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세랑
출판 : 위즈덤하우스
출간 : 2021.06.10
작가명을 보고 대뜸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에세이였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에세이라고? 그것도 여행??'
조금 놀랐던 마음은 처음 기획부터 완성까지 9년이 걸리고 말았다는 저자의 달콤 쌉쌀한 자조에 녹아내렸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글을 써줘서 고맙고, 계속 지구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살아있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마음.
<옥상에서 만나요>로 처음 알게 된 후 <지구에서 한아뿐>,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정도를 읽어왔다. 전작을 읽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약간 있... 지 않다! 나는 맛난 걸 아껴먹고 있을 뿐이다.
(사족. 블로그 리뷰를 시작하기 전 인스타에 짧게 감상을 남긴 책들이 있는데, 리뷰를 다시 쓰고 싶은 마음 반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 반이다. <시선으로부터>나 <피프티 피플>, <지구에서 한아뿐>, <돌이킬 수 있는>, <키르케>, <아킬레우스의 노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일식>, <연금술이란 무엇인가> 등등.... 떠들고 싶은 게 넘치는 책들. 블로그를 재시작한 이후로 완독한 책만 쓰겠다는 기준을 정했었기 때문에 리뷰를 쓰려면 재독을 해야 한다. 물론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책들이 많지만 목록이 무한 자가증식 중이라 항상 계획만 세운다. 올해 만약 휴가를 갖게 된다면 이번에는 재독만 해봐야지.)
<시선으로부터>를 읽을 때 확실히 느꼈는데, 나는 문장이 예쁜 글들을 만나면 읽을 때 시간이 무척 많이 들어간다. 잠시 잠시 책장을 덮고 문장을 곱씹고 만지고 담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플롯이 재미있을 때와는 반대인데, 이야기에 몰입하면 빠르게 흐름을 타고 읽어간다. 그래서 나는 정세랑이 어렵다. 재미있는데 쉬어가야 하니 괴롭고 달콤하다.
다시 돌아와서.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정세랑의 글을 읽다 보니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가더라도 그녀처럼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올 자신은 크지 않다. 이런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쁘고, 조금 자랑스럽다. 닮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 다들 조금씩 정세랑스러워졌으면 좋겠는데.
고마워요. 덕분에 읽는 동안 행복했어요.
가장 좋았던 건 해양생물관의 거대한 고래였다. 물론 모형이지만 너무나 크고 푸르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그 고래 아래, 시원한 돌바닥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 누워 있으니 30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던 날이 나에게 그랬다.
- 여행을 왜 즐기지 않느냐면,
어렸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갔을 때 내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하시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길 바라셨던 듯한데, 이렇게 두 번째 챕터에서 시원하게 말해버린다. 문학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 아팠던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무척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구마구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첫 회사에서 한 시인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적이 있는데 나와 같은 소아 뇌전증을 앓으셨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셔서 듣고 있다가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 그래서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낯선 상황에서 피곤하면 발작이 일어나곤 했으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했다. 치료를 받고 성장하며 발작은 사라졌고 다행히 아직 재발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발작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 그렇게 사망한 이의 사례가 보도되면 먼 나라의 모르는 사람인데도 슬퍼진다.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의 배우 캐머런 보이스가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뇌전증으로 인한 수면 중 발작으로 사망했다. 할리우드의 배우라서 알려진 것이지, 비슷한 죽음은 지구 곳곳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현대사회에서도 모두가 평균 수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본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더 잘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에 '만약 내가 4년 후에 죽는다면 후회할까? 8년 뒤라면?'하고 가정해보는 것만으로도 한결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 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 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특히 동료 작가들에게)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 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완전연소하는 연료라서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것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선택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의기양양하실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 부차적으로, 머릿속의 이야기를 다 꺼내 텅 빈 상태여야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편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창작자들은 창작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의 경우 창작이 끝났을 때 비어 있는 상태가 감미롭다. 중간중간 짧은 쾌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야기가 완전히 빠져나갔을 때가 정점인 것이다. 장편소설 얼개 같은 게 안쪽에서 끓어오르고 엉기는 상태에서는 매일이 부대끼고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이 안 된다. 스스로를 이야기가 지나가는 파이프 정도로 여기는 편인데, 그 통과가 지연되면 문제가 생기고마니 사실은 선택지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 같은 '파이프형'이라면, 창작물이 안에 고일 때 괴롭고 내보내야 머릿속의 압력이 낮아진다면 당신도 창작을 해야 한다. 그 압력을 무시해서 고장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 이런 말들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괜찮아. 거기 백 퍼센트 안전하고 사람들 좋기만 해. 나쁜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내가 멀쩡하게 다녀왔잖아?"
여행은 기껏해야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썼을 때부터나 안전했고, 그 전의 수천 년간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어떤 여행지에서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것은 그 여행지가 유난히 선량한 장소라서가 아니라, 여행의 보드게임 판에서 던진 주사위가 좋은 숫자였던 것뿐일 가능성이 높다. 주사위에는 나쁜 숫자도 있다. 평소에도 폭력의 표적이 되는 일은 흔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여행자들이 얼마나 두드러지는 존재인지 고려하면 확률은 더 나빠진다. 여행은 눈에 띄는 나약한 표적이 되는 걸 감수하고 하는 행위인 것이다.
- 그러니 사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최악을 각오하고 여행하는지도 모른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조금 더 신경이 굵은 사람들은 무의식 깊이 묻어놓았겠지만, 아름다운 해변에도 맹독성 해파리들이 있고, 환한 잔디밭에서도 흉기가 칼집에서 빠져나온다. 세계는, 인류는, 문명은 순식간에 백 년씩 거꾸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럴 때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견뎌야만 한다. 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지금이 그리 좋지 않은 시대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들이 계속되고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 6시 이후엔 도시가 조용해지고 어두워지는 것이, 셔터가 내려지고 거리가 비는 것이 관광객 입장에서는 불편했지만 그에 비해 한국의 도시는 지나치게 밤이 밝지 않은지 고민하게 되었다. 언젠가 늦게 귀가하다가 11시 40분인데 환히 열려 있는 동네 빵집을 보았다. 장강명의 <산 자들>에 수록된 현수동 빵집 삼국지 같은 사정이 있으신 걸까 걱정되었다. 새벽에 열고 늦은 밤 닫는 빵집에서 더 나아가, 24시간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지나치게 많다. 휴일에도 쉬지 않는 곳들이 말이다. 몇 년 전 어린이날, 대형 마트의 장난감 코너에 서 있는 직원들을 봤을 때도 혹 저 집 어린이들이 서운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배달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코로나19 위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과로로 사망한 배달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또 아찔하다. 필수적인 휴식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고 일부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당연히 인간적인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해 보이고, 혹사와 착취는 종종 근면과 편의의 표면을 하고 있어 구분을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듯하다. 모두가 쉴 때 쉴 수 있게, 일하다 병들거나 죽지 않게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도 감수하고 싶은데 변화는 편리 쪽으로만 빠르고 정의 쪽으로는 더뎌서 슬프다. 표면만 파악한 것일지 몰라도 2012년의 독일은 누구의 삶도 각박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어떤 합의에 이른 나라처럼 보였기에 부러웠다.
- 케이블카 가격이 비싸서 망설이다가 그래도 한번 가보자, 하고 도시 가운데 높이 위치한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 보았는데 정말 가길 잘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는 중세의 성을 구경하는 것도 굉장했지만, 구름이 낮게 깔린 잘츠부르크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은 가슴이 저밀 정도의 경험이었다. 두 시간쯤 그 성에 머물렀다. 성의 테두리를 돌며,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을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 인간의 수명은 짧고 이 멀어지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기엔 역부족이지만 언제나 흥미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 하나 재밌게 남은 건, 브뤼헤에서 수제 레이스 공방을 실컷 구경한 덕분에 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이 벨기에산 레이스를 하고 나오면 곧바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군인이 전쟁터에서도 벨기에산 레이스로 치장하고 있다는 묘사가 있으면 그가 사치스럽고 허영이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 묘사를 읽은 게 <시라노>였는지 <삼총사>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은근히 자주 나온다. 여행한 공간이 늘어나고 또 늘어나면 정보를 건질 그물망이 촘촘해져서 책이 훨씬 재밌어지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지금껏 놓친 정보는 또 얼마나 많을지, 종종 허술하게 흘려보냈을 반짝임들을 안타까워한다.
- 거리, 저 거리를 걸으며 가스등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어렸을 때부터 책에서 읽은 가스등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유럽에도 이제 가스등이 남은 도시는 거의 없다고 해서 뒤셀도르프의 가스등이 여행의 기대 포인트 중 하나였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9시까지 기다려서야 등에 불이 들어는 걸 볼 수 있었다. 상상만큼 빛이 번지는 낭만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랜 궁금증이 해소되어서 가뿐할 정도였다. 이제 어느 소설에서 가스등이 나오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궁금증을 해소한 것은 예상보다 큰 만족감을 주었다. 자유를 가진 성인의 만족감에 가까웠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게 어디든 찾아가서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시에 내심 뿌듯했었다.
- 뒤셀도르프를 떠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의 독일은 H&M이나 아디다스 같은 다국적 기업의 매장까지 닫기에, 쾰른과 본은 텅 빈 거리의 정갈함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도시가 쉬고 있어도 쾰른 대성당 주변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대성당을 맴돌다가 향한 곳은 쾰른의 명물 향수인 '4711' 본점이었다. 쾰른 어디에서나 4711을 구매할 수 있지만 본점에는 향수 분수가 있다고 들어서 보고 싶었다. 초콜릿 분수도 멋지지만 향수 분수는 더 멋지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물론 그곳도 쇼윈도 밖에 관광객들이 서성이거나 말거나 꽁꽁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닫힌 문 밖으로도 향은 새어 나왔고 자그만 분수를 볼 수 있어 기뻤다. 나중에 K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향수인데"라고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지만 말이다.
-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들을 풍부하게 소장한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연인들이 채워둔 자물쇠 무게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던 철교를 잠깐 걸어보았다. 한 번도 직접 소원을 담아 자물쇠를 채워본 적은 없지만 남산타워를 비롯해 여러 곳의 자물쇠를 보았던 기억이 <보건교사 안은영>에 영향을 미쳤다. 단단하던 마음과 약속들은 쉽게 저주로도 변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에너지를 은영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행 전에는 기대감으로 즐겁고 여행 중에는 충만감이 차오르는데 여행 후에는 상실감이 찾아오는 것 같다. 어떤 여행이든 그렇지만 런던에 다녀왔을 때 유독 심해서, 집에 돌아온 밤 카메라의 메모리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찍은 사진의 절반이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명히 찍었던 것 같은 사진들이 없었다. 당황해서 메모리 복원 프로그램으로 몇 번 복원도 시도해보았는데, 그러다가 깨달았다. 머릿속에 남은 강렬한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착각했다는 것을. 착각할 만큼 생생했던 이미지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진으로 착각해 희미해지고 잊히게 된다. 안쪽에서 그렇게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느낄 때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인간의 눈 같은 카메라는 없고, 인간의 뇌 같은 컴퓨터도 없지만 잊지 않는 기계였다면 좋았을 텐데.
- 그래서 하와이를 사랑하게 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하와이에 되도록 가지 않겠다고. 제주도를 사랑하면 제주도에 너무 자주 가서는 안 되듯이, 하와이로 은퇴하겠다는 농담은 더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이 여행 책을 쓰며 어떤 장소에 다시 간다면, 하고 여러 번 썼지만 앞으로의 나는 별로 여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와이가 아닌 어디라도, 여행의 기회를 아직 더 여행해야 할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찾아낸 보물들을 충분히 품고 있으므로 비행기를 덜 타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한다. 꼭 가야만 하는 취재나 직접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때는 예외를 두겠지만 기본적으로 삼가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니 이제 또, 다른 사람들의 여행 책이 달고 맛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필터 삼아 걸러낸 지구의 면면을 살짝 떨어져 탐닉하고 싶다.
기회가 닿아 돌아간다 해도 그 자리에 섰을 때 변한 것들, 잃은 것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일까 겁이 난다는 게 더 솔직한 고백일 수 있겠다.
그래서 성급히 재방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가끔 마음속에서 꺼내보는 편을 택했다. 특히 여름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엔 아헨을 생각한다. 예상 밖의 차가운 공기 한 줄기를 만나면 아, 방금 그 바람은 아헨의 바람 같았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점을 지나온 작은 도시를 잔잔한 형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는 것 같다.
- 그랬을 때 세 번째 책은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겨우겨우 낼 수 있다 해도 결과는 미미할 게 뻔했다. 마케팅 자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출판계에서는 모든 책에 힘을 쏟지 못한다. 발간하는 책들 중에 '미는 책'은 소수인 현실에서 어떻게든 '미는 책' 쪽에 들지 못하면 작가로서의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밀지 않은 책이 큰 호응을 얻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문 편이어서 적은 확률에 기대를 걸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기이한 이야기지만 편집 일을 그만둔 것은 편집자로서의 판단이었다. 문학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학상 수상작은 상금을 판매로 회수해야 하는 책이므로 자동으로 '미는 책'이 되었다. 두 권의 책을 실패한 상황에서 신인이 성장할 통로가 많지 않던 당시로서는 그것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장르 쪽에 잘 쓰는 사람 없던데요? 세랑 씨도 재등단이나 하지 그래요?"
문단 사람들의 도발을 며칠에 한 번씩 당하는 것도 이를 갈게 만들었다. 일단 들어가서 다 뒤집어버려야지... 그런 민망한 치기도 분명히 있었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2년쯤 기다렸다가 웹이나 영상처럼 새롭게 흥하는 분야로 가는 것도 좋았을 듯한데 끊임없이 공격받다 보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만다. 장르 소설가들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내 부아가 치미는 말들을 듣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맞는 답을 골랐어도 불안하기만 했기에,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혀 자지 못하고 열세 시간 동안 내적 비명을 질렀던 것이 기억난다. 무슨 일을 벌인 걸까, 몇 년 후 크게 후회하는 건 아닐까, 질문들이 여백 없이 이어졌고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하필 난기류가 심해 안전벨트 등이 내내 꺼지지 않았다.
-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기지만, 대개는 어떤 패턴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영화 <어바웃 타임>이 개봉했을 때, 주변의 편집자 친구들이 레이철 매캐덤스의 앞머리와 옷과 가방을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너무나 편집자스럽다고, 전 세계의 편집자들은 취향이 그렇게나 겹치는 거냐고 깔깔 서로를 놀렸던 것이다. 특별한 것 같지만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공동체에 속하면 비슷해진다. 그런 패턴을 확인할 때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 L이 데려가 준 가게들 중에는 간판 없는 가게들이 많았다. 낡고 어둑한 계단을 올라가면 아무 표식도 없이 가게들이 숨어 있었다. 도무지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식이었다. 밀어닥치는 관광객들을 피해 현지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들이라는데, 백 퍼센트 순도의 관광객으로서 그런 가게에 앉아 있자니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그렇게나 밉나? 따돌리고 싶나? 아무래도 꽁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언젠가 한 번은, 아주 평범한 거리를 열심히 사진으로 담는 관광객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카메라에 대체 무엇을 담는지 궁금해서 나도 그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특이할 게 없는 상가 건물들일 뿐이었다.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현대적인 건물도 아니고, 하다못해 간판이 많이 달리지도 않았던데 왜 그 풍경이 그분께는 진지한 포착 대상이었을까? 관광객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망으로 정보들을 건져내는 것 같고 그 시선에 매료될 때가 있다. 명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관광객들이 이상하게 모여드는 음식점에 가보았더니 의외로 맛있었다며 이후 유심히 지켜본다고 했다. 역시 사랑스럽다.
- 대형 마트의 푸드 코트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메뉴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던 적도 있다. 슈퍼마켓의 푸드 코트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거지, 했는데 나중에 쓰는 말을 들어보니 여행자들이었다. 아, 그렇다면 한 끼 한 끼가 소중하지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말의 농도가 비슷한 게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만나는 내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놔서 숨이 막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상대에게 그 여백을 숨 가쁘게 채우게 하는데 말의 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편하니까. 그 농도가 비슷하지 않은 사람끼리 길게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 "보통 맛없는 맥줏집에서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데 누나들이랑 놀면 제일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대화의 질도 높아서 좋아요."
- 5번가의 티파니 정도가 그 자리를 유유히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티파니가 아니라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그 지점이니 말이다. 영화는 요즘 보면 매우 인종차별적이지만,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를 두고 "걔 가짜야. 하지만 진정한 가짜지(She's a phony. But a real phony.)"하는 대사는 아주 완벽한 대사라 뜬금없이 생각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직업은 가짜가 되기 쉽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엔 홀리와 폴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짧은 대사에 가닿으면 아무렴 어떠냐 싶어지는 것이다. 막상 5번가의 티파니에 갔을 때는 영화 장면이 새록새록 스쳐 갔던 것과 별개로 아무것도 사지 못했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흉내 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누가 봐도 부유하지는 않은 행색으로 층층을 돌아다니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많은 티파니 매장이 있는지 몰라도, 그 지점 같은 곳은 또 없을 것이다. 특별한 환대와 수용의 분위기가 부드럽고 달콤하게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던 창문 때문에 마법 비슷한 것이 생겨버린 게 아닐까? 어느 곳에도 영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직원들의 얼굴에서 어떤 긍지가 엿보였다. 긍지는 은은하게 빛나는 귀금속과 비슷한 면이 있고, 어떤 이야기의 어떤 장면은 그렇게 빛도 소리도 없이 영원히 재생된다.
- 이 리스트는 무한히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소소한 것, 언뜻 무용해 보이는 것, 스스로에게만 흥미로운 것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삶을 훨씬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집가만큼 즐거운 생물이 또 없고 수집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가 되니까.
- ... 앉아 먹었던 할랄 푸드도, 주문한 것과 영 다른 스프레드가 나왔던 베이글도, 차이나타운의 딤섬도, 리틀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카놀리도, 멕시칸 옥수수 구이도, 간 마를 잔뜩 올린 우동도, 5번가의 계절 테마 코스 요리도... L의 집에 머무는 대신 내가 매일 맛있는 것을 쏘기로 한 것이 우리의 약속이었고 음식 탐험을 하기 좋은 핑계였다. 어느 나라 요리는 뉴욕에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다. 어쩌면 본국보다도 더 맛있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요식업계 분들이 뉴욕에서 천하제일 무도회 비슷한 걸 열기로 한 건가, 의아했는데 월세가 하도 높다 보니 웬만해서는 생존하기 어려워 쟁쟁한 곳들만 남은 게 아닌가 싶다.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라 음식 문화가 풍부한 것도 분명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맛있었던 곳은 뉴욕대학교 근처 맥두걸 스트리트 114번지에 위치한 사이공 쉑(Sigon shack)의 반미 샌드위치였다.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여전히 있어서 더 가고 싶어 지는데, 일단 가게에서 직접 굽는 바게트 빵이 탁월했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돌아와서 내내 '반미'를 검색하는 바람에 CIA 요주의 인물처럼 되어버렸었는데, 요새는 반미가 대중적인 음식이 되어 행복하다.
- "어디서 왔어요?"
"한국요."
그러자 점원이 낄낄 웃었다. 너 너드(nerd)라서 이렇게 멀리 왔구나, 하는 웃음이었는데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서 함께 웃고 말았다.
"뭐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네드 스타크의 머리요."
둘이서 더 낄낄거렸다. 네드 스타크의 머리 모형이 센터 피스처럼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때는 잘린 지 얼마 안 돼 따끈따끈했던 셈이다. 그 머리가 잘렸을 때 받은 상처를 HBO 숍에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 어릴 때부터 서브컬처를 한껏 누리며 컸다.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을 즐기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이우혁, 이영도, 전민희 작가의 대작을 초판으로 읽었다. 황미나, 강경옥, 이미라, 유시진, 권교정, 천계영 작가의 영향도 강렬하게 받았다. 영화 쪽에서는 <터미네이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명작들이 막 발달한 그래픽 기술에 힘입어 쏟아져 나왔고,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전성기였던 듯하고, 서사성이 강한 컴퓨터 게임을 밤새도록 했고... 이야기 매체의 발달을 실시간으로 겪으며 누린 세대라, 그렇게 내 안쪽 어딘가에서 장르 뼈가 빚어졌다. 장르 작가인 게 좋고 장르 소설을 사랑한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마음에 걸리는 지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에 장르 문학계에서만 활동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서브컬처계 특유의 가학적인 문화에 있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 한국 장르 작가들, 특히 한국 여성 장르 작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조롱이 올라왔다. "여자 작가들 글에서는 여자 냄새 나" 따위의 저열한 내용이 반복되었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단의 폐해에 대해서는 자주 말하지만 장르 문학계의 비틀림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데 괴롭힘 문화로 치면 한 수 위다. 거의 매년 악플러를 잡아보았더니 비슷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업계 사람으로 밝혀지거나 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얼마 전에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안쪽의 온도가 조금 떨어져 버렸다. 이대로 방치하면 모두가 진저리 치는 문단보다도 더한 유독함을 뿜어낼지도 모른다. 바로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만은 아니다. <스타워즈> 시리즈 7, 8, 9편을 만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전 세계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안노 히데아키가 오랫동안 상처를 받아왔다는 것을 들으며 서브컬처계의 가학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간다.
- 해외 뉴스에 브루클린 브리지를 운동화로 씩씩하게 건너고 사무실에 가서 구두로 갈아 신는 '운동화 신는 도시 여자' 장면이 나온 적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떤 굽으로든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라 갈아 신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의심하게 되었다. 메이시 백화점의 나무 에스컬레이터는 언제고 타고 싶지만, 벙벙하게 뚫린 브루클린 브리지 나뭇살은 한 번 경험한 것으로 족한 것 같다. 3분의 1쯤 건너고서야 평정을 찾았고 천천히 그 오래된 다리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을 해치기 싫어서 철판으로 덮지 않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책에서 읽었던, 브루클린 브리지가 준공되고 얼마 안 있어 다이빙 내기를 했다던 젊은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죽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내기였고 젊은이는 수면에 부딪혀 내장 파열로 죽었다고 한다. 그 다이빙이 성공했으면 좋았을 텐데.
- 미시시피는 남부, 공연 팀은 전원 흑인이었으니 역사적 맥락이 있는 멘트였지만 배어 있는 공격성에 100명 넘는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기기묘묘한 점프들을 다 잊고도 그 한마디가 몇 년 동안 잊히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 공격적으로 말해도 될 것인가가 오래 하고 있는 고민이다. '조신하게, 예쁘게 말해' 하는 식의 강요는 지긋지긋해서 굴절 없이 똑바로 말하고 싶은데 또 어느 선을 지나치면 따가운 공격성밖에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 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 일단은 조롱과 비아냥,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하게 얽힌 세계에서 한 사람을 덩어리로부터 떼어내 개별적으로 보고 싶다. 내가 '섹시 아시안 걸'로 요약되었을 때 상처받았던 것처럼, 남부에서 온 아저씨도 상처받았을 수 있다. 그 아저씨가 남부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더라면 그 공연을 보고 있지 않았을 확률이 높으니까. 공연자의 갑자기 드러난 날카로운 면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일반화해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차별 속에 느껴왔을 스트레스가 왈칵 터져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 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 돌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 박물관 지구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슈타델 미술관과 리비히하우스를 오전에 보는 게 목적이어서 개관 시간도 되기 전에 먼저 가서 기다렸다. 미술관 건물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 안쪽에서 일찍 일어난 다른 사람들과 함께 20분쯤 서성거렸다.
"무슨 그림을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그런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슈타델 미술관은 규모가 아주 크지 않아도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보티첼리부터 시작해 루벤스, 모네, 르누아르, 페르메이르를 거쳐 현대의 거장들까지 눈에 익은 작품들과 동시대적인 작품들이 근사한 흐름을 이루며 갖춰져 있었다. 관람객이 아직 많지 않은 복도를 천천히 걷자 피로로 무뎌져 있었던 감각이 깨어났다. 괴테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 앞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베티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언제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이후 몇 년간 출장 등으로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사람들에게 꼭 방문해보라고 추천했었다. 뉴욕에서 갔던 모마나, 후에 가게 될 런던의 테이트만큼 슈타델이 좋았다.
- 수십 년째 전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는 작가들도 있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들에게서 몇 초 만에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고 소수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니 온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제프 쿤스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50미터 밖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 "어, 백남준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실루엣이 익숙했다. 촉이 왔다.
"거짓말하지 마. 그럴 리 없어. 그렇게 막 발에 차일 리가."
W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기할래?"
여행 경비를 공동으로 쓰기로 했기 때문에 내기할 만한 게 없었다. 점심 메뉴 결정권을 걸기로 했다.
"텔레비전이 반짝반짝하지 않잖아. 아닐 거야. 그냥 비슷한 작품일 거야."
가까워질수록 W는 불안해했고, 나는 의기양양해져 갔다. 역시나 백남준의 작품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뮤지엄 앞에 서 있는 1990년 작 <프리벨맨(Pre-Bell-Man)>이었다. 다시 한번 고유의 표지가 있는 작가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손톱만 하게 보여도 아우라를 뿜어낸다는 뜻이니 말이다. 소설가들 중에도 분명 비슷한 이들이 있다. 한 문단만 읽어도 아, 이거 그 사람이 쓴 거잖아,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는 게 그때도 지금도 꿈이다. 감각적이고 즉각적이면서도 쉬이 잊히지 않는 어떤 것, 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다.
- 무지개 원피스를 입고 나갔더니 퀴어 퍼레이드였다. 아침에 둥, 둥 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북소리가 났다. 북소리에 깨어나는 것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것이 축제의 북소리라는 것을 눈뜨는 순간 깨달았다. 기분 좋은 진동음이 5층까지 닿았고 창밖에는 밝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무슨 축제인지 몰라도 축제에는 무지개 옷이지, 하고 꺼내 입고 나갔더니 심지어 퀴어 퍼레이드였다. 그렇게까지 우연으로 TPO에 맞춰 옷을 입은 적은 인생에 또 없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곧바로 축제에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그 퍼레이드는 완벽했다. 건물마다 지지의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바리케이드도, 혐오 세력도 없이 열린 광장에서 모두가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플래카드는 종교 상징으로 쓴 '관용(Tolerance)'이었다.
- 그곳에서 나는 나의 퀴어 친구들을 떠올렸고, 몇 년 동안 그날을 곱씹게 되었다. 왜 한국에서는 칸막이 없는 축제가 아직 불가능한지를, 어떻게 하면 가능해질지를 말이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차별과 모멸을 겪으며 깎여나가지 않는 세계를 절실히 바란다. 행복은 연결망 위에 놓여 있는 듯하다.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 때 그 누구도 혼자 행복할 수 없으니까. 누구나 조금씩의 모멸을 견디며 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퀴어들이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모멸은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 같아 우려가 크다. 우정에서 출발하는 신념이 있고, 나는 어느 도시에서 눈뜨건 무지개 깃발을 흔들 준비가 되어 있다.
- 인간의 몸이 아주 복잡한 유기체라는 점을 종종 곱씹는다. 하나의 통일된,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온갖 부분과 요소들이 저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는 가끔 서로 상충하거나 갈등 관계에 놓이기까지 한다는 것에 대해서. 뇌가 원하는 것과 위가 원하는 것이 다르고, 이 호르몬의 목표와 저 호르몬의 목표가 다른 식인데 성(性)과 관계된 파트들이 유난히 저 혼자 가지런할 리 없다.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과학과 의학의 연구 결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몸이 이토록 복잡하고 다층적일 때, 이분법적 정체성과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의 방식은 실제에 대한 지나치게 거친 요약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어슐러 르 귄은 '안다'고 말해야 할 자리에 '믿는다'는 말이 끼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이에 깊이 동의한다. 과학의 자리에 과학이 아닌 것이 들어와서는 곤란하다. 몇몇 친구들에게 흐르던 지지의 마음은, 이제 퀴어 독자분들에게도 향한다. 출판 행사에 찾아와 마음을 전하고, 농담을 나누고, 가끔 같이 조금 울기도 하는 독자분들은 한층 넓은 의미의 친구일 것이다.
- 리뷰 안에 레즈비언임을 밝히시거나 소개 글에 밝혀두고 글을 쓰셔서 알 수 있었는데, 전혀 성애와는 상관없는 소설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셋 이상이 되면 한 캐릭터를 콕 집어 '얘는 레즈비언이다!' 확언하시는 게 대단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그 캐릭터를 다시 보면 정말로 그럴듯했다. '아, 제가 미처 몰랐군요.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드러내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성별을 분명히 하지 않거나, 앞부분에서 남성이라고 밝힌 캐릭터들마저도 과감히 여성으로 읽어버리신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읽는 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비워두고 쓰는 방식을 익힐 수 있었다. 세계는 아직 여성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데 다양한 여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열렬히 사랑하는 법을 더더욱 배우고 싶다.
- 또 최근에는 어떤 독자분이 내 소설의 세계관이 범성애적 세계관이라고 해석하신 것을 보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들은 사실 자기가 뭘 하는지 잘 모르고 해석이 풍부할수록 다음으로 쓸 것에 근사한 영향을 받는다. 그렇죠, 외계에서 온 돌이랑 이것저것을 하면 범성애적 세계관이겠네요! (구글 AI는 같은 정보로도 <지구에서 한아뿐>을 '외설 문학'으로 분류해버렸지만... 고치는 데 몇 달이 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 아직까지는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럴 때는 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곧 말해주리라 믿고 관심을 가진 채 기다린다.
- 뮌헨 퀴어 퍼레이드 날, 마리엔 광장은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총 천연색 가발들이, 어깨에 멘 날개가, 기발한 슬로건들이 햇빛을 반사했다. 시청 건물의 인형 시계도 그날따라 더 즐겁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말하면 재미가 반감하니까 숨겨두지만, 이 인형들의 움직임에 반전이 있다. 꼭 한번 시간 맞춰 그 아래에 서 보시기를 바란다. 현지인들은 방문자들이 입을 쩍 벌리길 기다리며 장난스러운 얼굴로 곁눈질할 것이다. 그날의 햇빛, 그 음악, 그 모든 웃음소리를 마음속에 소중한 풍경으로 품고 있다. 풍경은 때로 지향점이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린 광장에서 안전하게 스스로일 수 있는 날은 여기에도 올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 줄리 앤드루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왕성하게 쌓아 낸 작품들의 리스트에 존경심을 느낀다. 멈추지 않고 쌓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찬탄은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어린 배우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며 뛰어다녔던 미라벨 정원을 우산을 쓰고 걸었다. 맑은 날이라면 꽃들의 색이 달라 보였겠지만 빗물이 맺혀서 더 빛나기도 했다.
- 성당 바로 앞의 베이커리에서는 명물인 프린텐을 파는데, 생강과 시나몬을 바탕으로 향기로운 허브들이 잔뜩 들어 있는 달고 쫄깃한 쿠키다. 굉장히 맛있기 때문에 한 봉지쯤은 꼭 드셔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얼마나 맛있냐면 생강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유혹을 참지 못하고 먹었다가 큰 고생을 했다... 대충 향만 냈겠지, 괜찮겠지 했다가 괜찮지 않았고 식품 알레르기는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배웠다. 이때 며칠 지칠 때까지 토한 기억으로 단편 <해피 쿠키 이어>를 쓸 수 있었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도 알레르기가 없다면 프린텐을 꼭 드셔 보아야 한다. 크리스마스 과자이긴 한데 여름에도 항상 팔고 있다.
-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한 군데로 꼽히는 셀렉시즈 도미니카넌에 가본 게 큰 소득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유명한 곳 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는데 7백 년 된 성당을 개조해 꾸민 내부가 잊히질 않는다. 그곳에 있는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으면 했다. 그럴 수없다는 사실이 몸 안쪽 어딘가를 타들어가게 했다. 수도 없이 들렀던 아헨의 5층짜리 서점에서도 늘 그런 욕구에 시달렸다. 언어에 대한 따가운 욕구에... 그즈음 깨달았던 것 같다. 숨 쉬듯 다룰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곳에서는 살지 못하리라는 걸. 그래서 친구들이 떠날 때에 나는 떠나지 못했다는 걸.
- 브뤼헤는 베네치아와 자주 비교되는 도시라고 한다. 중세의 건축과 근세의 건축이 발걸음마다 시간 차를 만들고 그 사이로 수로가 촘촘하게 흘렀다. 1600 몇 년에 지어졌다고 사람으로 치면 이마쯤에 숫자를 새긴 건물들에 감탄하면서 걷다가, 비어 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앉았다. 귀여운 용 두 마리가 좌판을 받치고 있는 벤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늦은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길게 누빌 수 없어 아쉬웠다.
브뤼헤의 정취에 발목까지만 담근 다음,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근처를 산책하며 전날 본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다시금 이해했다. 밤도 낮도 아닌 그 그림 속 시간은 개념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벨기에 북부에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가로등이 켜지고도 해가 어찌나 천천히 지는지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았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는 서늘한 여름이었고 잡음 없이 조용했다. 빛의 제국이란 소리가 없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마추어 감상가로서 가슴 두근거리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일찍 귀가해 발걸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풀벌레도 날개를 떨지 않는 깨끗한 무음 속을 걸었다. 직접 감각하고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예민한 몸을 끌고 다니는 게 싫어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도 계속 여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서.
- 어린이들의 공작 작품이 잔뜩 달려 있거나, 유리용 펜으로 해둔 솜씨 있는 낙서, 우스꽝스러운 인형, 포스트잇으로 만든 게임 캐릭터들도 좋다. 얼마 전에는 자주 지나는 건물의 낮은 층에 사는 분이 그림을 바깥쪽으로 기대 둔 것을 발견했다. 아마 포스터일 것 같은데, 버스를 타고 지날 때마다 그 액자가 아직 있나 살펴보곤 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렇게 해두신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 창문과 관련하여 또 다른 궁금증 하나는, 빨래와 관련된 것이다. 독일과 그 주변국 어디에서도 널어둔 빨래를 본 적이 없다. 한 달 넘게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건조기 사용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는 것과 함께, 널어둔 빨래를 남에게 보이는 걸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 문제를 잊고 있었는데 미국에 사는 친구와 대화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이불 빨래를 앞마당도 아니고 뒷마당에 널었다가 주민협회에서 경고를 받았다니까. 날씨가 정말 좋아서, 속옷도 아니고 이불을 잠깐 넌 것이었는데도."
"안 되는구나! 건조기만 써야 하는 거야?"
"응, 널자마자 전화 왔어. 벌금이 나오는 경우도 있대. 집 앞에 장식돌 하나를 놓을 때도 허락받아야 하고."
친구가 사는 지역은 독일처럼 여름이 서늘한 곳이 아니었다. 어느 쪽이냐면 한국보다도 덥고 해가 쨍한 곳인데도 빨래를 바깥에 드러내는 문화는 없었던 것이다. 서구 문화의 특징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이탈리아의 경우 바깥에 매단 빨래가 도시의 자연스러운 풍경인 것 같았다.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우리나라도 고급 아파트에선 이불을 바깥에 보이도록 널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다. 빨래 널기에 대한 관습이 지역별로 얼마나 복잡하게 발달하는지 여행지에 가면 매번 관찰하게 된다.
- 버스를 타니 브뤼헤 시내가 어이없을 정도로 금방이었다. 무거운 짐은 중앙역의 로커에 맡기고 본격적으로 브뤼헤를 걸었다. 아헨이나 브뤼헤처럼 중세에 형성되어 도심의 크기가 그때와 비슷한 도시들은 여행자들을 도발한다. 메갈로폴리스라면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텐데, 작고 오래된 도시는 어쩐지 하루 만에 바둑판식으로 모든 거리를 다 걸을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브뤼헤의 한적한 동북부부터 시작하여 운하 곁 대로와 골목골목을 활보했다. 백조 두 마리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신나게 달려갔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백조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한 골목 더 가 백조 수십 마리가 요가를 하는 자세로 낮잠을 자고 있는 걸 발견하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목이 어쩜 그렇게 꼬이는지 백조는 바라보는 게 질리지 않게 멋졌고, 그럼에도 자리를 뜰 수밖에 없게 냄새가 났다. 그때는 새를 좋아한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땐데, 이제 와 사진첩을 열어보니 온통 새 사진뿐이다.
"그래도 운하 도시인데 배를 타봐야 하지 않을까?"
W가 제안했고 나는 사실 좀 겁을 먹었다. 베네치아처럼 곤돌라라면 오히려 나았을 것 같은데 모터보트였고 멀미를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브뤼헤의 아름다운 운하에 토하고 싶지 않았다. 보트를 타고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다행히 얼굴들이 즐거워 보였다. 용기를 내서 표를 끊었다. 보트는 걱정이 무색하도록 편안히 미끄러졌다.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물 위로 열리는 문이나 물속으로 바로 내려서는 계단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에는 그곳에 배가 묶여있었겠지만 이제는 비어 있는 듯했다. 문득 그 도시의 취객들과 수면 장애 환자들이 매우 염려되기 시작했다. 잠결에 문을 열었는데 바로 물이라면, 취한 상태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는데 무릎이 잠긴다면...... 브뤼헤의 그런 풍경이 마음속 깊이 남았는지, 2016년에는 영향을 받아 단편 <이마와 모래>에 비슷한 풍경을 집어넣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의 씨앗이 여행지에서 묻어왔는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가지 않았더라면 쓰지 못했을 글들이 너무 많다.
- 그런데 그보다 압도적인 기억은, 어떤 집 창가에 방석을 괴어놓고 오가는 보트를 구경하던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에 대한 것이다. 어찌나 편안한 표정으로 즐기며 구경하던지... 한참을 그 개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SNS를 하다가 다시 보았다! 내가 봤던 것과 똑같은 자세로 방석에 누워 있는 모습의 사진이 올라왔고 그 밑에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나 이 개 브뤼헤에서 봤어!" "나도 본 애야!" 하고 달아둔 댓글들이 있었다. 한 마리의 개가 지구에 흩어질 대로 흩어진 여행자들이 공유하는 기억이 된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모르겠다. 또 몇 년이 흘러 그 개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창가 자리에 방석을 괴어주었던 반려인이 슬픈 소식을 전했고 전 세계로 퍼졌다. 그 골든 레트리버는 자신이 한 도시를 대표하는 마스코트였다는 걸,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 브뤼헤에서만 한 달을 지내고 싶었다. 매일 수로의 백조들을 보고, 17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날아오는 갈매기들도 보고, 골동품을 구경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고 싶었다. 브뤼헤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에 들었던 구석구석을 반복해서 걷고 가지 못한 곳이 또 없나 몇 번이고 지도를 확인했다. 떠나기 싫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중앙역에 도착한 후 울적해지고 말았다. 그때 다짐했던 것이다. 누가 여행을 계획하며 "벨기에는 조그만하니까 그냥 안 가려고"라고 말하면 극구 반대하며 추천해줘야지, 그게 우정이지, 하고 말이다.
- 오사카 국제미술관에서는 엘 그레코 특별전이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왜 현대미술관에서 16세기 그림을 전시하는지 의아했지만 그림을 보자마자 모던함이 느껴져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은 스스로 뭘 하는지 인식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엄청 다른 걸 그리고 만 듯했다. 정신은 시대에 속해 있지만 몸이 먼저 앞서 나가는 예술가들이 재밌는 것 같다. 특히 <사도 성 요한>의 독배를 든 초록빛 옆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기다란 손가락들이 16세기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시대와 묘하게 불화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만큼 가까이>에 그 작품을 신나게 등장시켰다. 여행의 조각들이 소설에 석영처럼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좀처럼 여행하지 않는 나의 등을 떠밀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 그 전시가 좋았던 것은 C가 일본어 설명을 꼼꼼히 읽고 들려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C는 목소리가 좋고, 좋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친구와 미술관을 걷는 것은 풍요로운 경험이었다. 원래도 일본어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공부하며 더 늘어서 숨 쉬듯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한글을 읽는 속도로 다른 문자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매번 외국어 공부를 해야지 마음먹고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거나 책을 사곤 하는데 끝까지 해낸 적이 없어서 민망하다. 영어도 관광객 영어, 일본어도 "돈키호테가 어디입니까?" 정도밖에 못 하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도 배웠지만 급속도로 잊고 말았다. 얼마 전에는 한국문학번역원에 갔다가 프랑스어 교수님께 실수로 스페인어 단어를 말해서 정말 죄송했다. 아는 척하려다가 괜히 무례를 범했던 것이다. 흑흑. 언젠가 제대로 언어 하나를 깊게 공부하고 싶다. 언어를 알아갈 때 넓어지는 시야를 가지고 싶고, 아무 목적 없이 낯선 단어 하나하나를 배워보고 입 안에 굴려볼 때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 전시를 천천히 보고, 어쩐지 더 농밀한 것 같은 가을 햇볕을 즐겁게 쬐며 우메다로 향했다. 원래는 입장권을 사야 하는 전망대에 갈 생각이었는데, C가 더 좋은 곳이 있다며 한큐 32번가 그랜드 빌딩의 전망 찻집에 데려가 줬다. 찻값만 치르면 따뜻하게 앉아 야경을 볼 수 있다니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 어디를 걷든 머릿속에서 소설과 찡하게 연결되고 말았다. 런던 타워에서는 조세핀 테이의 시간의 딸과 존 딕슨 카의 모자 수집광 사건을 떠올렸고, 피커딜리 광장에 가서는 '<시체는 누구>의 피터 윔지 경이 이 근처에 살지!' 하고 아는 사람 반가워하듯 생각해버렸다. 블룸스버리의 브런즈윅을 걸을 때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아릿했고 패딩턴역에서는 패딩턴 곰돌이와 애거사 크리스티의 주인공들을, 펜처치역에서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떠올리며 낄낄 웃었다. 런던의 지명들이 익숙해지고 나니, 소설 속에서 마차가 달리거나 택시가 달릴 때 동선을 그려볼 수 있어서 몰입에 도움이 되었다.
- 당연히 베이커 스트리트도 방문했는데, 두근거리며 시간에 맞춰 투어 장소에 갔지만 어째선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책에도 나와 있고 인터넷에도 나와 있는 요일과 시간이었지만 뭔가 사정이 있었던 듯하다. 상심한 마음을 안고 근처를 헤맸는데 셜록 홈스 동상이 말하는 동상이라 조금 위안이 되었다. 런던 곳곳의 동상이나 기념물은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간단한 기술로 진짜 동상이 말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서 좋았다. 우리나라 위인들의 동상에 비슷한 시도를 한다면 방문자들이 재밌어할 것 같다.
- 다음에 런던에 가도 재방문하고 싶은 갤러리들의 이름을 잘 적어두었다. 서펜타인 갤러리와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는 하이드파크 한가운데에 있는데 가는 길이 승마 코스라 말똥 냄새가 굉장했지만 꼭 가볼 만한 곳이었다. 랜드마크인 사드 빌딩을 보며 근사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사우스워크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도 좋았다. 그렇지만 단 한 군데를 뽑으라면 역시 사치 갤러리가 최고였다. 전시에도 흐름을 따라 강약중강약이 있기 마련인데 사치 갤러리는 강강강강이었다. 어떻게 이런 전시를 꾸릴 수 있는 건지 충격에 빠져 있다가 얼른 답을 찾았다. 돈이다. 돈이 정말 많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찰스 사치도 광고로 큰돈을 번 자산가이지만 후원자 명단에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가득했다. (현재는 스웨덴 기업인 요한 엘리아시가 갤러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예술과 자본의 관계는 복잡한 것 같다. 어떨 때는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고, 또 어떨 때는 자본을 업어야만 가능해지는 일들이 있기도 하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는 경계심과 흥미로움 양쪽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사치 갤러리를 걸을 때만큼은 기업 후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기획자이자 작가인 친구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만큼 가까이> 읽으니까 <스트로베리필즈 포에버>가 생각나더라."
친구의 말에 소름이 돋았던 것이, 정말로 그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쓴 소설이었다. 친구가 유난히 BGM 안테나가 발달했는지, 오래된 친구 사이의 텔레파시 같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애비 로드를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웬만한 새벽에 가지 않는다면 좀 위험해 보였다. 교통량이 많은 주요 도로라 나란히 건너가기는 무리일뿐더러, 보행자도 운전자도 모두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여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고라도 당할까 조마조마했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 담벼락에 가득한 애정 넘치는 낙서들만 구경해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굳이 아침 일찍 찾아갈 이유는 없었던 듯하다.
-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다른 작품인 히포포템스(Hippopothames)였다. 히포포타무스로도 읽히고 히포 포 템스(Hippo for Thames)로도 읽히는 작품명까지 귀여웠다. 빙하기 이전 템스강에는 하마가 살았었고 그 화석도 발견된 적 있다 하니 그야말로 적절한 위트였다. 러버 덕처럼 기간이 정해져 있는 전시여서 조금만 늦게 갔어도 보지 못했을 뻔했다.
- 이어 찾아간 런던 타워는 1차 세계대전 백 주년을 기리며 희생자 수만큼 설치된 888,246송이의 세라믹 양귀비 설치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폴 커민스의 이 작품은 4백만 명 이상이 런던 타워를 방문해 애도를 표하게 했다. 내가 갔을 때도 몇만 명의 군중이 런던 타워를 에워싸고 있어서 타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렇게 강렬한 호소력을 가진 작품을 보게 된 것은 뜻깊었다. 런던아이를 해 지는 시간을 계산하여 예약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 노을과 야경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탔을 때 마지막으로 하얗게 빛나던 하늘이 내릴 때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클래식 영화 속 런던의 건물들이 그대로여서, 우리의 시대가 지나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도 그대로겠구나, 우리가 건물들을 방문하는 게 아니고 건물들이 잠깐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언제나 거기 있을 것과 잠깐 거기 있는 것들 사이를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여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행운들이 고르고 넓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 뮤지컬을 예약하는 일은 어마어마한 고심의 연속이었다. 열흘 머무는 동안 두 편을 보기로 했는데 보고 싶은 뮤지컬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느냐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운 듯 괴로웠고, 결국 로알드 달에게 올인하기로 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를 모두 보기로 한 것이다. 좋은 등급의 좌석은 아니었지만 일찍 예약해서 맨 앞줄이었다. 배우들의 땀방울이 보일 정도였고, 중간에는 윌리 웡카가 불쑥 나타나서 내 다리 위로 넘어갔다. 아니, 윙카 씨, 이렇게 가까이요? 하고 얼른 비켜주었다. 막간에는 놀랐던 것이, 극장의 직원들이 간이 판매대를 들고 다니며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그리하여 극장에 가득 찬 5백여 명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와구와구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다. 극장 안에 색깔 있는 음료수도 들고 들어가지 않는 국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초콜릿 부스러기가 마구 떨어지겠지만 뮤지컬과는 아주 잘 맞았다. 문제는 초콜릿의 가격이었는데, 평범한 초콜릿 바가 7천 원 정도 하다 보니 W에게 아무리 먹자고 꼬셔도 "한국 돌아가서 가족들과 나눠 먹겠다"고 가난하고 애틋한 찰리처럼 거절했다. 그래서 모두가 초콜릿을 먹을 때 우리만 다소곳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런 방식으로 작품과 연결되고 싶지는 않았다... 포장지까지 제대로 윌리 웡카 초콜릿이었는데 나중에 돌아와 기대를 하며 뜯었을 때 골든 티켓은 들어 있지 않았지만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서 산 개구리 초콜릿과 함께 여행의 여운을 한참 살려주었다.
- 무형의 콘텐츠가 가지는 부가가치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이전 시대의 창작자들과 그들을 계승한 동시대의 창작자들이 이뤄내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축적과 그것을 즐기고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가 가지는 저력이 탐나는 목표가 되었다.
- 뮤지컬을 보고 나서 더더욱 자주 로알드 달의 말을 떠올린다.
"친절함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한다. 용기나 대담함이나 너그러움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친절함이 말이다.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의 말을 어설프게 번역해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세상의 보고 싶지 않았던 면들을 보고 나서야 이 말이 의미 있게 와닿았다. 아동문학을 쓰고 싶었는데 다른 방향으로 와버렸지만, 세계에 대한 태도를 다시 다잡고 싶을 때는 역시 아동문학을 찾게 된다.
- 코번트가든에서 거리 공연을 보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친구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같은 팀이 같은 루틴으로 공연하는 걸 찍은 동영상을 발견했던 것. 추임새도 애드리브 같았던 부분도 내가 보았을 때와 똑같아서 웃음이 났다. 즉흥적인 것처럼 성실하게 연출된 거리공연들은 스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일 테고,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일 터여서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을 즐겁게 만든다.
- 홍차 전문 가게의 거대한 양철통들, 샘플로 앞에 둔 잎들을 살피며 한참 고르고 또 골랐던 것. 독일 할머니들이 대형 카트를 끌고 초콜릿을 사던 것처럼 영국 할머니들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단위의 차들을 카트에 담던 모습도 좋았다. 애초에 차 가게에 카트가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했고 보관이 힘든 기호품인데 얼마나 많이 마시면 그렇게 큰 통을 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 좋아하는 시인이 추천해준 해처드 서점. 1797년부터 2백 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서점이라니 근사했다. 잘 정리된 서가를 누비며, 좋아했지만 사라진 서점들을 떠올리게 되어 부럽기도 했다.
- 한적한 펍에서 마셨던 갈색 에일 맥주.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펍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숙소 근처의 여러 펍들은 관광객이 들어서기에는 다소 배타적인 분위기여서 망설이다가 조용한 곳을 하나 발견했는데, 직원분들이 '앗, 영국 문화 체험인가? 그렇다면 친절의 끝을 보여주지!' 하고 신경을 써주셔서 쑥스럽고 감사했다. 여러 배려 끝에 고른 달콤 씁쓸한 갈색 에일을 식초 맛 감자칩과 먹는데 기분 좋게 느긋해져서, 책에서 읽은 오다가다 들르는 단골 펍의 개념을 약간 알 것도 같았다.
- 브런즈의 보도에 보물처럼 숨겨진 금속 조각들을 밤에 휴대폰 조명으로 비추며 찾아보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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