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론 자만] 발도르프학교의 수학 - 수학을 배우는 진정한 이유

일루젼 2022. 1. 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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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론 자만 / 하주현

원제 : Teaching Mathematics in Rudolf Steinter Schools
출판 : 푸른씨앗 
출간 : 2016.01.15 


 

전반적인 개념과 커리큘럼 위주로 설명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연습문제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12학년까지라고는 하지만 저학년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도 많았고, 미분 적분이나 수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도 한국과는 꽤 다른 면이 있었다. 가장 차이가 났던 부분은 작도와 기하가 아닌가 싶은데, 대략적으로 원 그리기 연습 정도에 가깝게 실습해보는 한국의 교과정과는 달리 원하는 상을 실제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배운다는 점이 놀랍다. 문장 형태의 문제를 작도법으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증명 또한 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런 방식으로 수학을 배운다면 '수학'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할 것 같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하긴 어렵지만,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충분히 한국식 고등수학까지도 다룰 수 있을 듯 하다. 반대의 경우라면, 한국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천문학적 접근을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호기심으로 읽어보았으나 생각보다 깊은 수준에 놀랐고, 몇몇 문제는 간만에 이해하려 기를 써야 했다. 제곱근을 구하는 방식이 아주 신선했는데, 2배에 10을 곱한 뒤 자기 자신을 더하고 다시 곱하는 형태는 수식을 보면서도 한참 생각을 해야 했다. (a+b+c)^2=a^2 + b(2a+b) + c(2a+2b+c)를 이용했으나 원하는 것은 a+b+c이므로 실제로는 자릿수를 생각해 10배를 곱해 대입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신지학적 철학을 대놓고 드러내는데, 고학년이 되면 '물이 들까' 걱정이라는 농담을 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거부감은 없는 모양이다. 피타고라스를 내세우기 때문일까? 에테르체와 정신체(멘탈체)에 대입한 수학 과정을 읽고 있자니 조금 멍해졌는데, 한국에도 발도르프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모든 부분이 연관되어 유기적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학생 간의 수준 차가 나더라도 모두 한 주제에 집중해서 배우도록 이끌어나간다는 점도 인상깊었다. 이런 형태로 수학을 배워본다면 어떨까 싶다. 특히 기하학과 초월수 부분에 관심이 간다.

 

끝.

 


 

- 수학은 가르치기 쉽지 않은 과목이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수학을 무시무시한 괴물로 여기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우리에게 세상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는 학문이자, 퍼즐 같은 지적인 유희로 사고를 자극하는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언어'이자 '삶의 기술'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 이 책의 목표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데 (또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수학을 다시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실용적인 제안과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심은 분명히 발도르프학교의 교수 방법론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넉넉하지 못한 급여를 받으면서 (현재 영국은 다른 나라 정부보다 이런 학교를 위한 재정지원이 적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한 푼의 지원도 없다) 발도르프 교육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이 책에 실린 수업 계획과 연습 문제는 모두 한 학급 아이들의 실력 편차가 클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그리고 기초가 부족한 아이부터 미래에 수학이나 과학을 전공할 아이까지 모두가 수와 기하를 다양하고 폭넓게 경험하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연습 문제 대부분이 보통 아이들에게 너무 어렵다는 비판은 핵심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앞으로도 그런 비판은 계속되겠지만, 이는 초등학교 기초 수학을 넘어서는 내용까지 다루기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교사 자신의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본격적인 수학 수업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수학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특히 정신적 측면에서 살펴볼 것이다. 바라건대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내용을 가르칠 때도 수학의 정신성을 (간접적으로라도) 수업에 담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지기를 바란다. 
 

- 고대 그리스 신비 학교에 입문하려는 학생(초신자라 불렀다)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자격 조건은 수학을 익히고 배우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신은 기하를 하신다."고 단언했다. 플라톤 이전에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이 처음 일 년 동안 거의 수학 공부만 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기 전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지상적 토대인 지구의 기원은 무엇인가? 하늘의 별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우주의 화음을 듣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가? 신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귀를 여는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인가? 왜 우리는 처음에는 인생의 진정한 과제와 운명을 자각하지 못하는가?'와 같은 우주의 심오한 신비를 전수해주었다. 

 

- 세 번째는 16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 또는 '화성의 기관(첫 번째 단계는 토성의 기관, 두 번째 단계는 목성의 기관이라 부르기도 한다)'을 발달시키는 단계로, 슈타이너는 영감 Inspiration이라 불렀다. 이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낸 상상적 그림의 파노라마를 깨끗이 씻어내야 하며, 일상적인 기억 역시 지워야 한다. 일종의 음악적 울림을 포함한 새로운 경험이 찾아오는데, 그 울림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익숙한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이 단계의 인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미적분학이다. 미적분학은 영감 받은 상태의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분수를 분모와 분자 모두 0에 가깝도록 약분(깨끗이 씻어냄)한다. 미분 계수는 극한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무에서 유가 탄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해당 함수 관계가 계산 과정 안에 들어있다. 이는 세 번째 단계로 향하는 정신적 여정의 심오한 도덕적 모티브와 상응한다. 음악가들이 순간적으로 작품의 영감을 받는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번은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마차에 오르려고 한 발을 들어 올리는 순간 새 교향곡 하나가 통째로 머릿속에 밀려 들어왔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가 팔이 아프도록 악보를 써 내려갔다. 진정한 영감은 이렇게 찾아온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뭔가가 완성된 상태로 탄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 산술에서 사용하는 숫자를 가르칠 때는 이런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 아라비아에서 본래 사용하던 기호를 유럽에 전파할 때 이교도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기독교 성직자들이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본래 행성을 상징하던 기호들은 이처럼 수난을 겪으면서 아래와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 윗줄에서 태양(6)은 위쪽에 시계 방향 광채를 가지고 있으며, 태양보다 작은 달(9)은 아래쪽에 시계 반대 방향 광채를 가지고 있다. 아랍인들의 위대한 발견이자 현대 문명에 크나큰 기여를 한 0은 지구에 상응한다. 지구의 관점에서는 우주 모든 것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하나, 유일무이한 것, 영원토록 그러하리."라는 노랫말처럼 하나(1)는 신의 속성이며, 둘(2)은 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나머지 7개의 숫자와 행성의 상응 관계는 코넬리우스 아그리파 Cornelius Agrippa5의 저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코넬리우스는 3차 마방진, 4차 마방진을 각각 토성 마방진, 목성 마방진처럼 행성의 이름으로 불렀다. 마방진이란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나란히 놓인 수를 모두 더하면 항상 같은 수가 되는 정사각형 모양을 말한다. 

 

-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 Kepler는 5개 정다면체의 존재와 그에 대한 플라톤의 설명을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 케플러는 수많은 모형을 직접 만들어보고 도형 위에 색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다음은 그중 몇 장의 그림이다. 케플러는 제5원소를 태양, 달, 별과 밀접하게 연결된 힘으로, 열매와 곡식의 수확은 흙의 생명으로 묘사했다.

 




- 이 그림에서 태양은 렘니스케이트 나선으로 움직이고 지구가 그 뒤를 따른다. 측면도로 보면 둘이 대략 원 지름의 양끝 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원이 조금씩 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웃 별과 은하계 전체 구조 속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일반적인 방향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1783년 윌리엄 허셜 경 Sir William Herschel이다. 그는 그것을 태양 향점 solar apex이라고 불렀다. 별들은 향점에서는 멀어지고 그 반대쪽에 있는 배점 antapex에서는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향점 역시 아주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다. 슈타이너의 그림 역시 점면 양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위의 그림은 점 운동 중심이다.  

 

- 로렌스 에드워드 Lawrence Edwards는 행성에 살고 있는 식물 형태의 주기 변화와 그 행성의 태양, 달과의 결합 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했다. 에드워드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전체적이면서도 물질주의에 국한되지 않는 사고가 필요함을 몸소 입증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상, 영감, 직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의식(덧붙이는 글에서 설명)이 발달함에 따라 태양-지구 상대성의 본질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고, 희망컨대 그로 인해 영혼의 다른 영역(느낌과 의지)에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치유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들숨 뒤에는 날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위에 서술한 7단계를 보면 천문학에 대한 인간의 표상에서도 들숨과 날숨의 리듬이 분명히 존재한다. 앞 단계에 등장한 것은 사라졌다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 피타고라스가 말했던 '반-지구'도 1854년 덴마크 천문학자 브로르손 Brorson이 역광채 Gegenschein를 발견한 이후로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하늘에 있는 희미한 타원 모양 빛의 점으로, 이번에는 태양의 정반대 자리에 있다고 가정한다. 역광채를 관찰하기 위해선 달빛도, 인공 불빛 공해도 전혀 없어야 한다. 망원경으로 확대하면 타원의 광채가 줄어들고, 확대 배율이 클수록 그 현상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1960년대 이전까지는 이 현상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모순투성이 가설만 있을 뿐이다. 피타고라스부터 슈타이너까지 약 2500년 동안 지구-태양 관계에 대한 천문학적 인식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발달은 단순한 반복의 과정이 아니었다. 한 해 동안 태양은 황도대의 12 별자리를 모두 거치고, 춘분점 또한 25,920년 동안 12 별자리를 한 바퀴 돈다.  
 

 

더보기

 

 - 영혼 활동을 정확히 설명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이다. 영혼 활동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에게는 행동하려는 욕구,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려는 욕구(의지)가 있다. 이를 통해 주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심지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둘째, 세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이, 혐오, 기쁨, 공포, 호기심, 애정, 지루함, 열정, 질투, 감사 같은 여러 층위의 감정으로 반응한다. 셋째, 신체 감각을 통해 지각한 것 또는 스스로를 내적으로 관조하며 지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사고 활동으로 반응한다. 이런 반응은 자극이 오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영혼은 이 세 가지 활동 중 어떤 것을 억제하거나 불러일으킨다. 

 

- 교사가 사고를 위한 양식으로 '돌무더기'를 준다면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고를 위한 진짜 음식, '따뜻한 빵'이다. 여기서 돌멩이는 12=3×4 같은 순수한 추상을 의미한다.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들이 있는 힘껏 다리를 뻗어가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상과 수학 공책에 정성껏 그린 그림이야말로 가장 군침 도는 '빵'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상을 이용한 수업이 효과적이다. 상상 속에 자리 잡은 상은 사고 및 느낌과 연결된다. 빵 반죽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듯 그 상은 아이의 상상 속에서 발달하면서 확장하고 자란다.

 

- 아이들을 그렇게 일찍부터 추상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정작 아이들은 그 그림을 보며 각자의 내면에서 무엇이 다르다고 여겼을까? 어쩌면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닌, 나중에 수에 대한 이해를 일깨울 중요한 사전 경험인 색깔이나 움직임, 재질의 차이를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어린아이들의 감정을 고려한 수학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 이를 염두에 두고 수학이라는 주제로 들어가 보자. 모든 사람,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는 수학의 정령이 살고 있다. 교사는 결코 '이 아이는 절대 수학을 이해하지 못해, 신이 부여한 재능(유전자)에 수학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아.' 같은 생각을 떠올려서는 (입 밖에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안 된다. 

 

- 여행을 하다가 산을 만났다고 하자. 영혼은 그것을 단순한 흙덩어리 정도로 무시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자태와 멋진 색채, 나무가 울창한 산등성이와 계곡을 보며 경탄할 수도, 높은 산봉우리 위로 날아가는 새나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은 작은 바다 생물의 잔해나 아주 먼 옛날의 나무가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이며 그것이 습곡 현상으로 천천히 융기했다가 비바람에 깎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식으로 산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역시 선택에 달린 문제다. 영혼이 세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어떤 상황에서 느낌이나 사고가 반드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지만, 이들은 유동적이며 서로서로 흘러들어 가고 나갈 수 있다. 분명히 물질적 유전자의 소산은 아닌 정령은 영혼과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보다는 영혼의 지휘관인 자아의 조언자이자 안내자에 해당한다. 정령은 우리가 지능 intellect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고 폭넓은 지성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으며, 지능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또한 사고 활동을 촉진하고 예술적 감성과 의지 행동 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것은 문학, 과학, 예술의 천재성 genius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정령이 존재하지만 깊이 잠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정령이 우리를 자극하고 창조성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경우에도, 그 창조성이 아주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천재성'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 수학의 정령은 처음엔 잠들어 있다. 심장, 허파의 박동(산술의 진정한 모태)과 팔다리의 근육, 뼈 속(기하의 진정한 모태)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특히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드는 활동에서) 한 부분이 후두와 빗장뼈까지 올라와 꿈꾸는 상태에 들어간다. 정령의 나머지 부분은 아이가 아름다운 색채를 이용해 건강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때 팔을 따라 손으로 이동한다. 역시 꿈꾸는 상태에 들어간다. 여기서는 기하학적인 꿈이다. 이 두 부분(혹은 두 측면)이 머리로 올라오고 나중에 하나로 합쳐지면서 정령이 온전히 잠에서 깨어나면 비로소 수학은 인간 사고에 속한 의식의 활동이 된다. 수학이 물질세계의 과학과 정신-영혼 과학을 상대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 영혼 활동은 신체적이거나 물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다가, 조금 뒤에는 심장이니 허파니 하는 신체 부위를 거론하고 그곳에서 잠자던 (마찬가지로 물질이 아닌) 정령이 후두나 팔 같은 부위를 지나면서 꿈을 꾸고 그러다 잠이 깬다는 식의 설명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심心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이 단어는 몸 안에서 피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기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아주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지각에 반응해서 피가 빠르게 흐르는 것을 많은 사람이 경험하지 않는가? 심장 덕분에 피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빨리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이게 오로지 신체의 문제일까? 우리는 본능을 조절할 수도, 심지어 지배할 수도 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몰입하는 다른 모든 활동과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가?' 자문하기도 한다. 이때의 심은 신체적, 물질적 심장이 아니다. 그럴싸한 은유도 아니다. 언어의 정령은 물질적 심장뿐만 아니라 그것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눈에 보이지 않으며 비물질적인 심장도 존재함을 알고 있다. 손이나 '머리'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도 항상 눈에 보이는 신체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리와 심장, 손을 통해서 인간 영혼과 인간 정신은 물질 육체를 중재하고 통제한다. 언젠가는 (정령을 통해 접촉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해나간다면) 간을 비롯한 다른 모든 장기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의사나 병원의 역할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령이 심장에서 목으로, 머리로 올라가면서 수학적 활동을 시작한다는 말은 신체에 관한 이야기도, 비유적 표현만도 아니다. 

 

- 피타고라스학파 내부인이 직접 쓴 기록은 현존하지 않지만, 이암블리쿠스Iamblichus를 필두로 한 여러 '전기 작가'를 통해 신빙성 있는 이야기 몇 토막이 전해지고 있다. 에두아르드 슈레 Eduard Schure는 정신적 지각에 근거하여 당시 상황을 기술했다. 최근에는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 설립된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의 수학 교사 에른스트 빈델 Ernst Bindel이 피타고라스의 연구와 가르침을 수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을 썼다. 다음은 위에 열거한 자료 외에 다른 참고 문헌을 연구하고, 인식의 내적 근원을 (정령의 도움 아래) 발달시켜 쓴 글이다. 

- 크로톤(오늘날 이탈리아 칼라브리안 해안 근방에 있던 고대 도시)에 위치한 신비 학교에 입문하려는 초신자는 먼저 모든 소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원한다면 신비 학교에 기부해야 했다. 그런 다음 오늘날 대학 총장에 해당하는 사람과 면담을 한다. 피타고라스의 첫 번째 질문은 "수를 셀 줄 아는가?"이다.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 즉시 증명을 요구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만!" 피타고라스는 중단시킨다. "그대가 4라고 여긴 것은 10의 힘을 가지고 있고, 이곳에서의 가르침은 그 의미를 밝혀줄 것이오." 아서 왕과 성배 이야기를 배운 적이 있다면 이 대목에서 "내 힘은 10의 힘과 같지, 내 마음은 순수하기 때문에"라고 노래하는 갤러해드 경이 떠오를 것이다. 이야기에서 갤러해드 경이 말달리며 부른 이 노래의 (신성한) 힘은 계곡에 울려 퍼졌다고 이어진다. 면담 후 삼각형 안에 상형문자가 새겨진 판 하나를 주면서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로 올려 보낸다. 초신자는 빵과 물을 놓아둔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날이 밝으면 내려와 다른 학생들 앞에서 판에 대해 명상한 결과를 이야기해야 한다. 한참 뒤에야 맨 아랫줄의 문자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신의 이름인 '여호와 Jehovah'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것이라는 설명을 듣게 될 다음 그림은 고대 히브리 지혜를 전수받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전혀 유쾌하지도 편안하지도 못한 밤을 보낸 (사자 같은 야생동물이 숲을 배회하던 시절이었다) 초신자는 산 아래 학교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소리에 잠이 깬다. 1교시 수업은 노래를 비롯한 음악 활동이었다. 학생들의 연령은 주로 40세 이상으로 30세 아래는 드물었다. 노래를 마치고 조용히 모여 서 있는 학생들 앞에 당도하자마자 곧바로 지난 밤 명상한 결과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는다. 삼각형의 한 변마다 4개의 상징이 있고 그 합이 10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사실을 말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때 학생들 전부가 앞 다투어 가련한 초신자를 궁지에 몰아넣고 비웃기 시작한다. "여기 학생으로 들어오고 싶다면서 보여줄게 고작 그뿐인가? 그런 실력으로 어디를 넘본단 말인가!" 조롱과 모욕의 수위는 계속 올라가면서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간다. 요즘의 대학 입학 기준으로 볼 때 좀 가혹해 보일 수 있다. 사실 이는 초신자가 학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만한 사람인지 시험하는 과정이다. 초신자가 맞받아 고함치며 이성을 잃고 흥분하면 피타고라스는 그를 조용히 한쪽으로 데리고 가 시험(자존감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말해준다. 반면 고개를 숙이며 학교에 입학하기에 지혜가 턱없이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하면 총장은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뮤즈의 사원으로 데리고 가서 내부를 안내한다. 그곳에는 열 개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첫 번째 상의 이름은 헤스티아이다. 침묵의 뮤즈인 헤스티아는 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다. 초신자가 맨 처음 익히고 키워야 하는 힘이 바로 귀 기울여 듣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몇 달 동안 초신자는 판에 대해 피타고라스의 설명을 듣는다. 비슷하게 생긴 네 개의 상징(히브리 문자 또는 Jod)은 네 가지 계(광물계, 식물계, 동물계, 인간계)의 물질적 특성을 가리킨다.  

 

- 천문학은 '지구 측량학'인 기하보다 훨씬 더 어렵다. 천문학의 측정대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 대학 교육의 기본인 7가지 자유 교과 중 네 과목이 피타고라스의 4대 분류에서 나왔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설명한 수학의 네 영역이 중세 대학의 4교과, 콰드리비엄 Quadrivium이며, 문법, 논리학, 수사학이 3교과, 트리비엄 Trivium이다. 피타고라스의 신비 학교에서는 각각의 과목 안에도 네 요소가 존재했다. 이는 괴테가 식물학에서 발달시켰던 방식, 즉, 잎의 변형에서 식물 전체를 관찰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산술에는 등차수열, 등비수열, 조화수열(원래는 '천문 수열'이다), 음악 수열이 있다. 이를 계산에 적용한 것이 합 summation, 대수식, 실생활 응용문제이며, 발도르프학교에서는 16세 때 배운다. 고대 신비 학교에서는 수학과 기하학(예를 들어 나선형), 천문학, 음악을 동등하게 취급했다. 네 가지 특질이 어우러지면서 초신자의 내면에서는 유연한 직관적 사고 능력이 자라난다. 이는 이어지는 수련 기간 동안 수학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고한 정신세계를 통찰하고 경험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었다.  

 

- 그물은 금방 153마리의 물고기로 가득 찼다. 복음서의 저자가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했거나 아주 깐깐한 사람이었던 걸까? 150마리 정도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 수수께끼는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가 풀고 증명했다. 피타고라스가 10은 4의 힘 또는 4의 창조적 계시임을 밝힌 것처럼, 아퀴나스는 정삼각형의 밑변을 17로 하면 위로 갈수록 16, 15, 14로 좁아지다가 마침내 3, 2가 되고 맨 꼭대기는 1이 되는데 그 수를 모두 합하면 153이 됨을 증명했다. 그러면 153이라는 수로 그 창조성이 드러난 17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17은 말 그대로 10과 7의 합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의 지혜로 가득 찬 행성 세계와 지상 세계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탈리아 라벤나 지방의 한 모자이크화에서는 이 장면을 물고기가 가득 찬 삼각형 모양의 그물로 묘사한다. 이는 결코 우연히 나온 그림이 아니다. 모자이크화의 화가 역시 (적어도 그의 수학적 정령은 삼각형의 수 153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산술과 대수, 미적분학은 고차 세계 인식의 처음 세 단계와 질적으로 일맥상통(유질동상)한다. 슈타이너가 직관 Intuition이라 부른 네 번째 단계에도 수학의 성질을 지닌 것(마테시스)이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 단계에서 수학의 정령은 '지금까지 정신적 추구의 길에서는 약간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나 없이 혼자 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수학에 아무리 경이로운 정신적 특성이 많다 해도 '존재'까지 포괄하지는 못한다. 수학 공식으로 친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새순면이 정밀 기하학의 주제가 되고 프랙탈 이론을 이용해서 복잡하지만 고정된 상태의 고사리 및 여러 동식물의 형태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식으로도 나무 형태를 살아있는 상태로 묘사할 수는 없다.  

 

- 네 번째 단계(직관)는 '태양의 기관', '12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라고부른다. 이 단계는 오직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존재는 살아있는 사람일 수도, 죽은 사람일 수도, 아니면 천사나 엘로힘(구약성서에 나오는 신), 데바(인도 신), 심지어 사악한 정신적 같은 고차의 존재일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시공을 초월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각에 사로잡힐 위험은 어느 단계에서나 존재하지만, 이 단계를 비롯해서 모든 종류의 수학적 통찰을 넘어서는 이후의 단계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다른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직관의 단계에서는 '다른 존재와 하나 됨'의 상태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분리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 어느 윤년의 1월 1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일 년 동안 일요일만 빼고 매일 저금통에 5펜스짜리 동전을 넣었습니다. 그 해의 마지막 날 얼마의 돈을 모았을까요? 

 

- 이런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i)의 단계까지 가는 것이다. 물질세계와 상의 세계를 벗어나 이런 순수한 개념 영역으로 들어갈 때, 아이들은 무력감과 함께 심한 경우에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일단 (i)의 단계에 이르면 (ii)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자칫하면 이제 문제를 다 풀었다는 경솔한 자만심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상의 세계로, 최종적으로는 물질세계(현실 상황)로 돌아가서 몇 시 몇 분인지 말해야 한다. 대수를 푸는 과정에 두 가지 유혹이 찾아오는 셈이다. 하나는 두려움(인지학에서는 아리만이라고 부른다)에, 다른 하나는 자만심('루시퍼'라고도 한다)에 굴복하는 것이다. 아리만은 언제나 우리가 감각 세계(물질세계)를 벗어나 이상과 정신의 영역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면, 루시퍼는 우리가 정신세계에만 계속 머무르면서 현실적인 지상 세계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려 애쓴다. 문제 풀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순수하게 수학적, 비물질적 부분이다. 이는 일상의 모든 근심 걱정과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잠의 축복과도 같다. 문제 풀이 과정을 보면 동화 룸펠슈틸츠헨도 떠오른다. 룸펠슈틸츠헨은 방앗간 집 딸이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볏짚을 금실로 바꾸어놓는다. 이 동화에는 다른 요소도 있지만, 적어도 잠과 순수한 수학의 본질적 유사성(유질동상)만큼은 분명하다. 동화에 숨은 뜻을 해석할 수만 있다면 안에 담긴 무한한 지혜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영혼의 느낌 부관과 의지 부관이 사고 부관을 도와야 하며 그동안 함장인 자아는 우리 안의 정령 genius에게 길 안내를 부탁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두 개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7학년 기하를 마무리한다. 7학년 화학 수업에서는 결정의 형성과 용해를 배운다. 다음은 기하학적으로 용해되는 삼각형이다. 가장자리를 따라 1cm씩 축소된다. 8번의 움직임 끝에 삼각형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 위쪽 3개의 그림에서도 5학년 때 처음 연습했던 작도가 쓰이고 있음에 주목하라, 전개도 형태에서 각각에 상응하는 자연 요소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모닥불의 불꽃은 삼각형 모양으로 올라간다. 두 번째 그림은 어딘지 하늘을 나는 새를 닮았고, 세 번째 그림은 파도를 연상하게 한다. 다음 그림은 세상의 구원자가 처형되었던 십자가를, 마지막 그림은 살아있는 인간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그림으로는 정십이면의 절반밖에 만들지 못한다. 전개도를 온전하게 그리고 싶다면 똑같은 형태를 위아래만 바꾸어 오른쪽 아래에 붙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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