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채사장] 소마

일루젼 2022. 1. 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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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채사장
출판 : 웨일북(Whalebooks) 
출간 : 2021.12.24 


 

메이저 아르카나의 대순환. 첫 느낌은 그것이었다. 

소설이라기에는 기본 구조에 너무나 충실한 연대기였고, 메세지라고 보기에는 충분히 다채로운 이미지와 즐거움이 있는 이야기였다. 너무나 다양한 조각들이 녹아들어 짜 맞춰진 <소마>는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보석들이었다. 

 

마녀사냥, 동서의 대립, 로마의 몰락.

십자군, 기독교가 받아왔던 박해와 가해왔던 박해, 자연 신앙과 원주민들의 삶.

쾌걸 조로, 노예제도, 민주주의, 공리주의, 수단과 목적의 철학적 고찰.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젊고 뜨거운 혁명과 그것의 성공했을 때 찾아오는 길고 지루한 평화.

반드시 수반되는 부패.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돌고도는 바퀴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동인 삼아 달리고 있는가? 

 


   

- 아버지는 밤새 신을 태웠다. 신의 개념까지 떨쳐낼 때 비로소 신에 닿을 수 있다고, 아직 타지 않은 신의 팔과 다리를 불쏘시개로 밀어 넣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목재로 된 살껍질과 뼈와 근육이 마지막 숨을 쥐어짜듯 미세하게 뒤틀리며 검게 그을렸다. 새벽의 숲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검댕이는 재가 되어 휘날렸다. 소마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재를 눈으로 따랐다. 멀리 어슴푸레 밝아오는 진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그것들은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때 어린 소마의 내면에서 처음으로 작은 빛이 반짝하고 사라졌다. 서늘한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정수리로 빠져나갔다. 소년은 이 순간을 정확히 인지했다.   

 

- "하지만 아버지, 저는 화살을 놓쳤습니다. 저는 화살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거라." 

 

- '인간은 진짜 고통에 이르기 전까지는 삶으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진짜 고통에 이른 후에는 어서 빨리 그것을 넘어 죽음에 이르기를 소망하게 된다. 너는 어떠한가. 죽음을 갈구할 만큼의 고통에 이르렀는가.' 

 

- 영웅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어야 한다. 영웅은 영웅으로 죽고 이야기는 박제된 이야기로 남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삶과는 다르고 삶은 지리하게 이어진다. 이유도 의미도 없고, 목적도 방향도 없는 넘치도록 당혹스러운 삶의 잉여를 바라보며, 길을 잃은 자들은 주변을 배회할 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눈에 띄는 아무것이나 움켜쥐고는 그것이 마치 길이라도 되는 양 애써 안심했으나, 그것은 그저 덫에 걸린 짐승이 죽음의 때를 기다리며 겨우 상처나 핥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어리숙한 영혼이 이것을 알든 알지 못하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세상의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자아의 빛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 그는 알고 있었다. 쥐고 있는 것이 자신임을. 매달리고 있는 것이 자신임을. 그리고 때가 무르익었음을. 이제야 오래전에 했어야 할 말을, 너무도 긴 시간 동안 미뤄왔던 말을 해야 할 때라고 그는 강렬히 느꼈다. 그래서 그는 비로소 말했다. 

"해는 서쪽 언덕으로 넘어갔다. 강은 바다에 이르렀다. 코요테와 까마귀는 떠났고, 숲에 사는 짐승들은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수레는 멈추었다. 이제 여행자는 여정의 끝에 도달했다." 

 

-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누구나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되지. 그러니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아버지의 말은 입에서 나와 소마의 귀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은 소마의 내면으로 어떤 중간 과정도 없이 직접 가서 닿았다. 그것은 이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소마의 삶 때문이었다. 길고 고단했던 인생의 여정은 소마의 대지를 기름지게 했고 풍요롭게 가꾸었던 것이다. 소마는 가벼워짐을 느꼈다. 

 

- 아버지가 물었다. "무엇을 배웠느냐?"
소마는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물었다. "다시 한번의 삶을 원하느냐?"

소마는 답하지 않았다.


 

- 사람들은 '생각'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인간 개인의 사고방식과 삶의 모습은 언제나 시대적, 사상적 배경 안에 종속된다. 나의 정신은 곧 시대의 정신이고, 나의 사상은 늘 집단의 사상이다. 

 

- 적막한 대지, 차분히 눈 쌓이는 밤, 멀리서 걸어오는 소마를 본다. 허위허위 내 앞을 지나 멀리 사라지는 초라한 등허리를 본다. 숨죽여 그를 따라가며 나는 내내 울었다.
여섯 권의 인문학 책을 출간하고, 첫 번째 소설을 준비하며, 때로는 사실보다 허구가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언제나 알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인문학을 쓰며 나는 인간을 알게 되었고, 소마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랑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2021년 겨울, 채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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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소마는 참으로 신중하고 사려 깊구나. 하지만 고민할 것 없다. 두 개의 보석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보석의 아귀는 빈틈없이 맞아떨어진다. 그것은 하나의 보석이지, 두 개의 보석이 아니다. 눈을 들어 신들을 보아라. 아비키야, 바바즈냐, 시트라파다, 그란냐, 드류티. 다섯 신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눈을 감고 신들을 보아라." 

 

- "그럼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나요?"

"아니, 그들은 자기 안의 신이 아니라 자기 밖의 신에게 복종한단다. 그들이 모르는 건 신이 아니라, 신의 개념까지 떨쳐낼 때 비로소 신에 닿을 수 있다는 지혜란다."

 

- 아버지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래전 소마가 태어나던 날 제사장님으로부터 내려받은 신탁을 떠올렸다. '젊어서는 세상을 호령하고 늙어서는 깨달음에 이르리라.' 어머니의 외삼촌인 제사장님은 대립하는 모든 것이 이 아이의 삶 안에서 모순 없이 뒤섞일 것이라며, 물과 같고 바람과 같고 허공과도 같다는 의미에서 아이의 이름을 소마라고 부르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의 얼굴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민에 휩싸인 귀여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대었다. 아이가 자기 안의 대립과 모순을 이겨내고 자기 삶의 승리자가 되게 하리라. 그때까지, 소마가 자기 스스로 운명에 맞설 수 있을 때까지 소마를 지킬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아버지는 깊게 기도했다. 

 

- 벌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 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한나는 단호했다. 그녀의 손이 공중을 가를 때마다 기도실은 매질 소리와 짐승 같은 절규로 채워졌다. 단상 위의 촛불이 요동쳤다. 벽에 걸린 십자가 고난의 성화와 교부 오리게네스의 초상이 살아 있는 듯 흔들렸다.  

 

- 바가렐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오래 고민할 가치가 있는 일도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신경 쓰이던 몇 가지 사소한 일을 동시에 해결할 적절한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계획들이 일어났다. 그것들의 실행과 그에 따른 각각의 결과를 가늠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하고 비용이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을 계산했다. 퍼져나가는 소문과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명분과 이에 따른 평판과, 그것이 가문과 자신의 아들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계획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고 몇 가지 계획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중 도드라져 보이는 하나의 길을 바가렐라는 강하게 움켜쥐었다. 생각은 끝났고, 그는 결정하면 곧바로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 네이케스와 고네는 펠로 가문으로, 견습기사들 중 실제로 전쟁 경험이 있는 건 이들뿐이었다. 이미 작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기에 견습기사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왕립기사단의 실질적 기능 때문이었다. 수도원에 소속된 일반적인 기사단과는 달리 왕립기사단은 전투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가장 공식적인 과정이었다. 네이케스와 고네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그들의 아버지 레나트 펠로 대공의 뜻이었다. 그는 이교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전쟁 영웅이었지만 칼과 활로 이룬 평화는 잠정적일 뿐임을 알았다.

"이교도의 입을 틀어막고 그들의 손목을 비틀 수는 있다. 그들 앞에 선을 그어 여기까지가 내 땅이라 선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는 만큼 그들의 마음속에는 반감과 분노가 자라난다. 우리는 그것을 완벽하게 잘라낼 방법이 없다."

레나트는 자신의 두 자녀를 전장에서 물려 왕립기사단에 입단시키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항구적인 평화는 교류와 공존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교류와 공존은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네이케스와 고네는 별다른 대답 없이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질 말을 기다렸다.
"정치다. 위정자의 뜻이 필요하다. 왕이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참모와 대신이 세상을 바르게 설명해야 한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아들아. 우리 가문은 성스러운 십자군 출정 이후 동방의 땅에 남아 그 땅의 원래 주인들과 다투지 않고 공존해왔다. 너희의 핏줄에는 공생의 정신이 피와 섞여 흐르고 있다. 무능한 아버지는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이곳 최전선에 남아 적을 향해 칼을 들이밀고 있지만 너희는 이 길고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야 한다." 

 

-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과 논리를 토대로 주장을 전개했다. 사무엘은 매번 신기한 듯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임이 계속될수록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운 좋게도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사단 교육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 대한 많은 진실을 사무엘은 배워가고 있었다. 

 

- "그 어지러운 파편들 속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그건 아주 어릴 때는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목소리는 나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려는 것 같았어. 하지만 언제부턴가 목소리는 사라졌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래서 한동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무기력 속에 던져져 있었는데, 어느 날 목소리가 다시 들렸어. 이게 옳은 거라고, 이제 그만 깨어나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라고. 그 목소리가 알려줬어. 그 목소리가, 고네, 너야." 

 

- '그래! 이제 알겠다! 이 비바람이 어디서 휘몰아치는지를, 이 풍랑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나의 몸뚱이를 날려버릴 듯한 이 동요의 정체를. 이것은 내 마음의 폭풍이다. 그래,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은 이것이다. 내가 안식과 평화를 미루고 내일 얻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초라한 삶을 멈추지 못하는 모든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그 죽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적들의 죽음이어야만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짓밟았던 자들을 나는 짓밟아야만 하겠다. 내가 아꼈던 이들의 안식을 깨뜨린 자들을 나는 깨뜨려야만 하겠다. 적들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지 못한다면, 그들의 얼굴에 새겨지는 일그러진 고통을 보지 못한다면 나의 생은 무가치할 것이고, 나의 죽음은 안식에 이르지 못하리라.' 

 

- 작은 칼날이 검지 길이만큼 그의 배를 열었고, 아틸라의 팔은 손목을 넘어설 만큼 미끈하게 들어갔다. 손은 배 안의 뜨끈한 장기를 휘저으며 익숙하게 생명의 선을 찾아 더듬어 올라갔다. 질기고 단단하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그것이 손끝에 닿았을 때 아틸라는 잠시 눈을 감고 전율했다. 이 감각이다. 전장에서 스무 해를 보내며 무뎌질 만큼 무뎌지고 혼탁해질 만큼 혼탁해진 그의 감정을 자극하는 유일한 감각은 삶과 죽음의 팽팽한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닿은 오직 이 순간뿐이었다. 검지로 그것을 말아 힘 있게 움켜쥐고 아래로 천천히 잡아당기자 지휘관은 자기 안에서 멱살을 잡힌 사람처럼 극단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눈은 초점을 잃어 헤매이고 온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아틸라는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 그의 고통을 상상했다.  

 

- 고통이다.
목소리가 다시 신나서 외쳐댔다.
'고통뿐이다. 남은 것은 오직 고통뿐이다. 그런데도 죽지 않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너에게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사랑하는 이도 없다. 네가 살기를 바라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가는 사람처럼 어디를 향해 그리 애를 쓰며 다리를 끌고 있단 말인가?'
순간 뭐 그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에게는 갈 곳도, 가야 할 이유도 없다.'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잡고자 했다.
하지만 순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뻗어 나와 그를 사로잡았다. 손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자 목소리가 재촉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무슨 미련이 그리도 크기에 이 고통을 끝내지 못하는가?'
그는 생각했다.
왜일까. 나는 왜 여정을 끝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문을 닫지 못하는 것일까. 왜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내가 그토록 얻으려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그것을 알고자 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 답을 얻고자 했다.

 

-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요한 물속에서 녹색의 작은 빛이긴 꼬리를 남기며 몸을 휘감다가 사라졌다. 곧이어 다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소마는 그것이 언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말을 걸어옴을 느꼈다. 
'결정했는가?'
'무엇을?'
'결정했는가?'
소마는 생각했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고 결정이 오롯이 자신에게 달렸음을 이해했다.
'그렇구나.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구나. 여기서 멈출 것인가, 더 걸을 것인가. 나는 결정해야 하는구나.'

 

-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멈추게 한단 말인가? 그를 멈춰 세우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나온 여정에 있다. 충분했는가, 만족했는가, 이만하면 되었는가, 아니면 지쳤는가. 그것이 그를 멈춰 세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더 걷게 한단 말인가? 그의 걸음을 더 재촉하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에 있다. 볼 것이 남았는가, 해야 할 것이 남았는가, 닿아야 할 곳이 있는가.'
 

- 대지를 뒤덮은 녹음은 여름 내내 찬란히 빛났다. 들풀의 생명력은 넘치도록 건강하여 쉼 없이 뿌리와 줄기를 뻗어갔다. 몇 번의 소나기가 지나자 대지는 초록빛 파도로 넘실댔다. 다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계절도 끝을 향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다 이내 서리가 내리자 짙어가던 잎사귀들의 색은 바래졌다. 가을 내내 단풍은 말라 떨어졌다. 쌓인 낙엽 위로 이내 눈이 내렸다. 겨울은 눈 아래 묻힌 모든 것을 썩혀 대지로 돌아가게 했다. 찬바람을 따라 내려온 순록의 무리가 심장에서 덥혀진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눈에 덮인 하스코보 평원을 가로질렀다. 봄이 되자 죽었던 것들 위로 수풀이 자라났다. 보초병처럼 껑충하게 금수염풀이 뻗어 나왔고 치커리 꽃과 나르두스가 듬성듬성 머리를 내밀었다.  

(리뷰자 주 : 나르두스(nardus). 고대 그리스어로 라벤더를 말한다.) 

 

- 셋째 날에 그는 의지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무엇인가에 닿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고 요동치고자 하는, 부풀대로 부풀었던 그 충동과 욕망 자체가 점차 오그라들더니 결국 말라죽어버렸다. 더는 하고자 하는 것도 하지 않고자 하는 것도, 생성하려 하는 것도 소멸하려 하는 것도 남지 않았다. 

- 넷째 날에 그는 자기의 의식을 보았다. 내면의 주인, 내면 안에 앉은 자, 내면 그 자체와 대면했다.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원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세상의 구심점이고 세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상태 자체였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얇은 경계로 구획되어 있는 무엇. 그것이 자기의 의식이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 마지막 다섯째 날에 경계는 사라졌다. 거품이 터지듯 자아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것은 곧 세계 자체가 되었다. 이제 자아는 없고, 자아 아닌 것도 없었다. 안도 없고 밖도 없으며, 존재도 아니고 부재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일자이면서 최초의 시작이고 동시에 다자이면서 최후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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