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윌리엄 서머셋 모옴 / 서머싯 몸 / 서머셋 몸 / 황소연
원제 : Cakes and Ale
출판 : 민음사
출간 : 2021.09.10
<면도날>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저자다.
최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비중이 늘어난 듯 보이는 건 '문화의 날'의 영향이다. 처음 시행된 이후로 상당히 많은 혜택을 받고 있어 고맙게 생각하는 제도인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도서관에서 대출 권수를 2배로 늘려준다. (그 외에도 문화예술 공연 및 각종 전시, 영화 등 다양한 할인 혜택이 있다.) 해서 평소보다 여유롭게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을 더 집어올 수 있었는데 그 영향이다.
보편과 통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이 '사회적 상식'인가?
한 세대도 유지되지 못할 명성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천재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당한 재능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남아 버티는 것이라는 냉소 어린 비판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작중 화자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만큼은 절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아름다움'은 그 기준이 변하기 때문에 지루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할 수 없어서 지루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은 '살아있음' 자체로 충만했던 로지 드리필드다.
'케이크와 맥주' - cakes and ale이라는 관용구에 내포된 생의 말초적인 쾌감과 즐거움은 과연 저속하고 불쾌한 것인가? 그것에 선을 긋는 바턴 트래퍼드 부인과 엘로이 키어의 우아함을 한 겹 벗겨낸 모습이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저속에 가깝다는 점에서, 작가는 화자의 생각을 빌어 자신의 생각은 은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 모습들은 실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사회적인 가면이기도 하다.
일관된 모습과 생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들 누군가에게는 신사 숙녀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XX였다. 그런 다채로운 면들이 모였을 때 그것들을 이어주는 어떤 색감에 가까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감히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다채로운 색깔 -수많은 일화- 들 속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는 특정 부분만 편집하여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중 대비되는 몇 가지가 섞인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사가 "입체적 인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매력적인 빌런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삶의 복잡 다양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듯이, 사실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란 허구라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읽는 동안 흥미로웠던 점은 인물들의 이름이 애칭과 약칭, 존칭을 뒤섞어 변화하는 것이었는데, 내 경우에는 혼란스럽기보다 화자의 생각을 훔쳐보는 느낌을 강조해주었다. 누군가를 회상할 때 지칭어가 변화하듯이, 상황과 인물에 따라 변화하는 호칭들이 눈에 띈다. 다른 인물들이 주로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화자는 윌리 도련님이라는 호칭 외에는 대부분 어센든으로 등장한다. '윌리'가 윌리엄의 애칭인지 실제 이름인지 또한 명확하지 않은데, 여기서 독자들은 윌리엄 서머싯 몸이 화자와 동일시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설은 교차 구성이 되어있다. 현재 시점에서 앨로이 키어의 청을 받아 블랙스터블로 향하게 되는 윌리 (혹은 윌리엄) 어센든. 그의 머릿속에서는 처음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만나게 되었던 때부터 노년의 그를 다시 마주했던 만찬, 그들이 친밀하게 지냈던 화자의 젊은 시절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이 흐름은 시간 순도 아니고 화자가 알게 된 정보 순도 아니다. 나는 이 사건들의 배치가 철저하게 이 흐름을 따라 읽는 자들이 가장 충격을 받을 법한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는 시점에서는, 누군가에 대한 평가란 무엇인가 싶어 진다. 한 개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서사 없이는, 그 인물의 언행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앨로이 키어나 드리필드 부인 같은 인물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인물들을 활자를 통해 잠시 만났을 뿐이다.
- 그는 좋은 아들이었다. 자기가 받은 값비싼 교육이 부모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은퇴한 아버지는 글로스터셔 주 스트라우드 인근의 수수하나 초라하지 않은 집에 살았지만 본인이 다스리던 식민지와 관련한 공식 만찬에 참석하러 이따금 런던에 갔고, 그럴 때마다 회원으로서 앤서니언을 꼬박꼬박 방문했다. 그리고 옥스퍼드를 졸업한 아들을 이 클럽의 오랜 지인을 통해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여보낼 수 있었다. 그 집안의 섬세하고 허약한 외아들을 가르친 것이 로이에게는 젊은 나이에 큰 세상으로 진입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이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주간지로 상류 사회를 엿본 작가의 작품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그런 결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공작들이 서로 어떻게 대화하는지, 국회의원과 대리인, 마권업자, 대리 주차원에게 각각 어떤 호칭으로 대우를 받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초기 소설에 등장하는 총독, 대사, 수상, 왕족, 귀부인의 경쾌한 면모에는 어떤 매력이 살아 있다. 그는 우월감 없이 다정하고, 무례함 없이 친근하게 그들을 다룬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또렷이 인식시키면서도 그들이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는 작자 본인의 편안한 감정을 전달한다. 귀족들의 행위가 더 이상 진지한 소설의 적당한 소재가 될 수 없는 시류 탓에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한 로이가 후반기 소설들을 사무 변호사, 공인 회계사, 농산물 브로커의 내적 갈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나는 늘 애석하게 생각한다. 이제 그는 예전처럼 확신을 가지고 이쪽 사회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 그들은 그의 솔직함에 매료되었고 그의 열정에 뭉클해졌다. 겸손하게 조언을 청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성심껏 그 조언을 실천하겠노라 약속하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조금 성가시기는 해도 힘을 보태어 줄 인재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의 소설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덕에 그는 문단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아주 잠시지만 한동안 블룸즈버리나 캠던 힐, 웨스트민스터의 차 모임에 가면 버터 바른 빵을 나눠 주거나 노부인의 빈 잔을 채워 주는 그를 어김없이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젊고 너무나 소탈하고 너무나 쾌활한 데다 사람들의 농담에 아주 즐겁게 웃어 젖히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만찬 클럽에 가입했다. 빅토리아 스트리트나 홀번의 호텔 지하에서 열리는 클럽 모임에서는 문필가들, 젊은 법정 변호사들, 자잘한 꽃무늬 실크와 구슬 목걸이 차림의 숙녀들이 3실링 6펜스짜리 저녁을 먹으며 예술과 문학에 대해 토론했다. 그가 대가를 받고 만찬 후 연설을 하고 있음이 얼마 후 밝혀졌다. 그가 워낙 상냥했기 때문에 동료 작가들과 경쟁자들, 동년배들은 그가 신사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눈감아 주었다. 그는 그들의 작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이 원고를 보내 주었을 때 어떤 흠도 잡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좋은 사람일 뿐 아니라 명석한 심판관이라고 생각했다.
- 그가 두 번째 소설을 썼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그는 같은 업계 선배들의 조언을 적극 활용했다. 그의 부탁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서평을 써 주었고 서평이 실린 신문사의 편집자들은 그와 연락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호평 일색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소설은 성공적이었으나 경쟁자들의 질투를 살 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긴가민가하던 경쟁자들은 이로써 그가 돌풍을 일으키는 일은 없겠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유쾌하고 선량한 남자였고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들은 장애물이 될 만큼 높이 올라가지 못할 남자에게 기꺼이 발판이 되어 주었다. 내가 알기로 몇 사람은 이때 저지른 실수를 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다. 로이를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다. 로이는 젊은 시절에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한 겸손함을 한시도 잃은 적이 없다.
- 로이는 특히 대단한 명성을 얻은 이후 혹독한 악담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는데, 혹평을 받으면 대부분의 우리와는 다르게 어깻짓을 하지도 않았고 자기 작품을 깎아내리는 악당을 향해 실컷 욕을 퍼붓고 나서 그냥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평론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그의 책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은 심히 유감이지만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서평인 데다 대단한 비판적 지성과 대단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의견을 용감히 피력한 분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고 말한다. 로이보다 더 개선의 의지를 활활 태우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계속 배우기를 희망한다. 성가시게 굴고 싶지 않지만 평론가께서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용무가 없으시다면 사보이 호텔에서 같이 점심을 들며 제 책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지 않은지 말씀해주실 수 없겠는지요? 로이보다 점심을 더 맛있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론가는 생굴을 대여섯 개 삼키고 어린 양고기의 등심을 한 조각 먹고 나면 대개 본인이 뱉은 말까지 같이 삼키게 된다. 이후 로이의 다음 소설이 나왔을 때 그 평론가가 로이의 차기작에서 커다란 진전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적 정의라 하겠다.
- 양측이 모두 평범한 처지에 머물러 있다면 인연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면서 아무런 악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만약 한쪽이 대단한 지위를 성취한 경우라면 어색한 상황이 펼쳐진다. 옛 친구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성공한 쪽은 새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된다. 오만 가지 일로 시간은 부족한데 옛 친구들은 자기들이 당연히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친구가 바로바로 응대하지 않으면 한숨을 내쉬고 어깻짓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 그것 참, 난 당신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줄 알았어요. 당신이 성공했으니 이제 나는 버려지겠군요."
물론 당사자는 그러고 싶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대부분은 그럴 용기가 없어서 일요일 저녁 식사 초대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차가운 로스트비프는 호주산 냉동식품인 데다 점심때 요리한 것을 데운 것이고, 버건디는... 아, 버건디라는 이름은 왜 붙였을까? 이들은 본(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가 본 적도 없고 그곳의 '데라 포스테 호텔에' 묵은 적도 없단 말인가? 물론 다락방에서 빵 부스러기를 나눠 먹은 옛날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것은 정겨운 일이지만, 지금 앉아 있는 방이 그 다락방과 얼마나 흡사한가를 생각하면 조금 김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 "거리 끝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내가 거기까지 배웅을 하리다."
당신은 당황해서 자동차를 가져왔다고 고백한다. 친구는 운전기사가 왜 모퉁이 너머에서 기다리는지 몹시 의아하게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의 기벽 중 하나라고 둘러댄다. 자동차에 도달했을 때 친구는 관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자동차를 쳐다본다. 당신은 초조하게 언제 한번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한다. 그리고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자동차를 몰고 떠날 때 그 친구에게 크래리지스에 가자고 하면 거들먹거린다는 말을 듣겠고, 그렇다고 소호를 가자고 하자니 너무 싸구려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아 고민한다.
앨로이 키어는 이런 종류의 고충을 전혀 겪지 않았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는 얻을 만큼 얻어 낸 사람들은 그냥 놓아 버렸다. 이 문제를 돌려 말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니와 힌트와 걸러진 말투, 암시로 교묘히 조율하여 장난스럽거나 부드럽게 말해야 하니 그냥 이렇게 표현하는 쪽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야비한 짓을 하게 되면 그런 짓을 한 사람에게 앙금을 갖기 마련이지만 심성이 언제나 반듯한 로이에게 그런 쩨쩨함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어떤 사람을 아주 비열하게 이용하고 나서도 그 사람에게 어떠한 악감정을 품지 않았다.
- 많은 작가들이 단어에 심취해 있다 보니 대화 중에 단어를 지나치게 고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너무 정성껏 문장을 만들어 의도하는 바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어휘 구사력이 단순하고 민감한 욕구에 국한된 상류 사회 사람들은 이들과 의사소통에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 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로이는 이러한 종류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었다. 춤꾼과 이야기할 때는 춤꾼에게 정확히 통하는 용어로 말하고, 경주마를 좋아하는 백작 부인과는 그녀의 마구간 소년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로이가 여느 작가들과 조금 다르다고 열정과 안도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에게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칭찬은 없었다. 현자는 모름지기 상용구를 많이 쓰고(요즘 나는 '남이사'를 가장 애용하고 있다.) 유행하는 형용사를 쓰며('끝내주는'이나 '뻘쭘한' 같은 말)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을 써서('팔꿈치로 쿡 찌르다' 같은 말) 환담에 소탈한 광채를 더하고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한다. 지구 상에서 효율성을 가장 따지는 미국인들은 이러한 요령을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려 방대한 범위에서 간결하고 진부한 문구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서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 즐겁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이성은 큰 사업과 간통 같은 더 중요한 문제의 몫으로 자유롭게 남겨 둔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상황에 맞는 말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로이의 감각은 화술에 양념을 더했다. 비옥한 두뇌가 그것을 금방금방 생산해 내듯 그는 매번 그것을 척척 사용했다.
- 마을 의사의 아내가 숙모를 만나러 찾아왔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에밀리가 들어와서는 숙부에게 조지 켐프 씨가 와서 숙부를 뵙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관문 벨 소리가 났는데, 에밀리." 숙모가 말했다.
"네, 그 사람이 현관문으로 왔어요."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모두들 뜻밖의 사건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색이었다. 누구는 현관문으로 오고 누구는 옆문으로 오고 누구는 뒷문으로 와야 하는지 아는 에밀리마저도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심성이 착한 숙모는 누군가 잘못된 위치에 서는 일이 벌어져 진심으로 난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의사의 아내는 기가 차다는 듯 살짝 콧방귀를 꼈다. 마침내 숙부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 서재로 안내해, 에밀리." 숙부가 말했다. "차를 마시는 대로 가 볼 테니까."
(리뷰자 주 :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정해진 사회적 관습들은 놀라울 만큼 세밀했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키츠가 쓴 시 <엔디미온>의 첫 구절을 보면 키츠보다 더한 거짓말을 한 시인은 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것이 마법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내 마음은 즉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어떤 풍광이나 그림을 몇 시간씩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황홀감이고 배고픔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장미 향기와 같아서 한번 냄새를 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예술 비평이 지루한 이유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즉 예술과 무관한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그림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만한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 대해 모든 평론가들은 그저 가서 직접 보라고 말하면 된다. 그것 말고 더 할 말이 있다면 역사나 전기 정도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다른 특성들 -숭고함, 인간적 관심, 부드러움, 사랑- 을 덧붙인다. 아름다움이 그들을 오래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완벽하지만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의 주의를 잠시 잡아 둘 뿐이다. 어느 수학자가 <페드르>를 보고 나서 "케스크 사 프루브?" 하고 물었다면 그가 아무리 평소 어리숙해 보였다고 해도 그리 바보는 아니다. 파에스툼에 있는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시원한 맥주 한 잔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것들을 끌어댄다면 모를까.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그것이 우리가 티치아노보다 엘 그레코에, 라신의 완전한 대작보다 셰익스피어의 불완전한 업적에 도취하는 이유다. 아름다움에 대한 글들이 너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나도 조금 끼적여 보았다. 아름다움은 심미적 본능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대체 누가 만족하기를 원하는가? 배부른 것이 진수성찬 못지않게 좋다는 말은 어리석은 자에게나 해당된다. 아름다움은 지루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역자 주 : "Quest-ce que ça prouve?" 프랑스어로 '그게 어쨌다는 거요?'라는 뜻.)
- 평론가들이 에드워드 드리필드에 대해 쓴 글은 물론 허풍이었다. 그의 뛰어난 가치는 작품에 활력을 부여하는 사실주의도 아니고, 작품에 깔린 아름다움도 아니며, 선원에 대한 그림 같은 묘사도 아니고, 염생 습지, 폭풍과 화창한 날, 아늑한 작은 마을에 대한 시적인 표현도 아니다. 그의 가치는 긴 수명에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인류가 가진 가장 바람직한 특성들 중 하나인데 이 특성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영국에서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인을 공경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정신적인 측면에 그치고는 하지만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행해진다. 목소리를 잃은 늙은 프리마돈나의 노래를 듣겠다고 코번트 가든 극장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이 영국인 말고 또 있을까? 너무 노쇠해서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앞에 잘 놓지도 못하는 무용수들의 춤을 돈을 내고 보러 와서는 "세상에, 그 남자가 예순이 훨씬 넘었다는 거 알아요?" 하고 막간에 주고받으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영국인들 외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작가에 비하면 약과다. 내가 자주 생각하길 젊은 배우는 유달리 낙천적인 성향을 지니지 않고서야 일흔 살이면 본인은 배우의 생명이 끝날 터인데 정치인이나 작가는 그 나이에 전성기를 누리겠구나 하고 비통해하겠다는 것이다. 마흔 살에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일흔 살이 되면 정치 거물이 된다. 너무 늙어 점원도 정원사도 즉결 심판 치안 판사도 못 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큼 성숙해진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예로부터 노인들은 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세뇌했고, 젊은이들은 그것이 허튼소리임을 깨달을 즈음엔 이미 늙은이가 되어 그 기만적 행태에 편승해 이익을 봐 왔다. 또한 정치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 치고 국가를 다스리는 데 별다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결과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존경을 받아야 하는지 나는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어 왔다. 만약 이십 년째 주목할 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노작가라면 경쟁자로서 젊은 작가들에게 아무런 위험이 되지 못하므로 그의 가치를 극찬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합리적 찬사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알다시피 두렵지 않은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만만찮은 경쟁자를 견제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성을 너무 폄하하는 시각일 수 있고, 싸구려 냉소주의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곰곰이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평균 나이를 넘긴 노작가가 노년에 보편적으로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지식인들이 서른 살이 넘으면 글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읽은 책들은 화려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가치는 해마다 높아진다. 물론 계속 글을 쓰고 대중의 시선 안에 머무는 노작가여야 한다. 걸작을 한두 편 쓴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걸작들을 떠받칠 반침대로 변변찮은 작품을 사오십 편쯤 펴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면 무게로 목자를 압도하겠다는 각오로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 이후로도 바턴 트래퍼드 부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가 후대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그것이 그녀의 지원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눈여겨볼 만한 사람은 놓치는 법이 없었고, 전도유망한 청년 작가면 누구든 재빨리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 누구도 그녀가 제안하는 친절을 거절하지 못하리라 스스로 자신할 만큼 명성은 대단했고, 그 전기의 출간 이후 그녀의 명성은 더욱 드높아졌다. 바턴 트래퍼드 부인의 천재적 사교성은 어디로든 배출되기 마련이었다. 그녀가 인상적인 작품을 읽게 되면 결코 인색하지 않은 평론가인 바턴 트래퍼드 씨는 그 작가에게 감상평이 담긴 따뜻한 편지를 보내 작가를 오찬에 초대했다. 오찬이 끝나면 그는 손님에게 바턴 트래퍼드 부인을 말 상대로 남기고 내무부로 들어가곤 했다. 많은 이들이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저마다 뭔가가 있었지만 탁월하지는 않았다.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안목이 있었고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그녀의 안목은 그녀에게 기다릴 것을 명했다.
-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실패작이었다. 평론가들은 그의 사지를 찢었고, 그를 때려눕힌 뒤 마구 짓밟았다.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애창곡 중 한 소절을 빌리자면 그를 '방 여기저기로 끌고 다닌'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말만 그럴싸한 경박한 시인을 불멸의 시인이라고 착각했으니 분통이 터질 만도 했다. 오해를 초래한 장본인인 그는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재스퍼 기번스는 피커딜리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되었다. 바턴 트래퍼드 씨는 한밤중에 바인 스트리트에 가서 보석금을 내고 그를 꺼내 주어야 했다.
이때도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푸념 한 번 하지 않았다. 입에서 냉혹한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열과 성을 다해 밀어 준 남자가 실망을 안겼으니 얼마든지 억울함을 느낄 만한 입장이었지만 다정하고 상냥하고 배려심이 많은 모습을 유지했다. 이해심 있는 여자니까. 그녀는 그를 버렸지만 뜨거운 벽돌이나 뜨거운 감자를 떨어뜨리듯 버리지는 않았다. 한없이 온화했고, 본성을 거스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틀림없이 흘릴 눈물처럼 부드러웠다. 그녀가 워낙 요령껏 교묘히 버렸기 때문에 재스퍼 기번스는 버려진 줄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를 욕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예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나 나오면 그냥 조금 서글프게 미소를 짓고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결정타였고, 그녀의 한숨은 그를 깊숙이 파묻어 버렸다.
- 드리필드 부인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나무랄 데 없었다. 사근사근하면서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주 듣기 좋게 말하고는 드리필드 부인의 외모를 칭찬했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칭찬할 때는 약간의 부러움을 섞어서 위대한 남자의 반려자라는 자리는 얼마나 대단한 특권이냐고 말했다. 문인의 아내에게는 다른 여자가 남편을 칭찬하는 것만큼 화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친절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드리필드 부인에게 단순한 품성의 여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단순한 것들을 이야기했다. 요리, 하인, 에드워드의 건강, 남편을 세심히 보살피는 부인의 마음 씀씀이.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본인처럼 스코틀랜드 명문가 출신의 여인이 저명한 문인이 실수로 결혼한 술집 여급 출신의 아내에게 취할 법한 태도로 드리필드 부인을 대했다. 다정하고 장난스럽고 부드럽게 드리필드 부인을 열심히 다독였다. 이상하게도 로지는 트래퍼드 부인이라면 질색했다. 내가 알기로 로지가 싫어했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바턴 트래퍼드 부인이었다. 요즘에는 반듯하게 자란 숙녀들도 '쌍년'이나 '빌어먹을' 같은 말을 요긴하게 써먹지만 당시에는 술집 여급들도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로지에게서 소피 숙모가 들으면 질색할 만한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누가 조금이라도 야한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두피까지 온통 빨개지도록 얼굴을 붉히곤 했다.
- 하지만 여왕이라든가 유명한 왕족 애인의 생애 같은 분야만 좋아했고, 아이처럼 신기해하면서 책에서 읽은 기이한 내용들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헨리 8세의 여섯 배우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마리아 피츠허버트와 레이디 해밀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독서열이 대단해 루크레치아 보르자부터 스페인 펠리페 군주들의 왕비들까지 두루 섭렵했다. 프랑스 왕가의 애첩들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네스 소렐부터 뒤바리 부인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인물이 없었고 그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나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좋아." 로지가 말했다. "소설은 그다지 흥미가 없어."
-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복잡성과 변덕, 부조리를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중년이나 노년의 작가들이 더 진중한 주제로 생각을 돌려야 마땅함에도 가상 인물의 사소한 관심사에 몰두하는 유일한 변명이 되곤 한다. 인류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 맞다면 현실의 불합리하고 모호한 인물보다는 일관되고 견고하며 의미가 있는 가공인물에 전념하는 것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가끔 소설가는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고 작중 인물에 대해 모든 걸 이야기하려 들 때가 있지만, 반면에 작중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의식하기 마련이니 작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것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일인칭 시점은 이 제한된 목적에 한해 대단히 유용하다.
- 일인칭은 유쾌하고 감동적인 분위기로 자기를 드러낼 때 더없이 좋으며, 적당한 투지를 보여 주거나 애처로울 만큼 우스꽝스럽게 나갈 때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고 아주 세련된 방식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눈가에 눈물이 반짝거리고 입술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어리는 것을 상상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은 흐뭇한 일이지만 자기를 순 바보 천치로 내세울 때는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 이 시기에 나는 드리필드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는 낮에는 대개 편집 일을 했고 밤에는 글을 썼다. 물론 토요일 오후 모임에서는 쾌활한 모습과 반전이 있는 재치로 재미를 주었다. 나를 보면 반가워하면서 사소한 것들을 화제로 잠시 잡담을 나누었지만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나이가 더 많고 더 중요한 손님들에게 쏠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점점 무덤덤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더 이상 내가 블랙스터블에서 알고 지낸 명랑하고 소박한 지인이 아니었다. 내가 점점 예민해진 탓인지 몰라도 그는 사람들을 놀리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지만 그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은 허상에 불과한 것처럼 공상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대단한 활약을 했지만 도를 넘지는 않았다. 그녀를 빼고 드리필드만 초대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럴 경우 그가 초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만찬이든 바턴 부인과 바턴 씨, 그리고 드리필드 세 사람이 초대를 받으면 셋이 함께 왔다가 함께 떠났다. 그녀는 한시도 드리필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파티의 여주인들이 발끈할 만한 일이었다. 받아들이든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대부분은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조금 화가 날 때면 드리필드를 통해 언짢은 심기를 드러냈다. 그녀는 여전히 상냥한 반면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유달리 퉁명스러울 때가 그러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구슬려 말을 끌어낼 줄 알았고 저명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그를 빛나게 만들었다.
- 그녀는 그를 보내 주었다. 그저 간호사에게 중차대한 임무를 맡긴다면서 영문학의 미래뿐 아니라 살아 있는 저명인사의 생명과 행복이 당신의 손에 달렸다고 당부했다. 그것은 막중한 책임이었다.
삼 주 후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트래퍼드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특별 허가증으로 간호사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렸다.
나는 이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만큼 트래퍼드 부인의 큰 도량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어떻게 했을까? 배신자, 배신자라고 소리쳤을까? 머리를 쥐어뜯다가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면서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켰을까? 온화하고 교양 있는 바턴 씨에게 덤벼들어서는 바보 영감이라고 소리쳤을까? 신의 없는 남자들과 음란한 여자들을 탓했을까? 아니면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듯 가장 정숙한 여자들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욕설을 고래고래 목청껏 질러 대서 상처받은 심정을 토로했을까? 천만에. 그녀는 드리필드에게 상냥한 축하 편지를 보냈고, 신부에게도 이제 사랑하는 친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 생겼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는 편지를 썼다. 런던으로 돌아오는 즉시 둘이 같이 그녀의 집에 와서 묵고 가라고 청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그 결혼이 정말 정말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도 이제 곧 노인이 되니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지요. 그걸 병원 간호사보다 더 잘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새 드리필드 부인에 대해서도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예쁘지는 않은데 인상이 참 좋아요. 물론 딱히, 딱히 숙녀라고 할 수 없는 여자지만 너무 대단한 여자는 에드워드가 부담스러울 거예요. 그녀는 그에게 마침맞은 아내랍니다. 바턴 트래퍼드 부인을 가리켜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만약 그 인정에 독이 녹아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이 경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 바로 이 무렵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생명의 잔>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을 비평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거니와 최근에는 일반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줄 관련 저작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생명의 잔>은 대표작도 아니고 가장 인기를 끈 작품도 아니지만 내게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이 소설이 지닌 냉혹한 무자비함은 감상벽 일색인 영국 소설들 틈에서 독창성을 뽐내고 있다. 이 소설은 참신하고 통렬하다. 시큼털털한 사과 맛이 난다. 처음에는 떨떠름하지만 묘하게 달콤 쌉싸름해서 입맛이 도는 그런 맛이다. 드리필드의 작품 중에서 나도 한번 써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아이가 죽는 장면은 끔찍하고 비통하면서도 감정의 지나친 분출이 없으며, 뒤따르는 흥미로운 사건들도 한번 읽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 그는 어깨를 추어올렸다.
"자꾸 진짜가 아니라고 하는데 말이지.." 그는 미소를 지었다. "웃기지 말라고 해. 그건 진짜야."
- "그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잖아요."
"못 하지, 그 아이 이야기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 아이가 뇌막염에 걸려서 병원에 데려갔어. 병원에서 아이를 독방에 눕히고 아이랑 같이 있게 해 주었지. 그때 그 아이가 겪은 걸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어. 비명을 그치지 않았지. 그런데도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어."
로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드리필드가 <생명의 잔>에서 묘사한 죽음이 그거였군요."
"맞아. 난 테드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했어. 그 이야기는 나 못지않게 입에 담지도 못하던 사람이 그걸 글로 쓰다니 말이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당시에 내가 놓쳤던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썼더라고, 나는 그걸 보고 나서야 기억이 났어. 그이가 무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아. 그이도 나만큼 괴로워했어.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이처럼 엉엉 울곤 했지. 참 이상한 남자 아니야?"
- <생명의 잔>은 큰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작품 속 아이의 죽음과 잇따른 사건이 화근이 되어 드리필드에게 엄청난 역풍을 가져왔다. 나는 그 묘사를 생생히 기억했다. 참혹했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신 그 어린아이에게 그토록 잔혹한 고통을 주었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분노를 샀다. 사람들은 심판의 날 하느님께서 반드시 해명을 요구하실 일이라고 느꼈다. 대단한 힘이 살아 있는 글이었다.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면 잇따른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일까? 1890년대 대중에게 충격을 안긴 것도, 평론가들이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다고 규탄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 하지만 로지라는 캐릭터는 내가 오래전부터 궁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녀에 대해 쓰고 싶은 생각은 진작에 있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나지를 않았다. 그녀가 자리를 잡을 적당한 배경이 통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래도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크게 안타깝지는 않았다. 작가의 머릿속에 쓰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인물은 집착이 된다. 생각이 끊임없이 그것으로 회귀하면서 상상력이 점차 그것을 키워 가는 동안 작가는 누군가 그의 마음 한편에 살면서 그의 상상에 순종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기이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일단 종이 위에 정착하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그 인물을 잊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몽상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 일시에 잊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다가 간단히 적어 둔 그 짧은 이야기가 오랫동안 고민한 이 인물의 무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녀를 유명한 작가의 아내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2000 단어짜리 글이 절대 될 수가 없었으므로 조금 기다리면서 1만 4000 단어나 1만 5000 단어쯤 되는 훨씬 긴 이야기의 소재로 삼아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할 만한 단편 소설 <비>의 후속작으로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나의 로지를 그런 길이의 단편 소설에 낭비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 상류 사회에 대한 집착은 다른 작가에게서, 활력은 세 번째 작가에게서, 운동 능력의 자긍심은 네 번째 작가에게서, 그 외에 많은 부분은 나 자신에게서 빌려 왔다. 나는 나 자신의 흠결을 돌아보는 고약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나 자신에게서 자조할 수밖에 없는 면모를 많이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유감스러운 기벽이 없는 다수의 작가들에 비하면 덜 미화된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이다. (나에 관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가 창조한 모든 인물은 우리 자신의 복사본과 다름없다. 물론 그들이 나 자신보다 더 고귀하고 더 이타적이며 더 도덕적이고 더 신성할 수도 있다. 신이 그러하듯 작가가 본인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작가를 표현할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것은 너무나 흔한 관행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상당한 숫자의 수작들을 포함해 수백 권에 달하는 작품들이 해마다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어느 것 하나 몇 달씩 걸리지 않은 것이 없고 몇 년의 진통 끝에 탄생한 것들도 있을지 모른다. 저자로서는 작품에 자신의 분신을 실어 영원히 떠나보내는 일인데, 그것이 평론가의 미어터지는 책상과 서점의 빽빽한 책장 어딘가에 파묻힐 공산이 크다는 생각을 하면 참 가슴이 미어지는 노릇이다. 이러니 작가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경험은 그에게 행동 지침이 된다.
- 로이는 거물이었다. 로이가 나 같은 잔챙이와 어울려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것보다 더 질색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벼운 초대에 응한 것이니 별일이 있겠나 싶었다. 그는 건강의 화신처럼 보였다. 고수머리는 희끗희끗해져 갔지만 그와 잘 어울리는 데다 햇볕에 그은 솔직한 얼굴을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은 세상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청년 시절만큼 날씬하지는 않았다. 나는 웨이터가 우리에게 롤빵을 권했을 때 로이가 호밀 크래커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그리 놀라지 않았다. 살이 조금 붙은 모습이 오히려 위엄을 더하고 그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행동거지 역시 예전보다 조금 더 진중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신뢰감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가 의자를 가득 채우고 앉은 모습이 어찌나 듬직해 보이는지 기념비 위에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했다. 로이가 웨이터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은 그의 대화술이 뛰어나거나 위트가 있다기보다 자연스럽다는 것과 그가 하도 자주 웃어서 상대방은 그가 한 말이 웃기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내 바람대로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어떤 말에도 당황하는 법 없이 그날의 주제가 무엇이든 듣는 사람이 긴장하지 않도록 편히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 지금도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 다 아는 친구들, 최근의 책들, 오페라. 대단히 살가웠다. 평소에도 다정하지만 오늘은 유달리 다정해서 아주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는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뜸했던 것을 한탄하고 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솔직함을 발산하면서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이 호의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게 지금 집필 중인 책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가 집필 중인 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더 큰 성공을 거두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송아지 고기와 햄이 들어간 파이를 먹었다. 로이는 샐러드를 어떻게 섞는지 말해 주었다. 우리는 혹 포도주를 마시며 그 풍미를 즐겼다. 나는 그가 언제쯤 본론으로 넘어갈까 궁금했다. 한창때의 런던에서 앨로이 키어가 서평을 쓰지도 않는, 더구나 마티스, 러시아 발레, 마르셀 프루스트를 토론하는 모임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동료 작가와 한 시간을 노닥거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쾌활한 태도 뒤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어른거렸다. 만약 그의 넉넉한 형편을 몰랐다면 나한테 100파운드쯤 빌릴 속셈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그가 말을 꺼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이대로 점심 식사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나는 로이가 조심성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 교구에서 태어난 사람이긴 해." 숙부가 말했다.
"그 사람 아버지가 예전에 울프 양의 펀 코트를 관리하던 자였어. 하지만 회중교였단다."
"블랙스터블 여자와 결혼했어." 갤러웨이 씨가 말했다.
(역자 주 : 17세기에 영국 국교 성공회에서 이탈한 소수 종파로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은 독립 교회파.)
- 그가 길거리에서 누구와 이야기라도 나누면 말소리가 하나하나 다 들렀다. 게다가 지나치게 다정했다.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때면 마치 상인이 아닌 양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그가 너무 극성맞다고 말했다. 그가 보인 싹싹한 태도와 공적 활동, 매년 보트 경주나 추수 축제 때 쾌척하는 기부금, 누구든 돕는 적극적 선행이 그를 가로막는 블랙스터블 내의 장벽을 무너뜨려 주리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다. 그가 사교에 쏟은 노력들은 무표정한 반감에 부딪혔다.
- 앨로이 키어는 내게 드리필드의 이야기를 하면서 흠결이 있다 해도 작품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움이 흠결을 만회한다고 주장했다. 그날 우리의 대화를 돌이켜보니 가장 거슬린 것은 바로 그 말이었던 듯하다.
삼십 년 전 문단의 화두는 단연 하느님이었다. 신앙은 바른 길이었고, 기자들은 구절을 꾸미거나 문장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하느님을 활용했다. 그러다가 하느님이 물러나고(희한하게 크리켓과 맥주를 데리고 퇴장했다.) 판이 등장했다. 수많은 소설의 풀밭 위에 판의 갈라진 발굽 자국이 찍혔고, 시인들은 석양이 내린 런던의 공용지에서 몸을 숨긴 판을 보았다. 문학작품 속 서리의 여자들, 산업화 시대의 미녀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판의 거친 포옹에 순결을 바쳤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예전과 전혀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판도 물러가고 지금은 아름다움이 득세했다. 사람들은 문장에서만 아니라 가자미, 개, 하루, 사진, 행동, 복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전도유망하고 훌륭한 소설을 써 온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암시를 하든 열변을 토하는 강렬한 어조나 매력적인 어조로 아름다움에 대해 뇌까리고, 근래 옥스퍼드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그곳의 찬란한 기운을 간직한 젊은 남자들은 예술과 인생, 우주를 논하는 주간지의 빽빽한 지면에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무심코 던져 넣는다. 그 말은 딱할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하, 그들이 얼마나 조몰락거렸으면! 이상(理想)에는 많은 이름들이 붙어 있고 아름다움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이 아우성이 우리의 어마어마한 기계 문명에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아닐까 싶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 이 부끄러운 시대의 소녀 넬이 과연 감상주의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삶의 스트레스에 더 잘 적응한다면 다음 세대는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에서 영감을 찾을지도 모른다.
- 길 양쪽으로 파릇한 느릅나무 잎사귀가 늘어져 고개를 들면 기다란 띠 같은 파란 하늘만 보일 때도 있었다. 온화하고 상쾌한 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온 세상이 멈춘 듯이 삶이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운차게 페달을 밟는 데도 느긋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말하는 사람이 없어도 꽤나 행복한 순간이었고, 일행 중 누구 하나가 신바람이 나서 별안간 속도를 높여 앞으로 쭉 치고 나가면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고는 몇 분쯤 힘껏 페달을 밟는다. 우리는 순수하게 서로를 놀렸고 자기가 던진 농담에 킥킥 웃었다. 때때로 앞 쪽에 정원이 딸린 시골집들을 지나기도 했는데, 정원에는 접시꽃과 참나리가 피었고, 그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헛간과 홉 건조장을 갖춘 농가들이 있었다. 때로는 홉이 지지대에 매달려 익어 가는 홉밭을 지났다. 친근하고 편안한 펍들은 시골집과 그게 다를 바 없이 소박했고 종종 현관에 인동덩굴이 자랐다. 펍이 내건 이름 역시 '유쾌한 뱃사람'이나 '즐거운 쟁기질', '왕관과 닻', '붉은 사자' 같은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이었다.
- "못 할 것도 없지. 자네도 평론가들이 어떤지 알지 않나. 진실을 말해 봤자 냉소적이라는 평만 듣게 돼. 작가가 냉소적이라는 평을 들으면 좋을 게 없어. 만약 내가 부도덕하게 모든 걸 폭로한다면 파란을 일으킬 순 있겠지. 그 남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과 방만한 책임 의식, 세련된 문장과 비누랑 물에 대한 혐오, 이상주의와 싸구려 펍에서 마시는 술이라는 양면성을 보여 준다면 재미는 있을 거야. 하지만 솔직히 그것이 득이 될까? 기껏해야 리턴 스트레이치를 흉내 낸다는 소리 나 듣겠지. 그건 싫어. 암시적이고 매력적이면서도 뭔가 절묘하게, 말하자면 부드럽게 나가는 편이 훨씬 좋을 거야. 나는 항상 시작 전에 완성작을 먼저 그려야 한다고 보네. 이번 전기는 정취가 있는 반다이크의 초상화 같아. 어느 정도의 무게감과 귀족적인 뛰어남이 있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 대략 8만 단어면 될 거야."
그는 잠시 심미적 황홀경에 취했다. 고급 종이에 선명하고 반듯한 활자로 인쇄된, 얇고 가볍고 여백이 많은 특대 팔절판 책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매끄러운 검은색 천으로 싸고 금박으로 제목을 찍은 제본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말했듯이 앨로이 키어도 인간인 이상 그 황홀경을, 아주 잠깐 발현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는 없다. 그는 내게 솔직한 미소를 지었다.
- "아주 예민한 심정을 거스르지 않게 되도록 은밀하고 배려하는 방식을 택하면서도 남자다운 소탈함으로, 말하자면 심금을 울리는 방식으로 다룬다면 그분의 인생사에서 그 부분을 못 다룰 것도 없지."
"터무니없는 과제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사소한 것들까지 미주알고주알 말할 필요 없어. 얼마나 적절히 손질을 가하느냐가 문제지. 되도록이면 직접적 서술을 피하면서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게끔 필수적인 것만 제공할 생각이야. 알다시피 아무리 역겨운 소재라도 점잖게 다루면 불쾌감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상을 똑바로 파악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으니까."
로이는 자신이 성공한 강연자임을 유려하고 매끄러운 말솜씨로 입증했다. 나도 저렇게 힘차고 정확하게, 단 한 마디도 버벅거리지 않고 단 한순간의 머뭇거림 없이 문장을 술술 뽑아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론 로이가 거대하고 열렬한 청중을 향해 말하듯 본능적으로 연설을 하고 있는데도 정작 보잘것없는 일개 개인인 나 혼자 청중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참 미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열정으로 달아오르고 한낮의 더위로 땀이 송골송골한 그의 얼굴에 상냥한 표정이 떠올랐다. 총명함으로 우위를 점하며 나를 사로잡았던 눈이 풀어지면서 미소를 띠었다.
- "바보처럼 굴지 마, 로지!" 그들은 말했다. 그들은 그녀를 로지라고 불렀고, 나 역시 몹시 부끄러웠지만 차차 로지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다. "그 여자는 얼마든지 네 남편을 성공시킬 수 있어. 네 남편도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하고, 일을 성사시킬 줄 아는 여자라고."
드리필드 부부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이삼 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방문했지만 나처럼 거의 매주 찾아오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우리는 대기조였고, 일찌감치 도착해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열성파는 퀸틴 포드, 해리 레트퍼드, 라이어널 힐리어였다.
퀸틴 포드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훗날 한동안 영화에서 꽤나 사랑받았을 법한 잘생긴 남자로 반듯한 콧대와 수려한 눈, 깔끔하게 자른 반백의 머리, 검은 콧수염의 소유자였다. 키가 10센티미터 정도만 더 컸어도 멜로드라마의 악당으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배경이 좋다고 알려져 있었고 형편이 넉넉했다. 그가 하는 유일한 일은 예술적 소양을 쌓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초연과 비공개 초대전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아마추어의 신랄함을 지녔고,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해 정중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고 보니 드리필드의 집을 찾아오는 것도 에드워드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로지가 미인이기 때문이었다.
-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내가 그 뻔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듣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예쁜지 평범한지 생각한 적이 없었고, 오 년 뒤 다시 만났을 때 처음으로 그녀가 아주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롭기는 했어도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북해나 터캔베리 성당의 탑 위에 걸린 태양처럼 자연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로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그들이 로지의 외모를 칭찬하면 에드워드의 눈길이 잠시 그녀에게 머물렀고, 내 시선은 그의 시선을 따랐다. 라이어널 힐리어는 화가였고, 그래서 그녀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그리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알쏭달쏭하고 혼란스러운 소리로 들렸다. 해리 레트퍼드는 그때 잘 나가던 사진가를 알고 있어서 특별히 날짜를 잡아 로지를 데리고 사진을 찍으러 갔다. 한두 주일 후 토요일에 사진이 나왔고, 모두들 그것을 구경했다. 내가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은 로지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뒷자락이 길고 소매산이 봉긋하고 가슴이 파인 하얀색 새틴 드레스였다. 머리 모양은 평소보다 더 우아하게 손질한 것처럼 보였다. 옛날 조이 레인에서 처음 보았던, 밀짚모자와 빳빳한 셔츠 차림의 건강하고 젊은 여자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라이어널 힐리어는 마뜩잖게 그 사진들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 "언제 완성됩니까?"
"완성된 거야." 그가 대답했다.
나는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천하의 바보처럼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에 자유자재로 대응하는 요령을 아직 터득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예술에 대해 잘 몰라도 화가를 만족시킬 각종 창의적인 반응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얇은 안내서 하나쯤 이 자리에서 당장 쓸 수도 있다. "세상에!" 하는 감탄사는 철저한 사실주의자의 역량을 인정하는 말이고, "지독히 진실하군요."는 부시장 미망인의 컬러 사진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당혹감을 감추기에 좋은 말이다. 후기 인상파를 칭찬하고 싶으면 슬쩍 낮은 휘파람을 불고, 입체파에게는 "지독히 재밌군요."라는 말을 던지고, 압도되는 경우에는 "오!"를,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매료되면 "아!"가 좋다.
그때 나는 "완전히 똑같네요" 하는 변변찮은 말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자네가 기대하는 예쁘장하고 그렇고 그런 그림은 아닐세." 힐리어가 말했다.
"아주 좋은데요." 나는 방어적으로 얼른 말했다. "왕립 미술원에 출품하실 건가요?"
"아니, 천만에! 그로스브너 박물관에는 한번 보내 볼까 해." 나는 그림에서 로지에게로, 로지에게서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포즈를 취해 봐, 로지." 힐리어가 말했다. "이 친구에게 보여 줍시다."
- "로지는 그리기가 아주 까다로워." 힐리어는 그녀와 그림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보다시피 얼굴도 머리도 온통 금빛인데 인상은 금빛이 아니라 은빛이 돌거든."
나는 그의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태양이라기보다 달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태양이라고 해도 하얀 새벽안개에 싸인 태양 같았다. 캔버스 한가운데에 선 그녀는 손바닥이 보이게끔 양팔을 옆으로 늘어뜨리고 목과 가슴의 진주 같은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고개를 살짝 젖힌 자세였다. 그녀는 커튼콜을 받고 나와 뜻밖의 박수갈채에 어리둥절한 여배우처럼 서 있었지만 어쩐지 청순하고 묘하게 봄날 같은 분위기가 돌아서 여배우에 비하기는 어려웠다. 그 꾸밈없는 모습은 진한 화장이나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사랑을 찾아 나선 처녀처럼 서 있었는데 연인의 포옹이라는 대자연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이므로 죄책감은 없었다. 그녀는 풍만한 몸매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세대에 속했다. 날씬하면서도 가슴이 풍만하고 엉덩이가 탄탄했다. 훗날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그 초상화를 보고 제물로 바쳐진 어린 암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 로지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뮤직홀에서 저녁 시간을 보낸 뒤 날씨가 좋은 밤이면 걷곤 했는데 둘이 걸어 돌아올 때 그녀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친밀하고 편히 다가왔다. 상대를 배제한 침묵이 아니라 충만한 행복감 안에 상대를 끌어안은 침묵이었다.
한 번은 내가 라이어널 힐리어와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블랙스터블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풋풋하고 곱상하던 젊은 여자가 어떻게 사실상 누구나 인정하는 사랑스러운 미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고.(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몸매는 아주 훌륭해. 하지만 얼굴은 내가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 아주 예쁜 여자고 말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특출한 면이 조금 떨어져요.")
"그건 내가 간단히 설명할 수 있지." 라이어널 힐리어가 말했다.
"당신이 처음 만났을 무렵 로지는 풋풋하고 풍만한 아가씨가 맞았겠지. 내가 그녀를 미인으로 만들어 준 거야."
그때 내가 무어라 대꾸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야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이런, 그건 아름다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말이야. 내가 로지를 은빛 태양으로 바라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녀를 중히 여기지 않았어. 내가 초상화를 그리기 전까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는 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거야."
(리뷰자 주 : 김춘수. 생텍쥐베리.)
- 얼마 전 나는 <이브닝 스탠더드>에 실린 에벌린 워 씨의 글을 읽었다. 그는 이 글에서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은 경멸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유를 설명해 주면 좋았으련만 유클리드가 유명한 평행선 공리를 내놓았을 때처럼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그 말만 툭 던져 놓았다. 나는 궁금증이 생겨 곧장 앨로이 키어(서문을 써 주는 책까지 읽을 만큼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는 사람)에게 소설의 기법을 다룬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퍼시 러벅 씨의 <소설의 기술>을 읽었는데 소설을 쓰려면 오직 헨리 제임스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E. M. 포스터 씨의 <소설의 면면>을 읽었더니 소설은 오직 E. M. 포스터처럼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에드윈 뮤어 씨의 <소설의 구조>를 읽었지만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다. 그 책들에서는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유명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시들해진 디포, 스턴, 새커리,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프루스트 같은 소설가들이 왜 에벌린 워 씨가 비난하는 일인칭 시점을 사용했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 나는 이제 성나고 상처받고 분개한 눈으로 로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로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에 담긴 그 달콤하고 다정한 빛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우아하고 상냥했다.
"아이참, 왜 다른 사람들 일로 속을 썩고 그래? 그게 너한테 해될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재밌게 놀아 주잖아! 나랑 있으면 행복하지 않아?"
"아주 행복하죠."
"그럼 된 거야. 안달하고 질투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 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그녀는 두 팔을 내 목에 감고 내 입술에 입술을 댔다. 나는 분노를 잊고 그녀의 아름다움만, 포근하고 다정한 그녀만 생각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줘." 그녀가 속삭였다. "알았어요." 나는 말했다.
- 그는 작품 활동을 통해 진입한 협소한 사회를 벗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유명 작가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숙녀들의 오찬이나 다과회에 초대받는 일이 갈수록 많아졌다. 로지도 같이 초대를 받았지만 거의 가지 않았다. 파티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한 것은 테드일 뿐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멋쩍기도 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자리였을 것이다. 파티를 주최한 여자들은 로지를 함께 초대하는 것을 아주 성가시게 여겼을 테고 그녀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또 그들이 예의상 초대해 놓고 예의를 지키기가 귀찮아져 그녀를 무시했을 수도 있다.
- 이 시련의 시기에 친구들의 충직함은 그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생명의 잔>을 찬미하는 것은 심미안의 증표가 되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교양이 없음을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턴 트래퍼드 부인은 이것을 걸작이라고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바턴 씨가 <쿼털리>에 글을 싣기에는 적당한 때가 아니었지만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굳건했다. 그야말로 파란을 일으켰던 책을 이제 와 읽어 보면 야릇한 기분이 든다.(깨닫는 바도 있다.) 순진한 사람이 얼굴을 붉힐 만한 말은 어디에도 없고 오늘날의 독자들이 기겁할 만한 사건 하나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 "에이미 말로는 너무 끔찍했대. 그 양반이 아무것도 못 바꾸게 하니 아주 신중하게 손을 쓸 수밖에. 도저히 그런 집에서는 살 수가 없겠더래. 그래서 바로잡기로 결심하고는 그 양반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나씩 하나씩 바꿔 나간 거야.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가장 바꾸기 힘들었던 건 그 양반의 책상이었어. 자네가 눈여겨봤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서재에 책상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거 대단히 훌륭한 물건일세. 나도 탐이 날 정도야. 그 양반이 예전에 쓰던 건 상판이 접히는 미국제 고물 책상이었네. 워낙 오랫동안 쓰기도 했고 그 책상에서 작품들을 십여 권 썼다면서 그 양반이 그걸 통 버리려 하지 않았다네. 그런 물건에 마음을 쓰는 일은 없었는데 하도 오래 간직하다 보니 애착이 생긴 거지. 결국 에이미는 그걸 내다 버렸는데 그 사연은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 봐. 아주 기막힌 이야기야. 부인은 참으로 놀라운 여자일세. 대개는 자기 뜻을 관철한다네."
"내가 봐도 그렇더군." 나는 말했다.
아까 집을 같이 돌아보러 나서려 했을 때 단번에 로이를 떨쳐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흘끔거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로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네는 나만큼 미국을 잘 알지 못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들은 죽은 사자보다 살아 있는 생쥐를 더 좋아해, 그것도 내가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세."
- 우리는 에드워드의 사진을 더 보았다. 세상에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찍은 사진들, 콧수염만 길렀을 때의 사진들, 깨끗이 면도한 후기의 사진들, 얼굴은 점점 야위었고 주름도 늘어났다. 초반부 사진에 드러난 고집과 평범함은 갈수록 노쇠한 세련됨으로 바뀌어 갔다. 경험과 생각, 성취된 야심에 의해 점점 변해 가는 그가 보였다. 나는 젊은 선원의 사진을 다시 보고는 노년기의 사진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그의 초연한 빛이 이때부터 엿보였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내가 드리필드를 대하면서 느꼈던 바이기도 했다.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은 가면이었고 그의 행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실체는 죽을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존재였고, 그의 작품을 쓰는 작가와 그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자 사이를 조용히 오가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세상이 에드워드 드리필드라 여기는 두 꼭두각시에게 냉소적이고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 유령. 내가 이제껏 기록한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두 발을 딛고 선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그를 납득이 가는 동기와 합리적 행동으로 살을 붙여 완성하지도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더 유능한 앨로이 키어의 필력에 기꺼이 맡길 생각이다.
-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
드리필드 부인은 피마자기름을 복용하고는 그 맛이 싫어 레몬 조각을 빤 사람 같았다.
"난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솔직히 난 대체 그 여자의 어떤 점이 에드워드의 눈에 들었는지 한 번도 이해가 된 적이 없었어요."
"그 양반은 그 여자가 온갖 남자들과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로이가 물었다.
"몰랐겠죠." 그녀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 말씀은 그분을 저보다 더 모자란 바보로 취급하시는 겁니다. 드리필드 부인." 내가 말했다.
"그럼 왜 그이가 눈감아 준 거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녀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는 아니었어요. 애정만 끌어냈죠. 그런 여자를 두고 질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숲 속의 빈터에 있는 맑고 깊은 샘물 같은 여자였어요. 뛰어들면 참으로 황홀한. 떠돌이, 집시, 사냥터 관리인이 나보다 먼저 뛰어들었다고 해서 그 물이 덜 시원하거나 덜 깨끗할 리가 없잖습니까."
- 문체는 생략의 기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번 글은 아주 뛰어난 작품이 될 터인데 로이의 자료로만 사용될 거라 생각하니 애석하게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폭탄을 던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큭큭 웃음도 나왔다.
- 어느 날 나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봉투의 손글씨는 분명 아는 글씨체인데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큼직하고 둥그렇고 단호하지만 세련되지 않은 필체였다. 너무나 익숙한 손글씨가 누구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다. 봉투를 열면 될 것을 그냥 쳐다만 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나에게는 보면 가슴이 철렁해 몸이 떨리는 필체도 있고, 너무 성가셔 일주일이 지나도 뜯을 마음이 들지 않는 필체도 있다.
-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어. 남자들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거야.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그 가엾은 아이가 죽어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내가 저녁을 먹으러 나온 걸 알았다면 해리는 나를 말종이라고 생각했겠지. 참 안됐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야 했겠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어. 나는 웃고 싶었어."
로지는 만지작거리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알다시피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못 견디고 밖으로 나돌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있잖아. 그럼 여자는 꼭 그걸 눈치채거든, 여자는 그걸 알고 야단법석을 떨지. 그 인간이 나가서 그 짓을 할 때 자기는 지옥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말이야. 나는 그런 여자들에게 바보처럼 굴지 말라고 늘 이야기해. 남편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니 그렇게 속상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그냥 우울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남편도 힘들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그때 나도 그런 심정이었어."
- "이튿날 아침에 돌아가 보니 아침이 차려져 있고 테드는 막 먹기 시작한 참이었어. 그이가 뭐라고 하면 마구 퍼부을 작정이었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어. 전에도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았는데 또 못 하랴 싶었어. 여차하면 짐 싸서 그이를 떠날 생각이었어. 하지만 내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이가 고개를 들더니 이러는 거야.
'마침 잘 왔어. 내가 당신 소시지까지 먹을까 하던 참이야.'
나는 자리에 앉아 그이에게 차를 따라 줬어. 그이는 신문을 읽었고,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병원에 갔어. 그이는 어디 갔었느냐고 묻지 않았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 나한테 더없이 다정하게 굴었어. 나는 비참했어.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는데 그이한테는 내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이 없었어."
"그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그이가 그날 밤 일을 꽤 잘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어. 그걸 글로 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 누가 봐도 그런 건 책에 넣을만한 것이 아니잖아. 참 별난 종자들이야, 당신네 작가들."
(리뷰자 주 : 며칠 전 읽은 정세랑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의 문장이 떠올랐다. "문학 출판계에 들어와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 아팠던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무척 아름다운 방식으로 마구마구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 가는 세금 징수원들, 오찬을 같이 하자는 귀하신 몸들, 강연을 부탁하는 협회 국장들,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들, 이혼하겠다는 여자들, 사인해 달라는 젊은이들, 배역을 달라는 배우들, 생판 남인데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들, 감정이 북받쳐 부부 문제를 상의하려는 부인네들, 자기 작품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진지한 청년들, 대리인들, 출판업자들, 관리인들, 따분한 인간들, 팬들, 평론가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양심. 하지만 작가는 한 가지 보상을 얻는다. 뭔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괴로운 기억,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슬픔, 짝사랑, 상처받은 자존심, 배은망덕한 인간에 대한 분노.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는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 "재혼할 생각은 한 적 없어요, 로지?"
"없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청혼하는 남자가 없어서는 아니고 지금 이대로 행복하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늙은이하고 결혼하기는 싫고, 이 나이에 젊은 남자랑 결혼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니까. 한 세상 신나게 살았으니 여기서 그만 마무리해도 괜찮아."
- <케이크와 맥주>는 영국의 문호 서머싯 몸이 작가로서 원숙기에 접어든 1930년에 발표해 문단과 세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풍자 소설이다. 당시 문단의 내막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데다 등장인물들이 서머싯 몸의 가까운 지인이나 유명 인사들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몸은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는 연계성을 부인했지만 본인 스스로 항상 실존한 인물을 토대로 창작에 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실제 모델로 지목된 토머스 하디는 에드워드 드리필드와 여러 측면에서(작은 체형, 잉글랜드 남부의 가난한 집안 출신, 건축과 펍에 대한 애호, 한참 어린 여자와의 재혼, 아이의 죽음과 관련한 장면으로 인해 금서 조치된 경력 등) 공통점이 많다. 또한 두 번째 아내 플로렌스 하디가 하디의 전기에서 첫 번째 아내 에마 기퍼드의 흔적과 그녀에 대한 호의적인 내용을 지우는 데 병적으로 집착한 것도 사실이다.
- 처세술로 성공한 작가 앨로이 키어의 원형은 서머싯 몸의 이십 년 지기 친구였던 소설가 휴 월폴로 추정되고 있다. 월폴은 케이크와 맥주를 받아 든 첫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공포감이 점점 커져 갔다. 그것은 누가 봐도 나의 초상화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에 적기를 "몸이 그려 낸 출세 지향적인 문인의 초상은 고문에 가까운 부분이다. 휴는 벼락 출세한 얼굴 두껍고 위선적인 대중 작가로 그려지고 있다."라고 평했다. 월폴이 <케이크와 맥주>의 출판을 막으려 하자 서머싯 몸은 월폴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그를 달랬다고 한다. "만약 자네가 이 작품에서 자네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가 대동소이할 뿐 결국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세."
- 이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인데 문학 작품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최초로 등장한다.
- ... 소개하는 상류 사회 사람들과 어울리며 훗날 거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하지만 그에게 성공의 발판은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후원을 받으려면 트래퍼드 부인의 영향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트래퍼드 부인이 선택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녀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해 그녀가 주문한 글을 낭독하고, 공식적인 자리에는 반드시 그녀를 동반한다. 그의 사회 활동은 철저히 그녀의 통제 아래에 놓인다. 아내 로지가 조지 켐프와 달아난 후에는 트래퍼드 부부의 집에 머물면서 차기작을 집필하기도 한다. 이후 간호사와 재혼할 때까지 그는 트래퍼드 부인의 세상에 종속된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트래퍼드 부인은 드리필드의 작가적 삶을 견인하는 동시에 구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드리필드를 얽어매는 것은 후견인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잔>을 발표하고 거센 사회적 저항에 부딪힌다. 평단과 대중은 이 작품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아이를 감정을 배제한 채 덤덤하게 묘사했다는 점과 아이가 죽은 날 아이 엄마가 외간 남자와 통정하는 내용이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분노한다. 그의 책은 금서로 지정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작가는 대중과 평단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서머싯 몸은 작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성공을 꼽으면서 현명한 작가라면 마땅히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가 성공하면 원래 속했던 세상을 떠나 상류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데, 애초에 그곳의 일원이 아니므로 아무리 영 감을 받아 새로운 세상에 관한 창작에 열정을 불태운다고 해도 필시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의 발판이 되어 준 작가 본인의 개성을 잃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보았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사회적 성공과 창작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말년까지 살아남았으므로 그 아슬아슬한 곡예에 성공한 셈이다.
- 어센든은 천재성이 없어도 좋은 배경과 성실함, 처세술만으로 얼마든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이유로 거장을 판단하는 기준은 당시의 여론이 아니라 작가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는가, 즉 '장수'라고 말한다. 유행에 취약한 동시대인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진정한 가치에 무지할 수 있는지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 앨로이 키어는 어센든에게 당시 대세였던 유미주의에 근거해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위대한 작가라고 추켜 세우지만 어센든은 그의 주장을 일축한다. 아름다움은 완전하기 때문에 순간의 감성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유발하므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전업 작가로서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가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한다.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삶을 병립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중의 관심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작가로 생존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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