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애슐리 오드레인 / 박현주
원제 : The Push
출판 : 인플루엔셜
출간 : 2021.07.20
기대 없이 읽었다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아이라는 존재.
혹은 내 아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질적인 존재.
이 책에 한해서는 권말 해설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인상을 받았다.
<다섯째 아이>와 <케빈의 대하여>는 이미 예전에 언급했던 적이 있으므로 생략한다.
'체인질링 Changeling'. '내 아이가 아닌' '바꿔치기 된 아이'라는 개념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볼 때, 이는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푸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모호함이다.
이 책은 화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각에 기반해 재구성한 과거 회상이다. 따라서 화자가 바라본 시각 속에서 그러했다는 것뿐, 실제로 같은 정황이었는지 독자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화자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딱 그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가 다시 화자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정황 증거를 내놓는다.
내가 낳았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힘들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무겁게 짓누르는 의무감.
내게 Push는 밀었느냐, 낳았느냐와는 또 다른 감각- 억압과 강요로도 읽혔다.
스릴러의 형태 속에 녹여낸 고백은 '엄마'에게는 금기시되는 중압감과 괴로움이다.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는, 하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폭로.
마지막 문장은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모든 엄마'에게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고백.
에타 - 세실리아 - 블라이스 - 바이올렛에게로 이어지는 흐름은 시대가 변하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말한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궁 속에서 듣는
첫 번째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라고들 한다.
실제로,
새롭게 만들어진 청각 기관에 울리는
첫 번째 소리는
어머니의 정맥과 동맥을 흐르는
피의 박동이다.
소리를 들을 귀가 생기기도 전부터
우리는 그 시원(始原)의 리듬에 맞춰
진동한다.
우리는 잉태되기 전에,
부분적으로는 어머니의 난소 속에서
하나의 난자로 존재했다.
한 여성이 지니게 될 난자는
모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4개월 된 태아일 때 형성된다.
난자로서 우리의 세포적 삶은
할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할머니의 자궁 속에서
다섯 달을 보냈고,
할머니 또한
그 자신의 할머니 자궁에서 형성되었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피의 리듬에 맞춰 진동한다.
- 레인 레드먼드,
<북 치는 이들이 여자들이었을 때>
- Layne Redmond,
When the Drummers Were Women
- 당신은 내가 더 많은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코 캐묻지 않았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 두려웠을 테지. 나도 이해해.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지. 모성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 좋은 엄마가 있기를,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 마지막으로 남은 몇몇 뒤틀린 피클을 잡으려 하고 피클들은 우아하게 빠져나가 질척한 딜위드가 담긴 병 아래로 잠기고 있었지. 피클이 정말 고래 같더라. 바이올렛의 정신은 영리하고 아름다웠으며, 가끔은 나도 무척 그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지 두렵기는 했어도.
- "비난하자고 한 말은 아니다, 블라이스. 약속할 수 있어. 나는 지옥을 거쳐 왔으니까."
-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쥔 채로 잠시 말을 멈췄어. 나는 엄마의 무릎에 기댔지. "알지,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점이 많이 있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하지만 가끔 어떤 부분은 본 것에 따라 형성이 되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따라.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에 따라."
-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결국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사랑할 수 없는 아이를 만난 엄마의 악몽, 혹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병적인 이상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엄마의 자기 의심. 블라이스는 실제로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 내면의 고통이 문장으로 펼쳐진다. 백 퍼센트 확신에 가득 찬 어머니는 없으며, 어머니가 된 이들은 모성의 환상이 주는 안락감과 그것이 여성에게 부과한 의무의 무게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여성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듯 어머니도 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 점점 직접적 본능에 덜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됐어. 더 영리한 생각이 나기 시작했지. 글은 더 쉽게 나오고! 생리도 가벼웠지. 당신은 집 전체에 울리도록 음악을 틀었어. 신곡들로, 성인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실 때 누군가가 언급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세탁비누가 유기농이 아니어서 우리 옷에서는 인공적인 숲의 향기가 풍겼어. 우리는 등산을 했지. 당신은 내게 글쓰기는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다른 남자를 쳐다본 적이 없었지만, 대신에 그 남자가 섹스할 땐 어떨까 궁금하긴 했어. 당신은 그해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눈이 내릴 때까지는 무척이나 비실용적인 차를 매일 몰고 나갔어. 당신은 개를 입양하고 싶어 했지. 우리는 거리를 걸으며 개들을 눈여겨봤어. 우리는 개들의 목을 쓰다듬어주려고 발길을 멈췄지. 그때는 공원만이 내가 집안일을 미룰 수 있는 유일한 핑계는 아니었어. 우리가 읽은 책들은 그림이 없었지.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이 뇌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어. 아이들은 성인용으로 제조된 물건들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 우리는 서로를 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안다고 생각했지.
- 당신은 내가 그들과 어울릴 계획이 있다고 하면 좋아했지.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될 거라며 신나 했어. 나는 주로 당신을 위해서 모임에 간 거야. 내가 정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 우리가 보내는 모든 나날과 마찬가지로, 대화에는 진부한 일상이 담겨 있었어. 아이들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잤는지. 뭘 얼마만큼 먹었는지. 이유식, 어린이집, 보모를 어떻게 할 계획인지. 사서 써 보니 이젠 그게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기에 남들도 샀으면 하는 기기는 뭔지. 결국에는 아이들 중 하나가 낮잠 잘 시간이 되고, 힘들게 얻어낸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도록 오직 집의 요람에서 재워야 할 때가 오지. 그러면 우리는 짐을 싸서 일어섰어. 계산을 치를 때 가끔 나는 용기를 끌어내어 진짜 내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어. 나는 미끼처럼 던져 보았지.
"어떤 날은 정말 힘들지 않아요? 엄마가 된다는 일 자체가 말이죠."
"가끔은 그래요. 하지만 우리가 할 일 중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침에 애기들 조그마한 얼굴을 보면 정말 너무 가치가 있다니까요."
나는 이 여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어. 그들은 결코 들키지 않았지. 결코 무심코 실수하지 않았어. "그렇고 말고요." 나도 늘 동감이라는 뜻을 내비쳤어. 하지만 집에 가는 내내 유아차에 탄 바이올렛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째서 나는 이 아이가 내게 일어난 일들 중에 최고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나 생각했지.
- 내 어린 시절의 선명한 기억들은 여덟 살 때부터 시작 돼. 이런 기억에 단독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밖에 없네.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오래된 사진이나 그들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수천 번 해준 똑같은 이야기로 바라보지. 나는 이런 것들이 없었어. 엄마에게도 없었지. 어쩌면 그게 문제의 일부였는지도 몰라. 우리는 오로지 진실의 한 가지 버전밖에 없다는 것.
- 떠오르는 게 하나 있어. 내 유아차의 하얀 안감, 진청색 꽃송이, 아일렛 리본으로 두른 테두리 장식, 대나무로 가운데를 댄 크롬 손잡이. 카나리아 색 장갑을 낀 엄마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있어.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얼굴은 볼 수 없어. 그저 이따금 엄마가 태양을 등지고 모퉁이를 돌 때 내 몸 위로 어리는 그림자. 이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
- 바이올렛의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아름다워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끔 발을 멈추고 우리에게 딸이 참 예쁘다는 말을 건네곤 했지. 아이는 수줍게 웃으면서 고맙습니다, 라고 했고. 아주 짧은 찰나 나는 이 작고 훌륭하고 문명화된 인간이 내 귀를 잡고 내가 미칠 지경까지 끌어당길 능력이 있는 사람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어두운 순간들은 점점 적어지고, 아이의 성격 중 다른 부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바이올렛은 아기 인형에 집착해서 어디에나 데리고 다녔어. 아이는 16개월쯤 되자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알게 되었지. 거의 1년 내내 속바지 아래에 크리스마스트리 무늬가 있는 타이츠를 신고 다니겠다고 했어. 식사 때마다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으면서 노란 구름이라고 불렀어. 칩멍크를 보면 겁을 냈고 다람쥐를 보면 흥분했어. 우리가 매일 토요일 아침이면 꽃 한 송이 사러 가는 모퉁이 꽃집의 여자를 좋아했어.
(리뷰자 주 : 칩멍크는 우리나라의 다람쥐이고 미국 다람쥐(squirrel)는 청솔모 비슷한 꽤 크고 사납게 생긴 동물이다. 묘한 묘사라고 생각했다.)
- 그날 저녁 내가 팬에서 새우를 튀기고 있을 때, 당신은 한 손을 내 어깨 위로 슬며시 뻗더니 목을 주물렀지. 내가 손을 피하자 당신은 무슨 일 있냐고 물었어. 나는 내가 그날 어디 갔었는지 말하고 싶었어. 나는 그런 일을 생각하는 내가 괴물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러나 대신에 나는 두통이 있다고 얼버무리고 탁탁 튀는 기름만 응시했어. 당신은 고개를 저으며 부엌을 나갔지.
- 나는 내가 일으킨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고개를 끄덕였어. 어머니가 너무 연약해 보였거든, 예순일곱 살이라는 나이보다도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지. 그리고 그때 나는 손자를 잃은 것이 어머니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물론 당신이 어머니에게 내가 믿는 바를 말했을 리가 없지. 바이올렛은 초콜릿 칩 쿠키를 만들어달라고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고, 나는 어머니가 재료를 섞을 그릇을 찾아 찬장을 뒤지는 소리를 들었어. 당신 어머니는 그날 아침 모든 재료를 사러 눈 속에 가게까지 걸어갔다 왔지. 나는 손을 뻗어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어.
"너는 강한 사람이야."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어. 그 말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전혀 몰랐어.
그날 밤 당신이 집에 왔을 때, 나는 어머니가 당신을 어두운 거실로 살짝 끌고 가는 것을 보았어.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지. 나는 당신이 두 손으로 어머니의 등을 토닥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나중에 당신은 어머니의 장미 향수 냄새를 강하게 풍겼고, 나는 밤새 그 포옹을 생각했어.
- 바이올렛은 동생을 아기 인형처럼 좋아하지. 아기를 안아줄 땐 머리를 만지고, 내가 그 애에게 젖을 주는 모습을 보고, 옆에 붙어 앉아 몸의 온기를 나눠 갖길 원해. 나는 바이올렛 없이 샘과 나만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 바이올렛은 샘이 없을 땐 그 애 얘기를 해. 바이올렛은 낯선 사람에게도 동생 이야기를 해. 가끔은 우리끼리만 공원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 나하고만 있는 시간이 그리웠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고, 나란히 앉아 그네를 타며, 바닐라 아이스크림 콘을 사 먹어. 우리가 집에 가면 샘은 당신과 안전하게 기다리고 있어. 나는 조용히 샘만이 나의 유일한 자식인 척하지 않아도 되지.
바이올렛은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내 침대에 앉아 있고 우리는 엄마와 딸이 할 법한 이야기를 해. 나는 상냥하고, 따뜻해. 아이는 호기심이 많지. 아이는 내 가까이에 있고 싶어 해. 눈은 부드럽고, 나는 바이올렛을 믿어. 나는 그 애의 곁에 있어줄 나 자신을 믿어. 나는 그 애가 점잖고 친절한 젊은 여성으로 자라나는 걸 지켜봐. 그 애는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되지.
- 당신은 이마를 문질렀어. "당신은 슬픔을 제대로 대하지 못했어. 한 번도 직면하지 않았어."
나는 당신이 말하기를 기다렸어.
"샘은 우리 결혼이 깨어진 이유가 아니야. 그 애는 이것과 아무 상관 없어."
침실 문이 열리면서 바이올렛이 들어와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어. 당신은 나를 천천히 보았고, 졸린 눈이 이제 그 애의 눈만큼 커졌지. 그러다 다시 우리 딸을 보았어.
"안녕, 우리 딸." 당신이 말했어.
"아침은?" 바이올렛이 물었지. 당신은 그 애 뒤를 따라 방을 나갔어.
(리뷰자 주 : "안녕, 우리 딸."의 원문이 궁금하다.)
- 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얼굴까지 들어 올려 코가 따끔할 때까지 되도록 깊이 들이 마셨어.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내 마음이 흠뻑 그 안에 잠기도록. 오트밀을 만들 때 부엌 바닥에서 냄비를 땅땅 두드리던 모습, 목욕할 때 젖은 수건에서 비눗물을 빨던 모습, 기저귀를 채우지 않아 위험은 있었지만 맨몸으로 기분 좋게 내 침대에 함께 껴안고 누워 이야기를 듣던 모습. 나는 샘에 대한 이런 작은 무성영화들을 갈망했어. 이런 기억들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장면들과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그 애를 봐야만 했어. 그리고 내 손에 든 이 물건들로 그 애를 느낄 수 있었지. 내가 제대로 집중만 한다면, 샘은 바로 내 옆에 올 수 있었고, 나는 다시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
- 젬마와 유대 관계를 맺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 젬마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자기에 대해 물어봐주는 걸 좋아했지. 말을 길게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고, 한참 생각하다 말고 눈을 꼭 감으며, "내가 너무 내 말만 했죠. 당신은 어때요?"라고 말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토끼 앞발을 토닥이듯 내 두 손목을 건드리곤 했어. 무척 매력적인 몸짓이었고, 우리가 결혼이라는 벽이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서 있는 동안, 당신이 그 여자에게서 어떤 고통의 유예를 찾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 내 머리가 밤하늘 속에 촛불 밝힌 종이 등처럼 떠다녔어. 나는 더는 거기 서 있지 않았어. 당신의 시선에 갇혀서, 당신이 다음에 할 말에 살육당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어. 당신이 내가 한 짓을 알게 된다는 수치, 공포, 후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내 자신을 떠난 거야. 나는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장갑 낀 손을 당신에게 내밀었어. 당신은 젬마를 보았지. 그런 뒤에 나를 다시 돌아보았어. 당신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어. 내가 당신 생일에 그 코트를 사 주었지.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나는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싶었어. 당신이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인정해야 했어.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점점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지. 내가 몇 년간 품고 있던 확신은 어쨌든 무게를 잃기 시작했어. 그날을 마음속에서 선명히 보기가 힘들어졌어. 가끔은 아침에 깨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것이기도 했어. 내 기억을 찾아 재생. 그 기억은 바래졌을까? 그 전날보다 더 멀리 물러났을까?
- "나도 엄마처럼 되고 싶은데, 언젠가." 엄마는 다시 멈추고 말이 없었어. 엄마는 한 손을 내 어깨에 올려놓더니 잡았어. 나는 등을 동그랗게 구부렸지.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색했거든.
"넌 그럴 필요 없어. 넌 엄마가 될 필요 없어."
"엄마는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내가 다른 유의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누가 되고 싶은데요?"
"아, 모르겠어." 엄마는 다시 엉킨 매듭을 풀기 시작했지. 잡음이 라디오를 채웠지만, 엄마는 라디오가 그냥 지지직거리게 놔두었어.
"어렸을 때는 시인이 되는 꿈을 꿨지."
"왜 안 됐어요?"
"나는 별로 잘하지 못했거든." 그러더니 엄마는 덧붙였어. "너를가지고 나서는 한 단어도 쓰지 못했어."
이건 내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어. 세상에 나타난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서 시를 빼앗아가다니. "다시 해볼 수 있잖아요."
엄마는 쿡쿡 웃었지. "못 해, 이젠 내게서 모두 사라졌어."
-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말하지는 않는, 모성의 이면에 대하여.
출처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유명한 속담에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었기에 그리하여 어머니를 창조했다"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의 인용 페이지들과 여러 설을 조합해보면, 러디어드 키플링의 책, <푸크 언덕의 요정 (Puck of Pook's Hill)>에 언급된 인용구로 알려졌지만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텍스트 내에서는 정확히 그런 문장을 찾을 수는 없다. 키플링이 정말 했든, 하지 않았든 이 말에는 모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신화가 깃들어 있다. 모든 이에게는 그를 돌보아주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신과 같은 존재로, 아이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발휘한다. 그 모든 신화가 만들어낸 여성의 이미지에 수많은 문학 작품이 도전했고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도 그중 하나다.
모성의 고백이자 심리 스릴러적인 특성이 있는 이 책의 제목인 '푸시(Push)'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아이를 몸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 즉, 출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 다른 의미는 이 작품 내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그려지는 아이의 죽음을 야기한 행위, 유아차를 밀어버린 그 동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기에 세 번째를 더할 수도 있다. 보통 서로를 안고 가까이 끌어당겨야 한다고 믿는 모녀 사이의 감정적 밀어냄을 상징하는 행위. 한 단어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가리키며,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도 묘사할 수 있다는 데서 착안한 이 소설은 모성이라는 공고한 성을 무너뜨리는 여러 사건 속에서 흘러가고 성장하는 한 여성의 의식을 탐구한다. 여성성의 핵심인양 묘사되는 모성에는 어떤 오해가 있는가? 그로 인해 우리 삶에는 어떤 희극과 비극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여성은 모성과 관련된 자기 의심 속에서 어떤 인간으로 변모하는가?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한 여성의 깊은 내면과 함께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하는 모성의 굴레를 밝혀낸다.
이 책을 독해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나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처럼 내 안에서 나왔으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을 가진 아이를 만난 어머니의 혼란으로 읽는 것이다. 즉, 이 소설의 화자인 블라이스의 서술을 그대로 믿고 그 사건을 받아들이며 따라가는 방식이다. 블라이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그의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도 마침내 '정상적 가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꿈꾼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 바이올렛은 블라이스를 밀어내고 오로지 아버지에게만 애정을 보인다.
-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하기오 모토의 만화 <이구아나의 딸>에서처럼 자신의 첫 아이를 괴물로 여기고 밀어내며, 둘째 아이만 편애하는 엄마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케시마 나미의 에세이 만화 <그래도, 우리 엄마>처럼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상처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충분히 사랑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닫는 여자도 있다. 이런 의혹을 품고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의 서사를 바라보면, 이 소설은 다시금 모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강제하는 환상을 깨는 효과를 낸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순간 모성이 기본값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며,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를 영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독해 방식 자체가 사회가 추천하는 모성을 실천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으로 빠져버릴 위험을 내포한다.
<푸시: 내 것이 아닌 아이>는 결국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사랑할 수 없는 아이를 만난 엄마의 악몽, 혹은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병적인 이상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엄마의 자기 의심. 블라이스는 실제로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 내면의 고통이 문장으로 펼쳐진다. 백 퍼센트 확신에 가득찬 어머니는 없으며, 어머니가 된 이들은 모성의 환상이 주는 안락감과 그것이 여성에게 부과한 의무의 무게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여성이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듯 어머니도 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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