이 15세기 공의회 운동 이래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유명론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절정에 달했고, 루터주의자 야코프 뵈메, 그리고 가톨릭의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하네스와 같은 아주 두드러진 예를 남기면서 신비주의를 조장하였다.
- 이는 우주의 어떠한 부분도 다른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 광물, 식물, 그리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 이 모든 것들은 주로 감추어져 있지만(비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이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과학적인 세계관도 연금술의 세계관도 악마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잊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악마는 자신을 떠받치는 지식의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절정에 달했다. 루터의 신학과 마녀 광란의 발발로 인해 악마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세 개의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연금술, 그리고 물질과학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것은 마치 은하계의 충돌과 같았고, 이때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광대한 규모로 상호 침투 현상이 일어났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용어상의 혼란이 초래되었는데, 그 가운데 최악의 경우가 마술(magic)과 요술(witchcraft)이 혼동되는 것이다. 몇몇 16세기 지식인들은 "자연적인 마술"(연금술, 지적인 마술)로부터 "불경스런 마술" (저속한 요술이나 주술)을 구분해내려고 시도하였지만, 보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는 진영의 많은 지식인들은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마술사들을 불신하도록 두 말을 혼동하게 만들었다.
- <마술사의 홀림(De la démmonomanie des sociers)>(1580)이라는 책을 저술한 장 보댕은 그 차이를 잘 알면서도 마술사와 마녀들을 연관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마술적인 세계관이, 부분적으로 이러한 부정한 연관성 때문에 사그라들면서,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마술이라는 잔해 위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나타나게 되었다.
- 마녀광란은 중세에서 유래하지만 16, 17세기에도 왜곡된 모습으로 왕성하게 나타났다. 당시의 기독교 신학에 따르면, 마녀들은 악마와 공식적으로 한패가 되어 자신들을 악마에게 바친 사람들이었고, 그대가로 사탄은 그들에게 마술의 능력을 보상으로 주었으며, 마녀들은 그러한 능력을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마녀들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하고, 불임이 되게 하거나, 곡식을 마르게 하고, 병을 퍼뜨리며, 가축들을 말라죽게 하였다. 요컨대, 모든 자연 발생적인 재앙도 마녀들에게 책임을 씌울 수 있었다. 악마에 사로잡힘과 신들림, 정신병, 그리고 마음이나 행동의 급격한 변화 역시 그들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악마를 숭배했으며, 빗자루나 검 혹은 동물을 타고 '마녀 집회(sabbat)'로 날아가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공중 부양으로 이동해 야밤에 만났다. 그들은 근친상간의 난교를 벌였고, 기독교를 믿는 아기들을 납치해서 제물로 바쳐 성찬식을 흉내 내어 아기의 살을 먹거나 거기서 나온 지방을 약이나 독으로 사용하였다.
- 악마의 세력이 엄청난 증가를 보였던 이 시대에는 역시 명백한 회의론이 등장하였다. 유명론, 인문주의, 연금술, 그리고 과학의 세계관은 사탄에게는 거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더욱이, 내향적인 개인주의에 의해 초래된 다소 과장된 공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악의 세력에 대한 믿음에 대항하는 강렬한 심리적 반작용을 유발했음에 분명했다. 두려울 만큼 과도한 요술과 종교적 투쟁은 다른 이들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의 프로테스탄트 아콘시오는, 악마가 최선을 다해서 했던 일은 기독교인들이 서로에게 적대하도록 부추겼고,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물론, 가톨릭과 유니테리언 교도들을 제외하고) 관용을 요구한 것이라고 쓰고 있다. 1563년 요한 위어(Johann Wire)는 자신의 저서 <마술론 (On Magic)>에서 요술과 악마론에 대해 회의를 표명했고, 몽테뉴(1533-1592)는 요술이라는 존재가 사람 죽이기를 정당화할 만큼 확고하게 충분히 확립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견해들은 다른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매우 드문 것이었다.
-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악역들은 초월적인 악이 자기들 안에서 작동하게 하고, 때로는 자신들을 압도하게도 하지만, 그들 자신이 악령은 아니다. 선이 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무대는 더 이상 하늘의 궁륭도 지옥의 구덩이도 아니고 바로 인간의 마음속이다.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신, 그리고 자신의 사탄과 홀로 맞서 있는 개개인들의 마음속이다. 부르주아라는 경쟁적인 사회가 흥기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신론과 연금술이 가지고 있던 개인주의가 자극을 받게 되었다. 마녀 기술에 대한 믿음과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러한 믿음을 떠받치던 세계관은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 사탄의 악이 인간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적절한 설명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탄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우리가 악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야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경험한 것이 전부이므로, 셰익스피어는 자기 작품 속의 악역들을 사탄의 이미지대로 만들었지만, 원래 사탄은 악한 인간들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천년이 넘도록, 악은 천사의 권능으로 비춰져왔다가, 이제 악은 인간의 문제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직접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했던 악이라는 초월적인 힘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예술 분야에서는 초월적인 악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강조점이 이동하는 과정이 느리고 불규칙하였고, 문학에서, 특히 보수적인 스페인과 이 나라의 식민지에서는 전통적인 악)마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 로페 드베가(1562-1635), 그리고 칼데론 데라바르카(1600-1681) 등은 악과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었지만, 악의 심리를 탐구함으로써 악마와 인간성을 밀접하게 맺어놓았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영국에서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역시 악이라는 초월적인 신보다는 내면적인 악령의 유혹과 죄를 더욱 강조하였다.
- 사탄에 관한 전통적인 이야기 하늘나라에서의 전쟁, 천사들의 타락, 아담과 이브가 빠진 유혹 등을 포함해서 를 다루는 연극과 시는 밀턴의 <실낙원>이 나오기 전후로 전 유럽에서 계속해서 유행하였다. 요스트 반 덴 폰델(1587-1679)이 다룬 주제 -가장 우아하고 논리적인 것 가운데 하나이다- 는 <루시퍼(Lucifer)>(1654)와 <추방된 아담(Adam in Exile)>(1664) 두 극에 포함되어 있다. 루시퍼는 세상이 창조된 직후에 천사들 사이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가브리엘은 신이 인간으로 성육신하기로 결정하였고 천사들에게 주지 않았던 명예를 인간에게 준다고 천사들에게 알린다. 루시퍼는 이러한 명예와 아담과 이브 사이의 천진한 성적인 사랑 모두를 부러워한다. 폰델의 시나리오는 논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전통적으로 성육신이란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으로 생각되었고, 그 자체로 루시퍼가 타락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성육신에 대한 계획이 루시퍼의 타락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연대기적으로 논리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원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시/공 연속체 속에서 정상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폰델은 시간적으로 설정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탄의 행위 동기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설명방식이 일관성이 없는 데서 기인된 것이다. 사탄이 신과 같아지려는 자만심 때문에 죄를 지었던 것인가, 자기 자신의 조건대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만심 때문에 그리고 때가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지위를 부러워해서,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지위를 부러워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에 대한 부러움으로, 아니면 성육신으로 고귀한 존재가 된 인간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 아무리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그들은 연합해서 기독교에 대해 반대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벌이는 반기독교 계획이야말로 자신들의 운동을 가장 명확하게 확인해주는 유일한 특징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계몽주의"라는 우호적인 용어를 만들어냈고, 대체로 그 세기에 그 사실을 정착시켰다. 피터 게이(Peter Gay)는 계몽사상가들을 세 세대로 구분했는데, 그 각각의 세대는 점점 더 기독교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이끄는 제1세대, 디드로와 루소가 이끄는 제2세대, 그리고 칸트, 돌바크, 제퍼슨이 이끄는 제3세대. 이 사상가들은 고전들을 이용해서 전통적인 기독교에 반대했는데, 특히,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그의 유명한 인용구, "종교는 얼마나 많은 악을 초래하는가"와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과학적 경험론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고전을 등한히 했다. 종교는 자연 이성의 범주 안으로 제한될 때만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시대의 계몽사상가의 지도자는 볼테르(1694-1778)였다. 1730년대까지 낙관론자였던 볼테르는 점차 자연주의적 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움직임, 계획, 그리고 지성을 관찰한다는 사실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 주지만, 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하지만, 혁명과 모호한 신앙심을 결합한 루소의 사상은 신을 낭만주의적으로 부활시키고 사탄을 낭만주의적으로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혁명을 부추겼다. 이 세기말 무렵에, 문학은 이러한 견해를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한때 악령의 마술 시대가 지나가자, 상대적으로 악마는 18세기 말까지 문학작품 속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 등장하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신학과 형이상학은 유미주의와 상징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탄의 형이상학적인 실존이 사라지자, 사탄은 자신의 전통적인 의미로부터 자유로이 떠다닐 수 있는 상징이 되었다. 사탄은 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를 그만두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문학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다. ① 어떤 작품 속에서, 사탄은 자신의 전통적인 역할을 계속했다. ② 어떤 작품에서는 인간의 악과 타락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③ 어떤 작품에서는 반어적이거나 풍자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패러디하기 위해 사탄이 사용되었다. ④ 타락한 권위에 대한 반역의 상징으로 사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였다. 전체적으로, 악마는 순수 악에 대한 의미 있는 메타포의 역할을 계속하였다. 인간의 본성이란 여러 가지가 혼합된 것이고, 완전하게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한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인 성격으로는 불가능한, 인간의 영혼에 내재하는 악이 그 본질로 승화된 근본 원리로 악마는 제시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또한 동정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악마를 암시하게 되었다. 루이 클로드 드 생 마르탱(1743-1803)의 추종자들과 범신론적인 신비주의자는, 악마가 처음에 타락하게 된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강렬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심미적인 이유였다고 믿었다.
-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에 다리를 놓은 작품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 문학의 대작, <파우스트>이다. 악마의 역사에서 파우스트가 차지하는 위치는 모호하다. 한편으로, 괴테가 창조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적 창작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다른 한편, 메피스토펠레스는 상당히 복합적인 존재였는데, 그런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의 악마로 나타났을 뿐이다. 괴테 자신은 교회를 경멸했지만 역설적으로 그와 소원한 기독교 계몽주의의 견해를 취하고 기독교 상징주의를 끌어들인다. 괴테의 일생을 통해, 그의 견해는 폭넓게 변화하였고 때때로 그의 관심은 경건주의, 신비주의, 카발라, 연금술, 민속학, 신플라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많은 기타 유행하던 사상들로 옮겨 다녔다 자신의 역작에 무리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지도 않았다. 괴테는 1770년경 아직 젊을 때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해서 죽음에 임박한 1832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집필하였다.
- 이 비극의 "제1부"는 파우스트의 서재에서 시작되는데, 이 위대한 학자는 그곳에서 절망에 빠져 있다. 그 이유는 끊임없는 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주의 비밀을 통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신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파우스트는 영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천사들의 합창을 듣지만, 믿음이 부족해서 사랑의 중요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법서에서 그는 지령(地靈)의 상징을 발견한다. 그 상징은 파우스트가 자신의 내부에서 느끼는 불안함, 투쟁, 그리고 욕망을 나타낸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지령은 인간적인 가치를 초월하는 기본적인 자연의 영이다. 파우스트가 그 지령의 상징을 음독(音讀)하자, 그때부터 그 영이 나타나 누가 자기를 불렀는지 묻는다. 실제로 파우스트가 그 영을 불러냈는지의 여부를 불분명하게 처리함으로써 괴테는 전통과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파우스트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리고 신과 사탄 사이의 협약에 의해 그가 어느 정도 희생을 당했는지는 불명확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 파우스트는 서재를 나와 술꾼, 학생, 매춘부, 그리고 병사들로 들끓는 거리로 나온다. 여기서 이 학자와 그의 조수 바그너는 술을 마시며 논쟁을 벌인다. 파우스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고 바그너는 학문의 명예스러움에 대해 논하지만, 둘 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진정한 삶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파우스트는 자신 안에 두 개의 영이 있어, 하나는 자신을 세속적인 쾌락으로 이끌고 다른 하나는 무한한 지혜로 이끄는 것을 느낀다고 불평한다. 이런 공상들은 모두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결함이 있는 것이다.
- 개인주의와 공격적인 경쟁을 미덕으로 간주하는 급진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도 상징의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통 봉건시대의 악마는 영주에 대항하는 반역자로 비난받았지만 이제 위선과 맞서 싸우는 개인주의자인 악마는 성인이나 순교자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사탄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견해들은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었다. 사탄이라는 존재가 객관화되고, 하나의 상징으로 환원되며, 성경이나 전통으로부터 묶여 있던 상징을 풀어낸다는 것은 악마라는 개념이 전통적인 의미로부터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19세기 악마는 악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선했고, 난폭하기도 했지만 점잖기도 했고, 투쟁의 신일뿐만 아니라 사랑의 옹호자이기도 하였다. 18세기 말부터 1860년경까지 이 시기에 악마의 역사는 신학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어서, 이 장에서는 철학적인 면보다는 문학적 인 면을 더욱 강조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몰두한 주제는 악마나 급진적인 악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고, 유물론, 실용주의, 그리고 종교에 대한 회의주의 등이 지배적이었다. 오귀스트 콩트(1798-1857)는 실증주의 이론을 체계화하였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사회는 세 단계를 통해서 진보한다고 전제되었다.
- 교회에 대해 혐오감이 있는 낭만주의자들은 보복을 당했고, 성직자들이 낭만주의자들을 공격함으로써, 기독교는 악하고 이에 반대하는 것은 선이라는 낭만주의자들의 입장만을 강화시켜 주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최대 적이 사탄이라면, 사탄은 반드시 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은 악마의 핵심적인 의미와도 모순되는 철학적으로일관성이 없는 진술이었고, 사실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진술을 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상에 의한 공격이나 정치적인 강령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악마가 부당하고 퇴행적인 권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때, 악마는 영웅이었다.
- 낭만주의적인 영웅은 이 세상에 단독자로 혼자 맞서 자유와 미, 그리고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자기 확신에 차고 야심 있고 강력한 해방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밀턴의 사탄에게서 이런 특징들을 위는다. 하지만 그들은 악마를 자신들이 선으로 간주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탄에 대한 찬양 자체 -악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므로- 가 사탄 주의는 아니었다.
- 예술에 나타난 악마적인 특성은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작곡가가 음악적으로 불협화음을 사용한 것을 가지고 마력을 가졌다고 오해하는 것과 같이, 대중들이 예술가의 의도를 오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제로 악을 비난할 의도를 가지면서 일부러 악마적인 것을 묘사하는 것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밤이나 쇼스타코비치의 전쟁과 평화 4중주처럼- 이다. 세 번째는 20세기 후반의 특정한 록 뮤직 그룹들의 활동에서처럼, 실제로 악을 찬미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낭만주의자들의 특성처럼, 악마적인 것의 상징을 악으로부터 선으로 고의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선에 대한 입장은 기독교인들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낭만주의자들 스스로가 상징들을 바꿀 정도로 변덕스러웠기 때문에, 그들의 상징주의는 논리적인 일관성이 없었다.
- 낭만주의적 사탄은 하나도 없었다. 그 실새로는 낭만주의자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사탄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사탄을 이용할 때 좀처럼 악의 원리에 대한 진지한 지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렇게 할 때도, 논리학, 과학, 계시, 전통, 성경, 아니면 다른 특정한 자료에 의한 인식론적인 기반이 부족하였다. 기독교인이든지, 관념론자이든지, 아니면 유물론자이든지 과학자이든지 상관없이 이러한 견해가 비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마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관념은 악마의 개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거의 주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전통적인 입장이나 계몽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 낭만주의적인 입장은 거의 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는 몇 가지 족적을 남겼다. 인간 영혼 속의 선과 악이 벌이는 실질적인 투쟁을 극화함으로써, 악이라는 문제에 대한 자기만족으로부터 과격하게 기독교 사상을 흔들어놓음으로써, 20세기 악이라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인 관심이 부활하는 데 기초를 놓았다.
- 악을 낭만주의적으로 다룬 것 가운데 한 가지 재고해볼 만한 것은 고딕 소설 또는 로망 누아르였는데, 이는 처음에 영국에서 유행하다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1834년에 이르러, 로망 누아르는 이미 절정에 달했고, 테오플 고티에 같은 이는 <피가로> 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제 신비주의적이고, 천사나 악마와 같은 개념 혹은 카발리즘적인 개념으로 꾸며지지 않은 소설을 읽고, 연극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다고 썼다. 20세기의 공포 영화처럼, 고딕 소설은 "숭고"를 이용해서 또는 약화시켜서 전율을 자아냈다. 이 소설의 주된 주제는 겉으로는 선하고 이성적이며 친숙한 것의 이면에 숨어 있는 타락이었다. 이런 양상은 인간의 본성에 들어 있는 기괴하고 퇴폐적인 면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이 세상의 거친 면모 -바위산, 동굴, 그리고 성- 들에 풍부하게 나타났다. 육체적 도덕적 기형, 사디즘, 성적 광란, 먼 나라 그리고 중세적인 시대 풍조 등이 전형적인 구성 요소들이었다. 마녀나 유령, 환영, 흡혈귀, 그리고 악령들을 포함해서 초자연적인 것들의 무시무시한 모습들이 특히 선호되었다. 악마는 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전율하도록 기획된 많은 악한 괴물들 가운데 하나로 나오지 심각한 악의 상징으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악마적인 고딕 소설들 가운데 하나는 매튜 루이스의 <수사(The Monk)>(1796)였는데, 이 작품은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루이스가 겨우 19세 때 쓴 이 소설에는 유령, 근친상간, 독약, 환상, 강간, 마약 등의 소재가 포함되었고, 당시 성에 집착한 청소년들이 마음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포함되었다.
- 형식적인 정의를 추구한 나머지 동생이 처한 생생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 그의 행동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를 굳게 엮어주는 사랑의 문을 여는 데 실패한다. 바이런은 성공할 확률이 아무리 적더라도 이전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노력과, 선과 악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 신과 악마 모두가 사탄적인 것을 공유하지만 어느 누구도 진짜 악은 아니다. 정말로 사탄적인 것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풀리지 않는 긴장관계이다. 진정한 악은 이 두 가지 영적인 원리를 대립시키고, 진정한 선은 두 원리를 화해시킨다.
- 셸리(1792-1822)는 젊었을 때부터 공포의 장엄함이 주는 심미적 효과에 이끌려 악마적인 것과 비교(秘敎)에 관심이 있었다. 셸리는 <무신론의 필요성>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는 이유로 1811년에 옥스퍼드에서 쫓겨났고, 일생 동안 줄기차게 전통적인 기독교와 모든 조직 총교를 거부하였다. 점차로 그는 자연과 인간 속에 있는 사랑의 영이라는 개인적인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성은 잔인함과 연관되기 때문에 자신이 영이라고 한 것을 신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예수 자신도 조직 종교에 대한 저항으로 사랑의 복음을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셸리의 종교관은 에라스무스 다윈의 영향을 받아 진화론적이면서 상당히 생기론적이고, 헤겔의 관념론적인 진보주의와 유사하다. 사랑의 영은 인간과 우주를 더 좋고, 자유로우며, 더욱 사랑으로 충만한 미래로 향하게 한다. 셸리는 악이 이러한 온건한 진보를 계속해서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의 악마를 부인했다. 셸리는 사탄을 인간 내부에 있는 방해하고 퇴행적인 경향이라고 인식하였다. <악마에 대하여(On the Devil and Devils)>(1820-1821)라는 책은 셸리가 가지고 있는 악에 대한 강한 선입견을 잘 드러내 준다. 그는 마니교가 기독교 이상의 진실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신의 진상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믿었다. 균형 잡힌 힘과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두 개의 영이 존재한다는 마니교의 입장은 인간 영혼의 분리된 상태에 대한 통찰을 나타냈다. 악마가 신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든지 특히 기독교 자유주의에서 주장하는 약화된 사탄이라는 기독교의 견해는 셸리에게는 심리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셸리도 블레이크나 바이런처럼 사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한편으로 그는 진정한 사탄의 모습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악을 나타내는 것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탄을 기존의 억압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진보적인 영혼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그의 운문 서사시 <순교자(Les Martyrs)>(1809)에서는 디오클레티안 황제에 의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박해 기간이 설정되었다. 여기서 왕정주의자 샤토브리앙은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혁명과 공포정치 하에서의 박해와 비교한다. 밀턴을 모방해서, 사탄이 지옥에서 그의 동료들과 회합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샤토브리앙은 악마가 인간을 겉으로는 공정하게 다루지만 속으로는 인간을 파멸시킬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묘사했다. 사탄이 로마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도록 부추겼고 디오클레티안을 통해 자신의 악행을 저지른 것처럼, 그는 공포 정치를 선동하고 자신의 의지를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관철시켰다. 이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샤토브리앙은 사탄으로 하여금 "라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인용하게 하였다. 샤토브리앙과는 달리, 그를 추종했던 대부분의 프랑스 작가들은 악마에 대한 관심을 다시 유행시키면서 사탄을 비꼬는 듯한 회의론으로 다루거나, 악마 악령, 유령, 망령과 함께 를 이용해서 고딕적인 공포의 전율을 자아내려고 하였다. 많은 진지한 작가들에게 악마는 너무 평범한 소재가 되어버려서 악을 다룰 때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없고 샤토브리앙의 르네와 같은 인물로 악을 묘사하는 편이 더 낫다고 느끼게 되었다. "신의 유일한 변명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조롱으로 유명한 스탕달(1783-1842)은 <적과 흑>(1830)에 나오는 악마를 줄리안 소렐 같은 인간으로 묘사하였고, 호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고딕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 <인간희극> 속에서 진정한 악의 문제를 제기했고, 그 작품에서는 악마가 개입하지 않아도 인간은 선천적으로 잔인하고 어리석으며 악하다고 폭로하였다. 소수의 작가들은 기독교의 상징을 더욱 진지하게 차용하면서 샤토브리앙을 추종했다. 아이였을 때, 알프레드 드 비니(1797-1863)는 용을 죽이는 미가엘이라는 라파엘의 그림을 보고 매혹되었고, 그에게 일생 동안 사탄은 강렬한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바이런의 <카인>이란 작품은 이 젊은 시인 비니의 악마에 대한 관심을 강화시켰지만, 기독교 신화를 이용한 목적은 전적으로 미학적인 이유에서였다. 왜냐하면, 그는 선이라든지 전능한 신이라는 기독교의 개념을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 불행해지고 비참해진 이래로, 기독교의 신성은 오용되거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았다. 비니의 작품들은 자기만족에 빠진 기독교의 낙관론에 대한 절규이고, 악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미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1819년과 1823년 사이에 씌어진 미완의 시, <최후의 심판>과 <사탄>은 자신의 걸작 <엘로아, 마그네스의 수녀>보다 먼저 나왔다. 엘로아는 "나사로가 죽을 때 예수가 흘린 눈물에서 태어난 여자 천사였다(요한복음 11:35)."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니는 종교적인 회의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감정을 불어넣어 심리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사탄을 묘사했는데, 이는 밀턴 이래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빅토르 위고는 악마가 지닌 슬프고 고립된 성격을 더욱 강조하였고 그 모습을 더욱 더 동정적인 모습으로, 시적으로 묘사했다. 빅토르 위고(1802-1885)가 묘사한 사탄은 바이런과 더불어 낭만주의 시대의 악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그린 것에 속한다. 이성주의자로 출발한 위고는 젊었을 때 자신의 미적 가치관에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나, 곧 포기하고 만다. 위고의 사상은 어느 한 곳에 머문 적이 없다. 일생을 통해, 그는 다양한 견해 신비주의, 그노스주의, 오컬티즘, 범신론, 유물론, 이원론 를 섭렵했다. 진정한 낭만주의 사조 안에서, 그는 판단을 내릴 때, 지적인 근거보다는 미학적이고 감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만일 신이 동정심과 자비를 가지고 있다면, 원죄라든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든가, 지옥이라는 전통적인 교리를 혐오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신은 원래부터 자비로웠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신에 대한 기독교의 관념들을 잘못된 것으로 보았지만, 예수 자체는 고결한 윤리 의식을 지닌 존귀하고 사랑이 넘치는 선생이며, 사랑이라는 실제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모범으로 보았다.
- 사랑의 계시가 밀려오고, 공포와 수치심에 싸여, 우리가 빠져 있던 어등을 응시하며 홀로 서 있었던 자신을 알게 된다. 우리의 어두운 눈에 사랑의 빛이 처음으로 들어오는 순간 곧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사랑은 어둠을 뚫고 빛으로 충만할 때까지 채운다.
- 때때로 낭만주의자들은 상징을 극단적으로 바꾸어 사용했다. 낭만주의자들의 목적은 신과 사탄을 통합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수도원장 알퐁스 루이 콩스탕(1810-1875)은 조르주 상드의 영향을 받아 사탄은 독단적인 신의 저주로 인해 불공평하게 비난받아 왔다고 믿게 되었다. 비교에 빠진 콩스탕은 자신의 이름을 엘리파스 레비라고 바꾸고, 사탄을 긍정적인 영적인 세력으로 묘사하는 책을 여러 권 저술했다. 프랑스에서 사탄은 정치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위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전개되었지만, 레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40년대에, 레비가 그리는 사탄은 혁명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레비가 나폴레옹 3세를 추앙하게 되자 사탄도 위계적인 법과 질서를 지지하게 된다. 이처럼 사탄을 비의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허식가들뿐만 아니라 천박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소한 움직임일지라도 이따금씩 심각해지는 세기말 사탄 주의의 기반이 형성되었다. 위고의 장엄한 사탄 그리고 레비의 과시적인 사탄 주의 이외에도, 19세기 내내 사탄은 주로 반어적이고 풍자적으로 또는 변덕스런 모습으로 다루어졌다. 사탄을 반어적으로 다룬 최고의 대가는 테오필 고티에(1811-1872)였는데, 그는 파우스트를 희화적으로 개작한 <알베르투스>(1832)라고 하는 작품을 썼고, 위고와 비니를 풍자해서 <악마의 눈물>(1839)이라는 작품을 썼다. 고티에의 작품에서, 악마는 세련된 외모 뒤에 자신의 악의를 감추고 있는 우아하고 단정하며 재치 있는 멋쟁이로 나온다. 고티에의 <오누프리우스>(1832)라는 단편에서 역설적인 악마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세주의와 초자연성에 사로잡힌 시인이며 화가인 젊은 멋쟁이 오누프리우스는 모든 것에서 악마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침내 진짜로 악마가 나타나서 그의 그림과 시를 더럽히고, 가장 적절한 상태에서 그의 계략을 수포로 만들고, 연애도 망친다. 오누프리우스가 쇠레 도서관에서 자신이 지은 시를 읽고 있으면, 악마가 그의 뒤에 와서 단어들을 모조리 작은 망태에 담은 다음. 과장되고 터무니없는 구절들로 바꾸어놓는다. 고티에가 묘사한 악마는 비꼬는 듯한 메피스토펠레스를 너무나 완벽하게 그려내서 미술, 오페라, 문학, 그리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다. 단정하고 냉소적인 용모의 젊고 잘생긴 남자, 붉은 황제의 수염과 콧수염, 초록색 눈, 얇고, 창백하며 비꼬는 듯한 입술, 날카로운 표정, 완벽한 멋쟁이였던 그는 검은색 코트와 붉은색 조끼를 입고 하얀색 장갑과 금색 안경을 끼고 있다.
- 보들레르의 가장 헌신적인 제자가 되어 퇴폐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베를린은 악이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도 않았지만, 보들레르의 악마적 상징주의를 모방했던 그룹의 이름을 "저주받은 시인들"이라고 지었다.
- 아르투르 랭보(1854-1891)는 교회나 교육제도, 그리고 부모들을 포함하는 권위를 공격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후에 결국 가톨릭신자로생을 마감했다. 젊음을 불사르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거부했던 랭보에게는, 악마란 단 하나의 진정한 선, 예술적인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흥미 없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의 산문시 "지옥에서의 한 철"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악마에게 헌정되었다. "사탄이여, 사실적이고 교훈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 시를 좋아하는 당신이여, 당신을 위해 나는 저주받은 영혼의 노트로부터 이 얼마 안 되지만 무시무시한 몇 장을 단숨에 써내려 가노라." 겉치레와 자기도취, 그리고 절망에 빠진 이 시인은 자기 자신을 신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 죄와 무구함, 선과 악, 과거와 현재가 으르렁대는 전쟁터로 생각한다. 이 시인은 한때 강렬하게 이 싸움에 말려들었다가 다시 악마처럼 냉정하게 이 싸움에서 초연해진다. 위고와는 달리, 랭보는 한 인격 안에서 부딪히는 부분들을 통합하거나 초월하기보다는 그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선과 악이 미분화된 영혼의 전의식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 퇴폐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악마적인 인물은 로트레아몽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시도르 뒤카스(1846-1870)였다. 그는 피하려고 하지 말고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형태로 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악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악을 즐기라고 하였다. 사드의 추종자 로트레아몽은 창조적인 잔인성이야말로 천재성과 정직함의 징표라고 주장하였다. 보들레르가 위선을 경멸적으로 공격한 사실을 그는 일종의 구실, 즉 자기 영혼의 가장 혐오스러운 곳을 탐구해보려는 구실로 여겼다. 그의 암울한 걸작 <말도로르의 노래>에 나오는 등장인물 말도로르는 사드와 사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뒤섞은 인물이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삐뚤어진 분노를 기도하거나 실행한다. 로트레아몽이 미쳤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히 그는 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다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았고, 그런 행동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탄 주의자인 척하면서 자기 자신의 비밀스런 악을 조롱하기도 하는 이 아이로니컬한 댄디는 자신에 대한 환상에 도취되었고, 냉소적인 악과 진정한 악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말도로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아이를 보고는 곧바로 한 마리의 돼지가 그의 생식기를 갉아먹으며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는 어린 소년들을 고문하고 그들의 피와 눈물을 받아 마시는 꿈을 꾼다. 아이에게 입을 맞추면서, 그는 면도칼로 아이의 뺨을 긋는 공상을 한다. 그는 흡혈귀, 시간, 독신, 수간, 근친상간, 천역, 남색, 그리고 카니발리즘에 사로잡혀 있다.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시인은 온갖 위선에서 벗어난 인간 영혼의 진정한 모습을 그리려고 하였다. "말도로르는 악하게 태어났고 자신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잔인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고 하는 계몽주의적 낭만주의의 무미건조한 전제에 반발했던 로트레아몽은 선뜻 납득할 수 없는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달았다. 인간은 선하다는 믿음이 악의 근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듯이, 로트레아몽이 그리는 어두운 우주론도 선의 존재에 관한 설명의 여지를 남긴다. 어느 정도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를 악마적인 농담으로,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을 지향하는 태도로 생각했다. 말도로르의 지나친 행동은 너무 기괴해서 두려울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작가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어두운 힘에까지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도로르는 처음에는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잔인함이 주는 즐거움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지만 결국 자기를 구하러 온 천사를 죽이고 그렇게 해서 상징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거부하면서 끝난다. 악마를 다룬 작품들과 악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분리하고, 그런 작품들을 기괴하거나 공포스러운 이야기 정도로 격하하는 경향은 미국이 유럽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인간의 악에 대한 탐구를 주요 관심사로 삼았던 나다니엘 호손(1804)이나 허만 멜빌(1819-1891)도 악마를 상징으로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호손이 진지하게 사탄을 다룬 작품은 <청년 굿맨 브라운>이 유일하다. 브라운이 절망에 빠지자 악마가 나타난다. 브라운은 "나의 신앙은 사라졌다"라고 말한다. "이 땅에 선은 없고 죄는 허울뿐이다. 자, 악마여, 당신에게 이 세상이 주어졌으니." 사탄이 나타나서, 그를 그의 환상 속에 나타난 악마의 연회로 데려간다. 사탄은 칼뱅의 입장(호손은 이런 입장을 악마적이라고 본다)에서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그를 설득한다. 호손이 보기에, 브라운은 인간에 대해 절망하고 신의 선함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파멸된 것이다. 멜빌의 <모비딕>은 문학에서 가장 복합적인 상징적 비유를 가지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그러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악마적인 것이다. 모비딕은 인간의 몸과 영혼을 파괴하기로 작정된 존재이다. 마지막에 그가 퍼커드에 달려들어 그것을 없앴을 때, 받은 만큼 갚아주려는 마음과, 잠시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보복하려는 마음, 그리고 식지 않는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한 것이다. <멜빌의 사기꾼(The Confidence Man)>(1857)에서 악마는 만우절 날에 항해를 시작한 미시시피 증기선, 피델르에 탑승한 대단한 협잡꾼으로 나온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로를 속일 준비가 되어 있는, 천박하고 탐욕스런 망상에 눈이 먼 미치광이들이 탄 배이다. 결국 그 미치광이들은 협잡꾼, 영원한 사기꾼, 여러 가지 인물과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에게 속아 넘어갔다.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은 사탄이 조장하는 혼란과 냉소에 압도되어 의미를 잃는다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악마가 운영하는 상점에 붙어 있는 글자 가운데 하나인 "아무것도 믿지 마라"라는 격언이 사탄에 의한 혼란과 냉소주의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멜빌의 비관적인 견해는 마크 트웨인이 더욱더 계승하였고, 그와 마찬가지로 은밀한 악에 대한 호손의 깊이 있는 천착은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더욱 깊이 있게 계승되었지만, 트웨인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표출한 악에 대한 관점은 낭만주의 시대보다는 근대에 더욱 어울린다.
- 고딕 소설이나 흑소설을 미국식으로 번안한 공포물은 에드가 앨런 포(1809-1849)의 작품에서 최초로 강렬하게 표출되었다. 고딕 작가들처럼, 포도 비록 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재미를 주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지, 진지하게 악을 탐구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옥과 진자(The Pit and Pendiulum)>, <아몬틸라도 술통(The Cask of Amontillado)>, 그리고 <무슈발레마 사건의 진실(The Facts in the Case of Monsieur Valdemar)> 같은 작품에서 포가 진짜 악에 대해 썼을 때도 악마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것은 악마라는 주제가 쇠퇴하고 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악마는 포의 희극 작품에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종루 속의 악마(The Devil in the Belfry)>라는 작품에서 악마는 네덜란드 교회의 종을 13번 치도록 한다.
- 특히 1848년 혁명 이후로, 보수적으로 기운 가톨릭 사상은 브라가 공의회, 제4차 라테란 공의회, 트렌트 공의회에 의지해서, 그리고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에 의존하면서 악마론에 관한 한 전통의 길을 따르기로 하였다.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에는 계속해서 액막이 의식이 포함되었고, 이른바 빙의라고 알려진 경우에 효과가 있는 표준적인 시험 방법이 상술되었다.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만일 빙의되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전혀 모르던 실재 언어를 이해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일이나 미래의 일을 알고 설명하거나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육체적인 힘을 드러낸다면(원래 형성될 때는 비이성적이지 않았지만 근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한 시험들), 악령들이 개입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879년 8월 4일에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mi Patris)>를 발표해서 토마스주의적 신론이 영원히 유효함을 인정하였다. 토마스주의적 신론은 그 세계관 안에 악마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동방 정교와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들과 의견을 일치시켜 악마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사실로 옹호하면서 196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 우리가 발로 악마의 목을 누르고 있는 한, 이세상에 악마가 있음으로 해서 더 풍요로워진다고 이해했던 제임스는 악마에 대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의 몇 가지 사례를 기술하였고 악의 근본적인 본성을 과감하게 직시하였다. "악의 형태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그것이 어떻든 간에 선의 체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수도 있다. ... 악의 진상은 마치 선의 진상처럼 자연의 진정한 부분들이다."
- 기독교인들이 악마에 동의하지 않는 동안, 퇴폐적 낭만주의자들은 악마를 세기말에 나타난 심미적인 유행 정도로 치부하였다. 사탄에 대한 비난 가운데는 거의 이성을 잃은 것도 있었다. 가톨릭과 기타 보수적인 기독교도들은 프리메이슨을 사탄 주의자들이라고 공격하였고, 장미 십자 회원들과 기타 밀교 주의자들은 서로를 같은 열정에서 공격하였다. 밀교에 대해 관심이 고조된 것은 실증주의나 회의론 때문 7)에 정상적인 출구가 가로막혔던 내재적인 종교적 감정이 표출된 것이다. 밀교는 파우스트적으로 변형되어 더 많은 지식인 신봉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을 위해 엘리파스 레비(1810-1875)는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다. 레비가 죽은 해에, 헬레나 블라바츠키 여사(1831-1891)는 지학(神智學) 협회를 창립하였다. 발음하기도 힘든 알레이스터 크로우리(1875-1947)뿐만 아니라 W. B. 예이츠, 알제논 스윈번,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회원 가운데 여러 문학가들이 포함되어 있던 황금 새벽 연금술회가 1887년에 결성되었다. 이 모임에서, 예이츠는 "악마는 신이 뒤집힌 것이다"라는 밀교 이름을 받았다. 블라바츠키의 비밀 교리는 밀교 체계 안에서도 가장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블라바츠키의 견해 고대 그노스주의, 근대의 밀교, -동방의 종교들, 그리고 그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이 합쳐진 것에 의하면,- 악마는 여호와의 그림자이다. 어둠이 없으면 빛은 그토록 밝게 비출 수 없는 것이다. 루시퍼는 창조의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신성한 충만, 로고스의 일부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에게로 융화된다. 루시퍼는 빛의 담지자이고 헤르메스, 신의 전령사이다. 여호와는 천사를 개입시켜 이 세상을 창조했던 냉정하고 소원한 신이다. 천사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스스로 창조된 천사, 스스로 존재하는 천사, 불천사. 여호와가 이 세상을 창조하라고 명령했을 때, 앞의 두 부류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엄격하게 따랐고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들을 만들었지만, 불천사는 명령에 따르지 않고 지식과 그에 따른 진정한 자유를 이용해서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들이 지성과 의지, 그리고 지식을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악마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의도대로 자동인형이 된 인간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바로 악마이다. "창세기에 뱀으로 나오는 사탄은 진정한 창조자이며 은인이고 영적인 인류의 아버지이다".
- 이 당시 가장 악명 높은 악마 숭배는 베를렌과 저주받은 시인들의 친구인 소설가 J. K. 위스망스(1848-1907)에 의해 폭로되었다. 낭만주의가 자연주의와 퇴폐주의로 나누어질 때, 위스망스는 그 간격을 메우려고 하였다. 그는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글을 썼지만 한편으로는 퇴폐주의의 지도자였다. 퇴폐주의는 심미주의, 관능주의, 그리고 근친상간, 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 수간, 매춘과 같은 성심리학적 탈선에 매료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퇴폐주의자들은 마키스 드 사드와 로트레아몽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삼았다. 위스망스와 같은 작가들은 자연주의와 퇴폐주의를 혼합하였다. 도시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그러한 삶을 거짓되고 절망적이며 무의미하다고 묘사하였다. 니체의 영향 아래서, 심미주의자들과 관능 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감성과 감수성, 욕망, 그리고 성도착을 통해 자신들만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퇴폐주의는 낭만주의보다도 훨씬 희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저속하고 교양 없는 하층민보다 미적 감각을 지닌 엘리트들을 찬양하는 거만함을 지녔다. 퇴폐주의는 기존의 질서와 성장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모두에 대한 반발이었다. 퇴폐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소설 가운데 하나는 위스망스의 <역로>(1884) 였지만, 사탄의 역사에서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바로 <피안>(1891)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 일단 악마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풍자와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되자, 악마의 진짜로 무서운 측면은 민간전승에서 유래하거나 공상 과학 소설에서 만들어진 괴물로 전이되었다. 브람 스토커(1847-1912)의 <드라큘라>의 맥은 메리 셀리나 포가 이어갔고, 결국 사탄은 혼란스런 공포의 방에 들어 있는 악한 피조물을 대표하는 수많은 배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폴터가이스트>(1982)와 같은 20세기 후반 영화는 공포와 신학, 민속 전승, 공상과학, 그리고 비학(秘學)이 두서없이 뒤섞인 이와 같은 혼돈을 예증해준다.
(리뷰자 주 : 메리 셀리나 포를 확인하지 못했다.)
- 인간적인 악마학에 관한 최초의 노력은 조반니 파피니(1881-1956)의 <몰락한 사람(Un uomo finito)>이다. 파피니는 무신론자로 성장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912년 <몰락한 사람>을 출판했을 당시에, 이미 그는 악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책은 파피니의 젊은 시절에 관한 허구적인 자서전이기도 하면서 또한 악마 자신의 생애에 관한 허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생애를 사탄으로 상징했으며, 사탄을 인간의 정신일뿐이라는 완고한 유아론이 되는 자신의 종교를 그들에게 설교한다. 그는 기독교를 파괴하고 자신의 상대주의적인 사상을 퍼트리기 위해서 <레오나르도>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파우스트처럼 그는 자신의 지식을 사랑의 힘, 즉 합리주의라고 가정되었던 비합리성의 징표, 그리고 부족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영혼에 남겨진 공백을 채우는 점점 자라나는 증오의 징표로 바꾸어버린다.(p. 166) 그는 단테나 괴테가 동시대인들을 뛰어넘은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의 동시대인들을 뛰어넘게 해줄 대단한 문학작품 -대단한 시, 보편적인 드라마, 장대한 장면- 을 계획한다.(p. 224). 자신의 잡지와 시, 그리고 자신의 생애마저도 모두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마침내 그는 스스로 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를 연민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탐닉에 빠져들고 만다. 운명은 그에게 잘못된 가족과 교육, 그리고 잘못된 친구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작품을 쓰는데, 그것이 능란한 풍자가 들어 있는 바로 몰락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지만 그 영웅적인 스케일만을 자랑한다.
- 파피니는 글을 쓰면서 이해하게 되었지만, 이 주인공이 저지른 많은 죄 가운데 핵심은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극단적으로 자신을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웅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소외감을 찬양한다. "나는 반항적으로 태어났다. ... 어느 누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나는 그에게 반항할 것이다. 내 영혼은 근본적인 저항으로 표출된다. 내 몸이 자발적으로 취하는 자세란 총검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내가 자연스럽게 말하는 방식은 독설과 모욕이다. 내 입술로 부르는 모든 사랑의 노래는 반역의 찬가가 된다" (p. 383), 번뜩이는 풍자와 함께, 파피니는 <몰락한 사람>을 쓴 자신의 행동 속에서 최후의 허풍, 최후의 자기기만적인 행위를 보았다. 실제로 이 마지막 농담은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다. 왜냐하면, 파피니의 주인공은 사탄과 파피니는 물론이고 지적인 독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개종하고 나서 오랜 후 1953년에, 파피니는 다시 이 주제로 돌아와서 나중에 <악마 대전(summa diabologica)>이라고 일컬었던 것에 대한 소품을 썼다. 그는 악마를 악이라는 개인적이고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단순한 인간의 죄에 대한 상징으로 보려는 근대적인 경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악마는 더욱 더 내재되어 인간의 본성 안에서 실현되므로 근대의 악마론이 성공을 거두려면 인간의 악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피니가 보기에, 악마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지만 역할은 통합되어 있다. 악마는 신과 우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반역자이다.
- 이 작품을 시작했을 때, 베르코벤스키의 잘못된 세계관과 기타 정치적인 혁명들을 작품의 중심에 놓으려고 계획했는데, 점차 작품의 초점이 영적인 반역자, 스타브로긴에게로 이동하였다. 샤토프는 러시아 그리스도 그리고 소보르노스트에 대해서 말한다. 기술자 키릴로프는 감정이나 공동체로부터 절연된, 지적인 악마의 특징인 지성에 대한 허영과 자만심이라는 환상을 가진 순수한 주지주의를 대표한다. 정치적인 반역자인 표트르 스테파노비치 베르코벤스키 역시 감각론자로서 사회를 파괴하고 악에 헌신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의 무신론은 신이라는 실재는 물론이고 실재하는 우주마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관능과 힘이라는 자신의 환상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정신이 곧 자신의 우주가 되어 현실을 보지 못한다. 악령의 중심인물은 니콜라이 브세볼로도비치 스타브로긴인데, 이 사람의 이름은 자만심과 고통을 동시에 의미한다. 니콜라이(민족의 정복자), 브세블로도비치(모든 것의 주인), 스타브로긴(십자가라는 뜻), 스타브로긴은 악과 죄의식 사이에서 괴로워하지만,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악을 선택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사탄에게 맡겼고 자기 자신을 악마에게 넘겨주었다. 스타브로긴은 엄청난 매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는 말을 잘하고 쾌활하며 솔직하고 다정해 보인다.
- 트웨인만큼이나 효과적이고 노골적이지는 못했지만, 다른 작가들도 반어적이고 냉소적인 목적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이용하였다. 맥스 비르봄(1872-1956)의 <에녹 조암스(Enoch Soames)>라는 작품에서처럼, 메피스토펠레스는 가벼운 풍자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해 실망한 작가 조암스는 100년 후에 자신이 유명해질지 어떨지를 미리 알아보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다. 악마는 그를 대영 박물관 기록 보관소(메피스토펠레스도 비어봄도 이 건물이 대영도서관 기록 보관소가 된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건물로 이사한다는 것은 예견하지 못했다)로 데려가는데 날짜는 1997년 6월 3일이었고, 거기에서 불쌍한 조암스는 목록을 뒤적이다가 자신의 작품이 전혀 눈에 띠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질리고 만다.
- 20세기에 근본적인 악에 맞서려는 몇몇의 신학적인 노력은 새로운 방향으로 빠져버렸다. 그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신정통주의의 창시자, 칼 바르트(1886-1968)였다. 바르트는 현실을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하였다. 신, 신의 창조, 그리고 "무(nothingness)". 무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신도 아니고 신의 창조물도 아닌 무는 모든 진정한 존재가 결여된 것이다. 하지만 존재를 완전히 결여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이 자신의 창조적인 권능을 거두어들이는 영역에서는 스스로 갑자기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신은 "무가 스스로 발생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자신의 창조적인 권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 우주를 구성한다. 악에는 두 종류가 존재한다. 인간 본성의 한계로부터 야기되는 악, 그리고 적극적으로 신에 저항하고 부정하며 전적으로 파괴적이고 부활할 수 없는 무, 융과는 달리 바르트가 주장하는 무는 절대로 신의 일부로 귀속될 수 없으므로, 신에게는 악한 측면이 존재하지 않고 선과 악이 통합되는 대립된 성질들의 일치도 일어나지 않는다. 악마는 무의 일부이고 모든 거짓에 잠재되어 있는 거짓이다.
- J. R. R. 톨킨(1892-1973)은 중세 지구의 가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초월적인 선과 악 사이의 투쟁을 설정했다. 겉으로는 다른 세계인 듯 설정됐지만, 베오울프와 마찬가지로 반지의 제왕의 배경은 암묵적으로 기독교적인 세계이다. 톨킨의 작품에 나오는 모르도르의 마왕 샤우론은 뱀이나 용을 통해 악마와 제휴하고, 악한 마법사 사루만이라는 이름은 사우로스나 마즈다교의 악한 신, 아리만과도 비슷해 보인다. 현대 문학에서 신화적 표현이 전통에 가장 충실하게 나타난 것은 루이스(C. S. Lewis, 1898-1963)의 작품이다. 루이스가 가장 독창적으로 기여한 것은 악령들은 두려움과 굶주림 때문에 자극을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현실적으로 영양 공급원이 차단되어, 굶주린 공복감을 채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영혼을 찾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방해를 받으면 방향을 바꾸어 또 다른 것을 먹어 치운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자신들의 끝없는 공허를 달랠 길이 없다. 그 이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개진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utape Letter)>(1942)는 상급 악령 스크루테이프로부터 그의 사촌 웜우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성명서(코뮈니케)로 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의 타락 특히 웜우드에게 배속된 한 인간의 타락에 대해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한다. 여기서 악마는 일상적인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악이 저질러지는 기회에 관심을 보인다. 다른 사람의 표현이나 목소리의 어조에 격분하고,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를 질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멸하고, 지식을 자랑하는 등 이 모든 인간적인 단점은 우리를 신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노력하는 악마에게 지렛대를 사용할 지점을 제공해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악마를 고귀한 지위의 높은 왕좌에서 발견하기보다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모습 속에서 훨씬 더 자주 악마와 맞서는 것을 루이스는 보았다.
- 루이스의 <페렐란드라(Perelandra)>(1943)와 이것의 연작소설인 심오한 우주에서, 화성, 지구 그리고 금성은 지능을 가진 존재들이 살고 있고, 그 각각의 행성은 "오야르사 (oyarsa, 천사)"가 지배한다. 화성에는 유혹을 잘 견디어내어 창조자 말렐딜(Maleldil)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좀 더 오래된 문명국들이 살고 있다. 원죄의 대가로, 지구는 "화가 난 오야르사, 악한 집정관"의 권세 안에 놓이게 되고, 말렐딜은 지구를 다른 행성들로부터 격리시켜 놓았다. 페렐란드라 금성은 아직 유혹이 개입되지 않은 파라다이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한 쌍의 지능을 가진 부부, 주와 그의 부인, 이 신성한 새로운 세계에 나타난 아담과 이브이다. 흉악한 집정관은 지구에서 온 웨스톤이라고 하는 과학자를 보내어 페렐란드라에 죄를 끌어들여 주와 그의 부인을 타락시킨다. 말렐딜의 반응은 옥스퍼드의 명사 랜섬을 보내어 그에게 대항하게 한다.
- 아마도 이 사람은 1478-1480년경에 태어난 것 같다. 그의 성이 파우스트라는 것까지도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파우스트(라틴어로 "행운")라는 이름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 사이에 일반적이었던 고전적인 가명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고, 또 어떤 설에 따르면 그를 Georg Helmstetter라고 하는 학생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자료상에 최초로 그가 나타난 것은 바로 파우스트이고, 가장 최초의 자료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요한이 아니라 게오르그이다.
- <파우스트 서>에서 다소간 독립된 판본들이 1580년대와 1590년대에 원고나 인쇄물의 형태로 수없이 나타났지만, 정본이 된 것은 1587년판이었다. 말로(Marlowe)의 희곡이 1588년이나 1589년에 씌어졌으므로 최초로 영어로 번역된 때는 아마도 1587 아니면 1588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번역은 1592년으로 되어 있다. 1592년에 네덜란드어로 번역되었고, 1598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 이와 유사한 마술이나 계약에 관한 이야기는 16세기에 만연하였다. 예를 들면, 마술을 지도해 주는 대가로 사탄에게 성적으로 복종했던 Mariken von Nieumeghen의 이야기(L. De Bruyn, Woman and the Devil in Sixteenth Century Literature, Tisbury, Wilts, 1979)
- 루시퍼가 다섯 개의 왕국으로 나눠져 있는 지옥의 황제라고 영혼은 설명한다. 동쪽은 루시퍼가 직접 통치하고, 북쪽은 바알세불이, 남쪽은 베리알이, 서쪽은 아스타로스가, 중앙은 플레게톤이 통치한다. 인문주의의 영향과 연금술과 마녀의 전통이 혼합되면서 전통적인 유대-기독교의 악령들의 중심으로 고전적인 플레게톤의 형상이 도입되었다.
- Bachtold-Stäubli, Handwörterbuch des deutschen Aberglaubens, 11 vols.(Berlin-Leipzig, 1927-1942), vol.6, cols. 174-182 에서는 외견상 가공적인 히브리어 기원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능한 대로 글자의 위치를 바꾸어보면 Mephotophiles에서 Mephostopbiles까지도 나올 수 있지만 전자는 확실하지 않다. <파우스트 서>와 대략 같은 시기에 나온 Pastaner Hillenzuuang에서는 히브리의 천사 이름들은 대체로 주, 신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나타나면서, Mephistophilg 뿐만 아니라 Mephistophiel 도 2017. A. Oehlke, "Zum Namen Mephistopheles," Goethejahrbuch, 34(1913), pp.198-199에서는 Mephiboseth와 Ahitophel(사무엘 하 4:4; 15:12) 같은 성서에 나오는 이름들을 결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이 저자(테오필로)는 중세의 신학자들만큼이나 루시퍼의 지위에 대해 혼돈하고 있었다. 10장에서는 루시퍼를 세라핌이라고 했다가 13장에서는 케루빔(9품 천사 가운데 제2위로 지식의 천사임)이라고 한다.
- 여기서 파우스트는 Chamagusta, Dythycan, Brachus 그리고 Anobis 같은 고전적이거나 새로운 악령들 뿐만 아니라 바알세불이나 기타 전통적으로 높은 지위의 악령들을 만난다. 지옥으로의 여행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주제로 한 중세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Doctor Fastas)>는 1604년도와 1616년도 판본이 있는데, 가장 잘 나온 판본은 W. Greg, Doctor Fastus 1604-1616(Oxford, 1950)이다. 나는 1616년도 판본을 인용한다.
- 데스데모나는 그리스어 deisdaimonia, "영을 두려워함"이라는 말에서 적절하게 유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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