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인나미 아쓰시 / 장은주
출판 : 위즈덤하우스
출간 : 2017.01.19
아.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방법과 경험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졌던 사람이 또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위안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인용 및 발췌에 대한 부분과 문학은 속도에 대해 내려놓아도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 그리고 목적이 있는 독서를 하다 보면 스토리에 빠져들고 싶은 때가 온다는 문장에서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책탑도 남 이야기가 아니고, 밑줄을 싫어하는 것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라 공감하며 읽었다.
서평이라고까지 말하긴 뭐하지만 일단 이렇게 시간을 들여 리뷰를 끄적여두는 취지도 일정 부분 저자의 주장과 합치하는 점이 있어 '나쁘지 않게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번씩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시도해보고 싶은 점은 '일주일 독서 계획'인데 현재는 도서관 반납기한을 위주로 돌아가는 면이 있다. 당분간은 소장 도서와 대출 도서를 일정 비율로 함께 읽어나갈 계획인데, 후에 수정하더라도 일단은 개략적인 주간 목록은 만들어볼까 싶다.
끝.
누구라도 하루 한 권 읽을 수 있다
-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고민하기 때문이겠지요. 저 역시 줄곧 그런 고민을 해왔던 터라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라이프해커 Lifehacker 일본판>(생활의 지혜나 업무 기술 등에 관한 정보를 주로 소개하는 웹 미디어)와 <뉴스위크 Newsweek 일본판> 등의 여러 정보 사이트에 월 60권 정도의 서평을 기고하는 서평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 달에 읽는 책은 60권 이상입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독서를 한다고 볼 수 있지요.
- 이 책의 가치는 그런 우수한 독서가가 아닌 '책을 느리게 읽는게 고민이던 사람이 그것을 극복한 방법을 썼다'는 데 있습니다. 저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 단언컨대 속독법 책을 찾아 읽거나 수상쩍은 세미나 교육을 받거나 다른 사람이 쓴 교재에 손댄 적은 결코 없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본문에서 다루겠지만, 여기서 간략하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독서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사실 우리는 독서에 대해 상당히 완고한 선입관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서라는 행위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파악하여 어떻게 책과 마주할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읽는 속도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테크닉이나 요령은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사고방식을 바꾸면 누구라도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독서가 상당히 즐거워집니다. 무리해서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독서법은 '안구 트레이닝'이나 '빠르게 훑기' 같은 이른바 속독의 기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술입니다. 그런 기법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아무쪼록 유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 여기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책을 읽을 때 얼마만큼 깊이 읽는가?'
저는 정독하려고 하면 극단적으로 느리게 읽게 됩니다. 그래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정독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예전에는 정독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차례 노력도 해봤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생각은 당연히 '나에겐 분명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지요. 책을 좋아하는 제가 책과 마주하는 것은 저의 결점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는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저의 독서습관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꼼꼼히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는 원고 마감일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평 사이트 편집자가 다음날 내보낼 기사를 위해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일정에 맞추고자 책을 펼쳐야만 했습니다.
- 서평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정독해도 실제로는 잊어버리는 게 많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읽는 속도와 이해도, 기억은 전혀 비례하지 않습니다. 즉, 서평을 쓰기 때문에 천천히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며, 그렇게 읽는다고 해서 내용이 더 또렷하게 머리에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이지요.
-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머리에 남아 있는 부분이야말로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응축된 지점임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머리 한구석에 남았다면 적어도 그 부분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그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으며, 그 한 구절을 만나기 위해 한 권을 끝까지 읽은 의의가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 '읽으면서 인용하나요? 아니면 다 읽고 나서 정리한 다음에 인용하나요?'
때로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단,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 한 차례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인용할 사람은 인용하고 싶은 부분을 확실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 시간을 헛되이 사용해서는 애써 독서 속도를 올려놓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계속 옮겨 쓰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 책을 읽으면서 발췌해 둔 인용 목록이야말로 그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들이쉬고 내쉰 모든 것' 입니다. 저도 책을 읽어오면서 상당한 인용 목록을 쌓았지만 서평을 쓸 때는 그것들을 전부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활용은 고사하고 실제로 집필할 때는 인용해둔 구절의 대부분은 날려 버립니다. 엄선된 인용 구절만이 서평에 반영됩니다. 하지만 설령 서평에 채택되지 않더라도 인용해둔 구절은 간접적으로 독서 체험에 반영됩니다. 옮겨 쓰는 행위를 통해 저자의 사고나 주장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도중이나 책을 다 읽은 후에 A4 용지에 한 줄 샘플링을 했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그 인용 목록을 꼼꼼히 읽어보기 바랍니다. 이 목록은 말하자면 한 장의 음반에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파트만을 이어서 모은 '리믹스 음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 저는 와니북스의 <와니북아웃>이라는 사이트에 '신은 한 문장에 깃든다'라는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매회 책 한 권을 선택하여 인상적이었던 한 문장을 추출해내는 기획입니다. 어떤 책이든 인상적인 부분은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저의 감각을 자극한 한 문장을 추출해내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 시도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한 줄로 만나는 멋스러움'을 새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실상 책 읽기의 묘미란 그 '한 줄'과 만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는 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취향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는가 하면, 저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 독자에게 감흥을 주기도 합니다. '작품이 홀로 걷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그 '한 줄과의 만남'이 즐거워집니다.
- 처음부터 이것을 모두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선 어느 것이든 좋으니 하나라도 꼭 참고해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단계: 머리말과 차례를 잘 읽는다.
2단계: 처음과 마지막 다섯 줄만 읽는다.
3단계: 키워드를 정해 읽는다.
4단계: 두 가지 이상의 독서 리듬으로 읽는다.
- 저는 아날로그 레코드를 수집하고 있어서 자주 레코드 가게에 갑니다. 가게에는 엄청난 수의 레코드가 있지만 10분 정도 가게를 어슬렁거리며 선반을 훑어보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제가 원하는 레코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절대 레코드 타이틀을 일일이 읽지 않습니다. 오히려 찾고 있던 레코드가 저쪽에서 저에게로 날아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 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게 명확하면 아무리 복잡한 정보 속에서도 특정한 정보를 건져 올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연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어느 정도 책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그런 리듬이 정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기본 리듬입니다. 이 리듬이 빠른지 느린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느리게 읽는 사람의 문제점은 기본 리듬이 늦은 게 아니라, 줄곧 같은 리듬으로 책을 읽는다는 데 있습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책을 읽으려고 하면 아무래도 진도가 느리게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도가 단순할수록 그에 따른 초조함은 늘어나는 법입니다.
- 기본 리듬은 절대 느리지 않은데 왠지 자신이 느리게 읽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원흉은 바로 '단조로운 독서 리듬'에 있습니다. 교과서를 읽을 때처럼 같은 속도로 담담하게 눈으로 문자를 쫓고 있는 탓에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완급 조절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가지 패턴 이상의 독서 리듬을 갖는 것이지요. 꼼꼼히 읽을 때의 기본 리듬만이 아니라 1.5배속의 중속 모드, 2배속의 고속 모드, 5배속의 넘겨 읽기 모드와 같이 여러 단계의 읽기 리듬을 마련해둡니다.
- 독서를 시작했다면 리듬의 '기어 체인지'를 의식하도록 합니다. '이 부분은 필요 없을 것 같으니 기어를 바꿔보자!' 혹은 '잠깐, 여기는 관련 키워드가 있을 것 같으니 중속 모드로 가자'는 식으로 자신의 리듬을 자각하면서 완급을 조절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독서 체험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막고, 하염없이 느려지는 읽기 패턴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형광펜이나 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여백에 끄적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독서를 할 때 이런 방법은 전혀 쓰지 않고 여러분에게도 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지만 책을 더럽히는 데 거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줄곧 찾아왔던 책을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는데 연필이나 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글이 쓰여 있으면 실망하게 되지 않나요. '우와! 전 주인은 이런 부분에 감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그쪽 부분으로만 신경이 쏠려 다른 부분을 제대로 훑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 나에게 가치 있는 문장을 찾아내는 데 방해가 됩니다. 밑줄을 긋는 행동 외에도 필요한 부분만 찢어서 보관하는 행동 역시 저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과 관련된 부분이므로 밑줄을 긋거나 글을 써넣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는 조금 약할지도 모릅니다.
(리뷰자 주 : 예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에 밑줄을 긋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이유를 묻자 '내가 좋은 문장을 추려주었으니 다음에 읽는 사람은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한다'는 논조로 이야기를 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한동안 책은 무조건 사서 읽었었다.)
- 언제든지 읽을 만한 책은 언제까지고 읽지 않게 된다.
- 바로 '일주일 독서 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3장에서 소개한 한 줄 리뷰용 노트나 수첩에 먼저 여섯 권의 책 제목을 적어두고 인용과 리뷰 쓸 준비를 해놓는 것입니다. 방 한구석에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이 많이 쌓여 있는 사람은 그 책들을 어떤 순서로 언제 읽을지를 당장 정합니다. 당연하지만 저 역시 이런 독서 계획을 세우고 책을 읽습니다. 더구나 일주일에 열 권 이상의 서평을 써야 하므로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면 금세 일이 꼬이게 됩니다. 어쩌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흐름이 깨어지면 정말 큰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권의 서평을 다 쓴 후에는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읽은 후 다시 서평을 쓰고 책을 고르는, 이런 자전거 조업 같은 상태가 되면 엄청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 반면에 독서 계획을 철저히 세워두면 작업량은 같아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압도적으로 덜어집니다. 한 주간 읽을 책은 가능한 한 하루에 다 정하도록 합니다.
(리뷰자 주 : 시도해보겠지만... 다 읽은 다음 단짠을 고려해서 다음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데... 5일 계획을 세우고 2일 정도는 마음대로 읽으면 절충이 되지 않을까 싶다.)
- '흥미의 벽을 부수고 취향의 폭을 넓힌다.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 매주 여섯 권의 책을 고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한두 권 정도는 썩 내키지 않는 책을 넣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관심 밖이었던 책에 감동하게 되는 체험이야말로 독서의 묘미가 아닐까요? 그런 책들을 도서 목록에 넣어 흥미의 폭을 점점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1장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책은 주로 경제경영서나 자기 계발서처럼 사실이나 주장을 전하는 콘텐츠이며 소설 같은 스토리물 콘텐츠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빨리 읽을 수 있는 책(경제경영서나 자기 계발서)과 빨리 읽을 필요가 없는 책(소설, 에세이 등), 이 둘은 책을 읽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목적은 대략 이런 식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사실 주장 콘텐츠(비지니스서나 자기 계발서) :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2. 스토리 콘텐츠(소설 · 에세이) : 자신이 즐기기 위해
물론 개인차는 있습니다. 순수하게 즐기기만 하기 위해 경게경영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도 있을 테니, 이는 지극히 단순화한 논리라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플로우 리딩에 의한 300권 독서 계획은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하루 한 권씩 읽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이 같은 독서 생활을 하다가 보면 조금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을 잊고 가슴 설레며 스토리에 몰두하는 독서가 그리워지기 때문이지요.
- 단, 동시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 독서의 목적이 빗나가서는 안 됩니다. 독서량이 증가하면 할수록 당연히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써 지식이나 교양을얻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음악을 듣는 중에 장르나 아티스트의 이름, 그 외의 음악적 지식을 축적한 음악 마니아가 되기도 합니다. 음악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음악에 관해 아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 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의 습득을 목적으로 한 독서가 위험한 이유는 그 당사자까지도 거만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위대해질 리는 없습니다. 브랜드 물건을 휘감은 사람이 자신을 멋쟁이로 착각하는 것처럼 지식을 얻는 데 취한 사람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교양을 익히기 위한 독서라느니, 품격을 높이기 위한 독서라느니, 현대를 살아남기 위한 독서라느니 하는 문구를 들으면 큰 위화감을 느낍니다. 물론 책을 읽은 결과로서 그런 효용을 기대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책을 읽은 '다음'의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 읽는 행위 자체에는 가치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교양을 익히거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독서를 고된 수행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독서법은 즐거움을 주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위한 독서는 따분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현대를 살아남기 위한 교양을 얻는 수단으로써 책을 이용해도 결과적으로 얻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보다는 많은 책을 읽는 과정 그 자체를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 '내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 빨리 읽는 요령을 익히게 되었지요. 지금은 서평용 책을 한 권당 평균 20~30분 정도에 읽고 약 60분에 걸쳐 서평 기사를 정리합니다.
- 느리게 읽는 사람은 독서에 대한 이런 '진지함'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느리게 읽는 사람들이 묶여 있는 '정독의 저주'의 발단은 분명 학교 교육에 있습니다.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바르게 알아챈다', '주인공의 기분을 답안 중에서 고른다'. 이런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저자의 의도를 한 글자 한 글자 철저히 이해하여 그것을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것이라는 불문율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떤 계기로 그 저주에서 벗어난 사람 혹은 처음부터 벗어난 사람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에게 맞는 책을 읽습니다. 반면에 정독의 저주에 사로잡힌 사람은 교사의 해설이나 판서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필기하는 학생처럼 책의 내용을 부지런히 머리에 주입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독서를 너무 무거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단 한 번의 독서만으로 책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매우 욕심 많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독서를 통해 얻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모든 것을 자기 안에 담아두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내 안에 정보를 그대로 담아둔다'는 의식을 애초에 버리고 '밖으로 써낸다'는 자세로 책을 대하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쓰기 위해 읽는다'는 의식으로 책을 읽으면 '담아두기 위해 읽는다'는 성가신 고정관념이 뒤로 밀려나 독서가 대단히 즐거워집니다. 저는 서평 쓰는 일을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어떤 일이 있어도 서평 기사를 써야만 한다'는 변할 수 없는 현실에 부득이하게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독서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게 줄어 독서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인용이란 가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용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한 가지는 정보로서의 가치입니다. 제 서평을 읽는 사람은 그것이 저자의 주장인지 서평가의 의견인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책의 핵심을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대화의 화제로 삼거나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참고로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인용을 중심으로 한 서평이 최적의 접근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 즉 '책을 읽는 사람이 느끼는 가치'입니다. 인용을 통해 그 책의 어떤 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어떤 문장에 마음에 갔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독서보다 문장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그런 점을 확실히 맛볼 수 있어 기억에도 오래 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단 머릿속에 그려봤기 때문에 잊어버려도 괜찮은 것이지요.
-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떻게 알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무엇이 쓰여 있는지도 모르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걸까요? 우리가 어떤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반드시 가설이 존재합니다. 가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니, '이 책의 내용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그러니 읽을 가치가 있다'고 하는 일종의 기대라고 해둡시다. 이런 식으로 무엇인가 가늠해보는 행위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예전에는 책은 재산이라는 가치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품고 중후한 책이 정연하게 진열된 세련된 책장과 그 책장이 어울리는 멋진 서재를 동경했습니다. 책을 단순히 인테리어 목적으로 다루는 것의 시시비비는 제쳐두더라도 예전에는 많은 양의 책을 소유하는 게 일종의 지위였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굳이 예전이라고 한 것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물리적인 존재로서 책을 재산으로 파악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예전에는 저 역시 다 읽은 책이나 앞으로 읽을, 말하자면 사두고 읽지 않는 책이 느는 것에 기뻐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높아져가는 책 탑을 보며 뿌듯해하고 가슴 설레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다가 책이 너무 많이 늘어 발 디딜 틈이 없어진 방을 보며 두렵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있는 책은 언제쯤 다시 펼치게 될까?' 마음에 든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의 경우, 사놓고 읽지 않는 책 중에 1년 이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책도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매우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보물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 대부분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 듯한 그런 허탈하고도 허무한 기분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갖고 있던 책의 대략 절반 정도를 처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뭐든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 무라타 사야카 씨의 <편의점 인간>(살림출판사, 2016)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편의점에서만 일하는 삼십 대 독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우선 '편의점의 부품이 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방식'이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보통'이 아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주인공은 '보통'의 친구들과 차이를 느끼며 살아간다. 게다가 아주 엉뚱한 계기로 주인공의 삶 가까이로 들어오게 된 남자는 속수무책인 성격에 역시 보통과는 거리가 멀다. '보통'이 아닌 주인공이 그런 남자와 접점을 갖게 되는 점에는 유유상종적인 뉘앙스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연애감정이나 육체적 접촉은 일절 없다. '결국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이상한가?'라는 문제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편의점에서만 일하는 주인공도 정상이고 일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주제에 주위에 욕설을 퍼붓는 남자도 역시 정상, 하물며 편의점 점장도, 단골손님도 모두 정상. 그런 식으로 사람들 속에는 제각기 '정상적인 면'이 있는데, 남이 보면 그것은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크고 작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사회는 사회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애초에 '열정'이라는 말은 '한 가지 일에 꾸준히 전념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뭔가에 열중하는 것은 간단해도 그것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 상위 10명에 드느냐 하위 10명에 드느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콕스와 조교들이 각양각색의 성격의 특징을 조사한 결과 위인과 일반인의 차이점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네 가지 지표는 상위 10명과 하위 10명, 즉 '위인'과 '일반인'을 가르는 특징으로서 유효하며 콕스는 이를 '동기의 지속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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